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개념에 대한 약간의 논의>는 이미 앞에서 했습니다. 이어서 논의를 계속하겠습니다. 우선 역량이 조직운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 그림을 보면 "역량론" "성과론"을 지원해주는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전론", "전략론", "조직론" "성과론"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지만, "역량론" "인사론" "성과론"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High Performance System에서 역량론이 차지하는 위상


현재 우리나라에서 떠도는 역량개념은 인간의 역량을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관리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어떤 틀에 넣어서 규격화하여, 규격에 어긋나는 것을 제거하거나 규격에 맞도록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직장생활하면서 흔히 듣는 말 중에, "상사가 부하관리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하의 행동 하나하나를 상사가 일일이 직접 통제한다는 말인데, 그런 상사 밑에 있는 부하들은 참 힘든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인간의 재능(talent)을 그런 식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요?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자연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관리는 기본적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 조직, 실행, 통제의 사이클을 반복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서양문명은 자연에 대한 관리권한을 신으로부터 위임 받았다는 믿음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과학은 이런 사상에 의해 두려움 없이 발전해 왔습니다. 인간이 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관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신의 영역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의한 관리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관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형성합니다. 주인은 노예의 노동력을 최대한 끌어내려 할 것이고, 노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인의 눈을 속이려 할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관리하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관리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자연은 저항하지 못하지만, 인간은 마음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인간을 관리할 수 있다는 사상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리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뿐 아니라,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관리하지 못합니다. 아니, 관리할 수 없습니다.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자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라납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식들이 자신의 재능(talent)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믿어주는 것뿐입니다.

 

하물며, 상사가 부하들을 관리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관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까요? 자기 자식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말이죠. 자본주의적 이념이 인류의 생활사에 파고들면서부터, 자본을 위해 모든 것을 대상화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만만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20세기 초엽에만 해도 미국에서는 유치원에 들어가야 할 아이들까지 하루 종일 노동판에 끌어다 일을 시켰으니까요. 자유방임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자유방임은 공산주의만큼이나 위험한 사상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바로 자유방임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기득권층은 이 논리로 무장하여 사회적 약자를 관리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약자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는커녕 강자들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인간사회에는 누구나 타고난 재능(talent)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강자들의 욕망이 탐욕으로 흐르지 않도록 철저한 개입을 필요로 합니다. 이때 누가 누구의 권한으로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구성원들간에 투명성의 덕목이 실현되도록 합의한다면 어떤 형식이든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이런 정도의 기본 전제를 이해하고 역량에 대해 좀더 실무적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기업은 높은 성과를 내야 하고, 이익을 창출해야 합니다. 기업에 이익이 없다면, 인간에게 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반복하지만, 물이 없으면 인간은 오래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기업도 이익이 없다면 오래가지 못하고 도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물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기업에 이익은 절대로 필요하지만, 물만으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듯이 이익만으로 기업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것이 요구됩니다. 그게 뭘까요?

 

조직구성원들의 재능을 파악해서 그 재능을 썩히지 않고 무한정으로 뽑아 쓰는 것입니다. 인간의 재능은 아무리 써도 닳지 않습니다. 아무리 퍼 올려도 결코 마르지 않습니다. 그런 재능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직구성원들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개념화한 것이 바로 역량(competency)입니다. 조직은 인재를 필요로 합니다. 이때, 조직이 각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것은 역량입니다. 역량은 지식(knowledge), 기술(skill), 태도(attitude)가 뭉쳐진 덩어리 개념입니다. 평범한 성과를 내는 사람(average performer)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high performer)이 지닌 차별적 속성(differential characteristics)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량개념의 이해

 

그래서 역량은 잘 관찰되지도 않고 잘 훈련되지도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조직에서 채용하거나 이동 배치할 때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직무에 부적합한 사람을 채용하면 많은 비용을 들여 교육훈련을 시켜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잘 선발된 인원이 조직에 기여하는 성과는 선발에 투자한 비용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량과 관련하여 내가 늘 드는 비유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람쥐가 필요한 직무인데, 이력서가 화려한 코끼리를 뽑아 높고 훈련을 잘 시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코끼리는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다람쥐처럼 나무를 잘 탈 수 없습니다. 거꾸로 코끼리가 필요한 자리인데, 다람쥐를 뽑아서 훈련시키면 코끼리처럼 힘을 쓸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합니다. 나중에는 퇴출시킬 수도 없고, 유지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합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에 너무 의존하면 이런 상황이 발생합니다.

