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BSC의 전략에 관한 문제점을 검토하겠습니다. 기업경영은 전략을 필요로 합니다. 전략 없는 경영은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전략(strategy)이라는 용어가 경영학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도 20세기 중엽에서부터였으니까, 고작해야 40~50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 동안 무수한 개념의 변천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전략의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전략이란 어느 한 조직을 경쟁우위에 서도록 포지셔닝시키는 일을 의미한다. 그것은 기업이 어떤 산업에 참여해야 하는가,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가, 자신이 보유한 자원들을 어떻게 할당해야 하는가의 의사결정과 관련된다. 그리고 전략의 최우선 목표는 고객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주주들과 여타의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코렐리스 클뤼버, 조 피어스 2(2007), 송재용 외 옮김, 전략이란 무엇인가?, 3mecca, 23]

 

전략적 사고는 지난 수십 년간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어 왔습니다. 처음에는 산업(industry)의 중요성과 제품(product)의 품질을 강조했고, 자원(resource)과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이 각광을 받았다가, 최근에는 기업의 비전(corporate vision), 가치(value), 신념(belief) 등 인적자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전략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립니다. 하나는 전략계획과 전략실행은 기업의 장기적인 성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의 전략이란 그저 운명에 불과하다고 보는 비관론입니다. 전자는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교수처럼 경영전략론을 가르치는 학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지만, 후자는 스탠포드대학의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교수처럼 전략이란 고작해야 사람의 문제에 종속될 뿐이라고 생각하는 인사조직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입장인가? 전략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후자에 속합니다. 기업의 성패는 소위 운칠기삼”(運七技三)의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의 전략적 요소가 3할 정도라면, 성공할 것인지의 7할 정도는 행운에 달렸다는 말입니다. 결국, 기업의 성패는 전략에 따라 좌우된다기보다는 구성원의 마음가짐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전략적 방향에 따라 커리어를 설계해서 그대로 실천해 온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멀리 보면서, 매순간 닥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기업의 현재 위치를 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과거에 세웠던 전략계획을 잘 실행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기업가의 직관적 판단과 구성원들의 헌신, 그리고 외부환경의 우연한 도움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성공한 기업가들과 학자들 역시 그렇게 말합니다.

 

인텔의 전략수립을 이끈 앤디 그로브의 역할은 미래를 미리 내다보았다기보다, 전략적 중요성을 먼저 깨달았다는 점이다. 인텔에게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발명하는 행운이 왔을 뿐 아니라, IBM PC 디자인에 참여하게 되는 더 큰 행운이 주어진 셈이다.”
[
제프리 페퍼, 로버트 서튼(2009), 김용재 옮김, 증거경영, 국일증권경제연구소, 288]


 

인텔이 성공한 것은 전략수립이 탁월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수립된 전략을 철저히 실행에 옮겼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굴러들어온 우연한 행운을 놓치지 않고 이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었던 회사의 역량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쯤에서 BSC는 전략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BSC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관리원칙을 기반으로 구축되었습니다.[로버트 캐플란, 데이비드 노튼(2009), 웨슬리퀘스트 옮김, 전략실행프리미엄, 21세기북스, 13쪽 참조]

1.
경영진의 리더십을 통해 변화를 활성화하라
.
2.
전략을 운영적 용어로 구체화하라.
3.
조직을
전략에 정렬시켜라.
4.
동기부여를 통해
전략을 모든 사람의 일로 만들라.
5.
전략을 지속적인 프로세스로 만들라.

 

BSC는 이렇게 전략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하도록 고안되었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가히 전략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략을 중시했습니다. 1990년대 이전에는 전략계획의 수립에 집중했으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전략의 실행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BSC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은 기업의 전략실행이 성과를 좌우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던 시기였다는 행운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마음을 비우고, 과연 전략기획과 전략실행이 기업성과에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냉정하게 살펴봐야 할 때입니다. 몇몇 연구결과에 의하면, 전략과 기업성과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낮게 나타났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전략이 재무적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일치된 견해를 찾을 수 없으며, 전략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평가했거나 기업성과에 영향을 준 다른 우연적 요인들을 전략적 요인들과 구분하지도 않았습니다.[제프리 페퍼, 로버트 서튼(2009), 김용재 옮김, 증거경영, 국일증권경제연구소, 278~281쪽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이 중요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마이클 포터의 경쟁전략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포터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소위 "경쟁세력 모델"(five forces model)을 개발했습니다. 장기간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현상을 산업구조과 업종구조가 가지는 특성과 연관 지어 설명했습니다. 디지털화 시대에 타자기와 필름카메라를 만들어 파는 회사는 아무리 용을 써도 실패하는 업종인 것은 분명합니다. 포터 교수는 어떤 기업이 특정 산업 또는 업종에서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장기간 이윤을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이 진입장벽의 보호 때문이었는지, 제한적 경쟁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산업구조 특성 때문이었는지 그 원인을 밝히려 했습니다.

 

그래서 업종이 좋아야 회사가 성공한다.” 또는 위치가 좋아야 이익이 많다.”는 말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사양산업이 있긴 하지만, 그리고 위치가 중요하긴 하지만, 사양산업 내에서도 높은 성과를 내며, 같은 위치에 있는 회사라도 경이적인 이익을 장기간 창출하는 경우를 포터의 경쟁전략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또한 특허도 없고 진입장벽도 없는 회사가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은 전략개념이 아닌 다른 패러다임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우스웨스트항공사와 월마트, 그리고 약품소매체인인 월그린즈의 성공적인 사례는 기존의 전략개념으로는 설명이 곤란하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됩니다. (물론 포터는 멍청하지 않기 때문에, 그 후에는 개별기업의 경쟁우위전략을 설명하기 위해 소위 밸류체인(value chain)개념을 만들어서 사용했지만, 이것 역시 기업 내 여러 기능들의 인과관계 또는 상관관계를 묶어 설명한 것에 불과합니다.)

