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 대한 입장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자본주의를 전복시켜야 한다고 급진적으로 생각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공산진영이 붕괴되면서 자본주의적 이상이 실현되어 역사의 종말이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수도 없으며, 오늘날 인류의 경제활동양태를 자본주의의 완성된 모습으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적절한 수준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히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적절이란 그 사회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몰상식한 수준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어떤 형태로든지 반드시 적절히 통제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도 운용형태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식 자본주의, 프랑스식 자본주의, 독일식 자본주의, 중국식 자본주의, 일본식 자본주의, 북구식 자본주의 등등….

 

그러나, 크게 보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사익을 거의 무제한으로 추구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성장 발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식 자본주의입니다. 그것은 너무 지나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므로 어느 정도는 규제함으로써 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소위 독일식 자본주의입니다. 무제한의 사익추구를 허용하는 방식을 신자유주의적(neoliberal)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사익추구는 사회적 맥락에서 규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질서자유주의적(Ordoliberal) 자본주의라고 합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무제한적 사익(私益)추구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질서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질서자유주의는 주로 독일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주창되었습니다. 전후에는 독일 경제발전 모델로 적용되어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독일의 경제적 질서를 만드는 데 힘썼던 사람들은 단순히 학자들만의 공헌은 아니었습니다. 학자들의 사상을 경제적 현실에 절묘하게 응용했던 정치가들의 식견도 한 몫을 했습니다.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 초대 수상, 에어하르트(Ludwig Erhard, 1897~1977) 경제장관 등은 소위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 모델을 실천함으로써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전후 독일은 두 가지 점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인물도 고갈되었습니다. 유능한 인재들은 대부분 나치에 가담해서 전쟁범죄자로 낙인이 찍힌 상태였기 때문에, 국가경영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인재고갈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괴로운 것은 국내외적으로 비난하는 도덕성 문제였습니다. 인적 자원의 결핍과 도덕적 낭패감이라는 이중적 고통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모델을 적용함으로써 전후 20여 년 만에 두 가지 이슈를 깔끔하게 해결해냈습니다.

 

유럽인들은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르면서, 인간의 이기심은 무한하지만, 그것을 제약해야 할 인간의 도덕성은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회가 그런 취약한 기반 위에 형성된다면, 어떤 비극이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반성이 일었습니다. 실존주의와 탈근대적(post-modern) 사상들이 근대문명의 이성적 합리화 과정에 대한 반성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그렇게 신뢰할만한 것이 아님을 알았던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합리적 행동보다 사회적 공헌과 인간적 연합(solidarity),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국가운영정책을 세워 실천해왔습니다.

 

유럽의 여러 대륙국가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과 북구의 여러 나라들은 그 나름대로의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조금씩 변형된 질서자유주의를 경제정책으로 실천해왔습니다. 어떤 나라는 성과가 좋았고, 어떤 나라는 성과가 덜 좋았던 차이가 있긴 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험한 것은, 이런 나라들이 세월이 흐를수록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잘 버텼는데, 워낙 미국의 영향력이 강력해지니까, 버티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철저하리만큼 신자유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추종하는 신자유주의란,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기는 행위는, 타인을 명시적으로 해코지하지 않는 한, 무제한 허용되어야 한다는 이념입니다. 오히려 욕망을 넘어선 탐욕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깁니다. 미국인에게는 사회적 연대(solidarity)보다는 개인간의 계약이 더 우선하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사고가 팽배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미국이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자유로운 사익추구와 그것을 위한 기회의 평등을 지상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런 믿음은 우리를 배신했습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가 남긴 교훈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금융시장이 붕괴되었다는 점

둘째, 중산층이 급격히 줄어들고 양극화 되고 있다는 점

셋째, 심각한 수준의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점

 

이들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차차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자본주의 자체가 엄청난 폐해를 가져올 것으로 예견하고 경고했던 수많은 사상가들 중에서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의 견해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자본주의를 가장 강도 높게 비판했던 사람으로 칼 마르크스가 핵심이지만, 칼 폴라니의 견해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이었던 폴라니는 미국에서 1944, 그러니까 2차 대전 중에 심혈을 기울인 자신의 책 『거대한 변환』(Great Transformation, 박현수 옮김, 민음사 1991))을 발표합니다. 문장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지만, 귀중한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핵심내용은, 결코 상품화하여 거래할 수 없는 노동, 토지, 화폐를 시장에서 자유로운 거래를 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시장메커니즘은 결국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로 변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악마의 맷돌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인간이 상품화되어 거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노동시장에다 상품화하여 팔아야 먹고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토지는, 현재의 모든 인류와 앞으로 올 인류에게 귀속되는 것이어서 결코 상품화되어 거래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토지 또한 시장에서 자유로이 거래되고 투기의 대상이 됩니다. 화폐는 단순한 교환 또는 지불의 수단이어야 하는데, 이것을 상품화함으로써 금융시장에서 돈 놓고 돈 먹는잘못된 거래들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간은, 시장만능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제도를 통해 자기 자신과 자연을 악마의 맷돌속으로 집어 던지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특히 미국인들은 이런 일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해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라고 가르쳤습니다. 따르지 않는 경우에는 국제 금융기구를 통해 거의 강압적으로 밀어붙였습니다. (한국의 IMF사태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오늘날 인류는 악마의 맷돌에 갈려 온 몸과 정신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정신 속에 아주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이 어쩌다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하게 되었는지를 이어서 알아보겠습니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오늘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육체적 질병이 아니라 정신적 질환입니다. 하나는 자본주의적 질병이고, 다른 하나는 권위주의적 질병입니다. 이 두 가지 질병이 합병증을 일으키고 있어서 뭐가 뭔지 진맥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

 

