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소위 工神(공부의 신)들과 함께 오전 내내 워크숍을 했습니다. 곤지암리조트에서 했는데, 최근에 개설해서 그런지 시설이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곤지암에는 골프치러 몇 번 가보긴 했는데, 리조트는 처음입니다.

서울대 의대와 서울대 병원 중진교수들과 함께 리더십 모델과 성과책임이라는 주제였습니다. 이전에 했던 워크숍에서 다소간 진보된 내용이었습니다. 조금 더 근원적인 설명이 곁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치료의 철학적 의미를 조금 가미했습니다. 다음과 같이 이미 포스팅했던 내용들입니다.


  • 2009/04/24 치료란 무엇인가(3)_레비나스의 경우
  • 2009/04/22 치료란 무엇인가(2)_가다머의 경우
  • 2009/04/20 치료란 무엇인가(1)_칼 야스퍼스의 경우 
     

  • 리더십 워크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인간이란 무엇인가

    둘째, 마음이란 무엇인가

    셋째, 경영이란 무엇인가

     

    리더십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오늘날 경영이라는 현상이 어디서 왔으며, 그리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항상 위 세 가지 이슈에 집중해서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때로는 철학과 역사, 그리고 심리학적인 이슈들이 가미되기 때문에 쉽지 않은 내용들이지만, 역시 공신들과 함께 하는 워크숍은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오찬시간에까지 많은 의견과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가르치는 사람은 준비한 만큼 배우게 됩니다. 가르친 것보다 내가 배운  것이 더 많습니다. 공신들답게 좋은 질문들이 많았고, 미처 내가 생각지 못한 것들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비타민 몇 알 먹고 건강해지지 않듯이, 워크숍을 통해 건강한 리더십을 습득할 수는 없습니다. 참가자들이 경영이나 리더십은 결코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것이라는 점을 머리로만이라도 이해했으면 합니다. 몸으로까지 확실히 이해하려면 훨씬 더 많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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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마음은 실재(reality)를 만들어냅니다. “나의 실재는 너의 실재가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 실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통 실재(reality)를 실제로(actually) 존재하는 사물의 객관적 상태(objective state)로 이해합니다. 이 때 사물의 객관적 상태란 관찰가능하고 비교가능한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사물에 대한 관찰과 비교는 사람마다 매우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요즘처럼 가을이 되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거리에는 붉은 낙엽이 수북이 쌓입니다. 이런 현상을 보고 신실한 기독교인은 신의 섭리가 매우 놀랍고, 아름다운 우주를 운행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엊그제 실연당한 사람은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더욱 우울해질 것입니다. 인생을 비관할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사랑하는 연인들이 떨어지는 가로수의 낙엽 사이를 걷고 있다면, 그들의 마음은 애정으로 더욱 넘칠 것입니다. 물리학자의 눈에는 중력의 힘을 이용하여 낙엽이 떨어지는 속도와 방향을 계산하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작용하는 중력의 힘을 잘 활용하면 영구운동기관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궁리할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마음은 사물에 대한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주관적 실재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인간은 실재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 우리가 인식하는 실재는 자신이 맞닥뜨리는 사물에 대한 이전의 기억과 연관시키고, 그것을 다시 미래로 투사하면서 나온 이미지입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실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장된 기억이 전혀 없는 경우에는 실재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실재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 실재는 항상 시간(time)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연당한 사람처럼 과거에 일어난 구체적 상황을 연상하고, 물리학자처럼 미래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연결시킵니다. 현재의 사건이 과거와 미래에 그대로 투영됩니다.

     

    둘째, 실재는 항상 공간(space)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인들은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영화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장면을 연상하고, 물리학자는 미래의 실험실을 만들어냅니다.

     

    셋째, 실재는 항상 정보(information)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보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 줍니다. 떨어지는 낙엽이 우울하게 하기도 하고, 새로운 의욕을 불사르게 하기도 합니다.

     

    넷째, 실재는 항상 에너지(energy)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너지는 뇌에서 만들어지는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온 몸의 근육과 세포에 전달됩니다. 그래서 사물에 대한 반응으로 뇌에서는 신경전달물질을 생산해냅니다. 이 화학물질에 의해 우울해지거나 의욕이 넘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실재는 위에서 말한 시간, 공간, 정보, 그리고 에너지라는 네 가지 요소의 구성개념(construct)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요소 중에서 하나라도 제거되면 실재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울한 환상에 젖은 사람에게 뇌세포의 연결망에서 시간이나 공간을 바꿔주면 우울한 증세가 없어집니다. 정신과적인 치료의 원리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네 가지 요소 중에서 가장 쉽게 제거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서 삭제하면 증세를 고칠 수 있게 됩니다. 객관적인 현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뇌세포의 연결망(neural wiring)을 바꿔주는 마음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잘 치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실재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보겠습니다. 구성하는 방식을 그림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의 마음상태는 어떤 새로운 사물을 맞닥뜨리면 관찰을 시작합니다. 이때 관찰은 과거의 기억된 것에 연결하여,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판단합니다. 무엇인지를 판단할 때 그 사물이 나에게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합니다. 여기서 이해관계에 얽힙니다. 반드시 경제적인 것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정신적 경제적 육체적인 모든 것을 망라한 종합적 이해관계의 판단입니다.

