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10.07 영국여행 이야기(20)_런던에서 온 편지 (55)
  2. 2009.06.06 딸이 보낸 편지 (10)
  3. 2009.03.14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3)
  4. 2009.03.13 영국여행 이야기(5) (2)

내가 요즘 새로운 일에 집중하느라 블로그에 신경을 쓸 새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 블로그의 새로운 포스팅을 기다리는 분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는데, 마침 런던에서 일하고 있는 딸이 편지를 보내왔네요.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지켜 본 바로는 딸과 아들이 매우 다른 성격적 특성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인문학적 소양과 감수성이 풍부합니다. 유학 중에 자신이 쓴 에세이를 가끔 보내옵니다. 나는 그 에세이를 읽고 감동하곤 했습니다. 영어로 쓴 문장이 그렇게 유려할 수가 없었어요. 글에서 영혼의 울림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딸은 문장력보다는 수학적 재능과 비즈니스 감각이 더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의 전공도 경영학(business)이었죠. 졸업한 후에도 런던에 있는 투자은행(Credit Suisse)의 파생상품을 다루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로스쿨(law school)을 가겠다는 겁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모든 금융상품의 거래에는 반드시 변호사들의 사전 허락이 필요하답니다. 그들이 거래조건을 일일이 따져서 법률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판단이 서야 거래가 성사되죠. 그래서 딸 아이 주변에는 여러 변호사들이 판을 치고 있고, 그 틈바구니에서 일하다 보니 변호사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별 것도 아닌 일을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자들이 소위 곤조를 부리는 사건도 경험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아니꼽고 더러운 꼴을 몇 차례 겪었겠죠. 그래서 변호사 자격을 따야겠다고 맘먹은 모양입니다. 지난 여름 휴가 때 함께 여행하면서 몇 군데 로스쿨에 합격을 해 놓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해 고민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덧, 학교를 결정하고 회사와 협상해서 온갖 지원을 받아내 로스쿨에 등록을 한 모양입니다.

 

주중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에 다니는 코스여서 곱절은 힘든 과정이라고 합니다. 좋은 남자 만나서 빨리 시집가는 게 효도하는 거라는 엄마의 강조는 뒷전으로 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향해 묵묵히 전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딸의 심경을 담은 편지를 보내 왔길래 이 블로그를 사랑하는 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딸이 써 보낸 그대로 옮겼습니다.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희망과 성취를 함께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엄마 그리고 아빠 그리고 한결,

 

예전에 친구들이랑 돌아가면서 쓰는 다이어리가 유행이었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더라고요.

 

...
좋아하는 운동: 수영
좋아하는 동물:
좋아하는 연예인: 송승헌 오라버니
장래희망: 프로골퍼, 모델 아니면 .....
...

 

이게 언제 쓴 글인지 아세요? 세상에! 깜짝 놀랐어요. 초등학교랑 중학교 다닐 때 뭘 안다고 국제변호사라고 썼을까? 소름이 돋아오면서, 역시 어딘가에 적어놓으면 꿈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가 싶어요. (적어도 지금은 꿈을 이루기 위한 현재진행형이지만). 

 

프로골퍼나 모델, 국제변호사는 너무나 다른 분야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 아빠가 했던 말이 내 장래희망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아빠가 아마도 그 땐 골프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인 것 같아요. 아빠는 내가 골프채를 휘두르면 무조건 잘한다고 했고, 스윙이 시원하다고 하면서 칭찬을 해 주었어요. 나는 다리가 길어서 모델 해야 된다고 했던 말도 정말로 진지하게 들었나 봐요 ㅋㅋ. 모델로 빠지지 않길 천만다행이지요. 남들한테 폐 끼치는 일은 적어도 하지 말아야 하니까 ㅎㅎ.

