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사물을 통제하려면, 그것을 인간 앞에 세워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본질과 특성과 기능을 철저히 분석해서 그 유용성에 따라 배치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 과학적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문제는 경영의 합리화가 사물의 배치를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조직구성원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경영자는 자신의 부하들을 통제하고 싶어합니다. 통제할 수 없을 때 불안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통제 밖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마치 투명인간이 되어 직원들이 하는 모든 의사결정을 자신이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직원들 지각하는 숫자도 알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그 숫자가 많아지면 근무기강이 해이해졌다고 판단하고 군기 잡는 조치를 취합니다. 내가 20년간 근무했던 조직에서는 이런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됐습니다. 마치 경기사이클이 순환하듯이 말입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나아가 경기침체로 수익이 조금 떨어지면 복사 이면지 활용하라고 지침을 내리고, 업무추진비와 출장비를 억제하라고 지시합니다.

 

기업 내에서 움직이는 모든 사물의 미세한 변화까지 감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ERP시스템>입니다. 거의 모든 기업들이 ERP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리더의 의도는 사물의 변화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업무행태 변화까지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ERP의 목적은 경영을 합리화하는 데 있습니다. 그 최종 상태는 <맥도날드화>입니다. 맥도날드화의 네 가지 특징은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통제에 있습니다.

 

효율성은 고객의 필요에 따라 즉각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고, 계산가능성은 모든 사물의 크기와 양, 그리고 서비스를 측정하여 표준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측가능성은 언제 어디서든지 제품과 서비스가 동일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끝으로 통제는 직원들의 행동이 규정과 매뉴얼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허튼 행동을 미연에 방지하고 목표지향적인 행동을 일으키도록 합니다.

 

사람에 대한 통제 = 지배욕망의 충족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물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통제입니다.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 곧 지배력 행사를 의미합니다. 인간의 타인에 대한 지배욕, 즉 권력욕은 가장 기본적인 욕망입니다. 이 욕망을 적절히 충족시켜 주는 시스템이 바로 ERP입니다. 이 시스템으로 종업원들의 행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RP는 통제를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서 직원들은 맥도날드화에 길들여집니다.

 

리더의 지배욕, 즉 권력에의 의지는 조직을 발전시키려는 의지로 채색되어 겉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리더의 지시통제는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권력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내가 권력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크뤼거(Wilfried Krüger) 교수가 쓴 『기업에서의 권력(Macht in der Unternehmung)』이라는 책을 읽은 후부터였습니다. 이것은 크뤼거 교수가 자신의 교수자격논문을 출판한 것인데, 권력이 기업 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한 내용입니다. 이 책을 읽고, 사회와 조직에서 권력이라는 현상은 중력의 법칙과 같이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권력에의 의지”(Wille zur Macht, will to power)를 어떻게 사회와 조직의 발전에 활용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게 되었습니다.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개념으로 세상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역동성을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의지와 욕망이 인간의 삶을 엮어가게 하는 기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영향을 받은 하이데거는 권력을 존재자의 기초”(Grund des Seiendes)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뭐라고 말했든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다양한 권력현상에 직면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서, 리더와 부하 사이에서,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권력의 장이 생겨납니다. 이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일상적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권력의 개념과 활용에 대해서는 나의 책,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 한국 관료조직의 개혁을 위한 진단과 처방』, 비봉출판사 1998, 260~269쪽과 토마스 고든, 『리더역할 훈련』, 장승현 옮김, 양철북 2002, 251~252쪽을 참조하세요.)

 

권력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권력이란 무엇인가? 타인에 대한 통제가능성을 의미합니다. 권력자는 타인을 처벌하거나 보상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처벌 또는 보상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는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박탈당했을 때 처벌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보상을 박탈하는 것도 처벌로 생각할 수 있으며, 원하지 않는 조치를 당하는 것도 처벌이므로 권력은 항상 처벌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처벌이라는 수단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복종하도록 조정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권력자에게 복종하는 이유는 그가 옳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처벌을 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처벌에 대한 공포심 때문입니다.

