아침에 일어나니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군요. 이럴 땐, 바하 또는 모짜르트를 틀어놓고 커피향을 실내에 가득 채우면 아주 제격이지요. 그러면 멀리 떠난 아이들이 더욱 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국이야기라기보다는 딸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나에게 영국은 딸 아이 때문에 인연이 된 나라입니다. 딸 아이가 영국으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취직을 하는 바람에 영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독일 유학시절에 유럽의 대부분 나라를 여행했음에도 영국은 가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왠지 영미계통에 대한 약간의 혐오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영미계 국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미계통의 사람들은 대개 일은 하지 않으면서 돈 계산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힘의 세니까 겉으로는 존경하는 척 하지만, 특히 미국인의 문화적 저질성에 대해 독일인들은 혀를 내두릅니다. 그래서 안 좋은 것은 다 미국애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긴 독일도 아직 우리나라처럼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여서, 군사지도에는 독일이 미군 점령지로 표시되어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미국에 대한 감정이 좋을리는 없겠지요.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영국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었습니다. 딸 아이가 대학을 마치고 2007년 여름에 스위스계 투자은행인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의 런던오피스에 Business Analyst로 취직해서 일하다가 지난해 말 휴가 겸 노동비자취득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돌아갔습니다.

 

비자를 기다리는 동안 영국경제가 워낙 안 좋아서 외국인 취업을 적극 억제하는 정책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비자가 선뜻 나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노동허가비자가 나왔다고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계뿐만 아니라 유럽계 투자은행들도 만신창이가 돼서 모두들 수천 명씩 구조조정 하는 마당에, 회사에서 변호사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비자발급을 종용했다니,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딸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러면 지금까지 딸이 노동비자도 없이 어떤 상태로 일했냐고? 영국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적어도 1년간은 노동비자 없이 취업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그것은 외국인 졸업생 중에서 소위 high skilled people을 영국 내로 유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지나서 이제는 정식노동비자를 얻어야 합니다. 한국에 와서는 재택근무를 했습니다. 서울에서 저녁 6시에 로그인해서 새벽 3시까지 런던의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온라인으로 일 처리를 해야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당초 대략 2주 정도, 아무리 늦어도 한 달 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예상과 달리 두 달도 더 걸린 셈이다. 그렇게 길게 걸린 이유는 아마도 그간에 영국에서 했던 딸 아이의 행적을 일일이 조사하느라 그랬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내와 나는 딸 덕분에 여름휴가를 2년 연속 영국에서 보냈습니다. <영국여행 이야기>시리즈는 그 연유로 쓰게 되었습니다. 딸 아이가 런던에서 일하면서 국제금융을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가족이 떨어져 살면 늘 그리움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잘 먹는지, 운동과 휴식은 충분한지 늘 걱정이죠. 그리고 투자은행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도 불분명해서 가급적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건 완전히 내 생각일 뿐이고

 

딸 아이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나의 삶이 아내와 결혼 후에도 줄곧 공부하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아이들을 잘 보살피지도 못했는데, 벌써 훌쩍 커버렸습니다. 지들 맘대로 커버린 것이죠.

영국으로 떠나는 날 공항에 데려다 주면서 카메라를 들고 갔습니다. 몇 장 찍었습니다. 딸 아이가 보면 아주 싫어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주 예쁘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아이들이 더욱 보고 싶어지는군요.

 

나는 사진 찍는 일에는 서투릅니다. 잘 찍지 못하고, 어떻게 찍는 줄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완전 자동모드로 찍습니다. 내겐 그게 편하기 때문이지요.

한시간 일찍 도착해 짐을 부치고 던킨 도너츠에서 도너츠와 콜라를 마셨습니다. 어제 파마를 해서 추레하니 찍지 말라고 난리를 쳤는데, 찍사 맘이라고 그냥 찍었습니다.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인데 가까이서는 절대 찍지 말라고 하는 걸 냅다 찍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일해라. 몸을 튼튼히 해라" 정도였습니다.


평소에 생머리던 딸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 출국 하루 전에 머리를 했습니다.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딸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습니다.


출국장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짐을 부쳤는데도 보따리가 많군요. 내가 들어다 주고 싶은데... 출국장으로 들어가면서 작별인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딸이 편지를 써놓고 갔습니다. 쓰다 남은 한국돈도 남겨놓았습니다. 열어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삶에 있어 최상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군요. 그리고는 엄마 아빠가 건강에 시간투자하는 것 잊지 마시고 항상 좋은 생각과 재미있는 일들로 '뇌'를 꽉 채우라고 충고하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는군요. 내 고향 강원도의 극심한 겨울 가뭄이 이 비로 다 해소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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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