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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있어서, 성경의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원 일꾼>에 관한 비유에 대해 좀더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 이 비유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신자유주의적 이념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뿌리 채 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에게는, 한 시간 일한 근로자나 뙤약볕에서 10시간 일한 근로자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지불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는 어떤 식으로도 해석하기 곤란합니다. 오늘날의 지성과 합리성으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죠..

 

혹시 일용근로자들의 새벽 인력시장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도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 중에는 직접 경험은 물론 간접적으로라도 들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루하루 일해서 일당으로 사는 분들이 일거리를 찾기 위해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새벽 인력시장입니다. 남대문 근처를 비롯한 서울 전역에 여러 군데서 새벽마다 노동시장이 섭니다. 일손을 필요로 하는 소규모 작업장에서 봉고차를 몰고 와서 필요한 인원수만큼 데려갑니다. 뽑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건장하고 힘 잘 쓸 수 있고 숙련된 것처럼 보이는 순서대로 뽑힙니다. 이 인력시장에서 뽑히지 못한 사람은 그날 하루는 공치는 겁니다. 일거리가 없기 때문에 일당을 벌 수 없습니다.

 

2000년 전 중동지방에도 이런 인력시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포도원 일꾼>에 관한 예수의 비유는 바로 이것을 지칭한 것입니다. 주인은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인력시장에 가서 필요한 만큼 데려왔는데, 오후에 나가보니 아직도 일거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불쌍한 마음에 그들도 포도원에서 일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저녁에도 나가 보았더니, 아직도 일을 얻지 못한, 운이 없거나 무능해서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이 거리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현대적 용어로 말하자면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도 일거리를 얻지 못한 그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그날 일당을 똑같이 지불했습니다. (마태복음 201~16절 참조)

 

예수가 들었던 이 비유의 맥락을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어느 날 부자청년이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궁금해하는 부자청년에게, 예수는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이 청년은 근심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 술 더 떴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깜짝 놀라 그러면 도대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예수는 바로 이때 <포도원 일꾼>에 관한 비유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 먼저 된 자들이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들이 먼저 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마태복음 1916~30절 참조)

 

일부 신학자들은 이 비유를 교회에 한정해서 해석하기도 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일꾼은 세상 사람들을, 포도원은 교회를, 관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여 해석하기도 합니다. ,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교회(천국)에 오는 사람들에게 먼저 왔거나 나중에 왔거나 동일한 은혜를 베푸신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물론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것을 협의의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의 일관된 가르침은 인간의 본능을 따르는 부의 탐욕적 추구가 악한 것이고, 결국은 불행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아, 과부, 나그네, 가난한 사람을, 요즘 말로 하면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라고 명령했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논리로 보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비유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뛰어난 지식과 고도의 합리성을 여지없이 무너뜨립니다. 세상의 가르침을 한 방에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립니다.

 

어떤 것이 인간의 뛰어난 지식인지 생각해볼까요? 대단히 효과가 있다고 믿고 있는, 최근에 유행하는 이론 중에 보상(칭찬)을 통해 코끼리를 춤추게 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행동주의 심리학에 근거한 것인데, 보상에 따른 강화이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업의 보상제도가 대부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한걸음 확장하면 당근과 채찍의 원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기업의 보상제도, 성과와 역량의 문제는 나의 전문영역이기 때문에 앞으로 지속적인 포스팅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자주 방문하셔서 읽고 함께 논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을 여느 짐승과 동일하게 자극과 반응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합니다. 인간을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의 거래적 존재(transactional being)으로 인식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이 따위 이론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짐승처럼 본능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는 계산적 존재가 아니라, 신의 형상을 닮아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실존적 존재(existential being)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인간의 뛰어난 지식 중에 형평성 이론(equity theory)이 있습니다. 포도원 일꾼 비유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입니다. 10시간 뙤약볕에서 일하는 사람과 1시간 일한 사람에게 똑같이 보상한다는 것은 곤란하다는 이론입니다. 적어도 10배는 아니더라도 보상의 상당한 차이가 노동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뛰어난 지혜입니다. 대단히 논리적이고 계산적입니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합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뛰어난 지혜를 성경은 여지없이 무너뜨립니다.

