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컴브리아(Cumbria)의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 지방 출신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를 찾았습니다. 워즈워스는 호수지방의 가장 북쪽 도시인 코커머스(Cockermouth)에서 태어났습니다. 출생지는 기념관으로 개조되어 일반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그는 결혼해서 그라스미어(Grasmere) 호수 근처의 조그마한 도브 코티지(Dove Cottage)에서 중년을 지냈습니다. 이곳에서 8년간 살았는데 그라스미어 호수와 산책길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가장 왕성한 시작(詩作)활동을 했습니다. 1813년부터 죽을 때까지 삶의 후반기를 라이달 호수 근처의 라이달 마운트(Rydal Mount)에서 보냈습니다. 세 곳 다 기념관으로 개조하여 관람객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 군데 다 가볼 정도로 시간 여유는 없었습니다. 한 곳에만 가기로 했습니다. 도브 코티지보다 지명도가 낮지만 노년의 원숙한 시기를 보냈던 라이달 마운트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2백년도 더 된 집입니다. 첫 인상은 '시인인데 가난하지 않았구나'였습니다. 내 머리 속에는 시인은 늘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시인들은 대부분 가난하죠. 그래야 시가 써지는 줄 알았습니다.

라이달 마운트의 집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산책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큰 정원과 작은 오솔길이 잘 꾸며져 있습니다.

결혼하여 젊은 시절 살았던 조그마한 도브 코티지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작은 저택수준이었습니다.

언덕 위에서 멀리 라이달 호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 왼쪽에 있는 흰색 텐트에는 관람객을 위해 차와 케익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큼지막한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고 간단한 산책도 할 수 있습니다
.

 

1층 거실에는 200년 전의 살림살이를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가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당시 백작의 법률대리인이었기 때문에 큰 저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3살 때 아버지가 죽었는데, 다른 법률가들과는 달리 자신의 서재에서 자녀들에게 밀턴, 세익스피어, 스펜서의 저작들을 포함한 시를 가르쳤습니다.

부친의 사후에는 친척들의 손에서 자라났지만, 워즈워스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그들과 불화했습니다. 18살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자연과 친척들에 대한 적의가 그의 시상에 어떤 형식으로든 반영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시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그리고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 사랑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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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을 둘러보고 난 딸의 소감은 간단했습니다. 얻은 교훈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것들은 절대로 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때가 묻으면 모든 것이 보물로 변한다나 어쩐다나이제부터는 절대로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면 그가 썼던 연애편지들이 있습니다. 출판된 것인데,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Wordsworth and Mary's Love Letters

시인의 삶이라고 해서 남다르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대륙에서 프랑스혁명(1789년)이 일어나자 워즈워스는 21(1791)의 나이에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직접 프랑스를 여행합니다. 그곳에서 아네트 발롱이라는 프랑스 여인과 사랑에 빠져 이듬해 캐롤린이라는 딸을 낳습니다.

결혼을 약속했지만
돈이 부족한 상태여서, 혼자서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이 살짝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아네트와 캐롤린에 대한 그리움은 크게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시에도 많은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프랑스에 남은 피붙이들을 끝까지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기로 약속을 했답니다. 이런 얘기는 당시에는 쉬쉬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층에서 정원을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이날도 여지없이 비가 부슬부슬 내렸는데, 많은 관람객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워즈워스는 유산을 물려 받고 
32(1802)가 되어 어릴 때 친구였던 메리 허친슨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네 자녀를 두지만, 그 중 둘은 어린 시절에 죽습니다. 그는 결혼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게 됩니다. 한 때의 불장난이 더욱 원숙한 시를 쓰게 했을까요?


시에 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정원으로 나와 산책을 하기로 했습니다.

산책하다 꽃을 보더니 찍어달라는군요. 예전에는 아내가 꽃만 보면 옆에 서서 찍어달라고 하더니 요즘은 딸이 똑같이 그럽니다. 꽃 옆에 서면 시가 저절로 나온다나 어쩐다나...


지금까지 살면서 시와 관련하여 나는 몇 차례 가벼운 홍역을 치렀습니다. 그 첫 번째는 학생 때 시를 써보고 싶어서 끄적거렸었는데, 시인으로 사는 게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를 읽으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곤란했습니다. 시를 쓰는 재주가 없으니 시에 관한 글을 쓰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현대시(現代詩)의 난해성(難解性)에 관한 일 연구( 硏究)>라는 멋드러진 제목으로 논문을 썼습니다. 이승훈 교수님(시인,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정년퇴임)을 찾아가 보여드렸습니다. 잘 썼으니 잡지에 내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잘 썼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잘 몰랐지만, 좌우간 용기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xx에 관한 일 연구와 같은 제목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던 시절이라서 나도 폼 나게 그렇게 제목을 붙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현대시가 어려운 이유또는 현대시의 어려움에 대하여라고 했을 텐데 말입니다.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수님의 잡지에 내도 되겠다는 충고가 도대체 어떤 잡지인지를 알 수 없어서 고민하다가 학보사에 보내서 교내잡지에 실리고 말았습니다. 대학 2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워즈워스는 20대 초반부터 자연과 인생에 대해 시를 썼습니다. 세계에 대해 민감한 촉수를 가진 사람들이 시를 쓰는 모양입니다.