     

    어쨌든 이해관계에 걸려들면, 그 사물을 측정합니다. 여기서 측정은 잰다(measure)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엄밀한 숫자상의 계량화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계산을 한다는 뜻입니다. 측정할 때는 반드시 척도가 필요합니다. 그 척도의 선택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나온 마음의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낙엽에 대한 척도는 실연당한 사람에게는 만물의 시들어감, 연인들 사이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 기독교인은 창조주의 전능하심, 물리학자에게는 중력이라는 신비한 힘의 정체가 척도로 활용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척도의 선택입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무수히 많은 척도가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일단 척도를 선택하고 나면, 다른 척도가 배제됨으로써 다른 가치와 의미는 삭제됩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판단하여 측정까지 한 결과들을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뇌에 저장합니다. 뇌는 그것을 받아들여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함으로써 새로운 마음의 상태, 즉 생리적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들어낸 실재(reality)는 흔히 말하는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뇌에 언어의 형태로 저장된 실재라는 것은 자신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환상(illusion)에 불과합니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각자가 만들어내고 있는 이러한 허상이 좋고 나쁨 또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선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만,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는 선택이 있고, 슬픔과 불행을 초래하는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또한 지금 당장에는 실패하는 것 같으나 결국은 성공으로 나가는 선택이 있고, 지금 당장에는 성공한 것 같으나 나중에는 실패를 초래하는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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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모든 인간은 현재상태를 보다 더 나은 상태, 즉 바람직한 상태로 만들려고 합니다. 현재상태와 원하는 상태 사이에는 항상 갭(gap)이 발생하는 데, 이 갭을 메우려는 마음가짐은 행동을 일으킵니다. 갭을 메우는 방법은 가용자원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원이란 크게 보면 돈, 시간, 사람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라는 자원을 잘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돈을 잘 굴리는 방법을 개발합니다. 돈이 돈을 버는 방식의 금융기법을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기법들은 기업현실에서 필요하긴 하지만, 전적으로 이것에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돈을 잘 활용하는 기법이라는 것은 그리 생산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돈은 항상 제한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기업에서도 예산제도에 따라 일정액이 배분되기 때문에 그 범위 이상 쓸 수 있는 자원도 아니어서 지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져 있어서 시간 자체를 가용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돈과 시간보다 더 중요한 자원은 사람인데, 사람은 그 자체로서 자원개념으로 보는 것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조직의 자원이 아니라 조직이 사람의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는데 있어 사람이 자원의 성격을 일부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맥락에 한해서 사람을 자원의 하나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자원이라는 속성이 있다고 했을 때, 그럼 사람의 무엇이 자원인가? 사람의 노동력이 자원입니다. 노동력은 그것이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마음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마음이라는 신비로운 자원을 잘 활용하는 것은 기업의 성과와 효율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마음이라는 자원이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마음이 실재(reality)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그런지를 계속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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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이야기

             경영이란 무엇인가(1)_경영의 기본전제
             경영이란 무엇인가(2)_경제와 경영
             경영이란 무엇인가(3)_효과성과 효율성


    나는 앞에서 경영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경영이란 비전/목적/방향을 먼저 정한 후에,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조건을 정비하고,

         그 조건에 부합하는 행동을 구체적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전제가 바로 경영자 또는 관리자의 마음 상태입니다. 바람직한 마음의 상태, 즉 정신구조에서 출발하여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조건들을 정비함으로써 바람직한 행동패턴을 일으키도록 돕는 것이 곧 경영이라는 의미입니다. 정신구조는 능력, 가치와 신념, 정체성, 영성 등으로 구분되지만, 우리가 흔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가치와 신념의 문제입니다. 가치와 신념이 경영의 방법론을 선택함으로써 평가보상제도와 같은 제도적 조건을 정비하게 되고, 그 조건들이 구성원의 마음을 움직여서 효율성이 높은 행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 그림이 곧 경영관리의 구조이자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신구조(mental structure)입니다. 그러나 정신과 마음, 그리고 영혼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반복될 이슈들이긴 하지만, 경영의 출발점이자 초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한번 더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구조, 즉 마음의 상태가 방법론을 선택하고, 그 방법론이 행동을 일으키는 테크닉을 활용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정신구조의 출발이 잘못되면,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통제할 수 없이 잘못된 방향으로 날아가버립니다.

