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미국의 국방장관이었던 맥나마라(Robert McNamara, 1916~)의 이름을 많이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저녁 때 퇴근한 아버지는 가끔 맥나마라가 어쩌고 저쩌고 하셨습니다. 하도 여러 번 들어서 아직도 그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춘천에 있는 캠 페이지(Camp Page)라고 불리던 미 8군 유도탄기지 사령부에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셨습니다. 미국 국방부 장관과 자동차 정비공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집에서는 자주 맥나마라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맥나마라가 그 부대의 자동차 정비반장쯤 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안드레아 가보, 『자본주의 철학자들』, 황금가지 2006

나중에 (미국식)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맥나마라가 미국경영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려서 듣던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맥나마라는 천재적인 인물입니다. 하버드에서 MBA를 받고 곧바로 회계법인에서 사회경력을 시작했지만, 1년 후에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로 복귀했습니다. 그는 조교수들 중에서 가장 젊었고 가장 연봉이 높았으니까요. 2차 대전 중에 육군 항공대 통계관리국에서 분석적인 통계기법을 사용하여 전투기 폭격의 효과를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작전하던 것을 이런 분석적 기법에 의해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포드에서의 계량화

 

전쟁이 끝나자, 그는 포드자동차에 들어갔습니다. 군수업체였던 포드자동차가 전후 경영상의 혼란을 겪자 그는 시스템 분석, 계량분석 및 통계이론으로 회사를 개혁해냅니다. 맥나마라는 회계감사를 실시해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사에 수백 명의 회계 및 재무분석가를 채용했습니다. 이런 분석을 통해 회사에 비용과 지출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익전망도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회사의 모든 돈줄을 재무담당자들이 틀어쥐도록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숫자로 계산하고 합리화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기업의 재무담당자들이 모든 숫자를 통제하는 관행은 이때부터 생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이런 관리방식은 경쟁자였던 제네럴 모터스(General Motors)보다 더 우수한 기업이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맥나마라는 이런 분석기법이야말로 미국기업을 위한 새로운 규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내에서는 재무담당자들을 좁쌀 같은 사람들(bean counter, 콩알을 세는 것처럼 융통성이 전혀 없는 쫌생이라고 비꼬는 말)이라고 불렀습니다. 생산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취향이나 정서를 들어 재무담당자와는 다른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러면, 재무담당자들은 확실한 숫자와 도표를 보여주었습니다. 토론에서 누가 이길지는 뻔한 노릇이었습니다. 숫자가 항상 이깁니다.

 

한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1949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생산공장을 책임지고 있던 공장장이 본사에 건의를 했습니다. 공장시설이 낙후되었고, 지게차가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협소하여 공장현대화 작업을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맥나마라는 공장 전체에 대대적인 조사를 실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좁쌀까지 세면서 숫자를 만들어내느라 3년이 걸렸습니다. 참다 못한 공장장은 헨리 포드에게 직접 호소문을 보냈습니다. “품질이 엉망이고 페인트칠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생산한 차를 건조시킬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이 간절한 호소를 통해서 겨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맥나마라는 품질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품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품질을 계량화하여 숫자로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품질을 계량화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올바른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품질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본사가 품질기준을 내려 보내면, 공장에서는 그 기준에 숫자만 맞추는 방식으로 본사의 눈을 피해갔습니다. 그러면 본사는 더 강화된 기준을 내려 보내고, 공장에서는 그 기준을 피하는 요령을 찾아내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재무담당자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수치였습니다.

 

영혼 없는 숫자정신(numerical mind)을 심어놨더니

 

포드자동차는 점점 이익중심의 회사로 변해갔습니다.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침에 따라 자동차 구조를 분석하여 부품의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으로 수익을 증대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고민 끝에 나온 기법이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이었습니다. 이 기법은 오늘날에도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이런 분석기법에 의해 개발된 자동차가 핀토(Pinto)입니다. 1970년에 출시된 이 모델은 가격이 저렴해서 서민들에게 많이 팔려나갔습니다.