시에 대해서는 인연을 끊고 있다가 80년대 들어서 최승호 시인의 <대설주의보>를 읽었습니다. 시인들은 시대변화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몇몇 시집을 사서 읽곤 했는데, 머리에 담아 두진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내가 학창시절 두툼한 Norton Anthology를 들고 다녀서 영시를 가끔 훔쳐 보긴 했지만, 더구나 영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왜냐구요? 경영학에서는 시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시 쓰는 마음도 필요 없습니다. 시집을 마케팅하거나 판매하면 얼마의 이익을 남길 수 있을지를 가르칩니다. 계산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시 쓰는 행위는 가장 비효율적인 것으로 암암리에 간주합니다. 시와 시인은 원가계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21세기 들어서 안도현 시인의 세 줄짜리 시 <너에게 묻는다>를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내가 그동안 수없이 연탄재를 발로 찼거든요. 결혼해서 삼선교 산꼭대기에 어느 집 문간방에다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하루에 두번 19공탄을 갈아야 했습니다. 꺼뜨리면 번개탄으로 다시 피워야 했죠. 추운 겨울에는 하루에 세 번도 갈아야 했습니다. 하얗게 된 연탄재를 빼서 쌓아 놓는 게 아주 귀찮은 일이었죠. 이 시를 읽으면 충격받을 사람이 많을 겁니다.

이런 시를 쓸 재주는 없다 해도 읽을 수 있는 마음이라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몇 권의 시집을 사서 가끔 읽지만 여전히 경영학이 머리 위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윌리엄 워즈워스 얘기를 하다가 샛길로 빠졌네요.

이층에 복도와 계단 사이에 붙어 있는 시 한편을 보았습니다
. “무지개라는 시였습니다. 아내 얘기는 이 시가 무지하게 유명한 시라네요.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정말 유명하긴 한 모양입니다.





여기에 다시 옮겨 보겠습니다.

The Rainbow                                                                                       무지개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하늘에 있는 무지개를 보면

A Rainbow in the sky:                                                  내 가슴이 뜁니다.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내 어릴 적에도 그랬고,

So is it now I am a man;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습니다.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나이 들어서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Or let me die!                                                                     만약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좋겠지요!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내 삶이 자연의 겸허한 마음으로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하루하루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번역은 이것 저것 참조해서 내 멋대로 한 것입니다. 나 역시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뛸 정도로 세상에 민감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이웃에서 벌어지는, 무지개보다 더 한 화염의 충격에도 무덤덤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이번 여름휴가에서 백미는 영국 컴브리아(Cumbria) 지방의 국립공원인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에서 영국의 자연을 감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고속도로 M6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영국에서 차를 모는 것은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어서 헷갈리기 쉽습니다.

운전경력이 짧은 딸이 그래도 고속도로와 좁은 길을 두루 잘 운전했습니다.


런던을 떠나 약 450Km를 달려 저녁 어스름할 때 국립공원의 관문도시인 윈더미어(Windermere)에 도착했습니다. 옆에 있는 호수로 나가 장시간 운전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처음에는 웨일즈 지방에 가서 자그마한 고성들을 둘러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딸 아이가 사무실 동료에게 추천을 받은 곳이라서 컴브리아 지방으로 바꿨습니다. 크고 작은 호수들이 즐비한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높지 않은 야산들 중간 중간에 여러 호수가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자연보호단체들이 오래 전부터 활동하던 곳이라 자연보호가 잘 된 곳이라고 합니다.

 


B & B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 1866~1943)가 살았던 니어써리(Near Sawrey)의 힐탑(Hill Top)으로 향했습니다. 힐탑으로 가기 위해서는 길쭉한 윈더미어 호수를 아래로 삥 돌거나 아니면 페리로 건너야 합니다. 우리는 삥 돌기로 했습니다. 국립공원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강원도 설악산 국립공원과 같은 곳입니다.



호수를 끼고 차를 몰아 힐탑으로 가는 도중에 잠시 쉬었습니다. 쉬면서 딸이 나처럼 해봐요 요렇게!” 하길래, 나는 열심히 따라 했는데 아내는 싫다는군요.

스위스에 가면 어디를 대고 찍어도 그림엽서가 되는데, 이곳도 만만찮은 곳입니다.

 

포터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미스 포터(Miss Potter)>라는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Peter Rabbit이라는 캐랙터와 스토리를 만들어서 동화작가로도 유명해졌고, 컴브리아 지방의 자연환경을 부동산업자들의 탐욕적 개발로부터 막아내기 위해 애썼던 사람입니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자연보호단체의 활동이 활발한 곳입니다.

왼쪽 사진은 포터가 직접 그려낸 피터 래빗의 토끼입니다. 내가 그곳에서 토끼를 보지는 못했지만, 포터는 실제 토끼를 모델로 그림을 그려 동화책을 출판하여 성공했습니다. 그 돈으로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땅을 샀습니다.



그림에는 포터만의 독특함이 있습니다. 쥐, 토끼, 돼지, 닭 등이 특징적으로 그려져있습니다.

