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사물을 통제하려면, 그것을 인간 앞에 세워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본질과 특성과 기능을 철저히 분석해서 그 유용성에 따라 배치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 과학적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문제는 경영의 합리화가 사물의 배치를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조직구성원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경영자는 자신의 부하들을 통제하고 싶어합니다. 통제할 수 없을 때 불안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통제 밖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마치 투명인간이 되어 직원들이 하는 모든 의사결정을 자신이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직원들 지각하는 숫자도 알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그 숫자가 많아지면 근무기강이 해이해졌다고 판단하고 군기 잡는 조치를 취합니다. 내가 20년간 근무했던 조직에서는 이런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됐습니다. 마치 경기사이클이 순환하듯이 말입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나아가 경기침체로 수익이 조금 떨어지면 복사 이면지 활용하라고 지침을 내리고, 업무추진비와 출장비를 억제하라고 지시합니다.

 

기업 내에서 움직이는 모든 사물의 미세한 변화까지 감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ERP시스템>입니다. 거의 모든 기업들이 ERP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리더의 의도는 사물의 변화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업무행태 변화까지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ERP의 목적은 경영을 합리화하는 데 있습니다. 그 최종 상태는 <맥도날드화>입니다. 맥도날드화의 네 가지 특징은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통제에 있습니다.

 

효율성은 고객의 필요에 따라 즉각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고, 계산가능성은 모든 사물의 크기와 양, 그리고 서비스를 측정하여 표준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측가능성은 언제 어디서든지 제품과 서비스가 동일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끝으로 통제는 직원들의 행동이 규정과 매뉴얼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허튼 행동을 미연에 방지하고 목표지향적인 행동을 일으키도록 합니다.

 

사람에 대한 통제 = 지배욕망의 충족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물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통제입니다.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 곧 지배력 행사를 의미합니다. 인간의 타인에 대한 지배욕, 즉 권력욕은 가장 기본적인 욕망입니다. 이 욕망을 적절히 충족시켜 주는 시스템이 바로 ERP입니다. 이 시스템으로 종업원들의 행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RP는 통제를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서 직원들은 맥도날드화에 길들여집니다.

 

리더의 지배욕, 즉 권력에의 의지는 조직을 발전시키려는 의지로 채색되어 겉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리더의 지시통제는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권력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내가 권력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크뤼거(Wilfried Krüger) 교수가 쓴 『기업에서의 권력(Macht in der Unternehmung)』이라는 책을 읽은 후부터였습니다. 이것은 크뤼거 교수가 자신의 교수자격논문을 출판한 것인데, 권력이 기업 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한 내용입니다. 이 책을 읽고, 사회와 조직에서 권력이라는 현상은 중력의 법칙과 같이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권력에의 의지”(Wille zur Macht, will to power)를 어떻게 사회와 조직의 발전에 활용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게 되었습니다.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개념으로 세상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역동성을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의지와 욕망이 인간의 삶을 엮어가게 하는 기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영향을 받은 하이데거는 권력을 존재자의 기초”(Grund des Seiendes)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뭐라고 말했든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다양한 권력현상에 직면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서, 리더와 부하 사이에서,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권력의 장이 생겨납니다. 이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일상적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권력의 개념과 활용에 대해서는 나의 책,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 한국 관료조직의 개혁을 위한 진단과 처방』, 비봉출판사 1998, 260~269쪽과 토마스 고든, 『리더역할 훈련』, 장승현 옮김, 양철북 2002, 251~252쪽을 참조하세요.)

 

권력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권력이란 무엇인가? 타인에 대한 통제가능성을 의미합니다. 권력자는 타인을 처벌하거나 보상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처벌 또는 보상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는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박탈당했을 때 처벌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보상을 박탈하는 것도 처벌로 생각할 수 있으며, 원하지 않는 조치를 당하는 것도 처벌이므로 권력은 항상 처벌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처벌이라는 수단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복종하도록 조정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권력자에게 복종하는 이유는 그가 옳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처벌을 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처벌에 대한 공포심 때문입니다.

 

나는 부모로서, 남편으로서, 교사로서, 상사로서, 경영자로서, 나의 권력에 반응하는 다양한 모습을 경험했습니다. 내가 타인에 대해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만 하더라도 그들은 불안한 상태에 처합니다. 정도가 심해지면 공포스러워합니다. 나 역시 나의 상사가 나에게 그렇게 했을 때 불안한 심리상태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불안하거나 공포스러우면, 그 상태를 면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거나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잘 하거나 원하는 것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권력의 사용은 의존적이고도 복종하는 인간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권력자는 누구나 자신의 부하들이 의존적이고 복종하는 인간이 아니라 자율적이고도 창의적인 인간이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권력자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근원적 욕망인 타인에 대한 지배욕을 충족합니다.

 

 상사의 권력에 대한 부하들의 반응

 

권력이 사용되고 있는 현장에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왜 그런지를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이 권력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하면 됩니다.