자본주의적 질병의 원인은 우리가 정치적 경제적 질곡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서구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를 우리도 향유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야당에 투표하면 잡혀가는 줄 알던 시대에서 벗어나 우리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투표할 자유를 확보했고, 대다수 국민이 절대 빈곤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가 해방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외적 조건으로부터의 해방, 즉 정치적 해방 또는 경제적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느껴보기도 전에 우리에게 더 크고 무거운 족쇄가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족쇄는 인간의 내면에 채워져 있기 때문에 거추장스럽게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롭다고 생각하면서 그 무거운 내면적 짐을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최동석,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한국관료조직의 개혁을 위한 진단과 처방, 비봉출판사 1998, 206~207)

 

이 글은 10여년 전에 쓴 글입니다. 인간의 정신적 내면에 채워진 쇠사슬! 그것은 탐욕의 족쇄였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시장메커니즘이 우리에게 선사한 괴물입니다. 동물원에 가끔 가서 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괴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괴물입니다. 이 괴물이 우리의 잠재력을 적절히 발휘하게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괴물때문이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욕구를 충족해야만 합니다. 욕구(need)를 충족하고 나면, 욕망(desire)이 끼어듭니다. 이 때 욕망의 확대재생산과정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면 탐욕(greed)으로 나아갑니다. 이 탐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자본()이고, 이것이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확대재생산 됩니다. 탐욕이라는 족쇄, 탐욕이라는 괴물앞에 인간은 무력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앓고 있는 질병입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탐욕이라는 괴물을 다룰 수 있는 적절한 통제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한 적절한 시스템설계를 필요로 합니다. “자유로운 시장거래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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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유럽연합은 미국의 패권에 맞선 반제국주의적 도전의 일환으로써 자유와 평등, 그리고 계몽주의적 가치를 옹호하는 참된 횃불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고 노력한다. 9.11 이전에도 많은 유럽인들이,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번드르르한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유럽 사회는 복지제도와 사회제도의 측면에서 미국보다 훨씬 우월하며 훨씬 너그러운 관용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럽 사회가 미국 사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2000년에 실시된 어떤 조사에서 프랑스 사람들에게 당신이 보기에 미국은 어떤 나라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응답자 가운데 45%사회적 불평등이 심한 나라”, 33%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라고 대답했다. 24%만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라고 답했고, 15%만이 이민자들을 환영하는 나라라고 답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뒤로, 미국을 비판하는 유럽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2003년 유럽 전역의 신문에는, 유럽인의 정체성은 미국과는 정반대라고 신랄하게 지적하는 독일과 프랑스의 유명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rbermas)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글이 실렸다. 이들은 유럽의 특징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유연한 접근법과 사형제의 거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20세기의 전체주의 정권들과 유대인 대학살의 기억에서 비롯한 도덕적 민감성을 꼽았다.

     

    오늘날 국제법을 위반하고 국제연합을 음해할 것이 뻔한 행동을 거리낌없이 자행하는 미국의 일방주의는 유럽에서 커다란 비판을 사고 있는데 반해, 아일랜드에서 폴란드에 이르기까지 유럽연합의 여러 조약과 헌장들은 인권과 비차별에 대해서 가장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에이미 추아, 이순희 옮김, 제국의 미래, 비아북 2008, 423~423)

     

    유럽인들은 미국인을 어떻게 볼까? 한 마디로 말하면, 야만적이라고 봅니다. 미국인의 야만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들의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에서 왔습니다. 미국인들은 마치 돈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미국인들을 온전한 인간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고, <적자생존>의 야만적인 삶에 젖어 들게 만들었습니다. 자본은 마약과 같아서 일단 중독되기 시작하면, 그 자신이 파멸될 때까지 손을 떼지 못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마약중독자나 알코올중독자는 자신의 중독 증세를 잘 모를 뿐만 아니라 그런 사실을 다른 사람이 지적해줘도 부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본에 중독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직원들을 돈의 노예상태에 묶어 둠으로써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돈 때문에 사람을 살상하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테러리즘의 발생도 자본 때문이고, 부시의 이라크 침공도 자본 때문이었습니다. 자본은 이렇게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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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이 금융 상품화되어 유통되도록 자유롭게 풀어 헤쳐 놓으면, 미국발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을 초래하게 됩니다. 시장은 스스로 금융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자본에 의해 황폐해진 인간의 정신 또한 금융이나 시장을 적절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유럽인들이 미국인을 야만적이라고 째려보는 저 시선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리고 이미 그 폐해가 입증된 미국식 시장경제, 미국식 자본주의, 미국식 의료보험제도, 미국식 교육시스템, 미국식 경영학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나가야 할 지향점을 다시 잡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미국인들이 탐욕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깊이와 넓이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현재의 금융위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많은 분석과 처방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기술적인 문제에 치우친 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에서 보는 인터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첫째, 폰지게임과 같은 방식으로 파생상품을 팔아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위험량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을 만큼의 독성이 큰 상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핑크빛 포장지로 싸서 전세계에 팔았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의 위험 제로라는 트리플 에이(Triple-A) 딱지까지 붙여서 말입니다. 처음부터 사기를 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월 스트리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에 부정적발당국은 뭘 하고 있었는가? FBI에서는 모기지 상품들의 사기에 의한 부정(fraud) 위험을 경고했으나 부시행정부에서는 실체도 없는 테러와의 전쟁 때문에 FBI의 인력을 보충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테러인력으로 전부 빼돌렸습니다. 더구나 1980년대 수백 개의 저축대부조합(Savings and Loan Associations)이 무너지는 사태를 통해 금융부정의 실태와 원인을 파악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위기사태를 예방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위기는 저축대부조합 위기의 1,000배나 더 큰 위기인데도 말입니다. 테러의 위기보다는 수천 배가 더 크겠죠.

     

    셋째, 경찰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금융감독당국에서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는가? 월 스트리트의 인물들과 감독당국의 책임자들, 그리고 정부의 고위관료들은 서로 회전문 인사를 통해 왔다갔다하고 있기 때문에 사태의 진실을 덮어버리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현재 재무장관 가이트너도 뱅커출신입니다. 가이트너는 뉴욕연준의장으로서 이번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인 모기지 대출과 그 파생상품의 부정판매에 대해 직접적인 감독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꼴입니다.

