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슈퍼 甲, 그 이름 ‘교장’]


박연미 선생님의 다음 글을 꼭 한번 읽어보시라...

http://www.usjournal.kr/News/67124



학교의 수퍼갑  교장실


이게 우리 교육계의 현실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현직 교사가 이런 칼럼을 기고했겠나...


조직운영의 모든 권한/권력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었기 때문에 생기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교육계에도 있다. 조현아 현상, 박근혜 현상과 같은 맥락이다. 왕조시대 또는 군국주의 시대에 걸맞은 권한배분시스템으로 온 국민이 고통당하고 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서구 유럽, 특히 독일어권의 나라들이 실행하고 있는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을 법제화해야 할 것이다. 합의가 없는 결정은 무효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아주 우연히 2009년 가을학기부터 한양대학교 Honors Program의 연구교수/특임교수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Honors Program은 과학기술분야에 영재성이 있는 대학생들을 선발해서 가르치는 특화된 교육프로그램이었다. 영재교육에 관한 기존의 문헌들을 훑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영재성(giftedness)의 개념과 영재교육, 그리고 우리나라 교육계의 행태에 대해 경험할 수 있었다. 주로 미국계 교육학자들의 영재성 개념과 교육철학이 우리나라의 교육계와 교육학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예를 들어, 영재교육에서는 렌줄리(Joseph Renzulli, 1936~) 교수의 세 고리 모형(three-ring model of giftedness)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영재성이란 평균 이상의 지능, 창조성, 과제집착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상호작용하여 탁월한 성과를 내는 특성을 의미한다. 이 이론은 영재성의 변별과 개발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국내에서 발행된 대부분의 문헌은 이런 개념들을 이리저리 변형한 것들이었다. 특히 교육관련 연구기관에서 발행된 영재관련 논문에는 대부분 렌줄리를 인용하고 있었다. 심하게 말하면, 렌줄리를 마치 대부로 모시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렌줄리 이론을 마치 성서의 말씀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런 문헌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더 큰 의문이 생겨났다. 렌줄리 이론은 마치 고운 밀가루, 깨끗한 물, 적당한 양의 효소, 이 세 가지를 뒤섞어 일정한 온도에 노출시키면 빵이 된다는 것과 같은 너무나 뻔한 설명이 아닌가? 나도 그 정도는 충분히 말할 수 있다. 렌줄리는 영재성의 현상을 설명할 뿐 그 원인과 과정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교육계의 더 큰 문제는 미국의 행태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에서는 일반학생과 별도로 영재아동들을 가르치는 영재교육이 보편화되어 있고, 이들에 대해 특별히 지원하고 있다. 이런 행태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우리나라 교육계는 영재교육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 위해 영재학교,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와 같은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 등을 만들어 영재성이 있는 학생들을 별도로 가르치고 있다. 교육기관을 피라미드형으로 수직계열화시킨 것이다. 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학교에 들어가면 출세의 가능성이 높아지도록 만든 것이다.


 

과학고 출신학생들을 면접하면서 알게 된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수학, 물리, 화학 등 과학문제를 잘 풀지는 모르지만,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당나라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고, 조선족이 왜 중국에 많이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단순한 지식조차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과학고가 역사에 대해 무지한 애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는 법이다. 역사를 모르면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없다. 국고로 운영되는 과학고가 학생들을 닭장과 같은 환경에서 기숙시키면서 가르친다는 사실도 알았다. 과학지식, 그것도 문제풀이를 잘하는 기능인을 만들어서 대학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지금도 변함이 없으리라.


 

더구나 학부모들은 자녀가 영재성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사교육에 몰입하는 경우도 있다. 강남에는 영재성을 길러주는 학원도 성업 중이다.


 

이런 행태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나에게 조금씩 선명해졌다.

 

첫째, 교육계에 영재성을 변별하여 가르치는 행위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결여되어 있었다. 나는 영재아를 사회발전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는 자원관점(resource-based view)으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영재아를 한 인간으로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영재아동들, 정확히는 그 부모들이 자식을 출세시켜야 한다는 강렬한 욕망과 교육계의 무비판적인 미국식 영재교육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어리석은 믿음을 나는 크게 염려하고 있었다.

