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딸의 편지를 올립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죠. 하지만, 나는 먹고사느라 아이들이 자랄 때 제대로 챙기지 못했어요. 이건 정말이거든요. 이런 말을 어느 사석에서 한 적이 있는데, 어떤 분이 대뜸 아주 잘한 일이라는군요. 한국에서 아이들이 잘 되려면,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한답니다. 할아버지의 재력도 없고, 엄마의 정보력은 더구나 없는데다 아빠의 무관심 속에서 아이들이 방치된 채 컸다고 사실대로 고백했습니다. 그랬더니 나더러 진짜 짜증난다고 하더군요. 애들한테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스스로 자기들 인생을 헤쳐나간다고 하니까 말이죠.

초등학교 때부터 책가방 싸주고, 학원시간표 짜주고, 내신성적 관리해주는 환경이 우리나라의 교육풍토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만약 나중에 중요한 지위에 오르면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사육되는 아이들이 과연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딸의 여자친구는 싱가포르대학을 졸업하고 런던의 Clifford Chance라는 법률회사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는 중국계입니다. 친구가 특히 한국 노래와 드라마 좋아한답니다. 한국적인 것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중국어와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입니다. 애가 회사에 휴가를 받아 달간 한국에서 보내고 싶다고 하는데, 딸은 애를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낼 있도록 하면 어떻겠냐고 물어왔습니다. 나와 아들은 좋다고 했는데, 아내는 떨떠름해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애를 며칠이면 몰라도 달씩이나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생각을 하니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아내를 설득했죠. 우리 사는 모습 그대로 함께 살면 된다, 우리가 먹는 것에 숟가락 젓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된다, 라면 먹을 때 같이 먹고, 마트의 푸드코트에서 외식할 때 같이 먹으면 된다한 달간 먹여주고 재워주고 구경시켜 주면 주싱가포르 한국대사도 못하는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로아내는 못이기는 척하고 싱가포르 아이의 방문을 허락했죠. 그래서 엄마에게 고맙다고 어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일년 전쯤에 보내 온 편지는 로스쿨에 들어간다는 얘기였는데, 이제는 법률공부에 제법 재미를 들였나 봅니다. 점점 법률가처럼 생각하느라 조금은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Thanks Mom. Really appreciate your generosity! Let me revert back to you once I have confirmation from my friend how she wants to proceed.

Are you being serious of moving to Canada for 6 months? What a fantastic opportunity!

I just finished my tutorials and am in the computer lab at school! School was fun as I studied a bit yesterday. If you do not cover the material and turn up in tutorial, it is very difficult to follow what the tutor is talking about but if you do your work, then it is very pleasant! I am actually doing the bare minimum at the moment and getting the feel what Criminal Law, Equity and Trust, EU Law and Land law is about. The topics I am learning (apart from Criminal Law) are actually very relevant to my day to day life. There are a lot of terminologies used in EU Law & Equity and Trust that appear at work which is why it motivates me to study. Land Law comes into picture as I have been actively searching for a flat! Mom - I now know what the difference of freehold and leasehold is - which is a question that you have asked me last year!!! Criminal law is not relevant to my daily life (it would be a problem if is was!!) but from a perspective where I can protect my rights, I think it is very useful. Obviously, my research essay will lead me to dig deep in the area of Company Law in the UK - Directors Duty in particular. Yesterday, I was thinking (haven't conveyed to action yet!) about writing and publishing an article about Hedge Fund Industry from a legal perspective. European countries have been working together to create a UCITS (Undertakings for Collective Investment in Transferable Securities) platform (which is an investment vehicle to aim to allow collective investment schemes to operate freely throughout the EU on the basis of a single authorisation from one member state). As the regulation is updated regularly and this is something that is at the intersection between finance (fund linked products) and legal, I should attempt to do some research.

Recently I have realised that I am looking a lot of things around me from a legal perspective now when it comes to drafting documents, talking to friends etc... continuously worried about whether what I am saying is specific enough... I am becoming very analytic!!!

From next week at work, I will be incredibly busy. I need to go into work tomorrow to prepare a lot of drafts so that Legal can review them next week. Besides, Louise will be out of the office next week, which means that I have to cover her.

Later today, I will be watching a movie with Kiran about the founder of the Facebook... called Social Networking...which I think it will be interesting...

This movie better be good as this is my treat for the forthcoming horrible week!

 Hope you are all well and enjoying the weekend!!


그래서 이렇게 답변을 써 보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헤지펀드 산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이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네가 이런 부분에 대해 연구하여 글을 써보려고 한다니 기특하구나. 너의 하는 일을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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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내가 요즘 새로운 일에 집중하느라 블로그에 신경을 쓸 새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 블로그의 새로운 포스팅을 기다리는 분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는데, 마침 런던에서 일하고 있는 딸이 편지를 보내왔네요.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지켜 본 바로는 딸과 아들이 매우 다른 성격적 특성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인문학적 소양과 감수성이 풍부합니다. 유학 중에 자신이 쓴 에세이를 가끔 보내옵니다. 나는 그 에세이를 읽고 감동하곤 했습니다. 영어로 쓴 문장이 그렇게 유려할 수가 없었어요. 글에서 영혼의 울림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딸은 문장력보다는 수학적 재능과 비즈니스 감각이 더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의 전공도 경영학(business)이었죠. 졸업한 후에도 런던에 있는 투자은행(Credit Suisse)의 파생상품을 다루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로스쿨(law school)을 가겠다는 겁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모든 금융상품의 거래에는 반드시 변호사들의 사전 허락이 필요하답니다. 그들이 거래조건을 일일이 따져서 법률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판단이 서야 거래가 성사되죠. 그래서 딸 아이 주변에는 여러 변호사들이 판을 치고 있고, 그 틈바구니에서 일하다 보니 변호사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별 것도 아닌 일을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자들이 소위 곤조를 부리는 사건도 경험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아니꼽고 더러운 꼴을 몇 차례 겪었겠죠. 그래서 변호사 자격을 따야겠다고 맘먹은 모양입니다. 지난 여름 휴가 때 함께 여행하면서 몇 군데 로스쿨에 합격을 해 놓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해 고민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덧, 학교를 결정하고 회사와 협상해서 온갖 지원을 받아내 로스쿨에 등록을 한 모양입니다.

