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왜 무서운지 말해줄까요?"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야망의 선악과

기사승인 2015.02.15  08: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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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자신들을 세상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이라고 정의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세상을 향해 꿈을 펼치는 스타트업의 기조와 비전을 여전히 계승하고 있다는 자부심이리라. 그리고 단언하자면,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애플은 스마트폰으로 스마트 생태계의 시작과 끝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한편, 이제는 애플페이로 결제의 혁명을 끌어내고 있으며 애플워치로 아예 인간의 기본적인 디바이스 관념도 바꾸려 한다. 무인자동차에 전기자동차, 태양광 에너지 사업까지 나서는가 하면 iOS로 시작된 생태계 구축의 노련한 조련사로 부상하고 있다. 끝을 모른다.

  
▲ 출처=뉴시스

무서운 애플
애플의 성장은 시가총액규모로 짐작할 수 있다. 13일(현지시각) 애플의 시가총액은 7402억1000만달러를 기록해 4일 연속 세계 상장기업 시가총액 최대기록을 경신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4배며, 대한민국 한 해 예산 2배를 상회한다. 기업 하나의 가치가 국가의 가치를 앞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제 애플을 이길 수 있는 기업은 없어 보인다. 규모의 경제에 있어 애플의 적수는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애플의 눈부신 성장을 설명하는 시나리오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다소 고전적이지만 재미있는 분석이 눈에 들어온다. 스티븐 밀루노비치 UBS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애플이 메가-생태계를 창조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한 마디로 애플이 플랫폼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며 이러한 성장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능숙하다는 지적이며, 무언가를 유통시키는 기업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구글도 비슷한 이유로 급성장의 배경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은 구글의 성장과 약간 결이 다르다. 포털로 출발한 구글은 원래 C-P-N-D의 플랫폼을 가지고 출발했으나, 애플은 디바이스가 기원이기 때문이다.

구글은 플랫폼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방향으로 뛰어들었고, 이후 모토로라와 같은 기업의 인수로 디바이스 인프라를 갖추는 한편 사물인터넷 시대를 맞이해 미국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장악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미국 의회 로비왕에 등극했으며, 통신사와 탐색전 수준의 주파수 경매에 뛰어들고 동맹군인 우버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다만 애플은 컴퓨터 제조회사, 즉 디바이스로 출발해 플랫폼을 장악하고 콘텐츠를 생태계에 맡기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가져가는 분위기다. 이러한 순서의 판이함은 결국 애플이 왜 구글과는 또 다른 공포를 선사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분명히 다른 개념이지만 플랫폼과 네트워크를 연결의 측면에서 같은 연장선상에 두고, 이제는 별 차이가 없어진 콘텐츠의 가치를 잠시 접어둔 상태에서 디바이스를 플랫폼-네트워크로 만들어내는 애플의 무서움을 살펴보자.


디바이스에서 출발한다
현 상황에서 애플의 가장 강력한 디바이스는 아이폰6다. 이를 바탕으로 애플은 지난해 4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이익점유율 93%를 장악했다. 20%의 iOS 시장 점유율로 93%의 이익점유율을 기록한 대목은 놀랍다 못해 경이로운 수준이다.

2013년 2분기만 하더라도 삼성전자와 이익점유율을 양분하던 애플은 2014년 들어 그 격차를 현저히 벌리며 기어이 부의 편중을 이루고 말았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4분기 시장점유율에서 삼성전자와 동률을 이루는 경악스러운 성장세를 기록했다. 패블릿의 기조를 따라가는 발 빠른 상황판단이 애플의 성장판을 전면개방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이폰6의 성장을 바탕으로 애플이 거둔 실질적 이득은 삼성전자와 비할 바가 아니다. iOS를 바탕으로 하는 스마트 생태계를 통해 애플이 지속적으로 이윤을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청업체의 고혈을 쥐어짜는 행동 및 기타 여러가지 동기유발과 더불어, 아이폰6라는 디바이스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생태계를 폭발적으로 견인한 것이 이익점유율 93%의 비결이라는 점이 무섭다. 하나의 디바이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기점으로 폭발적인 생태계의 성장을 노린다는 뜻이다.

애플페이도 비슷하다. 기반은 디바이스다. 아이폰과 4월 출시예정인 애플워치가 핵심이 되어 모든 기능을 쓸어담는다는 개념이다. 아이팟의 성공으로 애플이 성공가도를 달리던 시절, 창업주 고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이 아이팟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부분을 감수하고 야심차게 아이폰을 런칭한 바 있다. 이는 패블릿 스마트폰 아이폰6가 아이패드의 '저조한 실적 원흉'이라는 재미있는 사실과 더불어, 기능의 확장을 이루는 디바이스의 발전으로 시장경제체제의 근간을 장악하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 출처=뉴시스

참고로 13일(현지시각) 애플의 주가가 큰폭으로 상승한 배경에는 미국 연방정부 조달용 결제 수단인 연방 스마트페이 카드가 애플페이를 지원한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디바이스의 발전으로 생태계를 창조하는 능력의 단적인 사례다.

아예 애플워치만 따로 놓고 본다면, 디바이스로 시작된 생활밀착형 생태계가 어떤 모습으로 윤곽을 드러낼지 확연히 보인다. 최근 팀 쿡 CEO는 애플워치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드러내는 자리에서(물론 진짜 허심탄회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삶을 바꾸는 것이 애플의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동시에 그는 "애플워치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이제 사람들이 '애플워치 없으면 살지 못하겠는데'라고 말하는 세상을 원한다"고 말했다. 아이팟의 기능을 담은 아이폰이 실생활과 붙어버린 스마트폰, 아이폰이 되었던 역사를 애플워치라는 웨어러블을 통해 또 한번 실현하겠다는 의지다.

  
▲ 출처=뉴시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팀 쿡 CEO은 스티브 잡스의 유지를 가장 잘 받드는 CEO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패블릿 아이폰6의 등장으로 스티브 잡스의 유훈이 깨졌다고 말하지만, 큰 틀에서 팀 쿡 CEO는 가장 적절하게 스티브 잡스의 거대한 흐름을 잡아내는 분위기다. 과감한 디바이스의 확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생활밀착형에 대입되는 강력한 생태계 구축의 측면에서 말이다.

이 대목에서 TV이야기를 뺄 수 없다. TV는 가전업계의 고전적 왕자다. 지금까지 CES 및 IFA의 왕자는 단연 TV였으며, 이는 지금도 유효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TV는 최첨단 가전업 발전의 대상에서 약간 벗어났다고 말한다.

지난 1월 열렸던 CES 2015에서 스마트카가 부상한 이후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 두가지는 관심을 양분해 그 비전을 2배로 늘렸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사물인터넷 시대의 중심은 스마트TV며, 왜 LG전자가 웹OS를 둘로 나눠 하나를 스마트TV 플랫폼으로 구축했는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는 타이젠OS를 스마트폰에서 시작했지만, 실질적 파괴력은 TV를 중심으로 삼아 사물인터넷 시대로 흐를 전망이다.

여기서 애플로 돌아오자. 13일(현지시각) 주요 외신은 애플이 올해 가능 최신형 애플칩을 탑재한 셋톱박스형 애플TV를 런칭할 확률이 높다고 보도했다. 애플이 차세대 애플TV에 A9칩과 같은 고성능 칩을 배치해 콘텐츠 플랫폼에 게임과 스마트홈을 통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애플이 슬링TV와 비슷하게 인터넷TV 서비스를 시작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TV분야에서 여러번 고배를 마신 애플이 끈질기게 TV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TV의 특성을 살리는 한편 디바이스의 확장으로 새로운 생태계 구성에 나설 확률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물론 이 대목에서 애플만 특별한 것은 아니다. 구글의 넥서스 플레이어도 게임을 매개로 생태계 구축에 나서는 한편, 그 이상의 가치를 노리고 있다. 다른 경쟁사도 비슷한 복안이다.


전기차와 태양광 발전
지금까지 애플의 디바이스 확장, 이후 생태계 구축의 방정식을 살폈다. 상당히 대단하다는듯 말했으나 엄밀히 말하면 사실 '어렵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애플의 공포스러운 점은, 이제 디바이스를 하나의 생태계로 확장하는 것을 넘어 밀접한 상관관계의 두 가지 아이템을 공동으로 추진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영악함도 보여준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기차와 태양광 발전이다. 현재 공식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애플이 타이탄 프로젝트로 명명된 전기차 제조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본사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테슬라 모터스와 포드 등에서 이직한 엔지니어들이 비밀리에 작업을 하고 있으며, 아이폰과 아이패드 디자인을 총괄한 스티브 자데스키 부사장이 이끌고 있다는 구체적인 정황도 나왔다. 몇몇 성급한 사람들은 '전기차 디자인을 조나던 아이브가 맡을까?'라는 질문까지 던지는 상황이다.

  
▲ 출처=http://sanfrancisco.cbslocal.com

그런데 미묘한 지점이 있다. 전기차는 무인차와 마찬가지로 현실의 법규제가 상당하다. 최근 테슬라 모터스도 경쟁자들의 견제로 판매금지 구역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애플이 사업을 추진하기는 하지만, 실제적 제조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구글과 우버의 무인차를 둔 분쟁아닌 분쟁과 비슷하다. 현재 구글이 무인차 개발에 나서며 비슷한 서비스를 추진하는 우버와 마찰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글의 부사장이자 우버의 이사회 멤버인 드루먼드가 분쟁의 핵심이라는 해석은 와전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글과 우버는 무인차를 두고 마찰음을 내는 것이 아니며, 구글의 무인차가 규제를 완화시키는 방법으로 가닥을 잡으면 우버가 그 수확을 가져갈 확률이 높다는 시나리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구글이 통신사와 주파수 경매에 전사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미래를 위한 포석을 깔아버리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결국 구글은 무인차 규제를 삭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우버가 수혜를 가져간다.

애플도 비슷할 확률이 높다. 먼저 전기차라는 디바이스를 바탕으로 규제완화 등을 요구하며 환경을 조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종합적으로 이는 디바이스의 기능을 현실의 환경변화로 이끄는 단적인 사례다. 애플은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움직임으로 과실을 가져갈 확률이 높다.

여기서 태양광 발전도 고려해야 한다. 팀 쿡 CEO는 6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태양광 에너지 사업을 펼치며 이를 위해 8억5000만 달러(약 9300억원)를 투자한다. 테슬라 모터스의 앨런 머스크와 오버랩된다. 스페이스X로 대표되는 테슬라 모터스의 앨런 머스크는 태양광 에너지 사업을 다각도로 추진하며, 이를 자신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전기차와 태양광 에너지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제 팀 쿡 CEO는 디바이스의 확장을 넘어 생태계를 조성하는 수준을 파괴하고, 앨런 머스크가 주목했던 전기차+태양광 콜라보를 활용하는 지점까지 이르렀다.


애플이라는 이름의 선악과
구글이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며 신선한 패러다임을 만들어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애플은 자신들의 디바이스 DNA를 무기로 삼아 이를 기점으로 폭발적인 생태계를 구축한다. 무엇이 더 효과적일까?

출발이 다른 두 기업의 무시무시함을 측정하는 방법은 없지만, 애플의 방식이 모바일 시대, 사물인터넷 시대를 맞아 생활밀착형으로 번지기에 적합한 모델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국내 기업들이 디바이스라는 하나의 '성장환상'에 막혀 우왕좌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다. 물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결국 애플은 아이폰6의 확장으로 기본적인 스마트 생태계를 만들고, 아이폰6와 아이폰6S(가칭), 애플워치로 결제 생태계를 확장하는 한편 애플워치 단독으로 웨어러블의 시대를 규정한다. 애플TV의 생태계 전략은 경쟁사와 비슷하게 잡아가고 있으며 전기차와 태양열 발전과는 디바이스의 확장-콜라보까지 노린다. 모두 디바이스에서 시작된 전략이자, 생태계다.