 

내가 어느 분의 소개로 미국 유수대학 MBA출신을 채용하기 위해 면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성취지향성에 약간의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워낙 아는 분의 강력한 소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맡겼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해서 얼마 가지 않아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크게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지위에 사람을 선발하려면, 역시 역량개념에 따른 선발과정을 거치도록 해야 합니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전체적인 시스템이 단순한 이미지에 의해 선발되기 보다는, 후보들이 발휘한 역량이 검증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 정치시스템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역량검증이 철저하면서도 쉽도록 되었습니다. 콘라트 아데나워,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게하르트 슈뢰더,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이르기까지 전후 독일 수상들의 면면을 보면, 한결같이 위대한 인물을 뽑았습니다. 독일국민들이 잘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단순한 상식, 즉 지위에 적합한 역량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기업과 같은 단위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장 중시해야 할 역량개념을 무시한 채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앉히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후회합니다. "제기랄, 잘못 뽑은 거 아냐?"

역량개념과 빙산모형

역량을 설명할 때, 흔히 이용되는 것이 빙산모형입니다. 역량이란 수면 아래 있기 때문에 관찰이 쉽지 않지만, 일반적인 능력같은 것은 몇 가지 테스트를 통해서 쉽게 검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정체성, 가치와 신념 등은 쉽게 관찰되지 않습니다.

 

역량을 설명하는 빙산모형


역량의 문제는 깊이 따져보면, 가치와 신념의 문제를 넘어 정체성과 영혼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역량은 단순한 지식이나 스킬의 문제를 훨씬 뛰어 넘는 인간의 내적 속성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량을 단순한 지식과 스킬의 차원과 행동패턴의 수준에서 파악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어느 금융기관에서 역량과 관련해 자문의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관은 몇 년 전에 어떤 외국계 인사컨설팅회사로부터 역량관련 컨설팅을 받았습니다. 역량모델과 역량사전을 만들어서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보관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고 활용하려고 만들어 놓고는 담당부서의 서류철에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역량모델에는 35개의 역량요소로 구분해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역량사전에 등재된 역량요소는 150여 개나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문서관리역량(Documentation Management Competency)이라는 요소도 있었습니다! 세상에! 

미국식 경영학은 인간의 정신을 행동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문서를 체계적으로 잘 관리하는 행동특성을 문서관리 역량으로 표현했습니다. 미국식 경영학의 폐해가 여기에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많은 컨설턴트들이 역량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조차 헷갈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회사에는 역량에 대한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정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량은 행동이 아니며, 행동패턴이 역량을 표현하는 것도 아닙니다.

 

역량이란 단순한 지식이나 스킬 개념이 아니며, 그것을 포괄하는 더 깊은 가치와 신념, 정체성과 영혼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성취지향성(Achievement Orientation, ACH)정직성(Integrity, ING), 자신감(Self-Confidence, SCF)대인영향력(Impact & Influence, IMP) 등과 같은 직무적합성을 드러내는 개인의 내적 속성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개별적인 역량요소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몰라도 됩니다.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나는 이런 역량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개인의 독특한 행동패턴을 형성하기 때문에 역량을 마음의 프로그램(mind program)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여기서 행동패턴이 역량이 아님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합니다. 행동패턴을 통해 역량요소를 유추할 수는 있지만, 행동패턴은 그냥 빙산 위에 드러난 행동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의 프로그램인 역량은 한마디로 세 살 적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세 살 적 버릇이 곧 역량입니다. 잘 바뀌지 않고, 훈련을 한다 해도 아주 오랜 시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 살 적 버릇(역량 또는 마음의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는 것이 바로 역량개념의 핵심입니다.

