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장례식 때문에 미국에 이민 간 여동생을 포함한 가족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 집안은 기본적으로 술이나 노름 같은 잡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건전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매우 지루한 얘기들만 오고가는 편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행태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비판합니다. 누가 더 강력하게 까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가족들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자녀교육, 직장생활, 자녀혼담, 사업얘기, 시집온 며느리들의 행태, 부동산투자 등 미국생활의 온갖 성공과 실패의 경험담이 오갔습니다. 오빠들이 그렇게 말리던 미국이민을 강행한 여동생 가족은 거의 맨손으로 돈을 벌었고 지금은 상당히 성공적으로 안착했습니다. 그 동안 두 딸을 모두 소위 명문대에 들여보냈으니까 말입니다.


이민생활의 성공기준은 자신들의 고생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는 것입니다그 첫 번째 지표가 학비가 비싼 사립고를 보내 명문대로 진학시키는 것입니다두 번째 지표는 혼사입니다교육보다 힘든 것은 혼사입니다노력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혼사는 한국에서도 그렇지만미국으로 이민 간 한인사회에서는 더욱 성공적인 삶의 지표가 됩니다그러나 이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2015-08-12 오후 아침고요수목원에서 형제들이 발 담그고 수다를 떨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이번엔 여동생 시가(媤家)의 친척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 친척은 아주 부자였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사업을 해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해서 다시 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동생이 결혼할 때만해도 그 친척은 명동에 빌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임대료만해도 평범한 월급쟁이로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결혼 후 초대를 받아 갔던 청담동 저택은, 정문을 통과해 집안으로 들어가려면 잔디밭 정원을 한참 걸어야 할 정도로 큰 집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수성가한 남편이 병으로 죽자 아내의 된장끼가 살아났던 겁니다. 아내는 남편이 남기고 간 재산과 수입으로 조금씩 된장질을 했습니다. 그 동안 남편 때문에 감히 입어보지 못했던 명품을 조심스럽게 사들였습니다.

 

그 집 아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다니는 수도권 대학을 나왔습니다. 워낙 돈이 많은 집이라 예쁜 며느리를 들였습니다. 당대의 황신혜를 찜 쪄 먹는 미모의 여성이었습니다. 된장녀는 된장녀를 알아보기 마련입니다. 시어머니 된장녀는 며느리 된장녀와 손발이 맞았습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신들의 몸을 명품으로 휘감았습니다. 며느리 된장녀는 아들을 둘 낳았습니다. 당연히 명품교육을 시켰습니다. 수백만원짜리 영재학원을 보냈고, 팬티까지 폴로와 같은 브랜드를 입혔습니다. 이런 브랜드를 입히면 똥오줌이 더 잘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새벽에 줄을 서서 영어유치원을 보냈습니다. 몬테소리, 프뢰뵐 등 듣도보도 못한 사교육 교재들을 사들였습니다. 집안에는 애들 장난감으로 넘쳤습니다. 

 

시어머니의 과시욕에 며느리는 잘 부응했습니다. 생활용품은 주로 삼풍백화점에서 쇼핑했습니다제주도에서 여름휴가를 지내기 위해 자신의 명품차를 배로 부쳤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외제차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명품인생을 사는 것 같았을 겁니다.

 

이런 식의 명품인생이 지속가능할까요?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야기의 결말은 너무나 뻔합니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명동에 있던 빌딩을 팔아야 했습니다. 20여년 만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아이들 대학등록금이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친척들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 비참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너무 과장된 것 같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미세한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실화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된장녀 된장남들이 아주 많습니다. 나는 직장생활 40년 동안 된장녀 된장남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행복을 위해 미래를 희생시킨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미래를 기획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위해 어떤 전략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몸뚱아리를 명품으로 감싸는 현재가 중요합니다. 

 

혹시 내 아들도 이런 여자를 좋아할까봐, 아니 데려올까 봐 걱정입니다. 우리는 그럴 재산이 없으니까 안심해도 될 일이 아닙니다. 적은 스케일의 된장녀들도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는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첫째, 예쁜 여자들은 반드시 얼굴값을 내라고 할 것이므로 항상 조심해라.