 

요즘 전략컨설팅회사들이,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기업들에게, M&A를 통해 인근 산업으로의 진출을 검토하도록 조언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식의 컨설팅을 통해 M&A시장에 뛰어든 기업들이 많습니다. 내가 아는 한, 일부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상당부분 실패했거나 당초의 기대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략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스위스에어의 사례>는 이미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비상장 소프트웨어 회사로서 업계 1위인 SAS연구소의 존 샐(John Sall)고객과 조직원들이 말해주는 것을 듣고, 거기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 ‘진실을 들어주는 것이 똑똑한 제안보다 더 낫고, 굉장한 해결책을 찾으려 하기 전에 고객과 직원에게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제프리 페퍼, 로버트 서튼(2009), 김용재 옮김, 증거경영, 국일증권경제연구소, 302쪽 참조]

 

많은 경영자들이 자신의 회사에 경영실적이 떨어지면, 전략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전략을 세워서 실행에 옮기면 실적이 좋아질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다가 기대했던 대로 회사가 움직이지 않으면, 또 다시 다른 전략으로 옮겨갑니다. 말하자면, 고객중심 경영전략을 실천하다가 실적이 오르지 않으면 비용절감 전략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제품전략, 가격전략, 마케팅전략, 고객서비스전략, IT전략, 유통망전략, 인재전략 등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닙니다. 이전에 수립한 전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저 필요한 대로 전략이라는 용어를 갖다 붙입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사의 CEO였던 허브 켈러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전략적 기획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낭비다. 석 달 걸려서 무엇인가를 생각해 낸 다음, 경영진에게 그렇게 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는다. … 우리는 한 가지 일에 정신을 놓고 몰두하지 않는다. 거기에 빠져서 정신이 나가버리면, 기회를 놓치게 된다.”

[제프리 페퍼, 로버트 서튼(2009), 김용재 옮김, 증거경영, 국일증권경제연구소, 310]


 

이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요약해봅니다. BSC, 성공하는 기업들은 전략계획이라는 것이 미리 확고하게 세워져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그 계획을 강력하게 실행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고안된 개념입니다. 그런데, 전략계획이 확정적으로 수립되어 있다 해도, 그 전략을 실행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는 계획 자체의 무수한 변형을 요구합니다. 현실적으로도 무엇이 전략주제(strategic theme)이고 무엇이 전략요소인지 잘 알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략실행의 강력한 수단으로 개발된 BSC는 도대체 어디다 쓸 것인가?

 

사실 별로 쓸 데가 없습니다. 기업가와 경영진들의 리더십 결여를 화려하게 포장해 주는, 그래서 그들의 불안심리를 해소해 주는데 약간의 쓸모가 있을 뿐입니다. 조직원들을 철저하게 통제하면서 숫자로 쪼아댈 수 있는 강력한, 그러나 전혀 비효율적인 수단으로 쓰일 뿐입니다. 그렇게 쓰게 되면, 회사는 서서히 골병이 들게 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역량개념에 대한 약간의 논의>는 이미 앞에서 했습니다. 이어서 논의를 계속하겠습니다. 우선 역량이 조직운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 그림을 보면 "역량론" "성과론"을 지원해주는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전론", "전략론", "조직론" "성과론"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지만, "역량론" "인사론" "성과론"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High Performance System에서 역량론이 차지하는 위상


현재 우리나라에서 떠도는 역량개념은 인간의 역량을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관리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어떤 틀에 넣어서 규격화하여, 규격에 어긋나는 것을 제거하거나 규격에 맞도록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직장생활하면서 흔히 듣는 말 중에, "상사가 부하관리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하의 행동 하나하나를 상사가 일일이 직접 통제한다는 말인데, 그런 상사 밑에 있는 부하들은 참 힘든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인간의 재능(talent)을 그런 식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요?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자연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관리는 기본적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 조직, 실행, 통제의 사이클을 반복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서양문명은 자연에 대한 관리권한을 신으로부터 위임 받았다는 믿음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과학은 이런 사상에 의해 두려움 없이 발전해 왔습니다. 인간이 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관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신의 영역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의한 관리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관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형성합니다. 주인은 노예의 노동력을 최대한 끌어내려 할 것이고, 노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인의 눈을 속이려 할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관리하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관리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자연은 저항하지 못하지만, 인간은 마음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인간을 관리할 수 있다는 사상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리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뿐 아니라,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관리하지 못합니다. 아니, 관리할 수 없습니다.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자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라납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식들이 자신의 재능(talent)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믿어주는 것뿐입니다.

 

하물며, 상사가 부하들을 관리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관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까요? 자기 자식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말이죠. 자본주의적 이념이 인류의 생활사에 파고들면서부터, 자본을 위해 모든 것을 대상화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만만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20세기 초엽에만 해도 미국에서는 유치원에 들어가야 할 아이들까지 하루 종일 노동판에 끌어다 일을 시켰으니까요. 자유방임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자유방임은 공산주의만큼이나 위험한 사상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바로 자유방임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기득권층은 이 논리로 무장하여 사회적 약자를 관리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약자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는커녕 강자들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인간사회에는 누구나 타고난 재능(talent)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강자들의 욕망이 탐욕으로 흐르지 않도록 철저한 개입을 필요로 합니다. 이때 누가 누구의 권한으로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구성원들간에 투명성의 덕목이 실현되도록 합의한다면 어떤 형식이든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이런 정도의 기본 전제를 이해하고 역량에 대해 좀더 실무적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기업은 높은 성과를 내야 하고, 이익을 창출해야 합니다. 기업에 이익이 없다면, 인간에게 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반복하지만, 물이 없으면 인간은 오래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기업도 이익이 없다면 오래가지 못하고 도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물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기업에 이익은 절대로 필요하지만, 물만으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듯이 이익만으로 기업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것이 요구됩니다. 그게 뭘까요?

 

조직구성원들의 재능을 파악해서 그 재능을 썩히지 않고 무한정으로 뽑아 쓰는 것입니다. 인간의 재능은 아무리 써도 닳지 않습니다. 아무리 퍼 올려도 결코 마르지 않습니다. 그런 재능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직구성원들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개념화한 것이 바로 역량(competency)입니다. 조직은 인재를 필요로 합니다. 이때, 조직이 각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것은 역량입니다. 역량은 지식(knowledge), 기술(skill), 태도(attitude)가 뭉쳐진 덩어리 개념입니다. 평범한 성과를 내는 사람(average performer)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high performer)이 지닌 차별적 속성(differential characteristics)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량개념의 이해

 

그래서 역량은 잘 관찰되지도 않고 잘 훈련되지도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조직에서 채용하거나 이동 배치할 때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직무에 부적합한 사람을 채용하면 많은 비용을 들여 교육훈련을 시켜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잘 선발된 인원이 조직에 기여하는 성과는 선발에 투자한 비용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량과 관련하여 내가 늘 드는 비유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람쥐가 필요한 직무인데, 이력서가 화려한 코끼리를 뽑아 높고 훈련을 잘 시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코끼리는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다람쥐처럼 나무를 잘 탈 수 없습니다. 거꾸로 코끼리가 필요한 자리인데, 다람쥐를 뽑아서 훈련시키면 코끼리처럼 힘을 쓸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합니다. 나중에는 퇴출시킬 수도 없고, 유지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합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에 너무 의존하면 이런 상황이 발생합니다.