살던 집은
옛집 그대로라서 그런지 아주 작은 집인데다 관광객이 들끓어서 내부를 자세히 보거나 사진을 찍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포터가 살던 집을 구경하려면, 표를 사서 한 시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관리인은 포터가 매일 산책하던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정말 아름답죠.

남는 시간을 포터의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우리는 포터의 동화책 몇 권을 사가지고 다시 다음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이 지방은 아직도 100년 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인공을 최대한 배제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입니다. 니어써리는 분명히 포터가 먹여 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내 고향 강원도는 개발을 못해 안달을 합니다. 개발은 후손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을 가지급해서 흥청망청 쓰는 행위입니다. 강원도는 개발되지 않은 청정한 곳으로 그냥 놔뒀으면 좋겠습니다. 돈벌이가 안 된다구요? 개발하지 않고 자연환경을 잘 보호하면, 개발에 지친 사람들이 와서 돈을 쓰고 갑니다. 개발하기 전에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시인과 철학자, 예술가들을 끌어들여 스토리를 구성해야 합니다. 영국의 오지마을인 니어써리에 사람들이 평일에도 바글바글합니다. 입장료가 얼만지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에는 바가지썼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쌌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듭니다.

안면도의 어느 리조트에서 개최된 워크숍에 강연하러 갔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큰 리조트로 인해 해안의 모래벌판이 콘크리트와 맞닿아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환경파괴가 일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근시안적인 개발로 인한 폐해는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까지 심대한 영향을 줍니다. 무엇을 위한 개발인지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간 날은 일본인 단체관광객이 거의 반이어서, 관리자에게 물어봤더니 일본인들은 미스 포터를 좋아한다는군요. 우리는 그곳에서 한국인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영국의 시골구석까지 신경 쓸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영국여행이 런던과 그 주변을 휙 둘러 사진찍고 가는 정도인가 봅니다.






우리는 니어써리의 정취를 더 느끼고 싶었지만, 너무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그 느낌을 오래 간직하려고 책을 샀습니다. 오늘 책을 다시 훑어보니 호수와 들판, 구릉과 안개와 농부들, 그리고 목장의 동물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동화를 짓던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포터가 살던 힐탑을 뒤로 하고 영국이 낳은 위대한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가 살던 곳을 향했습니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아침에 일어나니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군요. 이럴 땐, 바하 또는 모짜르트를 틀어놓고 커피향을 실내에 가득 채우면 아주 제격이지요. 그러면 멀리 떠난 아이들이 더욱 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국이야기라기보다는 딸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나에게 영국은 딸 아이 때문에 인연이 된 나라입니다. 딸 아이가 영국으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취직을 하는 바람에 영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독일 유학시절에 유럽의 대부분 나라를 여행했음에도 영국은 가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왠지 영미계통에 대한 약간의 혐오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영미계 국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미계통의 사람들은 대개 일은 하지 않으면서 돈 계산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힘의 세니까 겉으로는 존경하는 척 하지만, 특히 미국인의 문화적 저질성에 대해 독일인들은 혀를 내두릅니다. 그래서 안 좋은 것은 다 미국애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긴 독일도 아직 우리나라처럼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여서, 군사지도에는 독일이 미군 점령지로 표시되어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미국에 대한 감정이 좋을리는 없겠지요.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영국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었습니다. 딸 아이가 대학을 마치고 2007년 여름에 스위스계 투자은행인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의 런던오피스에 Business Analyst로 취직해서 일하다가 지난해 말 휴가 겸 노동비자취득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돌아갔습니다.

 

비자를 기다리는 동안 영국경제가 워낙 안 좋아서 외국인 취업을 적극 억제하는 정책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비자가 선뜻 나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노동허가비자가 나왔다고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계뿐만 아니라 유럽계 투자은행들도 만신창이가 돼서 모두들 수천 명씩 구조조정 하는 마당에, 회사에서 변호사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비자발급을 종용했다니,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딸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러면 지금까지 딸이 노동비자도 없이 어떤 상태로 일했냐고? 영국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적어도 1년간은 노동비자 없이 취업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그것은 외국인 졸업생 중에서 소위 high skilled people을 영국 내로 유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지나서 이제는 정식노동비자를 얻어야 합니다. 한국에 와서는 재택근무를 했습니다. 서울에서 저녁 6시에 로그인해서 새벽 3시까지 런던의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온라인으로 일 처리를 해야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당초 대략 2주 정도, 아무리 늦어도 한 달 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예상과 달리 두 달도 더 걸린 셈이다. 그렇게 길게 걸린 이유는 아마도 그간에 영국에서 했던 딸 아이의 행적을 일일이 조사하느라 그랬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내와 나는 딸 덕분에 여름휴가를 2년 연속 영국에서 보냈습니다. <영국여행 이야기>시리즈는 그 연유로 쓰게 되었습니다. 딸 아이가 런던에서 일하면서 국제금융을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가족이 떨어져 살면 늘 그리움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잘 먹는지, 운동과 휴식은 충분한지 늘 걱정이죠. 그리고 투자은행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도 불분명해서 가급적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건 완전히 내 생각일 뿐이고

 

딸 아이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나의 삶이 아내와 결혼 후에도 줄곧 공부하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아이들을 잘 보살피지도 못했는데, 벌써 훌쩍 커버렸습니다. 지들 맘대로 커버린 것이죠.