     

    넷째, 감독당국은 AIG사태에서도 보았듯이, 정부보조금이 파산지경에 이른 금융기관 경영자들의 주머니로 고스란히 들어가도록 내버려두었거나 조정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월 스트리트의 사람들이 서로서로 스크럼을 짜고 '미래의 파국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그들이 저지른 엄청난 부정을 덮어버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아래 인터뷰를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pbs.org/moyers/journal/04032009/watch.html

     

    미국이라는 나라는 탐욕 위에 세운 집과 같습니다. 겉에서는 아주 튼튼해 보이는데, 이번에 살짝 들여다 본 미국의 속내는 정말 더러웠습니다. 제대로 까보면 엄청 나겠지요. 인터뷰에 나온 윌리엄 블랙(William Black) 교수의 말대로 미국에서는 지금 사기꾼들이 얼마나 미친 짓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언제쯤 알 수 있을까요?

     

    파산지경에 이른 금융기관의 경영자들은 이미 천문학적인 보상을 받았으니까요. 이번 사태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미국식 경영이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결국 사기꾼들이었음이 드러났죠. 미국을 건설한 밀수꾼(미국 독립선언의 대부였던 존 핸콕이 밀수꾼이었음)의 후예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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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세계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 합리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합리화(rationalization)란 원하는 것을 달성하게 하는 모든 수단과 대안을 계산하여 최대한 활용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합리화의 정의에는 다음과 같은 핵심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원하는 것(desired ends)

    계산 가능한 수단(calculable means)

    최대화(maximization)

     

    여기서 원하는 것은 단순한 생활의 편리함에서부터 다른 사람과 구별 짓는 사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드러납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돈입니다. 돈을 벌어야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돈이 합리화의 원동력이 됩니다. 계산 가능한 수단에는 물적 자원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도 포함됩니다. 최대화는 그 수단을 활용하여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강구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합리화의 극치를 이루는 것이 음식문화의 표준화입니다. 집집마다, 사람마다 다른 미묘한 맛의 차이를 느끼는 인간이 먹는 것을 표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아무도 음식이 표준화되고 계산 가능하며 통제 가능한 상품으로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지만, 이것을 가능케 한 인물이 바로 레이 크록(Ray Kroc, 1902~1984)이었습니다. 그는 맥도날드를 프랜차이즈화함으로써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맥도날드야말로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합리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20세기 전반의 포드자동차의 T모델에 버금가는 위대한 합리화였습니다. 맥도날드는 미국식 합리화의 상징입니다. 맥도날드식의 합리화가 우리의 일상생활의 전 영역에 끊임없이 파고들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분석한 미국 사회학자 조지 리처(George Ritzer)는 이것을 사회의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 of Society)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맥도날드화의 이점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들었습니다. (조지 리처, 김종덕 옮김, 맥드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시유시 1999 참조)

     

    효율성: 배고픔을 즉각적으로 채워줄 수 있습니다.

    계산 가능성: 제공되는 제품의 크기와 양, 그리고 서비스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습니다.

    예측 가능성: 언제 어디서나 제품과 서비스가 동일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통제: 매뉴얼에 의해 인간을 통제합니다.

     

    앞의 세 개는 장점으로 이해되는 데, 마지막의 통제는 어떻게 장점일 수 있느냐고 의아해 할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비합리적인 동물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일관성이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감정은 정말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런 인간을 무인기계가 통제하기 때문에 일관성이 생겨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무인기계에 의한 통제의 장점입니다.

    그래서 맥도날드화 되었고, 지금도 맥도날드화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에는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아파트생활이 전형적인 삶의 맥도날드화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맥도날드식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효율적이고 계산과 예측이 가능하고, 통제되고 있는 삶을 말입니다. 쇼핑이 맥도날드화 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에 가면 진열되어 있는 상품을 골라 계산하고 빠져 나오면 됩니다. 맥도날드화의 이점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습니다.

     

    큰 문제는 교육이 맥도날드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험문제를 잘 푸는 학생들을 만드는 것이 일선학교의 목표가 됨으로써 학생들을 햄버거 찍어내듯이 학교를 졸업시킵니다. 더 큰 문제는 온 사회의 시스템이 맥도날드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를 졸업해도 역시 맥도날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 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대부분 기획사에 의해 맥도날드화된 인물들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6,70년대 활동했던 가수들은 적어도 뚜렷한 자기 개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은 성형으로 제조하여 춤으로 몸을 만들어서 무대에선 립싱크로 마무리하면 됩니다. 이런 연예인들에게 열광하는 것 또한 맥도날드화되어 있습니다. 팬클럽 만들어서 마케팅 전략을 잘 쓰면 인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디가 자연스러운 것이고 어디가 인위적인 것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맥도날드 햄버거처럼.

     

    정말 큰 문제는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이 온통 맥도날드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조직은 철저하게 규정과 규칙, 지침과 매뉴얼로 운영됩니다. 이런 것들이 구성원들을 통제합니다. 정보시스템이 깔려 있어서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조직구성원들이 그 시스템을 잘 따라 하면 중간은 가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정보시스템을 깔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처리하면 될 뿐입니다. 계량화된 성과관리시스템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효율성이 창의성을 갉아먹는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렇게 합리화하는 원동력은 돈입니다. 패스트푸드업계의 경쟁에 대해 레이 크록이 한 말을 볼까요.


    "이것은 쥐가 쥐를 먹고 개가 개를 먹는 형국이다. 그들이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그들을 죽일 것이다."(바버라 오클리, 이종삼 옮김, 나쁜 유전자, 살림 2008, 408쪽)

     

    레이 크록에 있어서 돈은 모든 것입니다. 맥도날드를 살리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돈의 힘입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이성이 세계를 합리화하면 할수록 오히려 비합리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의 폐해는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을수록, 나아가 그것에 중독될수록 육체와 정신이 더욱 피폐해지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생활이 편리하지만 비인간적일 정도로 개인주의화되는 폐해는 점점 심해집니다.