 

역량의 문제는 워낙 뜨거운 이슈이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항이기 때문에 자세히 별도로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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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모든 인간은 현재상태를 보다 더 나은 상태, 즉 바람직한 상태로 만들려고 합니다. 현재상태와 원하는 상태 사이에는 항상 갭(gap)이 발생하는 데, 이 갭을 메우려는 마음가짐은 행동을 일으킵니다. 갭을 메우는 방법은 가용자원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원이란 크게 보면 돈, 시간, 사람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라는 자원을 잘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돈을 잘 굴리는 방법을 개발합니다. 돈이 돈을 버는 방식의 금융기법을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기법들은 기업현실에서 필요하긴 하지만, 전적으로 이것에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돈을 잘 활용하는 기법이라는 것은 그리 생산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돈은 항상 제한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기업에서도 예산제도에 따라 일정액이 배분되기 때문에 그 범위 이상 쓸 수 있는 자원도 아니어서 지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져 있어서 시간 자체를 가용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돈과 시간보다 더 중요한 자원은 사람인데, 사람은 그 자체로서 자원개념으로 보는 것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조직의 자원이 아니라 조직이 사람의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는데 있어 사람이 자원의 성격을 일부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맥락에 한해서 사람을 자원의 하나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자원이라는 속성이 있다고 했을 때, 그럼 사람의 무엇이 자원인가? 사람의 노동력이 자원입니다. 노동력은 그것이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마음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마음이라는 신비로운 자원을 잘 활용하는 것은 기업의 성과와 효율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마음이라는 자원이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마음이 실재(reality)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그런지를 계속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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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경영이란 무엇인가(1)_경영의 기본전제
         경영이란 무엇인가(2)_경제와 경영
         경영이란 무엇인가(3)_효과성과 효율성


나는 앞에서 경영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경영이란 비전/목적/방향을 먼저 정한 후에,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조건을 정비하고,

     그 조건에 부합하는 행동을 구체적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전제가 바로 경영자 또는 관리자의 마음 상태입니다. 바람직한 마음의 상태, 즉 정신구조에서 출발하여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조건들을 정비함으로써 바람직한 행동패턴을 일으키도록 돕는 것이 곧 경영이라는 의미입니다. 정신구조는 능력, 가치와 신념, 정체성, 영성 등으로 구분되지만, 우리가 흔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가치와 신념의 문제입니다. 가치와 신념이 경영의 방법론을 선택함으로써 평가보상제도와 같은 제도적 조건을 정비하게 되고, 그 조건들이 구성원의 마음을 움직여서 효율성이 높은 행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 그림이 곧 경영관리의 구조이자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신구조(mental structure)입니다. 그러나 정신과 마음, 그리고 영혼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반복될 이슈들이긴 하지만, 경영의 출발점이자 초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한번 더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구조, 즉 마음의 상태가 방법론을 선택하고, 그 방법론이 행동을 일으키는 테크닉을 활용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정신구조의 출발이 잘못되면,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통제할 수 없이 잘못된 방향으로 날아가버립니다.

 

나는 오늘날 대부분의 경영이 이런 식으로 날아가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조직구성원들이 그렇게 많은 스트레스와 불안, 신체적 증상들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마음은 거의 지쳐있습니다. 대부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않으면 효율적인 조직과 선진화된 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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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영을 계획(plan), 실행(do), 통제(see)의 과정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경영관리 현상을 잘 살펴보면, 계획하고 실행해서 그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은 분명합니다. 모든 경영자들이 예외 없이 이런 과정을 거쳐서 경영을 해나가는 데, 어떤 조직은 큰 성과를 내고, 다른 조직은 형편없는 성과를 냅니다. 그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에 경영학자들이 관심을 갖습니다. 형편없는 성과를 내는 조직에서도 미래를 예측하여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대로 실행했을 뿐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해서도 확인점검을 통한 피드백을 받고 있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계획 실행 통제의 경영과정을 밟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부실한 성과를 내는 조직은 경영과정의 질적 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계획을 보다 정교하게 세우고, 실행을 좀더 확실하게 하며, 그 과정을 보다 철저하게 통제하는 방법을 연구해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개발된 수많은 경영기법들이 오늘날 경영학을 이루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계획수립을 위한 계량모형과 전략실행방법론, 그리고 통제기법 등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성공적으로 잘 나가는 기업을 예로 들면서 조직문화가 성공의 열쇠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다가 좋은 문화라고 칭송을 받던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부실한 기업으로 전락하자, 이번에는 또 다른 기업들을 예로 들면서 전략수립과 실행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전략주의 광풍이 지나고 나니까 이번에는 성과를 균형 있게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서 자기들끼리 균형 잡힌 성과관리의 모범기업을 뽑아서 표창을 하고, 명예의 전당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각종 이론과 기법들이 유행처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지난 100년간 기업역사를 볼 때 현재 칭송을 받고 있는 기업들이 언제 어떻게 부실화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유행을 타지 않는 굳건한 반석 위에 경영학과 경영관리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몇 가지 이슈들을 검토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지금까지 나온 이론과 모형, 방법론과 기법들은 모두 동일한 전제 위에 구축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전제란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조직(기업)의 궁극적 성과는 재무제표의 당기순이익이다.