 

주중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에 다니는 코스여서 곱절은 힘든 과정이라고 합니다. 좋은 남자 만나서 빨리 시집가는 게 효도하는 거라는 엄마의 강조는 뒷전으로 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향해 묵묵히 전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딸의 심경을 담은 편지를 보내 왔길래 이 블로그를 사랑하는 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딸이 써 보낸 그대로 옮겼습니다.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희망과 성취를 함께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엄마 그리고 아빠 그리고 한결,

 

예전에 친구들이랑 돌아가면서 쓰는 다이어리가 유행이었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더라고요.

 

...
좋아하는 운동: 수영
좋아하는 동물:
좋아하는 연예인: 송승헌 오라버니
장래희망: 프로골퍼, 모델 아니면 .....
...

 

이게 언제 쓴 글인지 아세요? 세상에! 깜짝 놀랐어요. 초등학교랑 중학교 다닐 때 뭘 안다고 국제변호사라고 썼을까? 소름이 돋아오면서, 역시 어딘가에 적어놓으면 꿈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가 싶어요. (적어도 지금은 꿈을 이루기 위한 현재진행형이지만). 

 

프로골퍼나 모델, 국제변호사는 너무나 다른 분야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 아빠가 했던 말이 내 장래희망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아빠가 아마도 그 땐 골프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인 것 같아요. 아빠는 내가 골프채를 휘두르면 무조건 잘한다고 했고, 스윙이 시원하다고 하면서 칭찬을 해 주었어요. 나는 다리가 길어서 모델 해야 된다고 했던 말도 정말로 진지하게 들었나 봐요 ㅋㅋ. 모델로 빠지지 않길 천만다행이지요. 남들한테 폐 끼치는 일은 적어도 하지 말아야 하니까 ㅎㅎ.

 

내 기억에는, 엄마 아빠는 내가 남의 일에 참견 잘한다고 해서 변호사해야 된다고 했던 것 같아요어렸을 때 남의 비즈니스에 참견하는 것을 야단치지 않고, 변호사가 될 아이라고 칭찬해 줘서 여기까지 왔나 싶어요. ^^  

 

지금 생각해보니 2009 9 26일은 내 인생을 길게 놓고 볼 때 의미 있는 하루가 될 것 같아요. 로스쿨에 등록하고 처음 등교했거든요. 학교에서 줄 책들이 많을 것을 대비해서 비행기 기내용 가방을 가져갔어요.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로스쿨에 진학하게 되었는지도 참 신기하고, 내가 힘겹게 진로를 위해 싸우지 않아도 이런 기회가 내 앞에 놓이게 되는지그것도 회사에서 휴가와 학비를 받아가면서 말이예요. 참 감사할 일이죠.

 

공부하다 보면 직장에서는 정말 찬밥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데,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궂은 일 해가면서 어쩌면 회사에서 내 능력이 이용 당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젠 생각을 고쳐먹고, 마음을 활짝 열어 모든 사람들의 욕과 비난을 다 짊어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양인으로서, 여자로서그리고 영어가 외국어인 한국사람으로서 회사에서 인정받고 출세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소수와 약한 자의 위치에 있는 게 어떤 건지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는 단지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보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회, 편견 없이 자기의 능력을 맘껏 개발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나의 욕심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삶은 정말 멋질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미래는 교육밖에 없고,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해외 유학이라는 흔치 않은 기회가 주어진 나에게 사명이 무엇인지 요새 생각해보게 됐어요. 아빠 말대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에 절대 포기하지 않고, 힘내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할꺼예요. 사실 오늘도 강의 듣고, 읽을 법학 서적이 쌓여있지만, 이 글을 쓰는 나는 불끈불끈 힘이 나요. 나는 돈보다도 정말 나에게 주어진 능력 (그게 뭐가 됐든)을 최대한 발휘해서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꺼예요.