둘째, 된장끼가 있는 인간들은 소위 명품에 기웃거린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우리 사례에서 보았듯이, 예쁜 된장녀들에 걸려들면 패가망신하기 십상입니다. 예쁜 이들이라고해서 모두 된장끼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쁘지 않다고해서 된장끼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예쁘지 않은 이들 중에도 된장끼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강력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된장녀 된장남들을 길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된장녀와 된장남들은 이 세계의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그 변화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 없습니다. 남들의 눈요기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치장하는 일에만 열중합니다. 자본주의 문화는 이렇게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자기를 성찰하는 사람이라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우리 자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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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특히 근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괴테는, 학문의 역사는 학문 그 자체라고 했다. 이 언명을 그대로 따르면, 민족의 역사는 민족 그 자체다... 


이 왜곡된 역사, 일그러진 역사, 헝크러진 역사.... 이런 더러운 역사를 만들어 온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독재자뿐만 아니라 그에 부역했던 사법부 판사들과 사정기관의 책임자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심판을 내려야 한다.


이 동영상은 <백년전쟁>에 이어 온 국민이 보아야 할 필수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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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장례식을 마치고...

 

가까운 친척과 친한 친구들을 모시고 간단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저는 관혼상제에 관한 기존의 관습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가족끼리만 장례를 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관혼상제를 만날 때마다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할 수도 없고 사회적 관행을 전혀 무시할 수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지인 몇몇 분에게 모친상을 알렸습니다. 부담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관행을 전혀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관행을 따를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조문해주신 분들께는 여기서라도 우선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런던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던 2015730일 페북에 어머니의 상태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죽음은 항상 삶의 일부분이다한국에서 "어머니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병원 의사로부터 위독 메시지는 금년 들어서만도 여러 번 받았다.

 

1920년대 일제시대에 태어나 초등학교를 일본어로 공부하고 해방이 되었지만 전쟁을 겪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여 아이들 넷을 낳았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시절의 대부분을 일제식민시대에 보냈지만, 나는 한번도 어머니가 일본어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지독하게 가난했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자식들 모두 대학교육을 시켰고... 어언 90년의 생애를 거의 한결같이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사셨다.

 

아주 오래전 유학중에 어머니가 잠시 독일에 오셨는데, 독일의 여러 명승지를 구경시켜 드렸다. 내가 독일 명승지를 어떻게 해설하겠는가... 여기가 어딘데 그냥 경치만 구경하시라고, 중세의 건축물들이 이딴 식으로 생겼다고 이곳저곳을 안내했다. 그런데, 하이델베르크에서 어머니가 관광객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일본인 단체관광객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 나서신 것이다. 나중에 겨우 만나 연유를 물으니 일본어가이드의 설명이 감동적이라는 얘기였다. 일본가이드의 설명이 훨씬 알찼고 재미있었으며 나의 안내가 영 시답잖았던 것이다.

 

당시 내가 놀란 것은, 어머니의 귀에 일본어가 잘 들렸다는 점이었다. 해방 후 한번도 일본어를 쓴 적이 없을 텐데도... 비록 강원도 시골 일제시대였이지만, 어머니가 마을에서 뛰어난 총명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를 친지와 지인을 통해 여러번 들었다. 그럼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진학을 하지 못하고 가사를 돌보다 결혼한 것이다. 시대를 잘못 만나 기구한 삶을 사신 것이다. 스스로는 극복할 수 없는 시대적 운명이었다.

 

이렇게 한 세대가 마무리 되는 것이다.

 

이제 그런 극복할 수 없는 운명이 자식들 세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현할 수 있는 교육철학과 경영철학이 정립되고 이것이 우리 사회의 모든 제도에 스며들어야 한다.


그리곤 201584일에는 페북에다 다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때만해도 어머니는 예전처럼 굴곡이 있겠지만 살아계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것은 금년 들어서만도 여러 차례 있었다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는 양상이 다르다면서누님은 내가 빨리 귀국했으면 한다고 했다임종을 위해 누님은 병원 옆에 모텔을 구해 왔다갔다 하고 있다면서 상황의 시급함을 알려 왔다휴대폰 저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다소 떨리고 있었다.

 

급히 비행기표를 구하느라 애를 썼는데 마침 내일 오전에 출발하는 표를 구했다...이렇게 급히 구하는 표는,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표현으로 하자면, 졸라 비싸다.

 

형수님으로부터 문자가 다시 왔다. 의사가 누님더러 모텔에 계실 필요 없이 그냥 집에 가 계셔도 된다고 하면서... 둘째 아들 얼굴을 못 봐서 돌아가시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단다...... 의사 말대로라면, 내가 귀국하면 어떻게 된다는 건가? 비행기표를 다시 취소해야 한다는 건가?