 

내 기억에는, 엄마 아빠는 내가 남의 일에 참견 잘한다고 해서 변호사해야 된다고 했던 것 같아요어렸을 때 남의 비즈니스에 참견하는 것을 야단치지 않고, 변호사가 될 아이라고 칭찬해 줘서 여기까지 왔나 싶어요. ^^  

 

지금 생각해보니 2009 9 26일은 내 인생을 길게 놓고 볼 때 의미 있는 하루가 될 것 같아요. 로스쿨에 등록하고 처음 등교했거든요. 학교에서 줄 책들이 많을 것을 대비해서 비행기 기내용 가방을 가져갔어요.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로스쿨에 진학하게 되었는지도 참 신기하고, 내가 힘겹게 진로를 위해 싸우지 않아도 이런 기회가 내 앞에 놓이게 되는지그것도 회사에서 휴가와 학비를 받아가면서 말이예요. 참 감사할 일이죠.

 

공부하다 보면 직장에서는 정말 찬밥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데,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궂은 일 해가면서 어쩌면 회사에서 내 능력이 이용 당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젠 생각을 고쳐먹고, 마음을 활짝 열어 모든 사람들의 욕과 비난을 다 짊어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양인으로서, 여자로서그리고 영어가 외국어인 한국사람으로서 회사에서 인정받고 출세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소수와 약한 자의 위치에 있는 게 어떤 건지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는 단지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보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회, 편견 없이 자기의 능력을 맘껏 개발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나의 욕심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삶은 정말 멋질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미래는 교육밖에 없고,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해외 유학이라는 흔치 않은 기회가 주어진 나에게 사명이 무엇인지 요새 생각해보게 됐어요. 아빠 말대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에 절대 포기하지 않고, 힘내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할꺼예요. 사실 오늘도 강의 듣고, 읽을 법학 서적이 쌓여있지만, 이 글을 쓰는 나는 불끈불끈 힘이 나요. 나는 돈보다도 정말 나에게 주어진 능력 (그게 뭐가 됐든)을 최대한 발휘해서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꺼예요.

 

아빠가 블로그를 잠시 쉬는 사이 박원순 변호사님의 블로그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자기를 social designer라고 칭하며 희망이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느꼈어요. 정부기관이 개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소식을 듣고, 사실 우리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안타까웠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변호사님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닌가 싶던데요. 오히려 인지도가 더 높아지는 결과로 나타났으니까. 사실 박원순 변호사님의 글을 읽다가, 자기가 스크랩한 것을 모아두면, 나중에 가서 의미 있는 글들을 많이 발견한다고 해서 나도 자료더미 속에 있던 수첩을 하나하나 꺼내서 만지작만지작 거리다 나온 게 초중 때 장래희망이 적힌 글이었어요. ㅋㅋ

 

특히 법학 공부하면서 느끼는 건데, 법학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평등한 사회, 정의가 살아있는 걸 보고 싶어하는 애들이 많이 온 것 같더라고요. 로스쿨 첫날은 좀 외로웠어요. 줄 서서 수업 등록하고, 책 받고,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무하고도 얘기도 안하고, 안티 쏘샬마냥 헤드폰 끼고 음악만 듣고 있었어요. 하지만 첫 수업 시간에 인상이 확 바뀌었어요. 학교의 튜터가 매우 친절했거든요. 더구나 다양한 사람들이 수업을 듣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파트타임이어서 그런지 주위에 있는 친구들 역시 재미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내 앞에 있었던 애는 KPMG라는 회계법인에 다니는 23살 정도 된 남자애인데, 왜 법을 공부하는지는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만 집안 내력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고백하더라고요. 아빠가 변호사고 엄마가 판사래요. 내 옆에 앉았던 애는 아무런 준비도 해오지 않고 수업 등록도 못했지만 블룸버그에 다니는 해맑은 친구였어요. 제약회사 다니는 사람, 현직교사인 사람, 법학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는데도 영국 변호사로 인정되지 않아 다시 GDL을 하는 사람, 러시아 한인 3, 40살도 넘은 외국인 할아버지까지.... 배경이 가지각색이었어요. 이들 틈에서 공부하다 보면 정말 재미있는 일이 많이 벌어질 것 같아요.

 

앞으로의 수업이 기대돼요. 2년만 성실하게 코스 밟으면 나도 나름 Legal Mind를 갖게 되는 거 아니겠어요. 물론 이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수단으로 쓰여지겠지만.... 지금처럼 첫 마음을 가지고 2년 동안 열심히 하면 되겠지요.

