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륙으로 건너간 초기 이민자들은 17세기 초엽에 영국의 종교적 박해를 피하여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온 청교도들이었습니다. 이민자들이라고 표현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종교적 난민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인들, 특히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들(WASP)은 자신의 조상을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라고 부르면서 그들의 믿음, 용기, 그리고 위대함을 칭송합니다.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대부분 칼빈주의자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인물인데,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중의 한 명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철저하리만큼 경건하게 유지하면서, 노동이야말로 신의 소명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때부터 근검절약과 직업소명설이 개신교 윤리의 핵심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막스 베버는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연관성을 연구해서 세계적인 학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칼빈은 신의 전지전능하심과 인간의 완전한 타락을 예정설로 설명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알 수 없는, 전적으로 신의 예정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의 여부를 알 수 없다면 매우 불안하겠지요. 열심히 노력했는데 지옥으로 떨어진다면 그거야말로 낭패일 것입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배웠고 일점일획도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쉽게 이해되었습니다. 세상에 성경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머리가 점점 크면서, 주일학교에서 배운 것과 세상 학문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 주석과 신학서적들을 찾아 읽으면서 어려웠던 것들이 대부분 명료해졌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은 더 헷갈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것이 왜 어려울 수밖에 없는지도 대강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공부해 가는 과정에서, 신학자들의 성서해석이 시대에 따라 변천해 왔음도 확연히 알았고, 어떤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신학적 해석도 달라져서 기독교 신앙은 수많은 유파로 갈리게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디선가 들었던 얘기들이 나중에 보면 틀린 경우가 꽤 있습니다. 미국에 관한 얘기가 그랬습니다.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찾았던 믿음의 조상들이 세운 기독교국가라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려서 철썩 같이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미국이 과연 기독교국가인가? 건국의 역사를 보면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물론 건국 과정에서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헌법은 정부가 어떤 특정한 신앙을 독점적으로 지지하거나 향유할 수 없도록 규정했을 뿐 아니라, 신앙에 대해서는 어떤 규제도 하지 않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건국의 아버지들도 신앙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신대륙으로 찾아온 난민들이 종교적 이상을 따라서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온 사람들도 아주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도들, 특히 일종의 칼빈주의자들이었던 청교도들은 칼빈의 신념에 따라 철저한 경건과 소명의식으로 삶을 영위했습니다. 신대륙의 척박한 땅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가혹한 시련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칼빈의 예정설에 입각한 구원의 징표를 필요로 했습니다. 험난한 대서양을 건너오는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이 우선 신의 축복이었고 구원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황무지를 개척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지만,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해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의 소명을 잘 수행했다는 것이고, 그 징표가 바로 그들의 곳간에 쌓인 물질적인 부였습니다.

 

이러한 전투적인 삶, 온갖 시련을 이겨내는 삶이야말로 구원의 증거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부자(富者)가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성립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후예들에게도 그대로 전수되었고, 그들의 DNA속에는 그런 개척정신이 깊이 박혀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프론티어 정신은 서부를 개척하게 했습니다. 원주민을 살육하면서 땅을 빼앗았습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고,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를 해방시켰습니다. 그들의 개척정신 속에는 이렇게 폭력성이 내포되어 있었지만, 어쨌든 해냈습니다. 두 차례의 유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달나라에까지 사람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미국을 동경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친척 중에 미국에 사는 이가 있다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미국유학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선택 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였습니다. 미국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확실히 신의 축복을 받은 증거라고 믿을만했습니다. 미국은 기독교 정신의 영향을 많이 받고, 온갖 환난을 견뎌낸 나라로서 신의 축복과 구원의 증거가 충분한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옳았다는 징표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인들의 손에는 신의 마패가 주어진 셈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과 방식을 다른 세계에도 그대로 전파해야 할 신성한 사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더 이상 개척해야 할 땅이 없자, 이번에는 9.11테러를 빌미로 이라크를 개척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십자군이라는 말을 무심코 사용한 것도, 그래서 세계인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산 것도 이런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개척할 땅이 없어진 상황에서 미국인들은 무엇을 개척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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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