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미국의 국방장관이었던 맥나마라(Robert McNamara, 1916~)의 이름을 많이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저녁 때 퇴근한 아버지는 가끔 맥나마라가 어쩌고 저쩌고 하셨습니다. 하도 여러 번 들어서 아직도 그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춘천에 있는 캠 페이지(Camp Page)라고 불리던 미 8군 유도탄기지 사령부에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셨습니다. 미국 국방부 장관과 자동차 정비공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집에서는 자주 맥나마라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맥나마라가 그 부대의 자동차 정비반장쯤 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안드레아 가보, 『자본주의 철학자들』, 황금가지 2006

나중에 (미국식)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맥나마라가 미국경영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려서 듣던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맥나마라는 천재적인 인물입니다. 하버드에서 MBA를 받고 곧바로 회계법인에서 사회경력을 시작했지만, 1년 후에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로 복귀했습니다. 그는 조교수들 중에서 가장 젊었고 가장 연봉이 높았으니까요. 2차 대전 중에 육군 항공대 통계관리국에서 분석적인 통계기법을 사용하여 전투기 폭격의 효과를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작전하던 것을 이런 분석적 기법에 의해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포드에서의 계량화

 

전쟁이 끝나자, 그는 포드자동차에 들어갔습니다. 군수업체였던 포드자동차가 전후 경영상의 혼란을 겪자 그는 시스템 분석, 계량분석 및 통계이론으로 회사를 개혁해냅니다. 맥나마라는 회계감사를 실시해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사에 수백 명의 회계 및 재무분석가를 채용했습니다. 이런 분석을 통해 회사에 비용과 지출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익전망도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회사의 모든 돈줄을 재무담당자들이 틀어쥐도록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숫자로 계산하고 합리화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기업의 재무담당자들이 모든 숫자를 통제하는 관행은 이때부터 생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이런 관리방식은 경쟁자였던 제네럴 모터스(General Motors)보다 더 우수한 기업이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맥나마라는 이런 분석기법이야말로 미국기업을 위한 새로운 규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내에서는 재무담당자들을 좁쌀 같은 사람들(bean counter, 콩알을 세는 것처럼 융통성이 전혀 없는 쫌생이라고 비꼬는 말)이라고 불렀습니다. 생산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취향이나 정서를 들어 재무담당자와는 다른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러면, 재무담당자들은 확실한 숫자와 도표를 보여주었습니다. 토론에서 누가 이길지는 뻔한 노릇이었습니다. 숫자가 항상 이깁니다.

 

한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1949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생산공장을 책임지고 있던 공장장이 본사에 건의를 했습니다. 공장시설이 낙후되었고, 지게차가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협소하여 공장현대화 작업을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맥나마라는 공장 전체에 대대적인 조사를 실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좁쌀까지 세면서 숫자를 만들어내느라 3년이 걸렸습니다. 참다 못한 공장장은 헨리 포드에게 직접 호소문을 보냈습니다. “품질이 엉망이고 페인트칠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생산한 차를 건조시킬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이 간절한 호소를 통해서 겨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맥나마라는 품질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품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품질을 계량화하여 숫자로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품질을 계량화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올바른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품질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본사가 품질기준을 내려 보내면, 공장에서는 그 기준에 숫자만 맞추는 방식으로 본사의 눈을 피해갔습니다. 그러면 본사는 더 강화된 기준을 내려 보내고, 공장에서는 그 기준을 피하는 요령을 찾아내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재무담당자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수치였습니다.

 

영혼 없는 숫자정신(numerical mind)을 심어놨더니

 

포드자동차는 점점 이익중심의 회사로 변해갔습니다.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침에 따라 자동차 구조를 분석하여 부품의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으로 수익을 증대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고민 끝에 나온 기법이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이었습니다. 이 기법은 오늘날에도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이런 분석기법에 의해 개발된 자동차가 핀토(Pinto)입니다. 1970년에 출시된 이 모델은 가격이 저렴해서 서민들에게 많이 팔려나갔습니다.