 

아빠가 블로그를 잠시 쉬는 사이 박원순 변호사님의 블로그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자기를 social designer라고 칭하며 희망이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느꼈어요. 정부기관이 개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소식을 듣고, 사실 우리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안타까웠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변호사님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닌가 싶던데요. 오히려 인지도가 더 높아지는 결과로 나타났으니까. 사실 박원순 변호사님의 글을 읽다가, 자기가 스크랩한 것을 모아두면, 나중에 가서 의미 있는 글들을 많이 발견한다고 해서 나도 자료더미 속에 있던 수첩을 하나하나 꺼내서 만지작만지작 거리다 나온 게 초중 때 장래희망이 적힌 글이었어요. ㅋㅋ

 

특히 법학 공부하면서 느끼는 건데, 법학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평등한 사회, 정의가 살아있는 걸 보고 싶어하는 애들이 많이 온 것 같더라고요. 로스쿨 첫날은 좀 외로웠어요. 줄 서서 수업 등록하고, 책 받고,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무하고도 얘기도 안하고, 안티 쏘샬마냥 헤드폰 끼고 음악만 듣고 있었어요. 하지만 첫 수업 시간에 인상이 확 바뀌었어요. 학교의 튜터가 매우 친절했거든요. 더구나 다양한 사람들이 수업을 듣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파트타임이어서 그런지 주위에 있는 친구들 역시 재미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내 앞에 있었던 애는 KPMG라는 회계법인에 다니는 23살 정도 된 남자애인데, 왜 법을 공부하는지는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만 집안 내력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고백하더라고요. 아빠가 변호사고 엄마가 판사래요. 내 옆에 앉았던 애는 아무런 준비도 해오지 않고 수업 등록도 못했지만 블룸버그에 다니는 해맑은 친구였어요. 제약회사 다니는 사람, 현직교사인 사람, 법학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는데도 영국 변호사로 인정되지 않아 다시 GDL을 하는 사람, 러시아 한인 3, 40살도 넘은 외국인 할아버지까지.... 배경이 가지각색이었어요. 이들 틈에서 공부하다 보면 정말 재미있는 일이 많이 벌어질 것 같아요.

 

앞으로의 수업이 기대돼요. 2년만 성실하게 코스 밟으면 나도 나름 Legal Mind를 갖게 되는 거 아니겠어요. 물론 이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수단으로 쓰여지겠지만.... 지금처럼 첫 마음을 가지고 2년 동안 열심히 하면 되겠지요.

 

첫 마음 하니 갑자기 생각나는 시가 있어요.

 

 

첫 마음 -정채봉-

 

1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
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 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행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글은 좀 횡설수설 했지만 그래도 요점은 뭔지 알겠죠? 엄마 아빠, 그리고 한결, 알라뷰 ^^


 

딸 아이에게서 받은 이 편지를 읽고, 단 두 줄의 답장을 보냈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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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다음 날, 그러니까 2009년 8월 7일 투자은행인 Credit Suisse에 다니는 딸이 아내와 나를 초대해 주었습니다. 매년 겉에서 건물만 봤지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해서 늘 궁금했습니다. 딸이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일하기 때문에 사무실을 직접 구경시켜 줄 수는 없지만, 방문객이 볼 수 있는 곳을 안내하고 점심도 구내식당에서 같이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심약속이 이미 잡혀 있어서 회사만 조금 보기로 약속하고 오전 10시까지 찾아 갔습니다. 남의 집에 가면 항상 조심스럽듯이 남의 사무공간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로비에 들어섰는데, 딸이 이곳 저곳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미국계 투자은행의 건물들은 주로 유리건물로 되어 있어서 경쾌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유럽계 기관들은 건물의 외벽이 돌로 되어 있어 그런지 육중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Credit Suisse London Office


우선 짐(gym)과 수영장을 봤습니다. 부대시설이 직원들 복지를 위해 중요하니까요. 일하는 시간인데도 간간이 운동도 하고 수영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원들은 짐과 수영장 같은 시설을 이용할만큼 시간이 한가롭지 않답니다. 그런 부대 시설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건물 관리하는 사람들이라는 불만이 있답니다. 어쨌거나 내가 일했던 한국은행의 시설보다 더 좋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일개 투자은행에 불과한 기관이 한 나라의 통화관리의 상징인 중앙은행의 시설보다 더 좋게 꾸며 놓은 것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 안에는 우체국을 비롯한 편의시설이 모두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일상의 일을 위해 건물밖으로 나갈 일은 없다는군요.

 

수영장에는 25m 레인이 세 개 있습니다.


몸을 데우는 보조 풀


짐(gym)




7층에 있는 식당에는 11시쯤 들렀는데, 온갖 음식이 차려지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스시까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잘 차려진 음식들도 정작 직원들은 일하느라 식당에 들러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사무실에서 간편한 음식으로 때우기 일수랍니다. 

직원 식당. 스시가 마련되고 있습니다요!!!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먹을 것이 풍성한 것을 보면 그렇게 부럽습니다. 내가 젊은 시절 처음으로 미국 출장을 갔을 때, 식당에서 주는 음식의 양이 푸짐해서 좋아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미국인들을 비만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가난했던 시절의 배고픔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몰라도 풍성한 먹거리에 대한 탐욕이 나에게는 아직도 남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식당에서는 템즈강과 North Dock뿐만 아니라 South Dock까지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한국은행 입행 후 1980년대 중반에 여의도의 유공빌딩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아스팔트로 뒤덮힌 삭막한 516광장과 콘크리트 빌딩 숲만 있었습니다.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한강을 이용하여 수변공원을 조성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간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태어나기까지 뱃속의 물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물과 가까이 있다는 것이 감정을 아주 평온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여의도는 한강물을 끌어다 수변화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한강과 접한 용산의 철도청 부지를 개발한다니, 이번에는 수변화하는 작업을 하면 어떨까합니다. 높은 건물만 하늘로 올릴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른 쪽에 흐르는 강이 템즈강입니다. 나는 이 경치를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Cabot Square


직원식당(7층)에서 바라 본 North Dock


Canary Wharf Tower. 가운데 둥그런 지붕은 DLR(Docklands Light Railway, 경전철) 정거장입니다. 이 경전철은 런던의 중심부 시티까지 약15분에 연결됩니다.


