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후에는 <테일러리즘>의 계량화를 통한 합리화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 온 세상이 비인간화로 초토화되고 있었습니다미국은 이 개념을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전세계에 수출했습니다.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는 과학적 관리법을 미국이 제안한 것으로 전세계에 보급된 유일한 개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세계 어느 곳이든 간에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만약 그들이 과학적 관리법을 공격하면, 그것이 곧 실질적으로 미국을 공격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피터 드러커, 이재규 옮김, 경영의 실제, 한국경제신문 2006, 416쪽 참조)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전세계의 많은 기업가들이 과학적 관리법이야말로 미국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밀이라고 믿었습니다. 큰 전쟁을 치른 후, 복구를 위해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상황에서 미국기업의 성공은 과학적 관리법이 아니었어도 성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과학적 관리법에도 불구하고 근로자관리와 노동생산성의 문제는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드러커가 놓칠 리 없었습니다. 그는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을 점잖게, 그러나 통렬하게 비판했습니다. 과학적 관리법에는 두 가지 맹점이 있는데, 하나는 기술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적 측면이었습니다.

 

첫째 맹점은 분석과 통합의 문제였습니다. 분석하는 것과 통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슈라는 것입니다. 과학적 관리법이 비과학적인 이유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은 과학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분류와 분석이 대상의 본질에 대해 어떤 것도 밝혀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눈물을 분석하면 약간의 소금기와 물이 나오겠지요. 그것을 계속 분석해 들어가면 분자 > 원자 > 원자핵과 전자 > 중성자와 양성자 > 쿼크들 > 업쿼크와 다운쿼크 >… 이것은 대단히 과학적인 분류이고 분석입니다. 이것을 다시 거꾸로 통합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눈물이 되겠죠. 그래서 우리는 눈물의 본질을 이해했나요?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책 중에 하나입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과학적 관리법에 내포된 더 큰 문제는 인간을 매우 빈약하게 설계된 기계장치로 가정한다는 데 있습니다. 노동과정을 여러 개별동작으로 분석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노동행위는 구분동작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이 하나로 통합되어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개인의 의지, 성격, 정서, 기호, 그리고 마음의 문제가 자신의 직무와 통합될 때 비로소 생산성이 올라가게 됩니다. 이것은 분해된 기계부품들이 하나의 장치로서 작동하려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계도 그런데, 하물며 사람에게는 어떻겠습니까?

 


둘째 맹점은 계획과 집행을 분리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 노동의 양과 질을 계획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계획만 수립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히 꿈을 꾸는 몽상가일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계획된 일을 집행만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히 일하는 짐승일 것입니다. 계획하기와 집행하기는 하나의 직무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일 뿐이다. 이것이 별개의 직무로 분리되는 순간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드러커는 다음과 같이 적절한 예를 들어 노동의 계획과 집행을 분리하려는 시도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합니다.

 

계획과 집행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음식물의 섭취와 소화를 별도의 육체에서 하기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추가로 설명하면, 섭취와 소화는 별도로 연구되어야 한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생리기관들을 필요로 하고, 발생하는 질병의 종류도 다르고, 그리고 육체의 다른 부분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일단 영양분을 흡수하려면, 마치 한 직무가 계획과 집행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과 같이, 육체는 두 부분 모두 필요하다.”

(피터 드러커, 이재규 옮김, 경영의 실제, 한국경제신문 2006, 421쪽 참조)


 

이러한 맹점은,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 어째서 기업의 노동생산성을 더 이상 높이지 못하고, 근로자들이 계량화를 통한 합리적 변화시도에 저항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잠재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테일러식의 계량화는 1시간 동안은 높은 생산성을 끌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100시간 이상의 근로시간에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우상이었던 박철순 투수, 그는 살아있는 전설로 박찬호 선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훌륭한 투수였습니다. 그러나, 당장의 시합, 즉 눈 앞에 보이는 스코어보드에서 이겨야 했기 때문에, 감독들은 박철순 투수의 어깨를 혹사시켰습니다. 당연히 오래갈 수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일찍 은퇴해야 했습니다.

 

숫자로 합리화하는 모든 행위가 과학적인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비과학적 행위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경영학과 경영실무에서 이런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