 

나는 부모로서, 남편으로서, 교사로서, 상사로서, 경영자로서, 나의 권력에 반응하는 다양한 모습을 경험했습니다. 내가 타인에 대해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만 하더라도 그들은 불안한 상태에 처합니다. 정도가 심해지면 공포스러워합니다. 나 역시 나의 상사가 나에게 그렇게 했을 때 불안한 심리상태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불안하거나 공포스러우면, 그 상태를 면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거나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잘 하거나 원하는 것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권력의 사용은 의존적이고도 복종하는 인간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권력자는 누구나 자신의 부하들이 의존적이고 복종하는 인간이 아니라 자율적이고도 창의적인 인간이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권력자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근원적 욕망인 타인에 대한 지배욕을 충족합니다.

 

 상사의 권력에 대한 부하들의 반응

 

권력이 사용되고 있는 현장에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왜 그런지를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이 권력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하면 됩니다.

 

첫째, 권력이 행사되고 있는 곳에는 의사소통의 양이 급격히 감소합니다. 조직 내에서 권력이 끼치는 폐해 중 가장 중요한 항목입니다. 부하들은 가급적 권력자에게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묻는 말에만 간단히 대답합니다. 처벌을 피하는 선에서 말하되, 말하더라도 가급적 상사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합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권력자는 소통이 잘 안 되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권력자는 소통이 잘 안 되니 소통이 잘 되도록 하라고 다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째, 권력자에게 조직구성원들이 대처하는 수단은 아첨하거나 비위를 맞추어 그의 호의를 얻어 내는 것입니다. 그에게 충성심을 보여줌으로써 신임을 얻고, 그에게서 보상을 얻어냅니다. 이럴 경우 조직은 수용소 문화로 바뀝니다. 수용소 문화란 나치시대에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생긴 것인데, 수용소를 관리하는 독일장병들에게 환심을 사서 카포(Kapo)가 됨으로써 동료 수용인들을 관리하는 권한을 얻어 권력을 행사하는 문화를 말합니다. 조직구성원들은 경쟁적으로 권력자의 환심을 사려고 합니다.

 

셋째, 강압적인 권력자 앞에서는 구성원들 사이에 경쟁과 대립이 심해집니다. 이것은 아주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권력이 행사되는 장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은폐하거나 거짓말하거나 고자질하거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립니다. 이렇게 되는 현상은 내가 남을 나쁘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면 나는 상대적으로 좋게 보일 수 있다는 심리에서 발생합니다. 이럴 경우 팀플레이가 불가능합니다.

 

넷째, 권력에 반응하는 또 다른 방법은 복종하고 순응하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추종하고, 수동적으로 굴복합니다. 권력자 앞에 서면 수첩부터 꺼냅니다. 그리고는 무슨 글을 쓰는지 모르지만 열심히 받아 적습니다. 권력자가 말을 멈추거나 질문을 하면, “말씀 주시면 …”하고 또다시 받아 적으려고 합니다. 시키는 대로 정확히 실천하는 조직구성원을 상상해 보세요!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시나요?

 