 

대학에서 현대적인 경영이론을 배울 때, 나는 그 이론의 정교함과 합리성, 그리고 실증가능성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런 이론들이 현실에 잘 적용되기만 한다면, 훌륭한 경영성과와 위대한 기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런 이론이 근본적으로 잘못 되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시행착오도 거쳤습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실을 관찰하고 온갖 문제상황에 직면해보면서, 인간의 지혜가 한낱 물거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경영이론들을 적용하면 할수록, 조직문화는 점점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0시간 뙤약볕에서 일한 사람과 1시간 일한 사람의 보상을 10:1로 결정해서 지급한다면 일단 공정하다고 생각하겠지요. 그 다음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계산합니다. 보상받은 만큼만 일합니다. 더 이상 일하면 손해를 보는 것이지요. 이제부터는 손익을 철저히 계산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기도 합니다. 조금이라도 손해 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익이 될만한 것에는 눈에 쌍심지를 켭니다. 조직문화가 어떻게 될까요? 이런 조직에는 공동체 정신은 사라지고 개인적 욕망과 탐욕을 위한 계산만 남게 됩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랑 안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형이 아우를 대하듯, 사랑과 온정으로 이웃을 대하는 것이 인류를 구하는 지름길입니다. 조금 못난 자식에 더 많은 애정을 쏟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듯이, 포도원에 제때 불려가지 못한 사람, 즉 사회적으로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사회에는 서로 신뢰와 사랑이 생겨납니다. 손익을 넘어선 사랑이 오히려 더 풍요로운 부를 창출하고, 그런 부의 향유가 사회를 더욱 신뢰하도록 만드는 선순환을 가능케 합니다. 그래서 앞에서 북유럽의 사회모델을 예로 들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형평성을 따지는 계산의 논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과 애정입니다. 사랑은 인간의 지혜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인간은 짐승처럼 본능의 테두리에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인간은 예수의 형상을 닮았고,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실존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기독교회는 예수의 제자들이 모인, 포도원 주인 같은 사람들이 꾸민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이란 스스로 그리스도(메시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Christian이란 작은 그리스도라는 말인데, 기독교인들 스스로 자신을 작은 그리스도라고 인식한다는 것이죠. 독일어에서는 기독교인을 아예 Christ라고 부릅니다. 예수도 그리스도요, 기독교인들도 그리스도입니다. 자신이 곧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라는 겁니다. 놀랍죠.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

 

그러므로 <포도원 일꾼>의 비유는, 오늘날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현장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생생한 가르침이 있을까요? 포도원 비유는 뒤늦게 포도원에 왔거나 아예 들어오지도 못한 일꾼들에게, 그래서 생계가 막막해진 사회적 약자인 그들에게 우리 사회가, 아니 기독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교훈이 아닐까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 예수의 명백한 가르침을 과연 피해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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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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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서울비의 알림

      Tracked from seoulrain's me2DAY 2009/06/20 14:47  삭제

      <포도원 일꾼> 비유와 노동현장 - 최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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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고파 2009/06/20 14: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명기 24장 17절에는 '떠돌이와 고아의 인권을 짓밟지 말라. 과부의 옷을 저당잡지 말라'고 하셨고, 이후 19정부터 마지막 절까지 하나님은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나 올리브와 포도 열매를 딸 때에도 일정량을 남겨 두라고 '명령'하셨으며, 이렇게 남겨진 것들은 밭이나 과수원의 주인 것이 아니라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에게 돌아 갈 몫이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 우리는 그동안 소외된 자의 몫을 강도질 해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두렵습니다.

      • 최동석 경영연구소 2009/06/21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 그것은 가진 사람들의 황폐한 정신 때문입니다. 배운 사람, 가진 사람, 건강한 사람들이 앞장 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텐데요...

