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록/에세이'에 해당되는 글 100건

  1. 2008.10.21 비전체계_핵심목적을 정해야…
  2. 2008.10.21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2)
  3. 2008.10.21 비전체계_장기목표를 세워야…
  4. 2008.10.21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 (2)
  5. 2008.10.21 마인드 프로그램
  6. 2008.10.21 리더십
  7. 2008.10.21 인사관리
  8. 2008.10.21 역량관리
  9. 2008.10.21 성과관리
  10. 2008.10.21 인간과 조직

비전(vision)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야 합니다. 비전이 단순히 장기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꿈으로만 해석되어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꿈을 꾸는 것은 좋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하려면 시스템화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전 역시 시스템화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비전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핵심목적 또는 핵심이념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사명(mission)이라고도 합니다.

핵심목적 또는 핵심이념은 어떤 형태로든지 반드시 정립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이든 조직이든 상관없이 존재이유와 존재목적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제약회사가 "우리는 질병없는 세상을 추구한다"와 같이 질병과의 싸움을 회사의 존재이유로 명확히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광고회사는 "우리는 탁월한 광고를 제작한다. 탁월한 광고란 특정 주제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 도발적이고, 너무나 대담하며, 너무나 신선하고, 너무나 매력적이고, 너무나 인간적이며, 너무나 믿음이 가고, 너무나 초점이 잘 잡혀 있어서 출시하자마자 즉각적인 매출액이 증가하고, 그와 동시에 오랫동안 그 명성이 사라지지 않는 광고를 말한다."라고 존재이유, 즉 사명(mission)을 선언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세상을 더 좋게 바꾼다"로 정리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존재목적을 정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없으면 방향을 잃습니다. 항구를 떠난 배가 방향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망망 대해를 떠다니다가 좌초하고 말 것입니다. 이 목적이 불분명하여 좌초한 인생들이 많습니다. 나 또한 젊은 시절 목적을 잃고 방황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다 해보고 싶었습니다. 감동적인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배우도 해보고 싶었고,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군인의 날에는 멋진 퍼레이드를 보고나서 군인이 되고 싶었고, 선거철에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007시리즈가 유행할 때는 스파이가 되고 싶었고 스파이를 빼내기 위해 협상하는 외교관도 되고 싶었습니다. 멋진 음악이 나를 감동시킬 때는 작곡가나 지휘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내 삶의 존재이유와 목적을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핵심목적을 정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서구문명에서 상상력을 가장 잘 발휘하는 민족은 아마도 유태인일 것입니다.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추상에 가까운 상상력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추상적 사고력(abstraction thinking)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할 것입니다.

창조적 전문가들에게 필요로 하는 추상적 사고력이 유태인들에게 유독 뛰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인구의 2%내외에 불과한 유태인들이 아이비 리그라고 불리는 일류대학교수들의 30%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 전체 부의
  40%를 좌지우지한다고 합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15%가 유태인이랍니다. 유태기독교적인 종교적 영향은 차치하더라도 인류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민족이다. 유태인들을 우리는 조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카를 마르크스에서부터 아인슈타인을 거쳐 스타벅스의 CEO인 하워드 슐츠까지, 그리고 작가인 토마스 만에서부터 지휘자 번스타인까지.

나는 여기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차이를 봅니다. 듣는 전통과 보는 전통 말입니다. 히브리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은 것을 더 중시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는 것보다는 듣는 것을 더 중시했고, 선호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우상을 섬기던 고향을 떠나라는 음성을 듣고 떠났습니다. 그 뒤의 수많은 선지자들도 야훼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모습이 구약성경의 전반에 흐릅니다. 인간은 야훼를 형상화하거나 시각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시각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자 그것과 그런 행위 자체를 죄악시 했고 가차없이 징벌했습니다. 이러한 야훼의 전설은 '토라'라고 불리는 유태인들의 경전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구약성경의 모세 5경입니다. 유태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탈무드는 구전동화같은 엄청난 분량의 이야기들입니다. 이것은 후손들에게 반드시 들려주어야 할 교육자료로 활용됩니다. 보여주는 자료가 아니라 들려주는 자료로 말입니다.