     인간은 노동력의 원천으로서 교환 가능한 자원이다.

 

이러한 전제는 길게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난 100년간의 경영학계와 실무계가 추구해온 관행과 그 결과, 그리고 각종 문헌들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제에 의한 경영의 결과는 구성원들에게 불안과 스트레스를 강요하면서도 정작 조직(기업)에게는 버텀라인(bottom-line, 당기순이익)조차 그렇게 만족스럽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또한 구성원을 전인적인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인적자원(Human Resource)으로만 취급합니다. 그래서 구성원을 당기순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해 왔고, 때로는 참혹한 장면도 연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일한 전제 위에서 방법론만을 계속 세련되게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도 그리 큰 희망을 걸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문제를 일으킨 의식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똑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멍청한 짓입니다.

 

둘째, 그래서 나는 경영관리의 의미를 근본부터 새롭게 짚어 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전제를 포기하고, 두 가지 새로운 전제 위에 경영이론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재무제표의 숫자는 구성원의 마음에서 나온다.

     인간은 자신의 잠재력을 발산할 때 가장 효율적이다.

 

그러므로 경영자는 재무제표에서 눈을 돌려 구성원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산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경영관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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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조직이란 무엇인가(1)_조직의 일반적 정의


조직이론의 발전과정은 경영학의 그것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조직이론가들이 만들어 놓은 조직개념도 시대의 지배적 관념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영학의 발전과정을 대강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3단계로 구분합니다.

 

     1세대 경영학(Taylorism) : 20세기 전반

     2세대 경영학(Druckerism) : 20세기 후반

     3세대 경영학(Wholism) : 21세기

 

20세기 초기에는 조직을 기계론적으로 인식했습니다. 이것은 경영학이 탄생하는 초기에 있었던 관점 그대로입니다. 이것을 테일러리즘이 대표합니다. 1강에서도 언급했듯이, 조직을 기계에 비교했고, 조직구성원을 그 기계의 부품으로 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덕목은 기계적 조화(mechanical coherence)입니다. 인간의 근육과 움직임이 기계장치와 가장 잘 조화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조직이론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현상에서 조직이라는 개념적 실체를 체계적으로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인물이 독일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였습니다. 테일러와 마찬가지로 베버도 시대의 아들이었습니다. 19세기말 20세기 초의 유럽, 특히 독일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프로이센의 군주정으로부터 비스마르크가 권력을 장악하여 통일국가를 이룩하였으나, 베버는 절대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조직이 쑥대밭이 되는 것을 보고 관료제의 조직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은 관료주의의 폐해를 너도나도 심각하게 얘기하지만, 당시에는 합리적이고 법률적인 근거에 의해 권한을 가지고, 정해진 규칙과 절차에 따라 일하게 되면, 봉건적 군주제에서 겪었던 폐해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관료제 조직이야말로 가장 능률적인 조직형태라고 주장했습니다.
(막스 베버, 박성환 옮김, 『경제와 사회 1, 문학과지성사 1997, 408쪽 이하를 참조하세요.)

 

이때부터 공식적인 조직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프로세스를 어떻게 설계하는 것이 좋으냐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렇게 공식적인 권한과 책임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제도주의(institutionalism) 학파라고 부릅니다. 공식적인 구조와 체계와 절차를 정하는 방식은 마치 정교한 시계를 설계하는 것과 같고, 구성원은 몰개성적인 기계의 부품으로 생각했습니다. 조직구성원은 공식적으로 정해진 권한과 책임의 한계에 따라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개인의 잠재력 따위는 거의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것을 제1세대 경영학의 관점이라고 부릅니다. 테일러리즘과 제도주의적 관점은 아직도 경영학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여러 곳에서 얘기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인간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여러 실험을 통해 금방 밝혀졌습니다. 공장 종업원들에게 근로조건을 아무렇게나 바꾸어도 생산성은 올라갔습니다. 당황한 연구원들이 그 원인을 몰라 헤매고 있을 때, 호주출신의 심리학자인 엘톤 메이요(George Elton Mayo, 1880~1949)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실험대상인 종업원들이 연구원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생산성이 좋아질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이 가설 검증 작업의 결과가 바로 그 유명한 호손실험(Hawthorne Studies)얘기입니다. 인간은 공식적인 구조보다는 비공적인 집단에 소속되고 그곳에서 인정받을 때 높은 생산성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부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론이 나왔습니다.

