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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6 경영의 맥도날드화가 고객을 만족시킨다고?

앞에서 회사를 합리화하는 첫 번째 이유였던 <비용절감은 오히려 장단기적으로 비용을 증대시킨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합리화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고객을 만족시켜서 장기적으로 판매를 유지 확대하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경영의 맥도날드화가 과연 고객을 만족시키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맥도날드화하는 방식이 고객관계관리(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입니다. 흔히 CRM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객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여 충족시켜 줌으로써 효율적으로 매출을 증대시키려는 일련의 노력을 말합니다. 채식주의자인 고객에게 스테이크를 대접하려고 한다면 큰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이 휴가를 떠났는지도 모른 채 생선을 선물로 보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런 비효율적인 고객관계활동을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바꾸려는 아이디어는 훌륭한 것입니다.

 

CRM기술은 20세기 말에 급속히 발달해서 지금은 소프트웨어 패키지만해도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달러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패키지 공급회사들은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을 들어보면, 회사 경영진이 CRM시스템을 깔면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확신을 갖게끔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기업들이 고객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시스템을 깔고, 데이터를 유지 관리하는 전문인력을 채용합니다.

 

최근에는 단순히 고객관계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내부프로세스를 개선하기도 합니다. 전략, 마케팅, 광고선전, 재무, 인사 등과 같은 백오피스 기능까지도 CRM에 흡수하여 처리하는 광범위한 패키지까지 활용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특성별 시장점유율, 고객유형별 이익기여도, 지역별 고객성향 등을 분석하여 적절한 전략수단을 구사할 수 있게 한다는 뜻입니다.

 

CRM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고객에 관한 모든 정보, 즉 고객 본인의 신상정보뿐만 아니라 그 친인척과의 관계를 일일이 표준화된 자료로 바꾸어 데이터베이스로 저장하는 엄청난 수작업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고객의 개인적인 욕구와 욕망을 파악하여 데이터베이스에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컴퓨터로 분석하여 고객접점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은 죽어있는 사물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욕구와 욕망은 수시로 변하고, 사회적 관계도 쉴새 없이 변화합니다. 인간이 자신이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역동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역동적인 변화를 데이터화하여 적시에 입력하지 않으면 그 데이터는 쓰레기가 됩니다. 그래서 데이터의 청소(cleaning) CRM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정기적으로 청소해주는 전문인력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제대로 청소하기 위해서는 세일즈맨이 고객의 정확한 정보를 일일이 직접 입력해야 합니다.

 

CRM이 실패하는 원인을 청소를 제때에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청소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일즈맨은 자신의 소중한 고객의 정보를 CRM시스템에 노출시키기를 꺼려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면 고객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정확한 정보의 수집단계부터 쉽지 않은 싸움을 해야 합니다. CRM시스템 공급업체들은 이런저런 사정을 모두 삭제하고 완벽한 데이터가 수집된다는 전제하에 프레젠테이션 했던 것입니다. 전제가 틀리면, 모든 것이 틀려집니다.

 

CRM에는 인간의 실존적 체험과 욕망을 수치화하여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인간의 실존은 객관적인 수치로 계량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 정신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던 할머니들의 실존적 체험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몸소 실존적으로 체험한 사람과 그 사건을 단순히 전해 들은 사람들 사이에는 결코 메울 수 없는 이해의 간극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객관적 수치로 환원하여 잘 관리함으로써 고객관계가 좋아졌다고 느낀 세일즈맨을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CRM이 성공적이었다는 회사는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아직 견문이 짧아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CRM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실패의 원인은 인간의 실존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CRM은 인간의 욕망을 몇 개의 변수로 환원하여 관리하면 충분히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허망한 믿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글의 독자 중에는 금융기관이나 거래 회사로부터 이러저러한 선물을 받아보았을 것입니다. VIP고객이라면 명절마다 큰 선물을 받았을 것이고 평범한 고객이라면 평범한 선물을 받았을 것입니다. 대개 갈비세트에서부터 신년다이어리와 달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물을 보냅니다. 배달이 잘못 되는 경우도 있고, 선물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CRM데이터의 분류에 근거해서 그렇게 처리됩니다.

 

방금 말했듯이 CRM데이터는 고객접점을 책임지고 있는 세일즈맨이 일일이 직접 입력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쓰레기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선물을 받아 보니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던가요? 대부분은 회사에서 부질없는 짓을 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썩 필요하다고 느끼던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만든 고객만족의 맥도날드화가 고객만족은커녕 회사가 고객을 냉소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CRM은 세일즈맨의 마음이 고객의 마음과 연결되어서 고객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고객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여길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판매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런 고객관계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교차판매(cross-selling)와 추가판매(up-selling)가 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세일즈맨들을 선발하고 교육시킬 때, 이런 감정능력(emotional capability)를 잘 감안해야 합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고객관계의 철학을 무시한 채, CRM시스템을 깔아놓고 데이터베이스에서 뽑아주는 자료를 가지고 고객들에게 판매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입니다. 판매를 잘 하는 판매왕들의 진솔한 얘기를 들어보면, 회사가 공급해주는 CRM자료는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인데, 그들에게는 그게 다 죽은 데이터와 쓸모 없는 정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엄청난 돈을 들여 깔아 놓은 CRM시스템을 갈아 엎으란 말인가? CRM팀을 해체하란 말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최소한으로 줄이되, 잘 활용하는 길을 찾아보면 됩니다. 지금처럼 그렇게 엄청난 직간접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대폭 축소해야 합니다. 현장의 세일즈맨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기능, 즉 세일즈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능만을 남겨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인간의 영혼과 마음을 전산프로그램에 맡기려는 발상이 얼마나 잘못 된 것인지를 반성할 수만 있다면, 비싸긴 했지만 그 동안 수업료를 지불한 것으로 치면 됩니다. 훌륭한 목수는 망치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목수는 망치로 자신의 사상을 만들어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목수의 영혼과 마음을 잘 이해하는 것이 선결과제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필요로 하는 적절한 망치를 공급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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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