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유투브를 들어보자.  요즘 유행하는 모양인데... 
생각해 보라. 우리는 가끔 이런 황당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직장에서 이렇게 소통이 불가능한 경우가 아주 가끔 발생한다. 

상담녀처럼 지혜롭게 처신하면 된다. 직장에서도 대화와 소통을 시도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전화를 끊어버리듯이 관계를 끊어버리면 된다.

이렇게 몰상식하고 무지와 무례로 가득찬 인간들과 상종하는 것은 인생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더러운 상황에 직면하지 않게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러나 어쩌랴 똥 밟은 것과 같은 이런 상황을 운명처럼 맞닥뜨리기도 한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삼가 명복을 빕니다.  





유신 독재와 법관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It's the last straw that breaks the camel's back"


이것은 서양 속담이다. 등에 짐을 잔뜩 싣고 사막을 가로 질러 가던 낙타가 기진맥진한 상태에 있었다. 주인이 지푸라기 하나를 낙타 등에 더 얹었다. 그러자 낙타가 주저앉고 말았다. 그 마지막 지푸라기가 인내의 한계치를 넘어서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그 마지막 지푸라기 때문에 낙타가 힘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회사의 제품에 오랫동안 고객의 불만이 많았다. 직원들은 고객의 불만전화를 응대하느라 고생이 컸다. 어느 날 아르바이트 학생이 고객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 학생의 응대가 소비자의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했다. 소비자들은 사장실로 쳐들어가서 삿대질을 하면서 환불해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사장은 아르바이트 학생의 잘못된 응대가 원인이라고 판단하여 그 학생에게 벌을 주고 해고해버렸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마지막 지푸라기가 된 것이다.



쌍용차 경영이 엉망이 되게 한 마지막 지푸라기가 노동자들이었구나.


세월호 침몰 사건의 마지막 지푸라기가 유병언이었구나.


땅콩항공의 마지막 지푸라기가 여상무였구나.


정윤회와 십상시 사건의 마지막 지푸라기는 박관천 경정이었구나.


국가운영을 이토록 엉망진창이 되도록 한 마지막 지푸라기는 이정희 통진당 대표였구나.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지배욕이 충족되는 순간, 인간의 두뇌에는 심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여러번 반복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조직설계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이것은 일제 군국주의 이념에 의해 설계된 조직구조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의 장에게 모든 권력을 몰아주고 나서, 조직운영을 통째로 그의 선의에 맡겨버리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단 권력을 장악하면 그 권력이 끝날 때까지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진다. 일선학교의 교장들도 마찬가지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모든 조직행태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조직설계의 기본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에 이런 꼴이 나타난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어떤 특정인의 선의에 조직 전체가 내맡겨져서는 안 된다. 시스템에 의해 집단지성이 발현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핵심은 조직 내의 의사결정구조를 토론과 합의의 원칙이 실현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아래 글은 페이스북 친구인 박찬운 변호사(한양대 로스쿨 교수)의 견해를 기록해 둔다.
내 생각에도 그렇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야 정상이 아닌가...



박찬운 변호사(한양대 로스쿨 교수)



[통진당 해산결정 중 국회의원 상실판단에 관한 나의 생각]


통진당 해산결정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중대기로에 섰다.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은 명확하다. 있을 수 없는 결정이다.


그런데 결정 중 국회의원 상실판단은 해산결정과 달리 법률적 각도에서는 더욱 큰 문제를 안고 있다. 해산결정은 법률적으로 보면 헌재의 권한사항이니 동의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우길 수 있지만, 국회의원 상실부분은 헌재의 권한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그 판단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면 헌재로서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통진당 국회의원들은 행정재판으로 '국회의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그 소송은 제기되자마자 각하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고,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이 소송이 설마 가능하겠는가 하는 회의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에 대해 순수하게 법률가적 입장을 피력하고자 한다.


1. 헌재결정문을 보면 헌재는 국회의원 상실에 대해서는 헌법 및 법률에 관련 규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국회의원의 상실은 정당해산심판제도의 본질적 효과라고 했다.


2. 그러나 국회의원이라는 헌법기관이 헌법 및 법률의 자격상실 규정에 따라 직위가 상실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헌재가 정당해산 과정에서 본질적 효과를 운운하면서 상실판단을 한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초헌법적, 초법률적 판단이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헌법학자와 법률가들이 이미 말을 했으니 나는 특별히 그것을 재론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이야기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사태가 발생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한 문제다.