 

그 후에 실무경험이 풍부했던 <체스터 바나드(Chester Irving Barnard, 1886~1961)>는 개인의 목표와 조직의 목표를 일치시킬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과 유인책을 잘 써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의 공로는 미국경영학에서 하나의 커다란 산맥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우선 오늘날에는 거의 상식이 되어버린 <효과성(effectiveness)과 효율성(efficiency)의 개념>을 처음으로 명확히 구분했습니다. 명시적인 목표에 도달한 정도를 효과성으로 보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구성원의 동기가 충족되는 정도를 효율성으로 정의했습니다. 조직의 목적을 달성해서 높은 효과성을 이룩했더라도 구성원의 행위가 동기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불만족을 유발하게 된다면 그것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따라서 조직이 구성원의 동기를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조직의 목표를 달성해갈 수 있다면, 그런 조직은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협동을 통해 성장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체스터 바나드(Chester Barnard), 『관리자의 역할』(The Functions of Executive), 신한종합연구소 1993, 21쪽 이하를 일단 참조하세요. 이 책은 경영학사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번역을 다시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직이 협동체라고 정의했던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후대 경영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다양한 방면에서 천재성을 보였던 허버트 사이몬(Herbert Alexander Simon, 1916~2001)에게 큰 영향을 주였습니다. 사이몬은 인간의 의사결정이란 결코 완벽한 합리성에 기반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 만족한 수준에서 결정해 버린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그 이면에 인간의 행동에는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늘 경험하는 것이고 오늘날의 지성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주장인데 그는 1978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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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독일의 관념적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포스트모던적인 생활세계 속의 인간존재를 드러나게 한 철학자입니다. 하이데거 자신은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의 사상은, 자기 자신을 실존주의자라고 표방한 사르트르보다 더 실존주의적이었습니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철학이론을 체계화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체계화된 이론이 얼마나 생활세계와 동떨어져 있는지를 끊임없이 밝혀주려고 애썼습니다. 이론과 개념의 합리성 확보에 매몰되어 있는 학자들이 스스로 깨우치도록 전통적인 학문방법을 비판했습니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Consilience)이라는 책에 이오니아의 마법”(Ionian Enchantment)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기원전 6세기 이오니아 지방에 살았던 탈레스는 모든 물질이 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변화하지 않는 본질은 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이오니아학파는 변화하지 않는 만물의 근본을 탐구하려 했습니다. 그 후에 플라톤은 그것을 이데아라고 생각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라고 보았습니다. 피타고라스는 그것을 수(number)라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불변하는 본질 또는 동일성을 찾아내려는 사유의 방식은 후대의 모든 학문에 그대로 전수되었습니다. 이것을 에드워드 윌슨은 이오니아의 마법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서양사상과 학문전통은 이 마법에 걸려있습니다.

 

서양학문은 변화무쌍한 세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서 진리를 발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현상과 존재를 넘어서는, 변화하지 않는 보편성, 동일성, 객관성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보지 못하고, 분석해 들어가서 실증해내야 하는 학문방법, 즉 실증주의적 환원주의(reductionism)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경영학도 이런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려있습니다. 최근에 공전의 히트를 친 경영관련 문헌들은 다 이 마법에 걸려있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높은 성과를 내는 보편적 원리를 발견했다고 공언했습니다. 위대한 성과를 내는 블랙박스를 해독했노라고 장담했습니다. 수십 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추출해낸 결과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성공적인 원리들을 실천한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며, 그 책에서 언급된 기업들도 몰락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벤치마킹 대상이 될만한 기업들조차 시간이 지날수록 평균 수준의 기업으로 추락합니다. 이런 전례는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80년대에 열광했던 톰 피터스의 『초우량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라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소개한 기업들 중에는 아직까지 살아남지 못한 경우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자기계발서 중에서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도 역시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린 책입니다. 여기서 제시하는 7가지 습관을 잘 익히면 성공적인 사람이 된다는 불변의 공식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어떤 보편적 법칙을 추출하여 가르치는 방식이야말로 칸트나 헤겔이 추구했던 이성중심적인 학문방법입니다. 헤겔이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듯이, 서양학문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중시했습니다. 분석적 이성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이해는 이오니아의 마법을 점점 더 강화시켜 줄 뿐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하이데거는 진리는 분석적, 추상적, 객관적, 이성적 작업을 통해 도달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일상적이고도 구체적인 생활세계 속에서, 즉 매순간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진리를 체험합니다. 추상화된 교과서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의미부여가 곧 진리인 셈입니다. 진리는 불변하는 본질이 아니라 일상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에 대한 의미부여입니다. 매순간 내 영혼을 순수하게 만드는 나 자신에 대한 정직한 고백이야말로 진리의 사건입니다. 진리를 인식하게 하는 일상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세계를 투명하게 이해하고 세계와 연결하게 됩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서양학문적 전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당연히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려있었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분석 결과를 보아야 안심했습니다. 실증적 결론을 도출해서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이런 방법이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하이데거,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 들뢰즈, 라캉과 같은 철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서였습니다.