영국으로 떠나는 날 공항에 데려다 주면서 카메라를 들고 갔습니다. 몇 장 찍었습니다. 딸 아이가 보면 아주 싫어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주 예쁘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아이들이 더욱 보고 싶어지는군요.

 

나는 사진 찍는 일에는 서투릅니다. 잘 찍지 못하고, 어떻게 찍는 줄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완전 자동모드로 찍습니다. 내겐 그게 편하기 때문이지요.

한시간 일찍 도착해 짐을 부치고 던킨 도너츠에서 도너츠와 콜라를 마셨습니다. 어제 파마를 해서 추레하니 찍지 말라고 난리를 쳤는데, 찍사 맘이라고 그냥 찍었습니다.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인데 가까이서는 절대 찍지 말라고 하는 걸 냅다 찍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일해라. 몸을 튼튼히 해라" 정도였습니다.


평소에 생머리던 딸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 출국 하루 전에 머리를 했습니다.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딸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습니다.


출국장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짐을 부쳤는데도 보따리가 많군요. 내가 들어다 주고 싶은데... 출국장으로 들어가면서 작별인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딸이 편지를 써놓고 갔습니다. 쓰다 남은 한국돈도 남겨놓았습니다. 열어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삶에 있어 최상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군요. 그리고는 엄마 아빠가 건강에 시간투자하는 것 잊지 마시고 항상 좋은 생각과 재미있는 일들로 '뇌'를 꽉 채우라고 충고하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는군요. 내 고향 강원도의 극심한 겨울 가뭄이 이 비로 다 해소됐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다음날 딸은 나를 또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번에는 런던 북쪽에 있는 캠든(Camden)의 재래시장을 꼭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나리 워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여서 볼만한 게 많다고 합니다.

 

런던의 서북부에 위치한 캠든까지 지하철로 가서 걸어 다니기로 했습니다. 서울 남대문 시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한가 봅니다. 씨끌벅적하고 애교 넘치는 짝퉁들이 즐비하게 있습니다.


오리지날을 그대로 복사하는 불법 짝퉁이 아니라 위트가 넘치는 짝퉁들입니다. 활기찬 Puma상표는 의식을 잃은 Coma상태로, iPodiPood, 새출발을 의미하는 결혼식 상표는 game over, National Geographic National Pornographic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펑크머리의 진수도 볼 수 있었습니다. 삶의 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습니다.

 


씨끄러운 시장통을 지나가는데 한 구석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습니다.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소리 때문인지 금발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한번 들어 보실까요.

 

나는 잠시 보고 있었을 뿐인데, 아내와 딸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나는 구석구석을 뒤졌습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보물찾기를 마치고, 우리는 Primrose Hill을 향해서 걸었습니다. 서울로 말하자면 북한산 정도 되는 위치인데, 높이는 나즈막한 언덕입니다. 런던 주변에서 이곳이 제일 높은 곳이라는군요. 그나마 런던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유일한 언덕입니다. 저 아래 보이는 푸른 숲이 리젠트 파크(The Regent Park)입니다. 그 너머에 런던시내가 보입니다.



우리는 리젠트 파크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공원을 가로질러 내려오는 길은 정말 추웠습니다. 바람도 많이 불어서 햇볕이 드는 벤치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서울에는 찌는 듯한 더위일텐데, 런던에서 추위에 떠는 모습입니다. 담요를 덮어도 춥군요. 여름 피서로는 런던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공원 내에 있는 장미의 정원(공식 이름은 Queen Mary’s Gardens)에서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딸은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있군요
옷이 임신복 같다고 했더니, 오늘의 컨셉이라는군요.


(딸이 이 사진을 내 블로그에 올린 걸 알면 항의 전화, 항의 메일이 빗발 칠텐데... 모르는 척하고 올렸습니다. 우리 딸 이쁘지 않나요?)



이제 다시 런던의 중심인 피카딜리 서커스(Picadilly Circus)로 돌아왔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지요. 아내는 세일이라고 써 붙인 가게는 일단 들어가 봅니다. 사지도 않을 것을 왜 발품만 파냐고 투덜거리면, 그게 휴가와 여행의 재미 아닌가 되묻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가 봅니다.


 


배낭을 하나씩 메고 상점가를 순례하느라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해 떨어지려면 아직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여름의 런던은 저녁 9시가 돼도 훤합니다. 훤한 시간에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죠. 우리는 뮤지컬을 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라이온 킹(Lion King)을 공연합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극장은 런던의 3대 명물(공원과 이층버스를 포함하여) 중에 하나입니다.

뮤지컬보다 런던의 극장을 체험하기 위해 제일 싼 좌석 표를 샀습니다. 그래도 그 유명한 Her Majesty’s Theatre3층 맨 위 구석자리였습니다. 영국에는 변변한 산업이라곤 금융과 관광뿐인데, 부시와 월 스트리트 애들의 불장난으로 전세계 금융이 쪼그라드는 바람에 관광산업도 맥을 못추고 있으니, 요즘 영국 경제는 말이 아닌 모양입니다.


아내는 극장에 들어가 앉자마자 골아떨어졌습니다. 나 역시 비몽사몽간이었습니다. 라이온이 나오는지 타이거가 나오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극장에서 조는 아내의 모습, 이쁘지 않나요?)