만일 통진당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이 결정 직전에 탈당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경우에는 헌재로서는 국회의원상실결정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헌재가 국회의원 상실결정을 하면서 이유로 제시한 정당해산결정의 실효성 보장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헌재로서는 방법이 없게 된다. (설마 그 경우에도 국회의원 상실결정을 했을까? 그건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헌재 결정 직전에 탈당한 국회의원은 살고, 탈당하지 않은 국회의원만 죽이는 것이 되어, 헌재결정의 부당성이 더욱 부각되었을 것이다.


3. 그렇다면 헌재의 초헌법적, 초법률적 판단의 효력이 무엇인가. 내가 보기엔 그것은 '판단 무효'이다. 그것은 헌재가 결정은 했지만 원시적으로 효력을 발생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것이다.


4. 헌재결정의 무효라는 개념이 있을 수 있을까?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법원 판결이 무효일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 유사하다. 법원에서도 판결의 무효라는 개념이 있다. 보통 법원판결은 문제가 있을 때 상소 혹은 재심의 방법으로 그것을 고칠 수가 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대법원이 판결을 하면서 대법원의 권한사항이 아닌 법률의 위헌판단을 하였다고 하자. 대법원이 특정법률에 대해 위헌결정을 한 것이다. 헌재가 할 것을 법원이 한 것이다. 이 판결이 확정된 경우, 그 판결에 따라 해당 법률이 무효가 될까? 아니다. 그것은 대법원 판결이 원천적으로 무효이기 때문에, 설사 재심으로 고칠 수 없는 상황이라도, 그 판결의 효력은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 정부는 그 법률의 유효를 주장할 것이고, 그에 따라 법률을 집행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해당사자는 헌법재판을 청구할 것이고, 결국 헌재에 의해 위헌법률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다.


5. 이 같은 이치로 이번 헌재결정 중 국회의원 상실판단은 무효로 볼 수 있다.


6. 문제는 선관위가 이 결정이 난 후 해당 국회의원에 대해 국회의원 상실조치를 취하고 후속절차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해당 국회의원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7. 행정법원에 '국회의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맞고, 동시에 임시지위를 구하는 가처분신청을 하는 것도 맞다.


8. 혹자는 헌재결정은 최종적이라 그것을 다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는 데, 이것은 정당해산결정에 한해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지위확인소송에서는 그렇지 않다.


9. 국회의원지위확인소송에서는 헌재결정의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다. 동일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은 얼마든지 원고가 주장하는 헌재결정의 무효를 판단할 수 있다.


10. 내 예상으로는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에 가서 최종적인 판단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법원이 헌재가 한 국회의원 상실부분 판단이 무효라고 판단하면 이 문제는 최종적으로 지위확인 승소로 끝날 것이다.


11. 법률가적 입장에서만 말하면 대법원이 이 문제를 쉽게 각하하거나 기각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판단한다. 왜냐하면 대법원이 이 문제를 헌재입장대로 결론을 내면 헌법과 법률에 없는 헌재권한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권한을 가지고 싸우는 두 기관의 속성상 쉽지 않은 결론일 것이다. 대법원이 매우 곤혹스런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2014-12-24

 

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보통의 상식을 가진 평범한 사람으로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이해할 수 없다. 법이라는 것이 그 시대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 아닌가?

 

21세기 인류의 정신사(精神史)의 강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자()들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런 멍청한 판결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이데올로기 실험은 이미 20세기로 종말을 고했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어떤 자들이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추종하고 있다는 말인가? 북한집단이 우리의 보편적 상식 수준에서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인류역사에 비추어보더라도 북한은 쓰레기 같은 족벌체제로 연명하고 있는 집단이 아닌가? 설사 남한의 일부 세력이 그런 쓰레기 족벌체제를 추종한다고 치자. 우리 사회가 그런 쓰레기들을 정화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 토대가 취약하다는 말인가?

 

나는 요즘 법을 전공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법을 공부해서 높은 지위에 오른 자들이 어쩌면 저렇게 무지하고 무례한지 모르겠다. 이제 헌법도 들여다봐야겠다. 황정은 작가의 말대로 씨발년과 씨발놈들이 판을 치는 씨발된 세상에서 할 것이 너무 많구나...

 

법을 공부한 자들이여, 눈을 들어 세계를 보라! 우물 안의 청개구리 새끼들처럼 청와대만 쳐다보지 말고.

 

이제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크리스마스다. 그러나 오늘의 세태를 보면 즐겁지 않다. 가난한 이들의 이웃이 되신 예수, 기득권으로 부를 누리는 자들에게 저주를 퍼부으셨던 예수, 성직자들과 법률가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이라는 욕설을 서슴지 않았던 예수, 그 분이 다시 오신다면...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2014-12-17





김순덕의 동아일보 칼럼

http://news.donga.com/3/all/20141215/68538908/1

 

대통령의 크리스마스 캐럴”(2014.12.15)이라는 칼럼을 잘 읽었습니다. 잘 쓴 칼럼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아버지 박정희만큼이라도 해 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김순덕 논설실장도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음으로 양으로 노력했던 이상돈 교수, 김종인 박사 등 여러 인물 중의 한 명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조중동이 거의 한 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노력했다는 사실은 온 국민이 알고 있습니다. 국가정보원이 대선에 개입하는 등 명백한 불법적인 선거였음에도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망각한 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다.

