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우연히 2009년 가을학기부터 한양대학교 Honors Program의 연구교수/특임교수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Honors Program은 과학기술분야에 영재성이 있는 대학생들을 선발해서 가르치는 특화된 교육프로그램이었다. 영재교육에 관한 기존의 문헌들을 훑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영재성(giftedness)의 개념과 영재교육, 그리고 우리나라 교육계의 행태에 대해 경험할 수 있었다. 주로 미국계 교육학자들의 영재성 개념과 교육철학이 우리나라의 교육계와 교육학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예를 들어, 영재교육에서는 렌줄리(Joseph Renzulli, 1936~) 교수의 세 고리 모형(three-ring model of giftedness)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영재성이란 평균 이상의 지능, 창조성, 과제집착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상호작용하여 탁월한 성과를 내는 특성을 의미한다. 이 이론은 영재성의 변별과 개발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국내에서 발행된 대부분의 문헌은 이런 개념들을 이리저리 변형한 것들이었다. 특히 교육관련 연구기관에서 발행된 영재관련 논문에는 대부분 렌줄리를 인용하고 있었다. 심하게 말하면, 렌줄리를 마치 대부로 모시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렌줄리 이론을 마치 성서의 말씀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런 문헌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더 큰 의문이 생겨났다. 렌줄리 이론은 마치 고운 밀가루, 깨끗한 물, 적당한 양의 효소, 이 세 가지를 뒤섞어 일정한 온도에 노출시키면 빵이 된다는 것과 같은 너무나 뻔한 설명이 아닌가? 나도 그 정도는 충분히 말할 수 있다. 렌줄리는 영재성의 현상을 설명할 뿐 그 원인과 과정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교육계의 더 큰 문제는 미국의 행태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에서는 일반학생과 별도로 영재아동들을 가르치는 영재교육이 보편화되어 있고, 이들에 대해 특별히 지원하고 있다. 이런 행태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우리나라 교육계는 영재교육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 위해 영재학교,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와 같은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 등을 만들어 영재성이 있는 학생들을 별도로 가르치고 있다. 교육기관을 피라미드형으로 수직계열화시킨 것이다. 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학교에 들어가면 출세의 가능성이 높아지도록 만든 것이다.


 

과학고 출신학생들을 면접하면서 알게 된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수학, 물리, 화학 등 과학문제를 잘 풀지는 모르지만,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당나라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고, 조선족이 왜 중국에 많이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단순한 지식조차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과학고가 역사에 대해 무지한 애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는 법이다. 역사를 모르면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없다. 국고로 운영되는 과학고가 학생들을 닭장과 같은 환경에서 기숙시키면서 가르친다는 사실도 알았다. 과학지식, 그것도 문제풀이를 잘하는 기능인을 만들어서 대학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지금도 변함이 없으리라.


 

더구나 학부모들은 자녀가 영재성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사교육에 몰입하는 경우도 있다. 강남에는 영재성을 길러주는 학원도 성업 중이다.


 

이런 행태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나에게 조금씩 선명해졌다.

 

첫째, 교육계에 영재성을 변별하여 가르치는 행위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결여되어 있었다. 나는 영재아를 사회발전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는 자원관점(resource-based view)으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영재아를 한 인간으로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영재아동들, 정확히는 그 부모들이 자식을 출세시켜야 한다는 강렬한 욕망과 교육계의 무비판적인 미국식 영재교육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어리석은 믿음을 나는 크게 염려하고 있었다.

 

둘째, 렌줄리 수준의 영재성 개념은 사실상 영재교육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밀가루, , 효소가 있다면 누구나 빵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영재성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즉 평균 이상의 지능, 창의성, 과제집착력은 그냥 아이들에게 타고난 것이지, 그것을 교육시켜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지능지수가 교육시킨다고 높아지는가? 창의성은? 과제집착력은? 이런 것은 교육시켜서 될 일이 아닌 타고난 특질(traits) 같은 것이다. 그런데 영재교육을 따로 시킨다? 내가 우리 애들을 키우면서 그리고 많은 학생들을 만나 관찰하면서, 영재성은 타고나는 것이지 후천적으로 개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직감하고 있었다. 이 말은 영재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교육환경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영재성이라는 씨앗이 있더라도 환경 때문에 씨앗이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재아동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 영재성 또는 재능은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에 관한 근본적이고도 사회적인 논의가 없다는 점이다. 소위 영재성이 있는 유능한 학생들을 몇 년간 관찰한 결과 대부분 자신의 개인적 이득이나 출세를 위한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이 역사 속에서 우연히 그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 그 재능을 가지기 위해 자신들이 특별히 노력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재능이야말로 공공의 것으로 간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넷째, 영재성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을 별도로 가르쳐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영재교육을 받아 성인이 된 사람들 중에 정말 위대한 업적을 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얼핏 보더라도 아인슈타인, 리차드 파인만, 스티브 잡스, 아브라함 링컨, 마하트마 간디 등 뛰어난 영재들은 영재교육을 따로 받은 적이 없다. 많은 나라에서 영재교육을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평범한 아이들과 섞여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재능으로 평범한 친구들을 돕는 것에서 유대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말 영재성이 있다면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분야에서 영재성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재교육에 특별히 더 많이 투자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섯째, 교육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아이들이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현할 수 있도록 개별맞춤형 교육을 지향한다면 굳이 영재아동을 별도로 가르쳐야 할 필요가 없다. 교육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유럽국가에서는 영재교육을 별도로 시키는 것을 오히려 금기시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섯째, 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과학창의재단 등의 정부기관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나가 토론을 해보면, 교육의 본질이나 교육철학에 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에서는 어떻게 하는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영재교육의 일단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고민스러웠다. 교육부, 한국과학창의재단, 한국교육개발원과 같은 정부기관에서는 영재교육에 관한 기본방향이 정해졌기 때문에 다른 의견이나 논의를 꺼리고 있었다.