201586일 병원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10분이었습니다. 누님과 매형이 병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도착했을 때는 호흡과 맥박이 조금 낮은 상태였고 어머니가 우리를 알아보지는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오후에 들어서면서부터 심호흡을 계속 하시더니 기계장치들에 연결된 모니터의 그래프도 점차 굴곡이 낮아졌습니다. 편안한 표정이었습니다. 오후 416분부터는 굴곡이 아예 사라지고 그래프는 일자형을 그리며 옆으로 누워버렸습니다. 신체에서 아무런 전기적 신호가 발생하지 않는 의학적 사망의 표지였습니다. 의사는 마지막 점검을 했습니다. 허리를 숙여 어머니 눈꺼풀을 뒤집었고, 볼펜에 달린 불빛을 비추어 자세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두 눈의 눈꺼풀을 쓰다듬었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마지막 인사 같았습니다


의사의 말대로 아들얼굴을 보자 편안한 마음으로 곤히 잠드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죽음이 닥쳐오는 겁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가능합니다. ()가 곧 존재의 근거가 된다는 장 폴 사르트르의 사상은 죽음이 곧 삶의 근거가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죽음은 삶의 의미를 발생시킵니다. 만약 인간에게 죽음이 없고 현재의 삶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삶은 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돈과 권세와 명예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헐뜯으며 아귀다툼하는 세상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삶이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4년 전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급히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생명을 건졌지만, 의식을 거의 잃은 상태였습니다. 의사, 간호사, 간병인의 24시간 관찰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와상환자로 삶을 버텨왔습니다. 인생의 끄트머리에 생명을 연장하는 의술에 의지하면서 생물학적으로 버틸 수 있는 최대한의 삶을 사신 것입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애써주신 친척과 친지들, 그리고 장례의 모든 일정을 이끌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더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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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1_아내와 33년을 함께 살았으나 마치 며칠 같이 느껴진다.

 

만난 햇수로는 38년이 넘었다. 33년 전 한성대학교 근처 삼선동 산중턱의 어느 집 문간방을 하나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그렇게 가정을 꾸린 것이 엊그제 같다. 33년의 세월이 며칠 밖에 지나지 않은 느낌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야곱의 러브스토리가 나온다. 외삼촌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라반의 집에서 7년간 일하면서도 그것이 며칠 같이 느껴졌다고 고백한다. (창세기 2920) 이것이 진정 사랑의 힘이다.



2014년 여름휴가, 웨일즈를 여행하다가 휴식 중... 딸이 찍어준 사진


 

돌이켜보면, 우리 부부가 한 것이라곤 맡겨진 일을 각자 상식선에서 처리한 것밖에 없다. 육아법을 배운 적도 없지만, 두 아이를 낳아서 밥 먹이고 옷 입히고 학교를 보낸 것이 전부다.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아이들이 둘 다 유학을 가겠다고 해서 보내준 것밖에 없다. 내가 은행원출신이라서 그랬는지, 나중에는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둘 다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나는 영국에서,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사실 나의 젊은 시절에는 아이들에게 무심했다. 나 자신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아이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교육에 관한 어떤 원칙도 규율도 존재하지 않는다. 집안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일은 각자 알아서 한다는 것이 원칙이라면 원칙이다. 물론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던 미숙한 시기에는 잘못된 일을 저지르는 아이에 대해 엄하게 가르쳤지만, 기본적으로는 각자 자율적으로 하도록 내버려뒀다. 이제는 다들 성인이 되어 오히려 나를 가르치고 있다. 요즘은 아이들로부터 받는 교훈과 가르침이 나에게 큰 기쁨이 된다.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세어보니 그동안 나는 다섯 개의 직업을 거쳤다. 교사, 은행원, 컨설팅회사 대표, 기업체 임원, 대학교수를 했다. 평생을 조직원의 한 사람으로 일했다. 그 때마다 성인으로서 내가 다 알아서 할 일인데도 온갖 규정과 절차들이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규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복장까지...

 

가정에는 어떤 규정과 절차도 없지만 다들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왜 기업체의 구성원들을 성인으로 대접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온갖 규정과 절차로 옭아매고 그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처벌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성인이 규정과 절차를 어겼다면 그럴만한 불가피한 속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도 이런 사정을 돌아보지 않고 규정과 절차를 들어 처벌한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규정과 절차는 지배자의 통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조직은 지배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규정이나 절차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조직은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더 큰 목적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조직의 더 큰 목적과 이상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감동과 열정, 몰입과 헌신이 있어야 한다. 감동과 몰입 같은 정서적 상태는 명령과 통제에서 나오지 않는다. 규정과 절차에서 나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처벌한다고 해서 그런 감정상태가 나올 리 있겠는가?

