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나마라는 미국사회를 온통 계량화하려고 했습니다.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했던 7년간뿐만 아니라 그 후 세계은행(World Bank)총재로 근무했던 13년간을 합치면, 그의 영향력은 그 누구보다 컸습니다.
그러나, 품질관리 전문가이자 통계학자였던 에드워즈 데밍(W. Edwards Deming, 1900~1993)은 미국경영학의 폐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 국무부 공무원들에게 미국의 경영기법을 우방 국가에 수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계량화하는 숫자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품질혁신을 위한 혁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이익이나 권력, 명예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었던 사람처럼 일생을 살았습니다. 나는 데밍을 단순한 경영학자를 뛰어 넘는 위대한 인물로 여깁니다. 내가 그를 추앙하는 이유는 그의 사상에서 단순한 통계학자가 아닌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본적인 경영사상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제로 일본산 제품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고, 이를 통해 일본이 경제부흥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는 품질이 숫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일본 제품들이 미국 시장을 석권하자, 미국기업의 CEO들은 일본품질관리의 아버지 데밍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미국 자동차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데밍을 초대해 강연을 들었습니다.
노구를 이끌고 나온 데밍은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미국이 왜 제대로 경쟁하지 못할까요? 일본의 임금수준이 낮아서도 아니고, 도요타 시티에 최신식 시설이 있어서도 아니고, 엔화 약세 때문도 아닙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바로 여러분들, 경영진입니다!”
데밍은 자동차 업계의 최고위직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사장이었던 짐 맥도널드(Jim McDonald)에게 엄한 질책을 퍼부었습니다. GM이 안고 있는 품질문제의 85%는 그의 책임이라고 혹평했습니다.
그 후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요? GM의 생산책임자들이 데밍을 몰래 초빙했다가는 목이 달아나는 사태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 후 자동차업계에서는 데밍이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유명해졌지만, 자신의 직무를 방기하고 있던 최고경영진에 대한 질책과는 달리, 학습하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따듯한 애정을 보이곤 했습니다. 기업체의 고위직 임원들이 시스템의 변화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경우, 데밍은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날 미국 자동차 업계가 파산의 지경을 맞게 된 것은 노사문제가 아니라 경영진의 문제였습니다. 품질이 계량화를 통해 이룰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품질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으로부터 나옵니다. 제품의 품질, 기업의 품질, 조직의 품질, 국가의 품질은 지도자의 정신과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의 품질 역시 그 정신과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미국의 국가품질이 엉망이 된 것은 그들의 정신문화가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밍은 미국 외교부 직원들에게 미국식 경영을 우방에 수출하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데밍에 관한 에피소드는 안드레아 가보, 심현식 옮김, 『자본주의 철학자들』, 황금가지 2006, 373~445쪽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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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이야기 2009/05/12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분이군요. '지식과 현장은 달라' 하고 일선에서 있는 분들은 흔히 학자들을 낮추어 말할 때가 있지만, (정말 탁상공론일 때도 있고요) 현장에 있는 '바보'들에게는 반드시 학자들의 지식이 필요하지요.
미국의 자동차업계는 아직도 문제의 원인이 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차가 미국에 상륙할 때, 자신들의 품질을 뜯어보고 반성하고 고쳤어야 했는데, 경영진은 오히려 레이건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어서 외제차 수입을 못하도록 하고 그래도 안 되니까 정부보조를 받아서 노조를 무마하는 일을 해왔어요.
미국자동차회사의 역사는 몇몇 훌륭한 경영자(예를 들면, 1980년대 포드의 도날드 피터슨 같은 사람)를 제외하면 대부분 역사의식이 없는 무능한 사람들이 운영해왔다고 해야 할 겁니다.
그 핵심을 지적한 데밍에게 외려 화를 냈으니까요. 미국자동차업계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어요. 문제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경영자들을 수두룩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학자들은 그런 경영자에게 질책은커녕 떡고물 떨어지는 게 혹시 있을까 두리번 거리고 있지요.
2009/05/13 1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지적하신 오타를 고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