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01_아내와 33년을 함께 살았으나 마치 며칠 같이 느껴진다.

 

만난 햇수로는 38년이 넘었다. 33년 전 한성대학교 근처 삼선동 산중턱의 어느 집 문간방을 하나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그렇게 가정을 꾸린 것이 엊그제 같다. 33년의 세월이 며칠 밖에 지나지 않은 느낌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야곱의 러브스토리가 나온다. 외삼촌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라반의 집에서 7년간 일하면서도 그것이 며칠 같이 느껴졌다고 고백한다. (창세기 2920) 이것이 진정 사랑의 힘이다.



2014년 여름휴가, 웨일즈를 여행하다가 휴식 중... 딸이 찍어준 사진


 

돌이켜보면, 우리 부부가 한 것이라곤 맡겨진 일을 각자 상식선에서 처리한 것밖에 없다. 육아법을 배운 적도 없지만, 두 아이를 낳아서 밥 먹이고 옷 입히고 학교를 보낸 것이 전부다.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아이들이 둘 다 유학을 가겠다고 해서 보내준 것밖에 없다. 내가 은행원출신이라서 그랬는지, 나중에는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둘 다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나는 영국에서,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사실 나의 젊은 시절에는 아이들에게 무심했다. 나 자신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아이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교육에 관한 어떤 원칙도 규율도 존재하지 않는다. 집안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일은 각자 알아서 한다는 것이 원칙이라면 원칙이다. 물론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던 미숙한 시기에는 잘못된 일을 저지르는 아이에 대해 엄하게 가르쳤지만, 기본적으로는 각자 자율적으로 하도록 내버려뒀다. 이제는 다들 성인이 되어 오히려 나를 가르치고 있다. 요즘은 아이들로부터 받는 교훈과 가르침이 나에게 큰 기쁨이 된다.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세어보니 그동안 나는 다섯 개의 직업을 거쳤다. 교사, 은행원, 컨설팅회사 대표, 기업체 임원, 대학교수를 했다. 평생을 조직원의 한 사람으로 일했다. 그 때마다 성인으로서 내가 다 알아서 할 일인데도 온갖 규정과 절차들이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규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복장까지...

 

가정에는 어떤 규정과 절차도 없지만 다들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왜 기업체의 구성원들을 성인으로 대접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온갖 규정과 절차로 옭아매고 그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처벌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성인이 규정과 절차를 어겼다면 그럴만한 불가피한 속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도 이런 사정을 돌아보지 않고 규정과 절차를 들어 처벌한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규정과 절차는 지배자의 통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조직은 지배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규정이나 절차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조직은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더 큰 목적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조직의 더 큰 목적과 이상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감동과 열정, 몰입과 헌신이 있어야 한다. 감동과 몰입 같은 정서적 상태는 명령과 통제에서 나오지 않는다. 규정과 절차에서 나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처벌한다고 해서 그런 감정상태가 나올 리 있겠는가?

 

집안에서는 성인으로서 다 알아서 잘 할 수 있는데 직장에 오면 미숙한 어린아이로 취급되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 규정이나 절차 없이도 잘되는 회사들이 부지기수로 많으며 이런 회사들이 생산성과 창의성이 훨씬 더 높다. 내가 오래전 번역한 책 셈코스토리를 보더라도 그렇다. 행복한 가정에는 어떤 규정과 절차가 없어도 모든 일이 잘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우리의 현실에서 기업조직은 가정과 다르다. 따라서 최소한의 규정과 절차가 필요하지만, 조직의 존재목적과 이상을 넘어설 수 없다. 규정과 절차가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목적과 이상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인류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규정과 절차를 따져 처벌(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사실은 구성원들을 억압하려는 지배자의 탐욕일 뿐이라는 점이다.

 

구성원들의 영혼에 감동과 비전을 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의 행태에 잘잘못을 따져 처벌하겠다고 위협하는 조직이 가장 불행한 조직이다. 이런 조직은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 조직운영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엔 너무나 많다.

 

33년을 한 여인과 살면서 가정이라는 조직을 꾸려 지금까지 왔다. 창세기의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몰입과 헌신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나는 규정과 절차가 없는 자율적인 가정과 같은 조직이야말로 생산성과 창의성이 높다는 사실을 또다시 확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신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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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