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벨 공동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13 영국여행 이야기(9)_브루더호프 방문기(1) (17)
  2. 2008.12.03 꿈꾸는 인생_사랑의 꼬뮨을 실현하다 (6)

주말을 이용해서 기독교 생활공동체인 브루더호프(Bruderhof)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런던에서 동남쪽으로 약 1시간30분 정도 떨어진 이스트 석세스(East Sussex)주의 로버츠브릿지(Robertsbridge)라는 조그마한 도시에 있습니다. 우리는 미리 약속을 해두었습니다. 그 공동체에는 내 누이의 딸 부부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전화를 했더니 주말을 이용해서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공동체에 손님으로 일정기간 체류하면서 함께 생활해보려면 일단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공동체로 산다는 것에 대해 한번도 배우지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에 그들이 사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로 혹시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봐도 있을 것은 다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그냥 오라는 겁니다. 한인 가게에 가서 깻잎 통조림과 아이들이 간식으로 먹을 것을 간단히 준비해서 트렁크에 넣고 떠났습니다.

 

찾아가는 내내 공동체의 생활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사전에 인터넷으로 조사한 것도 전혀 없었던 터라 어떤 정보도 없었습니다. 누님을 통해 잘 살고 있더라. 한번 찾아가 봐라는 얘기만 들었을 뿐입니다. 무엇으로 돈을 벌어 어떻게 먹고 사는지가 가장 알고 싶었습니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궁금증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수백 명이 가족단위로 모여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공산주의 방식인가? 공산주의는 다 망해서 북한을 빼고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데? 아니면 사회주의적 공동체 운영? 혹시 사교에 빠진 집단은 아닌가? 얘기를 들어보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니면 고대 원시부족사회처럼 사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로버츠브릿지에 도착했습니다. 철길을 넘어 한참을 들어가니까 입구에 사인이 보였습니다.

 


브루더호프에 관한 책을 이미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참고하세요.


2008/12/03
꿈꾸는 인생_사랑의 꼬뮨을 실현하다
 

도착한 날이 토요일인데 많은 사람들이 연장을 들고 일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주말에도 일을 하나? 그 동안 온수와 난방용으로 쓰던 화석연료를 천연연료로 바꾸느라 교체작업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같이 일해야 하는 데 손님이 온다고 해서 조카부부는 빠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브루더호프는 생태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거실에서 작은 외할아버지가 왔다고 신바람이 났습니다.


조카부부와 아이들은 아주 건강하고 씩씩해 보였습니다. 애들이 올망졸망 넷이나 됩니다. 이곳에서는 생기는 대로 낳는 모양입니다. 알고 보니 애 낳는 것을 장려한다고 합니다. 굶주려 북한 사람들처럼 핼쑥한 모습은 아닐까 약간 걱정했는데, 일단 안도했습니다. 먹기는 잘 먹는 모양입니다. 


작은 외할아버지가 온다고 환영포스터까지!! 



그런데 남자 애들은 주로 맨발입니다. 여기서는 그냥 맨발로 뛰어다녀도 내버려 둔답니다. 아이들이 흙과 자연스럽게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랍니다.

손님이 온다고 케익을 준비했더군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공동체 식구들 전체가 저녁식사를 함께 합니다. 아침은 각자 자기집에서 먹고, 토요일 저녁은 이웃마을 사람들이나 친척을 초대해서 함께 한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에도 우리가 초대된 셈입니다. 300명도 너끈히 식사할 수 있는 큰 식당입니다. 놀랍게도 카페테리아식이 아니고 식사당번이 서브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충분히 좋은 식사였습니다.

 

소박한 게스트룸


저녁식사는 좋았는데, 게스트 룸은 정말 소박했습니다. 순수한 하룻밤을 소박하게 지냈습니다.

우리는 과도하게 치장된 아파트에서 삽니다. 그것이 풍족인 줄 알고 말입니다. 집에 돌아가면 실용적이지 않은 치장된 것이 있는지 색다른 기준으로 다시 한번 더 살펴봐야겠습니다. 브루더호프의 공동체 식구들은 외면을 꾸미기보다 마음을 깨끗이 정돈하며 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게스트룸에 거울이 없다!


우선 거울이 없습니다.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거나 치장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딸은 조금 불편해졌습니다. 거울이 없다니! 이건 너무 한 거 아냐? 핸드백에서 손거울을 꺼내 해결했습니다.



 
내 누이의 딸입니다.




내 조카는 어려서부터 수녀 같은 마음씨였습니다. 여기 와서 보니 수녀와 신부가 만나서 애 낳고 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동안,  거의 10년을 거울 없이 살았는데도 이렇게 예쁘잖아요.