 

내가 어느 분의 소개로 미국 유수대학 MBA출신을 채용하기 위해 면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성취지향성에 약간의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워낙 아는 분의 강력한 소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맡겼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해서 얼마 가지 않아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크게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지위에 사람을 선발하려면, 역시 역량개념에 따른 선발과정을 거치도록 해야 합니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전체적인 시스템이 단순한 이미지에 의해 선발되기 보다는, 후보들이 발휘한 역량이 검증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 정치시스템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역량검증이 철저하면서도 쉽도록 되었습니다. 콘라트 아데나워,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게하르트 슈뢰더,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이르기까지 전후 독일 수상들의 면면을 보면, 한결같이 위대한 인물을 뽑았습니다. 독일국민들이 잘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단순한 상식, 즉 지위에 적합한 역량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기업과 같은 단위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장 중시해야 할 역량개념을 무시한 채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앉히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후회합니다. "제기랄, 잘못 뽑은 거 아냐?"

역량개념과 빙산모형

역량을 설명할 때, 흔히 이용되는 것이 빙산모형입니다. 역량이란 수면 아래 있기 때문에 관찰이 쉽지 않지만, 일반적인 능력같은 것은 몇 가지 테스트를 통해서 쉽게 검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정체성, 가치와 신념 등은 쉽게 관찰되지 않습니다.

 

역량을 설명하는 빙산모형


역량의 문제는 깊이 따져보면, 가치와 신념의 문제를 넘어 정체성과 영혼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역량은 단순한 지식이나 스킬의 문제를 훨씬 뛰어 넘는 인간의 내적 속성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량을 단순한 지식과 스킬의 차원과 행동패턴의 수준에서 파악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어느 금융기관에서 역량과 관련해 자문의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관은 몇 년 전에 어떤 외국계 인사컨설팅회사로부터 역량관련 컨설팅을 받았습니다. 역량모델과 역량사전을 만들어서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보관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고 활용하려고 만들어 놓고는 담당부서의 서류철에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역량모델에는 35개의 역량요소로 구분해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역량사전에 등재된 역량요소는 150여 개나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문서관리역량(Documentation Management Competency)이라는 요소도 있었습니다! 세상에! 

미국식 경영학은 인간의 정신을 행동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문서를 체계적으로 잘 관리하는 행동특성을 문서관리 역량으로 표현했습니다. 미국식 경영학의 폐해가 여기에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많은 컨설턴트들이 역량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조차 헷갈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회사에는 역량에 대한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정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량은 행동이 아니며, 행동패턴이 역량을 표현하는 것도 아닙니다.

 

역량이란 단순한 지식이나 스킬 개념이 아니며, 그것을 포괄하는 더 깊은 가치와 신념, 정체성과 영혼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성취지향성(Achievement Orientation, ACH)정직성(Integrity, ING), 자신감(Self-Confidence, SCF)대인영향력(Impact & Influence, IMP) 등과 같은 직무적합성을 드러내는 개인의 내적 속성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개별적인 역량요소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몰라도 됩니다.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나는 이런 역량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개인의 독특한 행동패턴을 형성하기 때문에 역량을 마음의 프로그램(mind program)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여기서 행동패턴이 역량이 아님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합니다. 행동패턴을 통해 역량요소를 유추할 수는 있지만, 행동패턴은 그냥 빙산 위에 드러난 행동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의 프로그램인 역량은 한마디로 세 살 적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세 살 적 버릇이 곧 역량입니다. 잘 바뀌지 않고, 훈련을 한다 해도 아주 오랜 시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 살 적 버릇(역량 또는 마음의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는 것이 바로 역량개념의 핵심입니다.

 

역량의 문제는 워낙 뜨거운 이슈이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항이기 때문에 자세히 별도로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내가 어느 금융기관을 자문하고 있던 시절의 경험을 소개해야겠습니다. 꽤 오래 전의 일이라 사건의 경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요지는 그 회사의 임원 중에 한 사람과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던 여인이 회사 인사부서에 찾아와서 혼인을 빙자하여 간음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혼하여 자녀까지 있는 임원에게 그런 일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회사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연히 나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자문을 구해왔습니다. 그리고는 즉각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나는 장문의 자문의견서를 보냈습니다. 해고를 할만한 사안은 아니며, 필요하다면 가벼운 경고로 충분하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아내를 둔 남편으로서 외도한 것을 눈감아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적 영역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저버렸다고 해서 그것을 함부로 공적 영역에서 다루려고 하면 안 된다는 점을 말한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했다고 해서 직장에서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주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적인 문제는 공적인 일로, 사적인 문제는 사적인 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죠.

 

내가 이런 의견을 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흉흉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기업도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를 지켜주어야 한다고 줄곧 강조했던 사람이 파렴치범을 싸고 돈다는 것이죠.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서 뭘 얻어먹겠다고 파렴치범을 감싸고 돌겠습니까. 소문이라는 것은 무섭죠. 일단 소문이 그렇게 나면, 나는 파렴피범을 싸고 도는 사람이 돼 버립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진실을 알게 됩니다.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의 사회적 기대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경우에 한하여 공적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내 생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부부싸움이라도 사적 폭력이 가해지면 공적 영역(예를 들어 경찰)이 개입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논리를 이제 그 사건에 비추어 보면, 내연관계를 유지해 왔던 사적 관계가 회사의 공적 영역에 어떤 손실을 가져왔는지를 따져서 그 손실에 해당 되는 만큼 징계처분을 내리는 것이 적당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 손실이란 사실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회사입장에서는 금융기관의 임원이라는 자리는 막중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그리고 윤리도덕적인 흠결이 공적인 영역에서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외부인이 인사부서에 찾아와서 큰소리가 나게 했다는 사실 외에는 별로 큰 손실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직위해제라는 중징계 조치를 취했습니다. 소위 뽄떼를 보인 것이죠.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당사자가 직접 연봉을 삭감해도 좋으니 직위해제라는 불명예스런 조치는 취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회사에 했다는 점입니다. 돈보다 명예를 중시한 것이죠. 나중에 그는 직위를 회복했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명예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쪽팔림이라고 합니다.

 

지난 번에 썼던 포스트에서 한국은행의 조직개혁을 담당했던 사람들에게 당시 한은의 박철 부총재가 “돈 몇 푼 가지고 사람들을 치사하게 만들지 말라”고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정말, 돈 몇 푼 가지고 사람을 치사하게 만드는 일은 이제 삼가야 합니다. 인간의 정신이 어느 정도 성숙한 수준에 올라서면 돈보다는 명예를 중시하게 됩니다.