 

둘째, 렌줄리 수준의 영재성 개념은 사실상 영재교육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밀가루, , 효소가 있다면 누구나 빵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영재성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즉 평균 이상의 지능, 창의성, 과제집착력은 그냥 아이들에게 타고난 것이지, 그것을 교육시켜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지능지수가 교육시킨다고 높아지는가? 창의성은? 과제집착력은? 이런 것은 교육시켜서 될 일이 아닌 타고난 특질(traits) 같은 것이다. 그런데 영재교육을 따로 시킨다? 내가 우리 애들을 키우면서 그리고 많은 학생들을 만나 관찰하면서, 영재성은 타고나는 것이지 후천적으로 개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직감하고 있었다. 이 말은 영재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교육환경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영재성이라는 씨앗이 있더라도 환경 때문에 씨앗이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재아동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 영재성 또는 재능은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에 관한 근본적이고도 사회적인 논의가 없다는 점이다. 소위 영재성이 있는 유능한 학생들을 몇 년간 관찰한 결과 대부분 자신의 개인적 이득이나 출세를 위한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이 역사 속에서 우연히 그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 그 재능을 가지기 위해 자신들이 특별히 노력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재능이야말로 공공의 것으로 간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넷째, 영재성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을 별도로 가르쳐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영재교육을 받아 성인이 된 사람들 중에 정말 위대한 업적을 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얼핏 보더라도 아인슈타인, 리차드 파인만, 스티브 잡스, 아브라함 링컨, 마하트마 간디 등 뛰어난 영재들은 영재교육을 따로 받은 적이 없다. 많은 나라에서 영재교육을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평범한 아이들과 섞여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재능으로 평범한 친구들을 돕는 것에서 유대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말 영재성이 있다면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분야에서 영재성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재교육에 특별히 더 많이 투자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섯째, 교육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아이들이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현할 수 있도록 개별맞춤형 교육을 지향한다면 굳이 영재아동을 별도로 가르쳐야 할 필요가 없다. 교육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유럽국가에서는 영재교육을 별도로 시키는 것을 오히려 금기시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섯째, 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과학창의재단 등의 정부기관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나가 토론을 해보면, 교육의 본질이나 교육철학에 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에서는 어떻게 하는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영재교육의 일단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고민스러웠다. 교육부, 한국과학창의재단, 한국교육개발원과 같은 정부기관에서는 영재교육에 관한 기본방향이 정해졌기 때문에 다른 의견이나 논의를 꺼리고 있었다.


 

토론하고 싶은 주제를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1. 영재성이란 개념은 무엇인가?

2. 영재성이란 교육을 통해 개발되는 것인가 아니면 타고나는 것인가?

3. 영재성이 교육을 통해 개발되는 것이라면 특정한 소수만 개발되고 다른 아이들은 개발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4. 영재성이 타고나는 것이라면 교육하지 않아도 일정한 환경에 이르면 영재성은 발휘될 수 있는 것 아닌가?

5. 알버트 아인슈타인리차드 파인만마르셀 푸르스트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천재들은 영재교육을 특별히 받은 적이 없다이 사실은 영재성은 영재교육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6. 영재성은 특정인에게 귀속되는 것인가 사회적 자산으로 공유해야 할 그 무엇인가?

7. 교육이란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현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학교교육이 정상화되면 별도의 영재교육이 필요 없게 될 것 아닌가?

8. 철학은 현실을 구속하기 마련인데어째서 교육에 관한 철학적 사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런 주제들을 속 시원히 토론할 수 있는 교육학자나 전문가도 없었다.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관련된 문헌들을 찾아 읽었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다브로프스키의 생애와 이론을 소개한 책


 

그렇게 고민이 깊어가던 중, 한양대학교에서 전문상담가이자 영재교육학자인 김영아 교수를 만났다. 이런 저런 고민들을 나누는 와중에 다브로프스키(Kazimierz Dabrowski, 1902~1980)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김 교수가 다브로프스키의 "긍정적 비통합 이론"(Theory of Positive Disintegration, TPD)에 대한 실증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연구실에서 밤늦게까지 토론하기도 했다.



나는 2010년 봄에 다브로프스키의 이론을 만났다. 그 후로 교육에 대한 나의 생각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


 

이 때부터 다브로프스키에 관한 문헌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 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의 대부분이 풀렸다. TPD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다브로프스키의 이론은 렌줄리의 이론과 달리 나의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인간이 성숙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해 주었다. 영재성의 개념도 명확해졌다.