 

출처 : 브루더호프 공식홈페이지(www.churchcommunities.org)에서


우리는 아침을 먹고 일요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공동체 마을의 중앙공원에 둥그렇게 모였습니다. 잔디 위에 그냥 앉은 사람도 있고, 방석을 깔고 앉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작은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기도 합니다. 나는 그곳에 있는 정원용 탁자에 딸린 의자에 앉았습니다. 예배 내내 찬송을 부릅니다. 누군가 성경을 읽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춘 얘기도 했는데, 설교인지 아닌지가 헷갈렸습니다. 때때로 웃기도 하고 ……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워낙 조용조용 이야기합니다. 내가 예상했던 설교, 찬송, 예배와는 완전히 딴판이었습니다. 설교(?)가 간단하게 끝나고는 또 다시 찬송을 불렀습니다. 누군가 먼저 시작하면 다같이 부르는 방식입니다. 미리 정해놓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힐 정도로 화음이 좋습니다. 나는 한 소절도 따라 하지 못했지만, 그 아름다운 화음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출처 : 브루더호프 공식홈페이지(www.churchcommunities.org)에서


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공동체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마을 안에는 초등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공장도 있었습니다. 자녀들을 가르치고 학습하는 장소도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게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외부의 학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곳에 공동체의 멤버들이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까지 가르칩니다. 만약 상급학교에서 더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헤이스팅스(Hastings)라는 남부해안도시의 외부 학교로 진학한답니다.


출처 : 브루더호프 공식홈페이지(www.churchcommunities.org)에서

공장시설을 보고 나서야, 이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Community Playthings"라는 상표의 어린이 가구를 만들어서 전세계에 수출하고 있었습니다.

출처 : 브루더호프 공식홈페이지(www.churchcommunities.org)에서


어린이들이 가장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양질의 가구들입니다. 특히 유치원과 학교에서 쓰는 모든 가구를 만듭니다. 수요가 많아서 요즘은 공장을 풀가동해야 한다고 합니다. 외부의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공동체가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는데, 지금까지는 어려움 없이 수지를 맞춰왔다고 합니다. 오히려 다벨 브루더호프는 재원이 부족한 다른 공동체를 돕고 있다고 합니다.



조카의 남편 케빈(Kevin)이 애기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군요.



이들은 철저하게 무소유의 원칙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교인들의 삶이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브루더호프를 찾아오면서 생긴 온갖 의문들이 상당부분 해소되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서로 아무 것도 갖지 않기로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요.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고 해서 노동 없이 빈둥거릴 낭만적 삶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더 치열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 즉 삶의 본질적 투쟁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곳의 생활에 대해 일일이 사진을 찍어 소개하려고 했었는데, 조카부부의 말에 의하면, 외부인들에게 노출되는 경우 좋은 면도 있지만, 공동체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해의 소지가 많아서 가족끼리 찍은 사진 이외에는 허락 없이 노출되는 것을 금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세운 원칙을 존중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찍은 사진은 최소화하고,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들을 활용했습니다. 이점을 양해해 주시구요.

이들의 삶은 분명히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 이외의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들의 얼굴에는 그것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에 물든 내 눈에는 이들의 삶이 거룩해 보였습니다.

다벨 브루더호프 방문기는 계속됩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분은 www.churchcommunities.org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소개하는 동영상은 <여기>를 눌러서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 공동체가 운영하는 출판사의 출판물들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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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내가 지난 여름 영국에 있는 브루더호프(Bruderhof) 다벨공동체(Darvell Community)를 방문했을 때, 그들의 무소유의 신념, 봉사와 희생정신에 기반한 내면의 아름다움, 공동체 마을에 깃든 평화로운 아우라(aura)와 자연스럽게 화음으로 퍼지는 찬양은 나를 감동케 했습니다.

 

다벨 공동체 입구

그런 공동체 내에서 처참하고도 엄청난 사건들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배신, 권모술수와 권력투쟁, 사선을 넘나드는 아픔과 육체의 질병, 질병으로 인한 죽음과 씻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 그리고 용서, 사랑과 평화

 

내가 눈물이 많은 사람은 아닌데도,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저열한 행태에서부터 가장 숭고한 용서와 사랑의 행위까지 드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어린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모습에서, 나는 고이는 눈물을 참으려고 자꾸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이 책은 요한 하인리히 아놀드”(Johann Heinrich Arnold, 1913-1982)의 생애를 그린 전기입니다. 그의 외손자 피터 맘슨(Peter Mommsen)이 외할아버지의 생애를 기술한 것이지만, 무소유의 기독교 생활공동체 브루더호프(Bruderhof)의 탄생에서부터 오늘날까지, 그 생생한 역사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합니다.