 

그러나 뒤에서 충돌할 경우, 차가 폭발해 버리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핀토(Pinto)의 폭발사고로 최소 59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그 결과 포드자동차는 비의도적 살인(reckless homicide)혐의라는 오명을 얻는 최초의 자동차회사가 되었습니다.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핀토(Pinto)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폭발하는 문제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연료탱크 내부에다 고무 라이닝(rubber lining)을 끼워 넣으면 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간단한 해결책을 쓰지 않았을까요? 비용편익분석에 의하면, 고무 라이닝을 끼우는데 1 3700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지만, 폭발로 화상이나 사망사고에 따른 총보상액을 확률로 계산하면 4950만 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라이닝을 없애는 것이 이익공헌도가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맥나마라가 포드자동차에 남긴 유산입니다.

 

오늘날 미국 자동차 업계가 파산에 내몰릴 정도로 처참한 신세가 된 것은, 그들이 관리하고 있는 영혼 없는 수치들 때문입니다.

 

어찌 되었든, 계량분석에 입각한 경영관리의 합리화는 맥나마라의 개인브랜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그 동안의 노고를 인정받아 1960 11월 포드가문의 일원이 아닌 사람으로서 첫 사장에 임명됩니다.

 

국방부에서의 계량화 작업

 

그러나 몇 주 후에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그는 국방부장관에 임명됩니다. 맥나마라는 기왕에 내각에 들어가려면 재무부장관이 더 낫겠다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케네디는 전쟁을 통해 비대해진 국방부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면서,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하고 싶어했습니다. 맥나마라가 제격이었습니다. 그는 장관이 되자마자 그 동안 포드에서 했던 계량분석적 합리화 모델을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Robert McNamara(1967)

1960년 당시, 국방부는 미국 내 25대 기업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조직이 되어 있었습니다. 맥나마라는 그런 국방부를 자신의 확고한 방침에 따라 개혁해 나갔습니다. 전후 냉전시대에 공산진영과 어떤 방식으로 대결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사건들이 잇달아 터지고 있었습니다. 스푸트니크 쇼크, 한국전쟁, 피그만 침공 실패, 쿠바 미사일 사태, 베를린 장벽 설치와 같은 사건을 경험하면서 중요 정책결정의 정신적 틀(mental program)이 형성되었습니다. 맥나마라는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의 8년간을 국방부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공산진영과는 힘으로 대결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서 힘이란 숫자였습니다.

 

맥나마라가 믿었던 계량화가 그 폐해를 드러낸 것은 사실 포드자동차 핀토(Pinto)만이 아니었습니다. 월남전쟁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케네디는 직접 전쟁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베트남 남부를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특수부대와 군사고문단을 16,000여명까지 파견했습니다.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주변국들이 도미노처럼 공산화 된다는 소위 도미노이론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케네디는 1964년 재선 이후에 월남에서 철수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1963년 말까지 파견인원의 일부를 철수하도록 명령했습니다. 1963 11월 케네디가 암살된 후, 후임자인 존슨 대통령은 케네디의 계획을 취소시켰습니다. 이 배후에는 맥나마라가 있었습니다.

 

맥나마라는 모든 숫자를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중앙정보국(CIA)에서 올라온 보고서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CIA의 보고서에는 베트남이 공산화되더라도 캄보디아를 제외한 나머지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산화될 염려는 거의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CIA는 도미노 이론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베트남 전쟁에 대해도 부정적이었습니다.

 

월남전의 계량화

 