 

그러나 뒤에서 충돌할 경우, 차가 폭발해 버리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핀토(Pinto)의 폭발사고로 최소 59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그 결과 포드자동차는 비의도적 살인(reckless homicide)혐의라는 오명을 얻는 최초의 자동차회사가 되었습니다.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핀토(Pinto)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폭발하는 문제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연료탱크 내부에다 고무 라이닝(rubber lining)을 끼워 넣으면 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간단한 해결책을 쓰지 않았을까요? 비용편익분석에 의하면, 고무 라이닝을 끼우는데 1 3700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지만, 폭발로 화상이나 사망사고에 따른 총보상액을 확률로 계산하면 4950만 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라이닝을 없애는 것이 이익공헌도가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맥나마라가 포드자동차에 남긴 유산입니다.

 

오늘날 미국 자동차 업계가 파산에 내몰릴 정도로 처참한 신세가 된 것은, 그들이 관리하고 있는 영혼 없는 수치들 때문입니다.

 

어찌 되었든, 계량분석에 입각한 경영관리의 합리화는 맥나마라의 개인브랜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그 동안의 노고를 인정받아 1960 11월 포드가문의 일원이 아닌 사람으로서 첫 사장에 임명됩니다.

 

국방부에서의 계량화 작업

 

그러나 몇 주 후에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그는 국방부장관에 임명됩니다. 맥나마라는 기왕에 내각에 들어가려면 재무부장관이 더 낫겠다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케네디는 전쟁을 통해 비대해진 국방부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면서,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하고 싶어했습니다. 맥나마라가 제격이었습니다. 그는 장관이 되자마자 그 동안 포드에서 했던 계량분석적 합리화 모델을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Robert McNamara(1967)

1960년 당시, 국방부는 미국 내 25대 기업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조직이 되어 있었습니다. 맥나마라는 그런 국방부를 자신의 확고한 방침에 따라 개혁해 나갔습니다. 전후 냉전시대에 공산진영과 어떤 방식으로 대결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사건들이 잇달아 터지고 있었습니다. 스푸트니크 쇼크, 한국전쟁, 피그만 침공 실패, 쿠바 미사일 사태, 베를린 장벽 설치와 같은 사건을 경험하면서 중요 정책결정의 정신적 틀(mental program)이 형성되었습니다. 맥나마라는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의 8년간을 국방부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공산진영과는 힘으로 대결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서 힘이란 숫자였습니다.

 

맥나마라가 믿었던 계량화가 그 폐해를 드러낸 것은 사실 포드자동차 핀토(Pinto)만이 아니었습니다. 월남전쟁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케네디는 직접 전쟁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베트남 남부를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특수부대와 군사고문단을 16,000여명까지 파견했습니다.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주변국들이 도미노처럼 공산화 된다는 소위 도미노이론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케네디는 1964년 재선 이후에 월남에서 철수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1963년 말까지 파견인원의 일부를 철수하도록 명령했습니다. 1963 11월 케네디가 암살된 후, 후임자인 존슨 대통령은 케네디의 계획을 취소시켰습니다. 이 배후에는 맥나마라가 있었습니다.

 

맥나마라는 모든 숫자를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중앙정보국(CIA)에서 올라온 보고서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CIA의 보고서에는 베트남이 공산화되더라도 캄보디아를 제외한 나머지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산화될 염려는 거의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CIA는 도미노 이론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베트남 전쟁에 대해도 부정적이었습니다.