법과 원칙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경영하는 사람들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재판관들도 이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껌 하나라도 받아 씹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껌이라는 하찮은 것이라도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사람을 망신주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대신 공적으로 해악을 끼친 경우에는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전과자들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하겠지요. 껌 한 톨 받아 씹는 것도 엄청난 불명예인 줄 아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전과자라는 공적인 "쪽팔림"을 당하고도 버젓이 공적 영역에서 활개치는 사회는 분명 정신이 건강한 사회는 아닙니다.

 

끝으로,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조직 생활에서 명예가 실추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제도가 설계되어서는 안 되며, 특히 평가결과가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로 급여가 차별화 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초등학교 운동회 100미터 달리기에서 꼴찌 했어도 쪽팔리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보상제도에서 성과에 따른 차별적 보상이 심대한 경우에는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

모든 제도는 항상 구성원에게는 강력한 구속력을 갖고 있지만
, 상징적 메시지를 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지각을 세 번 하면 한번 결근한 것으로 간주하는 규정이 있다고 칩시다. 이러한 규정은 어떤 메시지를 줍니까? 지각하지 말라는 메시지입니다. 세일즈맨에게 성과급을 기본급의 50퍼센트가 되도록 제도화했다면 이것은 무슨 메시지를 줍니까? 어떤 방식으로 판매활동을 하든 세일즈 볼륨을 높이라는 무언의 메시지입니다. 높은 당근을 내걸었기 때문에 그 당근이 성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실제로 당근이 성과창출에 도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근이 없다면 누가 일에 참여하겠습니까? 따라서 보상이 평가결과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야 하지만, 연결의 내용과 방식은 그 조직의 문화적 수준 또는 성숙 정도에 따라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당근(보상)이 과연 일의 목적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내가 한국은행에서 20년간 일했던 시절을 돌아보면, 유형 무형의 보상이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혹독한 일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의 삶이 나에게 달려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일도 반감이나 싫증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동기들과 같은 수준에서 보상을 받았고, 승진도 다들 비슷비슷하게 했습니다. 아주 유능한 사람은 총재나 부총재 정도의 출세를 노려볼 수 있습니다. 20년씩 함께 일하다 보면, 각자의 능력은 밝혀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동기 중에 누구누구는 총재감이라는 소문이 납니다. 한국은행 역사를 보면, 대개 그런 인물들이 총재 또는 부총재가 됐습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대세에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한국은행이 너무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라는 외부의 비판이 있긴 하지만, 조직 자체로서는 예측가능한 인사가 실현되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직원들 대부분은 승진과 보상에 상관없이 한국은행에 근무하는 것 자체를 명예롭게 생각했습니다.

 

명예 얘기가 나와서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한국은행에서 3년간 조직개혁작업을 하느라 고생을 했다는 얘기는 예전에 했습니다. 그때 보상제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로 당시 헤이그룹(Hay Group) 일본지사에 자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헤이그룹은 미국의 인사전문가였던 에드워드 헤이가 20세기 초중엽에 세운 인사컨설팅회사인데, 전세계적으로 서비스를 합니다. 다나카 시게루 사장과 와타나베 토시카즈 부사장이 세미나와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한은의 조직개혁작업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문제는 직무평가방법론인 <헤이 가이드 차트 Hay Guide Chart 기법>을 통한 직무평가와 그 결과에 근거한 보상제도를 설계할 때 발생했습니다. 직무평가야 주어진 차트에 따라 하면 되는데, 그 결과를 직급체계로 구분해서 보상제도를 설계할 때 논란이 생겼습니다. 헤이그룹의 견해는 당연히 성과평가 결과에 따라 개별적으로 차별적 보상이 주어져야 하며, 그것이 가급적 점차 벌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형적인 미국식 사고였습니다.

 

헤이그룹에서 한은 경영진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당시 박철 부총재의 언급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돈 몇 푼 가지고 사람들을 치사하게 만들지 말라는 얘기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다들 한마디씩 하는 얘기 중에 한 말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그냥 흘려 들었을 텐데, 내 귀와 마음 속에는 아직까지도 그 말이 깊이 꽂혀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경제적 합리성을 넘어서는, 명예를 중시하는,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 본연의 속성과도 관련된 문제입니다. 인간은 돈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명예로워질 수도 있으며, 돈 때문에 치사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평가와 그에 따른 보상제도가 구성원들의 마음 속에 명예로움을 느끼도록 하지는 못할 망정 치사함을 느끼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한국은행의 개혁작업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서 한은을 떠났습니다. 컨설팅 시장으로 나왔을 때, 한은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돈으로만 평가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회계사들과도 많은 일을 해야 했는데, 고객에게 자문료나 컨설팅 비용 등을 청구하기 위한 도덕적 해이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말하자면, 고객은 저렴한 비용을 요구하고, 회계법인이나 컨설팅 회사에서는 가격경쟁을 통해 수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일단 수주하고 나면, 회계사나 컨설턴트들의 투입시간을 조정하여 비용을 과다하게 청구함으로써 회계법인이나 컨설팅 회사의 수지를 맞추는 관행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컨설팅 회사는 연구개발에 시간을 쓸 여유가 거의 없습니다. 나는 이것이 컨설팅 시장의 악순환을 계속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몰랐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사태의 본질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계사와 컨설턴트들이 자신을 앵벌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런 사태를 방조하는 회계법인과 컨설팅 회사 경영진의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유정식, 『컨설팅 절대 받지 마라』, 거름 2007을 참조하세요. 컨설팅 세계에 대해 잘 묘사해 놓았습니다. <infuture>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데 배울 것이 많습니다.)

 

이들 경영진의 태도는 회계사와 컨설턴트를 인간이 아니라 돈을 벌어오는 기계로 생각하는 착취구조로 고착되어 있습니다. 대형회사의 경영진은 과도한 보상을 받아가지만, 그들의 보상구조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말은 투명성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경영진으로 올라서서 큰 보상을 받을 날을 고대하면서, 젊은 회계사와 컨설턴트들은 앵벌이와 같은 인고의 나날을 보냅니다. 그 동안 전문성과 실력을 쌓기 보다는 프로젝트 수주요령을 익힙니다. 회사가 당근을 내걸고, 젊은 회계사와 컨설턴트들의 재능을 뽑아내는 구조입니다. 여기에는 무형의 폭력이 숨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은 오로지 돈이 되느냐 아니냐입니다.