 

첫 마음 하니 갑자기 생각나는 시가 있어요.

 

 

첫 마음 -정채봉-

 

1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
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 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행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글은 좀 횡설수설 했지만 그래도 요점은 뭔지 알겠죠? 엄마 아빠, 그리고 한결, 알라뷰 ^^


 

딸 아이에게서 받은 이 편지를 읽고, 단 두 줄의 답장을 보냈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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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으로, 그 후유증으로 내 마음은 다소 격정적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걱정이 커져서 그런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서민들에 대한 부담을 늘리면서 오히려 부자들에게는 세금혜택을 주고 있고, 용산참사를 아직도 방치하고 있고, 추모객들의 행렬을 봉쇄하려 하고, 보수층을 대변한다는 학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횡설수설하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죄인으로 둔갑하는 이 세상의 불의와 부패에 대해 저항(protest)해야 할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교회 내에 모여서 가진 자들을 위한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사정기관을 포함한 권력의 핵심부에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지만, 그들의 신앙과 생활은 이원화되어 있어 자기들끼리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하여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딸이 이메일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딸의 편지를 읽으면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딸은 지금 런던의 유럽계 투자은행에서 Business Analyst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번 금융위기에도 짤리지 않고 꿋꿋하게 붙어 있는 것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지만, 투자은행의 장래는 그리 밝지 않아 젊은 나이에 다른 업계로 옮기는 것이 어떤지 생각해 보도록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돈 놓고 돈 먹는" 투자은행의 사업모델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딸이 그런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도 그렇게 마음이 놓이는 것은 이닙니다.

아무튼 딸 자식은, 키울 때도 귀엽고 애교가 있어서 나를 늘 즐겁게 했는데, 다 커서도 여전히 부모를 기쁘게 하는군요.

엄마 아빠

노무현 전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나서 아빠의 마음이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아서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열흘간 휴가를 내서 뉴욕에 다녀 왔어요. 작은 고모랑 친구들도 만나보고, 뉴욕오피스에도 들를 겸해서 휴가를 냈어요. 아빠는 뉴욕에 가면 겁난다고 하셨잖아요. 나도 4년전에 처음 갔을 때는 그랬는데, 이번 여행에서 보니까 괜찮더라구요.

노란 택시, 길거리의 쓰레기들, 현란한 형광판, <브로드웨이 쇼>, <코요테 어글리>에 나오는 흥미진진한 클럽들, 게이 커플들, 건물 벽에 그려진 현란한 그림들, 센트럴 파크에서의 소풍, <섹스앤더시티>에 나오는 뉴욕의 멋진 길거리들.... 뉴욕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직접 확인하면서 뉴욕 사람들과 어울렸어요. 그러면서 나도 잠시 뉴요커가 됐었던 여행이었어요.

 

4년 전에 동생과 함께 왔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 때는 그저 이곳이 신기하기만 느껴졌었는데 이번에 와서 여행했을 때는 나도 여기 사는 뉴요커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 뉴욕이 그렇게 멋있는 도시는 아니지만, (쓰레기와 먼지와 무서운 건물들, 그리고 시끄러운 사람들 천지인 도시지만) 나름대로의 매력이 느껴지는 도시인 것 같아요. 런던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도시예요. 런던이 여성적이라면 뉴욕은 좀 더 남성적인 느낌이 있어요.

 

런던은 아담하고 예쁜 집들, 특히 빅토리안 양식의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불꾸불한 거리를 따라 지어져 있다면, 뉴욕은 목이 아플 정도로 위를 쳐다봐야만 꼭대기 층이 겨우 보이는 건물들이 바둑판처럼 짜인 길가에 서 있어요.(아무리 쳐다봐도 꼭대기층이 보이지 않기도 함

런던의 길거리는 구불거려서 한 코너를 지난 다음에 뭐가 펼쳐질지 잘 몰라 새로운 길을 걷게 되면 약간 설레고, 기대되는 맛이 있는데, 뉴욕 맨하탄은 전체가 아주 시원하게 도로가 뚫려 있어서 길을 잃어도 헤맬 필요가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요.