 

월남전의 계량화

 

맥나마라는 CIA내부에 특별전담반을 설치했습니다. 그 전담반의 임무는 베트남에서 진행된 모든 폭격기의 출정 결과를 수치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월별 폭탄투하의 종류, 위치와 수, 그리고 그 효과를 분석해서 보고했습니다. 그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수치분석 결과를 신뢰했습니다. 맥나마라는 정작 계량적 분석기법에 대해 그것을 개발한 과학자들보다도 더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베트남 북부를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64 8월 미국이 월남에서 본격적으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베트남 북부 통킹만(Gulf of Tonkin) 공해상에 머물던 미군 구축함이 어뢰정에 공격을 받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보복공격을 빌미로 즉각 의회의 승인을 얻어 선전포고도 없이 베트남 북부를 대규모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월남전은 그렇게 확대되어 갔습니다. 계량적 분석기법으로 계산한 바에 따르면, 그 해 크리스마스까지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국방부는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도 넘게 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지만, 국방부는 폭격횟수, 적군 보급로 차단 건수, 전사자 수 등 수치관리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계량화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계량화의 천재 맥나마라인들 월맹군의 열성과 투혼을 무슨 수로 수치화할 수 있었겠는가.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맥나마라가 특별전담반에 지시해서 계산한 분석보고서에는 폭탄투하가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40여년이 지난 2005, 기밀에서 해제된 문서들을 조사한 언론은 기막힌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통킹만 사건은 완전히 조작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공격을 받았다는 구축함의 함장은 어뢰정을 본적도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미국은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군사적으로도 패했지만, 도덕적으로도 패하고 말았습니다. 계량적 모형과 그 수치를 믿은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계량화에 대한 폐해와 후회

 

맥나마라는 나중에, 베트남이 공산화 될 경우 공산주의가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는 위험을 너무 크게 생각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계량모형의 분석결과들을 보니까, 베트남 정도는 속전속결로 끝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힘의 우위로 밀어 부치면 된다는 신념 때문에 다른 정보들을 제대로 검토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서 미국경영학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시스템 분석이나 계량분석 모형, 그리고 경영분석 기법들은 인간의 가치판단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골라서 봅니다. 그러므로 숫자의 의미는 보는 사람의 신념에 따라 달라집니다. 자신이 원하는 숫자가 나오지 않으면 숫자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모형의 전제와 가정을 바꾸기만 하면, 숫자는 바뀝니다. 전제와 가정을 정하는 것은 모형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과 정신입니다.

 



맥나마라는 아쉽게도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까요? 그는 놀랍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루지 못했으며,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마저도 깨닫지 못했다. …… 인간의 다른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국제 문제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해결책이 없는 문제들이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했다. 자신의 생애를 문제해결에 대한 믿음과 실천에 바친 사람으로서는 사실 이런 점을 인정하기가 무척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이따금 불완전하고 정돈되지 않은 세상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Robert S. McNamara, Argument Without End: In Search Of Answers To The Vietnam Tragedy, PublicAffairs 1999. 안드레아 가보, 심현식 옮김, 자본주의 철학자들, 황금가지 2006, 301~302쪽에서 재인용


 

그의 말이 변명인지 회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과 사회를 수학적 모형으로 정돈해 보고자 했던, 그리고 그 모형을 전세계에 전파하고자 했던 맥나마라는 자신의 생애 끝 무렵에 가서야 세상이 수치로 정돈되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한 걸까요? 그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오만한, 그리고 잘못된 신념으로 인한 폐해는 어디에다 클레임해야 하나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정직하게 고백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비판한 드러커의 외침, 테일러의 후예인 맥나마라에 의해, 메아리도 없이 거의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계량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미국식 경영학과 경영실무에서 더욱 확고해져 가고 있습니다. 모델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고, 그럴수록 경영자들은 더 좋아합니다. 물샐 틈 없이 직원들을 쥐어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델이 정교할수록 더 고가에 팔리고 있습니다.