     

    천천히 조리된 음식을, 명상적 태도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을 때, 삶은 풍요로워집니다. 텃밭에서 일용할 양식을 재배해서 먹는 삶이 아파트 살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실천할 수 없도록 구조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맥도날드화의 폐해를 줄일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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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세월 동안 인류는 세계를 합리화(rationalization) 해왔습니다. 특히, 데카르트 이후 이성(reason)이 역사의 전면에 부각되면서 급속도로 합리화되어 왔습니다. 이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한 사람은 독일의 종교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고리대금업이나 상업을 통한 이유추구를 죄악시했습니다. 그러나, 베버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합리화(rationalization) 과정을 통해 프로테스탄트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는 부가 축적되고 있는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기독교의 기본사상은 경제적 부의 축적을 용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프로테스탄트의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을 배태한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을 검증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입니다. 그는 이 저작을 통해 프로테스탄트들, 특히 칼빈주의자들이 경제적 부를 얻은 합리적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중세에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부에 대한 관념을 죄악시했습니다. 특히 고리를 취하는 것은 철저히 비난받을 일이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수도원에서는 엄격한 금욕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수도원에만 머물던 금욕적인 삶이 세속에서도 실천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종교개혁자들의 공헌이 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금욕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성경의 엄격한 가르침에서 현실에 맞도록 다소 순화시켰다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수도원의 고독 속으로 도피했던 기독교의 금욕주의가 개혁주의자들의 직업윤리에 의해 수도원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속적인 일상생활에서도 실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금욕의 의미가 상당히 퇴색되었거나 느슨하게 되었음은 분명합니다. 기독교의 금욕 사상이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직업윤리로 세속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직업윤리의 세속화 과정이 바로 막스 베버가 관찰했던 합리화(rationalization)였습니다.

     

    베버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이제 그 금욕주의는 닫아 버린 수도원의 문을 뒤로 하고 삶의 시장으로 걸어 나와 현세적 일상생활에 자신의 방법을 침투시키기 시작했고, 세속 안에서(그러나 세속에 의해서나 세속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일상생활을 합리적 생활로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막스 베버, 박성수 옮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문예출판사 1988, 111)

     

    이렇게 기독교인들의 금욕이 세속화되었습니다. 이 말은 금욕이 탐욕으로 들어가는 문을 살며시 열어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탐욕의 맛을 아는 것은 중독되는 것과 같습니다. 일단 중독되면 끊기 어렵듯이 탐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개혁주의자들이 탐욕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볼 수밖에 없었던 정신적 바탕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를 거쳐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성이 신앙의 힘을 누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합리화는 이성의 기능입니다.

     

    막스 베버의 최대의 관심사는 이성에 의한 사회의 합리화(rationalization) 과정이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해서 다른 지역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트들이 많은 곳에서 일어 났을까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는데, 자본제와 그 정신은 이미 14세기부터 밀라노, 베니스, 플로렌스 지방에서 일어나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버는 합리화가 개신교 윤리(protestant ethic)에서 나왔다고 보았습니다. 수도원에 갇혀있던 금욕정신이 프로테스탄트들의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즉 자신이 하는 일이 신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라는 정신을 일에 대한 성실성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성도의 영원한 안식은 내세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현세에서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은 일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태만과 향락이 아니라 오직 일을 통해 신의 뜻을 이루고 신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따라서 시간낭비는 모든 죄 중에서도 최고의 중죄가 됩니다. 인생은 신의 부르심(calling)에 응답하기에도 너무나 짧고 소중합니다. 사교와 잡담, 사치와 소비 등을 통한 시간낭비는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게 하라는 바울의 명제는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만인에게 적용됩니다. 노동의욕의 결핍은 구원 받지 못함의 징후였습니다.

     

    부자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아야 합니다. 신의 섭리는 만인에게 아무 차별 없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일해야 하는 직업이 주어졌다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의 노동윤리는 개신교의 사회윤리에 맞닿아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지도자들도 서로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우선 독일의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돈에 대한 전통적인 성경의 가르침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교회법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상업적 거래를 다음과 같이 비난했습니다.

     

    독일 국민 최대의 불행은 말할 것도 없이 이익을 위한 거래이다. …… 악마가 그것을 발명했는데, 교황은 그것을 승인함으로써 전세계에서 무수한 악을 저질렀다.”(리차드 토니, 김종철 옮김, 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 한길사 1983, 113쪽)

     

    하지만, 스위스의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루터는 돈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칼빈은 자본주의적 물결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루터는 고지식했고 이상주의적이었지만, 합리적인(rational) 사고를 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교회의 부패와 비성경적인 교리들을 바로 잡고자 했습니다.

     

    칼빈에게도 신학적인 문제, 특히 로마카톨릭에 저항한다는 입장에서는 루터와 비슷했지만, 현실적인 문제에서는 유연했습니다. 아마도 로마카톨릭의 부패를 척결하고 개혁하는 것이 우선이라,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개혁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특히 영향력이 큰 인물들의 지지를 끌어 낼 수 있다면 더 좋습니다. 칼빈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자본주의 물결과 그 정신을 교회 내로 끌어들여 공식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루터보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갔습니다.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이자는 법정최고액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살짝 바꾸었습니다. 이자의 최고액이 정해졌다고 해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대부가 무상으로 행해져야 하며, 채무자는 채권자와 같은 이익을 얻어야 하고, 지나친 담보를 짜내서는 안 된다고 물러섰습니다. 그러면서 칼빈은 빈민의 곤궁을 이용하여 짜낸 이자와 번창하는 상인의 자본으로 번 이자 사이에는 차이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오늘날의 경제학적 상식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지만, 당시에는 이자의 질(quality)를 생각하는 방식으로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말하자면 상대방의 사정을 고려해서 이자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기독교의 전통적인 교리를 양보했습니다. 기독교의 사회윤리가 엄청나게 이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내 생각에는, 자본과 이자를 바라보는 칼빈의 사상은 서구 정신사에서 커다란 분수령이었습니다. 성경이 제시했던 인류의 정신적 안정망(mental safety net)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진리는 “어떤 경우에도 이자를 받지 않는다에서 “이자의 공정함과 정의로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진리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에서 "너에게 이익이 되는 범위 내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로 변질되었습니다.