  
▲ 출처=뉴시스

애플의 로고는 뉴턴에서 시작해 총 3번의 변화, 4개의 이미지로 구축되어 왔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로고는 1976년 만들어진 한 입 베어먹은 사과 이미지다. 로고의 기원은 무엇일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A'가 기업순서 중 맨 앞에 위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나, 로고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원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가 사과로 유명한 곳이라는 설, 최근 영화인 이미테이션 게임에 등장하는 애니그마 풀이의 공로자 앨런 튜닝이 먹고 죽은 독사과를 형상화했다는 설 등이 분분하다. 1976년 처음 만들어진 로고에 무지개 색이 표현된 것은 동성애를 의미하며, 이는 팀 쿡 CEO와도 연결되는 재미있는 흐름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가지 독특한 설명이 있다. 애플의 로고는 성서에 등장하는 선악과를 의미한다는 설이다. 엄밀히 말하면 선악과는 사과가 아니고, 주로 '금단의 열매'로 여겨진다. 그 선악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디바이스를 기점으로 빠르게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하는 애플의 성장을 목도하는 우리가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할 대목이다.

최진홍 기자 rgdsz@econov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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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2015-05-27_협동조합(사회적 기업) 경영론

 

()마포공동체라디오(마포FM)에서 주최주관하고 서울시협동조합상담지원센터가 후원하는 협동조합(사회적 기업) 경영론 강연을 했다. 강연내용의 핵심 메시지는 간단하다. 협동조합은 민주주의(民主主義)와 공화주의(共和主義)를 실현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고, 공화주의는 모든 주인이 공공선(公共善)을 위해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적이고 공화적인 사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골치 아픈 이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란 어떤 경우에도 ""을 추구하는 이념이다. 어떤 경우에도 인권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와는 상반된다. 돈을 추구하면 인권이 무시되고, 인권을 추구하면 돈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11표 시스템과 11표 시스템 사이에는 어떤 공약점도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사상을 실현하려면 자본주의 체제를 적당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소위 경제개발을 빌미로 자본주의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어도 그것을 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는 정책을 써왔다. 그래서 이제는 온 나라가 자본주의에 중독된 상태처럼 보인다. 종교, 교육, 사법, 언론, 의료 등 절대로 부패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오래전부터 자본에 포획되었고, 이제는 포획된 상태를 넘어 아주 깊이 썩어 들어가고 있다.


 

이것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협동조합이다. 내가 협동조합을 강조하는 이유는, 다른 어떤 기업조직보다 더 원활하게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쉽지 않다. 어려서부터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관한 교육훈련을 거의 받지 못했으며, 나아가 진정으로 협력하고 합의하는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다른 애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스펙 쌓기를 지상목표로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을 눌러서 패배시켜야 자신이 살 수 있게 된, 매우 슬픈 나라가 된 것이다.

 

이렇게 경쟁적으로 살아왔기에 우리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제압하거나 때려눕혀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자본주의체제는 항상 경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승패의 패러다임에 완전히 구속되어 있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을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부익부빈익빈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세계 최고의 자살률, 노인 빈곤율, 이혼율, 세계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되는 대로 협동조합의 이념, 즉 자주적이고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사상을 가르쳐보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적이고 공화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있는가? 너무 많아서 이루 설명할 수도 없다. 서유럽의 국가들은 대부분 협동조합의 정신에 입각하여 운영된다. 그 중에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스위스다. 지난 167년간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실천함으로써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다. 스위스의 국가운영방식에 관해 설명을 들으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어떤 것인지도 이해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강의를 들은 후에 벌어지는 질의응답이다. 나는, 교육이란 질문의 퀄리티(quality)를 높이는 행위라는 어느 교육학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다음과 같은 높은 수준의 질문들이 있었다. 물론 시간이 허락된다면 더 많은 질의응답과 더 깊은 대화가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시간과 장소의 제약으로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 그래서 질의한 내용 중에서 그 핵심을 정리하여 이곳에 올린다. 아무쪼록 협동조합의 정신이 우리 사회를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실현되도록 변화시키는 데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뒤풀이를 통해 현실에서 닥친 이슈들을 논의하긴 했지만, 나 자신은 협동조합의 실무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인 원리와 철학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질문1

이런 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해외 사례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위로부터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윗사람들은 아랫사람들에게 너희들이 버티면서 열심히 교육하라, 그러면 언젠가는 변화될 것이다라는 말만 듣고 있는 형편이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좌절감을 느낀다. 서유럽처럼 모든 사람들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현하도록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교육만 한다고 해서 협동조합의 정신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아주 좋은 질문이다. 첫째, 권력을 가진 사람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조직에는 아주 쉽게 협동조합의 기본정신에 따라 운영되는 관행이 정착될 것이다. 그것이 가정이든, 기업조직이든, 정부조직이든 말이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조직은 참으로 힘들어진다. 적재적소의 인사원칙이 통용되도록 공직자를 선출할 때 유권자들이 잘 선택해야 한다. 다른 길이 없다. 공직선거에 나선 후보가 과연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이해하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왔는지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 이것은 시민의 의무다.

 

둘째, 교육훈련이 중요하다. 교육과 연대를 위해서는 기독교 모델을 응용할 수 있다. 기독교는 2천년 동안 수많은 위기에서도 살아남았다. 오늘날 인류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힘은 교육과 연대에서 온 것이다. 교회를 보라. 일요일에 예배드리고, 그것도 모자라 수요일에 또 모이고, 그것도 불안해서 금요일에 구역예배를 위해 또 모인다. 그리고는 또 다시 계절별로 유명한 강사를 모셔다가 부흥회를 연다. 그렇게 모여서 듣는 내용을 보면 매번 거의 같은 메시지다. 두뇌만이 아니라 온몸의 근육과 세포에 기독교 사상이 배어버리지 않겠는가? 협동조합도 이 모델을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말하자면, 나는,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적 도전에 대항하는 민주적이고도 공화적인 조직혁명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것은 우리 민족의 정신혁명이기도 하다.

 

셋째, 교육과 함께 연대가 중요하다. 조합원들끼리 모여서 늘 연대해야 한다. 추구해야 할 비전, 목적, 방향을 토론하기 위해 세미나를 하고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아울러 협동조합끼리 연대하여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돕는 협력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강의/강연을 해왔지만, 내 강의를 들은 수강생 중에서 가장 나이어린 수강생이다.



질문2

강의 중에 합의의 원칙을 매우 중시하셨는데, 현실에서는 합의가 어려울 때가 많다. 어느 정도의 위계질서가 있어야 합의가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조금씩 서로 양보하고 절충해서 타협을 하면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스위스의 연방정부처럼 만장일치의 합의원칙을 지키려면, 물론 이상적이긴 한데, 효율성이 매우 떨어지고 업무처리가 늦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타협과 합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좋은 질문이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실현하는 데 있어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장 기초적인 원칙이 바로 합의다. 이 합의의 원칙을 독일어로는 콜레기알프린칩(Kollegialprinzip)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principle of consensus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 엄밀히 따지면 조금 다르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가 이루어진 후에는 모든 참여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다. 여야정치인이 서로 합의문을 작성해서 발표한 후 그 다음날 서로 다른 소리를 하는 예를 수없이 봤다. 그런 것은 합의가 아니다. 서로 타협을 했기 때문이다. 강의 중에 말했듯이 타협은 서로 다른 견해의 교집합을 만들어낸 것이다.

 

합의란 참여자의 모든 견해가 새로운 대안에 완전히 담겨 있어야 한다. 합집합을 만들어내어 그것을 새로운 대안으로 창조했기 때문에, 합의안에 서명한 참여자들은 어떤 얘기를 해도 그 합의안에 부합한 얘기를 하게 된다. One Voice의 원칙이 지켜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창조적 합의안을 만드는 것이 바로 헤겔이 말한 역사발전의 법칙인 정반합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합의를 해내려면 길고도 지루한 토론을 해야 하고, 때로는 감정적 소모가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효율성도 떨어져 업무처리가 늦어질 것이다. 합의의 원칙을 지키는 대가는 엄청 커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윗사람의 일방적 지시와 명령으로 신속하고도 재빠르게 업무를 처리한다. 엄청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유럽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느려 터져서 짜증이 날 정도다.

 

그런데, 일정기간 지나고 나면, 우리보다 서유럽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일하는 시간도 우리의 반 밖에 안 되는데 말이다. 이것은 정말 신비로운 일이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 신비를 우리 민족이 터득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생산성이 높고 창조적인 성과를 많이 내는 사람과 조직의 특성은 일을 많이 하지도 않고 빠르게 하지도 않는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일의 본질에 집중한다. 무슨 말이냐? 자신이 맡은 일이 5년 후, 10년 후, 20년 후에는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계획한다. 머릿속에서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탐구하고 참여자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고 다시 분석하고 통합하여 기본 틀(framework)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플랫폼(platform)이다.

 

여기서 차이가 난다. 우리는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은 것을 열심히 만든다. 물론 당장은 써먹을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또다시 이전 것은 버리고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 휴대폰을 비교해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일단 플랫폼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고 나면 그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는 여러 모듈들을 만들어서 모듈들 간에 상호 네트워킹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업무와 기능에 따라 네트워킹이 자주 일어나는 것들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다시 생태계(ecosystem)을 형성하게 된다.

 

platform, module, network, ecosytem을 만들지 못하면 결코 생산성을 높일 수 없다. 빨리빨리 타협하고 의사결정해서 부지런히 일하면 뭔가 될 것 같지만, 이제는 그런 세상이 지나갔다.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고 토론하여 다양한 견해를 종합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 완전히 창조적인 합집합을 만들어내는 교육훈련이 필요하다. 내가 협동조합에서 교육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직에서, 특히 협동조합에서 자신의 견해가 옳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견해를 묵살하거나 억압하는 태도로는 결단코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모두 겸손해져야 한다. 나의 견해가 옳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나의 견해는 항상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옳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틀리다'라고 결론 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타인의 견해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집합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합의의 개념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거듭 반복하거니와,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하는 길은, 바로 다양한 견해가 융합되어 창조적인 합집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집단지성의 힘이다.

 



질문3

협동조합에 관심을 많이 같게 되었다. 5명 이상 모여서 협동조합을 하게 되면 지원금을 받게 되고, 협동조합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위를 점하게 하기 위한 좋은 비즈니스모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협동조합은 비즈니스모델이 아니다. 협동조합은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를 보다 인간중심적인 사회로 변혁시키기 위한 정신혁명운동이다. 자본주의보다 더 높은 이익을 내려고 협동조합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조직이 유지발전하기 위해서는 일정부분 이익이 나야 하지만, 이익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영리기업을 Profit organization, 비영리조직을 Non-profit organization, 협동조합을 Not-for-profit organization이라고 부른다.