 

p.s. 내가 어려서부터 귀따갑게 들었던 맥나마라의 생애는 <The Fog of War>라는 다큐멘터리 필름으로도 제작되어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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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2차 대전 후에는 <테일러리즘>의 계량화를 통한 합리화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 온 세상이 비인간화로 초토화되고 있었습니다미국은 이 개념을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전세계에 수출했습니다.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는 과학적 관리법을 미국이 제안한 것으로 전세계에 보급된 유일한 개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세계 어느 곳이든 간에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만약 그들이 과학적 관리법을 공격하면, 그것이 곧 실질적으로 미국을 공격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피터 드러커, 이재규 옮김, 경영의 실제, 한국경제신문 2006, 416쪽 참조)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전세계의 많은 기업가들이 과학적 관리법이야말로 미국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밀이라고 믿었습니다. 큰 전쟁을 치른 후, 복구를 위해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상황에서 미국기업의 성공은 과학적 관리법이 아니었어도 성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과학적 관리법에도 불구하고 근로자관리와 노동생산성의 문제는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드러커가 놓칠 리 없었습니다. 그는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을 점잖게, 그러나 통렬하게 비판했습니다. 과학적 관리법에는 두 가지 맹점이 있는데, 하나는 기술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적 측면이었습니다.

 

첫째 맹점은 분석과 통합의 문제였습니다. 분석하는 것과 통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슈라는 것입니다. 과학적 관리법이 비과학적인 이유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은 과학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분류와 분석이 대상의 본질에 대해 어떤 것도 밝혀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눈물을 분석하면 약간의 소금기와 물이 나오겠지요. 그것을 계속 분석해 들어가면 분자 > 원자 > 원자핵과 전자 > 중성자와 양성자 > 쿼크들 > 업쿼크와 다운쿼크 >… 이것은 대단히 과학적인 분류이고 분석입니다. 이것을 다시 거꾸로 통합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눈물이 되겠죠. 그래서 우리는 눈물의 본질을 이해했나요?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책 중에 하나입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과학적 관리법에 내포된 더 큰 문제는 인간을 매우 빈약하게 설계된 기계장치로 가정한다는 데 있습니다. 노동과정을 여러 개별동작으로 분석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노동행위는 구분동작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이 하나로 통합되어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개인의 의지, 성격, 정서, 기호, 그리고 마음의 문제가 자신의 직무와 통합될 때 비로소 생산성이 올라가게 됩니다. 이것은 분해된 기계부품들이 하나의 장치로서 작동하려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계도 그런데, 하물며 사람에게는 어떻겠습니까?

 


둘째 맹점은 계획과 집행을 분리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 노동의 양과 질을 계획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계획만 수립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히 꿈을 꾸는 몽상가일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계획된 일을 집행만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히 일하는 짐승일 것입니다. 계획하기와 집행하기는 하나의 직무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일 뿐이다. 이것이 별개의 직무로 분리되는 순간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드러커는 다음과 같이 적절한 예를 들어 노동의 계획과 집행을 분리하려는 시도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합니다.

 

계획과 집행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음식물의 섭취와 소화를 별도의 육체에서 하기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추가로 설명하면, 섭취와 소화는 별도로 연구되어야 한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생리기관들을 필요로 하고, 발생하는 질병의 종류도 다르고, 그리고 육체의 다른 부분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일단 영양분을 흡수하려면, 마치 한 직무가 계획과 집행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과 같이, 육체는 두 부분 모두 필요하다.”

(피터 드러커, 이재규 옮김, 경영의 실제, 한국경제신문 2006, 421쪽 참조)


 

이러한 맹점은,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 어째서 기업의 노동생산성을 더 이상 높이지 못하고, 근로자들이 계량화를 통한 합리적 변화시도에 저항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잠재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테일러식의 계량화는 1시간 동안은 높은 생산성을 끌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100시간 이상의 근로시간에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우상이었던 박철순 투수, 그는 살아있는 전설로 박찬호 선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훌륭한 투수였습니다. 그러나, 당장의 시합, 즉 눈 앞에 보이는 스코어보드에서 이겨야 했기 때문에, 감독들은 박철순 투수의 어깨를 혹사시켰습니다. 당연히 오래갈 수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일찍 은퇴해야 했습니다.

 

숫자로 합리화하는 모든 행위가 과학적인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비과학적 행위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경영학과 경영실무에서 이런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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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