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인드프로그램(mindprogram) 블로그(tistory)가 브런치(brunch)로 이사했습니다.


뭐 특별한 이유는 없구요. 같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플랫폼이긴 하지만, 티스토리보다 브런치가 조금 더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브런치는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불편한 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플랫폼에 둥지를 틀어보려고 이사했습니다. 저의 블로그를 보시려면 다음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s://brunch.co.kr/@tschoe56


첫화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동안 50만에 가까운 방문이 있었는데 다소 아까운 감이 있습니다만, 새로운 장소에서도 많은 분들을 뵙게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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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세발까마귀어린이집에서 온 22개의 질문





1. 저희 어린이집은 적기 교육을 지향하기 때문에 다른 어린이집에서 이루어지는 한글, 영어 등의 인지학습을 졸업 때까지 시키지 않습니다. 저 또한 적기 교육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이후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학생을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고, 이런 환경에서는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 위주로 학교 진도가 나가기 때문에 오히려 적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역차별 당하는 상황도 벌어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적기 교육을 하는 게 맞는 걸까요? 그렇지 않으면 평균적인 수준의 선행학습은 하는 게 나을까요?

 

2.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또래들 사이에서 놀이를 주도하는 '리더십'을 기질적으로 타고나는 아이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린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무모함' '폭력성' '지나친 고집' 등이 '리더십'과 자주 혼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교육 환경에 따라 '긍정적 리더'가 될 수도 있고 '폭군'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리더십'을 가진 아이들을 긍정적 리더로 키우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3. 한국 학생의 학업 성취도는 초등학교~고등학교까지는 세계 최정상권을 유지하지만 대학 이후에는 크게 떨어집니다. 교수님께서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또한 한국의 교육과정을 놓고 일부 서구 국가들은 찬사를 보내지만 막상 우리나라에서는 서구의 시스템을 부러워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우리나라 공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4. 영재성을 과흥분성(Overexcitability)라고 하셨는데 보통의 경우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에 대해서 과민하게 반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영재성과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을 동일하게 봐도 되는 것인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재성이란 뛰어나게 잘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대체적으로 좋아하고 관심이 있으면 잘하기는 하겠지만 영재성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게 잘하는 것 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5. 모든 멍멍이가 똑똑하지는 않지만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유독 놀랍도록 영특한 멍멍이 이야기를 가끔 듣게 됩니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멍멍이라 할지라도 훈련을 받으면 어느 정도는 목적에 부합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영재 교육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6. 김연아 엄마는 연아의 피겨스케이트에 대한 영재성을 알아버렸습니다. 연아 엄마는 연아의 영재성을 더욱 키우기 위해 연아에게 모든 것을 올인하는 과감한 결단을 했다고 합니다. 누구나 연아 엄마처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요. 많은 영재들은 옆에서 그 영재성의 싹을 틔워주고 성장할 수 있도록 밀어주고 끌어주는 사람이 있는 듯합니다. 부모일 수도 있고 선생님일 수도 있고 동료일 수도...... 그 영재성이 묻히지 않도록 노력한 주변의 무언가가,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은 영재성 또는 남다른 민감성은 타고난 특성만으로는 스스로 발휘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아이에게 영재성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아이에게 영재성이 있다면 스스로 발현되어 성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 알아서 영재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나요? 특정 분야에서 영재성을 가진 아이의 영재성이 지속 되도록 하고 또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본 영화 '사토라레'가 생각나네요. ㅎㅎ

 

7.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영재들이 성장한 시대와 지금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 못할 경우 영재성을 떠나서 보통의 교육을 하기에도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영재성이 있는 아이라면 더더욱 고민스럽고 힘이 들겠지요. 제 조카(현재 12)는 음악 부분에 있어서 과도한 민감성을 보입니다. 3세 때 부터.... 한 번 들은 음율은 악보 없이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답니다. 하지만 그 부모는 많이 고민스러워하고 속상해 합니다. 그 부모는 아이를 뒷받침 해주기에 경제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전영재 무전무재.... 일까요?

지금 현실에서 경제력의 뒷받침 없이도 타고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까요?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토론주제 중 '학교 교육의 정상화'라는 부분에 귀가 솔깃하게 됩니다.

 

8. 세발까마귀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부모입니다. 첫째 아이가 이곳 어린이 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구요. 사실 영재성, 영재교육에 관한 내용으로 교육 주제를 한정시키면 큰 관심은 없습니다. 제가 그렇듯이 대부분의 부모들, 아이들은 영재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영재성'을 아이의 재능, 잠재력, , 이런 것으로 돌려놓고 생각하면 많은 고민거리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타고난 재능()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재능을 발현시키고 극대화 하도록 길러 낼 수 있을까?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하는 지점입니다.