 

첫째, 권력이 행사되고 있는 곳에는 의사소통의 양이 급격히 감소합니다. 조직 내에서 권력이 끼치는 폐해 중 가장 중요한 항목입니다. 부하들은 가급적 권력자에게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묻는 말에만 간단히 대답합니다. 처벌을 피하는 선에서 말하되, 말하더라도 가급적 상사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합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권력자는 소통이 잘 안 되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권력자는 소통이 잘 안 되니 소통이 잘 되도록 하라고 다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째, 권력자에게 조직구성원들이 대처하는 수단은 아첨하거나 비위를 맞추어 그의 호의를 얻어 내는 것입니다. 그에게 충성심을 보여줌으로써 신임을 얻고, 그에게서 보상을 얻어냅니다. 이럴 경우 조직은 수용소 문화로 바뀝니다. 수용소 문화란 나치시대에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생긴 것인데, 수용소를 관리하는 독일장병들에게 환심을 사서 카포(Kapo)가 됨으로써 동료 수용인들을 관리하는 권한을 얻어 권력을 행사하는 문화를 말합니다. 조직구성원들은 경쟁적으로 권력자의 환심을 사려고 합니다.

 

셋째, 강압적인 권력자 앞에서는 구성원들 사이에 경쟁과 대립이 심해집니다. 이것은 아주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권력이 행사되는 장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은폐하거나 거짓말하거나 고자질하거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립니다. 이렇게 되는 현상은 내가 남을 나쁘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면 나는 상대적으로 좋게 보일 수 있다는 심리에서 발생합니다. 이럴 경우 팀플레이가 불가능합니다.

 

넷째, 권력에 반응하는 또 다른 방법은 복종하고 순응하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추종하고, 수동적으로 굴복합니다. 권력자 앞에 서면 수첩부터 꺼냅니다. 그리고는 무슨 글을 쓰는지 모르지만 열심히 받아 적습니다. 권력자가 말을 멈추거나 질문을 하면, “말씀 주시면 …”하고 또다시 받아 적으려고 합니다. 시키는 대로 정확히 실천하는 조직구성원을 상상해 보세요!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시나요?

 

다섯째, 복종과 순응의 반대현상도 나타납니다. 도전과 반항입니다. 겉으로는 권력자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돌아서면 그 말과 전혀 다른 뒷담화를 하는 현상을 본 적이 있나요? 아울러 뒷담화는 항상 진실인 것처럼 포장되는 경향이 있고, 빠르게 조직에 확산됩니다. 이런 현상이 발행하는 경우에는 조직의 기능이나 잠재력을 크게 떨어뜨립니다. 막강한 권력이 행사되던 전두환 시절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국민적인 거센 도전과 반항이 생겼습니다. 어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느냐 아니면 숨겨진 도전과 반항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여섯째, 권력이 행사되는 경우, 이를 상쇄하기 위해 조직구성원들이 연대하거나 연합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합법화 하게 된 원인이기도 합니다. “단결하면 힘이 생긴다는 것이 이 대응수단의 밑에 깔린 사상입니다. 우리나라 노조가 강성이라서 해외직접투자를 유치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권력이 그 만큼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노조 또한 그에 대응하기 위해 강한 연대와 연합을 구축한 것입니다. 경영자와 오너가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노조 또한 힘이 빠지게 됩니다. 노조의 힘은 사용자가 쓰는 권력의 힘에 비례하여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권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은폐 엄폐가 잘 된 곳에서 권력자의 눈에 띄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그러면 중간은 가기 때문입니다.

 

권력자에게는 어떤 일이 생기는가?

 

비록 타인을 도와주려는 선한 의도라 할지라도, 타인을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권력을 행사하면 선의와는 상관없이 이러한 엄청난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의 합리화를 구실로 진행되는 <경영의 맥도날드화>는 종업원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경영자들에게 점점 더 환상을 갖게 합니다. 여기에는 종업원들을 쥐어짤수록 그들의 능력을 더 발휘하게 한다는 믿음이 깔려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될까요?

 

권력을 사용할 경우 권력자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조직구성원들의 업무행태와 성과를 일일이 챙겨야 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듭니다. 권력자는 늘 과중한 업무부담을 안게 됩니다. 그래서 쉴새 없이 뭔가를 열심히 합니다. 휴식을 취할 여가가 거의 없습니다. 부하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고받아야 안심합니다. 그런 보고에 근거해서 일일이 지시를 내려야 일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마치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부하들은 권력자가 관심을 갖는 분야에만 신경을 쓰고, 나머지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방치됩니다. 조직 전체로 보면, 부하들은 권력자를 향하여 항상 웃는 얼굴을 내밀고 있지만, 고객을 향해서는 궁둥이를 내밀고 있습니다.

 

둘째, 결정된 일을 실행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듭니다. 부하들은 상사에 의해 강요된 일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감을 덜 느끼면서 일합니다. 부하들은 지시명령대로 무난히 수행하면 됩니다. 구태여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때로는 일을 하다가 떡고물이라도 생길 것이 있다면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리더는 부하들의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경찰 노릇까지 해야 합니다.