North Dock


어쨌거나 우리는 방문자들이 직원을 만나는 장소인 게스트룸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도 물이며 각종 음료와 읽을 거리를 충분히 비치해 두었습니다. 딸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커피를 만들어 먹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데서 내려 먹는 커피향은 좋아합니다.

방문객 응접실. 이런 응접실이 여러 개 있었는데, 우리는 동양화의 느낌이 나는 그림이 걸린 방으로 안내 되었습니다.


아내가 커피향에 취한 듯, 커피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딸이 아내에게 커피를 만들어 먹는 기계를 알려주고 있죠.



우리는 미리 약속이 있어서 점심을 같이 하진 못했지만 딸에게서 칙사 대접을 받았습니다.

직원들의 기도실과 24시간 개방되는 도서실, 은행, 우체국, 편의점 등 각종 부대시설을 둘러보고 이제 좀 쉬고 있습니다.

12시가 돼서 사무실을 빠져 나와야 했습니다. 밖에서 점심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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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84()~825() 3주간 출장 겸 휴가를 다녀오려고 합니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휴가로 영국엘 다녀왔는데, 금년에도 그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런던에서 일하는 딸아이가 초대해서 매년 가게 된 것이지요. 자식들이 떨어져 살면, 부모로서는 늘 보고 싶지요. 함께 사는 게 가족으로서는 제일 좋은데,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서 가끔 만나 그 동안 못다한 얘기도 하고, 함께 여행하면서 서로의 애정과 신뢰를 확인합니다. 가끔 전화와 메일로 사는 형편과 사정을 확인하지만, 눈으로 직접 보는 것보다는 못하지요. 아들은 최근에 제대하는 바람에 군생활모드에서 공부모드로 바꾸기 위해 이번 여름휴가에서 빠졌습니다.

 

휴가면 휴가지 왜 출장이라는 말을 곁다리로 붙였냐구요? 첫째 이유는, 우리나라 형편에 3주씩 휴가를 가는 것은 아직 부르주아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부르주아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둘째 이유는, 실제로 몇몇 인사들에 대한 인터뷰를 기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기프로젝트이기도 한데,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삶을 알아보고 어떤 역량(competency)이 크게 작용하는지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출장이라는 말을 살짝 끼워 넣었습니다. 대부분은 그냥 노는 것인데, 미안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이 기간 중에 88일(토)부터 18일(화)까지는 에딘버러를 비롯한 스코틀랜드를 여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처남 부부, 그러니까 아내의 큰 오빠부부와 함께 갑니다. 큰 처남은 건축학과 교수로 근무하다 작년에 정년퇴직한 분인데, 특히 스코틀랜드를 보고 싶어 하시기 때문에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작년에도 잠시 영국에 들러 함께 도버, 스톤헨지, 세익스피어 생가 등을 여행했는데, 금년에도 역시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지금 "무쟈게"(윤여임 선생님으로부터 새롭게 배운 단어) 좋아하고 있습니다. 좋은 건축물을 만났을 때, 문외한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해 줍니다. 그래서 여행중에 건축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작년 여름 휴가까지만 해도 블로그를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꾸지 못했기 때문에, 사진 찍는 것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못해서 블로그에 올린 여행기가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블로그를 위해서라도 사진을 좀 찍어볼까 합니다. 역시 자동모드로 말입니다.
여행 중에 여행기를 계속 올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p.s. “인재전쟁에 관한 인터뷰 내용은 시리즈로 계속 발행하도록 예약을 걸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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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오늘은 날씨가 흐리군요. 천둥번개도 치고 비바람이 칩니다. 이럴 땐 모차르트 음악이 제격입니다. 음악을 들으면 여행지가 떠오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영국여행 이야기나 계속해 보겠습니다.

2008
7월 31일 런던에 도착해서 보름 이상을 보냈으니, 어느 정도 시차도 적응되었습니다. 딸은 휴가를 끝내고 사무실에 복귀했습니다. 오랜만에 아내와 둘이 아파트에 남았습니다. 나는 책을 보고 자료도 정리할 겸 오늘은 그냥 쉬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그럴 수 없답니다. 아까운 휴가시간 중 하루를 집에서 쉰다는 것은 아내에게는 정말 아쉬운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런던 시내로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아무 계획도 없이

 

여왕이 거닐었다는 산책로에 가면 혹시나 여왕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진짜 여왕이 걷기나 했는지, 그냥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있을 것 같기도 해서 무작정 걷기로 했습니다.


이 동판에서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겠지요. 굵은 검은 선이 주빌리 산책로입니다. 1977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은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런던 시내와 역사적 건물들을 지나가는 산책로를 만들었답니다. 총 길이 14마일(22.4km)입니다.

퀸즈 워크는 람베쓰 브릿지에서 타워 브릿지까지의 템즈강 남쪽 강변 산책로를 말합니다. 이 산책로는  그림에서 보듯이 강북에 있는 타워 오브 런던, 영란은행, 세인트 폴 대성당, 대영박물관, 코벤트 가든, 트라팔가 광장, 버킹검 궁전, 빅벤 등으로 이어집니다. 다시 강남의 런던 아이, 테이트 모던, 서덕 대성당, 시청사 등으로 이어지는 여왕의 산책로를 이으면 장장 22Km나 되는 거리입니다. 이것을 주빌리 산책로(Jubilee Walkway)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천천히 걸었습니다. 보이는 것만 보면서...