아이의 끼를 찾아내기 위해 어려서부터 다양한 자극을 주려고 부모들은 노력합니다. 음악, 미술, 운동, 과학 등 여러 방면에 아이의 관심을 유도해 보고 시켜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초. .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아이가 평균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분야는 재능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수학, 과학 점수를 잘 받는다고 그 방면에 소질을 키워나가도록 북돋아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일까요? 그렇게 너무나 한정된 시간, 교육 조건 속에서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영재성을 과흥분성이라고 정의하면, 재능()이라는 것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재능을 찾아낼 수 있을까하는 지점에 있어서는, 남들보다 더 흥분을 보이는 재능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궁금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흥분성에 부모는 어떠한 반응과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아이가 재능을 키워나가는데 도움이 되는가 하는 고민입니다.

아인슈타인이나 베토벤 같은 천재적인 과학자, 예술가 같은 사람들은 젊어서는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평범한 삶을 살다가 뒤늦게 영재성을 폭발합니다. 그렇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른 채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렇게 교육받아온 환경 탓인지요?

다시 돌아와서, 아이를 키우면서 앞으로 하게 될 이러한 고민들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9. 교수님께서 영재성을 과흥분성이라 하셨는데 우리아이의 경우 의학프로그램(예를 들어 명의, 생로병사의 비밀)이나 병원, 수술, 의학도구에 유난히 집중하고 좋아합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5)의 관심을 영재성이라 할 수 있는지요?


10. 영재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영재성을 가진 특정분야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우수한 학업성과를 이루어야 그 길을 갈 수 있는 기존 교육체제에서 영재성의 발현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11. 영재성을 가진 아이라 하더라도 적절한 시기에 발견교육을 못했다면 아이의 영재성 발현을 불가능한 것인가요?

 

12. 특별한 재능이나 영재성을 공공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의 노력과 사회의 뒷받침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재능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요? 그 재능을 어떤 식으로 쓸지는 결국 개인의 선택이므로 영재교육의 기회비용으로 생각해야 함이 낫지 않을까요?

 

13. 영재성을 과흥분성으로 정의한 것은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명쾌한 설명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이가 어떤 부분에 영재성 또는 과흥분성을 갖고 있는지 알기(또는 찾기)위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을까요? 예를 들어 피아노, 미술, 무용, 스포츠 이런 것들을 다양하게 일찍 시키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요? 이런 방법이 아니라면 어떤 방법으로 아이를 관찰하고 어떻게 찾아주어야 할까요?

 

14. 만약에 아이가 특정한 분야에 과흥분성(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부분을 어렸을 때부터 집중적으로 키워주는 것이 좋을까요? 최근 아이들이 과학(로봇), 수학 또는 스포츠(축구, 골프 등)와 같은 특정분야를 초등학생 때부터 집중적으로 훈련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15.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학생들의 경우, 청소년기를 한참 지나도,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거나, 확신을 갖지 못하며, 이것을 찾아주기 위한 노력을 사회가 충분히 해주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의 적성을 스스로 찾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문의드립니다.

 

16. 행복한 영재로 키우는 방법이 있을까요?

 

17.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18. 산만한 아이의 집중력을 높이는 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19. 첫째 아이 00가 옷에 뭐 묻은 거, 물에 젖은 것 이런 것들에 병적으로 집착했어요... 자다가 코피가 나서 이불에 좀 묻었는데 이불을 갈지 않으면 안자겠다고 버티기도 하고... (이건 최근의 일임!) 코도 일부러 옷소매로 쓰윽~ 닦으면서 "코는 이렇게 닦는거야~" 얘기해 주는 식으로 일부러 유도를 해서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아직도 예민한 부분이 있지요.. 그런데 요즘엔 안 그랬던 둘째 아이 xx도 그렇네요. (바지 무릎안쪽 부분, 발목부분에 주름이 잡힌다고 난리를 칩니다.) 이게 영재성일까요? 아니면 단지 아빠의 결벽증 유전자를 물려받는 걸까요? 이런 집착을 그냥 놔뒀다가 결벽증으로 발전하는 거 아닌지 궁금하네요.

 

20. 영재성이 있는 아이를 보통의 교육을 받게 하고 특별히 관리해주지 않으면 그 영재성이 사라지는지 궁금하네요. 또한 현 주입식 교육체제에서 영재성은 사그라지는가? 특별한 영재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영재성이 있는 아이가 잘 교육을 받으면 영재성이 발휘되는지? 한마디로 영재와 교육에 대한 것이 가장 궁금하네요!! 전 영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 뭔가 반짝거리는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사그라지고 만 것 같아서 아쉬웠거든요.

 

21. 저희 아이는 어린이집 마당에서 바깥놀이를 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모래터에서 숟가락으로 땅을 파면서 보냅니다. 왜 땅을 파는지 물어보니 자기는 땅을 파고 있으면 기분이 너무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아이들도 땅을 파기는 하지만 저희 아이만큼은 아닙니다. 적당히 파다가 그만두고 다른 놀이를 하러 갑니다. 저희 아이의 땅 파는 행동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과흥분성에 해당이 되는 걸까요? 해당이 된다면, 이러한 점을 어떻게 교육과 연관시켜서 발전시켜 갈 수 있을까요?