졸면서 봐도, 라이온 킹을 뮤지컬로 제작한 사람들의 상상력은 돋보였습니다. 역발상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스토리도 감동적이지만, 애니메이션에서나 가능할 동물들의 액션을 배우들이 재현해 내는 모습은 창조적 상상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대의 화려함과 조명, 의상, 그리고 음악…… 뮤지컬은 종합예술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래 전에 뮤지컬 캐츠(Cats)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는데, 라이온 킹도 그랬습니다. 아무리 뮤지컬이 좋아도 생리적 현상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와 아내는 아깝게도 반 이상 졸았습니다.



 

라이온 킹은 디즈니가 만든 최고의 히트작입니다. 이 작품 하나로 수억 달러를 벌었다고 하죠.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는 얼마나 벌어들였을까요? 그렇게 벌려면 현대자동차 몇 대를 팔아야 하나요?

나는 이런 작품들이 얼마를 벌어들였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품을 기획하고 만들었던 사람들이 내뿜었을 정신적 에너지가 수많은 사람들을 공감시켰고, 그들의 정서와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경험했을 행복감을 우리는 중시해야 합니다. 설사 라이온 킹이 흥행에 실패했더라도 그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행복감은 그것 자체로 소중한 가치를 갖기 때문입니다.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그들의 상상력과 창조성이 부럽습니다. 손끝의 재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 잘 보고 좋은 대학을 나온다고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시험성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시험은 상상력을 죽입니다.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리처드 브랜슨, 조앤 롤링 ......

 

나는 우리나라 교육이 점점 살벌해지고 있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교육부처 고위층과 서울시 교육감의 교육정책을 보니까, 아이들에게 시험성적으로 경쟁을 시켜서 학력을 올리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사들에게는 성과급을 더욱 차등화하여 교사들끼리도 서로 경쟁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교사들이 더 잘 가르치게 될 것이라고 믿는 모양입니다. 그것은 환상입니다. 성과급이 인간을 어느 정도로 타락시키는지를 최근의 월스트리트 붕괴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를 다시 살리는 혁명적인 처방을 생각해야 합니다. 핀란드와 같은 교육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라이온 킹과 해리포터가 과연 성과급을 차등 지급했기 때문에 나온 것일까요? Her Majesty’s Theatre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이런저런 생각했습니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나는 딸아이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템즈강을 건넜더니 수 마일을 걸은 발걸음은 더 떨어지지 않았고, 배는 출출해졌습니다. 중국집이 눈에 들어왔고 의자에 앉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시원하게 맥주도 한 잔 마시고 짜장면 비슷한 것을 시켜 먹었습니다.

 




힘을 내 음식점을 나와서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을 걸었더니 그리니치 공원이 나왔습니다.

선진국은 도회지에 있는 공원의 넓이와 질적 수준에 의해 결정되는가 봅니다. 런던은 조금만 걸어도 드넓은 공원이 나타납니다. 그것도 방치된 것이 아니라 잘 조성된 공원, 그래서 아무런 통제 없이도 아이들이 맘대로 뛰어 놀 수 있는 공원, 이런 공원을 서울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니 아직 선진국이 되려면 멀었나 봅니다. 

공원을 빼놓고서 런던을 논하지 말라고 충고한 책을 보았습니다. 전원경의 『런던 숨어 있는 보석을 찾아서』라는 책에서는 런던에서 좋은 것 세 가지를 꼽으라면, 이층버스, 공원, 극장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내가 런던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공원이었습니다. 이층버스와 극장은 돈 들이면 되는 것이지만, 공원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공원은 역사이자 정신이자 문화입니다.

 

하이드 파크

런던은 세계의 도시 중에서 가장 넓은 녹지 면적을 공원의 형식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런던의 3분의 1이 녹지인 공원으로 덮여 있습니다. 그 유명한 하이드 파크, 리젠트 파크, 켄싱턴 가든, 세인트 제임스 파크 등 크고 작은 공원이 80여 개나 된다고 합니다.

 

Primrose언덕에서 내려다 본 리젠트 파크


켄싱턴 궁 앞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


세인트 제임스 파크 건너편에 있는 그린 파크


동네에 있는 작은 공원


그런데, 이 공원의 풍경이 대개 비슷합니다. 한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엄청 넓고, 시원한 잔디밭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공원을 산책할 수 있는 길과 벤치, 그리고 동상들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크고 작은 연못에서는 대개 백조와 오리들이 노닐고 있습니다. 그곳은 한마디로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안식처입니다. 디즈니랜드식의 놀이동산이 아닙니다. 음식점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거의 쾌적함을 넘어서는 도시의 쾌적함입니다. 서울은, 아니 우리나라의 대도시들은 지금 콘크리트 숲으로 덮이고 있습니다.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이 땅이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하는 이 시대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야 제모습을 찾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런던너(Londoner)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원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것입니다. 목전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옹졸한 이 시대정신을 사회전체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유보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정신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이러한 정신은 대운하가 아닌 공원의 형식으로 드러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다시 공원을 부러워하면서 천문대를 향해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느닷없이 딸은 나에게 약속 하나 하자고 했습니다. 내가 딸아이와 못할 약속이 어디 있으랴!