우리는 지하철 카나리 워프역을 떠나 시내에 있는 써덕역에서 내릴 참입니다.

써덕역에서 내려 템즈강쪽으로 가면 던전(London Dungeon)을 만납니다.

여름철이라 그런지 젊은이들은 던전에 들어가려고 줄을 섰네요.

거리의 예술가들

초기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던 아케이드, 소비하라고 유혹하죠. 발터 벤야민은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는 양식으로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책을 미완성으로 남겼고, 보들레르는 자본의 참을 수 없는 유혹을 "악의 꽃"이라고 썼던가요.

자본주의의 유혹에 견뎌낼 인간은 그리 많지 않지요.

런던의 강북 시티지역의 상징인 30세인트 메리 액스 빌딩. 영국인은 "거킨"(ghirkin, 오이지)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총알모양의 건물이라서 "불렛"(bullet)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가 런던에는 여름 한 철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퀸즈 워크(Queen's Walk)에 있습니다.

여왕의 산책길

무시무시한 군함이 아름다운 템즈강에 떠 있습니다. 더군다나 타워 브릿지 앞에 말이죠.

한 때, 세계를 제패했던 해군력의 위용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템즈강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이 저 군함입니다. 아무리 봐도 으시시 합니다.

써덕 대성당(Southwark Cathedral)입니다. '사우스워크'가 아니고 왜 '써덕'이냐구요? 나도 모릅니다. 영국사람들은 사우스워크라고 하면 못알아 듣고, 써덕이라고 해야 알아들어요. 발음하는 걸 보면 영국물을 좀 먹은 사람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답니다.

성당안이 멋있죠.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관리인이 와서 돈내는 사람만 찍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 성당 사진 찍는데 돈 받는 곳은 처음 봤습니다.

성당이 치사하게 굴어서, 우리는 보로 마켓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시장은 언제나 생기가 돌죠.

시장을 지나니까 포도주 도매상이 나타났습니다. 포도주!!! 크....

유럽 전역에서 들어오는 포도주를 도매로 팝니다. 몇 천원짜리에서부터 몇 백만원짜리까지...

템즈강 남쪽에 있는 아파트 모양이 재미있습니다.

세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입니다. 들어가서 관림은 못하고 우리는 그냥 걸었습니다.

이제 겨우 밀레니엄 브릿지에 도착했습니다.

밀레니엄 브릿지 남단은 "테이트 모던"이라는 현대미술관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술애호가들에게는 정말 죽여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나는...

헨리 테이트(Hery Tate, 1819~1899)는 설탕을 만들어 팔아서 엄청난 부를 쌓았습니다. 자선단체에도 기부를 많이 했는데, 특히 자신이 수집한 현대적인 미술품들을 국가에 기증한 후 이를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재산의 상당부분을 기부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과 같은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가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들러야 할 곳이죠. 일년에 500만 명이나 방문하는 곳이랍니다. 고전미술을 좋아하시면, 강북의 웨스트민스터쪽에 있는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에 가시면 됩니다.

 

아무튼 이렇게 시작된 테이트 갤러리는 오늘날 대기업들의 기부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이런 기부문화를 지금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밀레니엄 브릿지는 사람만 건너다니는 곳입니다. 강남으로는 "테이트 모던"(Tate Modern), 강북으로는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 Cathedral)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테이트 모던은 화력발전소를 개조해서 만든 현대미술관입니다.

안에서 보면, 엄청 큽니다. 예전에 불 때고, 터빈 돌리던 곳이겠죠.

2,3층에 올라가면 강북을 내다 볼 수 있습니다. 화창하던 날씨가 약간 먹구름이 끼기 시작합니다.

미술관을 이렇게 만들 수도 있겠구나.

애들이 태반은 놀고 있습니다.

낙서를 해 놓은 것인지 뭔지... 현대미술은 현대음악만큼이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감상하고 있습니다. 뭘 알고 보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은 이런 데 더 관심이 쏠립니다.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어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술관에서 충분히 보지 못한 채 서둘러 빠져나왔더니, 아내는 뭔가 불만인 모양입니다.

밀레니엄 브릿지 위에서 테이트 모던을 배경으로

밀레니엄 브릿지를 건너면 세인트 폴 대성당에 도착합니다.

워낙 커서 전체를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습니다.

아래 동영상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마침 저녁미사(Evensong)였습니다. 미사중이라서 사진을 못찍게 했습니다. 그래서 캠코더로 녹음을 했는데, 천상의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성당의 서쪽 입구입니다. 많은 런더너들이 석양을 보면서 휴식중입니다. 성당이 중생을 품고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너무 걸어서 지쳤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런던증권거래소가 보였습니다. 런던의 시티지역은 다닥다닥 건물들이 붙어 있어서 건물전체 사진찍기가 불편합니다. 간판만 찍었습니다.