 

교육계의 먹이사슬도 같은 구조입니다.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잘 보여야 할 유인이 거의 없습니다. 학교장에게 잘 보이는 것이 승진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장은 교육청관료들에게 잘 보여야 좋은 학교로 발령을 받게 되고, 교육청은 교육부 관료들에게 잘 보여야 국물이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윗사람들이, 주로 행정관료들이 일선의 교사들을 힘과 돈으로 쪼면 쫄수록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는 듯 합니다.

 

일정한 경력이 있고 잘 가르치는 교사를 수석교사로 임명하는 것을 당근으로 내걸기도 했지만, 교육이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교사들에게 계급을 두어 교육행위를 유인하려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음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교사들의 인사고과에 따른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교육계를 혁신해 보려고 하지만, 교사들간의 불신과 불화만 일으켰습니다.

근본은 무엇인가? 교육부의 행정관료에서부터 일선 교사들을 거쳐 학부형에게 이르는 착취구조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포기하고 아래로 내려와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사는 학생을 섬기고, 교장은 교사를 섬겨야 합니다. 교육청은 각급학교장과 교사들을 섬겨야 합니다. 교육부 행정관료들이 지방의 교육청을 섬기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나라 공교육이 살아날 것입니다.

 

착취구조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섬뜩하게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착취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살펴보면 금방 이해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세상에 다른 사람과 똑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윗사람은 권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아랫사람에게 명령함으로써 자기와 동일한 생각을 하도록 강요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신의 명령과 지시대로 실행하지 못하면 보상과 처벌권한을 발동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자발적인 동기가 아닌 당근과 채찍으로 움직이는 것이 문제인데, 이것이 바로 헤겔이 말하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가 시작되면, 아랫사람은 실존적 존재가 아닌 물질적인 생명체로만 존재합니다. 조직구성원의 고유한 잠재력을 왜곡하기 때문에 바로 이때부터 착취고리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나아가 성과평가 활동과 그 결과물,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이 조직구성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개별성과급이 나쁘다 좋다를 논하기 전에, 그 성과급이 조직구성원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어떤 메시지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내가 속한 조직의 보상시스템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나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조직은 성과를 내기 위해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절차로서 제도화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때 제도화의 지향점은 성과입니다. 그래서 성과론이 고성과조직(High Performance Organization)의 핵심을 이룹니다. 매 회계연도에 맞추어 성과목표를 설정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은 그림에서 보듯이 성과책임과 연간사업계획입니다.

 

High Performance Organization

 

연간사업계획이 필요 없다고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미세한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언급하는 연간사업계획의 폐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직의 의지의 표현인 사업계획(business plan)은 어떤 경우에도 필요합니다. 사업계획을 세울 것인가 말 것인가의 논쟁은 사업계획이 구성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업계획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은 결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계획은 계획일 뿐입니다. 계획이 의미를 갖는 것은 계획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구체적 지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부산에 가려는 목표를 세웠을 경우(, 부산에 도착하는 것을 성과라고 정의했을 경우), 계획이란 바로 언제 어떻게 갈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므로, 상황에 따라서는 매우 다양한 수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과목표는, 맡은 직무의 성과책임과 조직의 전략에서 구체화된 연간사업계획을 바탕으로, 설정되어야 합니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과목표는 타율적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조직구성원의 자율성에 맡겨 두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모든 조직구성원은 시간, 예산, 인원수 등을 포함한 연간사업계획에 따라 자신이 맡은 직무의 성과책임을 고려하여 스스로 성과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성과책임이 부산에 도착하는 것이라면, 성과목표는 언제까지 대전에 도착하고, 다시 언제까지 대구에 도착할 것인지를 정의한 것입니다. 물론 이를 위한 수단과 방법도 정의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KTX로 갈 것인지, 자전거로 갈 것인지 등과 같은 것 말입니다.
 
이렇게 성과목표가 구체화된다는 것이 곧 계량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매출액, 영업이익률, 자산운용수익률, 시장점유율 등과 같이 계량화가 가능한 것들은 계량화할 수 있겠지만, 불가능한 것을 굳이 계량화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조직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서 계량화되는 것보다 계량화되지 않는 정성적인 것들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과론에서 가장 첨예하게 논쟁이 되는 분야는 성과목표 설정보다는 성과평가에서 발생합니다. 성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평가만큼 논란이 많은 이슈도 없습니다. 평가가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평가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습니다. 평가의 방법과 기술적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 이전에 평가란 무엇인가를 정의해야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평가를 보상결정을 위한 수단 또는 도구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고, 관리자의 권력행사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평가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평가는 과거의 잘잘못을 가려서 그 원인을 캐는 것도 아니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내가 실무에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직원들과 일할 때 가장 크게 실패했다면 아마도 평가에 대한 오해를 풀어내지 못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평가는 결코 보상결정 수단이 아닙니다. 평가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반성하고 전망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대부분의 조직은 이 절호의 기회를 보상에 대한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조직구성원은 평가를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한 두뇌게임으로 생각합니다. 부하는 자신의 패를 상사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상사 또한 평가를 부하관리의 좋은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부하와 상사 간의 팽팽한 신경전을 벌입니다.

또한 평가는 기득권에 봉사하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나는 평가의 개념에서 이 도구적 성격을 빼버리는 데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인사고과자는 아무도 자신의 평가권한을 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란 상대방을 보상하고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하는 것인데, 멍청하게도 이 권한을 축소하거나 없애려고 했습니다. 나는 회사의 간부들을 링컨이나 간디와 같은 위대한 인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교육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학생들을 평가하는 목적을, 시험성적으로 잘잘못을 매기는 것이고, 그에 따라 서로 경쟁해서 더 잘하도록 동기부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식의 평가이해야말로 인류를 시기와 질투, 불안과 공포, 폭력과 절망으로 안내하는 교묘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일선 학교 교장들에게 더욱 많은 권한을 준다고 정부에서 발표했습니다. 교장에게 감독권한을 더욱 강화해주면, 과연 교사들의 교육행위의 질적 수준이 올라갈까요? 앞으로 교사들은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더욱 멀어질 것이고 교장의 얼굴에 더 신경 쓰게 되겠지요. 교육계의 평가방식에 대한 얘기는 추후에 다시 할 예정임)

 

평가제도는 기득권의 권력확보 또는 권력유지에 유리하도록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평가제도의 혁신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조직 전체의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권력을 포기하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누가 권력의 단맛을 스스로 놓으려 하겠는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아래의 자리로 내려설 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섬길 때 비로소 변화와 혁신의 바탕이 마련됩니다.