     

    나는 오늘날 대부분의 경영이 이런 식으로 날아가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조직구성원들이 그렇게 많은 스트레스와 불안, 신체적 증상들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마음은 거의 지쳐있습니다. 대부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않으면 효율적인 조직과 선진화된 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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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지난 이야기

              마음이란 무엇인가(1)_마음에의 관심
              마음이란 무엇인가(2)_마음과 몸은 하나, 그 경험적 증거
              마음이란 무엇인가(3)_무의식적 마음의 위력
              마음이란 무엇인가(4)_心身의 일체성
              마음이란 무엇인가(5)_영혼과 마음의 지향성
              마음이란 무엇인가(6)_뇌와 마음, 그리고 실존과 경영
              마음이란 무엇인가(7)_마음이해의 전제


    마음을 이해하는 4가지 전제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를 잘 살펴보면 조직 내의 인간사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마음으로 귀결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작용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인간의 실존성은 선택을 전제로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의 선택은 무한히 열려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고통과 불행으로 나가기도 하고, 성공과 행복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그 선택의 메커니즘, 즉 마음의 작용원리를 간단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은 다음과 같이 삼층구조의 삼겹살로 되어 있습니다. 이 삼겹살이 정보와 에너지의 여과장치 구실을 합니다. 이 삼겹살이 그림에서는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상호유기적인 여과장치처럼 작동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항상 현재상태보다 더 나은 바람직한 상태(desired state)를 상상해 냅니다. 그래서 현재와 미래에는 항상 갭(gap)이 생깁니다. 이 갭을 메우려는 욕망은 항상 현재에서 미래로 성장해가려는 지향적 의지를 생성해냅니다.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방향적 경향성(directional tendency)이라고 말하고, 철학자들은 지향성(志向性, intentionality)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서는 김재권 교수가 쓴 "심리철학"[Philosophy of Mind], 하종호 김선희 옮김, 철학과현실사 1997을 참조하세요.)

     

    현재상태에 있는 욕망이 원하는 상태로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현실의 표층구조를 살펴야 합니다. 여기서 표층구조란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절차들로 이루어진 제도적 장치를 말합니다. 욕망이 표층구조에 부딪치게 되면 대개의 경우 마음에는 몇 가지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표층구조의 제도적 장치와 싸울 것인가 아니면 피할 것인가(fight or flight)에 대한 반응입니다. 제도적 장치들은 대개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싸울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도망갈 것입니다. 여기서 도망간다는 말은 그 조직을 떠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반응은 아마도 싸우거나 도망가는 방식보다는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을 볼 것입니다. 의식만으로는 제도적 관행과 명령을 따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경우 100퍼센트 따르거나 100퍼센트 거부하기보다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욕망을 조절하고 관망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상태를 구현하는 욕망이 일차적으로 조직과 그 조직에서 조건화된 제도들, 표층구조를 통과하면서 어느 정도 변형됩니다. 이렇게 표층구조에 부딪혀 비틀린 욕망은 의식의 맥락적 구조에 의해 싸울 것인지 피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긴장상태를 유지합니다.

     

    이제 의식으로 대변되는 맥락구조를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맥락구조는 한편으로는 표층구조의 압력을 견뎌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의식의 심층구조에서 솟아 오르는 영혼의 속삭임도 따라야 하는 딜레마에 놓입니다. 표층구조와 심층구조는 대개의 경우 이율배반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그 압력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맥락구조는 견디다 못해 몸의 세포들이, 특히 면역체계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것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고 심하면 병적 증상이 확대됩니다.

     

    표층구조에서 받는 메시지는 소유와 경쟁, 욕망의 지수적 상승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화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도록 강요합니다. 남들보다 더 유능하게 보이도록 경쟁적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끝없는 욕망의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채 위만 보고 올라가야 합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서서 있으면 안 되고 걷거나 뛰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여기서 의식은 숨차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심층구조는 일반적으로 표층구조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욕망입니다. 마음의 평화와 잠재력의 발현을 요구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기보다는 그들과 연결되어 있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더 잘 되기를 원합니다. 물가에서 노는 어린 아기가 위험해 보여서 혹시나 빠지지 않을까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게 만듭니다.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찾게 합니다.