 

셋째, 리더는 부하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낍니다. 소외되는 느낌은 리더가 권력을 사용할 때 치러야 하는 대가입니다. 이런 소외감을 피하기 위해서 무능하지만 충성심이 강한 사람들을 기용함으로써 자신이 리더십을 확보한 것처럼 자기기만(self-deception)에 빠지기도 합니다.

 

넷째, 긴장과 불안, 염려 때문에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실제로 육체적 질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리더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리더는 권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권력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도 병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에의 의지, 즉 지배욕, 다른 말로 하면 타인에 대한 통제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경영의 맥도날드화가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경영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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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미국 대선에 대한 시각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 1961~)라는 무명의 흑인 상원의원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을 두고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조지 부시(George W. Bush, 1946~) 대통령의 정책실패가 그 원인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부시는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피폐하게 만들었고, 세계인들이 서로 유지하고 있던 연결고리마저 끊어지게 했습니다. 나아가 전세계인이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황폐해졌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부시가 자신에게 붙어있던 권력의 참을 수 없는 유혹 앞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숙주에 붙어 있는 기생충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권력은 아주 미묘해서 인간이 권력의 맛을 한번 보면, 그 맛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 권력을 사용하고 싶어지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권력에 의지하게 됩니다. 권력에 서서히 중독되는 것입니다.

 

부시는 권력의 맛을 알았고, 그 맛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권력의 불장난이 주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권력의 사용이 반드시 부작용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이해했을 때는 이미 버스가 지나간 다음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기생충은 숙주를 버리고 다시 다른 숙주를 찾아 떠납니다. 이번 미국의 대선은 그렇게 된 것입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권력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알아보겠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권력을 사회적 관계에서 저항을 누르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모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실현시키는 힘을 권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래서 타인이 저항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마음에서 순복하는 경우에는 권력이 필요 없게 됩니다. 권력이란 폭력 또는 물리적 강제력(Gewalt)과 동의어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권력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권력은 그 자체로 사악합니다. 이것은 인류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권력은 반드시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고, 그 사람은 그 권력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그 화려했던 왕조들의 멸망을 보면, 절대권력을 누렸던 왕들이 나타난 후에는 반드시 패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권력은 사악한 유혹인데, 이 유혹에 넘어가면 절대로 헤어날 수 없게 됩니다.

 

권력의 사악한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

 

봉건사회를 넘어 근대로 들어오면서도 권력의 사악한 유혹에 무릎을 꿇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입니다. 그리고 스탈린(Joseph Stalin, 1878~1953)과 그의 추종자들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부시와 그의 추종자들인 네오콘도 자신들에게 붙어있던 권력을 사용함으로써 패배의 운명을 재촉했습니다. 뭔가 잘못됐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선택에 대해서는 인륜적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권력을 사용하는 것이 본인뿐만 아니라 불특정다수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러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먼저, 조직이 나아갈 목적지(end state)와 원하는 상태(desired state)를 비전/목적/방향으로 합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구성원들과 마음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전이 있기 때문에 이것도 또한 어렵지 않습니다. 연결되어 있는 마음(connectedness), 이것이 조직을 리드하는 기본 바탕입니다. 일단 연결되고 나면, 구성원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스스로 선택하고 협력해 나가도록 이끄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훈련이 어느 정도 되어야 가능합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훈련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되지만, 우리 교육현실은 이것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성인이 돼서야 겨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합니다. 성인이 됐다 하더라도 훈련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훈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설사 느끼더라도 훈련이 귀찮거나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의구심 때문에 훈련 받기를 포기하고, 가장 손쉬운 권력을 사용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부하들이 하도록 명령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뭔가 되는 것 같을지 모르지만, 권력을 사용해서는 조직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권력을 사용하지 않은 위대한 인물들

 

위대한 지도자들은 권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지도자들을 보세요. 인도의 모한다스 간디(Mohandas Gandhi, 1869~1948)는 권력사용 대신 물레질을 했습니다. 물레질이라는 상징을 통해 수억의 인도인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가 발휘한 영혼의 능력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간디를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Mahatma)라고 부릅니다.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감옥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화해와 진실위원회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포용했습니다. 포용하는 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영혼의 울림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바마가, 그럴 리 없겠지만, 부시처럼 권력을 휘두른다면, 미국은 더 큰 재앙에 직면할 것으로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 동안 권력의 맛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권력을 행사할수록 저항이 심해진다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에서도 언급했지만 그의 성공여부는 권력의 맛을 빼느냐 못 빼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기업경영에서도 가능하다

 

이제 기업경영 현실로 돌아와 봅시다. 권력사용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에서도 권력사용의 폐해가 극심합니다. 도산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경영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맘껏 사용했던 기업들입니다. 어렵게 기업을 일으켰던 기업가들이 나중에는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는 바람에 기업을 도산시킨 예는 한둘이 아닙니다. 관련된 분들의 명예 때문에 여기서 일일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조직구성원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기생충처럼 붙어있는 권력을 의지했습니다. 경영자들은 권력의 사악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것은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이라야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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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