신약성경에도 바울이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에 예수의 음성을 듣고 사도가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쓴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유명한 말을 합니다. 믿음이란 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듣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유태기독교적인 전통에서 음악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음악 중에서도 특히 바하의 신앙고백적 음악은 나의 가슴을 저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는 서양문명이라는 것이 야훼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름'과 기독교인들의 순종적인 '들음'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기독교문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직업생활과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습니다. 독일인들의 국경일이라는 게 대개 성경의 절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죠. 부활절, 사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등. 독일어의 부르다는 동사는 rufen인데, 부름을 당했다는 수동태가 되면 berufen이 됩니다. 이것의 명사형이 바로 Beruf입니. "베루프"라는 말이 곧 직업이라는 뜻인데, 그 직업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야훼 하나님이 나를 그 직업에 종사하도록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찌 그 일에 조금이라도 잘못 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서양인들은 어떤 일에서든 장인(Meister, 匠人)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서양문명을 지탱하게 하는 직업관입니다.

반면에, 그리스 문명에는 여러 신들을 형상화, 즉 시각화하여 보도록 했습니다. 그들에게 인간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희로애락을 느끼도록 상황을 설정하고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조각과 미술품들은 그리스적인 전통을 따릅니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에 있는 수많은 미술품들과 조각상들은 히브리적 전통이 아니라 헬레니즘 전통의 영향을 받응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인류역사는 크게 보아서 문명간에 서로 충돌하기보다는 상호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 더 올바른 시각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차이는 오늘날 유태인과 비유태인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청각형 미래전망의 특성은 유태인 후손들에게까지 전달되어 왔습니다. 헨리 키신저와 같은 유태인들이 미래를 상상하고 기획하고 전략을 만들어 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유태기독교적인 전통에서 미래를 상상하고 기획하는 것은 구원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비전(vision)은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비록 고단하고 힘들더라도 내세에는 천국에 간다는 것이죠. 이 땅에 산다는 것은 곧 천국에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나와 있는 대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 인간의 존재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이 너무도 명백합니다. 그것이 곧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미래전망이라는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기독교 자체의 비전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교인들은 끊임없이 그런 훈련을 받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기독교적인 문화 속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비전을 세우는 일을 그렇게 힘들어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고른 적당한 직업에서 최고의 장인(Meister)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워크숍과 세미나에서 개인적 비전을 세우도록 훈련시켰왔습니다. 내가 놀라는 것은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비전을 세우는데 있어 마치 생면부지 처음 당해 보는 것처럼 아주 난감해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 원인을 금새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엉뚱한 훈련을 받고 있어서 미래전망과 추상력을 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현실은 오로지 자식 잘 되고 승진 잘 되고 사업 잘 되고 권력을 크게 잡고 돈 많이 벌어서 부자되기를 기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무당집에 다니는 것과 거의 다를 바 없습니다. 형식은 기독교지만, 내용은 샤마니즘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적 신념과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일이나 분야에서 최고의 장인(Meister)이 되는 것, 그래서 자기 자신과 이웃에 공헌하는 것, 이것이 곧 인생의 존재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나는 리더십(leadership)이란 "비전(vision)을 향하여 시스템(system)을 정비하고 인재(talent)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

조직을 이끌든 자기 자신을 이끌든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를 잘 하면 됩니.

① 비전 설정

② 시스템 정비

③ 인재 확보

이 세 가지를 잘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차차 설명해 나갈 것입니다. 이것을 잘 배워서 실천하면 누구나 잘 할 수 있습니다.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를 잘 배워서 익히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세 가지를 무시한 채, 리더가 되겠다고 또는 리더십을 발휘하겠다고 야단 법석을 떨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시중에서 가르치고 있는 리더십 교육과정을 살펴봐도, 역시 이런 기초적인 훈련보다는 기술적인 테크닉에 치중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리더십 교육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리더십 테크닉이 전혀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리더십에 관한 정신모형(mental model)을 만드는 것입니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젊은이들이 재테크에 미치다니


