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수많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군대에서의 왕따, 폭력, 살인 및 성폭행 사건, 고위층의 성추행사건, 자원 외교와 무기수출입 비리 사건, 가난에 따른 일가족 자살 사건 등은 빙산의 일각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그렇고 실상은 이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우리 사회지도층의 정신적 토대가 거의 무너졌다고 말하는 지식인들이 많다.


 

아동 청소년의 실정은 어떤가?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벌이는 한국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 우리나라 아동과 청소년의 삶의 질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도 암울하다는 의미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구조와 시스템의 붕괴에 있다. 잘못 설계된 구조(structure)와 시스템(system)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구조란 사회관계에서 책임의 배분과 관련된 개념이다. 어느 직위에서 어떤 책임을 갖도록 할 것인가를 결정한 것이 구조다. 수직구조에서는 대통령은 어떤 책임을, 장관은 대통령과 다른 어떤 책임을, 국장은 장관과는 다른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 수평구조에서도 국방부 장관은 어떤 책임을,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떤 책임을, 교육부 장관은 어떤 책임을 맡을 것인지를 명확히 정해야 한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각자의 직무에 맡겨진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


 

왜 주어진 책임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할까? 직무담당자들이 무능해서?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유능해서 그렇다.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출세하고 더 많은 권한을 소유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국민이 보기에는 매우 멍청한 의사결정과 행동을 하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하는 구조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중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듯이 조직구조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직무담당자가 자신의 책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그가 책임져야 할 최종적인 성과물, 즉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고 끊임없이 그것을 인식시키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어카운터빌리티를 우리말로는 최종성과물에 대한 책임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세월호 선장이나 해양경찰청장에게는 승객의 안전에 대한 어카운터빌리티 개념은 전혀 없었다. 국방부 장관에게는 병사들의 안전에 대한 어카운터빌리티 개념이 없기 때문에 군대내의 각종 ()폭행이 일어나고 살인과 자살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부 장관에게 아동청소년의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현하도록 하는 어카운터빌리티 개념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질이 낮은 것이다.


 

그러므로 직무담당자에게 어카운터빌리티를 명확히 한 다음, 그것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구조에 따른 어카운터빌리티가 먼저고, 그 다음에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그러나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권한(권력)을 먼저 차지하고, 어카운터빌리티는 나중으로 밀려나는 것이 우리나라의 관행이다. 이런 관행은 일제식민시대의 군국주의 문화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구조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직무담당자들에게 책임의 원칙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다.


 

시스템이란 여러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상황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가장 단순하게 투입(input)-과정(process)-산출(output) 모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산출하고 있는 성과물이 형편없이 낙후된 것은 구조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이 시스템으로 전가되어 직무담당자들이 잘못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서로 권한(권력)을 더 가지려는 권력투쟁에만 관심이 있고 정작 책임을 완수하는 일은 등한히 한다.


 

시스템 설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투명성이다. 모든 국민이 직무담당자들의 상호작용 과정을 투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시스템 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들여다 볼 수 없다. 마치 블랙박스와 같은 것이다. 사건을 미리 예방하지 못하고 번번이 터진 후에야 블랙박스를 들여다보는 매우 후진적인 사회가 된 것이다. 그것도 엉터리로 들여다본다.


 

투명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길은 상호작용하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반대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obligation to dissent)를 부여하는 것이다. 무너진 사회지도층의 정신적 토대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직무담당자들의 책임구조와 그에 따른 시스템적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ps. 이 글은 어느 월간 잡지의 칼럼으로 쓴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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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