     

    막스 베버는 이러한 변화를 합리화(rationalization)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견해는 프로테스탄트들의 합리적인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을 일으켜 세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반쯤 맞을 수도 있고, 반쯤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 동안 교회가 자신이 억눌러 왔던 자본주의 정신을 받아들임으로써 자본제 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자본주의 정신을 교회가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정신이 성경의 가르침을 훼손했는데, 그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트의 윤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버는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보는 오류를 범한 셈입니다. 지칠 줄 모르는 위대한 철학자였던 베버조차도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볼 수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개신교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을 발흥시킨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이 부에 대한 기독교의 엄격한 가르침을 종교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정의하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자본주의 정신은 14세기 밀라노, 베니스, 플로렌스 등을 중심으로 충분히 발흥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베니스의 상인들을 중심으로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복식부기의 원리가 이미 생겨났을 정도였습니다자본주의와 그 정신은 이미 14세기에 싹 텄고, 16세기에는 그 정신이 유럽의 전역에 퍼져있을 때였습니다. 기독교는 그 정신을 자신의 내부로 종교개혁이라는 형식을 빌어 살며시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개혁가들은 로마카톨릭의 부패에 강력히 저항했습니다. 자본과 이자를 불려 부를 쌓은 상인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기면서도 이윤추구를 죄악시했던 이율배반적인 로마카톨릭으로부터, 칼빈을 비롯한 스위스 개혁가들이 기독교를 합리적으로(rationally) 구해낸 셈이 됩니다. 이로써 경제적 욕망과 탐욕적 에너지가 기독교내에 싹 틀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탄생하여 수많은 사회문제를 일으켰지만, 교회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개혁가들은 로마카톨릭의 부패에 대해서는 성공적으로 저항(protest)했지만, 자본주의 탐욕정신의 도전에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심지어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신흥부자들의 가렴주구를 보다 못한 목사회(제네바의 칼빈 지도 아래 있던 성직자 단체)는 다음과 같은 강령을 만들어 실행에 옮기려 했습니다.

     

    가난한 이웃의 궁핍을 이용해 부유해지려고 애쓰는 파렴치한 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탐욕에 재갈을 물리자.”(리차드 토니, 김종철 옮김, 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 한길사 1983, 137쪽)

     

    그러나, 목사회의 어느 누구도 이 강령이 실행되리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이성적 합리화(rationalization of reason)는 부()에 대한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탐욕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서구의 개신교 사회윤리는 금욕에서 탐욕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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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의사가 불치의 병에 손을 써본들 아무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는 확실히 유능하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노예 근성 역시 치명적인 병과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인민에게 가르치고 충고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인민들은 이러한 불치병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놀랄만한 노예근성이 얼마나 깊이 뿌리박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러한 자발적 복종의 상태는 너무나 심각하므로 모든 현상은 마치 인간의 본성에서 파생된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자유에 대한 열망이 도사린 게 아니라, 노예화를 갈구하는 열망이 가득 차 있다고 말이다. ……

    그렇지만 우리는 자연에서 어떤 분명하고도 확실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다. 자연 속에는 어느 누구도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이 한 가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평등이다. 신의 시녀이자 인간의 교사인 자연은 인간을 오로지 어떤 한 가지 형태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동일한 설계에 따라 창조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서로 동지로서 그리고 나아가 형제로서 인식하도록 조처했던 것이다. 어쩌면 자연은, 영혼의 영역이든 육체의 영역이든 간에, 어느 한 사람을 선호하여 그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재능을 부여했는지 모른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강한 자와 영리한 자가 마치 무장한 강도처럼 약한 자와 어리석은 자를 습격하거나 약탈하게 하지는 않았다. 자연은 이 세계에 마치 전쟁터와 같은 무엇을 설치해 주지는 않았다. 자연이 개개인들에게 제각기 다른 능력을 부여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추측컨대 강한 자와 영리한 자로 하여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과 형제애를 나누게 하고, 힘없는 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박설호 옮김, 『자발적 복종』, 울력 2004, 33~35쪽, 밑줄 추가)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Etienne de La Boetie, 1530~1563) 1530년 프랑스 사를라에서 태어났지만 일찍 아버지를 여위고, 삼촌에 의해 양육되었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고대 문학을 교육받았고, 16세에는 고전 작품들을 번역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시를 쓸 만큼 비범한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평적 사조와 개혁적 분위기가 흘러 넘치던 오를레앙 대학에 입학해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불과 18세의 나이에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혁명적이었던 자발적 복종을 썼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보르도 지방의회 의원에 발탁되었고, 거기서 몽테뉴와 우정을 맺습니다. 당시는 신구교 사이에 종교전쟁의 기운이 있던 터라, 그는 그런 분쟁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그 분쟁의 와중에 33세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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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사상이 오늘날과 같은 탐욕적인 자본주의 문명을 이룩하게 했느냐에 대한 논쟁은 많았습니다. 나는 기독교 사상이 자본주의 발흥에 기여했다는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대체적인 중론은 그렇다에 쏠려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기독교는 탐욕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종교입니다. 이것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확합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이 명확한 기준이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특히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부터 인류의 정신적 안전망(mental safety net)이 급격히 약해졌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니(Richard Henry Tawney, 1880~1962)는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양심과 상업이 분리되었다는 점과 기독교의 가르침이 물질적 부의 추구에 복종하는 세태로 변하게 된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토니의 책 『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 한길사 1983을 참고하세요.)