 

아빠, 절대 뒤를 돌아다 보면 안 돼! 알았지!”

오냐, 그렇게 하마.”

 

중턱쯤 올라갔을 때, 나는 뒤를 돌아다 보고 싶어졌습니다.

 

뒤를 보면 안 될까?

안 돼, 지금은 안 돼!”

 

딸은 한사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고... 지금 뒤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된다나 어짼다나아무튼 나는 수 마일을 걸은 무거운 다리를 옮기며 왕립천문대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딸이 부리는 마술을 기대하면서

 

아빠, 됐어. 뒤돌아 봐도 돼!”

 

우리가 걸어온 언덕 아래에는 이렇게 찬란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마천루가 카나리 워프(Canary Wharf)입니다.


 





왕립천문대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2008 7 31 18시 28분이었습니다.










서울이 동경 127도라는 표지판도 발 밑에 보였습니다. 세계를 제패했던 영국인들이 만든 세계의 표준을 봤습니다. 우리가 힘써 만들어야 할 세계의 표준은 뭘까요?

 




대운하와 몰입교육으로 세계표준을 만들 수 있을까요? IT, NT, GT, ET 등과 같이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21세기를 만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청소년들이 시험점수가 아니라 사고력과 상상력을 기른다면 우리는 충분히 첨단분야의 세계표준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의 사진들은 17세기 크로스토퍼 렌이 설계했다는 왕립천문대의 겉모습입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아주 소박하기 짝이 없는 건물입니다.


천문대 입구



천문대 뒤뜰


천문대 앞뜰


우리는 이 여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딸이 사는 아파트의 발코니에서


영국으로 날아온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 그런지 움직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졸리기도 하고... 아파트 발코니에 앉아 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정박한 요트를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가 졸리면 자고... 그럴려고 휴가온 것 아닌가?

시차를 극복하는 지름길은 자꾸 움직이는 거라고 하면서 딸이 나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우리는 작년에 가보지 못했던 그리니치 왕립천문대를 가보기로 했습니다. 천문대라고 해봐야 지금은 박물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지구의 경도와 시간의 기준점을 제공하는 곳이니 런던에 온 김에 한번쯤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카나리 워프에서 다소 멀기는 하지만 걸어갈 수도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걷기로 했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산을 썼다 접었다를 반복하면서 템즈강의 강북산책로를 따라 상류로 올라갔습니다. 강가를 걸으면서 템즈강의 풍부한 수량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강건너 정면 오른쪽이 왕립해군병원이고 멀리 언덕 위에 조그맣게 보이는 두 개의 탑 건물이 왕립천문대

강 건너편에는 17세기에 지어진 왕립해군병원과 우리의 산책목적지인 왕립천문대가 보였습니다. 이 두 건물은 전설적인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1632~1723)이 설계했습니다. 렌은 런던 시내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설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강가를 걸어가면서 그 동안 못했던 얘기를 했습니다. 딸이 취업했던 1년 전에는 지금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취업하기 어렵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딸이 대학에서 공부하던 얘기, 취업전쟁에서 살아남은 얘기, 그리고 사무실에서 일하던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었습니다.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친구들이 다들 취업되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불안했다고 합니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중국유학생들은 잘도 취직되는데 한국인 유학생 선배들을 볼 때 한국 국적으로 영국에서 취업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2년 전 어느 날, 딸이 한국으로 전화해서 나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취업에 관한 기본원칙과 전략을 세우도록 충고해 주었습니다. 기본원칙은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라였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얘기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딸은 금융 또는 재무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다음과 같이 세우도록 조언했습니다. 이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소위 3단계 방어선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금융산업의 꽃인 투자은행에 지원한다.

둘째, 투자은행에 취직이 안 되면, 상업은행이나 다른 산업에서 재무관련 업무에 지원한다.

셋째, 그것도 안 되면, 귀국해서 한국의 금융산업에 지원한다.

 

입사지원서를 유럽계와 미국계 투자은행뿐만 아니라 몇몇 타산업에도 보냈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 인터뷰를 하도록 연락이 온 곳은 유럽계와 미국계 투자은행 각각 한 곳과 블룸버그였다고 합니다. 유럽계는 미국계와는 달리 조금 더 인간적인 면이 있고 조건도 더 좋았기 때문에 유럽계 투자은행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터뷰까지 잡혀 있던 미국계 투자은행은 최근 파생상품으로 파산한 은행이었습니다.