    2. 구월산 2009/06/21 0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구가 경영하는 회사에 직원이 한 20여명 정도됩니다. 요즘 그 쪽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되는데 그 사무실에서 제일 불쌍한 인간이 그 회사 사장인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본금을 훌쩍 뛰어넘는 부채, 치열한 경쟁과 고객들의 싸늘한 시선에 항상 스트레스 받고 직원들이 무서워도하고 최대한 예의바른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 실력있는 사람들이 이직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애처롭게 비위를 맞춰야하는 것도 사장 몫인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는 난생 처음처음으로 저번달 월급이 며칠 밀렸다며 괴로와하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소주를 마셨는데 마침 차를 갖고 간지라 대리운전을 했는데 그 친구 얘기를 듣다 대리기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이 분은 참 마음편하게 산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진 것은 어느정도 되지만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너무 많은 사회인 것 같습니다. 안철수씨도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돈, 명예보다 마음 편하게 사는게 제일 좋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사회적으로 마음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은 약자도 아니고 부자도 아닌 그냥 불쌍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마음이 불편할까하고 그 친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생각도 들고 할말도 많아지지만 결국은 환경문제인 것 같습니다. 개인이 중요하지만 사회환경을 뛰어넘어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개인이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군림하는 자와 약자, 불쌍한 사람들,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이런 부류들만이 사회를 가득 메우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그렇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불쌍한 사람들 포함시키는 것이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도 약자에 포함시키고 싶군요. 많이 느끼게 해주는 글을 보면서 댓글이 좀 길어졌습니다.....^^

    3. ucandoit 2009/06/22 0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저 때문에 글을 하나 더 쓰셨군요. ~_~
      글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바에 대해 저또한 전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에 괜히 논쟁을 일으킨 건 아닌지 생각되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공평하게 나누라고 가르치셨지만 다른 한편으로 열매맺지 못하는(성과를 내지 못하는, 즉 무능한) 자에 대해 매우 엄하게 대하시기도 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1달란트 맡긴 종을 악하다고 하며 그 달란트를 빼앗아서 가장 많은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 종에게 주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모두에게 동일한 은혜를 주지만, 개개인이 맺은 열매에 대한 보상은 확실한 차등을 두었습니다. (그 후에 또 다시 서로 나누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시었습니다만...)

      말씀하신대로 성경의 비유를 사회적 문제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문제를 해석하는 시각도 제각각이고 성경에 대한 해석도 견해차이가 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너무 큽니다.

      제가 괜히 바리세인이나 제사장들처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트집잡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잠시 망설이다 댓글 적고 돌아갑니다.

      선생님의 글이 훌륭하심은 분명한데, 괜히 흠집을 내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 최동석 경영연구소 2009/06/21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주 좋은 지적을 적절하게 잘 하셨습니다. 내가 성경학자가 아니어서 성경을 말할 때 늘 조심스럽습니다. 그점을 미리 이해하시고 나의 견해를 그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포도원 일꾼>은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에 관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일하고 싶지만, 사회적으로 기회가 없어서 일할 수 없었던 "나중에 온 사람들"에 대해 철저히 배려해야 한다는 명령이었습니다. 보상제도와 같은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달란트 비유>는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다 주어졌는데도, 개인의 게으름과 나태, 불성실과 부정직에 대한 준엄한 심판의 교훈을 준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적은 성과를 낸 사람들("나중에 온 사람"과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똑같이 징벌적 보상제도를 활용하라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을 교훈하는가? 성과를 낼 수 없는 개인적 무능함(A)과 (능력은 있으나)성과를 내려는 의욕이 없는 개인적 나태함(B)은 성경에서 명확히 구분했던 것 같습니다.

        무능함(A)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보살피고 배려해야 하지만, 나태함(B)에 대해서는 매우 준엄한 징벌을 가했습니다.

        A와 B를 동일한 제도와 획일적인 기준으로 처리하면, 우리사회에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불공정성 또는 양극화가 발생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좋은 환경에 있는 기득권층과 그 자녀들은 계속 "놀고 먹어도" "돈이 돈을 버는" 상태가 되어 부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진사회에서는 A와 B를 구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 성과관리와 역량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무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제도에서도 A를 철저히 배려하면서, B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징세함으로써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거꾸로 하려는 경향이 최근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이 블로그의 지금까지 쓴 글에서도 여기저기 성과관리와 역량관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므로 찾아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울러, 이 블로그는 개인과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기 때문에 성과관리와 역량관리시스템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해 나갈 계획임을 알려드립니다.