맥나마라는 CIA내부에 특별전담반을 설치했습니다. 그 전담반의 임무는 베트남에서 진행된 모든 폭격기의 출정 결과를 수치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월별 폭탄투하의 종류, 위치와 수, 그리고 그 효과를 분석해서 보고했습니다. 그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수치분석 결과를 신뢰했습니다. 맥나마라는 정작 계량적 분석기법에 대해 그것을 개발한 과학자들보다도 더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베트남 북부를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64 8월 미국이 월남에서 본격적으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베트남 북부 통킹만(Gulf of Tonkin) 공해상에 머물던 미군 구축함이 어뢰정에 공격을 받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보복공격을 빌미로 즉각 의회의 승인을 얻어 선전포고도 없이 베트남 북부를 대규모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월남전은 그렇게 확대되어 갔습니다. 계량적 분석기법으로 계산한 바에 따르면, 그 해 크리스마스까지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국방부는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도 넘게 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지만, 국방부는 폭격횟수, 적군 보급로 차단 건수, 전사자 수 등 수치관리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계량화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계량화의 천재 맥나마라인들 월맹군의 열성과 투혼을 무슨 수로 수치화할 수 있었겠는가.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맥나마라가 특별전담반에 지시해서 계산한 분석보고서에는 폭탄투하가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40여년이 지난 2005, 기밀에서 해제된 문서들을 조사한 언론은 기막힌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통킹만 사건은 완전히 조작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공격을 받았다는 구축함의 함장은 어뢰정을 본적도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미국은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군사적으로도 패했지만, 도덕적으로도 패하고 말았습니다. 계량적 모형과 그 수치를 믿은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계량화에 대한 폐해와 후회

 

맥나마라는 나중에, 베트남이 공산화 될 경우 공산주의가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는 위험을 너무 크게 생각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계량모형의 분석결과들을 보니까, 베트남 정도는 속전속결로 끝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힘의 우위로 밀어 부치면 된다는 신념 때문에 다른 정보들을 제대로 검토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서 미국경영학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시스템 분석이나 계량분석 모형, 그리고 경영분석 기법들은 인간의 가치판단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골라서 봅니다. 그러므로 숫자의 의미는 보는 사람의 신념에 따라 달라집니다. 자신이 원하는 숫자가 나오지 않으면 숫자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모형의 전제와 가정을 바꾸기만 하면, 숫자는 바뀝니다. 전제와 가정을 정하는 것은 모형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과 정신입니다.

 



맥나마라는 아쉽게도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까요? 그는 놀랍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루지 못했으며,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마저도 깨닫지 못했다. …… 인간의 다른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국제 문제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해결책이 없는 문제들이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했다. 자신의 생애를 문제해결에 대한 믿음과 실천에 바친 사람으로서는 사실 이런 점을 인정하기가 무척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이따금 불완전하고 정돈되지 않은 세상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Robert S. McNamara, Argument Without End: In Search Of Answers To The Vietnam Tragedy, PublicAffairs 1999. 안드레아 가보, 심현식 옮김, 자본주의 철학자들, 황금가지 2006, 301~302쪽에서 재인용


 

그의 말이 변명인지 회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과 사회를 수학적 모형으로 정돈해 보고자 했던, 그리고 그 모형을 전세계에 전파하고자 했던 맥나마라는 자신의 생애 끝 무렵에 가서야 세상이 수치로 정돈되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한 걸까요? 그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오만한, 그리고 잘못된 신념으로 인한 폐해는 어디에다 클레임해야 하나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정직하게 고백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비판한 드러커의 외침, 테일러의 후예인 맥나마라에 의해, 메아리도 없이 거의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계량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미국식 경영학과 경영실무에서 더욱 확고해져 가고 있습니다. 모델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고, 그럴수록 경영자들은 더 좋아합니다. 물샐 틈 없이 직원들을 쥐어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델이 정교할수록 더 고가에 팔리고 있습니다.

 