 



질문4

합의와 타협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협동조합을 하다보면, 현실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는데 합의가 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스위스에서도 연방정부에서 합의에 의한 결정이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면 국민청원이 일어날 것이고 이는 결국 국민투표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의사에 합치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 조합원의 의사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서 그들의 의견을, 비록 소수의견일지라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구조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기구가 이사회다. 이사회는 스위스 연방정부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항상 조합원의 의사를 늘 청취하고 그들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이사회 구성이 조합원 중심이라야 한다. 조합원 중심의 이사회를 구성하려면 영국의 BBC Trust의 구성원리를 응용하여 지역별, 성별, 연령별 대표자들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조합원의 의사에 합치하지 않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둘째.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이다. 이사회의 회의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사실 이사회 회의장면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하는 것이 가장 좋다. 누가 어떤 내용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모든 조합원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문서화하여 아카이브로 남겨두어 훗날의 역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생중계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면 녹화해서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어쨌거나 이사회에서 서로 합의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권한이 있는 사람의 의도대로 명령을 내려서 실행에 옮기는 방법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결정을 미루는 방법

 

첫 번째의 명령에 따라 실행하는 방법은 우선 위계질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이 방법이 활용되면 그 다음부터는 협동조합의 정신은 사라지고 지배와 명령에 의한 피라미드형 계급구조로 삽시간에 전락한다. 우리나라의 정치형태가 이렇다. 나는 이런 방식을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협동조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번 지배와 명령의 사건이 벌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일이 명령시스템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의존하게 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은 스스로 자율적인 사고를 하지 않게 된다.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부속품처럼 느끼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협동조합은 사회적으로는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는, 돈벌이에 연연하는 영리기업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면 두 번째의 합의할 때까지 미루는 것은 어떤가? 어떤 경우에도 합의에 의해 결정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령에 따라 실행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합의를 하려면 어떻게든 창조적 합집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 말이다. 실행할 시기를 놓쳐 큰 손해가 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손해를 감수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이유로 명령에 의한 결정이 이루어지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합의를 어렵게 하는 여러 대안들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 창조적 합집합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구성원들은 정기적, 비정기적 세미나와 워크숍을 개최해야 한다. 여기서 조직의 비전, 목적, 방향을 공유하고 혁신적인 대안들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모임을 갖는다. 여기에는 첨예한 이슈들을 해결하는 여러 방법론들이 개발되어 있고 실제로 이것을 활용한다. 이것이 스위스뿐만 아니라 독일 산업교육과 훈련과정의 하이라이트다. 스위스를 비롯한 게르만 모형의 경쟁력은 바로 이런 혁신적인 교육훈련을 통해서 나온다. 내가 협동조합에서 끊임없이 교육훈련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협동조합은 어떤 경우에도 투명해야 한다. 협동조합 운영진은 사생활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서유럽은 협동조합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고위직일수록 사생활이 없다. 개인소득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정생활까지 완전히 유리항아리에 있는 것처럼 투명하게 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사생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자리에 가지 않으면 된다. 누가 강제하는 사람도 없다. 어디서 누구와 밥을 먹었는지 일거수일투족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그렇게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사람의 사생활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다가 약간의 의심이 들면 그때부터는 거의 완벽하게 털린다. 그러니까 허튼 수작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강의 중에 잠시 언급했듯이, 우리의 최종 목표는 스칸디나비아 모델 수준으로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그렇게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니 게르만 모델 수준으로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스칸디나비아 모델이든 게르만 모델이든 그들이 투명성을 확보하게 된 것은 그냥 자연스럽게 된 것이 아니다. "투명하게 공개하기를 두려워하는 자가 누구인지 공개하라"는 요구를 국민이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시민단체의 역할이 컸다. 협동조합도 이렇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스스로 앞장 서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 개인비즈니스가 아니고, 적어도 협동조합이나 시민단체, 비영리기관이나 정부기관에 일단 들어선 사람은 사생활을 포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병역기피, 위장전입, 논문표절, 공금유용 같은 불법적인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때문이다. 개인비즈니스라 하더라도 규모가 있는 회사의 경우는 시스템적으로 모든 것이 공개되기 때문에 개인이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은 낮다. 모든 자료가 공개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합의를 통해 합치의 원칙, 즉 국민의 의사에 합치하도록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것을 위해 연방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니까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의사를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하여 국민청원이 일어나게 되면, 설사 연방정부가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국민투표에 붙이는 수밖에 없다. 이렇듯 연방정부는 국민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지를 면밀히 보살피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통계를 찾아보니까, 1891년부터 20152월까지 약 124년 간 국민청원을 개시한 건수가 432개인데(평균적으로 매년 대략 3.5개의 국민청원이 일어남), 실제로 공식청원으로 인정된 것은 195(매년 약 1.6)이다. 이중에서 연방의회 또는 국민투표에 의해 가결된 것이 22(매년 대략 0.18). 이렇게 124년의 역사를 볼 때, 국민청원이 최종적으로 가결되어 성공할 확률은 대략 5%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스위스 정부는, 아주 까다로운 의사결정이라 하더라도 사전에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여 합의안을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국민은 자신들의 의사에 거의 합치하도록 정부를 운영해왔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최종 목표는 스칸디나비아 모델 수준으로 가는 것이지만, 우선은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적어도 스위스 수준에서 조합이 운영될 수 있도록 이사회를 격려하되 때때로 감시도 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이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사회의 이사 또는 사외이사로 활동했던 나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봐도 우리나라에서 활용되고 있는 미국식 이사회 제도는 정말이지 엉망이고 개판이다.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시간 나는 대로, 물론 언제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이사회 제도의 개혁(미국식 vs 유럽식)에 대해 정리해서 발표하고자 한다. 벼르고 있는데 아직 못하고 있다.


 

질문5

수평구조에서 서로 의견이 다를수록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화와 토론을 기피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자신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다른 의견을 포용하고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정신적 토대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합의의 정신을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실용적인 제안을 하고 싶다. 자신의 견해를 주장할 때, "내가 틀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또는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다. 내 주장이 옳고 상대방의 주장은 틀렸다는 식으로 처음부터 윽박지르면서 몰고 가면 대화와 토론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회과학의 대상이 되는 이 세상에는 맞고 틀린 것이 없다. 어떤 사실이나 진실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냥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서로 합의한다는 의미는 각 개인의 다양하지만 주관적이고도 일방적인 관점들을 360도의 관점과 구글맵의 줌인-줌아웃(zoom in- zoom out)과 같은 관점을 포괄하는, 가능한 한 모든 관점에서 합집합의 창조적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조직운영의 토대인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조직운영의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그런 조직과 국가는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수평구조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구조이기 때문에, 피라미드형 계층구조의 마인드셋(mind-set)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해결책은 역시 교육이다. 학교에서부터 대화하고 토론하는 방법을 제대로 익혀서 수직적 마인드셋(pyramidal mind-set)이 수평적 마인드셋(horizontal mind-set)으로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시험점수로 서로 경쟁하도록 가르치는 현재의 교육환경으로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 우리 산업계는 스위스를 포함한 게르만 모형보다 훨씬 더 많은, 그리고 훨씬 더 강력한 교육훈련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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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의사결정메커니즘_품의제도의 폐해에 대하여

 

다음 주에는 LG인화원에서 LG임원들을 대상으로 의사결정시스템의 중요성에 대해 강의합니다. 4시간 강의지만, 중간에 대략 30~40분 정도는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내가 이런 강의 주제를 선택하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지금 활용하고 있는 의사결정메커니즘이 어디서 왔으며, 이것은 우리 사회와 조직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품의제도(稟議制度)란 아랫사람이 기안서(起案書)를 만들어 윗사람에게 품의(稟議)하여 결재(決裁)를 받는 일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중간결재자들의 견해는 사실상 참고사항일 뿐이고, 결국은 피라미드 조직의 정점에 있는 사람의 의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품의제도는 철저하게 상사가 부하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제도입니다.

 

해방 후 지금까지 역대정부의 의사결정을 보더라도 크고 작은 결정들이 피라미드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일인에 의해 결정되어 왔습니다. 독재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합의한 사안조차 청와대가 무시해버리곤 했습니다. 품의제도에 의해 유지되는 조직구조는 그 자체로서 매우 심각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사는 유능할 필요도 없고 노력할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부하들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만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유지되는 구조입니다. 매우 불합리한 제도입니다.

 

그러므로 품의제도(稟議制度)에 의한 의사결정은 조직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구성원들의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이지만,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작년 세월호 사건 이후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출판사의 의뢰로 출간한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21세기북스 2014)이란 책에서 주로 다루는 것도 바로 이 주제였습니다. 인화원에서는 강의에 참여했던 임원들에게 이 책을 배부하여 읽도록 기획하고 있습니다.

 

강의 주요 내용과 줄거리(PPT)를 여기에 올립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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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려는 독일인들의 노력을 보면...]

 

전율을 느낀다. 독일정부가 쏟아내고 있는 보고서들을 보면 볼수록 무섭다.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제1차 산업혁명의 덕분으로 19세기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세기였다. 이런 흐름을 가장 뒤늦게 받아들인 나라가 독일과 일본이었다. 그렇지만 가장 튼튼한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세계를 향해 전쟁을 치를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길렀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2차로 전기혁명을 주도한 미국은 20세기 전반을 지배했고, 그 여세를 몰아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는 다시 제3차 전자혁명을 일으켜 컴퓨터의 세계를 열었다. 20세기 전체 지구덩어리를 미국이 지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변화를 가장 재빨리 따라 간 나라가 패전국 일본과 독일이었다.

 

그럼 21세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Cyber-Physical System(가상의 물리시스템)Internet of Things(사물인터넷)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혁명은 미국과 독일이 서로 각축전을 벌이면서 진행되고 있다. IT 분야는 미국이 앞서 있지만, 제조업의 스마트 팩토리 분야는 독일이 앞서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가장 빠르게 따라가고 있다. 독일은 아예 중국을 자신들이 일으키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파트너국가로 여기고 있다.

 

지금 독일에서는 엄청난 양의 연구물과 보고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제목만 훑어봐도 대강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물론 기술적인 세세한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첨단기술들을 어디에 어떻게 써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독일 정부, 기업, 연구소, 대학 등은 기본적으로 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위한 철학을 정비하고 있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이 철학적 사유가 곧 플랫폼(Plattform, platform)을 만들어내고 있다. 즉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언제, 어디서 할 것인지, 그렇게 되면 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 그 변화에 대비해서 사회의 각 분야는 어떤 것을 지금 준비해야 하는지... 등등, 대단히 세심하게 논의하고 있다.

 

그들은 이 프로젝트를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이라고 말한다. 플랫폼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토대를 의미한다. 그 토대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전문가들이 나서서 협력하고 있다. 나는 독일인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문서를 검토하면서, 삶의 플랫폼과 기술의 플랫폼이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독일 연방 경제산업부와 교육연구부, 경제계, 노동조합, 학계의 대표자들이 이끄는 제4차 산업혁명 플랫폼의 구조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 형편인가? 지난 4월 중순에 하노버에서 열린 기술박람회에 정부 공무원들, 정부출연 연구기관 인사들, 기업체와 협회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출장을 다녀왔다. 심지어 기자들도 많이 다녀갔다. 하지만 정부의 산업부와 미래부에서도 인더스트리 4.0과 관련된 보고서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마당에, 얼마전에 산업부는 앞으로 몇 년 내, 몇 조원을 투입해서, 몇 만개의 공장을 스마트 팩토리(미래형 공장)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일까?

 

공무원들이 출장을 갔다 왔으면 출장보고서라도 써서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출장 가서 구경하다 왔으면 그냥 그랬다고 써서 내면 되는 것 아닌가? 관심이 있는 국민이라면 당연히 공무원들이 쓴 보고서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한양대학교에 있을 때 미국, 인도 출장을 갔다고 오면 반드시 보고서를 제출했다. 물론 그런 규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스탠포드대학교의 하소 플라트너 인스티튜트 디자인스쿨(Hasso Plattner Institute, Design School)을 방문해서 소위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에 관한 교수학습내용을 파악해서 보고했다. 인도 출장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 등록금과 국비로 출장을 갔는데 내 출장의 목적, 내용, 결과 등을 학생들과 교육부와 국민이 상세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그 내용을 요약해서 내 블로그에도 올리곤 했다. 공무원이나 연구자들이 공금으로 출장업무를 수행했으면 그것을 보고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보고서 없는 공무출장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산하 연구기관에서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보고서가 있긴 한데, 죄다 미국, 독일, 일본 자료를 짜깁기 해놓은 것들 뿐이다. 신문기사들도 깊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자세로 제4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하는지, 진지한 보고서와 기사를 아직 보지 못했다. 이 혁명적 변화를 준비하는 플랫폼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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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인간존중과 집단지성

 

지난주에는 부천 세종병원과 안양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 학생들에게 인간존중과 집단지성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나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는 상당기간 이런 주제로 강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간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자식들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그 원인을 낱낱이 밝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 철저히 거부되고 있다. 생각할수록 참담해진다.