 

런던에는 냄새 나는 검은 쓰레기 봉투를 길가에서 눈 씻고 찾아도 볼 수가 없는데 (검은 색 쓰레기봉투에 테러폭탄이 있을 수도 있어서 쓰레기봉투는 다 투명함), 맨하탄에는 쓰레기 국물이랑 검은 색 쓰레기 봉투가 전시장처럼 길가 중간에 버티고 있는 걸 보고 뉴욕은 더러운 도시라는 인식이 박혔었죠..

 

런던과 뉴욕은 또한 규모면에서도 다른 것 같아요. 센트럴 파크는 왜 그렇게 큰지, 센트럴 파크 한 가운데 서있노라면 아마도 무슨 숲 속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런던은 그 크다는 Hyde Park도 한 바퀴 걸으려고 맘 먹으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데...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는 양을 봐도 뉴욕은 평균적인 1인분 기준이 배고픈 성인 남자가 먹어야 할 양인 것 같아요. 음료수는 무슨 파인트잔 같은 데에 주질 않나, 사람들이 너무 무식할 정도로 투박하고, 낭비가 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런던과 달리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 같아요. 멀쩡하게 잘 생긴 남자 둘이 손잡고 팔짱 끼고 다니는 걸 목격한 게 한두 번이 아니고, 누가 뭘 입고 다니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요.  

 

나는 적응력이 빠른지라, 하루는 친구가 교회에서 받은 풍선다발을 들고 뉴욕 한복판을 아주 자신감 있게 배회하고 다녔어요. 미국이 유럽보다 이혼율이 높은 것도 아마 남 신경 안 쓰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미국의 문화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유럽은 그와 달리 이혼율이 낮은 대신에 암묵적으로 부인이나 남편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파트너를 두는 경우도 많이 있잖아요. 암튼 문화의 차이를 영미권 안에서 발견하는 것도 재미 있는 일이네요.

 

또 다른 아주 명백한 차이는 발음이겠죠. 미국인 친구는 내가 영국식 영어를 하면 멋있다고 하는데, 가끔은 뉴요커들이 나를 못 알아듣는 다는 사실! 늘 영국에서 했듯이, 식사를 다하고 "Can I have the bill please?" 이랬다가 "Sorry, what?"이라는 대답을 종종 들었어요. 미국에서는 check이라고 해야 하는 걸 텍사스에 있을 때도 신기하게 여겼는데 다시 한번 웃고 지나갈 일이 생겼었지요

 

이렇게 남성미의 매력이 풀풀 풍기는 뉴욕이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를 한가지 꼽자면, 아마도 쇼핑이 아닌가 싶네요. 뉴욕은 쇼핑의 천국. 우리 회사 사무실의 여자들이 뉴욕에 주말 끼고 갔다 오는 이유 중에 한가지가 쇼핑이예요. 나는 그다지 쇼핑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아이템들을 영국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리바이스 청바지를 $38, Armani Exchange에서 벨트랑 티셔츠를 $25주고 샀다는 사실!) 이 맛에 뉴욕 오는 거야... 막 이러면서... ㅋㅋㅋ

 

뉴욕이라는 도시를 남자에 비유했는데 막상 뉴욕에는 남자가 없다는 사실! 내 친구들 얘기까지 종합해 보면 뉴욕에는 한국 남자들이 별로 없다였어요.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가보니까 직접 내 눈으로 확인했는데 진짜 그렇더라고요. 뉴욕에는 유명한 음대와 미대, 그리고 패션 디자인 학교가 많아서 그런지, 멋있는 여자애들은 넘쳐나는데, 남자들 중에서 괜찮은 사람들은 다 유부남이고... 괜찮은 남자가 뉴욕가면 대박 난다는 말도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가네요

 

내가 런던에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친구가 그러더라고요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어서 그렇게 얘기 한 줄 알았더니, 정말 그런가 봐요.

