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과 목표를 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앞으로 전진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미래를 기획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우 먼 미래를 기획합니다. 10년 후, 100년 후의 모습을 그리면서 기획합니다. 단순히 미래만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 세계에 대한 비전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초월적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갖지는 않습니다만, 대부분은 물질이 세계를 구성하는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질 너머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물질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 실증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중력을 정확히 계산하여 달나라에도 다녀오는 이 위대한 과학의 시대에, 왜 중력이 존재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비한 세계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몸이 생명력을 갖는 것은 단순히 낱개의 장기들이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신비로운 힘이 몸에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신비로운 힘은 사람마다 다르게 작용합니다. 특정사물에 대해 어떤 사람은 수학적 재능을 발휘하여 파악하고, 다른 사람은 음악적 재능으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영혼의 다양성이 한 데 어우러져 사회를 구성하고 세계를 만듭니다. 어느 하나도 넘침이 없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결과가 중요하지만, 그 결과는 과정의 산물이며 그것은 또 다른 산물을 위한 과정의 일부일 뿐입니다. 영혼의 능력이 작용하여 매순간 만들어내는 것이 지속됨으로써 이 우주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결과란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이 결과를 비전과 목표로 삼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구성원들이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될테니까요.

 

그런데, 위로부터 강제화된 목표로 배정되면 조직에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여 불이익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갈등과 불안, 반목과 질시의 원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실무를 하다 보면, 목표설정은 대부분 톱다운(top down)으로 배정되는 방식입니다.

 

부하들이 목표를 적게 잡으면 상사의 눈빛이 달라집니다. 부하들은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가급적 적게 잡되, 상사의 눈에 들 정도의 목표수준을 잡습니다. 이게 조직에서 살아남는 요령입니다. 상황이 좋아서 금년에 성과가 많이 나게 되더라도 목표수준을 넘는 것은 내년도를 위해 유보해 둡니다. 내년에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게 금년에 많은 성과를 내고 내년에 더 적은 성과를 내면, 찍히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유보해 두는 것이죠. 부드럽게 살아남는 방법을 그렇게 터득합니다.

 

이렇듯, 자신이 현재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재능을 미래를 위해 유보시켜 두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의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이, 한 달란트 받은 하인이 그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 두는 행위와 같습니다. ‘불황기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노년의 성생활을 위해 젊은 시절의 성욕을 유보시키는 것만큼이나 멍청한 짓이라고 했다는 워렌 버핏의 말과 같기도 합니다. 재능은 아무리 연마해도 끝이 없습니다. 재능은 아무리 활용해도 닳지 않습니다. 재능은 아무리 퍼 써도 결코 마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쓰면 쓸수록 더욱 빛나는 것이 재능입니다.

 

그런데 목표가 위에서 아래로 시달됨으로써 아랫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있는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잔머리를 굴리면서 윗사람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합니다. 그러면서, 조직 내에서 정치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하게 됩니다. 조직은 점점 생산성에는 관심이 없고 조직정치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죠.

 

우리는 좀더 순수하고 투명하게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첫째, 일하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게 설계되어야 합니다. 실수와 실패에 대한 불안과 긴장을 벗어나, 영혼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영혼의 능력을 발휘할 때 진정한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목표설정의 바텀업(bottom-up)과정을 실현해야 합니다.

 

둘째, 성과평가에 직면해서도 적은 성과나 실수와 실패가 두렵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평가면담이 코칭과정으로 전환해야 하고, 일년에 한번 형식적으로 면담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주기에 구애 받지 않고 일의 주요한 고비마다 면담을 통해 상사와 부하가 더 나은 미래를 기획해야 합니다.

 

셋째, 조직 내에서 코칭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코칭에 관한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내가 실무에 있을 때, 코칭을 제대로 하는 상사나 동료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나 역시 부하들에게 제대로 코칭하지 못했습니다. 목표가 주어지면, 코칭이고 나발이고 없기 때문입니다. 위로부터 부드럽지만 결코 저항할 수 없는 유압프레스에 눌리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뭔지 실체는 없지만 마음을 짓누르는 스트레스만 있을 뿐입니다.

 

끝으로, 이런 것을 하려면 조직을 움직이는 기본 틀, 즉 <비전, 전략, 조직, 성과, 역량, 인사 등의 시스템적 조합>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결과를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는 시스템입니다. 과정을 중시하는 시스템이 작동하면 조직의 결과와 생산성은 몰라보게 향상됩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조직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신비로운 힘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가 있나구요? 아주 많습니다. 굳이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내가 번역한 <셈코 스토리>라는 책을 꼭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에는 '세상에서 가장 별난 기업'이라는 광고문구가 있는데, 출판사에서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붙인 것이고, 사실은 가장 정상적인 기업입니다. 기업경영은 셈코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그들이 내세우는 시스템과 방법론을 배우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배울 것은 그들의 정신과 경영철학입니다. 정신을 배우고 철학을 익히면, 기법이나 방법은 얼마든지 개별조직의 문화에 맞게 조정되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