p.s. 내가 어려서부터 귀따갑게 들었던 맥나마라의 생애는 <The Fog of War>라는 다큐멘터리 필름으로도 제작되어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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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바나드(Chester Barnard)의 균형잡힌 조직이론과 인간 중심적인 사상은 제2차 대전의 긴박하고도 엄혹한 상황에서 제대로 꽃필 수 없었습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선 전쟁에서 이겨야 했기 때문에 인권과 자율성, 욕망과 행복 등은 사치스런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자원이나 수단으로 동원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나타난 것이 있는데, 오퍼레이션스 리써치(operations research, OR)라는 개념입니다. 영국에서 우편물을 분류하고 운송하는 합리적 방안에 관한 연구로부터 소박하게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대전으로 말미암아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독일군의 폭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기 위해서 각 분야의 학자들을 불러모아 레이더(radar)나 대공화기를 가장 적정하게 배치하는 방법과 전함의 적절한 배치를 연구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대서양에서뿐만 아니라 태평양 전쟁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개발된 기법들이 전후에 기업경영에 응용되어 오늘날까지 활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오퍼레이션스 리써치(OR)를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공학분야에서 응용되던 것이 이제는 사회과학의 거의 전분야에서 응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OR을 의사결정을 위한 계량적 모형을 연구하는 것쯤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류혁신에서부터 테이터 트래픽까지, 서비스 퀄리티에서부터 인사배치에 이르기까지 안 쓰이는 곳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OR이 경영과학(management science)과 거의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2차 대전은 인류에서 계량화라는 정신적 바이러스를 유행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오늘날 현대문명은 계량화에 기초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계량화 없는 문명은 불가능합니다. 누가 더 정교하게 합리화된 모형으로 세계를 설명하느냐에 의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OR 또는 경영과학은 앵글로색슨(Anglo-Saxons)이 발전시켜 왔고, 그들은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20세기 후반, 지구의 대부분이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계량화에 뒤처진 동북아

 

이렇게 세계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 동북아에서는 오랜 동안 공자와 맹자, 주역에 의지해서 통합적으로 세상을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형이상학적 담론은 계량화를 천한 것으로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가치 있는 삶을 추구했고, 그래서 좋은 문장과 시()를 중시했습니다. 전쟁에서 동북아 역시 앵글로색슨에게 졌습니다. 이것은 매우 충격적이었고 치욕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런 치욕을 만회하는 방법은 뭐겠습니까? 그들이 추구했던 합리화의 계량화 작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것입니다. 이 작업을 가장 먼저 추구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산업을 철저하리만큼 계량화시켰습니다. 공산품의 품질에서 그 성과를 나타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은 산업의 모든 공산품을 철저하게 계량화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계량화라는 것은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계량화의 질서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베푸는 어마어마한 편익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반복하지만, 계량화란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물의 통일된 질서가 사라지면 일상생활은 매우 불편해지고 비효율적이 됩니다.

 

예를 들면, 나는 예전에 수도꼭지를 트는 방식이 서로 다른 집과 사무실에서 살았습니다. 어떤 곳에서 수도꼭지를 눌러야 할지 뽑아야 할지 몰라서 번번히 실수를 했습니다. 집에서는 꼭지의 레버를 위로 올려야 물이 나오고, 사무실에서는 아래로 눌러야 나옵니다. 이상한 건물에 가면, 꼭지를 하도 기묘하게 만들어놔서 어떻게 해야 물이 나오는지를 몰라서 잠시 당황한 적이 꽤 많습니다. 도무지 질서가 잡혀있질 않습니다.

 

건물에 들어갈 때도 어떤 곳에서는 왼쪽을 당겨야 열리고, 어떤 곳에서는 오른쪽을 밀어야 열립니다. 어떤 곳에서는 왼쪽 문을 개방해놓고, 어떤 곳에서는 오른쪽 문을 개방합니다. 문을 열 때마다,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헷갈립니다.

 

우리나라의 교통신호등과 도로표지판이 정말 개판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언급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거의 모든 운전자들이 정지선을 밟고 올라서도록 유혹하는 위치에 교통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미 10여 년 전에 나의 첫번째 책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한국 관료조직의 개혁을 위한 진단과 처방』에서 교통신호등의 위치에 대해 상세히 건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관료들의 답변은 그렇게 바꾸기에는 너무 많은 예산이 든다고 발뺌을 해오면서 아직까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신호등이 운전자들을 잠재적 법규위반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아울러 도로표지판 체계도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믿고 갔다가는 운전자가 반드시 낭패를 당하게 만들어놨습니다. 철저하게 합리화하고 철저하게 계량화됨으로써 질서가 잡혀있어야 할 영역인데도, 그렇게 되지 않아서 많은 불편과 비효율을 발생시킵니다.