 

집안에서는 성인으로서 다 알아서 잘 할 수 있는데 직장에 오면 미숙한 어린아이로 취급되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 규정이나 절차 없이도 잘되는 회사들이 부지기수로 많으며 이런 회사들이 생산성과 창의성이 훨씬 더 높다. 내가 오래전 번역한 책 셈코스토리를 보더라도 그렇다. 행복한 가정에는 어떤 규정과 절차가 없어도 모든 일이 잘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우리의 현실에서 기업조직은 가정과 다르다. 따라서 최소한의 규정과 절차가 필요하지만, 조직의 존재목적과 이상을 넘어설 수 없다. 규정과 절차가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목적과 이상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인류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규정과 절차를 따져 처벌(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사실은 구성원들을 억압하려는 지배자의 탐욕일 뿐이라는 점이다.

 

구성원들의 영혼에 감동과 비전을 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의 행태에 잘잘못을 따져 처벌하겠다고 위협하는 조직이 가장 불행한 조직이다. 이런 조직은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 조직운영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엔 너무나 많다.

 

33년을 한 여인과 살면서 가정이라는 조직을 꾸려 지금까지 왔다. 창세기의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몰입과 헌신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나는 규정과 절차가 없는 자율적인 가정과 같은 조직이야말로 생산성과 창의성이 높다는 사실을 또다시 확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신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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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고 볼 수가 없구나...]

나는 강원도 시골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농사를 지었다. 봄에는 모내기 하고, 여름에는 콩밭을 맸다. 가을에는 벼베기 등 추수를 도왔고, 겨울에는 산에서 땔나무를 했고 쇠여물도 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이런 일들을 했다. 적어도 내가 살던 곳에서는 그랬다. 5학년부터는 춘천이라는 도회지로 이사하는 바람에 농사에서 손을 뗐다.


논에 물을 대려면, 논에 물골을 만들어서 물을 흘려보내야 한다. 이렇게 논에다 직접 뿌려대면 벼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이 사진들은 모내기한 논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소방차들을 동원해서 스펙타클한 쑈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청와대의 멍청한 참모들에게 말한다... 쑈를 하려거든 제발 좀 제대로 해라.... 소방차 동원해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시냐?



링크 : 마른 논에 소방호스로 물 뿌리는 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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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리기업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특히 주식회사는 이익을 주주에게 돌려주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비용은 사회에 귀속시켜버린다. 기업은 사회에 대해 무책임하며 상황을 조작하며 때로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삼성서울병원의 행태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조엘 바칸 교수의 책들, 이 중에서도 "기업의 경제학"을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캐나다 UBC Law School 조엘 바칸(Joel Bakan, 1959~) 교수의 "기업은 사이코패스(psychopath)이며 파멸의 도구"라는 말에 공감한다. 탐욕의 화신인 영리기업은 어떤 형태로든지 강력히 통제되어야 한다. 


사회적 비용을 내뿜고 있는 영리기업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정부는 그 존재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온 국민이 분명히 알게 되었다. 삼성서울병원 역시 영리화된 기업일 뿐이라는 사실을... 


삼성서울병원의 정두련 감염내과 과장이 국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보면,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느 국회의원의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질문과 질타에 대해 "삼성서울병원이 뚫린 게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의사의 정신적 토대는 영리기업의 태도 그대로다. "이익은 자신에게, 비용은 사회에게"라는 영리기업의 캐치프레이즈를 그대로 읊어대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이라는 공공성을 띤 기관이, 그리고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말을 버젓이, 전혀 부끄러움도 없이 뱉어내고 있다. 이게 그냥 실수로 나온 말이 아니다. 이게 바로 주식회사 마인드다. 자신들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비용을 사회로 떠넘기는 것이다. 그들의 무의식적 발언이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끊임없이 공공병원을 줄이면서 영리병원을 확대하는 이 멍청한 의료정책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까지 만들고 있다.


정부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는 모든 사회악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부의 존재목적이 아닌가?


이와 관련하여, 홍기빈 박사의 칼럼을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세상읽기]영리병원의 '사회적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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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봐도 꽉 막혀 있을 때, 과거를 돌아보면......]