 

하인리히 아놀드의 아버지 에버하르트 아놀드((Eberhard Arnold, 1883~1935)는 독일에서 신학, 철학, 교육학을 공부하여 1909년에 에어랑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에미(Emmy von Hollander)와 결혼했습니다. 작가와 강연자로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1920년에는 베를린 중상류층의 특권을 버리고 아내 에미와 아들 하인리히를 포함한 온가족이 독일 중부지방의 자너츠(Sannerz)라는 조그만 마을로 옮겼습니다. 거기서 신약성경의 산상수훈에 기초한 신앙공동체인 브루더호프(Bruderhof, 형제의 공간)를 세웠습니다. 후일 독일 튀빙겐대학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브루더호프에 대해 매우 어둡게 보이는 시대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도 자너츠의 정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에버하르트와 에미는 사유재산제가 절도이며, 제아무리 훌륭한 선진문명이라고 해도 가난한 자들의 등 위에 세운 문명은 썩었다고 믿었고 사랑의 공산주의를 가르쳤습니다. 자너츠에서는 무엇이건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고, 모든 수입과 모든 물건이 공동체에 속했습니다

 

에미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대중의 고통을 나누기 원하는 우리가 어떻게 우리 몫으로 뭔가를 챙길 수 있겠어요. 우리는 우리와 같은 사랑의 정신으로 섬기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 싶어요. 무소유의 욕구는 우리에게 신조와도 같아요.

 

나치 정부의 핍박이 가혹해지면서 독일 땅을 떠나야 했습니다. 영국에 잠시 머물렀지만, 당국은 적국에서 온 공동체에게 아량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유럽에서는 공동체를 받아 줄 나라가 없었습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공동체를 받아준 나라가 파라과이였습니다. 그들이 살 수 있도록 허용된 땅은 질퍽질퍽한 초원과 처녀림으로 이어지는 버려진 방목장이었습니다. 공동체는 목숨을 걸고 일해서 숙소와 공동시설을 지어 마을을 건설했습니다.

 

위생상태가 안 좋아 아이들과 허약한 사람들은 병들어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공동체의 비전을 가지고 가난과 죽음에 맞서 번창하는 공동체를 일구어 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스(에버하르트의 사위, 그러니까 하인리히의 매형)은 세속적으로 보면 아주 유능한 회계사였는데, 공동체에 들어와서 온갖 술수를 부려 공동체의 헤게모니를 잡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인리히는 공동체로부터 격리되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합니다. 그 고통 속에서 한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한스는 사람들을 망치로 내려치지 않아. 그렇게 했다면 사람들이 느끼고 반란을 일으켰겠지. 그가 사람들을 쥐어짜는 방식은 수압프레스와 비슷해. 서서히 누르지만 결국 마지막 한 조각의 생명까지 짓눌러 버리지.

 

하지만, 끝까지 인내하면서 매형을 용서하려고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공동체가 성장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운영비를 감당하기 위해 미국으로 모금여행을 떠납니다. 하인리히가 모금여행에서 얻은 것은 기대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성공적이었고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브루더호프의 공동체생활에 관심을 보이는 미국인 부자들이 합류하거나 재산을 기부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미국 동부에 브루더호프를 세워 하인리히가 이끌었고, 서로 다른 사상과 신념, 습관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아름답게 성장해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파라과이 브루더호프는 내부에서부터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인리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전문가가 되었지만, 서로를 미워했습니다. 공동체주의가 그리스도를 대체하고 말았습니다.

 

에버하르트가 죽은 후, 브루더호프에는 공식적인 책임자 없이 20년이 넘도록 한스가 리더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는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사람처럼 배후에서 다른 사람을 조종함으로써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했습니다.

 

어느덧 사람들은 통일성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 줄 진정한 리더를 세우고 싶어했고, 공동체 전부가 하인리히가 적임자라는 폭넓은 지지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제안을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종과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형제들 속에서 형제로 있고 싶을 뿐입니다. …… 참된 리더십은 섬김입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쓴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1962년이 되자 하인리히는 공동체의 장로로 지명되었습니다. 그 후 1982년 사망할 때까지 20년간 브루더호프의 공식적인 리더로 봉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끊임없는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단 하루라도 불신 속에서 사느니 천 번 신뢰하고 배신당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추행과 악행은 결국 권력욕에서 나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사악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권력에의 의지이며, 이것이 악의 근원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의 꼬뮨은 악의 근원에 대해 성찰하게 합니다. 에버하르트 아놀드와 그의 아들 하인리히 아놀드가 일구어낸 사랑의 꼬뮨 브루더호프는 이 패역한 세상에 한 줄기 소망의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분은 www.churchcommunities.org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소개하는 동영상은 <여기>를 눌러서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 공동체가 운영하는 출판사의 출판물들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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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