 

혹시나 이 블로그에 쓰인 여러 글을 읽으면서 내가 계량화를 반대하는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류의 풍요로운 삶은 계량화를 필요로 합니다. 내가 쓰고 있는 컴퓨터와 살고 있는 집은 모두 계량화에 기초해 있습니다. 계량화 없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나는 사물을 철저하게 계량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계량화 해야 할 것 vs. 해서는 안 되는 것

 

그런데, 문제는 계량화해야 할 것과 계량화해서는 안 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계량화는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과연 인간의 정신에까지 질서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어떤 방식으로도 인간의 마음은 계량화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아무리 촘촘한 그물이라도 물이나 공기를 건져 올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영혼과 도덕의 문제는 계량화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혼과 정신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짓은 인간의 정신을 억압하는 행위입니다. 누군가 말했죠, 도덕을 법률로 규제하면 억압이 된다고.

 

종교의 이름을 빌어서 인류의 영혼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처참한 말로를 맞았고 문명의 쇠퇴를 가져왔습니다. 군국주의와 전체주의적 발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의 두뇌를 IQ로 재려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세월이 지나고 나니 얼마나 허망한 잣대였는지도 이미 잘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의 능력을 억압하는 모든 행위가 재앙을 맞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영혼과 정신을 다루는 교사들에게 성과급이라는 당근과 채찍으로 그들의 마음과 행동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비도덕적이고도 반인륜적인 행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과 정신의 문제를 다루는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계량화의 잣대로부터 자유롭도록 해야 합니다.

 

학생들을 잘 가르치도록 유인하는 기제의 하나로 교사들에게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에 대한 등급화와 서열화 평가가 불가피합니다. 여기에서 계량화가 개입됩니다. 이런 계량화는, 그것이 아무리 객관적이라 하더라도, 교사들의 영혼과 정신을 돈에다 팔아버리는 결과를 낳게 할 것입니다. 전혀 엉뚱한 것을 계량화하고 있으며 전혀 엉뚱한 것에다 질서를 부여하려고 하는 셈입니다. 이 문제는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문제와 관련해서는 추후에 별도로 논의하려고 합니다. 다만, 여기서는 말이 나온 김에 교육관료들의 사고와 행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해 두려고 합니다.

 

계량화의 바이러스가 경영학을 점령하다

 

이제 다시 경영학으로 돌아옵니다. 2차 대전 이후에 전세계는 계량화의 몸살을 알았습니다. 모든 사회과학은 계량모형으로 실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학문으로 인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수학적인 또는 통계학적인 증거를 들이대지 못하면, 인정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경영학의 모든 영역도 계량화에 매진했습니다.

 

회계학이나 재무학, 경영과학 등에서의 계량화는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 분야는 아직도 계량화해야 할 미지의 영역이 많이 남아있고, 학자들은 더욱 힘을 써서 계량화의 진보를 이룩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볼 때, 회계학은 경영학의 각 분과학 중에서 가장 낙후된 분야입니다. 회계자료가 회사의 가치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정보비대칭성은 단순한 금융과 크레딧리스크(여신위험)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확산되었습니다. 2007년부터 서서히 시작된 금융위기는 사실 회계학의 문제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재무제표가 기업의 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회계학적인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회계학자들과 회계사들은 돈에 팔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자신의 앞가림이나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심지어 인사관리분야에서도 계량적 연구를 중시했습니다. 채용에서 퇴출까지 모든 인사업무의 합리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은 계량화가 전제였습니다. 조직구성원의 정신과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인사관리에서는 계량화에 관한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인간의 정신과 영혼이 계량화되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고 사물화(事物化)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식 인사관리는 과감하게 계량화를 시도했습니다. 실증할 수 있는 방법은 계량화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과관리(performance management)에서 계량화를 추진했습니다. 모든 직원들이 숫자로 표시되는 성과목표를 설정하고 그 결과도 숫자로 평가하여 숫자로 보상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숫자로 표현하도록 시도했습니다. 이런 계량화 작업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기를 맞이합니다. 성과관리를 위한 숫자들을 기업전략으로도 연결시켰습니다.모든 전략과 전략실행이 숫자의 연쇄로 엮어지도록 만들어 기업체에 팔았습니다. 그가 바로 회계학자였던 하버드대학의 로버트 캐플란(Robert S. Kaplan, 1940~) 교수였습니다. 그는 인간과 조직에 관한 체계적인 이해가 부족했던 회계학자였습니다. 그가 성과관리를 계량화함으로써 균형잡힌 성과지표카드(Balanced Scorecard, BSC)개념을 만들어 보급했습니다. 이것이 공전의 히트를 치는 바람에 그는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 폐해는 심각합니다. 이것 또한 나중에 별도로 상세히 언급할 예정입니다.