 

내 뉴욕 여행 이야기가 재미있었나요?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도 보너스로 감상하세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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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아이들을 어느 정도 다 키워놓으니까 이런 재미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 아내와 둘이서 사는 일에 어느 정도 적응되어 갑니다. 오늘도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는지 아들과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들은 지금 군복무중이라서 가끔 외박과 휴가를 나올 때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주말이라서 전화를 했습니다. 금년 7월에 제대입니다.

 

휴가중인 아들의 모습

그 동안 군 복무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겁니다. 다들 군대 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데, 그래도 장교나 카투사나 통역병으로 빠지지 않고 사병으로 지원해서 갔습니다. 군대는 국방의 의무보다는 남자를 만들어주는 좋은 훈련장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들도 군에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이등병 시절 첫 휴가를 나와서 쓰레기차 뒤에서 떨어지는 국물을 맞으면서 청소했던 얘기, 생활관 정리와 청소 얘기, 그때는 온통 청소 얘기였습니다. 군대에서 쫄병들은 청소만 시키는 모양입니다. 그 다음에는 선임병들이 갈구는 얘기, 군화 닦는 얘기, 축구 얘기, 축구하다 다친 얘기, 총각 중대장 리더십 얘기, 싸우다 영창 간 동료들 얘기, 집안에 있는 세면기 수도꼭지 위에 물방울이 떨어진 것을 보고 즉시 닦아낸 얘기(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을 법한 일인데 군대에서 하도 닦는 훈련이 돼서 집에 와서도 습관적으로 닦으려고 했다는 뜻), 야간 근무 얘기, 끝없이 이어지는 군대 얘기를 아내와 나는 열심히 들어주었습니다. 흥미진진하고, 나름대로 재미있는 얘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병장이 된데다 생활관에서 고참이 된 모양입니다. 전화를 해도 사무적으로 할 뿐, 별로 군대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군대가 재미없어진 모양입니다. 외박이나 휴가를 나와도 군대얘기는 별로 없습니다.



 

군복무 성실히 수행해서 우리나라 국방을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고 습관적인 충고를 하고는 아들과 전화를 끊었는데, 이번에는 런던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딸 아이 말로는 오늘 314일이 우리나라에선 White Day라네요. 엄마 아빠가 심심할까봐 미리 준비해 둔 게 있답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선물을 주고 받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선물인지 뇌물인지가 구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무슨 발렌타인 데이나 빼빼로 데이와 같은 상술에 놀아나는 것은 더욱 좋아하지 않는데, 딸이 전화에서 보물찾기를 하라고 해서, 따라 했습니다.

내가 번역한 책 『His Needs Her Needs』 사이에 카드를 적어두고 갔답니다. 그리고는 카드에 적힌 대로 따라가보니 책장의 아프리카 인형 뒤에 사탕과 초콜릿을 숨겨놓았습니다.

 
카드에는 요한일서 4 18절이 있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같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 안에 온전케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탕과 초콜릿에는 다음과 같은 경구가 적혀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과업 중에 가장 어려운 마지막 시험이다. 다른 모든 일은 그 준비작업에 불과하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친척 결혼식에 참석한 딸

내 삶이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준비해왔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릴케의 말대로 사랑이 우리 삶의 완성입니다. 남은 기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더욱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딸은 잔재미가 있고, 아들은 굵은 재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얘긴데, 젊은 부부들은 가능하다면 아이들을 많이 낳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는 삶의 두려움 때문에 둘 밖에 못 낳았는데, 요즘 후회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일곱은 낳았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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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아침에 일어나니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군요. 이럴 땐, 바하 또는 모짜르트를 틀어놓고 커피향을 실내에 가득 채우면 아주 제격이지요. 그러면 멀리 떠난 아이들이 더욱 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국이야기라기보다는 딸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나에게 영국은 딸 아이 때문에 인연이 된 나라입니다. 딸 아이가 영국으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취직을 하는 바람에 영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독일 유학시절에 유럽의 대부분 나라를 여행했음에도 영국은 가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왠지 영미계통에 대한 약간의 혐오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영미계 국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미계통의 사람들은 대개 일은 하지 않으면서 돈 계산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힘의 세니까 겉으로는 존경하는 척 하지만, 특히 미국인의 문화적 저질성에 대해 독일인들은 혀를 내두릅니다. 그래서 안 좋은 것은 다 미국애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긴 독일도 아직 우리나라처럼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여서, 군사지도에는 독일이 미군 점령지로 표시되어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미국에 대한 감정이 좋을리는 없겠지요.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영국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었습니다. 딸 아이가 대학을 마치고 2007년 여름에 스위스계 투자은행인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의 런던오피스에 Business Analyst로 취직해서 일하다가 지난해 말 휴가 겸 노동비자취득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돌아갔습니다.