 

22. 선생님께서 지금 6세 아이를 키우신다면 어떤 방법으로 아이를 교육하실 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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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기업윤리,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이 자료는 서강대학교 지속가능기업 윤리연구소와 딜로이트가 주최하는 국제포럼(2015년 8월 26일, 그랜드 하얏트 호텔 남산 III룸)에서 토론자료로 발표한 것입니다.


핸슨 교수님 발표를 잘 들었습니다. 윤리개념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실천전략까지 포함된 매우 유용한 내용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윤리란 무엇인가? 그중에서도 오늘 주제인 기업윤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이런 주제는 특히 한국사회에 너무나 시급하고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기업의 존재목적을 생각하기 전에, 그 기업에서 일하는 인간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인간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그러고 나서 그런 인간들이 모인 기업조직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는 개개인의 복지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복지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사상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돈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미신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인간을 자원이나 수단이나 도구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Human Resource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미국에서 나온 말입니다. 기업인들은 그 리소스에서 더 많은 것을 뽑아낼수록 더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노동자를 더 쥐어짤수록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생각은 아주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아주 천연덕스럽게 자기 자신을 자원이라고 부릅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 갑과 을로 나뉘어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갑질을 스마트하게 잘하느냐가 곧 경쟁력인 것처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되었나요? 최근에는, 그러니까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부의 불평등이 생겨났듯이, 그런 방식을 그대로 모방한 한국에서는 양극화가 미국처럼 심각해졌습니다. 한국이 미국보다 더 불행한 것은 일부 재벌기업들의 불법행위와 비윤리적 행태는 이제 도를 넘었다는 점입니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을 봅시다. 불법으로 선거를 치른 정치인들이 버젓이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고위관료들 중에는 국가정책을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기획하고 집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국방의무를 기피하고, 논문을 표절하고,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위장전입한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심지어 사법부까지 전관예우라는 돈에 포획되어 버렸습니다. 고위법관들에게 따라 다니는 전관예우는 현대판 매관매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집니다. 그런데 윗물이 더럽단 말입니다. 이런 판국이니 기업윤리 같은 말은 아주 거추장스런 장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핸슨 교수님이 제시한 기업윤리를 회복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실천전략은 우리에게 커다란 의미를 준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생각해봅시다. 박정희 정부 이후 지금까지 돈을 벌고 경제를 성장시키려고 했던 모든 행위는 결국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 Human Wellbeing, Human Welfare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얼마 전에는 연극배우가 굶어 죽었습니다. 자살이 아닙니다. 굶어 죽었단 말입니다. 그 전에는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 죽었습니다. 이웃이 굶어 죽어도 모르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자살률 세계 1위의 나라라는 오명을 얻었습니다. 정말이지,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공동체정신이 무너진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나요? 근본부터 뭔가 잘못되었음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행동을 규정하는 윤리강령이나 법령이 없어서 기업윤리가 지켜지지 않는 걸까요? 강령을 더 세게 바꾸고, 법령을 더 촘촘하게 만들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법령이나 규정으로 과연 인간의 비윤리적 행동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합리와 부조리는, 인간이 인간으로 존중되지 않고 한낱 돈벌이를 위한 자원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병남 원장님이 쓰신 책 경영은 사람이다에서 제시하고 있듯이, 인간에 대한 관점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인간을 노동하는 존재로서의 자원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을 실존하는 존재(existential being)로 보는 관점도 필요합니다. 인간은 실존적으로 평등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노동하는 불평등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실존적 관점(existential view)에서 보면,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이 세계를 자유로이 규정하면서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한마디로 상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컵에 있는 물을 성수(聖水)라고 상징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가 바로 인간입니다. 이것이 실존(existence)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실존적으로 평등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자원활용의 기능적 관점(functional view)에서 보면, 심각한 기능적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으리으리한 사무실에서 전용응접실과 비서실이 따로 있고 기사가 딸린 전용차량에서 의전을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엉덩이 하나 붙이고 앉을 자리 없이 남대문시장에서 장사하는 노점상도 있습니다. 이렇게 노동하는 인간의 모습은 기능적으로 매우 불평등합니다. 이제 한국의 지성인들은 이런 인간의 실존적 평등(existential equality)과 기능적 불평등(functional inequality)을 조화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유럽의 지성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참혹한 현실에 직면하여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기능적 측면보다는 영혼을 가지고 있는,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 세계를 자유로이 규정하면서 문화를 만들어내는 인간으로서 실존적 평등성을 보다 더 강조해왔습니다. 그 결과 기업인들의 윤리의식은 주주의 이익보다는 이해관계자 그룹, 즉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올바른 인간관에 기초해서 공동체의식을 갖게 하는 사회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집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고위층은 부패했습니다. 어떤 사회든지 고위층이 부패하지 않고 그들의 행태를 맑게 해주는 역할을 맡은 그룹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회적 4대 천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교육계, 종교계, 사법부, 언론계가 그것입니다. 한 나라를 맑게 해주는, 절대로 부패해서는 안 되는 집단입니다. 4대 천왕에 속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기업계의 불합리와 부패를 질타하는 것을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이들도 똑같이 부조리와 부패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윗물이 더러워지도록 방치하면서 자신들도 떡고물을 뜯어 먹었던 사람들입니다.