주빌리 산책로는커녕 여왕의 산책로를 반도 걷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니 벌써 날이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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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으로, 그 후유증으로 내 마음은 다소 격정적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걱정이 커져서 그런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서민들에 대한 부담을 늘리면서 오히려 부자들에게는 세금혜택을 주고 있고, 용산참사를 아직도 방치하고 있고, 추모객들의 행렬을 봉쇄하려 하고, 보수층을 대변한다는 학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횡설수설하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죄인으로 둔갑하는 이 세상의 불의와 부패에 대해 저항(protest)해야 할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교회 내에 모여서 가진 자들을 위한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사정기관을 포함한 권력의 핵심부에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지만, 그들의 신앙과 생활은 이원화되어 있어 자기들끼리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하여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딸이 이메일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딸의 편지를 읽으면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딸은 지금 런던의 유럽계 투자은행에서 Business Analyst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번 금융위기에도 짤리지 않고 꿋꿋하게 붙어 있는 것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지만, 투자은행의 장래는 그리 밝지 않아 젊은 나이에 다른 업계로 옮기는 것이 어떤지 생각해 보도록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돈 놓고 돈 먹는" 투자은행의 사업모델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딸이 그런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도 그렇게 마음이 놓이는 것은 이닙니다.

아무튼 딸 자식은, 키울 때도 귀엽고 애교가 있어서 나를 늘 즐겁게 했는데, 다 커서도 여전히 부모를 기쁘게 하는군요.

엄마 아빠

노무현 전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나서 아빠의 마음이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아서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열흘간 휴가를 내서 뉴욕에 다녀 왔어요. 작은 고모랑 친구들도 만나보고, 뉴욕오피스에도 들를 겸해서 휴가를 냈어요. 아빠는 뉴욕에 가면 겁난다고 하셨잖아요. 나도 4년전에 처음 갔을 때는 그랬는데, 이번 여행에서 보니까 괜찮더라구요.

노란 택시, 길거리의 쓰레기들, 현란한 형광판, <브로드웨이 쇼>, <코요테 어글리>에 나오는 흥미진진한 클럽들, 게이 커플들, 건물 벽에 그려진 현란한 그림들, 센트럴 파크에서의 소풍, <섹스앤더시티>에 나오는 뉴욕의 멋진 길거리들.... 뉴욕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직접 확인하면서 뉴욕 사람들과 어울렸어요. 그러면서 나도 잠시 뉴요커가 됐었던 여행이었어요.

 

4년 전에 동생과 함께 왔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 때는 그저 이곳이 신기하기만 느껴졌었는데 이번에 와서 여행했을 때는 나도 여기 사는 뉴요커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 뉴욕이 그렇게 멋있는 도시는 아니지만, (쓰레기와 먼지와 무서운 건물들, 그리고 시끄러운 사람들 천지인 도시지만) 나름대로의 매력이 느껴지는 도시인 것 같아요. 런던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도시예요. 런던이 여성적이라면 뉴욕은 좀 더 남성적인 느낌이 있어요.

 

런던은 아담하고 예쁜 집들, 특히 빅토리안 양식의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불꾸불한 거리를 따라 지어져 있다면, 뉴욕은 목이 아플 정도로 위를 쳐다봐야만 꼭대기 층이 겨우 보이는 건물들이 바둑판처럼 짜인 길가에 서 있어요.(아무리 쳐다봐도 꼭대기층이 보이지 않기도 함

런던의 길거리는 구불거려서 한 코너를 지난 다음에 뭐가 펼쳐질지 잘 몰라 새로운 길을 걷게 되면 약간 설레고, 기대되는 맛이 있는데, 뉴욕 맨하탄은 전체가 아주 시원하게 도로가 뚫려 있어서 길을 잃어도 헤맬 필요가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요.

 

런던에는 냄새 나는 검은 쓰레기 봉투를 길가에서 눈 씻고 찾아도 볼 수가 없는데 (검은 색 쓰레기봉투에 테러폭탄이 있을 수도 있어서 쓰레기봉투는 다 투명함), 맨하탄에는 쓰레기 국물이랑 검은 색 쓰레기 봉투가 전시장처럼 길가 중간에 버티고 있는 걸 보고 뉴욕은 더러운 도시라는 인식이 박혔었죠..

 

런던과 뉴욕은 또한 규모면에서도 다른 것 같아요. 센트럴 파크는 왜 그렇게 큰지, 센트럴 파크 한 가운데 서있노라면 아마도 무슨 숲 속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런던은 그 크다는 Hyde Park도 한 바퀴 걸으려고 맘 먹으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데...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는 양을 봐도 뉴욕은 평균적인 1인분 기준이 배고픈 성인 남자가 먹어야 할 양인 것 같아요. 음료수는 무슨 파인트잔 같은 데에 주질 않나, 사람들이 너무 무식할 정도로 투박하고, 낭비가 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런던과 달리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 같아요. 멀쩡하게 잘 생긴 남자 둘이 손잡고 팔짱 끼고 다니는 걸 목격한 게 한두 번이 아니고, 누가 뭘 입고 다니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요.  

 

나는 적응력이 빠른지라, 하루는 친구가 교회에서 받은 풍선다발을 들고 뉴욕 한복판을 아주 자신감 있게 배회하고 다녔어요. 미국이 유럽보다 이혼율이 높은 것도 아마 남 신경 안 쓰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미국의 문화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유럽은 그와 달리 이혼율이 낮은 대신에 암묵적으로 부인이나 남편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파트너를 두는 경우도 많이 있잖아요. 암튼 문화의 차이를 영미권 안에서 발견하는 것도 재미 있는 일이네요.