나에게는 조금 걱정이 생겼습니다. 얼마전에 보니까 20대에 재테크에 미쳐야 한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니, 이건 정말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민족의 장래가 걱정입니다. 20~30대에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공부에 쏟아도 모자랄 텐데, 재테크에 미치다니...... 재테크에 미치지 않아도 소유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세워서 철저히 실천하면 재테크에 미치는 것보다 더 큰 부()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검증된 방법론이고 그렇게 어렵지도 않습니다. 이 방법론을 따르면 바라는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재테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천천히 그러나 확실한 비전을 세워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하면 바라는 모든 것을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시간 내에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천천히 그 방법론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젊은이들이 재테크에 미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사고력을 기르는 공부에 미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비전>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합니다. 비전체계는 핵심목적, 장기목표, 핵심가치로 구성됩니다. <핵심목적 또는 사명>은 다른 포스트에서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장기목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장기목표를 단순히 비전(vision)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하고 있죠. 먼 미래에 달성해야 할 바람직한 목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소망을 담은 구체적인 꿈입니다. 여기서 장기를 어느 정도의 시간을 말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짧게는 5~10, 길게는 50년을 볼 수도 있고, 아주 길게는 다음의 몇 세대 후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환경문제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정도로 길게 봅니다. 환경이란 한번 망쳐 놓으면 회복되는 데 많은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신의 생애 전체를 놓고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내가 죽은 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를 명확히 하면 자신의 최장기 목표가 설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자신의 전망을 제대로 하지 못하죠. 그래서 아주 짧은 미래를 내다 볼 뿐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정도까지의 전망만을 생각합니다. 미래를 보는 눈도 훈련하지 않으면 줄어들기 때문에 목전의 이익에 급급한 인간으로 전락합니다. 그래서 늘 훈련이 필요합니다.


소유의 목표와 존재의 목표


아무튼 장기목표는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 장기목표에는 두 가지를 포함해야 하고, 균형 잡힌 수준에서 통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소유의 목표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둘 중에 소유의 목표에 치중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소유가 존재를 대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는 진정한 존재양식이란 소유를 배제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인류학적인 그리고 철학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무소유의 공동체 사회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실 사회에서 소유를 배제한 존재양식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소유는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육체적 편안함은 커다란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은행계좌의 부족으로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소유가 없다면, 미래의 의식주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의 의식주조차 제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소유는 이렇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좋은 수단입니다. 물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존경할만한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경우이고, 일반적인 대다수 시민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부끄럽지만, 내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나는 성북구 삼선동의 산꼭대기 문간방에 250만원짜리 전세를 얻어서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집들이 있는데 왜 나에게는 잠잘만한 집 한 채를 가지지 못했을까를 생각하면서, 소유의 편안함을 갈망했었습니다. 삶의 모든 형편이 불편했습니다. 밤에 일어나서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밤중에 일어나서 19공탄을 갈아야 했고, 더운 물이 없어서 연탄불에 데워 세수를 해야 했습니다. ...

30여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은 남쪽으로 한강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남산타워가 보이는 조망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부동산 투자를 포함한 어떠한 재테크도 해본 적도 없습니다. (사실 그럴 의지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에너지와 시간을 공부하고 일하는 데 썼으니까요), 그러나  부자는 아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소유를 성취했습니다. 그 동안 별로 고생한 것 같지도 않은데, 아내와 다 장성한 두 자녀, 그리고 부부의 노후를 걱정하지 않을 만큼의 부를 소유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죠.


소유의 목표가 가져다 준 후유증

내가 잘 아는 한 분은 자신이 소유에 집착할수록 소유의 목표가 멀어지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 분은 한 가지 사례를 들려 주었습니다. 21세기로 들어서려는 전환기에 IT벤처 붐이 일었습니다. 아는 사람들의 권유로 벤처에 투자하면 몇 배의 이익을, 아니 몇 십 배의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상당한 금액을 투자했습니다. 지금은 다 휴지조각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 투자하게 된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불노소득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노동의 대가가 아닌 묻지마 투자로 일확천금을 노렸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합리화했다고 합니다. 현대인으로서 시장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투자해 두는 게 좋다고 자신의 재테크를 정당화했습니다. 그 후에도 소소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합니다.