 

기업은 오로지 이들이 뿌려주는 물을 마시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물을 마시고 있는 셈이죠. 기업에서 마시고 있는 이 더러운 물을 우선적으로 깨끗하게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업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제가 보기에는 몇몇 재벌가족을 제외한 기업계는,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는 고위층들의 행태에 비하면 오히려 더 양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컨설팅 현장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기업인들을 가끔은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

 

언제나 그런 것처럼 참석자의 질문시간에 좋은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늘 시간은 부족합니다. 내가 보기에 아주 인상적인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결국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얘긴데, 윗물을 맑게 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핸슨 교수와 패널토론자의 답변이 끝나자 예정된 시간이 모자라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려고 했던 답변은 이랬습니다. "행동강령과 규정을 강화해야 할 필요도 있겠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역과 금기를 깨야 합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성역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오너 가문에 관한 것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입니다. 성역과 금기가 존재하는 한 그 조직은 결코 민주화될 수 없으며 결코 기업윤리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경영을 민주화하면 기업윤리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마음 속에 담은 이 답변이 내가 이 포럼의 토론자로서 하고 말하고 싶었던 핵심내용이었습니다. 


갤러리

(참고로 이 사진들은 서승현 군이 찍어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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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2015년도 상반기 강의 및 자문관련 내용의 총정리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삼성, LG를 비롯한 대기업뿐만 아니라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 기업을 대상으로 강의해왔습니다. 세계는 지금 제4차 산업혁명의 초입에 있습니다. 앞으로 20~30년 후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분권화된 수평조직에서 연대와 보충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조직이라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정부조직, 기업조직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강의해 왔던 내용과 같은 철학이 하루 속히 실행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철학이 조직운영의 구체적인 시스템 속에 녹아들어 있어야 합니다. 서유럽의 여러 나라와 기업들에서처럼 말입니다.

 

그 동안의 연구와 경험에 의하면, 이런 사상과 철학이 조직에서 실현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생산성과 창의성 혁명이 일어납니다.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매우 어려운 교육훈련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철학이 현실에서 실현되려면 조직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성숙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과정을 회피하기 때문에 실패하고 맙니다. 생산성과 창의성이 높은 글로벌 기업들의 제도와 겉모습만 따라하려고 합니다. 임직원들을 미성숙한 상태로 둔 채 우격다짐으로 제도를 바꾸려고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대부분 실패합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면 어느 정도는 교육이 그 책임을 맡아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육계는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경쟁의 패러다임에 중독되어 있어 이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포함한 교육계의 근본적 혁신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인간은 왜 실존적으로 평등하다는 얘긴지, 그러나 현실에서는 노동하는 인간의 기능적 불평등성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실존적 평등과 기능적 불평등 사이의 부조화를 해소하려면 사회적으로 어떤 제도적 장치들이 있어야 하는지, 기업에서는 이 부조화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정말 많은 이슈들에 대해 서로 토론해야 합니다. 이런 근본적인 이슈에 대해 합의하는 성숙한 태도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숙한 기업인들과 경영자들은 이러한 나의 문제제기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어느 기업이 더 먼저 이런 사상과 철학에 부합하는 기업문화(조직문화)를 만들어 낼 것인가? 이렇게 되면 제4차 산업혁명에 가장 빠르게 부합하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생산성과 창의성 혁명이 일어나는 기업 말입니다.

 

아래에 그 동안 강의했던 내용의 핵심을 파워포인트로 정리했습니다. 참고하기를 바랍니다.


