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영재교육학회(2010.12.18)에서 발표한 내용을 중심으로 쓴 것입니다. 주제는 "교사관찰추천에서의 역량평가면접"이었는데, 교육계나 교육학계에서는 역량중심의 면접을 다들 낯설어 하는 분위기여서, 역량중심의 면접(competency based interview)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연구, 그리고 나아가 함께 공부하고 수련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보고자 학회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블로그의 독자들과 함께 공유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이곳에 몇 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많은 피드백을 부탁합니다.


연구의 필요성

학생들의 성적이 곧 사회생활에서의 개인적 성공이나 사회적 성취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중등교육과정까지 매우 우수한 학교성적을 냈던 학생들이 소위 일류대학에 선발되어 고등교육을 거쳐 사회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루거나 개인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과의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학교 성적이나 지능지수가 사회생활에서의 업무성과와 개인적 성공여부를 예측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등교육에서 고등교육으로 진학할 때, 선발의 준거를 종래와 같이 학교성적 위주보다는 장기적 성취와 상관성이 높은 요인을 찾아, 그 요인을 선발의 중심에 놓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것은 고등교육뿐만 아니라 중등교육까지도 일대 혁신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요즘 고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각 대학에서는 단순히 학교 성적만을 가지고 학생들을 선발하지는 않는다. 학교생활기록부를 참조하는 내신과 면접, 과외활동이나 대외 수상경력 등과 같은 요인들을 학생선발에 고려한다. 대학당국에서도 단순한 지적 영역 이외의 정서적 영역과 사회적 성취능력 등을 감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일환으로 최근에는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하여 입학사정관에 의해 학생들의 성적뿐만 아니라 면접 등으로 선발하려는 추세가 점차 강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세는 여전히 중등교육의 학업성취도인 성적 위주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전형의 경우에도 학생당 면접시간은, 학교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개 10여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입학사정관들도 짧은 면접시간으로 학생들을 제대로 변별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고백한다. 결국은 서류상으로 표현된 것, 즉 ‘스펙’이 입학에 거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양대학교에서 국내 최초로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대학수준의 과학영재들을 위한 특화 교육프로그램인 “Honors Program in Sciences & Engineering(이하 HP로 약칭)을 운영하게 됨으로써, 장기적으로 높은 과학적 업적을 낼 수 있는 과학영재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이것은 한양대학교만의 문제라기보다는 학생선발에 관한 한 한국 고등교육에서의 전반적이고도 뜨거운 이슈이기도 하다.


대학교육의 가장 중요한 성패요인의 하나는 학생선발이다. 고등교육을 받아 장래에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학생을 뽑아 교육시켜야만 사회적 낭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사회에 공헌할 잠재력을 갖지 못한 학생을 고등교육대상자로 뽑을 경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될 뿐 아니라, 잠재력을 갖춘 학생이 의외로 고등교육에서 배제되는 이중의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에서 대학에서의 학생선발이 중요하다. 어떻게 선발하느냐에 따라 중등교육의 목표와 내용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 수능시험 위주로 뽑으면 중등교육은 수능대비위주의 교육이 되고, 본고사 위주의 선발방식으로 바뀌면 본고사를 위한 준비교육으로 전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대학이 어떤 형식으로든지 지덕체를 겸비한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바꾼다면, 이를 중등교육의 목표로 삼을 것이다. 숭고한 중등교육의 목표가 나름대로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중등교육의 목표가 대학입시제도에 종속되어 왔다.


이런 관점에서, 고등교육기관들은, 형태가 여러 차례 바뀌긴 했지만,
관식 문제해결력이라는 수능점수에 의한 학생선발 방법을 고수해 왔다. 이것의 문제점은 오로지 ‘점수의, 점수에 의한, 점수를 위한’ 기형적 중등교육을 낳았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런 점수 위주의 선발방법은 장기적으로 학생들의 학문적 성장과 인격적 성숙을 오히려 방해한다. 인간의 인지적, 정의적 능력에는 시험성적과 같이 계량화할 수 있는 영역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가치와 신념, 신뢰와 존중, 애정과 배려의 마음이나 영성과 같은 계량화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렇게 계량화되기 어려운 영역이 인간의 인격적 성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객관화의 어려움 때문에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공교육은 점점 피폐하게 되고 내신 성적 또는 수능점수위주의 사교육 열풍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모든 평가결과가 점수로 환원되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학생들을 서열화해야 할 필요는 더욱이 없다.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 학생의 능력과 성향, 그리고 계량화하기 어려운 내면의 역량을 진단하여 적절한 곳에 배치하는 방법이 오히려 더 정확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인간의 재능을 점수로 환원하여 서열화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이문열은 몇 점이고 이외수는 몇 점인지 말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재능을 어찌 점수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물론 점수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성적점수 이외의 다양한 정성적 요소들을 감안하여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전환이 시급하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교육선진국들을 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그들의 교육 및 학생선발 과정을 보더라도
고등교육기관에서의 학생선발 방법은 근본적으로 혁신되어야 할 것이다.