     

    만약에 맥락구조가 심층구조를 보다 더 투명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다면, 심층구조의 미세한 요구에도 맥락구조가 쉽게 응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심층구조인 무의식(잠재의식)을 잘 활용하는 방법과 기술을 익히면 마음의 평안과 행복뿐만 아니라 기대 이상의 성취감과 그에 따르는 경제적 성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하는 상태(desired state)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마음은 의식적인 마음(conscious mind)과 무의식적 마음(unconscious mind)으로 구분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의식적인 마음보다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에 더욱 영향을 받고 있지만, 무의식(잠재의식)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깊지 않습니다. 그래서 표층구조나 의식의 맥락적 차원에만 경영의 기술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이것이 구성원들을 고통스럽게 만들며 병적 증상을 일으키는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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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이야기

              마음이란 무엇인가(1)_마음에의 관심
              마음이란 무엇인가(2)_마음과 몸은 하나, 그 경험적 증거
              마음이란 무엇인가(3)_무의식적 마음의 위력
              마음이란 무엇인가(4)_心身의 일체성
              마음이란 무엇인가(5)_영혼과 마음의 지향성
              마음이란 무엇인가(6)_뇌와 마음, 그리고 실존과 경영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이해를 위한 기본전제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나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원하는 데로 가게 하는 지도(map) 또는 내비게이터(navigator)와 같다.

         인간의 행동에는 긍정적인 의도가 숨어있다.

         인간은 자신이 직면한 이슈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첫째, 모든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합니다. 누구에게나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자유란 단순히 헌법이 보장하는 타율적인 인권으로서의 자유를 넘어서 초월적인 상상을 가능케 하는 자유도 포함됩니다. 그런 자유를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어떤 이는 오디오를 조립하고, 어떤 이는 배낭여행을 떠납니다. 해병대 34일 병영체험을 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책을 쓰고, 다른 이는 시험공부를 합니다. 이런 선택의 결과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책임입니다. 누구도 타율적으로 강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자유와 선택과 책임은 누구에게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적 속성입니다. 이 속성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마음 속에서 아무런 타인의 통제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하여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실행해 가고 있을 뿐입니다.

     

    둘째, 마음은 자신이 원하는 데로 가게 하는 지도 또는 내비게이터와 같습니다. 여기서 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상당히 교양 있어 보이는 분을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좋은 직장에서 중견간부로 일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아들을 둘 두었는데, 작은 아들 때문에 상담을 왔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이 여자 친구와 집을 나가서 며칠씩 들어오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는 선생님한테 욕하면서 폭력을 행사해서 정학처분을 몇 번 받았고, 그럴 때마다 학교에 불려가서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전문심리상담소에 아들을 보내서 상담을 받아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답니다. 내가 아들을 상담해서 정상인으로 만들어 줬으면 하는 부탁이었습니다. 큰 아들은 특목고를 졸업해서 세칭 일류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말해 주었습니다. 부모로서 볼 때, 큰 아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둘째가 큰 문제라는 겁니다. 상담 내내 그 분은 둘째 아들의 문제만을 생각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방에 들어가 이불을 칼로 찢고, 때로는 자해행위를 하려고 한다면서 어쩌면 좋겠냐고…… 자기는 더 이상 아들을 통제할 수 없겠노라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가 상담하는 과정에서 아들 문제가 아니라 바로 그 부모가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형과 동생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동생에게는 형처럼 하지 못하면 큰일 난다는 식으로 닦달해왔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동생에게는 큰 일이 났습니다. 그 일이 부모 자신에게도 닥친 것입니다. 학교에서 교사를 패고, 여자 친구와 집을 나가고……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마음의 상태는 그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이렇게 마음의 상태는 다른 사람에게 깊숙이 전달되어 그 정보의 내용대로 에너지가 현실을 만들어 갑니다.

     

    내가 그의 아들을 상담했을 때, 그는 자기 마음을 스스로 잘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부모의 의도에 저항함으로써 공부와 성적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부모는 아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가짐이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아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그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들의 잠재력과 재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신뢰의 결핍이 아들에게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그대로 되돌아 왔습니다. 마음은 주인이 원하는 데로 가게 하는 내비게이터와 같습니다.

     