     

    기독교 사상에서 인류 최초의 탐욕 사건은 성경의 창세기 3장에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實果)를 먹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욕망(desire)으로 이어지지만, 마음속에 있는 뱀의 유혹에 이끌리면 탐욕(greed)으로 넘어갑니다. 탐욕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인간의 힘으로는 저항할 수 없습니다. 저항할 수 없는 이 탐욕이 바로 인류를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하게 한 원죄(原罪)입니다. 여자는 잉태와 출산의 고통을 겪게 되고, 남자는 얼굴에 땀이 흘러야 밥을 먹을 수 있게 됩니다.

     

    탐욕은 매우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는 점을 성경은 명확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탐욕은 파멸할 때까지 스스로 증식해 갑니다. 더 많이, 더 많이, 더 많이

     

    어떤 사람은 탐욕을 인류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불황의 고통은 인간의 탐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탐욕을 다루는 방식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는 그 자체로서 모순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탐욕을 제어해야 할 인간이 탐욕적이 되면 자기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낼 재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제도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탐욕적 인간들이 그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탐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마음의 훈련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다스리도록 유도하는 길입니다.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욕망의 수준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서 공동체적인 삶의 가치를 어려서부터 훈련을 통해 몸에 익히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마음의 훈련으로도 제어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욕망이 탐욕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투명성입니다. 사회적으로 하는 일들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제도화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정 금액 이상의 거래는 신용카드와 같은 방식으로 반드시 정보시스템을 거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돈세탁이나 뇌물 수수관행을 방지하고, 사업자의 수입과 소득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둘째로 언급한 제도적 장치의 설계가 아닙니다. 마음의 훈련을 통해 자신이 코람데오(coram deo)의 정신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코람데오는 라틴어의 신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인류가 코람데오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어찌 욕망이 탐욕으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코람데오의 사건은 성경의 창세기 39장에 나오는 사건에서 출발합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라는 말이 거듭 강조되지만, 요셉은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과 난관에 빠집니다. 그러나 요셉은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이 난관을 헤쳐나갑니다. 예를 들어, 애굽 왕의 신하인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여러 차례 동침하자는 유혹을 받지만, 다음과 같이 거절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得罪)하리이까

     

    전지전능한 신() 앞에서 일한다는 정신, 즉 코람데오 정신(coram deo spirit)이라면 제도적 장치가 다소 허술해도 탐욕으로 인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지만, 코람데오 정신이 없다면 아무리 정교한 장치를 한다 해도 탐욕의 폐해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엔론 사태 이후에 분식회계를 막는 강력한 제도인 사베인스-옥슬리 법(Sarbanes-Oxley Act)을 만들어서 지키도록 했지만 6~7년이 지나자 그 법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금융파생상품의 위험을, 설사 불법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엉터리로 계산함으로써 온 세계인이 막심한 피해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탐욕은 인류의 발전에 좋은 것인데, 탐욕을 다루는 방식과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금융 붕괴현상이 나타났다는 견해는 매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어떤 시스템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은 오로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코람데오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내가 인사실무를 하면서 배운 가장 소중한 교훈은, 인간의 마음은 결코 안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은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조직구성원들을 숭고한 목적으로 향하여 이끌고 간다는 것은 경영자로서 보람이기도 하지만, 고난의 길이기도 합니다.

     

    물론 잘 하면 보람이지만, 잘못하면 고난이죠. 나는 언제부턴가 경영자가 잘 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인간과 조직의 문제를 평생의 화두로 삼게 되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없이는 제대로 경영하기 어려울 것이고, 인간들이 모인 조직의 특성과 역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욕구(needs)를 가지고 있습니다. 욕구를 분류하는 방식은 학자마다 다르지만, 가장 많이 알려진 분류법이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Maslow, 1908~1970) 교수의 분류입니다. 그는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 안전 욕구(safety needs), 사회적 욕구(belonging needs), 존중의 욕구(esteem needs), 자기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 needs)에 이르기까지 소위 '욕구 5단계설'을 주장했습니다. 생리적 욕구나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면, 그 상위 욕구인 사회적 욕구의 결핍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에도 부합하는 개념체계입니다. (욕구5단계설에 대해서는 매슬로우가 1943년에 쓴 논문 “A Theory of Human Motivation”, Psychological Review 50(4)(1943), 370~396쪽을 참조하세요.)

     

    그러나, 모든 경우에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는 가끔 히말라야를 등정하는 산악인들을 보면서 매슬로우가 뭐라고 생각할까 궁금해 합니다. 산악인들은 죽음을 무릅쓸 정도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즉 생리적 욕구나 안전 욕구가 충족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산을 오르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들은 하위욕구의 충족 없이도 존중의 욕구와 자기실현의 욕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무도 히말라야로 가라고 강제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욕구와 비슷한 개념으로 동기(motive)에 대해 연구한 학자도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맥클렐란드(David McClelland, 1917~1998) 교수입니다. 그는 인간은 세 가지 주요 동기, 즉 성취동기(achievement motive), 친화동기(affiliation motive), 권력동기(power motive)에 의해 행동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취동기는 더 좋은 성적을 얻으려고 밤잠을 설치는 학생들, 골프스코어를 좋게 만들려고 애를 쓰는 주말골퍼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성취동기는 자신이 설정한 높은 목표를 위해 몰입하는 정도로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는 성취동기가 좋은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면 큰 해를 끼칩니다. 물불을 안 가리고 목표를 향하여 돌진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킨 직접적인 원인은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성취동기가 지나치게 높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인생사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아무리 좋은 동기라 해도 과유불급(過猶不及)입니다
     