24년전, 그러니까 내 나이 30대 후반에 들어서는 1991년 5월 독일 중부지방의 기센대학교를 졸업하고 Diplom-Kaufmann(경영학석사)이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디플롬을 받는다는 건 참으로 힘든 과정입니다. 경제학, 경영학, 심리학, 때로는 철학까지 공부하느라 당시에는 지금보다 약 18kg쯤 빠진 상태였습니다...  


공부에 한 고비를 넘긴 셈이라 형님이 그 해 여름방학 때 독일에 왔습니다. 나를 보자 눈물이 났다는 겁니다. 어쩌다 이렇게 바짝 말랐는지...  이번 광주일보 초청 강연을 위해 광주와 담양을 함께 여행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기간 내내 비록 몸은 고생스러웠지만 행복했습니다. 희망이 있었거든요...


그해 여름방학을 맞아 나는 형님과 함께 스위스를 넘어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거쳐 로마로 들어갔습니다. 바티칸에서 형님이 한 장 찍어주었는데... 사진을 보면 바싹 말랐지만 그때도 항상 카메라를 들고 있었습니다.


1991년 8월 바티칸에서


로마에서 며칠을 묵은 뒤, 베네치아를 돌아보고 스위스를 거쳐 뮌헨에 도착했습니다. 집을 떠난지 꽤 돼서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집에 전화를 했더니, 대략 일주일 정도 병원에 계시다가 전화하기 얼마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우리 형제는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영적 동물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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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2_대학이란 무엇인가?

 

중세에 세워져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럽대학들의 경우, 당시 제후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대학을 세웠다. 법학, 신학, 의학과 같은 학문을 중시했다. 주변의 인접 국가들과의 공정한 거래와 협정을 맺기 위해 법이 필요했고, 교회권력과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신학에 의지해야 했고, 나아가 자신의 영토 내에 거주하는 신민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의술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다녔던 독일의 기센대학교도 1600년대 초에 당시 헤센공국의 제후였던 루드비히 5(Landgraf Ludwig V. von Hessen-Darmstadt)가 세웠다. 처음에는 법학, 신학, 철학, 의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기관이었다. 이름은 자연스럽게 루드비히스 대학교(Ludwigs-Universität)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이 대학은 히틀러 시대를 맞았다. 히틀러는 이 대학을 폐쇄하려고 했다. 대학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그러자 대학당국과 친나치성향의 교수와 학생들은 나치정부에 잘 보이기 위해 맘에 들지 않은 학자들의 책을 불태우고, 유대인 학생들을 추방하고, 박사학위를 취소하는 등의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다. 전후에는 미군의 도움을 받아 독일대학의 부흥작업에 들어갔다. 나치시대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19세기 21년간 이 대학의 교수로 근무했던 저명한 화학자의 이름을 따서 유스투스 리비히 대학교(Justus-Liebig-Universität Gießen)라고 바꾸었다. 60년대부터 늘어나던 학생은 70년대가 되어 교수와 학생이 종전 당시에 비해 수십 배로 증가했다. 독일대학의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런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대학도 그 사회의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다. 독일 대학의 이념은 19세기 독일통일을 이룩한 프로이센의 자유로운 진보정신(liberaler Geist)에서 나온다. 프로이센의 교육장관을 맡았던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1767~1835)가 베를린에 대학을 세우면서 오늘날 독일 대학의 전범이 되었다. 훔볼트는 국가개혁의 차원에서 대학을 세웠다. 부정부패와 권모술수로 가득 찬 세상을, 보다 이상적인 세계로 개혁할 필요가 있었다. 젊은이들을 위해 그들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학문연구와 인격도야를 위한 교육기관을 세운 것이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경제적 환경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대학생활을 몸소 체험하게 하고, 그런 체험을 통해 얻은 사상과 철학을 졸업한 후에도 이 부패한 세상에서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을 갖추도록 했다.

 

이런 교육철학은 주변의 여러 나라에도 전파되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의 대학에는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대학은 돈벌이를 하는 곳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이상적 세계를 체험하도록 하는 인격도야의 장이기 때문이다. 독일 대학생들은 본인이 원하면 생활보조비를 매월 1백만 원 수준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그 중 50%는 무상지원이고 나머지는 졸업 후에 직업을 갖게 되면 장기간에 걸쳐 원금만 분할상환하면 된다.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돈이 없어서 공부 못하는 경우란 상상할 수 없다.