다섯째, 복종과 순응의 반대현상도 나타납니다. 도전과 반항입니다. 겉으로는 권력자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돌아서면 그 말과 전혀 다른 뒷담화를 하는 현상을 본 적이 있나요? 아울러 뒷담화는 항상 진실인 것처럼 포장되는 경향이 있고, 빠르게 조직에 확산됩니다. 이런 현상이 발행하는 경우에는 조직의 기능이나 잠재력을 크게 떨어뜨립니다. 막강한 권력이 행사되던 전두환 시절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국민적인 거센 도전과 반항이 생겼습니다. 어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느냐 아니면 숨겨진 도전과 반항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여섯째, 권력이 행사되는 경우, 이를 상쇄하기 위해 조직구성원들이 연대하거나 연합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합법화 하게 된 원인이기도 합니다. “단결하면 힘이 생긴다는 것이 이 대응수단의 밑에 깔린 사상입니다. 우리나라 노조가 강성이라서 해외직접투자를 유치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권력이 그 만큼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노조 또한 그에 대응하기 위해 강한 연대와 연합을 구축한 것입니다. 경영자와 오너가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노조 또한 힘이 빠지게 됩니다. 노조의 힘은 사용자가 쓰는 권력의 힘에 비례하여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권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은폐 엄폐가 잘 된 곳에서 권력자의 눈에 띄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그러면 중간은 가기 때문입니다.

 

권력자에게는 어떤 일이 생기는가?

 

비록 타인을 도와주려는 선한 의도라 할지라도, 타인을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권력을 행사하면 선의와는 상관없이 이러한 엄청난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의 합리화를 구실로 진행되는 <경영의 맥도날드화>는 종업원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경영자들에게 점점 더 환상을 갖게 합니다. 여기에는 종업원들을 쥐어짤수록 그들의 능력을 더 발휘하게 한다는 믿음이 깔려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될까요?

 

권력을 사용할 경우 권력자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조직구성원들의 업무행태와 성과를 일일이 챙겨야 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듭니다. 권력자는 늘 과중한 업무부담을 안게 됩니다. 그래서 쉴새 없이 뭔가를 열심히 합니다. 휴식을 취할 여가가 거의 없습니다. 부하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고받아야 안심합니다. 그런 보고에 근거해서 일일이 지시를 내려야 일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마치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부하들은 권력자가 관심을 갖는 분야에만 신경을 쓰고, 나머지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방치됩니다. 조직 전체로 보면, 부하들은 권력자를 향하여 항상 웃는 얼굴을 내밀고 있지만, 고객을 향해서는 궁둥이를 내밀고 있습니다.

 

둘째, 결정된 일을 실행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듭니다. 부하들은 상사에 의해 강요된 일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감을 덜 느끼면서 일합니다. 부하들은 지시명령대로 무난히 수행하면 됩니다. 구태여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때로는 일을 하다가 떡고물이라도 생길 것이 있다면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리더는 부하들의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경찰 노릇까지 해야 합니다.

 

셋째, 리더는 부하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낍니다. 소외되는 느낌은 리더가 권력을 사용할 때 치러야 하는 대가입니다. 이런 소외감을 피하기 위해서 무능하지만 충성심이 강한 사람들을 기용함으로써 자신이 리더십을 확보한 것처럼 자기기만(self-deception)에 빠지기도 합니다.

 

넷째, 긴장과 불안, 염려 때문에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실제로 육체적 질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리더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리더는 권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권력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도 병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에의 의지, 즉 지배욕, 다른 말로 하면 타인에 대한 통제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경영의 맥도날드화가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경영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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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경영의 합리화 조치가 엄청난 지출과 노력에 비해서 <비용절감>에도 <고객만족>에도 별로 큰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실무경험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영의 맥도날드화가 가져오는 폐해를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경영에 있어 업무 프로세스의 전과정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기업의 업무프로세스를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들이댄 미국의 경영학자들이 있었습니다. 마이클 해머(Michael Hammer)와 제임스 챔피(James Champy)가 제안한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개념이었습니다. 이런 혁명적인 개념을 들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일본제품과 품질비교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기업내부의 여러 단위조직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지 않고 마치 독립된 것처럼 업무처리가 이루어짐으로써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에 학자들은 업무 흐름을 감안하여 시스템을 리엔지니어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용어는 대단한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기업계와 컨설팅 업계에 리엔지니어링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주장이 먹히게 된 배경에는 1980년대 일본제품이 미국시장을 무서울 정도로 파고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식 의사결정시스템은 본래 품의제도(稟議制度)에 의한 상호연계를 중시하는 방식입니다. 이 제도는 최종 결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관련부서에 합의와 협의 또는 협조를 얻어서 실행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품의제도에 의해 기안에서부터 실행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서로 협력하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결정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지만,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실행에 탄력이 붙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품의제도는 일재의 잔재로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이 제도의 장단점은 나의 책,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비봉출판사 1998을 참조하세요)