    셋째, 인간의 행동의 이면에는 반드시 긍정적 의도가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아들은 똑똑한 형과의 비교에서 살아 남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무의식적인 마음의 프로그램이 작동하여 시험 보는 날에는 배가 아프고 설사가 나고, 두통에 감기기운까지 생겼습니다. 시험성적에 대한 압력을 온 몸의 세포들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증상들이 공부와 성적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신을 벗어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의 일탈적 행위에는 부모의 압력으로부터 자신을 벗어나게 하는 긍정적 의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육교를 건너지 못하는 멀쩡한 여학생을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 여학생은 아파트에서는 높은 곳에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육교만큼은 도저히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상담하는 과정에서 원인을 알게 되었는데, 유치원 다닐 때 정글짐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었습니다. 당시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집안 식구들도 잘 모르는 일인데, 그 정글짐 사건은 그녀의 무의식 속에 아주 크게 부각되었던 모양입니다. 높은 곳에 걸어서 올라가면 다리에 힘이 빠져서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 그래서 생겼습니다. 높은 곳에 걸어 올라가면 떨어져서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것이 무의식에는 강하게 기억되어 있었습니다. 그녀 자신은 어렸을 때의 정글짐 기억이 육교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몰랐지만, 정글짐 사건이 무의식에서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육교를 건너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무의식은 자신을 위험 또는 공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무의식적 마음에 영향을 받는 이상행동의 이면에는 긍정적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넷째, 모든 인간은 자신이 직면한 이슈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 인기가 하락하거나 하락을 걱정한 연예인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마음은 자신이 겪는 현실을 뇌 속에 실재(reality)라는 이미지로 그려냅니다. 말하자면, 환상을 만들어 낸다는 말입니다. 환상에 갇혀서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인기가 떨어졌다는 것이 사실이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도 실패만 계속되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다른 희망이 없다고 믿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자살에 성공합니다. 인기하락도, 노력의 실패도, 희망이 없다는 믿음도 자신이 지어낸 환상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실패란 없습니다. 절망도 없습니다. 실패라는 생각과 절망이라는 감정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에서 교훈을 얻으면 됩니다. 절망은 자원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 앞에 닥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사에 교훈을 얻어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 있는 자세를 갖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삶을 실천하면 반드시 성공적이고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러한 네 가지 기본전제란 건축물의 초석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초석이 없이는 건물을 세울 수 없는 것처럼 전제 없이는 이론도 성립할 수 없습니다. 전제가 무너지거나 부실하면 이론도 쓸모 없어집니다. 그래서 기본전제를 바르게 세우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마음을 사로잡은 경영의 큰 틀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이 기본전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마치 몸의 사이즈도 재지 않은 채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와 같습니다.

     

    나는 기업에서 실무를 하면서 몸이 옷에 맞지 않는다고 종업원들을 다그치는 경영자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부하들이 무능해서 문제인데 더 유능한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고 말하는 경영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직무적합성 측면에서 보면, 잘못 배치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경영자들의 생각이 전혀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서 제시하는 전제 위에 제도를 설계하지 않으면, 조직구성원들은 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최소한 해고되지 않을 정도에서 적당히 일하는 척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전제를 무시한 채 조직을 설계하고 제도를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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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이야기

              마음이란 무엇인가(1)_마음에의 관심
              마음이란 무엇인가(2)_마음과 몸은 하나, 그 경험적 증거
              마음이란 무엇인가(3)_무의식적 마음의 위력
              마음이란 무엇인가(4)_心身의 일체성
              마음이란 무엇인가(5)_영혼과 마음의 지향성


    마음과 몸의 문제 또는 정신과 뇌의 문제는 서로 떼어내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닙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물질의 뇌와 정신의 마음으로 나누어서 보게 된 것은 인간의 뇌의 작용원리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뇌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에게 몸과 마음이라는 두 개의 현상이 별개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과학적 성과를 무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몸과 마음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oneness)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반 퍼슨의 말대로 영혼은 몸에, 몸은 영혼에 매여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뇌는 다른 어떤 장기(臟器)와도 다른, 매우 특수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장기들은 자기 자신의 활동상황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뇌는 독특하게도 신경세포들의 정보전달체계를 통해서 뇌 밖에 있는 것들을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뇌 자신의 움직임 또한 관찰할 수 있습니다. 뇌 자신이 지금 무엇을 인지하고 느끼고 결심하는지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의식(consciousness)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나는 인간의 실존(existence)을 봅니다. 즉 영혼의 능력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된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그 무엇>이라고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그 무엇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라고도 의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지닌 자유로운 영혼의 능력입니다. 바로 이 능력이 무한히 다른 선택을 가능케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러한 의식의 실존성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무한히 창조해 갈 수 있습니다.

     

    다시, 무의식적 마음

     

    그러나 뇌 자신이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는 영역도 있습니다. 그것을 무의식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심연에 쌓여왔던 열등감과 불안을 의식하지 못했듯이 말입니다. 무의식의 영향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아무리 강력한 의식적 지향성도 무의식적 저항에 막혀버릴 수 있습니다. 지하철 사고를 당한 이후에는 지하철을 아무리 타고 싶어도 탈 수 없는 환자들을 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폭력적인 부모로부터 양육된 아이들에게는 나중에 커서 복수하겠다는 무의식적 결심이 쌓이게 됩니다. 그 아이가 커서 결혼하여 자기 자녀를 양육할 때는 내면 깊숙한 곳에 형성된 무의식적 복수심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대로 드러내게 됩니다. 자녀들을 학대하는 부모는 아이들의 올바른 생활습관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체벌이라고 합리화합니다. 복수심의 무의식적 작용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이런 현상은 교사가 학생들을 대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무의식을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정신(심리)분석, 인지행동분석, 기도와 명상, 신경언어프로그래밍, 최면 등과 같은 별도의 다른 수단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정신분석을 비롯한 수많은 심리학적 치료기법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치료기법들을 잘 활용하면 아주 건강한 뇌를 소유할 수 있고 성공적인, 그리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직업생활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무의식적 세계와 그에 따른 실존적 상황을 이해할 때에만 비로소 마음을 사로잡는 경영이 가능합니다.