소유는 마약과 같아서 소유할수록 자꾸 더 많은 소유를 추구하게 되고, 소유 자체가 목적으로 변해 버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소유의 무서운 특성을 무시한 채, "더 많이 더 많이"를 마음으로 외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문제가 발생합니다.


가족끼리 오손도손 잘 살다가 어느 날 거액의 토지 보상금을 받은 후부터는 형제간에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다가 형제를 살인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 재벌 2세들의 재산 다툼을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생각하지만, 소유의 미묘한 독성을 이해한다면 형제는 고사하고 부자간에도 서로 싸움질하는 게 소유의 특성입니다. 소유에 맛들기 시작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죠. 겉잡을 수 없이 자신의 정신세계를 황폐하게 만들어 갑니다. 자자손손 먹고 살 수 있는 재산을 소유한 사람도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하려고 불법과 비리를 거침없이 저지르는 것을 보아도 소유는 인간의 마음을 좀먹는 마약과 같습니다. 성경은 그래서 모든 악의 근원이 소유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소유는 아주 잘 다루어야 할, 깨지기 쉬운 유리잔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소유를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로 살 수만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인생결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속에서 산다면 무소유가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충분히 소유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소유가 나를 소유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진정한 소유의 목표는 존재의 목표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나는 소유에 대해서도 장기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소유가 나를 소유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입니다.
10년 후에 부장 또는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도 소유입니다. 넓은 정원에 아름다운 정원수와 잔디가 깔린 전원주택이나 별장고급 승용차도 소유의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사법고시 합격이나 MBA학위 취득도 소유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소유물들을 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소유의 목표가 워낙 강력하게 마음을 끌어 당기기 때문에, 더구나 그런 것을 조장하는 각종 광고물과 언론매체와 서적들 때문에, 그리고 감성과 이목을 중시하는 풍조 때문에 존재의 목표는 최근 들어 급격히 그 가치가 저하되고 있습니다
. 소유에 의해 존재가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한 꺼풀 들춰보면
,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과는 반대로 존재가 소유를 결정합니다. 인간의 실존적 사유가 곧 소유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목표란 자기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만들어 가는 목표입니다. 영혼의 능력을 발휘하는 정신적이고도 영적인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마음의 깊이와 넓이만큼 세계를 창조하고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사고력 또는 해석체계를 확장하는 것만이 삶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목표를 세우세요


존재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운다면
, 사람, 자연, 시간 그리고 현상에 대한 해석체계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어린 아이와 같이 사물을 보다가 장성한 후에는 어린 아이의 생각을 점차 버리는 방식입니다. 세상을 불투명하게 보다가 보다 더 투명하게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인식체계와 해석체계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       무기력과 절망 속에 있던 모습에서 용기와 열망의 불꽃을 지피는 자신의 모습을 생생하게 바라봅니다.

-       부정적인 언어습관과 제한적 신념들이 긍정적으로 변화됩니다.

-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자존심과 질투심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과 인내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       불안과 초조감을 일으키는 환경에서도 마음의 안정과 고요한 평화를 느낍니다.

-       어떠한 소유물도 자신의 존재를 흔들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렇게 소유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존재양식으로 스스로를 바꿔 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이것이 소유의 목표를 달성해 가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소유의 목표까지 자연스럽게 성취하게 됩니다.


소유는 죄악이라는 생각과 소유는 만능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생각에서 우리는 종종 헷갈립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둘 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수도원의 수도승이 아닌 한, 소유 없는 존재가 불가능하며, 존재 없는 소유는 무가치하거나 해악을 끼칩니다. 소유의 목표와 존재의 목표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아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이렇게
 장기목표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그 목표를 향한 자신감으로 서서히 변화되어 나갈 것입니다. 존재의 목표가 분명하다면 소유의 목표는 반드시 따라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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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이명박 후보가 수많은 의혹과 시시비비를 뒤로 한 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것은 서민 경제의 활성화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큰 기대에 초를 칠 생각은 없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니다.