        끝으로, 좋은 문제의식으로 질문과 의견을 주신데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ucandoit 2009/06/22 0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정말 마음이 좋습니다.

        사실 제가 끄집어내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언급하신 (A)와 (B)에 대한 구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불필요한 논쟁을 일으킬 것 같아서 조심스러웠는데, 선생님께서 명쾌하게 정리하여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이곳의 RSS feed을 제 리더에 추가하였습니다.
        말씀하신 다른 글들도 종종 읽도록 하겠습니다.

      • 최동석 경영연구소 2009/06/22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행이군요. 감사합니다.

        <달란트 비유>와 <포도원 일꾼 비유>에 대해 약간의 오해가 있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간 나는 대로 A와 B에 대해서도 포스팅을 해야겠군요.

    4. 청지기 2009/06/21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신도입니다. 아울러 비 정규직보다 못한 인력회사에 소속된 계약직이기도 하고요...

      1년에 한 번씩 재계약을 하는 상황이라서 계약이 되었다고 하면 안도의 한 숨을 쉬고 또 내년에는 어떻게 될까 라는 걱정을 동시에 하게 되는 그런 실정입니다.

      그것도 금년에는 1년 중 열달만 계약이 되었습니다.

      이제 6개월 후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이지요...그러나 스스로 동정 받기를 원하지도 않고, 또 어느 누구를 원망할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지요...


      그러나 이런 제 처지를 이야기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도 성경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성경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서 느낀바를 적어 보고자하는 마음이 들어서 부질 없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해석하는 포도원이라는 일터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이라고 느껴 집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 자녀들을 하나님 나라 즉 천국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이 땅의 일터인 포도원에서 형제 자매들에게, 창조주 자기 아버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일이라고 보아집니다.

      소위 말하는 전도자의 일을 일찍부터 한 사람도 있고, 늦게 시작한 사람도 있고, 전도인으로 써주는 곳이 없어서 아직까지 시작도 하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늦게 시작하였다고 시간을 따져서 차별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고, 같은 일을 한 사람에게 같은 상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의미로... 아버지의 너그러운 마음이라는 의미로 이해가 됩니다.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는 뜻과도 같은 의미로 말입니다.

      아울러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과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을 금액으로 차별하지 않고, 똑 같이 착하고 충성된 된 종이라고 칭찬하는 것과도 일맥상통 한다고 느껴집니다.

      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늦게 시작하였을 지라도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거리를 준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착하고 충성되게 일하면 늦게 된자도 먼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해 됩니다.

      아울러 먼저 시작하였다고 더 많을 댓가를 받으려는 마음은 무 조건적인 사랑의 마음이 아니고, 늦게 들어온 사람도 나와 같이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나, 오히려 나보다 더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뜻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성경은 영이신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쓴 글이니 영적인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한다.'는 내용처럼 성경을 보는 사람은 영적인 각도에서 영이신 하나님을 아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으니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형편대로 그들을 도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타인을 원망하므로 나를 정당화 시키는 일이 아니고...

      다만 나보다 못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것을 회피하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하는 일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5. 섬강 2009/06/23 0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전편에서 왜 포도원 비유를 들었나 약간 이해를 못했었는데
      인력시장 예를 읽으며 한방에 이해가 갔어요.

      • 최동석 경영연구소 2009/06/23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느 대형교회의 목사가 <포도원 일꾼> 비유로 설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목사는 "주인은 소유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인에게 잘 보이는 일꾼들이 돼야 한다. 그래야 적게 일하고도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뉘앙스의 설교였습니다.

        여기서 주인과 일꾼은 누구겠습니까? 하도 기가막혀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대형교회의 목사들마저 이런 수준으로 설교합니다.

    6. 2009/06/23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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