 

분석하고 쪼개서 그것을 추상화함으로써 변하지 않는 본질을 규명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 근본적이고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생활체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점차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을 갖도록 인도했습니다.

 

경영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의해 좌우됩니다. 마음은 분석의 대상일 뿐 아니라 연결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도록 해야 조직이 진정한 협동체(공동체)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린, 연결 없는 조직은 무한 경쟁의 긴장과 파벌싸움의 연속일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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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한 책들


오래 전에 쓴 책으로 이미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책들입니다. 굳이 구해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 한국 관료조직의 개혁을 위한 진단과 처방(비봉출판사 1998)

 

당시로서는 만용에 가까운 짓이었다. 독일에서 귀국한 후에 한국은행 직원들을 대상으로 주로 인사조직분야를 가르쳤다. 그 때는 우리 사회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90년대 한국의 자화상은 높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부조리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똑똑한 관료조직이 하는 일을 보면 정말 멍청했다. 외환위기는 그래서 온 것이었다. 그래서 내 심장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직원들을 가르쳤는데, 그 강의 원고를 묶어서 출판했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한국 관료조직의 개혁을 위한 진단과 처방"이었다. 비봉출판사의 박기봉 사장이 원고를 읽더니 자신이 출판하겠다고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그래도 책이 꽤 팔려서 출판사에 폐를 끼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어보니까 부끄러운 짓을 했다. 그땐 뭘 믿고 그렇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는지 모르겠다.

 

경영관리의 위기(비봉출판사 2001)

 

나의 첫 번째 책이 어느 정도 팔렸는지 비봉출판사의 박기봉 사장이 두 번째 책을 내자고 했다. 물론 강의 원고도 있었고, 일간지에 싣던 칼럼도 있어서 책 한 권의 분량이 되긴 했지만, 당시 나는 한국은행에서 조직개혁작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원고를 가다듬을 틈이 없었다. 그러나 출판사의 강권도 있고 해서 못이기는 체 하고, 강연원고와 칼럼들을 보냈다. 그래서 두 번째 책이 나왔다. 내용 하나 하나는 괜찮은데, 전체적인 프레임웍이 내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구상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해왔다. 다행히 앞에 쓴 책들인 모두 절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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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독자 여러분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을 소개합니다.

 

 다시 쓰는 경영학(21세기북스 2013)

 

경영자들의 정신적 토대를 확고히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효율과 저생산성을 극복하기 위해 쓴 책이다. 인간을 자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영이론들은 더 이상 통용될 수도 없고 통용되어서도 안 된다. 인간은 실존하는, 즉 존재를 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만 비로소 조직의 생산성이 높아진다. 거의 모든 과학적인 연구결과들이 이것을 지지하고 있고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에서도 그러할진대, 경영관행은 이것을 무시한 채 인적자원(human resource)의 관점에서만 논의되고 있다. 잘못된 관행이며, 경영에 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전환이 요구된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21세기북스 2014)

 

2014년 봄 "시스템으로 치유하라"는 주제로 책을 쓰고 있는데,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16년 전에 썼던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 한국 관료조직의 개혁을 위한 진단과 처방"을 다시 고쳐서 출판하자는 것이었다. 2014.04.16. 고위층의 멍청한 짓으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 원인을 시스템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자는 것이었다. 의미 있는 제안이었다. 부랴부랴 예전의 원고를 개고하여 출판했다. 출판사 덕분에 스페이스노아와 벙커원에서 강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분들의 응원메시지를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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