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2015-05-22(금) 태국 푸켓에서 열린 한-아세안 과학기술혁신 다이아로그와 아세안 탈렌트 모빌리티(ACEAN TALENT MOBILITY) 워크숍에서 발표한 내용을 요약해서 올린 것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반성적 성찰

 

우선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과 한국의 경제성장의 배경이 되는 정신모형과 그 경험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50년대에는 일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최근에는 세계 10위권 경제국가가 되었습니다.

 

OECD에서 최근에 조사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조사를 보면, 싱가포르, 홍콩, 한국, 일본, 타이완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위 5위까지 모두 동아시아에서 휩쓸었습니다. 이것은 깜짝 놀랄만한 결과입니다. 교육이 산업발전의 밑거름이 된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저의 경험을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은행원으로 커리어를 처음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1980년대 초반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습니다. 퇴근시간이 정해지지 않았고 때로는 밤새워서 일했습니다. 아예 며칠간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일한 적도 꽤 있었습니다. 그때는 밤12시에 통행금지가 있을 때여서 야근을 하다가 퇴근 시간을 놓쳐서 그냥 사무실에서 지내거나 아니면 주변 사우나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다시 출근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세대가 겪은 에피소드 중에 하나를 소개합니다. 주말에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아내와 이삿짐 회사에게 맡겨놓고 출근했습니다. 이사하는 날도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녁 때 퇴근해서 이사 간 새집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는 전설적인 경험을 우리 세대는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느냐고 물으면 저도 잘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다들 그렇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랬습니다. 사람은 원래부터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사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근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근면성은 적어도 한국사회에는 아직까지 상당부분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노는 법, 쉬는 법을 잘 몰라서 지금도 그냥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휴가를 가서도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합니다. 저의 정신적 근육은 그렇게 굳어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 세대의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럴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정신이 문화로 정착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일하지 않는 다른 삶이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점점 부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집마다 냉장고, 세탁기, TV를 들여 놓았고, 점점 더 큰 집으로 이사했고, 자동차도 사들였습니다. 단기간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습니다. 이런 경제적 성장과 물질적 풍요가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것입니다. 1997년 말, 국가부도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말하자면 자신의 삶에 반성적 성찰 없이 그저 열심히 일하고 그 결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것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국가운영도 그랬고, 기업운영도 그랬습니다. 외환위기로 많은 기업들이 도산했습니다. 30대 재벌기업들 대부분이 도산의 위기에 처했고 실제로 파산하기도 했습니다. 100년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시중은행들도 역시 모두 도산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던 거대은행들 모두 지금은 다른 은행으로 인수합병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한국은행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한 국가가 이렇게 망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은행도 이런 상황을 만드는데 조금은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쓴 책이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이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성실하게 하는,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 국가와 기업을 운영해 왔는데, 무엇 때문에 이런 엄청난 위기를 만들어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반성적 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로 인간과 조직에 관한 성찰이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노동해야 하는가, 노동하는 인간들이 모인 조직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조직은 어떤 관계라야 하는가, 조직을 운영하는 경영철학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등과 같은 성찰이었습니다.

 

우주의 역사는 끊임없이 진화해 왔습니다. 그런 진화에는 어떤 특정한 의미, 가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우연히 우주가 그렇게 탄생해서 그렇게 변화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우주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생명체가 생겨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 세계를 언어라는 상징을 통해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물(water)은 그냥 물일뿐입니다. 인간이 물이라는 언어로 상징하고 그 상징에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가치와 목적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실존하는 존재(existential being)라고 말합니다. 이 우주에서 사물이나 현상에 어떤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부여하는 존재는 인간이 유일합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은 인간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냥 존재하는 여타의 사물과 다른 이유는, 단순히 신진대사가 일어나고 이성과 감정이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타자(the others)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그와 소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상징적 질서를 부여하는 놀라운 존재입니다.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인문학자들이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진리를 추구하고, 선한 행동을 하게하며,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있는 인간은 누구나 진선미를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영혼이 있는 인간은 실존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존하는 인간, 즉 영혼이 있는 인간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997년의 외환위기를 통해 한국의 지성인들은 물질적 풍요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물질적 풍요만 추구하는 삶은 반드시 위기에 직면하며, 그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의 경제성장이 낳은 교훈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물질적 풍요를 넘어 정신적 세계가 풍요로워야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 지성인들이 한국의 경제성장이 매우 기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했지만, 그런 지적은 무시되었습니다. 정치인들과 정부지도자들은 정책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물질적 풍요를 추구해왔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 과정에서 협력과 배려, 나눔과 상생, 대화와 토론의 정신은 점차 사라지고, 명령과 통제, 지배와 복종, 억압과 착취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하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들을 양산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양분되었습니다. 부자들과 고위관료들은 노동자들을 영혼이 있는 실존적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이나 부를 축적하기 위한 자원이나 수단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리하여 때로는 노동자들이 탄압받고 착취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부익부빈익빈이라는 악순환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죠.

 

대부분의 부자들과 상당수의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소위 생계형 자살이라고 부르는 자살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고 심지어 결혼을 포기한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청소년 범죄율도 상당히 높아서 이것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사회는 이러한 빈부격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가진 자들이 먼저 양보해야 하는데,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양한 계층을 대변하는 당사자들의 이해가 서로 상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문제를 잉태시킨 잘못된 정신모형(mental model)을 검토해서 고쳐 가야 합니다. 여기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교육의 목적이 직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에 대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는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영혼이 있는 실존적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자본가와 노동자들이 함께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새로운 정신모형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정신모형은 인간을 영혼이 있는 실존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이 실존적으로 평등하다는 전제에서 사회적 플랫폼을 마련해야 합니다. 새로운 정신모형은 인간을 조직의 부품이나 자원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새로운 모형은 인간을 조직의 주인으로 간주하고, 조직을 인간의 삶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21세기 기술혁명의 시대에, 그리고 ACEAN 10개국이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려고 하는 이때에, 한국에서 겪었던 경제개발의 명암을 감안하여 아세안의 정책에 반영했으면 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이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과제 중에서도, 특히 인재교육과 관련하여 상호간의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 정책실행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