     

    마음과 경영

     

    이제 뇌와 마음에 관한 이 정도의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의 관심사항인 마음을 사로잡는 경영에 대해 언급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경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경영이란 비전/목적/방향을 먼저 정한 후에,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조건을 정비하고,

         그 조건에 부합하는 행동을 구체적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비전을 설정하고, 조건을 정비하고, 행동을 유발하도록 하는 모든 조치는 마음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결국 경영이란 마음을 사로잡아서 행동을 일으키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세 가지 사항이 순서대로 일어나야 하겠지만, 현실에서는 이것이 순서 없이 거의 동시에 또는 거꾸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자의 마음 상태(mind state)입니다. 마음의 상태가 실재(reality)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조직구성원의 마음 상태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상태를 다룰 때, 현실에서 직면하는 첨예한 문제는 가치와 신념의 문제입니다. 신념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삶의 다양한 경험과 연결시켜줍니다. 이 말은 자신이 원하는 가치(, 돈 버는 것)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신념은 행동패턴(, 고시공부하기, 복권사기, 글쓰기 등등)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누구나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신념의 차이에 따라 어떤 사람은 복권을 사고, 어떤 사람은 고시공부를 하고, 어떤 사람은 사업기회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신념은 서로 다른 행동을 결정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연결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기서 신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마음에 형성되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신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자신의 실존적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뒤에서 신념의 문제를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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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이야기

              마음이란 무엇인가(1)_마음에의 관심
              마음이란 무엇인가(2)_마음과 몸은 하나, 그 경험적 증거
              마음이란 무엇인가(3)_무의식적 마음의 위력
              마음이란 무엇인가(4)_心身의 일체성


    과학자들은 대개 요소환원주의적 입장에서 사물을 보기 때문에 마음이니 정신이니 영혼이니 하는 말들은 실증할 수 없는 공허한 관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잇슨(Gregory Bateson, 1904~1980)의 말대로 많은 과학자들이 인과관계의 빈약한 모델인 논리 속에 빠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레고리 베잇슨, 박지동 옮김, 『정신과 자연』(Mind and Nature), 까치 1990, 77~79.) 그들 역시 보이지도 않고 실증할 수도 없는 것은 그냥 없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뇌세포들간에 일어나는 전기적 화학적 작용의 지향성이 영혼의 능력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하는 이 은유와 상징의 풍요로움을 왜 마다해야 할까요?

     

    나는 여기서 다시 반 퍼슨의 글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인간은 신비로운 힘의 영역 안에서 세계를 향하며 언제나 열려 있는 존재이다. 의식(意識)은 곧 자기 자신과 더불어 아는 자기 지식(conscientia, 양심)이다. 이것은 내 안에 나와 더불어 아는 자, 즉 양심이 있다는 말이다. 각 사람의 육체성은 존재가 곧 가능성임을 뜻한다. 미지의 세력이 이 가능성의 영역에 나타날 수 있고, 신적인 세력은 인간의 존재를 통해서 활동한다. 인간은 마무리가 덜 되어 있고, 자기 자신으로는 미완성의 존재이며, 신의 탈에 불과하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문제 삼게 될 때, 그는 곧 세계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될지라도 인간은 단순히 세계의 한 부속품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수치를 알며 옷으로 치부를 가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항상 그대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이다.(C. A. 반 퍼슨(C. A. van Peursen), 손봉호 강영안 옮김, 『몸 영혼 정신』, 서광사 1985, 200)

     

    뇌를 영혼의 하드웨어라고 비유한 정신과의사이자 뇌 과학자도 있습니다. 다니엘 에이멘(Daniel Amen) 박사는 『영혼의 하드웨어인 뇌 치유하기』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수만 명의 뇌 스캔 자료를 연구한 결과, 뇌라는 하드웨어를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정신질환이나 사회적 갈등과 폭력은 뇌 신경세포의 구조상의 문제라고 봅니다. 뇌는 생각을 반영하기 때문에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기도와 명상을 통해 생각을 좋게 바꾸면 뇌세포의 연결망 구조도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라는 성 프란시스의 기도문을 외우거나 명상으로 일과를 시작하도록 권유합니다. 그렇게 되면 건강한 뇌를 늘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기도와 명상은 영성과 깨달음, 그리고 최적의 뇌 기능에 필수적이다.(다니엘 에이멘(Daniel Amen), 김유미 옮김, 『영혼의 하드웨어인 뇌 치유하기』(Healing the Hardware of the Soul), 학지사 2006,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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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 마음, 영혼