 

출산율이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지자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등의 유인책을 쓴다. 인간을 아직도 당근과 채찍으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하는 거의 모든 정책들을 따져보면, 인간존중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을 한낱 수단이나 자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과연 출산장려금을 받으려고 출산하는 부부가 몇이나 있을까? 세계 최고수준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 한강 다리 위에 조명을 달고 망을 치는 행위만큼 즉흥적이고도 유치한 해결책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면 출산율과 자살률의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내가 인간존중을 강조하는 이유는 단순히 출산율이나 자살률과 같은 통계적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우리는 지금 혁명적인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제4차 산업혁명(Industry 4.0)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기계장치와 부품에 센서를 부착하여 인간의 명령이나 의도적 개입이 없이도 기계와 부품들이 스스로 상호작용한다. 이것들이 스스로 인간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그 제품 스스로 고객을 찾아가서 서비스한다. 마치 부품과 기계장치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과 같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가상의 물리세계(cyber-physical system, CPS)를 건설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진보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통제하는 생명이 있는 기계장치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컴퓨터는 물론이려니와 일상에서 늘 만나는 자동차도, 휴대폰도, 가전제품도 이제는 CPS 없이 작동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술문명은 우리 각자의 삶을 점점 지배해가고 있다. 이 대세의 흐름을 피할 수 없다. 앞으로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을 통해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를 넘어 스마트 서비스(smart service)와 스마트 스페이스(smart space)를 거쳐 스마트 팜(smart farm)에 이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스마트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인간의 의도적 개입이 없이 기계장치들이 스스로 작동한다는 의미다. 스마트 팜 개념은 인간의 먹거리조차 멀리 떨어진 농장(공장)에서 자동장치에 의해 재배되어 소비자에게 자동으로 배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문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존중이다. 인간 개개인의 처지와 개성, 타고난 재능과 인격에 상관없이 인간의 존재 자체가 존중되지 않는 한, 귀족과 성직자에게 억압받던 중세와 같은 사회로 다시 전락할 수 있다. 생명이 있는 기계장치들에 예속되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홀로서기가 어려운 아주 나약한 존재다. 구세주가 나타나서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간절히 소망해야 할 만큼,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존재다. 인류가 귀족과 성직자에게 의존하면서 삶을 연장했던 것처럼 그저 대책 없이 스마트한 기계장치에 삶을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인간은 어딘가에, 그리고 누군가에 예속되기를 원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주체적으로 이 세계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고하는 힘, 고민하는 힘, 탐구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주체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기르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생각하는 힘은커녕 1년만 지나면 필요 없어질 지식과 정보, 직업세계에 나오면 전혀 쓸모없는 정답을 외도록 하는 교육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 서로 협력하는 태도와 방법보다는 서로 경쟁하면서 타인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태도와 요령을 터득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학교에서는 서로 협력하고 토론하여 집단지성을 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기득권자들에 대한 아첨과 충성심의 기능을 배우거나 타인에 대한 지배와 배제, 억압과 착취의 방식을 배운다.

 

내 강의를 듣는 기업인들과 직장인들, 그리고 학생들이 이 못된 세계로부터 깨어나기를 소망한다. 나는 강연에서 때로는 쌍스러운 말도 서슴없이 한다. 우아한 말만 듣고 살던 지식인들이 예수님이 퍼부었던 저 쌍스러운 말들, 유대인들을 향하여 내뱉은 '독사의 새끼들', '회칠한 무덤'과 같은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를 상상하곤 한다. 아마도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예수조차 그렇게 강력한 언어를 구사한 이유는 성직자 계급의 우아한 말 속에 민중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존중과 집단지성은 결코 우아한 말에서 나오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다. 이때 계급장을 떼고 토론이 이루어져서 정반합의 신테제(Synthese)를 이루어낼 수 있는 정신적 성숙함이 있어야 한다. 내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정신적 토대(spiritual base). 정신적 토대가 글러먹은 사회는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천 세종병원에서(2015-04-21)

 

안양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에서(201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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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의 1주기인 416일 나는 삼성전자 신임보직자 과정에서 리더십을 위한 강의를 했다. 인간과 조직에 대한 철학적 반성에 관한 강의였다. 실천적 사례를 위해 스위스를 예로 들었다. 1848년 독립된 연방국가를 구성해서 오늘날까지 조용히, 그러나 꾸준하게 167년간을 한결같은 걸음으로 인간존중과 집단지성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해 왔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다. 한마디로 생산성과 창의성이 가장 높아, 가장 아름답고 가장 풍요롭고 가장 안전한 나라가 되었다는 말이다.

 

8백만 인구의 작은 나라 스위스가 그 동안 무슨 일을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내 강의의 주된 내용이었다.(용인에 있는 신세계 인재개발원에서)

 











  

세월호 사건의 진상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모든 사건이 그렇겠지만, 이 사건은 더욱 그렇다. 304명의 인명이 졸지에 희생된 사건이거니와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의 무책임한 행동, 선박회사와 국가정보원의 의문스러운 행태, 해경과 해수부의 사건발생 당시와 그 후 처리과정의 불투명성, 이 사건과 관련된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보여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말 바꾸기와 가당찮은 변명 등을 감안할 때 이 사건의 진실이 묻혀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금까지 국민의 의견에 저항하고 대결해왔다. 심지어 국민을 속이기까지 했다. 이런 행태는 아마도 그들이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에 갇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자신들의 권한과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수십 년 전 이승만, 박정희 시대에도 늘 부작용만 낳았다. 국가는 소수를 억압하여 다수의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착각이 현정부와 새누리당에 계승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세월호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행태를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과 필요를 수용하지 못하고 권력을 가진 자신들의 뜻대로 이 사건을 강압적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국가주의에서 다원주의로

 

나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국가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다원주의 패러다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사회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집단들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다. 다원주의 패러다임에 속한 사람들, 특히 서유럽의 정치인들은 소수의 의견(These)을 절대로 억압하지 않으면서 다수의 견해(Antithese)를 바탕으로 소수의 의견을 융합하는 창조적 대안(Synthese)을 만들어낸다. 사실상 이것이 창조경제의 핵심인데, 헤겔의 역사발전을 위한 변증법이 스위스라는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그런 정치적 능력을 어려서부터 기른다. 학교에서 시험성적으로 경쟁하는 일은 없다. 각자의 타고난 재능이 다르기 때문에 시험성적만으로 서열을 매길 수 없어 상대평가를 하지 않는다. 이런 생활원칙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협력과 나눔의 정신을 익힌다. 사회에 나가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직책에 오르더라도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란 거의 없다. 회사의 사장이라도 자신의 견해와 다른 직원들과 토론을 통해 합의하는 정신을 발휘한다. 이런 사회에는 약육강식과 승자독식도 거의 없다.

 

소수의 다른 의견과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창조적 대안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터득하는 사회는 발전한다. 이런 사회가 훨씬 더 생산성과 창의성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이런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은 존재의 성숙과 관계의 풍요로움에서 나온다.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나라들이 그렇고 네덜란드와 스위스를 포함한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비슷하다. 이렇게 인간존재의 성숙과 인간관계의 풍요로움을 간직한 나라, 다시 말해 다원주의 패러다임이 실현되고 있는 사회에서 만약 세월호 사건이 벌어졌다면 그들은 어떻게 처리할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행태는 너무나 안타깝다. 세월호 사건과 그 처리과정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인간의 실존적 미성숙과 인간관계의 빈곤함을 느낀다. 이들이 스위스의 정치인들처럼 다원주의 패러다임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장래는 어둡다. 그런 점에서 야당의 정치인들도 국가주의에서 벗어나서 다원주의 패러다임을 배워야 한다.

 

삼성전자의 간부들이 내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간관과 조직관에 대한 우려의 마음으로 질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희망을 갖는다. 참여자들이 제기하는 질문의 질적 수준이 곧 강의내용에 대한 이해의 질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나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희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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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Lewis

경영 이야기 2015.03.26 23:35

John Lewis: 이런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John Lewis' An Amazing Story of Communism & Crap
- BBC Documentary. 
Originally broadcast on BBC2 in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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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여기서 퍼온 것입니다.



창업 150주년 존 루이스 백화점 영국 최고 꿈의 직장이 되기까지





영국에는 통칭 ‘존 루이스(John Lewis)’라고 다정하게 불리는 백화점이 있다. 이 백화점 체인을 관장하는 회사가 ‘존 루이스 파트너십(John Lewis Partnership PLC)’이다. 2014년 창업 150주년을 맞은 이 회사는 산하에 존 루이스라는 이름의 백화점 31개, 가정용품점 10개, 소형 상점 2개와 웨이트로즈라는 슈퍼체인점 315개에 9만100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여기를 영국인들은 ‘꿈의 직장’이라고 여긴다. 종업원이 진정한 회사의 주인이라는 이유에서다. 영국 특유의 ‘종업원지주회사(Employee Ownership Company)’ 중에서 가장 크고 성공적인 회사가 바로 존 루이스 파트너십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는 요즘 존 루이스를 영국 기업개혁의 모델로 삼고 싶어한다. 노동당은 기업들에 자발적으로 종업원지주회사로 전환하라고 권유하다 못해 이제는 2015년 5월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종업원들로 하여금 ‘자기 회사 주식을 요구할 권리’를 법제화하는 것을 정강으로 내놓았다. 특히 과거 보수당 정권이 민영화한 공공서비스 부문 회사를 이런 식으로 전환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한다. 노동당이 기존에 금과옥조로 여기던 기업 국유화의 대안으로 종업원지주회사를 택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정책에 정성을 들이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영국 정책 입안자들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종업원지주회사를 이제 막 찾아낸 만병통치약인 양 ‘새로운 방식의 자본주의(new type of capitalism)’, 심지어는 이제는 진부해져 버린 듯한 ‘인간의 얼굴을 한 신자본주의(human face of new capitalism)’라는 단어로도 묘사하고 있다.
   
   화제의 ‘종업원지주회사’가 영국에서 어떻게 운영되는지 살펴보자. 종업원지주회사는 종업원이 50% 이상의 주식을 어떤 형태로든 소유한 회사를 말한다. 현재 영국 기업의 약 2%가 종업원지주회사다. 영국 정부는 2050년까지 이를 1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로 세금 혜택를 비롯한 각종 인센티브를 주면서 장려하고 있다. 심지어 종업원지주회사가 직원들에게 주는 보너스의 경우 2014년 3600파운드까지 면세를 해줬다. 또 영국 정부는 기업들이 종업원지주회사를 만들어 소득이 발생할 경우 이 역시 면세한다고 법제화했다. 종업원지주회사는 매년 영국 국내총생산(GDP) 중 4%에 해당하는 300억파운드를 기여한다. 또 15만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다.
   