 

일본 기업과 달리, 미국 기업에서는 각 직위별 권한과 책임이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어서 각 부서들이 자신의 권한에 따라 독립적으로 의사결정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렇다 보니, 일본제품의 질적 수준이 높아진 이면에는 의사결정과정의 협동문화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고, 미국기업들의 업무프로세스를 리엔지니어링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합리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엔지니어링 해법으로 제시한 것 자체가 지극히 미국적입니다. 엔지니어링이란 공학인데, 공학은 사물을 숫자로 측정하고 계산하여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현실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물의 배치가 잘못되어 있다면, 리엔지니어링을 통해 바로잡아야 합니다. 사물의 배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공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좋은데, 그 결과 사람까지 공학적 계산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다 보니, 리엔지니어링은 직원해고나 구조조정과 연관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최근에는 업무프로세스개선(Business Process Improvement)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이런 사상은 곧바로 기업의 모든 자원을 기업목표에 한 방향으로 정렬시킴으로써 경영의 합리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합니다. 이것을 전산시스템으로 구현한 것이 소위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입니다. 이것을 Enterprise Resource Planning(ERP)이라고 합니다. 나는 이런 아이디어를 <경영의 맥도날드화>라고 부릅니다. 맥도날드가 레스토랑의 식사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꾸었듯이, ERP는 혁명적인 기업관리방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구매관리, 생산관리, 유통관리, 고객관계관리, 공급자관계관리, 재무 및 회계관리, 인사관리, 마케팅 및 판매관리, 경영의사결정관리, 사내외 포털과 블로그 등에 이르기까지 회사의 전분야를 망라하는 기업 내 <빅 브라더>(big brother)가 되었습니다. 경영의 맥도날드화가 거의 마지막 단계까지 온 것입니다. 기업의 모든 자원이 중앙통제시스템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ERP시스템의 주요 공급업자들은 가장 바람직한 비즈니스관행을 솔루션으로 만들어서 기업들에게 팔았습니다. 경영자는 마치 조종사가 조종석에 앉아서 자신이 원하는 계기판을 보면서 항해하듯이 기업경영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상품이 어느 정도의 마진으로 얼마나 팔렸는지 즉시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지역에서 어떤 고객들이 회사이익에 어느 정도 공헌하고 있는지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업부문에서 지금 어떤 문제가 발생했길래 매출이 떨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경영진은 이토록 매력적인 시스템을 깔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시스템을 깔기 위해서 직간접적으로 들인 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일일이 엑셀로 계산하던 것이 메인 서버에서 자동으로 계산됩니다. 원하는 데이터가 경영진에게 제공됩니다. 매출액에서부터 이익까지 보고 싶은 데이터는 즉시 모니터에 나타납니다. 매출액을 드릴다운(drilldown) 하면 상품별 매출액을 지역별로 나누어서 볼 수도 있습니다. 총이익을 영업이익과 경상이익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고, 더 드릴다운 하면 지역별 상품별 고객별 이익까지 세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드릴다운 할까요? 그러면 세일즈맨의 거래행위가 회사에 미치는 이익민감도까지 분석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원하는 즉시 자신의 책상모니터에서!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제 질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 세세한 이익규모와 미주알고주알 정보를 알아서 뭘 하겠다는 건가? 놀랍게도 경영진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정보가 많으면 의사결정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자신이 원하던 정보들이 주어졌지만 오히려 더 헷갈리기만 합니다. 회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적자사업을 계속해야 할지 접어야 할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ERP시스템은 그 어떤 것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비행기 조종사처럼 멋진 항해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경영진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한 ERP시스템이 마치 경영철학의 빈곤을 채워줄 수 있으리라 착각했습니다. 수단은 목적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목적이 없으면 수단도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경영자들은 자신의 부실한 경영철학을 숨기기 위해 시스템과 같은 수단에 집착하는지도 모릅니다. 경영자들이 경영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어느 정도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ERP와 같은 전산시스템이 조직과 조직구성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ERP와 같은 전산시스템을 깔았을 때, 조직과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인간과 조직에 관한 약간의 경험과 지식만 있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첫째, 각 직무별 성과책임이 엄격하게 규정되기 때문에 개인별 부서별 경계가 명확하게 되어 개별주의적 조직문화가 생겨납니다. 이것은 조직이 하나의 협동체계로 인식하기보다 개인별 부서별 경쟁체계를 지향하게 됩니다. 업무프로세스를 합리화하여 서로 협동하고자 했던 것이 그 취지였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둘째, 개인별 부서별로 중요하고도 민감한 정보는 ERP시스템에 입력하지 않으려는 저항이 생깁니다. 귀중한 정보, 비밀스런 정보를 다른 사람이나 다른 부서에 공개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ERP에 들어있는 정보는 대개의 경우 그렇게 중요한 정보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됩니다. 그 속에는 점차 쓰레기만 쌓이게 됩니다. 또한 비즈니스 도메인이 다른 경우에는 통합적인 자료와 정보관리가 그렇게 큰 혜택을 주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제조회사와 자동차판매를 위한 금융회사와는 그 사업특성이 완전히 달라서 정보의 통합이 주는 유익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셋째, ERP시스템 자체에서 오는 한계인데, 인간의 기업행위와 그에 따른 정보가 중요도에 따라 분류되어 데이터로 정리할 수 있다는 발상이 지극히 행정편의적이고 공학적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의 행위와 그 행위가 나타내는 의미는 숫자나 지표로 계량화하기 곤란합니다. 설사 계량화했더라도 그 의미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계량화는 항상 특정기준에 의해 측정된 숫자 이외의 모든 가치를 삭제하기 때문입니다. 삭제된 가치가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일단 ERP시스템이 구축되고 나면, 그 속에 있는 데이터에만 중요한 의미가 부여됩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데이터는 대개 쓰레기들입니다.