 

평가(appraisal)는 현 상황을 진실하게 파악하고 미래를 향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인지를 살펴보는 피드퍼워드(feedforward)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평가의 본질입니다. 평가자가 평가대상자의 미래를 진심으로 염려하고 장래에 희망의 빛과 애정의 비단길을 깔아줄 때 평가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평가는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의 재확인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원인을 밝히고자 한다면, 평가대상자는 심리적 방어메커니즘을 발동하여, 과거의 진실을 밝힐 수 없게 됩니다. 설사, 그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한 부하의 심리적 상처는 지울 수 없게 됩니다. 또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면 뇌세포로 하여금 과거의 배선망(neural wiring)을 더욱 굳어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과거와 단절하려면 과거를 건드리지 말고, 망각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평가란 과거와 단절된 현 상황을 사실 그대로 인식하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의지의 표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과평가 결과가 보상으로 연결되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의 논쟁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보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입니다. 연결이 안 되면, 결과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아무런 메시지를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강력하게 연결될 경우에는 많은 부작용이 초래됩니다. 보상은 인간의 정신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우수한 성과를 낸 유능한 사람에 대한 보상은 시골 초등학교의 운동회에서 받았던 수준의 표창으로 족합니다. 보상은 다만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이 성과에 따른 보상의 차이가 크면 어떻게 될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이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는 골고다 언덕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수는 이처럼 자신을 죽인 그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탄원했습니다.

 

예수가 죄수 두 명과 함께 처형되는 현장에 있던 로마 병사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 있었는데,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죄가 없었던 예수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고, 스스로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고, 병자를 고쳐주었고, 죽은 자를 살렸고,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율법은 위선을 조장한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위선의 기도를 올리는 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파격적인 예수의 가르침은 당시 유대세계에 비교적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로마 병사들은 예수가 죄 없다는 그 명백한 사실을 어째서 알지 못했을까요? 병사들이야 무식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예수를 심문했던 빌라도 총독은 예수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를 십자가 처형에 내맡긴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역사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지식인 계급에 속했던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은 예수에게 찾아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를 물었습니다. 유대사회의 지도자였던 니고데모는 예수의 비범성을 알아보았지만,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을 깨지 못했습니다. 유대땅을 다스리는 높은 지위에 있었고 거기서 벌어지는 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빌라도 총독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예수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헤롯왕을 비롯한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예수를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협하는 인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거침없는 가르침과 진실폭로에 겁을 먹었고, 어떻게 해서든지 꼬투리를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권력자들의 역사의식의 결여. 이것이 예수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 몰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의식이란 무엇인가?

 

역사의식은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관한 성찰에서 비롯됩니다. 말하자면, 역사적 존재로서 자각하는 능력입니다. 이런 능력의 결핍은 사회적으로 많은 위험과 위기를 초래합니다. 최근에 겪은 대표적인 사례가 부시의 이라크 침공입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통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시는 세계사적 역사의식의 결여로, 박정희는 민족사적 역사의식의 궁핍 때문에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부시나 유신시대의 박정희와 같은 사람들의 특징은 비전/목적/방향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공유된 비전/목적/방향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만들어 공유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리석게도 자신이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 또는 사회가 그것을 원할 것이라고 짐작되는 것을 힘으로 밀어 부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다른 부분은 내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고, 내 분야에서만 본다면 경영학은, 20세기 초반, 숫자로 쥐어짜던 제1세대 경영학(Taylorism)에서, 20세기 후반, 인간의 자율성을 확보하려던 제2세대 경영학(Druckerism)을 지나왔습니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부터 제3세대 경영학(Wholism)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조직과 조직구성원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하나입니다.

 

구성원 개개인은 구분되는 독립체인 것이 분명하지만, 어떤 조직에 소속되면 그 조직의 전체가 되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개체가 전체요 전체가 곧 개체인 상태입니다. 개개인이 조직의 전체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낱개로 찢어진 존재가 아니라 낱개의 특성을 보존한 채 따뜻하게 연결된/뭉쳐진 공동체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 공동체를 구성할 때, 비로소 높은 성과를 낸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미국식 경영학의 폐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현정부의 경영방식은 제1세대 경영학에 속하는 계량화에 의한 명령과 통제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아울러, 그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실용적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지도 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현정부에서는 이런 고민의 흔적을 거의 발견할 수 없습니다. 속도전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역사의식의 결여에서 오는 온갖 과오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역사의식의 결여를 힘의 실용적 활용으로 커버할 수 있을까요? 힘의 활용과정에서 겪는 무수한 고통과 희생을 우리는 그저 감수하고 있어야 할까요? 힘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을 힘으로 밀어 부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가 가르쳤던 것처럼, 힘을 쓰는 사람은 결국 힘으로 망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이런 의문들은 흥분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촛불을 든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촛불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효과가 있긴 하지요.) 온 국민의 깊은 사색을 필요로 합니다. 사색은 어느 날 갑자기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장기간의 훈련을 해야만 사색이 가능합니다. 역사의식은 사색을 통해 싹틉니다. 사색의 훈련이 없이 오로지 손익만 계산해 본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역사의식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전략>을 실행하려면 조직이 필요합니다. <조직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어느 정도 이미 했고, 나중에 진지하게 논의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아주 간단하게 전략을 뒷받침하는 의미로서의 조직에 대해서만 살펴보려고 합니다.

 

전략은 조직을 운용하는 경영관리를 통해 실현됩니다. 조직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비전/목적/방향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즉 전략을 실행함으로써 가치를 갖게 됩니다. 전략실행을 위한 조직은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프로세스로 제도화 됩니다.

여기서 구조(structure)는 조직이 나누어져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래서 구조는 위아래로 사장으로부터 말단 사원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으로 나뉘어 있고, 좌우로는 기획부에서부터 생산공장에 이르기까지 횡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종횡으로 나뉘어 있는 상태를 구조라고 합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조직도(organization chart)가 대표적인 구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계는 나뉘어 있는 각각의 단위조직들이 서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유기적인 하나의 조직처럼 움직이도록 꿰매는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의사결정시스템, 의사소통시스템, 성과관리시스템, 보상체계 등과 같은 제도적 장치들을 체계, 즉 시스템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조직은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이기도 하고, 그 시스템을 유지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큰 시스템의 하위시스템(subsystem)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프로세스는 업무흐름(work flow)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조와 시스템에 의해 업무를 수행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합니다. 구조와 시스템이 복잡할수록 프로세스 또한 복잡해져서 비효율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프로세스를 리엔지니어링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프로세스는 그 자체로서 독립된 현상이라기보다는 구조와 시스템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복잡해진 프로세스를 리엔지니어링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구조와 시스템을 혁신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제도란 조직을 움직이게 하는 (조직구성원을 제외한) 구조와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포괄하는 용어입니다. 모든 구성원은 제도의 구속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도설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도에 의해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합니다. 모든 제도(institution)는 규정화(regulation)에 의해 형성됩니다. 규정은 상황의 변화에 적당히 변모하지 못하는 속성이 있어 조직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습니다. 제도는 전략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업무효율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변화를 꾀해야 합니다.