    지난 이야기

              마음이란 무엇인가(1)_마음에의 관심
              마음이란 무엇인가(2)_마음과 몸은 하나, 그 경험적 증거
              마음이란 무엇인가(3)_무의식적 마음의 위력

    마음(mind)과 몸(body)이 하나라는 사실은
    서양의학계의 과학적 노력을 통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특히 하버드 의대 심장전문의 허버트 벤슨(Herbert Benson, 1935~) 교수는 『마음으로 몸을 다스려라』에서 이완반응”(Relaxation Response)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몸과 마음을 이완함으로써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벤슨 교수의 저작은 우리나라에 많이 번역 소개되었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읽으면 몸과 마음의 일체성에 관한 과학적 증거들을 확인하고, 그가 제안하는 방법을 따라 한다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70년대에 이러한 주장은 충격적이었던 모양입니다. 비난과 찬사를 받으면서 종교인들이 명상을 통해 면역을 강화하고 혈압을 낮출 수 있음을 실증해 보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의 저작들을 보면, 인간의 몸과 마음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그 밖에도 뉴욕의대 재활의학과 존 사노(John E. Sarno) 교수의 『통증혁명』(Healing Back Pain), 국일미디어 2006은 통증치료에 있어서 마음의 작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몸과 마음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알게 해 줍니다.) 이것을 심신상관(mind-body connection)이라고 부릅니다. 심신상관의 의학적인 증거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를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은 심신상관에 관한 연구와 문헌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나의 경험적 증거와도 일치합니다.

     

    신경과학자들 중에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뇌세포들의 시냅스 전달로 환원되기 때문에 마음이라는 정신활동은 오직 뇌의 기능적 측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은 뇌에서 생겨난다는 주장입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항체분자의 구조를 발견하여 생리학 의학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제럴드 에델만(Gerald Edelman, 1929~) 박사가 있습니다. 그는 많은 저술을 통해 마음과 의식은 전적으로 물질에 의해 작동하며 순전히 생물학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제럴드 에델만, 황희숙 옮김,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Bright Air Brilliant Fire : on the Matter of the Mind), 범양사 1998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마음, 의식, 지식, 인식, 개념, 언어 등의 정체를 밝히려면 생물학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철저한 물질주의적(materialistic)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뉴욕대학의 신경과학자인 조셉 르두(Joseph LeDoux, 1949~) 교수도 역시 자신의 책 『시냅스와 자아』에서 인간의 의식과 자아는 신경세포들의 시냅스 전달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조지프 르두(Joseph LeDoux), 강봉균 옮김, 『시냅스와 자아』(Synaptic Self), 소소 2005 참조.) 일본의 젊은 과학자인 요로 다케시(養老孟司, 1962~)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펼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뇌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유심론과 유물론에 빗대서 『유뇌론(唯腦論)』을 주장하고 있습니다.(요로 다케시(養老孟司), 김석희 옮김, 『유뇌론』(唯腦論), 재인 2006 참조.)

     

    만약 과학자들의 주장대로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이 단순히 물질로부터 유래되었거나 물질의 전기적 화학적 작용일 뿐이라고 한다면, 먼 훗날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의식을 소유한 인공물을 만들었을 경우, 그 인공물이 인류의 사회문화 속에서 스스로 진화해 갈 수 있을까요?

     

    반대로 예를 들어 뇌에서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면, 그것은 더 이상 팔다리가 아닙니다. 팔다리와 몸통이 떨어져 나간 뇌는, 포도당과 산소가 공급된다고 가정해도, 스스로 작동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점점 퇴화되어 뇌라고 부를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간이기 위해서는 육체와 정신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정신이란 바로 의미들의 조합으로서의 정보와 에너지를 말합니다.

     

    놀랍게도 나의 이런 생각을 지지해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뇌과학자가 있습니다. 신경외과 의사인 스탠포드대학의 칼 프리브람(Karl Pribram, 1919~) 교수입니다. 아니, 내가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는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과 함께 뇌의 인지구조를 홀로그램 모델로 설명했습니다. 마음과 의식은 뇌세포들의 양자적 활동에 의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발생하는 정보는 시간과 공간, 물질과 비물질을 초월하기 때문에, 마음이란 우리 주변의 잠재적 에너지와 가능성을 드러내는 이상(理想)과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고 창조하는 현실(現實)사이의 갭을 메우려는 활동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란 어떤 사물을 가리키는 명사가 아니라 마음이 작용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동사라고 설명합니다.(칼 프리브람(Karl Pribram) , 「의식경험의 실체」, 카렌 샤노어(Karen Shanor) , 변경옥 옮김, 『마음을 과학한다』(The Emerging Mind), 나무심는사람 2004, 334쪽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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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이야기