 

계량화 바이러스를 저지하려고 노력한 드러커

 

제2차 대전 후에 나타난 이러한 계량화의 대세에 저항했던 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였습니다. 그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경영학자였습니다. 바나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드러커는 전후에 컨설턴트로서 미국의 대기업들을 관찰한 후 1954년에 불세출의 명저 『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를 출간합니다. 그는 여기서 한 권의 책으로 엮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개념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대부분은 오늘날 읽어도 주옥 같은 내용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개념은 <목표와 자율통제에 의한 관리>(Management by Objectives and Self-Control)입니다.

 

<목표와 자율통제에 의한 관리>는 그 후에 많은 후학들에 의해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왜곡이 발생했습니다. 바나드가 구성원 개개인의 직무수행과정에서 느끼는 충족감의 표시로서 사용했던 효율성 개념이, 후학들에 의해 나중에는 아예 투입대비 산출이라는 공학적 개념으로 왜곡되었듯이, 드러커의 목표관리 개념에도 많은 왜곡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목표관리(Management by Objectives, MbO)로 알려진 것입니다.

 


드러커가 생각했던 것은, 테일러리즘이 추구했던 합리화 또는 계량화가 가져다 주는 생산성은 한계에 봉착할 것이기 때문에 근로자 개개인에게 자율적으로 목표를 세워서 일하게 한다면 더 높은 동기를 부여하게 될 것이므로 오히려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드러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목표관리의 주요한 공헌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명령에 의한 경영(management by domination)을 자기관리에 의한 경영(management by self-control)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해준 데 있다. …… 그러나 자기관리에 의한 경영이 하나의 현실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 개념이 올바르고 또 바람직스러운 것이라는 인식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 이상을 요구한다. 그것은 새로운 도구를 필요로 하고, 아울러 전통적 사고방식과 관행에 있어 광범한 변화를 필요로 한다.”

(피터 드러커, 이재규 옮김, 경영의 실제, 한국경제신문 2006, 196~197)


 

드러커는 계량화의 전통과 관행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목표설정에 있어 측정기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매우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점이 오늘날 가장 문제시 되는 지점입니다.

 

기업의 모든 주요한 분야에 대해 분명하고도 보편적인 측정기준을 제공하는 것은 진정 변함없는 관행으로 정착시켜야만 한다. 그런 측정기준은 엄격하게 숫자로 표시할 필요는 없으며, 반드시 정확할 필요도 없다.”

(피터 드러커, 이재규 옮김, 경영의 실제, 한국경제신문 2006, 197)


 

합리화, 계량화, 숫자에 찌들어 있던 미국인들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측정기준은 숫자로 표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확할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인간은 스스로 목표를 관리할 때에만 비로소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테일러리즘에 의해 계량화된 노동의 노예상태에 있던 근로자들을 자율적인 인간으로 해방시킨 사상가가 바로 드러커라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드러커의 사상은 후학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수십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왜곡에 왜곡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숫자 없는 자율적 인간에 대한 전제는 숫자로 쪼아대야 하는 타율적 인간관으로 바뀌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 숫자로 쪼아대는 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경영으로 알고 있고, 오히려 그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드러커의 노력도 무위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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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