독일에서 5, 한국에서 7, 아일랜드에서 3,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4년씩 아이들에게 초등, 중등, 고등교육을 시켜 본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선진교육에서는 학생들의 잠재력과 역량에 대한 교사의 관찰추천이 상급학교 진학과 배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저학년일수록 그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과 성적의 중요성이 증가하지만, 학생들의 잠재력과 역량에 대한 교사의 판단과 그 중요성은 결코 줄지 않는다.



연구의 목적


이런 점에서 영재들을 선발하는 방법으로 역량중심의 선발시스템(Competency-based Selection System)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이 시스템은 기업에서 인재를 선발하고 육성하는 데 주로 활용되는 방법론이다. 이것을 과학영재 학생선발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방법론을 세우고, 그것을 선발에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검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여기서의 서술은 주로 한양대학교 Honors Program의 운영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첫째, 인생의 장기적 성취를 예측할 수 있는 핵심적인 역량의 개념과 그 역량요소를 명확히 한다.


둘째, 과학영재들을 위한 핵심역량모형을 검토한다.


셋째, 학생들의 역량을 진단할 수 있는 수단인 역량중심면접(Competency-based Interview, 이하 CBI로 약칭) 기법의 활용가능성을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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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교육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읽히고 싶은 글이 있어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독일에 살면서 독일교육이야기를 쓰시는 분입니다. 독일에서 아이들을 초등학교 교육을 시켰던 나로서는 쓰고 싶고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그 동안 시간이 그리 녹녹치 않아서 못하는 것을 박성숙 선생님이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여러분 꼭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를 누르시거나, 아니면  다음 주소로 직접 가셔도 됩니다.

http://blog.daum.net/pssyyt/893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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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중앙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났습니다. 어느 현직 교사가 교권이 무너진 초등학교 교실의 실상을 폭로했습니다. 그것이 신문에 기사화 되었습니다. 나는 신문기사를 읽고 그런 현상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권이 무너진 초등학교 교실의 실상을 폭로하며 '체벌 허용'을 주장한 현직 교사의 책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 서래초 영어교과 전담교사 김영화(55)씨가 쓴  『지금 6학년 교실에서는...』이다. 야단치는 교사에게 아이들이 욕하고 대들면서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는 현실이 소설형식으로 묘사돼 있다.

 

보도가 나간 뒤 기사와 관련된 e-메일과 전화, 인터넷 댓글 등이 쏟아졌다. “잘못하면 때려야 한다” “교권은 매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는 등 체벌을 둘러싼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초등교사 경력 34년째라는 정모씨는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와기사 내용이 바로 내 얘기라면서정말 울고 싶고 하루빨리 학교를 떠나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또 이달 초 2년간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중학교 2학년인 딸과 함께 귀국했다는 이은주씨도 메일을 보냈다. “며칠 학교에 다녀 보더니 아이가 수업시간에 떠들고 자는 학생이 너무 많아 놀랐다고 말한다. 야단친 교사 뒤에서 교사가 들을 만한 큰 소리로 욕을 계속하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안에서 생활 태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 제일 좋은 방법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Back to the basic! (기본으로 돌아가라!)

교육은 학생들의 태도와 행동을 바람직하게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어떤 경우에도 폭력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교육의 목적이 옳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체벌을 허용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주장은 오죽 했으면 그러겠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정도로 한국의 교육상황은 참담한 형편입니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체벌을 허용해야 한다면 체벌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이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벌로 다스려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체벌은 비인격적이고 수치심을 유발하며 정신의학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교육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학교와 사회의 경쟁지향적인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경쟁적인 상태가 되면, 이기심이 발동하여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줄어듭니다. 공감능력이 줄어들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행동을 못할 뿐 아니라 전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터득하여, 자연스럽게 공격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래서 협동하며 함께 일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합니다.