21세기 들어서면서부터 인류는 이미 제4차 산업혁명에 들어섰습니다. Cyber-Physical System(가상물리시스템)과 Internet of Things(사물인터넷)에 의해 세상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제3차 산업혁명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혁명입니다. 이런 혁명은 기업조직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배와 통제의 중앙집중시스템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분권화하고 자율화하고, 연대와 보충의 원리가 작동하는 수평구조라야 합니다. 인더스트리 4.0(이런 이름은 독일사람들이 붙였는데 지금은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듯 함)이라고 부르는 제4차 산업혁명이 원숙한 상태가 된다면(독일에서는 그런 시기를 2035년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음) 대부분의 노동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레미 리프킨이 예상하고 있는 노동의 종말이 오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제1차 산업혁명은 영국의 생산성을 기하급수적으로 향상시켜 주었기 때문에, 이런 생산성 향상이 곧 국력을 나타내고 그걸 기반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영국이 19세기 해가 지지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20세기 들어 미국이 제2차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그 결과 20세기는 미국의 세기가 되었습니다. 20세기 후반에 제3차 산업혁명도 다시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패전국이었던 일본과 독일이 이 혁명에 바짝 뒤따라 붙었습니다. 그래서 20세기 후반은 미국이 이끌면서 일본과 독일이 떠받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제4차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는 다시 미국과 독일이 각각 IT와 제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시간 나는 대로 써보겠습니다. 요즘 시간이 부족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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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시장, 기업,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LG인화원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시장>, <기업>, <인간>을 재조명하고 경영자들이 이 세 가지 개념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면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보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나 자신도 이병남 원장이 작년 말에 출간한 책 경영은 사람이다(김영사 2014)에서 제시한 철학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적 치유의 길을 찾아보고 싶었다. 매우 창조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모든 기업에서, 모든 산업분야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이런 시도가 일어나야 한다.  


나는 사실 그동안 그런 시도의 일환으로 책을 쓰고 강의를 해왔다. 다시 쓰는 경영학』(21세기북스 2013)과『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21세기북스 2014)이 그것이다. 미국식 월스트리트 경영(학)이 우리에게 주는 폐해가 너무나 심대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존중되지 않은 상황, 즉 인간을 한낱 자원으로 간주하는 상황에서는 결코 생산성과 창의성이 높아질 수 없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사회적기업이든. 심지어 교육계와 같은 공공분야에서도 내 주제의 지향점은 생산성과 창의성이다.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에게 인간과 조직에 관한 어떤 정신적 토대를 필요로 하는가? 그런 정신적 토대가 갖추어지려면 조직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고, 조직운영은 어떤 패턴을 유지해야 하며, 조직구성원들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나아가 거기에는 어떤 경영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지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LG인화원은 나에게는 <인간>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시장과 기업의 관점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는 미국식 월스트리트 경영에 익숙하다. 월스트리트의 경영자들은 지금까지 돈 버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정부 고위관료들, 하버드를 비롯한 유명대학의 경제학/경영학 교수들, 투자은행의 고위임원들이 삼각편대로 스크럼을 짜고 가난한 사람들의 고혈을 뽑아 먹는 잔인한 행태를 보였다. 주류경영학은 이런 월스트리트 경영을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켜 왔다. (인사이드 잡<Inside Job>이라는 다큐멘터리를 꼭 한번 보기를 권한다. 유투브에도 나와 있다.)

 

그러다가 그들이 들고 있던 금융공학이라는 도끼로 자신들의 발등을 찍었다. 그들 스스로 삶의 터전을 붕괴시킨 것이다.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것이 분명해보였지만, 아무도 처벌 받은 사람은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월스트리트의 더러운 행태를 정당화해왔던 경영학자들이 반성은커녕 아직도 월스트리트를 찬양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경영학자들이 자본주의에 중독되어 있다. 중독은 자신이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중독이라고 한다. 일단 자본주의에 중독되고 나면 돈은 신()이 되고 선()으로 변한다. 잘잘못을 가리지 못한다.

 

인간이 조직을 만든 이유는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조직이 인간을 수단이나 자원으로 활용하는 상태로 변질되고 말았다. 오히려 조직이 인간을 쥐어짜는 불안과 고통의 원천이 된 것이다. 이것이 미국식 주류경영학의 특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인간>파트에서 실존주의 철학을 통해 인간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성찰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었다. 인간은 실존하는 존재이며 언어라는 상징을 통해 만물에게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부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을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사상을 들어 설명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유명한 언명은 인간의 위상을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그런 인간존중의 철학을 실제로 실현하고 있는 스위스의 구체적인 조직운영사례도 들었다. 이것이 이번 교육과정의 <인간>파트에서 LG임원들에게 가르친 핵심내용이다.

 

<시장>, <기업>, <인간>, <시장 기업 인간의 공진화>를 맡은 모든 강사들의 강의가 끝나고 마지막 날 패널디스커션 형식으로 토론이 벌어졌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토론과정에서 월스트리트 경영학과 인간중심의 경영학은 확연히 구분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패러다임의 이슈이기 때문에 분명하게 구별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수치목표로 쥐어짜는 월스트리트 경영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인간존중의 경영()이 더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구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그런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중독된 사람들의 특징이다. 월스트리트 경영학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돈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인간중심의 스칸디나비아모델(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이 가장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당장 이 모델을 따라가지는 못한다하더라도, 자본추구와 인간존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철학적 제도적 고민에 앞서 있는, 그래서 인간의 실존적 평등과 기능적 불평등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게르만모델(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독일 등)이라도 따라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피라미드형 수직구조에서 명령과 통제, 지시와 복종, 억압과 착취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수평구조에서 상생과 나눔, 협력과 배려, 토론과 합의의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조직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며, 조직운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조직운영의 플랫폼(platform)이다. 이 플랫폼이 앞으로 내 강의와 토론의 핵심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나의 경영철학과 사상을 이해한 기업에게는 이것이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과정에서 나도 배운 것이 많았다. 패널디스커션이 학술토론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월스트리트 경영학이 인간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가고 있는지를 알게 된 것은 아주 큰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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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사회적기업 경영론 5회차 시리즈 강의


개요

메르스의 공포를 뚫고 지난 6월16일부터 6월30일까지 5회차에 걸친 연속강의를 마쳤다.