   영국 정부 조사에 의하면 종업원지주회사는 다른 형태의 기업들보다 생산성이 높고 기술개발도 뛰어나고 어려운 환경에서 회복력도 빠르다. 기업 활동에 대한 종업원 참여도도 높고 종업원들이 더 행복해하면서 스트레스도 적게 받고 동료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08~2009 회계연도에 종업원지주회사는 종업원 수를 12.9% 늘린 데 비해 일반 회사는 2.7%밖에 못 늘렸다고 했다. 최상위 50개 종업원지주회사는 2013년 4.6%의 신장률을 보였다.
   
   종업원지주회사는 수많은 산업 분야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 특히 종업원의 참여도가 기업 성공에 높이 작용하는 제조, 서비스, IT 회사들이 높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영국의 ‘종업원지주회사 협회’ 통계에 따르면 종업원들 스스로 회사 형태가 종업원 소유제로 바뀌고 나서 회사의 생산품이나 서비스 품질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비율이 70%에 달했다. 직원 93%가 종업원 소유제로 전환한 후 회사가 사업현황을 보다 선명하고 확실하게 밝힌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종업원지주회사로 전환한 후 65%의 회사에서 기술혁신이 있었고 62%가 생산과정이 좋아졌으며 57%가 생산성이 올랐다고 답했다. 그래서 87%의 종업원지주회사가 경쟁력이 더 생겨 55%가 경영 실적이 좋아졌다는 결산보고서도 나왔다.
   
   종업원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좋은 회사는 주식 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개인소유 회사들이다. 특히 과거 수년간 회사 영업실적이 좋아 이익을 내고 있으며 회사를 경영하는 임원진이 뛰어난 회사다. 엔지니어링 회사 ‘모트 멕도날’과 ‘아루프’ 등이 그런 회사들이다. 이 회사는 존 루이스 백화점 그룹에 이어 영국 종업원지주회사 중 2, 3위를 기록하는 기업들인데 모두 10억파운드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들 말고도 종업원지주회사들이 보여 준 성공사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가장 중요한 사례가 존 루이스 파트너십이다.
   
   존 루이스 파트너십은 존 스페단 루이스에 의해 1864년 창업되었다. ‘알고서는 절대 허투루 팔지 않는다(Never knowingly undersold)’라는 오래된 영업철학을 가진 기업이다. 1950년에 완전히 종업원지주회사로 바뀌고 난 뒤 여러 번 부침을 거쳤지만 지난 십수년간 계속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2013~2014 회계연도 영업실적은 102억파운드로 전년에 비해 10.7% 신장했고 그전 과거 5년간 실적 역시 9.2%, 6.4%, 10.8%, 5.7%, 2.9%로 계속 성장세였다.
   
   존 루이스는 회사 이익을 종업원지주회사답게 외부의 주주가 아닌 내부 주주인 종업원들에게 나눠준다. 2013년의 경우 모든 종업원들은 동일하게 자기 연봉의 17%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받았다. 종업원 보너스 총액이 2억1080만파운드(3689억원)나 됐다. 한 명당 평균 2422파운드(424만원)를 받았다는 계산이다. 수백 퍼센트의 보너스를 받는 한국 기준으로 보면 별것 아니지만 연봉으로 지급되는 보너스라는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영국에서는 이 정도면 대단한 금액이다. 더군다나 면세 혜택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존 루이스의 직원들이 누리는 혜택은 이뿐만이 아니다. 과거에 정년 퇴직한 직원은 마지막 월급 액수에 해당하는 연금을 평생 받는다. 자신은 전혀 적립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또 25년을 근무하면 6개월의 장기 휴가를 준다. 영국 기업으로는 드물게 직원들에게 휴양지 주택 이용권, 골프장이 딸린 호텔 3개 이용권, 요트클럽 이용권, 음악회, 테마공원 입장권, 상품 구매 시 할인 등의 혜택을 주고 있어 정말 꿈의 직장으로 불린다.
   
   존 루이스의 현 사장 앤디 스트리트는 창업 150주년 기념사에서 자신들의 성공 이유를 “우리 모두는 회사가 어찌되건 말건 서로 얼마나 많이 더 가지고 갈 건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회사가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걱정한다. 존 루이스는 어려운 불황의 시기를 ‘서로 아끼고 나누고(caring sharing)’라는 철학을 통해 다른 영국의 어떤 기업들보다 더 잘 이겨 나가고 있다”고 했다.
   
   실제 종업원지주회사가 되면 종업원들은 더 이상 자신이 피고용인이 아니라 회사 소유주의 한 명이라는 인식을 가지면서 의식과 행동에 변화가 나타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직률과 결근율이 확 줄어든다. 존 루이스의 이직률은 21%밖에 안 된다. 경쟁사는 43%까지 간다. 물론 불황을 이유로 실시한 해고도 전혀 없었다. 존 루이스의 종업원은 2012년 8만1000명, 2013년 8만7000명, 2014년 9만1000명으로 매년 늘었다.
   
   존 루이스의 종업원들이 자신들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느끼는 제일 큰 이유는 매년 받는 보너스 때문만이 아니다. 종업원 모두가 회사의 중요한 일원의 하나라고 여기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여러 형태로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 예로 매주 나오는 회사 잡지에 직원들은 익명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면 해당 임원은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각 근무부서별로 조직된 각종 기구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가 전달되어 회사의 정책에 반영된다는 것도 알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조금 길긴 하지만 존 루이스의 의사결정 구조를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회사의 중요한 권력기관은 세 개로 나뉘어진다. 첫째가 9만명 종업원 대표들로 구성된 ‘파트너십 카운슬(Partnership Council)’, 쉽게 말하면 ‘종업원 의회’다. 다음이 회장이다. 회장은 혼자서 존 루이스 권력기관의 하나로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이 두 권력기관이 합쳐진 회사 최고 의결기관인 ‘파트너십 이사회(Partnership Board·등기 이사회)’가 있다.
   
   우선 파트너십 카운슬을 살펴보자. 카운슬은 종업원들이 각 영업장이 위치한 지역에서 선출한 64명과 회장이 임명한 3명으로 구성된다. 카운슬은 종업원 자신들의 연봉, 보너스 등을 비롯한 이익 분배, 연금, 직원 할인율 같은 모든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결과를 이사회에 건의한다. 물론 최종 결정은 이사회에서 한다. 여기서는 어떤 문제에 관해서도 논의할 수 있고 경영진에게 질의할 수 있다.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은 질문이나 건의에 대해 모두 대답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만일 그 회답이 ‘전체 종업원의 이익을 해친다고 보면 대답을 안 할 수도 있다(unless doing so would in their opinion damage the Partnership’s interests)’. 파트너십 카운슬은 회장을 불러서 ‘책임을 물을 수도 있고(holds the Chairman to account·그러나 해임할 수는 없다. 불러서 야단칠 수는 있다는 뜻이다)’ 이사회에서 자신들을 대표할 5명을 선출한다. 제일 중요한 파트너십 카운슬의 힘은 회장을 해촉(dismiss)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최종 사임까지는 여러 가지 구조적 절차를 거치지만 결국 카운슬에서 해촉을 결정하면 더 이상 회장으로서의 힘이 없어진다.
   
   다음은 회장을 한번 보자. 회장도 거의 모든 결정을 혼자서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경영진 임원(executive directors)’들의 업적을 독단으로 판단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임명 과정을 관장(oversee·승인이나 임명이 아니라 법적인 절차와 과정을 주도한다)하는 ‘회장 임명 위원회(Chairman’s Nomination Committee)’ 위원들과 같이 평가한다. 위원회는 ‘사외이사(Non-Executive Directors)’ 2명과 카운슬에서 선출한 현직 종업원 이사 2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회장이다. 결국 회장의 실질적 의결기관인 셈이다. 종업원 의회인 카운슬에서 선출된 이사가 경영진 임원을 평가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사외이사가 참여하는 것은 참신하다. 위원회도 그냥 경영진을 평가하지 않는다. 외부 전문 기관에 이사회의 활동내역과 이사 개개인의 업무 성과 평가를 위탁해서 그 결과를 보고 경영진 임원 해임과 임명을 결정한다.
   
   존 루이스의 모든 절차가 민주적인 데 비해 신임 회장은 퇴임하는 회장이 단독 결정한다. 주식 하나 없이 월급만 받고 일하는 전문경영인 회장에게 주어진 거의 유일한 실질 권한이다. 위원회는 퇴임 회장이 지명한 신임 회장 후보자를 거부할 권한은 없지만 후보자의 자격이나 결격요인들을 조사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다음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권력기관인 ‘파트너십 이사회(Partnership Board)’, 즉 ‘등기 이사회’이다. 파트너십 이사회는 평직원 카운슬이 5명의 이사를, 회장이 5명의 이사를 지명해 구성한다. 거기에 회장·부회장이 포함되고, 사외이사 3명과 종업원 측 대표 ‘카운슬러’ 1명을 포함하면 존 루이스의 최종 의결기관인 파트너십 이사회는 모두 16명으로 이루어진다.
   
   존 루이스 이사회의 특징은 사외이사의 역할에 있다. 사외이사의 특이한 역할과 함께 존 루이스 이사진 구성은 소위 말하는 ‘균형과 견제’의 극치이다. 노사 어느 쪽도 과반수를 점하고 있지 않다. 언뜻 봐서는 회장과 회장이 임명한 부회장, 그리고 이사 5명을 합치면 회장 측이 모두 7명이라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종업원 측은 5명의 이사와 카운슬러를 합쳐 6명뿐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데 묘미가 있다. 사외이사 3명이 있지 않은가?
   
   영국 대기업의 사외이사는 절대 ‘거수기(rubber stamp)’가 아니다. 우리처럼 고위직 출신 퇴직 인사이거나 학계의 고만고만한 교수 출신이 아니다. 현재 존 루이스의 경우를 보면 사외이사 중 한 명인 키스 윌리엄스는 영국 대표기업 영국항공(British Airway)의 현직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이다. 존 루이스보다 훨씬 더 크고 영향력도 비교가 안 되는 기업의 실질적인 대표가 존 루이스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봉사, 혹은 사회지도층의 책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수준으로 보면 된다. 영국 기업 중 가장 의미 있는 기업이 잘 돌아갈 수 있게 돕는다는 차원이다. 다른 한 명은 전직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날드 유럽 담당 사장 출신이고, 또 한 명은 유럽 내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싱크탱크 컨설팅 회사의 현직 회장이다. 이런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명예와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급여 몇 푼 받으려고 경영진들 뜻대로 투표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력과 경험에서 쌓인 판단력과 대의명분에 따라 존 루이스의 장래를 위해 공명정대하게 투표한다. 그래서 노사 양측 모두가 불만이나 의심 없이 이 사외이사들에게 존 루이스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임직원 급여와 보너스 책정 위원회(Remuneration Committee)’와 ‘감사 및 위험사정 위원회(Audit and Risk Committee)’ 의장을 맡기고 있다. 존 루이스의 회계결산 보고서는 이들 사외이사를 ‘비판적 친구들(critical friends)’이라고 표현했다.
   
   뿐만 아니다. 이사회는 외부 전문 기관에 의뢰해서 자신들의 업적도 평가받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외이사의 기여도도 포함된다. 사외이사가 제대로 된 활동을 했는지를 평가하겠다는 뜻이다. 그 사외이사 평가에 따라 차기에 사외이사로 연임할 것인지 아닐지가 결정된다. 결국 경영진들의 업적을 평가한 사외이사들을 경영진들도 돌아서서 다시 평가하는 셈이다. 이렇게 존 루이스는 서로가 얽히고설키면서 감시하고 통제한다.
   