 

비자를 기다리는 동안 영국경제가 워낙 안 좋아서 외국인 취업을 적극 억제하는 정책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비자가 선뜻 나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노동허가비자가 나왔다고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계뿐만 아니라 유럽계 투자은행들도 만신창이가 돼서 모두들 수천 명씩 구조조정 하는 마당에, 회사에서 변호사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비자발급을 종용했다니,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딸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러면 지금까지 딸이 노동비자도 없이 어떤 상태로 일했냐고? 영국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적어도 1년간은 노동비자 없이 취업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그것은 외국인 졸업생 중에서 소위 high skilled people을 영국 내로 유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지나서 이제는 정식노동비자를 얻어야 합니다. 한국에 와서는 재택근무를 했습니다. 서울에서 저녁 6시에 로그인해서 새벽 3시까지 런던의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온라인으로 일 처리를 해야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당초 대략 2주 정도, 아무리 늦어도 한 달 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예상과 달리 두 달도 더 걸린 셈이다. 그렇게 길게 걸린 이유는 아마도 그간에 영국에서 했던 딸 아이의 행적을 일일이 조사하느라 그랬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내와 나는 딸 덕분에 여름휴가를 2년 연속 영국에서 보냈습니다. <영국여행 이야기>시리즈는 그 연유로 쓰게 되었습니다. 딸 아이가 런던에서 일하면서 국제금융을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가족이 떨어져 살면 늘 그리움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잘 먹는지, 운동과 휴식은 충분한지 늘 걱정이죠. 그리고 투자은행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도 불분명해서 가급적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건 완전히 내 생각일 뿐이고

 

딸 아이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나의 삶이 아내와 결혼 후에도 줄곧 공부하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아이들을 잘 보살피지도 못했는데, 벌써 훌쩍 커버렸습니다. 지들 맘대로 커버린 것이죠.

영국으로 떠나는 날 공항에 데려다 주면서 카메라를 들고 갔습니다. 몇 장 찍었습니다. 딸 아이가 보면 아주 싫어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주 예쁘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아이들이 더욱 보고 싶어지는군요.

 

나는 사진 찍는 일에는 서투릅니다. 잘 찍지 못하고, 어떻게 찍는 줄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완전 자동모드로 찍습니다. 내겐 그게 편하기 때문이지요.

한시간 일찍 도착해 짐을 부치고 던킨 도너츠에서 도너츠와 콜라를 마셨습니다. 어제 파마를 해서 추레하니 찍지 말라고 난리를 쳤는데, 찍사 맘이라고 그냥 찍었습니다.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인데 가까이서는 절대 찍지 말라고 하는 걸 냅다 찍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일해라. 몸을 튼튼히 해라" 정도였습니다.


평소에 생머리던 딸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 출국 하루 전에 머리를 했습니다.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딸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습니다.


출국장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짐을 부쳤는데도 보따리가 많군요. 내가 들어다 주고 싶은데... 출국장으로 들어가면서 작별인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딸이 편지를 써놓고 갔습니다. 쓰다 남은 한국돈도 남겨놓았습니다. 열어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삶에 있어 최상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군요. 그리고는 엄마 아빠가 건강에 시간투자하는 것 잊지 마시고 항상 좋은 생각과 재미있는 일들로 '뇌'를 꽉 채우라고 충고하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는군요. 내 고향 강원도의 극심한 겨울 가뭄이 이 비로 다 해소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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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