고맙게도 대구, 대전에서도 참석했다. 젊은 사람들의 협동조합/사회적 기업에 대한 열기가 식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대기업에서 강의하는 것보다 준비와 진행과정이 약간은 거칠고 소박해서 인간적이다. 이게 훨씬 나에게는 친근하다. 대기업의 물샐틈 없는 준비와 흐트러짐 없는 강의진행, 그리고 쌔끈한 강의장 환경에서 늘 강의하다가, 책상과 의자에 묻은 먼지 각자 툴툴 털어가면서 둥그렇게 둘러 앉아 오손도손 얘기하는 것과 같은 분위기, 이런 환경은 또 다른 맛이 있다.


오늘날 협동조합은 어떤 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을 구현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정신적 토대를 갖추어야 하며, 어떤 구조와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지, 그 기초를 학습했다... 협동조합의 플랫폼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인데... 용감하게도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대부분은 이런 기초를 터득하지 않고 있다... 조합운영진들은 대부분 돈 욕심, 권력욕심, 명예욕심으로 조합을 운영하려고 한다. 실패할 수밖에 없다.. .


오늘날 협동조합에 협동의 정신은 사라졌다. 안타깝게도 그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죄다 때려눕혀야 할 적으로 생각한다. 마치 현 정치권의 행태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협동조합이 극단적인 이기주주의자들의 독무대가 된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조합의 구성원들이 협동조합의 기본 정신을 갖추는 것이다. 참 어려운 일인데 그것밖에는 해결책이 없다. 그래서 교육훈련이 중요하다.


강의 핵심내용






참가자들의 수강후 소감

 

1. 우선 5회 전체 강의를 전부 듣고 너무 좋은 말씀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강의를 듣고, 훌륭한 리더를 바라지 않고,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이 부족해서 당장에 어떤 것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심화과정이 있다면 꼭 듣고 싶습니다.

 

2. 기대했던 교육보다 너무 많은 것을 얻어 갑니다. 심화교육도 무지 기대해 봅니다.

 

3.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라는 책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mindprogram 블로그를 통해 처음 소장님과 사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블로그의 글을 대부분 읽고, 조직문제 진단을 위한 인터뷰로 처음 만남을 가진 후, 여기 강의 수강까지 이어지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글에서 알 수 없었던 여러 의미들을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게 참 많은 것 같고, 계속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속한 조직에서도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고 노력해야겠네요. 성실한 강의와 질문에 대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4. 낮은 자세와 좋은 말씀의 강연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속한 조직에서 강의내용을 적용시킬 수 있도록 하고, 그 결과를 작가님께 말씀드릴 수 있도록 실천하겠습니다.

 

5.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실제 적용하면서 (실제 직장생활에서 생기는 문제 현상들에 대한) 생각의 고리를 바꿔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직 실제 변화까지는 아니지만, 동기로는 충분히 자극시켜 주셨고, 앞으로 변화를 만들어가기에는 제 자신이 부족하지만, "인간존중, 집단지성" 기억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6. 협동조합 관련한 많은 지식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실천적인 부분에서부터 철학적인 부분까지, 이 두 가지가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제 안에 남았습니다. 더해서 교수님의 열정과 마음이 느껴져서 더 좋았고요. 만약 강의가 엄청 좋았더라도 강의자의 열정의 마음이 안 느껴졌으면 100% 만족도가 안 채워졌겠죠. 하지만 이번 강의들은 100% 만족도 채워졌을 뿐만 아니라 심화과정까지 듣고 싶습니다.

 

7. 미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에 찌든 한국에 살아서 전혀 모르던 유럽, 특히 독일과 스위스의 인간존중과 집단지성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더 무서워지고, 한국은 부패로 뒤덮인 것 같아요.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번에 제가 배운 걸 모를 리가 없을 것 같은데요. 왜 그렇게 살까요? 불쌍하고 안타깝습니다.