    친화동기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동기인데, 어떤 것을 성취하는 것보다는 타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배려함으로써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아주 어려운 부탁을 해도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 대부분 친화동기에서 나옵니다. 친화동기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좋은 측면이 있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우유부단해져서 아무것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권력동기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권력동기가 큰 사람은 조직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어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을 희생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 인도의 간디는 물레질을 하면서 인도인들뿐만 아니라 영국인에게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히틀러의 경우도 권력동기가 매우 높았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동기유형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행동은 반드시 여러 동기가 혼합되어 겉으로 드러납니다. 동일한 행동이라 해도 사람마다 다른 동기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어, 부하를 유능한 인재로 육성하려는 상사는 다음과 같이 다양한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하가 일을 잘하면 그만큼 비용이 절감될 것이다 (성취동기)

         내가 그를 육성시키면 그가 나를 좋아하고 존경하게 될 것이다 (친화동기)

         나는 부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 (권력동기)

     

    이렇게 하나의 행동에 서로 다른 의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동기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행동을 작동시키는 심리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앞서 매슬로우가 구분했던 욕구의 수준과 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또는 환경에 따라 욕구체계와 동기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유형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심리학자들이나 실무컨설턴트들이 여러 요소를 감안하여 심리유형을 분류하기도 합니다만, 주역이나 명리학에서 말하는 사주팔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류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이 세상에는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는 점입니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얘기는, 욕구와 동기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배가 고파 라면을 하나 끓여 먹었다면 생리적 욕구를 충족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성취함으로써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면 자기실현의 욕구가 충족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인 욕구(needs)가 욕망(desire)으로 빠져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욕과 관련하여 영양과 건강을 고려하여 적당한 음식을 먹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 수준을 넘어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웨이터의 서브를 받아가면서 발음하기도 어려운 와인을 주문해서 즐기고 싶어집니다. 등산이면 충분한 것을 반드시 골프를 치고 싶어합니다. 그것도 비싼 골프클럽으로 치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골프코스를 섭렵하고 싶어집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되 돈 많고 유능하고, 게다가 잘 생긴 사람이라면 더 좋습니다. 사회에 공헌하여 자기실현의 욕구를 충족하되, 자기 이름을 딴 건물과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이쯤 되면,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감을 잡을 수 있겠지요. 욕구를 충족하려는 본능적 행동이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면 욕망(desire)으로 빠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망이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되지 않으면, 지나친 성취동기와 지나친 권력동기를 자극함으로써 조직이나 사회 전체를 파국으로 이끌게 됩니다.

     

    욕망은 진보의 원동력입니다. 인간이 단순히 욕구를 충족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인류는 지금과 같은 과학문명으로 진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짐승은 단순한 욕구충족으로 끝납니다. 밀림의 왕자인 사자가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데 무슨 우아함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욕구 충족을 넘어서는 욕망의 뜨거움이 있기에 일과 직업에 대한 강력한 몰입과 성취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적절한 통제를 자율적으로 또는 타율적으로 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욕망은 탐욕(greed)으로 나아갑니다. 욕망은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탐욕은 인류의 재앙입니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80년대까지는 탐욕의 실체가 보에스키와 밀켄처럼 개인적 차원에서 불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직적으로 탐욕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습니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그 탐욕의 네트워크가 꼬리를 드러냈는데, 그것이 엔론사태였습니다.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은 미국 사회에서 탐욕의 네트워크화가 뿌리 깊이, 그리고 폭넓게 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엔론은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으로 2000년 포천 500대기업 중에서 7위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미국 전체 에너지 시장의 25%를 공급하는 회사였고, 2000년에 주당 90달러였던 주가가 2001 12월에는 26센트로 폭락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엔론의 회장이었던 케네스 레이(Kenneth Lay, 1942~2006)이라는 인물에 있었지만, 엔론 사건은 탐욕과 부패와 반인륜이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일반화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침례교 목사의 아들인 레이는 자유기업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레이는 정신적인 안전망(mental safety net)을 배우지도 못한 채, 미주리대학 경제학석사, 휴스턴대학 경제학박사학위를 받고 에너지 관련 분야에서 일하다가 휴스턴에 정착하면서 자기 사업을 준비했습니다.

     

    1985년 휴스턴 천연가스와 인터노스가 합명하여 엔론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탄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레이는 엔론을 전세계 2만 명의 직원이 1,0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군으로 키웠습니다. 보답으로 엔론은 레이에게 어마어마한 부를 안겨주었습니다. 레이는 엔론 초창기 친구에게 나는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세계최고의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이야 젊은 시절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는 남달리 야망이 컸습니다.

     

    엔론에서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자, 정치에도 관심을 쏟았습니다. 조지 부시가 대통령 후보시절에는 정치헌금을 제공했고, 부시는 대통령이 되자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이었던 레이를 상무부 장관이나 재무부 장관으로 기용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부시행정부 내의 요직에 있는 사람 가운데 35명이나 엔론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레이의 오른팔이었던 제프리 스킬링(Jeffrey Skilling, 1953~)은 하버드 MBA출신으로 전략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 에너지와 화학담당 컨설턴트였는데 맥킨지 역사상 최연소 파트너가 된 인물입니다. 레이의 눈에 띄어 엔론에 합류한 후 둘은 호흡을 기가 막히게 맞추었습니다. 바깥 일은 레이가, 안 살림은 스킬링이 책임졌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1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엔론을 세계적인 에너지그룹으로 키웠을까? 그들은 엔론을 단지 석유나 천연가스를 파는 회사에서 위험관리 솔류션을 파는 회사로 변모시키려 했습니다. 1997년부터 날씨에 민감한 사업주들에게 보험료를 받고 날씨위험으로부터 오는 피해를 보상해주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확장하여 날씨파생상품이라는 금융상품에서부터 금리상하한 계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파생상품을 개발해서 판매했습니다. 이런 개념을 신용위험, 금리위험, 환율위험, 강철가격, 석탄가격, 플라스틱, 펄프, 재활용신문용지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시켜 나갔습니다. 엔론이 세계 최대 에너지회사가 된 것은 파생상품 덕이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비즈니스모델이었습니다. 레이와 스킬링은 엔론을 에너지 기업을 넘어 투자은행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비전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거래를 공격적으로 회계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공격적이라는 용어는 회계원칙의 허점을 교묘히 악용하여 회사에 유리하도록 조작하는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분식회계를 한 것입니다. 스킬링은 특히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 경영대학원 MBA출신과 맥킨지 출신들을 엔론에 대거 영입했습니다. 그래서 엔론은 인재관리의 모범이 되는 것으로 언론과 학계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엔론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사업모델을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비롯한 유수의 경영대학원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사례연구로 가르쳤고 논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하지만, 엔론 내부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텍사스대학에서 공인회계사와 관리회계사 자격을 딴 내부 회계감사인은 엔론의 회계처리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자신의 직속상사에게 말했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레이 회장에게 직접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엔론의 회계감사를 맡고 있는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Arthur Andersen)은 위장된 장부를 바로 잡아야 했지만, 그들의 탐욕은 오히려 엔론의 거래를 공격적으로 회계 처리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엔론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내부 회계감사인을 쫓아내고, 대학을 갓 졸업한 아서 앤더슨의 회계사들을 고용했습니다. 갓 입사한 회계사들에게 휴스턴 중심가의 주택과 렉서스를 제공하고, 파트너가 되는 비단 깔린 지름길을 보여주면, 그들은 알아서 공격적으로 업무처리를 했습니다.