   존 루이스의 창업주인 존 스페단 루이스의 얘기만으로도 하나의 스토리가 되지만 지면 관계상 간단히 소개하자. 그는 아버지의 백화점 중 하나를 맡아 경영하다 자신들 가족(자신과 아버지 동생)이 가지고 가는 돈이 전 종업원 월급과 같은 금액임을 알았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루이스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승마사고로 2년간 병원에 있으면서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맡아 경영하는 백화점 하나에서 직원들에게 판매수당과 유급 휴가를 주고 직원 숙소에 냉온수 시설을 설치하는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직원 복지 조치를 한다. 이 덕분에 인수 이후 15년간 계속 적자를 내던 백화점이 그 다음해부터 흑자로 돌아선다.
   
   이런 획기적 조치에 아버지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반대를 해 거의 부자의 연을 끊을 정도까지 간다. 그러다가 아버지 사후 회사 전체의 소유권을 확보하면서 1929년과 1950년 두 번에 걸쳐 자신이 소유한 모든 주식을 직원들에게 돌려준다. 1929년 주식을 나눠 주면서 기업 이익을 종업원에게 나눠 주는 조건까지 내건다. 자신은 100만파운드(현재 금액 3300만파운드)만 받기로 했다. 회사가 루이스에게 30년간 무이자로 매년 분할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매년 상환받는 금액이 현재의 50만파운드(8억7500만원)에 불과했다. 주식을 다 넘겨주고도 회장직에 있었던 그는 월급도 이자도 수당도 전혀 받지 않고 이 금액으로만 살았다. 577억원의 재산을 기부한 루이스가 1년에 겨우 10억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았다는 말이다. 그리고는 1950년, 마지막 남은 돈도 회사에 모두 돌려줬다. 나이 70세인 1955년 회장직에서 은퇴하고 1963년 시골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자신을 바다에 수장하라는 유언을 남겨 지금 무덤도 없다.
   
   존 스페단 루이스 창업 회장은 기업의 존재 목적을 직원들의 동업자라는 뜻의 ‘파트너’로 여겼다. 종업원들을 대우해주면 보람과 만족을 느낀 종업원들이 결국 성공적인 영업을 해서 이익을 얻고 그 이익을 같이 나눠 종업원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했다. 150년 전의 한 인간의 숭고한 철학(서로 아끼고 나누고·caring sharing)이 지금도 9만1000명의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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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8)


먼저 읽어야 할 글: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1)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2)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3)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5)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6)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7) 



6. 인사(人事, Personnel)이란 무엇인가?

 

인사론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논란이 많은 영역이 평가보상이다. 평가와 보상, 이 두 가지 영역에는 참으로 다루기 까다로운 이슈들이 많다. 대학원 한 학기 강의로도 학습하기 부족하다. 인간과 조직에 관한 풍부한 식견을 갖지 않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일단 핵심적인 몇 가지 이슈만 논의해보자.

 

우선 평가에 대해 살펴보자. 역량평가는 이미 역량론에서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성과평가에 관해 얘기해보자. 평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왜 평가하는가?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평가의 목적은 무엇인가? 직장인들의 대부분은 잘한 사람과 못한 사람을 구별하여 차별적으로 보상하기 위해 평가는 불가피하다고 대답한다. 잘한 사람에게는 동기부여가 되고, 못한 사람에게는 더 잘하려는 의욕을 북돋우게 된다는 주장이다. 성과급을 차등지급하기 위해서 평가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평가면담을 한 후의 느낌을 물어보면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입을 내민다. 기분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평가시즌만 되면 밉보이지 않기 위해 다들 몸을 사린다. 평가자 또한 평가면담을 통해 평가등급을 매기는 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토로한다. 평가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기부여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기분 나쁜 상태가 된다. 평가시즌이 지나면 이직을 생각하는 임직원들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진심으로 물어보자, 왜 평가하는가? 무엇을 위해 평가하는가? 과거를 반성하여 미래에 더 잘 하기 위해서, 라는 대답이 옳다. 그렇다면 평가시즌 이후에는 다들 신바람이 나서 더 잘해야겠다는 의욕이 넘쳐야 할 것이다.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왜 이렇게 되었나? 차등보상을 하겠다는 발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출발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돈으로 차별하겠다는 발상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훼손함으로써 일에 대한 동기를 갉아버리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보상이슈에서 다룰 예정이다.

 

더구나 상대평가를 택하게 되면 평가대상자들을 일정비율로 강제 배분해야 하기 때문에 공정한 평가가 불가능하다. 상대평가야말로 직원들을 서로 불신하도록 유도하면서 서로 경쟁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조직의 경쟁력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생겨난다.

 

상대평가 vs 절대평가

 

반드시 평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 일부 인사담당자들은 절대평가를 하면 과도한 관대화 현상이 나타나서 성과급 예산을 초과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절대평가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가와 성과급을 연결시켜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자꾸 평가결과에 신경을 쓰고 있다. 평가결과와 성과급 사이에는 방화벽이 있어서 둘 사이에는 서로 넘나들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 성과급에 관한 이슈도 보상에서 다룰 예정이다.

 

우리는 상대평가에 익숙하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직장생활까지 모든 평가는 상대평가를 통해 시험점수나 고과점수로 서열을 매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열화를 강요하는 상대평가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평가방식이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미국에서 소위 WASP로 상징되는 기득권층이나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식민지를 관리해야 했던 영국은 상대평가를 통해 기득권층의 지배와 통제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런 전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열화시킴으로써 지배와 통제를 손쉽게 하려는 것은 영미식 전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미국식 서열화를 강요하는 상대평가제도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 상대평가 방식이 기득권층의 지배와 통제를 수월하게 해주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유럽 국가 대부분은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절대평가방식으로 평가한다. 학생들을 시험점수로 서열화하지 않는다. 일반기업의 성과평가, 공직자들의 업적평가, 정치인들의 정책평가에 이르기까지 평가대상자들을 서열화하는 방식의 상대평가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절대평가를 실시한다.

 

서유럽 국가들이 절대평가를 실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상대평가는 협력보다는 경쟁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조직론에서 설명했던 연대의 원칙(principle of solidarity)을 실현할 수 없으므로, 경쟁을 강조하는 상대평가보다는 서로 배려하고 협력할 수 있는 절대평가를 선호한다.

 

절대평가는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어떤 성취와 발전이 있었는지를 스스로 반성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런 기록이 10, 20년 쌓이면 자기 스스로 어떤 직무와 어떤 역할이 자신에게 적합한지 그리고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을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언명이 사회적으로 자연스레 실현된다. 구태여 권모술수와 아첨과 배신을 통해 윗자리에 올라서려고 하지 않아도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현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절대평가는 상대평가보다 훨씬 쉽다. 출발의 초기조건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해두면 된다. 그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 초기조건에서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면 절대평가 결과가 나온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학습목표를 사전에 정의하고 그 목표에 어느 수준까지 도달했는지 기록하면 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그 결과를 피드백해주면 그만이다. 성적에 따른 서열은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모른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맘껏 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1986년도 여름, 한국은행에서 보내준 첫 해외연수를 서독연방은행에서 보내고 있을 때였다. 나의 관심사이기도 해서 평가와 관련된 문서를 살펴볼 수 있도록 연수담당 직원에게 부탁했더니 안내해 주었다. 바인더에 묶여 있는 평가문서들이 마치 평가대상자의 사건기록과 같았다. 그런 기록이 개인별로 묶여 있는 것을 보았다. 서열화하고 강제 배분하는 상대평가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사건에 대한 묘사는 없고 대부분 고과점수가 기록되어 있는데 반해, 서독연방은행 직원들의 평가기록문서에는 아예 숫자가 없었다. 그 후 어째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절대평가와 함께 꼭 알아 두어야 할 유용한 지식은 코칭이다. 인사고과를 실행하는 상사는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며 구체적인 코칭방법까지 습득해 두어야 한다. 여기서 코칭의 본질과 그 방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꼭 읽어야 할 문헌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개롤드 마클, 이용석 옮김, 성과관리시스템의 패러다임을 바꿔라(교보문고 2007).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성과급과 급여제도

 

보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돈에 대한 기독교 전통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신약성서 디모데전서 610절에 명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이 언명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돈에 대한 욕심이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저주하거나 가난한 삶이 더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돈이 부족하면 파산하기 때문에 돈을 필요로 하지만, 돈을 위해 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물을 필요로 하지만, 물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돈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돈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 보상에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이 가능하다.

 

왜 보상하는가?

무엇을 보상할 것인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우선, 왜 보상하는지 생각해보자. 기업은 무엇을 위해 보상하는가? 기업이 보상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세 가지다.

 

첫째, 자긍심과 성취동기를 고양하기 위하여

둘재, 내부 공정성과 외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셋째, 경영철학적 메시지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첫 번째 가치부터 살펴보자. 기업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공동의 목적/비전/가치를 추구하는 협동체라고 할 수 있다. 조직이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조직으로 거듭나려면 조직구성원들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조직 내에서 협동이 없으면 어떤 성과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협력을 방해하는 것이 경쟁인데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성과급의 차등보상이다. 이 성과급의 차등보상을 없애면 내부경쟁은 상당부분 사라질 것이다. 경쟁심이 점차 사라지면 조직 내에는 점차 창의성과 성취동기가 살아난다. 물론 이것은 경영자의 올바른 리더십을 전제로 한다.

 

내가 한국은행에서 조직개혁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1998년에서 2001년까지 3년간 온갖 고생을 하면서 그 일을 했다. 당시 글로벌 컨설팅회사의 일본지사에서 자문을 하고 있었는데(당시에는 한은을 자문할 국내컨설팅 회사가 거의 없었다), 그 사람들은 한은의 성과주의적 개혁을 위해 성과급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어사무사하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 임원회의에서 브리핑을 하던 일본인 컨설턴트에게 당시 박철 부총재와 이성태 부총재보(2003년부터 부총재로, 2006년부터 제23대 총재로 재임)가 성과급 차이라야 몇 푼 안 되는 것인데, 그걸 가지고 직원들을 기분 나쁘게(또는 치사하게) 만들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본인들은 이런 말을 했는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 발언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 동안 컨설턴트들과의 토론에서 성과급의 차등지급에 대해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것이 일순간 명료해졌기 때문이다.

 

바로 그거다. 성과급 차등지급은 사람을 돈으로 치사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것이 한은직원들의 보편적 인식이었다. 성과급을 차등화함으로써 직원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치사한 느낌 갖게 하는 것이 조직 전체의 효율성과 생산성에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국가는 IMF의 통제하에 있었다. 국가적으로 조직개혁의 기본방향은 성과급을 신설하고 그것을 향후 확대해가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급여보상설계에서 최소한의 차이, 즉 무의미한 차이로 시작하도록 누그러뜨린 것으로 기억한다. 의미 없는 성과급 차이는 서로 무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련의 조직개혁 작업을 끝내고 나는 한은을 떠나 컨설팅 시장으로 나갔기 때문에 그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당시 내가 걱정했던 것은 성과급의 차등지급은 개별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장점과 단점을 비교 관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상대평가에 따른 성과급 차등지급이 한편으로는 업무수행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적 효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일정기간 조직과 사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같은 조직에서 거의 같은 경력으로 비슷한 일을 하는 경우 성과급을 차등지급한다면, 쪽팔림, 치사함, 열등감, 시기심 등은 오히려 조직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보상차별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에도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나는 한은을 떠나 컨설팅과 기업실무를 하면서 보상제도는 고객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해 주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17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평가하자면 성과급을 차등지급하도록 설계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었음이 확실해진 것처럼 보인다. 성과급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보상차별을 넘어서는 신분차별은 우리 사회에 아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1980년대까지는 그래도 옳고 그름,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어느 정도 명확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민주화를 위한 목숨을 건 투쟁이 있었고, 재벌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분노와 인권의식의 표출로 각종 시민단체가 만들어졌다. 아울러 공동체를 위한 배려와 헌신을 상징하는 아름다운가게와 같은 단체와 재단들이 생겨났다. 그런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사회에 희망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IMF가 우리나라에 경제와 사회정책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자본과 부의 축적은 옳고, 선하며, 아름다운 것으로 변했다. 우리 사회는 오로지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게끔 변화되었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돈을 버는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이 된 셈이다. 돈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돈이 있으면 건강도, 행복도, 사랑도, 신앙도 구입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실로 우리는, 심지어 종교인들조차 돈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이 IMF사태 이후 성과급의 차등지급이라는 작은 사건이 빚어낸 거대한 비극이다.