 

8. 수업 정말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실제로 스위스라는 현재진행형 성공사례가 있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유럽에 대해 관심이 더 높아지네요. 심화과정도 기대가 큽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9. 협동조합과 실존주의 철학, 인간중심적인 경영론을 통합한 강의 인상적으로 잘 들었습니다. 경영론에 대한 강의가 방대하게 느껴지는데 시간이 부족하여 아쉽습니다. 정성스럽게 강의준비해 주시고 열정적으로 강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0. 협동조합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협동조합의 본질을 배우고 나니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지만, 본 강의를 출발점으로 삼아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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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전북고창교육지원청의 초청으로 "바람직한 의사결정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 덕분에 생애 처음으로 전북 고창군 선운사와 선운산 계곡, 구시포해수욕장, 명사십리, 운곡습지, 고창읍성, 전봉준 장군의 생가 등을 다녀 왔다. 고창이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담당 장학사님이 전화했을 때, 고창이라는 말에 도대체 고창이 경상도에 있는지 전라도에 있는지, 어디메쯤 있는 곳인지 몰랐었는데... 참 좋은 경험을 했다. 


이번 강연도 훗날의 기억을 위하여 그냥 사진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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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는 무료 강연을 합니다.]

(사)마포공동체라디오(일명 마포FM)에서 주최하고 서울시협동조합상담지원센터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에서 "협동조합 경영론"을 강의합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협력하는 것을 배운 적이 거의 없습니다. 당연히 진정한 협동을 체험한 적도 없습니다. 서로 경쟁하고 상대방을 이겨야 하는 승패의 패러다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세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을 적대시하거나 거꾸러뜨려야 할 대상으로 여깁니다. 이런 상황에서 협동조합이 잘 될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승패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합의의 패러다임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서유럽 국가와 조직에서는 어떻게 대화와 토론으로 승패가 아닌 합의의 전통을 만들었는지, 그 시사점을 학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즐거운 시간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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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아래 내용은 2015-05-22(금) 태국 푸켓에서 열린 한-아세안 과학기술혁신 다이아로그와 아세안 탈렌트 모빌리티(ACEAN TALENT MOBILITY) 워크숍에서 발표한 내용을 요약해서 올린 것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반성적 성찰

 

우선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과 한국의 경제성장의 배경이 되는 정신모형과 그 경험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50년대에는 일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최근에는 세계 10위권 경제국가가 되었습니다.

 

OECD에서 최근에 조사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조사를 보면, 싱가포르, 홍콩, 한국, 일본, 타이완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위 5위까지 모두 동아시아에서 휩쓸었습니다. 이것은 깜짝 놀랄만한 결과입니다. 교육이 산업발전의 밑거름이 된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저의 경험을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은행원으로 커리어를 처음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1980년대 초반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습니다. 퇴근시간이 정해지지 않았고 때로는 밤새워서 일했습니다. 아예 며칠간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일한 적도 꽤 있었습니다. 그때는 밤12시에 통행금지가 있을 때여서 야근을 하다가 퇴근 시간을 놓쳐서 그냥 사무실에서 지내거나 아니면 주변 사우나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다시 출근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세대가 겪은 에피소드 중에 하나를 소개합니다. 주말에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아내와 이삿짐 회사에게 맡겨놓고 출근했습니다. 이사하는 날도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녁 때 퇴근해서 이사 간 새집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는 전설적인 경험을 우리 세대는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느냐고 물으면 저도 잘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다들 그렇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랬습니다. 사람은 원래부터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사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근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근면성은 적어도 한국사회에는 아직까지 상당부분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노는 법, 쉬는 법을 잘 몰라서 지금도 그냥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휴가를 가서도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합니다. 저의 정신적 근육은 그렇게 굳어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 세대의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럴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정신이 문화로 정착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일하지 않는 다른 삶이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점점 부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집마다 냉장고, 세탁기, TV를 들여 놓았고, 점점 더 큰 집으로 이사했고, 자동차도 사들였습니다. 단기간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습니다. 이런 경제적 성장과 물질적 풍요가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것입니다. 1997년 말, 국가부도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말하자면 자신의 삶에 반성적 성찰 없이 그저 열심히 일하고 그 결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것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국가운영도 그랬고, 기업운영도 그랬습니다. 외환위기로 많은 기업들이 도산했습니다. 30대 재벌기업들 대부분이 도산의 위기에 처했고 실제로 파산하기도 했습니다. 100년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시중은행들도 역시 모두 도산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던 거대은행들 모두 지금은 다른 은행으로 인수합병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한국은행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한 국가가 이렇게 망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은행도 이런 상황을 만드는데 조금은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쓴 책이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이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성실하게 하는,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 국가와 기업을 운영해 왔는데, 무엇 때문에 이런 엄청난 위기를 만들어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반성적 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로 인간과 조직에 관한 성찰이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노동해야 하는가, 노동하는 인간들이 모인 조직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조직은 어떤 관계라야 하는가, 조직을 운영하는 경영철학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등과 같은 성찰이었습니다.