 

또 다른 아주 명백한 차이는 발음이겠죠. 미국인 친구는 내가 영국식 영어를 하면 멋있다고 하는데, 가끔은 뉴요커들이 나를 못 알아듣는 다는 사실! 늘 영국에서 했듯이, 식사를 다하고 "Can I have the bill please?" 이랬다가 "Sorry, what?"이라는 대답을 종종 들었어요. 미국에서는 check이라고 해야 하는 걸 텍사스에 있을 때도 신기하게 여겼는데 다시 한번 웃고 지나갈 일이 생겼었지요

 

이렇게 남성미의 매력이 풀풀 풍기는 뉴욕이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를 한가지 꼽자면, 아마도 쇼핑이 아닌가 싶네요. 뉴욕은 쇼핑의 천국. 우리 회사 사무실의 여자들이 뉴욕에 주말 끼고 갔다 오는 이유 중에 한가지가 쇼핑이예요. 나는 그다지 쇼핑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아이템들을 영국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리바이스 청바지를 $38, Armani Exchange에서 벨트랑 티셔츠를 $25주고 샀다는 사실!) 이 맛에 뉴욕 오는 거야... 막 이러면서... ㅋㅋㅋ

 

뉴욕이라는 도시를 남자에 비유했는데 막상 뉴욕에는 남자가 없다는 사실! 내 친구들 얘기까지 종합해 보면 뉴욕에는 한국 남자들이 별로 없다였어요.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가보니까 직접 내 눈으로 확인했는데 진짜 그렇더라고요. 뉴욕에는 유명한 음대와 미대, 그리고 패션 디자인 학교가 많아서 그런지, 멋있는 여자애들은 넘쳐나는데, 남자들 중에서 괜찮은 사람들은 다 유부남이고... 괜찮은 남자가 뉴욕가면 대박 난다는 말도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가네요

 

내가 런던에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친구가 그러더라고요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어서 그렇게 얘기 한 줄 알았더니, 정말 그런가 봐요.

 

내 뉴욕 여행 이야기가 재미있었나요?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도 보너스로 감상하세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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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아이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템즈강을 건넜더니 수 마일을 걸은 발걸음은 더 떨어지지 않았고, 배는 출출해졌습니다. 중국집이 눈에 들어왔고 의자에 앉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시원하게 맥주도 한 잔 마시고 짜장면 비슷한 것을 시켜 먹었습니다.

 




힘을 내 음식점을 나와서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을 걸었더니 그리니치 공원이 나왔습니다.

선진국은 도회지에 있는 공원의 넓이와 질적 수준에 의해 결정되는가 봅니다. 런던은 조금만 걸어도 드넓은 공원이 나타납니다. 그것도 방치된 것이 아니라 잘 조성된 공원, 그래서 아무런 통제 없이도 아이들이 맘대로 뛰어 놀 수 있는 공원, 이런 공원을 서울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니 아직 선진국이 되려면 멀었나 봅니다. 

공원을 빼놓고서 런던을 논하지 말라고 충고한 책을 보았습니다. 전원경의 『런던 숨어 있는 보석을 찾아서』라는 책에서는 런던에서 좋은 것 세 가지를 꼽으라면, 이층버스, 공원, 극장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내가 런던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공원이었습니다. 이층버스와 극장은 돈 들이면 되는 것이지만, 공원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공원은 역사이자 정신이자 문화입니다.

 

하이드 파크

런던은 세계의 도시 중에서 가장 넓은 녹지 면적을 공원의 형식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런던의 3분의 1이 녹지인 공원으로 덮여 있습니다. 그 유명한 하이드 파크, 리젠트 파크, 켄싱턴 가든, 세인트 제임스 파크 등 크고 작은 공원이 80여 개나 된다고 합니다.

 

Primrose언덕에서 내려다 본 리젠트 파크


켄싱턴 궁 앞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


세인트 제임스 파크 건너편에 있는 그린 파크


동네에 있는 작은 공원


그런데, 이 공원의 풍경이 대개 비슷합니다. 한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엄청 넓고, 시원한 잔디밭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공원을 산책할 수 있는 길과 벤치, 그리고 동상들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크고 작은 연못에서는 대개 백조와 오리들이 노닐고 있습니다. 그곳은 한마디로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안식처입니다. 디즈니랜드식의 놀이동산이 아닙니다. 음식점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거의 쾌적함을 넘어서는 도시의 쾌적함입니다. 서울은, 아니 우리나라의 대도시들은 지금 콘크리트 숲으로 덮이고 있습니다.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이 땅이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하는 이 시대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야 제모습을 찾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런던너(Londoner)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원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것입니다. 목전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옹졸한 이 시대정신을 사회전체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유보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정신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이러한 정신은 대운하가 아닌 공원의 형식으로 드러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다시 공원을 부러워하면서 천문대를 향해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느닷없이 딸은 나에게 약속 하나 하자고 했습니다. 내가 딸아이와 못할 약속이 어디 있으랴!

 

아빠, 절대 뒤를 돌아다 보면 안 돼! 알았지!”

오냐, 그렇게 하마.”

 

중턱쯤 올라갔을 때, 나는 뒤를 돌아다 보고 싶어졌습니다.

 

뒤를 보면 안 될까?

안 돼, 지금은 안 돼!”

 

딸은 한사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고... 지금 뒤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된다나 어짼다나아무튼 나는 수 마일을 걸은 무거운 다리를 옮기며 왕립천문대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딸이 부리는 마술을 기대하면서

 

아빠, 됐어. 뒤돌아 봐도 돼!”

 

우리가 걸어온 언덕 아래에는 이렇게 찬란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마천루가 카나리 워프(Canary Wharf)입니다.


 





왕립천문대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2008 7 31 18시 28분이었습니다.