 

이것을 바로잡는 길은 성과급의 차등지급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구성원들의 자긍심과 성취동기를 높이는 방식으로 급여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둘째, 내부공정성 측면에서도 성과급은 옳지 않다. 공정하려면 기준이 타당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이라는 것이 매출액과 같은 계량화된 성과지표들인데, 이것이 문제가 많다는 점은 이미 성과론에서 설명했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여기서는 성과지표의 문제가 아니라 성과창출과정에 대해 생각해보자. 조직에서 성과를 낸다는 것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모든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독불장군식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조직의 성과는 시스템적으로 네크워크화된 모든 가치사슬의 연쇄작용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의 협력이 없이는 성과창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그 네트워크의 한 구성요소로서 다른 구성원들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홍길동이 있을 수 있다. 홍길동의 그런 재능은 어디서 온 것인가? 무인도에서 혼자 태어나서 혼자 기량을 갈고닦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런 기량과 역량을 가지고 태어났고, 사회 속에서 우연히 그런 지위에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자신의 노력이 전혀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누구나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갈고닦은 기량과 타고난 역량을 발휘한다. 누구나 더 좋은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홍길동에 대한 성과급의 차등지급은 타당성을 잃게 된다. 다함께 협력하고 다 같이 노력했는데 단순히 타고난 재능이 우수하다는 우연적인 요소에 의해 차별대우를 받은 것이 정당한 일인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홍길동의 재능도 우연의 산물이라면 말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굳이 개별적으로 따지자면 홍길동의 성과는 아주 좋았는데,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인물이 큰 잘못을 저지르는 바람에 매출액이 크게 줄었다고 치자. 물론 홍길동은 전혀 잘못이 없다. 이때 홍길동에게 이전과 동일한 성과급을 주어야 하는가? 아니다. 회사 전체의 매출이 줄어들었으므로 성과급도 그만큼 줄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홍길동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의 잘못에 대해 홍길동도 연대하여 책임을 묻는 셈이다. 이것은 결국 성과급 차등지급의 신뢰성에도 의문이 있다는 말이다.

 

인사조직론의 큰 틀과 내부 공정성의 차원에서 보면, 둘러치나 메치나, 성과급의 차등지급은 타당성과 신뢰성에 크나큰 문제가 있다. 성과급의 차등지급은 오로지 부하들에 대한 인사권자의 통제와 지배수단으로 작용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성과급의 차등지급은 폐지되어야 한다. 물론 급여제도 설계에는 외부 경쟁력 확보라는 또 다른 가치가 있지만 이것은 매우 복잡한 논의를 거쳐야 하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셋째, 급여제도에는 경영철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 급여를 받은 구성원들이 왜 내가 그 급여를 받아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급여 속에 조직의 비전/목적/방향/가치, 즉 경영철학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전달되어야 한다.

 

자동차가 오른쪽으로 간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면서 왼쪽 방향으로 나아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음과 같은 경우를 보자.

 

경영자는 인재를 중시한다고 하면서 매출이 줄어들면 희망퇴직이라는 명목으로 구조조정과 해고를 수시로 실시하는 경우

불법행위자는 일벌백계를 하겠다고 천명하면서 경영자 스스로 탈세와 같은 불법행위를 하는 경우

경영자는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성과급을 차등지급하는 경우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했을 것이다. 더구나 급여보상으로 구성원들의 마음과 행동을 조작하려는 경영자야말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킨다. 구성원들은 경영자가 쏟아내는 말은 신뢰하지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것이 구체적인 의사결정과 행동으로 나타나야 신뢰한다. 구성원들은 경영자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경영자가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얻는 방법은 조직의 비전/목적/방향에 충실하면서 일관성 있게 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급여보상에도 이런 정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주로 개인에 대해 논의했지만, 개인들이 모인 팀 단위에도 성과급을 차등지급한다면 마찬가지로 역효과가 나타난다.

 

보상은 내적 동기를 약화시킨다

 

보상을 성과에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경우, 구성원의 내적 동기를 약화시킨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결과로 이미 밝혀졌다.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리처드 해크만, 성공적인 팀의 5가지 조건, 교보문고 2006 참조. Alfie Kohn, Punished by Rewards, Houghton Mifflin 1993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더 큰 보상이 더 큰 동기와 더 큰 의욕을 북돋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여기서 실험연구를 하나 소개해야겠다. 스탠포드대학 심리학자 마크 레퍼와 그 동료들이 수행했던 연구다. 연구원들은 유치원 아이들에게 크레용을 나눠주고 그림을 그려오라고 했다. 일부 아이들에게는 그림을 그리면 '선행상'을 주겠다고 말했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연구원들은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며 보낸 시간량을 조사했다. 결과는, 보상에 대한 얘기를 들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서 그림 그리기에 훨씬 더 적은 시간을 쓴 것이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내적으로) 흥미로운 활동을 하기 위해 보내는 시간이 (외적인) 보상을 받을 때는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각주:1]

 

이런 실험연구는 수없이 많지만, 가장 많이 알려진 사례를 유투브와 테드 강연에서 볼 수 있다. 알피 콘이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대담한 동영상과 다니엘 핑크가 테드에서 강연한 동영상이 있다.

 

(Youtube) Alfie Kohn on Oprah


(TED) Daniel Pink_The Candle Problem


 

록스텝 페이 시스템(Lockstep Pay System)

 

성과에 따라 개인적으로나 팀으로도 차별하여 보상하지 말라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소위 "록스텝 페이 시스템(Lockstep Pay System)"이다. 공무원 보상체계처럼 경력에 따라 같은 스텝으로 급여가 올라가는 방식을 록스텝 시스템이라 한다. 급여도 보조를 맞춰서 함께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통제를 받기 전에는 대기업에서도 호봉제와 같은 급여제도를 사용했었다. 정부가 주관하고 있는 공공기관 또는 공기업 경영평가 편람을 보면 모두 연봉과 성과급 제도를 시행하도록 되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공공성이 크면 큰 조직일수록 구성원들이 그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조직을 운영해야 하는데, 오히려 구성원들을 성과급 몇 푼 더 받기 위해 일하는, 영혼 없는 인간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면 급여제도를 과거로 되돌리자는 말이냐? 그렇다. 차라리 호봉제가 훨씬 간명하고 수평구조와 협력적 조직문화를 수행하는 경영철학에도 부합한다. 그런데 IMF가 간섭하기 이전에 썼던 이런 록스텝 시스템이 당시에는 왜 문제가 되었느냐, 그 이유를 살펴야 한다.

 

서양에도 급여에서 록스텝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기업의 경영자들은 한결같이 조직에서 개인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경우란 거의 없고 서로 협력함으로써 시너지와 레버리지를 일으켜야 하기 때문에 록스텝 시스템이 잘 작동한다고 말한다. 국제적인 법률회사인 슬로터 앤 메이(Slaughter and May)의 파트너는 "록스텝 시스템은 동료들의 압력에 의해 잘 작동하고 있으며, 경영진이 서비스 품질에 대한 탁월함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적당주의는 배겨날 수 없다"고 말한다.[각주:2]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급여보상제도가 아니라 경영자나 고위공직자의 자질이 문제인 것이다. 인간과 조직에 대한 철학적 성찰도 없고 비즈니스에 대한 혜안도 없으며 리더십의 본질도 이해하지 못하는, 오직 사적 이익추구를 위해 아첨하며 충성심 보이기, 배신과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들만 윗자리에 올라설 수 있도록 구조화된 시스템 때문에 조직의 창의성과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호봉제와 같은 록스텝 시스템은 무임승차 현상에 대한 염려가 있는데, 이것은 경영자의 리더십과 조직문화에 관한 문제일 뿐 급여보상제도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 이제 정리해보자. 상대평가는 하지 말아야 한다. 평가를 굳이 해야 한다면 절대평가를 하되, 인사고과자는 반드시 코칭의 정신과 그 기량을 익혀서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성과급 제도는 가급적 폐지하고 보상도 경력에 따른 록스텝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을 권장한다. 상대평가에 의한 차별보상은 협력을 깨뜨리고 경쟁을 부추긴다. 경쟁은 창의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조직의 경쟁력은 구성원들의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협력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영자와 관리자들이 리더십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리더십은 인간과 조직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리더십을 발휘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많은 경영자들이 가장 손쉬운 쥐어짜는 성과관리방식을 택한다. 그것이 바로 계량화된 성과지표를 부하들에게 목표로 부여한 후,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해내도록 족치는 방식이다.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 명령과 통제와 억압으로는 구성원들의 창의성도 생산성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1. 리처드 해크만, 『성공적인 팀의 5가지 조건』, 교보문고 2006, 251쪽 이하 참조 [본문으로]
  2. http://www.cass.city.ac.uk/news-and-events/news/2011/july/lockstep-pay-ideal-remuneration-model-or-barking-mad-professional-service-firm-leaders-debate-lockstep-vs.-eat-what-you-kil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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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7)


먼저 읽어야 할 글: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1)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2)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3)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5)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6)

 


5. 역량(力量, Competency)이란 무엇인가?

 

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이는 직무에 부합하는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면,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직무에 부합하는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나온 개념이 바로 역량(competency)이다. 역량과 유사한 용어로 능력(ability, capability)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이 있지만, 능력 중에서 직무수행과정에서 높은 성과를 창출하는 데 작용하는 고유한 성향만을 추출하여 개념화한 것이 역량이다. 그러니까 능력은 역량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쓰이며, 역량은 능력의 여러 요소 중에서 특히 직무성과와 연관성이 깊은 독특한 기질(traits)을 몇 가지 요소로 선별한 개념이다.

 

역량이란, 개념적으로 간단히 정의하자면, 탁월한 성과(superior performance)의 원인이 되는 개인의 내적 속성(underlying characteristics)이다. 탁월한 성과란 평범한 성과를 월등히 넘어서는 성과를 말하며 개인의 내적 속성이란 평범한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지만 고성과자(high performer)에게는 나타나는 고유한 성향(disposition)을 말한다.

 

성향은 개인별로 가지고 태어난 고유한 것이다. 인간은 환경조건에 따라 행동패턴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타고난 성향 자체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세 살적 버릇이 여든 간다는 옛 말도 같은 의미다. 정직성실성(Integrity, ING)과 같은 역량요소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환경조건이 어떠냐에 따라서 행동패턴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에서는 고위공직자들의 위장전입, 군복무 면제, 다운계약서에 의한 탈세와 투기, 공금횡령 등과 같은 부정직한 행동패턴이 보편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투명하고 정직한 행동을 요구하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선진국에서는 같은 공직자라도 부정부패와 같은 부정직한 행동패턴을 보이는 것은 쉽지 않다.

 

 

인사의 두 가지 기본원칙

 

조직설계에 연대와 보충의 두 가지 원칙이 있었듯이, 인사실무에도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역량에 따른 선발

성과에 따른 보상

 

다음 그림을 보면 인사의 두 원칙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역량개념은 채용, 이동, 승진, 퇴출 등과 같은 선발에 활용되며, 성과는 보상에 활용된다.