진보적 색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개혁적 의욕이 앞서는 바람에 종종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욕망의 구조를 무시합니다. 그 댓가를 이번 대선에서 톡톡히 치렀습니다. 자본은 본능적 욕망의 구조를 가장 잘 파악합니다.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은 자본과 인간의 욕망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을 적절히 활용하지 않은 개혁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볼셰비키 혁명으로부터 20세기의 수많은 공산주의 혁명이 자본과 인간의 욕망구조를 무시했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보수적인 색채를 띤 사람들은 시장의 원리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통해 기득권을 쟁취하는 법을 터득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욕망구조를 무시하지 않는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할 것입니다. 여기에 자본은 냄새를 맡게 됩니. 자본의 맛을 안 사람들은 도저히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자본이란 마약과 같습니다. 마약을 잘 쓰면 약이 되지만, 그것에 탐닉하면 독이 됩니다. 자본에 내재하는 부패와 비리의 속성은 카지노의 잭팟만큼이나 짜릿짜릿한 쾌감을 안겨줍니다. 이 쾌감에 일단 도취되면 그것을 끊을래야 끊을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학습된 무능력상태(learned helplessness)에 빠집니다. 수십년간 보수정권이 남긴 유산은 부패와 무능이었습니다. 외환위기는 그래서 온 것입니다. 국민이 보수정권에 신물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수도승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진보진영은 이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욕망구조에 소구하는 시장메커니즘을 결코 무시해선 안 됩니다. 안희정은 폐족이라는 말까지 사용하고 있으나, 진보진영은 일시적 패배에 자학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와 아주 비슷한 현대사를 경험했던 독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제2차 대전 이후에 보수적인 기민당(콘라트 아데나워)의 장기집권을 무너뜨리고 진보적인 사민당(빌리 브란트) 정부가 들어서서 동서화해 무드를 조성했습니다. 간첩사건 등 정치적 이슈 때문에 다시 기민당 정부(헬무트 콜)로 넘어 가서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통일 이후에 사민당(게하르트 슈뢰더) 정부가 개혁을 시도했고, 지금은 다시 기민당(앙겔라 메르켈)이 정부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비행기와 새가 비상하려면 좌우의 날개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정부나 국가의 발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자본이라는 마약 앞에 무기력해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보수진영으로서의 이명박 정부는 이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시장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지만, 수도승처럼 자본의 유혹과 부패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뿐입니다.

첫째, 공정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국민적 합의하에 매력적인 국가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떡고물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논공행상 논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합니다. 인사에서 가장 공정한 방식은 역량중심(competency-based)의 선발과 배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투명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업무처리의 불투명성이 많은 의혹을 일으킵니다. 의혹과 부패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은 투명성을 높이는 길밖에 없습니다.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검찰도 특검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셋째,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무리 공정하고 투명해도 비효율적으로 돼서는 안 됩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되, 적은 비용으로 해내야 합니다. 사실 효율성은 투명성과 공정성으로부터 선순환하는 구조로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올라갑니다.

만약, 이 세 가지 원리를 잘 지켜내면 서구 선진국 이상의 부강한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지켜낼 수 있는 구체적인 시스템은 성과관리시스템(performance management system)와 역량관리시스템(competency management system)을 구축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어줍잖게 시도했는데 제도를 올바로 구축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공직자들 스스로 자신이 맡고 있는 직무의 존재목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이것이 그 원인입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이 세가지 원리가 어느 하나라도 구부러지거나 흠결이 생기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신뢰를 잃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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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분노, 기쁨, 슬픔 등과 같은 마음의 상태는 의식보다는 무의식(잠재의식)에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무의식(잠재의식)은 마음의 심연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마음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에 부합하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방법과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마음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맞닥뜨리면 자동적으로 어떤 반응, 즉 분노, 기쁨, 슬픔 등과 같은 마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무의식에서 자동화된 마음의 프로그램(mind program) 때문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습니다. 프로그램은 명령어들의 조합인데, 컴퓨터는 프로그램의 종류와 특성, 그리고 그 질적 수준에 따라 다른 결과물을 산출해 냅니다.