 

우주의 역사는 끊임없이 진화해 왔습니다. 그런 진화에는 어떤 특정한 의미, 가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우연히 우주가 그렇게 탄생해서 그렇게 변화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우주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생명체가 생겨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 세계를 언어라는 상징을 통해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물(water)은 그냥 물일뿐입니다. 인간이 물이라는 언어로 상징하고 그 상징에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가치와 목적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실존하는 존재(existential being)라고 말합니다. 이 우주에서 사물이나 현상에 어떤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부여하는 존재는 인간이 유일합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은 인간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냥 존재하는 여타의 사물과 다른 이유는, 단순히 신진대사가 일어나고 이성과 감정이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타자(the others)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그와 소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상징적 질서를 부여하는 놀라운 존재입니다.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인문학자들이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진리를 추구하고, 선한 행동을 하게하며,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있는 인간은 누구나 진선미를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영혼이 있는 인간은 실존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존하는 인간, 즉 영혼이 있는 인간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997년의 외환위기를 통해 한국의 지성인들은 물질적 풍요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물질적 풍요만 추구하는 삶은 반드시 위기에 직면하며, 그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의 경제성장이 낳은 교훈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물질적 풍요를 넘어 정신적 세계가 풍요로워야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 지성인들이 한국의 경제성장이 매우 기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했지만, 그런 지적은 무시되었습니다. 정치인들과 정부지도자들은 정책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물질적 풍요를 추구해왔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 과정에서 협력과 배려, 나눔과 상생, 대화와 토론의 정신은 점차 사라지고, 명령과 통제, 지배와 복종, 억압과 착취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하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들을 양산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양분되었습니다. 부자들과 고위관료들은 노동자들을 영혼이 있는 실존적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이나 부를 축적하기 위한 자원이나 수단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리하여 때로는 노동자들이 탄압받고 착취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부익부빈익빈이라는 악순환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죠.

 

대부분의 부자들과 상당수의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소위 생계형 자살이라고 부르는 자살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고 심지어 결혼을 포기한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청소년 범죄율도 상당히 높아서 이것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사회는 이러한 빈부격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가진 자들이 먼저 양보해야 하는데,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양한 계층을 대변하는 당사자들의 이해가 서로 상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문제를 잉태시킨 잘못된 정신모형(mental model)을 검토해서 고쳐 가야 합니다. 여기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교육의 목적이 직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에 대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는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영혼이 있는 실존적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자본가와 노동자들이 함께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새로운 정신모형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정신모형은 인간을 영혼이 있는 실존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이 실존적으로 평등하다는 전제에서 사회적 플랫폼을 마련해야 합니다. 새로운 정신모형은 인간을 조직의 부품이나 자원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새로운 모형은 인간을 조직의 주인으로 간주하고, 조직을 인간의 삶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21세기 기술혁명의 시대에, 그리고 ACEAN 10개국이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려고 하는 이때에, 한국에서 겪었던 경제개발의 명암을 감안하여 아세안의 정책에 반영했으면 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이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과제 중에서도, 특히 인재교육과 관련하여 상호간의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 정책실행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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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기업/협동조합을 위한 경영론, 5회 연속 강연회를 개최합니다.


[수강신청은 마포공동체라디오(마포FM)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사단법인)으로 운영해왔던 마포공동체라디오(마포FM)가 조만간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려고 한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10년 넘게 이 조직을 이끌어 온 송덕호 본부장과 직원들이 약간의 수익사업도 가능한 강좌를 시작하기로 했는데, 저에게 그 첫 빳따를 맞도록 강권하는 바람에 이번 강좌를 하기로 했답니다.

 

최근 협동조합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에서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것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협동조합의 기본정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협동조합을 하나의 비즈니스모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주식회사처럼 계급을 만들고 명령하고 통제하는 체계로 운영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하는 게 편하고 다들 그렇게 하니까요. 우리는 협동하는 정신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체험은 고사하고 배운 적도 거의 없습니다. 협동조합의 이름을 붙였다고 해도,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협동의 개념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협동조합의 법규를 아무리 잘 알아도 실제로 협동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법규 때문에 협동이 안 되기도 합니다. 조직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이슈들에 대해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조직 내에 집단지성이 발현되도록 해야 협동조합의 운영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사실 우리는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방법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적대시하거나 거꾸러뜨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면 철저한 민주주의 정신을 우리 마음의 근육으로 튼튼히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강의내용은 주로 협동조합을 가능케 하는 정신적 물질적 토대(platform)가 무엇이며, 그런 토대 위에서 활동하는 구성원들은 어떻게 상호 의사소통(networking)해야 하는지, 그렇게 하려면 조직구조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번 강좌는 기본적으로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들에게 제공했던 저의 인간존중의 경영철학과 사상, 집단지성을 발현하는 조직설계의 기본원칙 등을 토대로 구성되었습니다. 대기업에서는 아주 비싼 수업료를 내고 듣는 강좌를 이곳에서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기업조직의 생산성과 창의성, 그리고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의 정신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의 많은 참가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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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