 

토론하고 싶은 주제를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1. 영재성이란 개념은 무엇인가?

2. 영재성이란 교육을 통해 개발되는 것인가 아니면 타고나는 것인가?

3. 영재성이 교육을 통해 개발되는 것이라면 특정한 소수만 개발되고 다른 아이들은 개발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4. 영재성이 타고나는 것이라면 교육하지 않아도 일정한 환경에 이르면 영재성은 발휘될 수 있는 것 아닌가?

5. 알버트 아인슈타인리차드 파인만마르셀 푸르스트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천재들은 영재교육을 특별히 받은 적이 없다이 사실은 영재성은 영재교육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6. 영재성은 특정인에게 귀속되는 것인가 사회적 자산으로 공유해야 할 그 무엇인가?

7. 교육이란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현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학교교육이 정상화되면 별도의 영재교육이 필요 없게 될 것 아닌가?

8. 철학은 현실을 구속하기 마련인데어째서 교육에 관한 철학적 사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런 주제들을 속 시원히 토론할 수 있는 교육학자나 전문가도 없었다.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관련된 문헌들을 찾아 읽었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다브로프스키의 생애와 이론을 소개한 책


 

그렇게 고민이 깊어가던 중, 한양대학교에서 전문상담가이자 영재교육학자인 김영아 교수를 만났다. 이런 저런 고민들을 나누는 와중에 다브로프스키(Kazimierz Dabrowski, 1902~1980)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김 교수가 다브로프스키의 "긍정적 비통합 이론"(Theory of Positive Disintegration, TPD)에 대한 실증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연구실에서 밤늦게까지 토론하기도 했다.



나는 2010년 봄에 다브로프스키의 이론을 만났다. 그 후로 교육에 대한 나의 생각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


 

이 때부터 다브로프스키에 관한 문헌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 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의 대부분이 풀렸다. TPD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다브로프스키의 이론은 렌줄리의 이론과 달리 나의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인간이 성숙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해 주었다. 영재성의 개념도 명확해졌다.


 

영재성이란 곧 과흥분성(Overexcitability)이라는 것이다. 보통의 자극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곧 영재성이라고 개념화했다. 놀라운 통찰이 아닌가? 나는 냄새에 민감하다. 나는 된장국을 좋아하지만, 집안에서 된장냄새가 나는 것은 싫어한다. 여름철 걸레 썩는 냄새는 특히 싫어한다. 그러나 아내는 냄새에 비교적 무덤덤하다. 하지만 나는 맛에는 그리 민감하지 않다. 밥상에 올라온 것은 뭐든지 잘 먹는다. 맛집을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아내와는 정반대다. 쉽게 말해서, 나는 냄새에 영재성, 즉 민감성이 있다고 할 수 있고, 아내는 맛의 분별에 영재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아이는 물리와 수학에 흥분하고, 다른 아이는 그림에 흥분한다.


 

어떤 평범한 자극에도 흥분한다는 것은 곧 그것에 남다른 민감성을 보인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특정한 대상에 노출되었을 때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서로 다른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환경적 경험들이 쌓여서 성격적 특성이 드러나며 인격적 성숙이 일어난다. 이런 과정을 상세히 연구한 사람이 바로 다브로프스키였다. 그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이론은 제자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그 제자의 한 사람이 바로 샐 멘달리오(Sal Mendaglio)였다. 그는 지금 캐나다 캘거리대학교의 사범대학 교수로 있다.



2010년 8월3일 캘거리대학교 사범대학의 샐 멘달리오 교수 인터뷰를 마치고...


 

마침 20108월 여름휴가를 캘거리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그곳에 간 김에 멘달리오 교수를 만나서 면담내용을 비디오로 찍기도 했다. 그에게서 다브로프스키의 이론이 렌줄리의 이론과는 어떻게 다른지, 경영학에서 많이 인용하고 있는 매슬로우(Abraham Maslow, 1908~1970)의 이론과는 또 어떻게 다른지 등등 영재교육에 대해 많은 이슈들을 질문했었다. 30분 정도 예정했었는데, 1시간 반이나 걸렸다. 그 내용을 정리해서 블로깅하려고 했지만, 아직 여유를 찾지 못했다. 나중에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다.



지난 7월에 샐 멘달리오 교수가 편집한 책을 김영아 교수가 직접 번역하여 출간한 책을 보내주었다. 

번역도 아주 매끄럽고 잘 읽힌다.


 

아무튼, 지난 7월에 김영아 교수가 Dabrowski's Theory of Positive Disintegration(Sal Mendaglio, Ph.D., Editor, Great Potential Press 2008)을 번역하여 출간한 책을 선물로 보내왔다. 그 동안 외부 강연 때문에 지금에서야 다시 읽고 있다. 감동이 새롭다. 이 글의 독자라면,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과 인생의 성숙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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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