 

심지어 나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유학기간 내내 독일 정부로부터 두 아이를 위한 어린이양육보조비와 월세보조비를 무상으로 지원받았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하곤 한다. 독일은 국가재정이 튼튼하고 돈이 많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돈이 없어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전후의 폐허 속에서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미국의 원조를 받으면서도 서독은 이런 제도를 시행했다. 공동체 정신이 있었기에 바로 무상교육을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상교육은 정신의 문제이지 재정의 문제가 아니다. 철학의 문제이지 돈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무상교육은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갑자기 독일을 따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던 반값등록금이라도 반드시 실현하기를 바란다. 이렇게라도 시작해서 차츰 사립대학교를 국공립대학교로 전환함으로써 등록금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고 무상교육체계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이야말로 국가백년대계일진대,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서둘러 교육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썩어빠진 사립대학들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대로 두면 제2, 3의 상지대, 수원대, 중앙대 등과 같은 참담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이런 대학을 어떻게 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더러운 자본의 논리로 학부모의 지갑을 털면서 학생들의 영혼을 빼앗고 있는 저 사립대학의 오너들을 보라...

 

나는 여기서 사립대학의 오너들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미래를 보라. 당신들이 대학의 온갖 비리와 불법을 통해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할수록 점점 돈이 벌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곧 그런 세상이 올 것이다. 당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대는 투명하게 바뀔 것이다.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이 아직 버티고 있긴 하지만...





[참고 링크)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 무슨 짓을 했길래

 

박용성씨가 저지른 중앙대와 같은 중대한 사태에 직면하여, 교육부 관료들이 국사교과서 내용이나 만지작거리고, 뉴라이트니 뉴레프트니 하면서 다투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자본화, 상업화, 부패화, 비리화, 불법화인가? 사립대학들은 어디를 가도 자본의 논리로 바뀌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상업화되었다. 돈 없이는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대학생들이 도대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이런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어떻게 사회를 개혁하겠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독일 교육제도의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교육이 우리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믿는 확신범이다. 대학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기업이 아니다. 대학은 대학다워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훔볼트의 개혁정신을 잇는 교육개혁가가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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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2015-04-19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세월호 참사로 졸지에 유가족이 된 분들을 거리의 투사로 내몰고 있는 무책임한 정부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던 중....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유투브를 검색하다가 독일 뒤셀도르프 음대 유학생들이 만든 동영상을 찾았다. 여러번 들으면서 흐르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구나....



위 링크(유투브 동영상)가 열리지 않는 분들을 위하여... 아래 동영상을 다시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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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Inside Job"

찰스 퍼거슨 감독이 만든 작품입니다. 

이 유명한 다큐를 꼭 한번은 보시기 바랍니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증명한 다큐입니다.

지인이 보내준 동영상이라서 별 문제가 없을 줄 알고 올렸더니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사진만 올렸습니다. 아무쪼록 다운로드 받으셔서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특징은 더러운 로비와 경쟁의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WASP-M(백인 앵글로색슨계 개신교도인 남성)에 의해서 형성된 지배와 통제의 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의 역사는 인류보편사적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그들은 매우 이례적인 특수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상태에서 독립할 때 주창했던 생명, 자유, 행복추구의 정신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서 추구했다기보다는 영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이득과 기득권층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부를 개척할 때도 수백만의 인디언 원주민을 학살했습니다. 이것은 프론티어정신으로 미화되곤 했습니다. 

오늘날 세계 최강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자랑하지만, 의료보험이 없는 수천만명의 시민들은 병원에도 제대로 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클린턴과 오바마 대통령은 의료보험을 개혁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그 때마다 공화당 보수파들에 의해 무산되어 왔습니다. 

미국에서 생성된 경영이론을 잘 살펴보면 지배와 통제를 위한 방법과 수단이 그 이론 속에 스며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계급주의적 발상이 미국식 이론과 사상에 배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식 이론을 받아들이려고 할 때는 반드시 이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미국에게서 배울 것이 아주 많습니다. 부패할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그것이 시스템을 통해 자정작용이 일어나도록 관리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것은 이미 기득권층이 먹튀를 한 후일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진 후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스 퍼거슨 감독은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있습니다.

미국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신청과 최대 보험사 AIG의 몰락은 미국 경제를 뒤흔들었다. 월 스트리트 쇼크로 글로벌 주식 시장은 그 즉시 휘청거렸다. 전 세계는 수십 조 달러의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경제 침체는 계속되었다. 집 값과 자산은 대폭락했고, 3천만 명이 해고됐으며, 5천만 서민들은 극빈자가 되었다. 세계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았지만… 여전히 돈과 권력을 손에 쥐고 있을 주범들은 과연 어디 있는가.


아무쪼록 많은 분들의 감상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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