              마음이란 무엇인가(1)_마음에의 관심
              마음이란 무엇인가(2)_마음과 몸은 하나, 그 경험적 증거


    업무상의 스트레스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업적을 다그치는 상사인가? 아니면 인간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해서 오는 갈등인가? 내가 무능하기 때문인가? 조직문화가 나에게 부적합하기 때문인가? 나는 분명히 알고 싶었고 또한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에서부터 행동주의 심리학까지 다시 훑어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융의 분석심리학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에 접근하는 방식이 확실해졌습니다. 그동안 내가 간과했던 것은 무의식이었습니다. 무의식적 마음이 인간의 심연에서 솟아오르고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억누르고 있었으니, 여러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마음의 심연에서 무엇이 솟아오르길래 그것을 억눌렀을까. 나 자신에 대한 솔직한 분석결과는 열등감, 불안 또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내 열등감은 아주 어린 시절에 싹텄습니다. 밥 세끼를 제대로 먹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 추운 겨울에 온전한 내복을 제대로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교복은 이웃집 형들이 입던 빛 바랜 것을 얻어다 입었습니다. 양말은 물론 무르팍에는 덕지덕지 기운 내복으로 추위를 달래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갑자기 신체검사를 했습니다. 교복을 벗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다른 애들은 다 벗었는데, 나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625전쟁 이후에는 사실 어느 집이나 대부분 그랬습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창피했습니다. 입장이 매우 난처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고,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없는 나의 처지에 절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남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렵습니다. 마음을 진정하고 천천히 말을 시작해서 어느 정도 심장이 가라앉도록 해야 합니다.

     

    어른이 된 후 한국은행에서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누덕누덕 기운 내복처럼 학벌이 처지는 것으로 느껴졌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동료들과는 다른 뭔가로 채워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무하면서도 호시탐탐 유학 갈 궁리를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은행이 나에게 베푼 은혜였지만, 독일연수나 유학은 내 열등감의 발로였습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해내야 했고, 그것도 남들보다 더 빠른 시일 내에 성취해야 했습니다. 나는 주위 사람들을 의식했고,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뭔가를 성취하지 못했을 때 존재목적이나 가치를 상실하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나에게 공포스런 일이었습니다.

     

    나는 어느 조직에서나 조직개혁작업을 맡았습니다. 독일에서 인사조직분야를 전공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가 그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나는 직무상 사람들을 밀어붙여야 했습니다. 조직을 제대로 개혁해 가려면, 무능하게 보이는 임원이나 직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유능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내가 관리자가 된 이후에 한번도 바뀐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의 경영실태는 심각할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의 눈에는 바꿔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사회체제에 대한 울분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시스템을 모두 바꿔야 했습니다. 경영진의 경영태도와 리더십을 보다 합리적인 수준으로 바꾸도록 시스템적인 접근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고, 단숨에 끝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밀어붙여야 했습니다.

     

    시스템을 바꾸면, 아무리 합리적으로 한다 해도 반드시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개혁에는 항상 반대하는 사람이 생기는 데 나는 그들을 충분히 이해해주지 못했습니다. 나의 방식은 거의 일방적이었습니다. 나는 일을 통해 스트레스를 스스로 만들어갔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겪는 갈등뿐만 아니라 왜곡된 사회현상과 비효율적인 시스템들을 볼 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마음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무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과 사회에 대한 절망감과 분노, 그리고 원망과 같은 부정적 정서가 내 마음에 쌓여 갔습니다. 나는 어느 정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코칭이나 자문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가 내 몸에 증상으로 나타났던 겁니다. 문제의 원인은 내 마음의 심연에 쌓여있던 열등감, 불안, 두려움이었는데, 그것을 사회와 시스템, 그리고 타인에게 투사했던 것입니다. 나는 사회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들과 싸웠습니다. 그때 써낸 책이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입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10여 년 해냈습니다. 하지만, 힘겨운 싸움의 끝에 얻은 것은 질병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내가 졌다고 손을 든 것입니다. 내 마음의 심연에 충족되지 않은 무의식적 결핍이 똬리를 틀고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제 내 지식은 체험을 통해 확고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나의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열등감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을 진작부터 이해했더라면 더 좋은 직무수행을 통해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는 아무도 그리고 어떤 것도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멍청하게도 스트레스를 나 스스로 만들어 내고 스스로 고통 받았을 뿐입니다. 무의식적 마음의 결핍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무시하거나 억누르기 쉽습니다. 이런 생태가 계속되면, 무기력해지거나 분노로 가득 차거나 우울해집니다. 마음은,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결핍된 상태가 충분히 충족되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지 몸의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이렇게 의식과 무의식은 하나로 뒤엉켜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몸과 마음도 이원화된 것이 아니라 하나(oneness)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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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