 

카나리 워프에 있는 Credit Suisse London Office


유럽계 투자은행의 채용과정은 서류심사를 거쳐 인터뷰를 합니다. 인터뷰는 동료인터뷰와 상사인터뷰, 최종적으로 디렉터인터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인터뷰시간을 다 합치면 6시간 정도는 됐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형식상으로 우리나라의 선발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와 결정적으로 다른 특이한 점은, 배경조사라고 할 수 있는 Background Screening이라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지난 6년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연락처를 써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전문회사에 의뢰하여 내용확인과 평판조사를 합니다. 학력과 경력, 인턴과정에서의 성실성 등을 일일이 조사합니다. 말하자면 공식적인 뒷조사를 하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의 인재선발시스템은 신정아씨의 동국대 교수 채용에서 보았듯이 낙후된 정도가 아닙니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직도 허위학력과 경력들이 아무런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고 통과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나서도 허위학력과 경력으로 처벌을 받는 나라이기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정당에서 공천하면서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관행입니다. 유럽계 투자은행이 대졸신입사원을 뽑는데도 그런 엄격한 절차를 거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신뢰는 언어에 있지 않고 시스템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언어는 항상 생략되고, 왜곡되고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타인을 속입니다. 나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가장합니다. 나를 믿으라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나는 유능한 사람이라고 포장합니다. 심지어 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언어는 사악합니다. 이 언어의 사악함을 중화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스템입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TV뉴스에서는 전직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가 구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언어를 믿고 거래를 했을 것입니다. 역대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구속되는 치욕을 아직도 끊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언어의 사악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언어의 힘을 믿고 그 위력에 의지하여 음성적인 거래를 했을 것입니다. 시스템으로 언어의 사악함을 예방하지 못하고, 꼭 사후에 정치적 보복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처리합니다. 시스템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길을 우리는 과연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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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아파트 발코니에서... Boardwalk Place, Canary Wharf

삶은 여행입니다. 공간적 여행이기도 하지만, 시간여행이기도 합니다. 딸이 벌써 훌쩍 커버렸습니다. 멀리 떨어져 사니까 더 보고싶어집니다. 잘 지내고 있는지 늘 걱정이 됩니다. 또 딸을 보러 갔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딸이 사는 아파트 발코니에서 런던의 여름을 한가로이 즐기고 돌아 왔습니다.

어른들이 나이들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작년에도 여름휴가를 영국에서 보냈는데, 올해도 7월 30일부터 8월27일까지 영국을 여행했습니다. 나는 애초에 열흘이나 아니면 길어도 2주간 정도 피서를 겸해서 영국에 다녀올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늘 여행을 좋아해서 이번에는 내가 양보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길게 여행과 피서를 겸해서 다녀왔습니다. 일수로 따지면 29일간 근 한 달을 영국에서 보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 8일간은 동구라파를 여행했으니까 20여일을 영국에 있었던 셈입니다. 이번 여행을 시간 나는 대로 시리즈로 정리할 예정입니다.

런던은 여름날씨가 생각보다 덥지 않습니다. 선선하기 때문에 피서하면서 역사를 배우기에는 아주 좋은 여행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 특히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행하면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은 나에게 과외의 소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은 생각했던 것보다 개방적인 나라였습니다. 나는 독일에서 유학했던 경험 때문에 영국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독일사람들은 영국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 역시 그런 영향을 받았겠지요.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장인정신으로 일하는 독일인의 모습보다는 지팡이 든 신사복 차림의 영국인들에게 친숙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작년과 금년의 여행을 통해 영국과 영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물론 딸아이가 살고 있는 나라라는 것 때문에 더 인상이 좋아졌는지도 모르지요. 딸은 영국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애비가 경영학을 공부한 데 영향을 받았는지 파이낸스와 매니지먼트를 전공하고 지금은 런던의 유럽계 투자은행에서 business analyst로 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동안 치열했던 내 삶의 환경 때문에 아들과 딸의 교육에 크게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어느 부모나 늘 그러하겠지만, 아이들에게 충분히 지원해 주지 못한 것에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공부하는 기간이 더 길었던 탓에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했어야 했습니다. 부모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진로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어려서부터 배웠는지도 모릅니다. 지나놓고 보니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지만 교육적으로 그런 정책이 더 좋았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내가 돌보지도 않았는데 어느덧 아이들은 다 성장했고, 이제 자신들만의 인생의 갈 길로 당당히 들어섰습니다.

 

일류대학을 보내기 위해 아이들에게 책가방까지 싸주고 하루 일정표까지 일일이 챙기는 부모가 점점 늘고 있는 상황을, 그리고 아이들의 대학등록금은 물론이고 결혼자금까지 마련해주는 것이 일반화되어 가는 세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독일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듯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과연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많이 지원했더라면 더 크게 성장했을까? 부모가 아이들에게 얼마만큼 지원해 주어야 아이들이 당당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지원해 주었을 때 그들의 성장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까? 비행기 칸에서 이런저런 잡념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행기 창문을 열었더니 런던시내가 선명히 보였습니다

어느덧 창 밖으로 런던 시내가 들어오더니 런던아이(London Eye)가 나타났습니다. 왼쪽 아랫쪽에 보이는 휠이 런던아이입니다.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이 새천년을 기념하여 건축한 것으로 자전거 바퀴모양으로 만든 세계에서 가장 높은 135미터의 순수 관람용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런던탑(Tower of London)과 타워브릿지(Tower Bridge), 빅벤(Big Ben) 등과 함께 이제는 런던의 상징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히드로에서 런던 시내로...