 

학생들의 공격성은 경쟁지향적 교육행정과 사회풍토가 만들어낸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그래서 성적에 따라 일류, 이류, 삼류 인간으로 대접 받는 상황을 만들어 냈습니다. 시험성적으로 경쟁심을 유발하게 하면, 시험성적 이외의 가치에 대해서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학교성적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직성(integrity)과 같은 도덕적 가치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며, 그 위에 사고력(thinking power)과 실행력(execution power)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당연한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런 기본을 잃어버렸습니다. 교사 한두 명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선진교육을 실행한다고 인정되는 국가에서 시험성적순으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서열을 매기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면 타고난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교육의 목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교육현장의 모든 초점은 시험성적이 아니라 독특하게 타고난 각자의 재능입니다. 그래서 교육은 항상 협력과 상생의 정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에게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면서 교직사회에도 경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행태는 교육의 기본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교육행정입니다. 교육의 기본을 무시한 처사입니다.

 

교사들에게 돈으로 차별화함으로써 교육행위의 동기부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교육행정에서 나는 매춘의 냄새를 느낍니다. 나에게 이것을 해주면 나는 너에게 저것을 주겠다는, 마치 매춘부에게나 강요하는 듯한 정책으로 피폐해진 교육현장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어떤 상황에 돈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개입하면 그 상황의 본질이 왜곡됩니다. 그러므로 교육에는 어떤 경우에도 돈이 개입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사들을 돈으로 경쟁시킨다고 생각해 보세요. 좋은 교육자료와 교수방법을 다른 교사들과 공유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돈으로 교사들의 교육행위를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치졸하고도 비효과적인 발상입니다. 교사들이 학생지도를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할 일이 서로 경쟁해야 할 일보다 더 많고 더 중요하고 더 결정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훌륭한 교사들이 발휘하고 있는 역량을 추출하여 역량모형을 만들고 그것에 따라 교사들을 선발하여 배치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면, 교육계는 변화될 것입니다. 훌륭한 교사들이 많은데 어찌 교육계가 피폐해지겠습니까? 반복하거니와 돈으로 사람을 바꾸려고 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돈이 개입되면 돈 이외의 가치는 모두 사장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이념이 인류에게 가르쳐준 교훈입니다.

훌륭한 교사를 선발하는 것도 시험성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성과급을 내걸고 우수교사를 뽑으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훌륭한 교사와 그렇지 못한 교사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학생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피드백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것을 역량의 전문용어로는 타인육성(Developing Others)이라고 합니다.

글쓰기에 곤란을 겪고 있는 학생에 대한 태도와 피드백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 지 보겠습니다. 그 학생의 숙제는 3 페이지를 채워야 했지만, 겨우 한 문단만을, 그것도 기한을 넘겨 늦게 제출했습니다. 훌륭한 교사와 그렇지 못한 교사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출된 것은 겨우 한 문단이었어요. 하지만 문장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저는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애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어요. "참 짧구나. 하지만 좋은 문장이야." 그 애가 써온 문장은 통일성이 있고, 앞뒤가 잘 맞는 글이었거든요. 문법이나 문형의 문제도 없었구요.


아이들을 무조건 칭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훌륭한 교사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잠재력과 숨겨진 재능을 찾아내어 발산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여기에는 교사와 학생들간의 <연결되어 있는 마음(connectedness)>과 교사의 <깨어 있는 마음(mindfulness)>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결된 마음상태는 아이들에게 매우 편안하고 이완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기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깨어있는 마음상태가 중요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관적인 기대를 표시하며, 자신의 불충분한 피드백 노력을 변명하는 교사도 있습니다.

그 애는 구제 불능이었죠. 그렇게 형편없는 애는 처음 봤어요. 문제해결능력이 전혀 없는, 산만하기 짝이 없는 애였어요. 번번이 저를 속이려고만 들었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같은 수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런 극명한 차이를 시험성적이나 성과급의 차이로 변별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재의 선발에는 <역량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훌륭한 교사를 선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근무하는 조건을 잘 정비해야 합니다. 학생과 교사의 수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게 한다든지, 교사에게 적정한 자율성을 교권으로 부여한다든지, 행정 잡무로부터 해방시켜 준다든지, 교육행정을 보다 효율화한다든지 하는 교육환경의 시스템적 정비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변혁적 조치들이 우리나라 공교육을 살릴 것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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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