 

성과와 보상 개념은 다음 장에서 설명하고, 여기서는 역량개념에 집중해보자. 앞서 정의했듯이, 역량개념은 직무에 부합하는 고성과자들에게 고유한 성향 또는 기질을 의미한다. 사람마다 신장, 얼굴모양, 몸무게 등과 같은 신체적 용모가 다양한 것은 생물학적인 DNA가 다르기 때문인데, 역량도 이와 같이 일종의 정신적 DNA(mental DNA)라서 사람마다 다르다. 젖소와 뱀이 같은 물을 마시더라도 젖소는 우유를, 뱀은 독소를 배출하는 이유는 생물학적 프로그램(biological program)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프로그램이란 (생물학적으로 DNA들이 뿜어내는) 명령어들의 조합을 말한다.

 

인간에게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있다.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더라도 평범한 성과자(average performer)와 고성과자(high performer)는 서로 다른 멘탈 프로그램(mental program)을 사용한다. 어떤 사건에 직면했을 때 마음에서 뿜어내는 명령어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마음에서 내리는 명령어들의 조합은 타고나는 경향이 있어서 역량은 교육훈련을 하더라도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식이나 기량(skill)은 교육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향상시킬 수 있지만, 역량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역량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끊임없이 역량개발, 역량강화, 역량증진, 역량활성화 등과 같은 교육을 실시한다. 역량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왜곡되어 있는 부분이 채용이다. 출신학교, 전공 성적, 심지어 영어토익점수 등을 기준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한다. 선발한 후에 그들의 역량요소인 정직성, 도전정신, 대인관계 등과 같은 역량요소를 훈련시킨다. 직원채용을 거꾸로 하는 셈이다. 역량중심으로 채용하고 나서 지식이나 기량을 가르치는 것이 순서인데 말이다. 이렇게 거꾸로 하는 바람에 신입사원들의 회사 정착률이 매우 낮으며 기업의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게 된다.

 

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면서, 다람쥐에게 적합한 직무를 위해 코끼리를 채용한 후, 강력한 교육훈련을 통해 코끼리를 다람쥐로 만들려고 노력한다는 점을 언급하곤 한다. 처음부터 다람쥐를 채용한다면, 나뭇가지에 기어 올라가는 것과 같은 직무에는 굳이 교육훈련을 할 필요가 없다. 조직의 비전과 전략에 대한 간략한 교육만으로도 충분하다. 인사담당자들이 역량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온갖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훈련시키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거니와, 역량은 개인의 내면적 속성 또는 성향이기 때문에 교육훈련을 통해 잘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키 작은 사람이 아무리 훈련을 해도 키가 커지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인사담당자와 경영자는 역량에 따라 선발한다는 인사의 첫 번째 원칙을 잘 지켜야 한다.

 

앞에서 논의한 조직론에서 직무와 직무담당자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직설계를 위해서 특히 직무개념과 성과책임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역량론에서는 사람을 진단하고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부, 배경, 지위, 경력 등에 현혹되지 말고 그가 진실로 어떤 성취를 이루어왔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역량요소를 발휘했었는지 역량중심으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구성원들의 역량을 판단할 때, 홍길동은 '능력이 있다', '기획력이 좋다', '똑똑하다', '무능하다' 등과 같이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평가는 듣는 사람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머리(IQ)가 좋다/나쁘다는 말도 되고, 강력한 추진력이 있다/없다는 뜻도 되며, 윗사람에게 고분고분하다/반항적이다는 얘기도 된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오류가 발생하고, 때로는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구성원들을 역량개념으로 평가하면 그 판단근거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성원들의 능력을 진단하거나 평가할 때, '분석적 사고수준이 높다', '유연성이 2 레벨이다', '대인영향력이 4 수준이다', '미래지향성이 1 레벨이다' 등과 같이 역량요소와 그 수준으로 평가하고 서로 피드백할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은 장점을 누릴 수 있다.

 

  • 동일한 시각에서 구성원의 능력과 태도를 바라보게 된다.
  • 개인에 대한 인격적 판단과 주관적 편향을 줄일 수 있다.
  • 개별적인 코칭이 가능하다.
  • 구성원의 장기적인 성취를 예측할 수 있다.

 

성취예측모형(Achievement Prediction Model)

 

출신학교와 전공 성적, 해외어학연수와 토익점수, 마음에도 없는 봉사활동 실적과 같은 스펙 위주로 선발하거나 적성검사와 같은 심리검사 결과를 위주로 선발하는 것은 예측력이 낮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 물론 이런 정보를 완전히 무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표피적인 정보와 자료에만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미래에 후보자가 이룩할 성취를 거의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무수행에 적합한 선발의 준거와 방법을 정비하는 것은 인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독일 유학시절 역량진단에 대한 개념을 공부하긴 했지만 전문적으로 파진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역량중심의 성취예측모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3년부터였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역량중심의 선발과 교육훈련 체계를 살펴보면서 뭔가 잘못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역량은 사람이 거의 타고난 특질과 같기 때문에 교육훈련을 통해 개발되기가 어려운 것인데, 기업의 인사담당자와 경영자들은 역량개발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훈련시키고 있었다. 역량개념의 출발은 독일 나치시대에 친위대 장교들을 선발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이것이 일종의 우생학이 아니냐는 비난이 있긴 했다. 2차 대전 후 나치시대의 모든 습속을 재현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약 때문에 역량개념과 그에 따른 선발과정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갔고, 미국에서는 이 개념이 매우 실용적으로 발전했다. IBM, GM, AT&T 등과 같은 대기업에서 인재선발 방법으로 활용되면서 미국 사회에 널리 퍼졌다. 이 개념이 미국계 컨설턴트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너도나도 역량개념을 컨설팅에 활용하는 바람에 선발에 활용되던 본래의 취지가 많이 왜곡 되었다.

 

나는 대기업의 경영실무를 하면서부터 관리자들 중에 동일한 환경조건에서도 탁월한 성취를 지속적으로 이룩하는 관리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각종 자료를 모아 정리했다. 컨설팅과정에서 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자료들, 대학에서 영재성이 있는 우수한 학생과 평범한 학생들로부터 수집한 자료들, 그리고 노벨상을 받았거나 같은 수준의 평가를 받는 인물들의 자서전이나 평전을 통해 얻은 자료들, 혁신적인 사업을 통해 탁월한 성과를 이룩한 사업가들의 자료를 정리했다. 그들의 능력과 역량요소들을 분류하여 <성취예측모형>을 만들었다. 해 아래 새 것이 어디 있으랴. 기존의 연구결과들을 참조하고 실무적으로 적용해보면서 점차 개량되어 왔다.

 

그렇게 대략 10년간을 연구하여 2012년에는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소위 <Assessor Training Workshop>이라는 역량진단을 위한 3일간의 훈련과정을 개설하여 두 차례 실시하면서 성취예측모형의 타당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내는 인재들을 평범한 학생, 직장인, 과학자, 사업가들과 비교 연구한 결과,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향인 아홉 가지 역량요소를 추출할 수 있었다. 이것은 크게 도구적 능력, 추상화 능력, 목적지향적 능력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각 능력에는 다시 세 가지 역량요소들로 세분할 수 있다. 이것을 <성취예측모형>이라고 한다. 이 모형은 개인의 역량을 진단하여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을지 예측하는 수단으로 개발되었다. 기업에서 인재선발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사회적으로 고위공직자를 선출할 때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성취예측모형을 역으로 이용하면, 기업체의 경영자나 고위공직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역량요소가 잘 발현되고 있는지 스스로 검토해 볼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아래 그림에는 세 가지 능력(역량군)과 각각의 역량요소들을 정의해 놓았다.

 


우선, 도구적 능력(instrumental ability)이란 사물이나 현상의 구조를 이해하고, 핵심을 파악하며, 어떤 특정한 것에 과도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분석적 사고, 개념적 사고, 영재성 등의 역량요소가 포함된다.

 

분석적 사고와 개념적 사고는 지능수준(intelligence level)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영재성은 일반적인 이해와는 달리 특정한 사물이나 현상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몰입하는 성향을 말한다. 도구적 능력은 비유하자면, 목수에게 필요한 "좋은 망치"에 해당한다. 높은 성취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진정으로 높은 성취를 위해서는 망치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판단하게 해주는 추상화 능력을 요구한다.

 

둘째, 추상화 능력(abstraction ability)이란 자신의 도구적 능력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결정하고 실제로 그 도구를 잘 활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창의성, 학습능력, 미래지향성 등의 역량요소가 포함된다.

 

창의성과 학습능력은 "새로움""깨달음"을 나타내는 역량요소이며, 미래지향성은 일반적인 이해와는 달리 미래를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추상화 능력은 비유하자면, 목수가 가지고 있는 좋은 망치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를 찾아내어 망치를 활용하는 능력에 해당한다. 성취의 방향성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정으로 높은 성취를 위해서는 망치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판단하게 해주는 목적지향적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셋째, 목적지향적 능력이란 높은 목표나 기준을 세우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하면서 끊임없이 시도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성취지향성, 대인영향력, 정직성실성 등이 포함된다. 성취지향성과 대인영향력은 끈질김과 인내, 그리고 설득력을 나타내는 역량요소이며 정직성실성은 일반적인 이해와는 달리 공정성, 개방성, 투명성, 배려와 존중 등과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이상향(理想鄕)을 향한 열정의 정도를 의미한다.

 

목적지향적 능력은 비유하자면, 목수가 "좋은 망치""올바른 곳"을 찾아 활용하더라도 그것을 건축물이 "완성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능력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별로 나타나지 않으며, 높은 성취를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능력이다.

 

 

역량사전(competency dictionary)과 성취예측모형의 활용

 

이러한 성취예측모형은 기본적으로 역량사전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역량사전이란 인간의 직무수행과 관련된 성향 또는 기질을 19~20개의 역량요소로 분류하고, 각 역량요소의 정의와 그 정의를 나타내는 행동패턴의 수준을 5개로 세분하여 정리한 것이다. 다음 그림과 같다.

 

인간은 누구나 세 종류의 능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량요소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어린 아이들은 다들 비슷하게 태어나지만, 성인이 되면 이목구비, 신장, 몸무게, 취향, 성격이 다 다르다. 능력과 역량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도구적 능력과 추상화 능력에는 탁월하지만 목적지향적 능력은 별로 높지 않은 경우가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 모형의 특징은 아홉 개의 역량요소가 각각 독립된 것이긴 하지만, 상호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여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들어낸다.




조금 더 이해를 돕기 하기 위해 우리가 잘 아는 인물을 예로 들어보자. 안철수 의원은 매우 높은 수준의 여러 역량요소를 발휘하였으나 대인영향력(Impact and Influence, IMP)이 낮기 때문에 그가 꿈꾸던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는데 실패했다. 그가 꿈꾸던 비전을 실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 인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탁월한 역량의 소유자들 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치적 비전이나 출중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김한길 의원에게 설득 당하는 실수를 반복했다.

 

다른 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들 수 있다. 그를 역량요소로 평가하자면 성취지향성은 탁월한 수준이었지만, 정직성은 마이너스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는 현대건설에서 근무하던 시절과 서울시장, 국회의원, 대통령이라는 중차대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관된 성향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도구적 능력과 추상화 능력이 높으면서 동시에 성취지향성 수준이 높다하더라도, 마이너스의 정직성을 발휘하게 되면 조직 전체의 성과를 오히려 떨어뜨리게 된다. 이것이 부정부패가 심한 후진국의 전형적인 사례다.

 

현직 국회의원들과 고위공직자들의 과거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앞으로 어떤 역량요소를 어느 수준으로 발휘함으로써 어떤 의사결정과 행태를 보일 것이라는 점은 상당한 수준 예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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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