 

영재성이란 곧 과흥분성(Overexcitability)이라는 것이다. 보통의 자극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곧 영재성이라고 개념화했다. 놀라운 통찰이 아닌가? 나는 냄새에 민감하다. 나는 된장국을 좋아하지만, 집안에서 된장냄새가 나는 것은 싫어한다. 여름철 걸레 썩는 냄새는 특히 싫어한다. 그러나 아내는 냄새에 비교적 무덤덤하다. 하지만 나는 맛에는 그리 민감하지 않다. 밥상에 올라온 것은 뭐든지 잘 먹는다. 맛집을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아내와는 정반대다. 쉽게 말해서, 나는 냄새에 영재성, 즉 민감성이 있다고 할 수 있고, 아내는 맛의 분별에 영재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아이는 물리와 수학에 흥분하고, 다른 아이는 그림에 흥분한다.


 

어떤 평범한 자극에도 흥분한다는 것은 곧 그것에 남다른 민감성을 보인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특정한 대상에 노출되었을 때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서로 다른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환경적 경험들이 쌓여서 성격적 특성이 드러나며 인격적 성숙이 일어난다. 이런 과정을 상세히 연구한 사람이 바로 다브로프스키였다. 그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이론은 제자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그 제자의 한 사람이 바로 샐 멘달리오(Sal Mendaglio)였다. 그는 지금 캐나다 캘거리대학교의 사범대학 교수로 있다.



2010년 8월3일 캘거리대학교 사범대학의 샐 멘달리오 교수 인터뷰를 마치고...


 

마침 20108월 여름휴가를 캘거리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그곳에 간 김에 멘달리오 교수를 만나서 면담내용을 비디오로 찍기도 했다. 그에게서 다브로프스키의 이론이 렌줄리의 이론과는 어떻게 다른지, 경영학에서 많이 인용하고 있는 매슬로우(Abraham Maslow, 1908~1970)의 이론과는 또 어떻게 다른지 등등 영재교육에 대해 많은 이슈들을 질문했었다. 30분 정도 예정했었는데, 1시간 반이나 걸렸다. 그 내용을 정리해서 블로깅하려고 했지만, 아직 여유를 찾지 못했다. 나중에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다.



지난 7월에 샐 멘달리오 교수가 편집한 책을 김영아 교수가 직접 번역하여 출간한 책을 보내주었다. 

번역도 아주 매끄럽고 잘 읽힌다.


 

아무튼, 지난 7월에 김영아 교수가 Dabrowski's Theory of Positive Disintegration(Sal Mendaglio, Ph.D., Editor, Great Potential Press 2008)을 번역하여 출간한 책을 선물로 보내왔다. 그 동안 외부 강연 때문에 지금에서야 다시 읽고 있다. 감동이 새롭다. 이 글의 독자라면,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과 인생의 성숙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시길 권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역량(Competence) 중심의 선발


지능지수가 높은 학생이 일반적으로 학교성적이 높다는 오래된 신화가 있다.(강정자 외, 1960; 김미경 외, 1988) 하지만, 학업성적표 또는 학업성취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졸업 후의 업무성과와 인생의 장기적인 성공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1970년대부터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맥클레란드(David McClelland) 교수는 지능보다는 역량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McClelland, 1973) 당시 미국의 국무부 초급외교관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통해 지능과 역량의 차이가 명확히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연구의 배경과 핵심적인 결론은 이렇다. 적성검사 결과와 역사, 정치, 경제 등에 관한 기초지식 검사 결과를 기초로 채용된 초급외교관들이 주재국에 배치된 후 그들의 성과가 기대했던 것보다 낮게 나타나자 국무부는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맥클렐란드 교수에게 연구를 의뢰했다. 그의 연구를 통해 업무성과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중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적성이나 학교성적보다는 다음과 같은 정의적 특성, 즉 역량(competence)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Spencer & Spencer, 1998)

 

· 다른 문화권에서의 대인감수성(Cross-cultural interpersonal sensitivity)

· 타인에 대한 긍정적 기대(Positive expectations of others)

· 정치적 네크워크에 대한 학습속도(Speed in learning political networks)

 

이러한 역량요소들은 학교성적이나 적성과는 분명 다른 정의적 특성을 드러낸 것이다. 높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내는 외교관은 이문화권 사람들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사회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해 신뢰하고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라도 타인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잃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역학관계 또는 이해관계를 신속히 파악하여 처리하거나 중대한 사안일 경우 상사에게 보고하는 등의 관계형성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장기적으로 높은 성과를 창출하거나 사회적 성취를 이룩하는 특성을 갖는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 인지적 능력으로 대표되는 학교성적이나 적성검사 결과보다는 업무의 특성에 부합하는 역량요소를 보유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예측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역량(Competence)의 정의