     

    잘 나갈 때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2001년부터 에너지 가격이 급락하자 그 동안 부실하게 처리했던 것들이 꼬리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0억 달러가 넘는 공격적인 회계처리가 알려지고 사태의 심각성으로 의회 청문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생길 즈음에 최고경영진은 자신이 소유한 엔론 주식을 거의 다 처분하면서, 뒷구멍으로는 직원들에게 엔론은 건재하니 주가가 떨어질 때 더 많은 자사주를 보유하도록 홍보했습니다.

     

    그러던 중 엔론 경영진의 핵심인물이었던 존 클리포드 백스터(John Clifford Baxter, 1958~2002)가 자살했습니다. 그는 회계부정의 모든 네트워크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두고 타살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사태의 진실을 알고 있는 그는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자신의 엔론지분을 다 처분하고 회사의 위기를 경고한 뒤 퇴사했습니다. 그리고는 컨설팅 회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엔론 스캔들의 의혹이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청문회를 앞두고 자살했으니, “이탈리안식 해법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의 최명수 기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마피아들은 문제가 되는 사건이 터지면, 당사자를 자살시켜 사건을 마무리하고, 그 대신 자살한 동료의 가족을 책임지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이 짙었던 만큼 사건의 파문을 막기 위해 엔론 측에서 그런 방법을 썼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최명수, 뒤집어보는 경제 회계부정, 굿인포메이션 2003, 256) 


     

    아서 앤더슨 CEO였던 조 베라르디노가 이탈리아인었던 점을 감안할 때,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지만, 그의 죽음은 아직도 미스터리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찰의 사건보고서에는 자살한 권총의 탄알과 머리에 박힌 탄알이 다르다든지 하는 몇 가지 의문점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엔론이 그 동안 표방한 핵심가치는 존경, 정직, 소통, 탁월함이었습니다. 외부에서는 엔론이 사업구조조정의 교과서또는 ‘e-비즈니스의 총아로 알려졌습니다. 엔론은 하버드 MBA나 맥킨지 컨설팅 회사의 인물들을 스카우트해서 엄청난 연봉을 주었지만, 기존의 직원들에게는 매정한 방식으로 대우했습니다. 실제로 승진 아니면 퇴출’(up or out) 시스템을 도입했고 매년 하위 15%를 해고했습니다. 미국 언론은 엔론을 가장 혁신적인 회사’(포천), ‘새로운 미국직장의 모델’(뉴욕타임스)이라고 격찬했습니다.

     

    엔론의 법률자문회사였던 빈슨&엘킨스의 변호사들은 불법적인 거래구조에 적극적으로 자문해 주었습니다. 조작된 수치는 드러난 것만도 10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당시 뉴스데이(Newsday)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엔론이라는 집이 비틀거리기 시작하자 산업체의 탐욕과 잘못된 행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엔론은 최악의 시민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었다. 엔론은 직원을 속이고 고객을 우롱했다. 또한 엔론은 기업이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에 바쁜 단체이기 때문에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대중에게 심어줌으로써 미국 산업계 전체를 배신했다.”(브라이언 크루버, 탐욕의 실체, 영진닷컴 2003, 19~20)


     

    미국인들은 엔론 사태를 엔론이 산업계를 배신한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엔론이 미국 산업계 전체를 배신했다고? 천만에요. 탐욕이 네트워크화됨으로써 생겨난, 미국 산업계를 대표한 사건입니다. 엔론과 같은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글로벌크로싱이라는 거대 초고속통신망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회사가 파산하도록 한 것도 분식회계였고, 이것을 도운 회계법인도 역시 아서 앤더슨이었습니다.

     

    미국의 장거리 통신회사였던 월드컴의 회계조작은 그 규모면에서 엔론보다 컸습니다. 여기서도 아서 앤더슨이 감사를 맡았습니다. 월드컴의 분식회계를 눈감아 줬거나 아예 엉터리 감사보고서를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복사기 제조업체인 제록스는 60억 달러의 매출이 조작되었습니다. 사상 최대의 회계부정사건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최대기록이었던 월드컴의 38억 달러를 경신했습니다. 제록스는 회계법인 KPMG에서 회계부정을 방조했습니다. 투자은행 메릴린치, 케이블TV사업자였던 아델피아, 타이코, 컴퓨터 어소시에이츠, 듀크에너지, K마트, 루슨트테크놀로지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업들이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탐욕이 조직화되어 전세계에 만연하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탐욕의 보편화를 법규정이나 시스템을 고치면 막을 수 있을까요?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