이처럼 전략은 구조에 영향을 주지만, 구조 또한 전략에 영향을 줍니다. 구조가 전략의 실행을 제한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사업영역에 진출하려는 전략을 세워서 실행하려고 하지만, 기존의 사업분야를 맡고 있는 경영진과의 암묵적인 비협조 때문에 전략실행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개념을 넘어, 조직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직무의 성과책임(accountability)을 명확히 규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과책임이란 직무의 본질이자 존재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성과책임이란 각 직무가 창출해야 할 성과에 대한 책임을 말합니다.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를 다른 문헌에서는 책무성 또는 책임성이라는 용어로 번역된 것을 보았는데, 의미가 불분명해서 올바른 번역이 아닌 것 같습니다. 더구나 responsibility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명확히 하면, responsibility는 자극에 의한 반응으로서의 책임을 의미하는 반면에, accountability는 자극이 있든 없든 상관 없이 창출해야 할 성과에 대한 책임 또는 바람직한 상태를 유지해야 할 책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따지면 responsibility보다 더 명확하면서도 포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 명이 사망하고 부상하는 큰 화재사고가 난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기자들이 소방관들에게 묻습니다. 어쩌다 이런 사고를 미리 예방하지 못했나요? 대답은 한결같이 소방관 인원과 소방예산의 부족으로 신형 첨단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소방점검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장비부족으로 화재진압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기자들은 대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맙니다. 하지만, 어카운터빌리티 개념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소방서장에게는 어떤 자극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관내에서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할 책임, 즉 바람직한 상태를 유지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방인원과 예산을 확보하는 것까지도 그의 어카운터빌리티에 암묵적으로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직무분석에 있어서 각 직무의 성과책임, 즉 어카운터빌리티를 명확히 규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용어정의야 어찌 되었든, 내 경험에 의하면, 조직에서 성과책임을 흐리멍텅하게 만들어 놓고 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성과책임은 성과를 창출할 책임에 관한 것으로 직무가 중장기적으로 달성해야 할 표준적인 성과물(원하는 상태, desired state 또는 end state)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조직의 비전/목적/방향이 구체적인 형태로 각 직무에 분해되어 내려 온 것입니다. 이것은 각 직무의 비전/목적/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희끄무레하면, 조직구성원들이 자신의 직무수행과정에서 방향성을 잃게 됩니다. 직무의 성과책임에 관해서는 추후 자세히 설명할 예정입니다.

관련된 글

  • 2009/05/20 경영이란 무엇인가(11)_전략(strategy)
  • 2009/05/06 경영이란 무엇인가(10)_너희가 비전(vision)을 아느냐?
  • 2009/05/03 경영이란 무엇인가(9)_비전(vision)
  • 2009/04/29 경영이란 무엇인가(8)_중요 개념들의 조합을 전제로 한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전략은 수단입니다. 그래서 전략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비전/목적/방향에 의해 자연스럽게 도출될 뿐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영자들은 전략수립과 실행이 성공과 실패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략수립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수립된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전략에 너무 신경쓰지 말라

    경영자들의 그런 심리상태를 잘 파악하여 판매하고 있는 도구들이 그 동안 많이 나왔었습니다.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팔리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일종의 유행병처럼 기업계에 퍼지곤 했습니다. 예를 들면, 1990년대에는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이 그랬습니다. 그 후에는 균형잡힌 성과지표체계(Balanced Scorecard)와 식스시그마가 그랬습니다. 지금도 조금은 팔리고 있는 듯 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업의 전략수립과 실행을 돕는 최상의 도구라고 선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 기업의 성공사례를 보여주곤 합니다. 그래서 경영자들이 너도나도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늘 그랬던 것처럼 명예의 전당에까지 오른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더 나아졌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내가 여기서 자세히 예를 들진 않겠지만, 오히려 나빠진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영자들이 전략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략은 비전/목적/방향을 달성하도록 하는 도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구도 적합하고 좋아야겠지요. 날 빠진 대패를 망치로 대신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전략이란 무엇인가

    전략은 중장기 계획으로서 로드맵(roadmap)의 형태로 표현됩니다. 중장기적 이정표(milestone)인 로드맵은 다시 매년 연간사업계획으로 세분화 됩니다. 전략은 조직의 형태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사업부문의 지리적 기술적 통합전략과 분산전략에 따라 조직구조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전략만능주의입니다. 전략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략은 항상 협의로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전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전략이란 비전/목적/방향으로 나가게 하는 이니셔티브들의 조합(set of initiatives)이다.”

     

    여기서 이니셔티브(initiative)란 일상적인 과업을 말하는 게 아니라, 비전/목적/방향을 향하여 과거와는 다른 뭔가의 특별한 과제 또는 프로젝트를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니셔티브에는 쉽고 익숙한 것들에서 어렵고도 장기적인 것들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니셔티브들의 조합을 나는 전략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늘 강조하지만, 전략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1947~) 교수가 만든 전략의 개념을 보면, 이 세상이 모두 전략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처럼 과대포장 되어 있습니다. 특히 전략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나 컨설턴트들은 전략을 잘 세워서 경영을 하면, 성공할 것처럼 경영자들을 현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개인적 경험이나 객관적인 통계를 보더라도 전략은 지극히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스위스에어의 사례

    전략을 중시하여 멋있는 전략으로 조직을 성장시켜보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는 우리나라 많은 사례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크게 실패했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하면 관련된 분들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어서, 외국사례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2002년 부도를 낸 스위스에어(Swissair)의 사례를 보면 극명합니다. 스위스에어는 70여 년간 영업이나 재무구조상에서 가장 안전한 항공사라는 브랜드이미지로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지켜왔습니다. 그러던 스위스에어가 90년대부터 전략컨설팅회사인 맥킨지(McKinsey & Company)의 자문에 따라 인수합병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중소항공사를 대거 사들였고,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결국 파산의 종말을 맞았습니다.