 

역량은 스펜서의 정의대로 “(특정한 상황이나 직무에서) 준거에 따라 효과적이고 우수한 성과창출의 원인이 되는 개인의 내적 특성(underlying characteristics causally related to criterion-referenced effective and/or superior performance)이라고 말할 수 있다.(Spencer & Spencer, 1998, p. 9)

 

여기서 “개인의 내적 특성”이란 다양한 상황에서 개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개인적 성격의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측면을 말한다. 또한 “원인이 되는”은 역량이 행동이나 성과의 원인이며, 따라서 행동과 성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끝으로 “준거에 따라”는 역량이 어떤 사람의 우수성이나 무능력을 구체적인 준거나 기준에 따라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기업경영에서 말하는 준거란 기업의 성과창출과 관련된 성과목표의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영업사원의 매출액, 연구자의 연구업적 등을 말한다. 학교 교육에서의 준거란, 계량화되긴 어렵겠지만, 전문성의 깊이와 인격적 성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량 정의의 활용

 

기업사회에서의 인재선발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러한 역량개념이 과연 고등교육기관의 학생선발에도 적용할 수 있느냐, 즉 성적 이외의 학생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내적 속성(underlying characteristics)를 변별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중등교육 현실은 오로지 시험성적을 향상시키는 것만을 위해 규격화되고 획일화된 교육환경 속에서, 학생 개개인의 경험의 폭과 역량발휘의 정도를 변별할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의문을 명확히 이해하고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한양대학교 재학 중인 1학년 학생 중에서 4명을 선정하여 모의인터뷰를 실시했다. 그룹별 분류를 보면, 상위그룹과 보통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2, 과학고와 일반고 각각 2명씩, 남녀 각각 2명씩이었다.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진행되는 개별인터뷰는 역량중심의 면접(Competency-based Interview, CBI)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네 학생 모두 공부하는 목적은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었으나, 그 동기와 가치 그리고 내적 속성은 매우 달랐다.

 

어떤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다른 데 있지만 부모의 끈질긴 회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부하고, 다른 학생은 수학문제풀이가 좋아서 공부를 계속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자신은 평생토록 수학문제만 풀면서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안의 경제적 형편을 돕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공부하는 학생도 있었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다니던 과학고등학교를 그만 두어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여학생은 급기야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외형적으로 획일화된 교육과정이고 규격화된 교육환경이었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놀라운 다양성이 숨어 있었다. 그들의 내적 경험과 사유의 다양성은 곧 역량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이 글은 한국영재교육학회(2010.12.18)에서 발표한 내용을 중심으로 쓴 것입니다. 주제는 "교사관찰추천에서의 역량평가면접"이었는데, 교육계나 교육학계에서는 역량중심의 면접을 다들 낯설어 하는 분위기여서, 역량중심의 면접(competency based interview)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연구, 그리고 나아가 함께 공부하고 수련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보고자 학회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블로그의 독자들과 함께 공유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이곳에 몇 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많은 피드백을 부탁합니다.


연구의 필요성

학생들의 성적이 곧 사회생활에서의 개인적 성공이나 사회적 성취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중등교육과정까지 매우 우수한 학교성적을 냈던 학생들이 소위 일류대학에 선발되어 고등교육을 거쳐 사회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루거나 개인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과의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학교 성적이나 지능지수가 사회생활에서의 업무성과와 개인적 성공여부를 예측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등교육에서 고등교육으로 진학할 때, 선발의 준거를 종래와 같이 학교성적 위주보다는 장기적 성취와 상관성이 높은 요인을 찾아, 그 요인을 선발의 중심에 놓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것은 고등교육뿐만 아니라 중등교육까지도 일대 혁신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요즘 고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각 대학에서는 단순히 학교 성적만을 가지고 학생들을 선발하지는 않는다. 학교생활기록부를 참조하는 내신과 면접, 과외활동이나 대외 수상경력 등과 같은 요인들을 학생선발에 고려한다. 대학당국에서도 단순한 지적 영역 이외의 정서적 영역과 사회적 성취능력 등을 감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일환으로 최근에는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하여 입학사정관에 의해 학생들의 성적뿐만 아니라 면접 등으로 선발하려는 추세가 점차 강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세는 여전히 중등교육의 학업성취도인 성적 위주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전형의 경우에도 학생당 면접시간은, 학교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개 10여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입학사정관들도 짧은 면접시간으로 학생들을 제대로 변별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고백한다. 결국은 서류상으로 표현된 것, 즉 ‘스펙’이 입학에 거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양대학교에서 국내 최초로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대학수준의 과학영재들을 위한 특화 교육프로그램인 “Honors Program in Sciences & Engineering(이하 HP로 약칭)을 운영하게 됨으로써, 장기적으로 높은 과학적 업적을 낼 수 있는 과학영재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이것은 한양대학교만의 문제라기보다는 학생선발에 관한 한 한국 고등교육에서의 전반적이고도 뜨거운 이슈이기도 하다.