 

막상 대통령을 만들어놓고 보니 국정운영은 물론이려니와 손바닥만한 조직인 청와대조차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와 국정운영의 꼬라지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이 됩니다. 박근혜는 지난 2년간 청와대와 정부운영의 행태를 찌라시만도 못한 것으로 만들어버렸으니까 말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이준석 선장이 세월호를 운영하는 방식과 비슷해 보입니다.

 

김순덕 논설실장이 언급한 것처럼 사람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평가할 때는 과거의 행적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박근혜의 과거행적을 객관적으로 봅시다. 그러면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가 죽자 전두환으로부터 그냥 6억 원을 받아썼습니다. 그 당시 은마아파트 30채를 살 수 있는 돈이라고 합니다. 박정희가 강탈한 일종의 장물과 같은 정수장학회와 영남대학교를 사유화하였습니다. 아직까지도 명확한 해명이 없는 상태입니다. 최태민과의 관계도 의혹이 많으며, 그 사위였던 정윤회와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세간의 시선이 따갑습니다. 이제야 정윤회 게이트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뿐입니다.

 

박근혜의 행적은 정의롭고 선하고 아름다운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박근혜에게 붙어 다니던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얼마나 위험한 허구였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제정신으로 역사를 보는 언론인과 지식인이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박근혜를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노력하고 나서 이제 와서 그녀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그녀가 변화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이 과연 지식인으로서의 올바른 태도일까요? 이명박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 전과 14범이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했습니다. 그러나 조중동은 그를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이상돈, 김종인 같은 이는 박근혜를 대통령이 되도록 노력한 자신의 행동이 잘못이었다고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매우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행적을 보면 미래의 행동을 거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기초적인 상식조차 그 나이 되도록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상돈 교수는 비록 물이 엎질러진 후이긴 하지만 스스로 잘못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이런 기초적인 상식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지식인입네 하면서 떠드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조차 모른 채 이제 와서 박근혜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언론계와 대학에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김순덕 논설실장은 미사여구로 평범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박근혜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과오를 뉘우치고 겸허하게 용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이상돈 교수처럼 말입니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아이들이 집을 나가고 나니 쓸쓸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제는 우리 부부가 앉아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고 말해야 하는 시간이 곧 올 것이다. 


일주일 전부터 수요일에는 집에 들리겠다던 아들은 

바쁘다는 말로 주말에나 오겠다고 약속을 미뤘다.


아들이 일주일만에 집에 들렀다. 

애비의 생일 때문에 케익을 들고 왔다.

물론 내 생일은 열흘이나 지나고 말았다.



아들이 가져온 애비의 생일축하케익



아내와 나의 생일은 음력으로 쇠니까 

아들은 음력이 늘 헷갈린다고

음력을 양력으로 죄다 바꾸자고 주장하면서

부모생일도 양력으로 쇠기로 정했다.


내가 태어날 당시에는 세계가 음력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양력의 정확한 생일을 알지 못한다. 굳이 따져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엄밀히 따지면 음력 12월 5일을 양력 생일로 쇠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생일 챙기는 것도 잊어버리고 지낸다. 


이제 우리 집은 음력이 완전히 양력으로 넘어갔다.

아이들이 음력을 귀찮아 하면서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모생일을 양력으로 바꿔버린 아이들에게 

이 집안의 리더십이 깨끗이 넘어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아이들이 집에 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저 아이들 처분에 모든 것이 맡겨져 있다.


한 집안의 리더십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옮아가듯이

국가운영도 이렇게 젊은이들이 맡아서 했으면 한다.

늙은이들은 이제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2014-12-14

 

오늘 오전 아내의 강권으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봤다. 강원도 횡성에서 98세의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의 강계열 할머니의 사랑이야기다. 76년간 부부로 살면서 12남매를 낳았고 6남매가 죽고 6남매를 키웠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자 여기저기 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에서 인간의 실존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원초적 실존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가 말한 대로 인간이란 "관계맺어진 존재(das Bezogensein)"라는 것이다. 인간은 관계가 단절되면 절망하고 죽음에 이른다


이 영화는 자살률 세계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삶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삶의 목적은 돈도 권력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풍요로운 인간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