     

    겉보기에는 전략을 잘못 세우고 실행하는 바람에 스위스에어가 망한 것이므로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역시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공유된 확고한 비전/목적/방향이 조직성쇠의 독립변수이며, 전략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종속변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스위스에어의 부도는 전략부재가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경영진의 조직과 구성원, 고객과 시장에 대한 경영이론과 철학의 부재를 전략으로 메워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경영진의 비전/목적/방향의 결여에 그 원인이 있었는데도 그것을 사냥꾼 전략(hunter strategy)으로 해결하려 한 멍청한 해결책 때문에 그 동안 쌓아왔던 스위스에어의 명성과 브랜드는 하루 아침에 무너졌습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전략수립과 실행이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전략수립과 실행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전략컨설팅을 받은 조직들이 형편없는 성과를 내거나 아니면 도산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내가 전략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략은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거나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영자들이 전략에 몰두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경영자들의 흐리멍텅한 마음의 상태를 깨어있도록 만드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강조하겠지만, 경영자와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프로그램을 혁신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그것이 모든 것의 기반이 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비전(vision)은 사람에게 희망을 줍니다. 인간은 현재상태(present state)와 원하는 상태(desired state)를 비교하여 그 갭을 메우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독특한 현상입니다. 다른 동물들에는 일시적인 갭을 느끼지만, 인간은 영원히 그 갭을 느낍니다. 동물은 본능의 폐쇄적인 틀에 갇혀 있지만, 인간은 본능을 넘어선 초월적 세계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의 틀에 갇혀 있다면 그는 짐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비전이란 원하는 상태(desired state)를 말합니다. 이것을 먼저 정해야 그 다음의 행동전략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그냥 잘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던지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와 같은 수준의 막연한 기대는 비전이 아닙니다.

     

    비전은 도전적이고(challenging) 명확해야(clear) 합니다. 그리고 비전에 도달했는지(consequential)의 여부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매혹적이어야(compelling) 한다는 것입니다.

     





    매혹적인 비전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내가 번역한 책, 리차드 해크만, 최동석, 김종완 옮김, 『성공하는 팀의 5가지 조건』(Leading Teams), 교보문고 2006, 122쪽 이하를 참조하세요.







     

    우리가 잘 아는 모한다스 간디, 넬슨 만델라, 아브라함 링컨에게는 바로 이런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강렬한 비전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 조직의 원하는 상태(desired state)를 상정했고, 그것을 머릿속에 강렬한 이미지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연설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읽어도 그들의 말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강렬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상태는 몇몇 사람들이 아닌 대다수 사람들이 추구하는 진리에 기초하여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제2차 대전에서 승리했지만, 소련의 우주개발기술에 뒤처져 있었습니다. 실망하던 국민은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를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국민적 요구에 응답하려는 듯, 케네디는 1961년 우주계획의 목표를 정했습니다. 전국에 생방송되는 의회연설에서 미국은 인간을 달에 보내고 무사히 귀환시킨다는 담대한 계획을 선언했습니다. 내가 16년 전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처음 갔을 때, 케네디가 연설하던 그 장면을 반복해서 관람객에게 틀어주었습니다. 케네디의 이 한마디는 미국인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예산을 지원했습니다. 케네디는 국민에 대하여 매력적인 비전(compelling vision)을 제시할 줄 아는 지도자였습니다.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는 1963년 링컨기념관 앞에 모인 대중들에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제목의 연설을 함으로써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도덕적 진리에 호소했습니다. 이 연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킹 목사가 암살되고 나서 40여 년이 지난 지금,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는 미국으로 변모되었습니다.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1917~1979) 장군이 집권하여 호소한 것은 잘 살아보세였습니다. 박정희의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경제적 이해득실의 문제로 전환시켜버렸습니다. 그때는 온 국민이 하루 밥 세끼를 걱정하던 시대였기에 이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다면 박정희의 말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것이 가능할까요?

     

    우리 사회는 지금 비전(vision)을 잃었습니다. 국민들이 기대했던 경제적 이익도 잃어 버렸고, 도덕적 권위도 사라졌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짐승처럼 본능의 틀에 갇혀있고, 초월적 세계에 대한 이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사회와 국민을 매혹시키는 비전(compelling vision)은 과연 무엇일까요? 다같이 생각해보시죠.

     

     

    p.s.힘있는 모든 사람들의 에너지를 끌어 모아야 할 텐데, 지도자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안위만을 생각해서 힘있는 사람들을 내치고 온갖 아부와 아첨을 일삼는 자들을 중용하는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똑 같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념이 다른 정당의 사람들까지 포용해서 국가경영의 지혜를 모으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 지도자들은 밴댕이 콧구멍만도 못한 소견으로 정치를 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경영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비전(vision)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견이 없습니다. <6개의 경영개념> 중에서 최고의 지도이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났던 많은 경영자들은 비전(vision)의 문제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장 효과가 있는 어떤 처방을 원합니다.

    경영자는 조직의 비전/목적/방향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비전/목적/방향은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항상 비전/목적/방향을 하나의 단어처럼 붙여서 씁니다. 비전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상태(desired state)를 말합니다. 목적(purpose)은 왜 그것을 원하고 있는지를 설명한 것으로서 가치관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방향(direction)이란 원하는 것의 지향성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서 지리산을 등반할 것인지 한라산을 등반할 것인지를 명확히 해 주는 것이 방향이고, 목적이란 왜 골프가 아니고 등반인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비전이란 산의 정상까지 정복할 것인지 아니면 중간 능선까지 등반하고 말 것인지를 정한 것으로 구성원의 가슴을 뜨겁게 달궈줍니다.

     

    비전/목적/방향은 항상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도전하는 것을 피할 수 없도록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주알고주알 미세한 것까지 완벽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비전 : 고객을 가장 편안하게 모시는 세계 최고의 호텔(호텔체인),

         목적 : 우리는 인류의 질병과 싸운다(제약회사),

         방향 : 속도, 무경계, 성장(세계 최대의 복합기업)

     

    이러한 비전/목적/방향은 구성원들에게는 가슴을 뛰게 하는 요구임과 동시에 조직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직무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일반적인 가이드 역할을 해줍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는 각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에 맡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전/목적/방향은 조직마다 다 다르게 표현되지만, 나는 그것을 하나의 단어처럼 묶어 씀으로써 조직의 정체성을 명확히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자는 구성원들이 비전/목적/방향을 향하여 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하고, 동시에 그것이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진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비전을 향하여 물샐틈없이 종업원들을 관리해 나가도 될까 말까 한 판에 자율과 창의가 웬 말이냐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전/목적/방향은 효율성을 최대한 확보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는 이상(理想)입니다. 여기서 효율성이란 앞서 말한 대로 구성원에게 자율을 부여하고 창의를 기대하는 방식을 전제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 구성원들의 만족감 또는 성취감입니다. 우리가 이상을 향해 나가려면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합니다.

     

    비전/목적/방향이 조직구성원들의 의식과 무의식의 마음 상태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역량수준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잘 알아내어 내가 만났던 중견기업의 70대 회장님처럼 종업원들의 마음으로부터 소외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