대학교육의 가장 중요한 성패요인의 하나는 학생선발이다. 고등교육을 받아 장래에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학생을 뽑아 교육시켜야만 사회적 낭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사회에 공헌할 잠재력을 갖지 못한 학생을 고등교육대상자로 뽑을 경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될 뿐 아니라, 잠재력을 갖춘 학생이 의외로 고등교육에서 배제되는 이중의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에서 대학에서의 학생선발이 중요하다. 어떻게 선발하느냐에 따라 중등교육의 목표와 내용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 수능시험 위주로 뽑으면 중등교육은 수능대비위주의 교육이 되고, 본고사 위주의 선발방식으로 바뀌면 본고사를 위한 준비교육으로 전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대학이 어떤 형식으로든지 지덕체를 겸비한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바꾼다면, 이를 중등교육의 목표로 삼을 것이다. 숭고한 중등교육의 목표가 나름대로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중등교육의 목표가 대학입시제도에 종속되어 왔다.


이런 관점에서, 고등교육기관들은, 형태가 여러 차례 바뀌긴 했지만,
관식 문제해결력이라는 수능점수에 의한 학생선발 방법을 고수해 왔다. 이것의 문제점은 오로지 ‘점수의, 점수에 의한, 점수를 위한’ 기형적 중등교육을 낳았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런 점수 위주의 선발방법은 장기적으로 학생들의 학문적 성장과 인격적 성숙을 오히려 방해한다. 인간의 인지적, 정의적 능력에는 시험성적과 같이 계량화할 수 있는 영역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가치와 신념, 신뢰와 존중, 애정과 배려의 마음이나 영성과 같은 계량화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렇게 계량화되기 어려운 영역이 인간의 인격적 성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객관화의 어려움 때문에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공교육은 점점 피폐하게 되고 내신 성적 또는 수능점수위주의 사교육 열풍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모든 평가결과가 점수로 환원되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학생들을 서열화해야 할 필요는 더욱이 없다.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 학생의 능력과 성향, 그리고 계량화하기 어려운 내면의 역량을 진단하여 적절한 곳에 배치하는 방법이 오히려 더 정확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인간의 재능을 점수로 환원하여 서열화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이문열은 몇 점이고 이외수는 몇 점인지 말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재능을 어찌 점수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물론 점수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성적점수 이외의 다양한 정성적 요소들을 감안하여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전환이 시급하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교육선진국들을 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그들의 교육 및 학생선발 과정을 보더라도
고등교육기관에서의 학생선발 방법은 근본적으로 혁신되어야 할 것이다.

독일에서 5, 한국에서 7, 아일랜드에서 3,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4년씩 아이들에게 초등, 중등, 고등교육을 시켜 본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선진교육에서는 학생들의 잠재력과 역량에 대한 교사의 관찰추천이 상급학교 진학과 배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저학년일수록 그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과 성적의 중요성이 증가하지만, 학생들의 잠재력과 역량에 대한 교사의 판단과 그 중요성은 결코 줄지 않는다.



연구의 목적


이런 점에서 영재들을 선발하는 방법으로 역량중심의 선발시스템(Competency-based Selection System)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이 시스템은 기업에서 인재를 선발하고 육성하는 데 주로 활용되는 방법론이다. 이것을 과학영재 학생선발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방법론을 세우고, 그것을 선발에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검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여기서의 서술은 주로 한양대학교 Honors Program의 운영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첫째, 인생의 장기적 성취를 예측할 수 있는 핵심적인 역량의 개념과 그 역량요소를 명확히 한다.


둘째, 과학영재들을 위한 핵심역량모형을 검토한다.


셋째, 학생들의 역량을 진단할 수 있는 수단인 역량중심면접(Competency-based Interview, 이하 CBI로 약칭) 기법의 활용가능성을 점검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