히드로 공항에 딸아이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딸이 사는 런던의 카나리 워프(Canary Wharf)로 갔습니다. 런던의 지하철은 아주 비좁고 공기도 좋지 않습니다. 100년도 훨씬 이전에 건설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요금에 비해 쾌적함은 서울 지하철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운행방식은 매우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와 같은 이방인이 지하철 노선을 갈아탈 때도 거의 실수하지 않도록 표시가 잘 되어 있습
니다. 서울 지하철에서도 가끔 잘못 타는 바람에 당황한 적이 많은 나로서는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또 다시 영국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전형적인 카나리 워프의 주거지 모습. 멀리 밀레니엄 돔이 보입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은 벌써 어스름했습니다. 여기가 전형적인 카나리 워프(Canary Wharf)입니다. 요트 계류장을 곳곳에 만들어서 물과 시민이 함께 어울리도록 건설되었습니다.

런던의 중심지인 시티지역이 너무 좁아서, 버려진 땅처럼 여겨지던 런던 동부의 템즈 강가에 있던 카나리 워프(Canary Wharf) 지역을 재개발했습니다. 카나리 워프는 템즈강이 런던의 동부지역을 말발굽처럼 꼬부라져서 흘러가는 바로 그 지점의 강북지역을 말합니다. 이 지역은 런던 중심지와 경전철로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구(舊)금융중심지인 시티지역에 있는 증권거래소, 영란은행(Bank of England), 로이즈보험사(Lloyd's), 유비에스(UBS), 도이치은행(Deutsche Bank), 스코틀랜드왕립은행(Royal Bank of Scotland) 등과는 15~20분 거리에 있습니다. 

런던에 관한 책은 꽤 많습니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런던 - 숨어 있는 보석을 찾아서』(전원경, 리수 2008)입니다. 카나리 워프는 이상하게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카나리 워프(Canary Wharf)는 런던이, 아니 영국이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가장 야심 차게 시작한 지역 개발프로젝트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합니다. 이렇게 새로 개발된 런던의 금융중심지가 카나리 워프(Canary Wharf)입니다. 영국의 금융감독청(Financial Services Authority)과 에치에스비시(HSBC), 뱅크오브어메리카(Bank of America), 바클레이즈 캐피탈(Barclays Capital), 시티뱅크(Citigroup), 모건 스탠리(Morgan Stanly),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 로이터(Reuters) 등 세계적인 금융기관과 언론사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은 명실 상부한 금융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부동산을 개발하려면 이렇게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단순한 땅파기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금융중심지로 변한 카나리 워프의 모습

런던은 템즈강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도시입니다.

수변도시 런던(Waterfront City London)! 

카나리 워프(Canary Wharf)의 건축물들은 사진에서 보듯이 마치 베네치아로 느껴질 만큼 물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빨간 경전철이 물 위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좌측에 라운드로 보이는 건물이 바클레이즈 캐피탈과 모건 스탠리입니다. 시티그룹은 가운데 높은 건물입니다. 멀리 한가운데 솟아있는 것이 클리포드 챈스(Clifford Chance)라는 법률회사 건물입니다. 오른쪽 높이 보이는 건물이 리만 브라더스(Lehman Brothers)입니다. 얼마 전에 파생상품을 잘못 다뤄 파산했는데, 당시 많은 기자들이 리만 직원들과 인터뷰하려고 카나리 워프에 몰려드는 바람에 그 일대가 난장이 되기도 했답니다.

고든 브라운 총리

영국의 노동당 정부가 1997년 들어선 이후 지금의 고든 브라운(James Gordon Brown, 1951~) 총리가 재무장관시절 런던시장과 함께 금융특화지역으로 카나리 워프(Canary Wharf)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당시 영국에는 관광 이외에는 변변한 산업이 없었습니다.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금융허브로서의 꿈, 상상력, 그리고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황무지였던 땅을 유럽의 금융중심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영국은 이제 무력이 아니라 금융으로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의 꿈, 상상력, 그리고 비전이 사회를 이렇게 엄청나게 바꿀 수도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실제로 외화주식 거래, 외환거래, 장외파생상품 거래량은 이미 뉴욕의 월 스트리트를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돈은 런던에서 돈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세대에도 이렇게 꿈꾸는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까요? 글쎄요. 우리 세대는 솔직히 상상력의 결핍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다들 열심히 땅 파면 돈이 되는 줄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런던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물이 함께 하는 아름다운 수변도시입니다. 한강을 잘 치수하면서 서울을 수변도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한강물을 끌어다 흘려보내는 방식 말고, 한강물 자체를 시민들이 바로 옆에서 즐길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런던처럼 말이죠.

전형적인 카나리 워프의 주거지 모습

저녁 어스름한 시간이라 사진이 어둡게 보입니다. 사무실로부터 걸어서 10분 거리에 딸이 사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왼쪽의 6,7층짜리 아파트인데, 템즈 강에서 물을 끌어와 요트가 정박할 수 있는 계류장이 보입니다. 물가라서 그런지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딸의 아파트 발코니에서 보이는 전경

아파트의 발코니로 나오면 템즈강 건너편에 있는 밀레니엄 돔이 보입니다. 이 돔은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해 런던의 명물이 되도록 야심적으로 만들었는데, 결국은 런던의 흉물이 되었다는군요.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문외한인 내 눈에는 멋있어 보이는데. ……

밀레니엄 돔

템즈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밀레니엄 돔이 그로테스크한가요?  런던의 잿빛 하늘아래 뒤집힌 대형접시에서 솟아오른 크레인은 뭘 의미하는 걸까요?(끝)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