마음의 세계도 이와 같습니다.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마음의 명령어는 가치(values)와 신념(beliefs)입니다. 부정적 가치와 제한적 신념보다는 긍정적 가치와 적극적 신념이 더 큰 성과를 가져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에서 긍정적 가치와 적극적 신념을 자동적으로 프로그래밍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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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있어 비전, 전략, 조직, 성과, 역량, 인사의 여섯 가지 개념을 반드시 체계화함으로써 이론으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습득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론을 활용하여 조직구성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곧 리더십입니다. 마음의 작용원리를 잘 이해한다면 리더는 자신이 활용하는 이론적 수단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은 신비한 영역입니다. 뇌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마음과 뇌가 상호작용하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마음과 몸의 상관성이 매우 깊다는 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하는 마음과 뇌의 작동원리에 부합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면, 조직의 성과는 크게 향상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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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에 따른 보상, 역량에 따른 선발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세심한 인사관리가 필요합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사가 만사가 되려면, 인사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공정성과 투명성입니다. 인사업무를 집행할 때 공정해야 투명할 수 있고, 투명해야 공정해집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절차의 정립은 살아 움직이는 조직문화 또는 비전/목적/방향을 지향하는 조직풍토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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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성과는 조직구성원들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역량은 우수한 성과창출의 원인이 되는 내적 속성을 말합니다. 일부에서는 역량을 바람직한 행동패턴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행동은 행동일 뿐 역량이 아닙니다. 역량은 바람직한 행동을 일으키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무수행에 필요한 역량요소와 그 수준을 정의한 것을 역량모형(competency model)이라고 합니다. 조직구성원들은 역량모형에 비추어 자신의 보유역량이 어느 수준인지를 진단하여 어느 역량을 어디까지 개발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여기에는 경영학의 인사조직분야뿐만 아니라 인접학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역량을 평가하려면 상당한 공부와 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역량평가(competency assessment)는 인재의 선발과 개발에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이 분야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역량평가의 전문가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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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목적, 방향이 정립되고 조직이 구조화되고 난 후에는 조직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성과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입니다. 성과지표(indicator)가 아니라 성과(performance)를 정의하는 것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산출물(output) 또는 최종성과(outcome)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성과(成果)라는 용어는 자원의 투입과 변용과정, 그리고 결과물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일컫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과와 성과지표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과지표가 곧 성과가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개의 경우 성과지표는 성과의 한 부분만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과지표가 아닌 성과를 정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어렵고 논란이 많은 작업입니다. 그래서 성과관리에 관한 수많은 이론과 주장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이론을 선택하느냐가 조직의 성과향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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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항상 뭔가를 욕망합니다. 그 욕망이 충족되면 또 다른 욕망이 떠오릅니다. 이것이 충족되면 또다시 새로운 욕망이 떠오르지요. 이러한 반복의 과정을 받다가 어느 수준에서 멈추게 됩니다. 멈추어야 할 지점에서 멈추지 못하는 욕망은 인간을 좌절케 합니다. 멈추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개의 경우에는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춥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멈추지 못하는 욕망 때문에 뭔가를 향하여 의미 있는 것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기도 합니다. 이 욕망은 개처럼 본능의 폐쇄된 영역에 갇혀 있지 않고 초월적 세계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실존적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이 분출하는 욕망을 실존적 의미로 승화시키도록 돕는 수단이 바로 조직입니다. 조직은 인간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구조화되고 시스템화되어야 합니다. 만약 조직이 잘못 설계되면 오히려 인간의 잠재력을 퇴화시키고 삶을 고통의 늪으로 떨어지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것을 조직의 폭정’ 또는 '제도의 폭력'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폭정과 폭력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조직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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