서울이 동경 127도라는 표지판도 발 밑에 보였습니다. 세계를 제패했던 영국인들이 만든 세계의 표준을 봤습니다. 우리가 힘써 만들어야 할 세계의 표준은 뭘까요?

 




대운하와 몰입교육으로 세계표준을 만들 수 있을까요? IT, NT, GT, ET 등과 같이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21세기를 만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청소년들이 시험점수가 아니라 사고력과 상상력을 기른다면 우리는 충분히 첨단분야의 세계표준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의 사진들은 17세기 크로스토퍼 렌이 설계했다는 왕립천문대의 겉모습입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아주 소박하기 짝이 없는 건물입니다.


천문대 입구



천문대 뒤뜰


천문대 앞뜰


우리는 이 여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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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딸이 사는 아파트의 발코니에서


영국으로 날아온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 그런지 움직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졸리기도 하고... 아파트 발코니에 앉아 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정박한 요트를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가 졸리면 자고... 그럴려고 휴가온 것 아닌가?

시차를 극복하는 지름길은 자꾸 움직이는 거라고 하면서 딸이 나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우리는 작년에 가보지 못했던 그리니치 왕립천문대를 가보기로 했습니다. 천문대라고 해봐야 지금은 박물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지구의 경도와 시간의 기준점을 제공하는 곳이니 런던에 온 김에 한번쯤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카나리 워프에서 다소 멀기는 하지만 걸어갈 수도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걷기로 했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산을 썼다 접었다를 반복하면서 템즈강의 강북산책로를 따라 상류로 올라갔습니다. 강가를 걸으면서 템즈강의 풍부한 수량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강건너 정면 오른쪽이 왕립해군병원이고 멀리 언덕 위에 조그맣게 보이는 두 개의 탑 건물이 왕립천문대

강 건너편에는 17세기에 지어진 왕립해군병원과 우리의 산책목적지인 왕립천문대가 보였습니다. 이 두 건물은 전설적인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1632~1723)이 설계했습니다. 렌은 런던 시내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설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강가를 걸어가면서 그 동안 못했던 얘기를 했습니다. 딸이 취업했던 1년 전에는 지금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취업하기 어렵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딸이 대학에서 공부하던 얘기, 취업전쟁에서 살아남은 얘기, 그리고 사무실에서 일하던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었습니다.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친구들이 다들 취업되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불안했다고 합니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중국유학생들은 잘도 취직되는데 한국인 유학생 선배들을 볼 때 한국 국적으로 영국에서 취업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2년 전 어느 날, 딸이 한국으로 전화해서 나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취업에 관한 기본원칙과 전략을 세우도록 충고해 주었습니다. 기본원칙은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라였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얘기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딸은 금융 또는 재무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다음과 같이 세우도록 조언했습니다. 이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소위 3단계 방어선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금융산업의 꽃인 투자은행에 지원한다.

둘째, 투자은행에 취직이 안 되면, 상업은행이나 다른 산업에서 재무관련 업무에 지원한다.

셋째, 그것도 안 되면, 귀국해서 한국의 금융산업에 지원한다.

 

입사지원서를 유럽계와 미국계 투자은행뿐만 아니라 몇몇 타산업에도 보냈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 인터뷰를 하도록 연락이 온 곳은 유럽계와 미국계 투자은행 각각 한 곳과 블룸버그였다고 합니다. 유럽계는 미국계와는 달리 조금 더 인간적인 면이 있고 조건도 더 좋았기 때문에 유럽계 투자은행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터뷰까지 잡혀 있던 미국계 투자은행은 최근 파생상품으로 파산한 은행이었습니다.

 

카나리 워프에 있는 Credit Suisse London Office


유럽계 투자은행의 채용과정은 서류심사를 거쳐 인터뷰를 합니다. 인터뷰는 동료인터뷰와 상사인터뷰, 최종적으로 디렉터인터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인터뷰시간을 다 합치면 6시간 정도는 됐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형식상으로 우리나라의 선발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와 결정적으로 다른 특이한 점은, 배경조사라고 할 수 있는 Background Screening이라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지난 6년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연락처를 써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전문회사에 의뢰하여 내용확인과 평판조사를 합니다. 학력과 경력, 인턴과정에서의 성실성 등을 일일이 조사합니다. 말하자면 공식적인 뒷조사를 하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의 인재선발시스템은 신정아씨의 동국대 교수 채용에서 보았듯이 낙후된 정도가 아닙니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직도 허위학력과 경력들이 아무런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고 통과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나서도 허위학력과 경력으로 처벌을 받는 나라이기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정당에서 공천하면서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관행입니다. 유럽계 투자은행이 대졸신입사원을 뽑는데도 그런 엄격한 절차를 거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신뢰는 언어에 있지 않고 시스템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언어는 항상 생략되고, 왜곡되고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타인을 속입니다. 나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가장합니다. 나를 믿으라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나는 유능한 사람이라고 포장합니다. 심지어 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언어는 사악합니다. 이 언어의 사악함을 중화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스템입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TV뉴스에서는 전직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가 구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언어를 믿고 거래를 했을 것입니다. 역대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구속되는 치욕을 아직도 끊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언어의 사악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언어의 힘을 믿고 그 위력에 의지하여 음성적인 거래를 했을 것입니다. 시스템으로 언어의 사악함을 예방하지 못하고, 꼭 사후에 정치적 보복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처리합니다. 시스템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길을 우리는 과연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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