 

넷째, 지엽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ERP시스템을 까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입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그 후에도 유지 보수하는 비용이 만만찬습니다.

 

이러한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ERP가 주는 장점도 많습니다. 데이터의 자동처리와 회계정보의 투명성과 처리의 신속성은 가장 큰 혜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업무프로세스를 합리화하려는 노력이 경영을 맥도날드화함으로써, 기업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우아한 가치와 창조적 상상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내가 실무에 있을 때는 ERP를 까는 것이 대세였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나 혼자의 힘으로 이런 대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ERP를 깔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효능이 매우 제한적이므로 데이터처리의 자동화 수준에서 깔아야 한다는 점을 주장했습니다. 아무도 내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고, 다들 거대한 대형프로젝트를 밀어부쳤습니다. 시스템공급 업체와 컨설팅 업체에서는 큰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많은 기업들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면서 ERP를 강행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까지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누리는 기업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기업들은 컨설팅 회사가 주장하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떠다 이렇게 되었는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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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앞에서 회사를 합리화하는 첫 번째 이유였던 <비용절감은 오히려 장단기적으로 비용을 증대시킨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합리화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고객을 만족시켜서 장기적으로 판매를 유지 확대하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경영의 맥도날드화가 과연 고객을 만족시키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맥도날드화하는 방식이 고객관계관리(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입니다. 흔히 CRM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객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여 충족시켜 줌으로써 효율적으로 매출을 증대시키려는 일련의 노력을 말합니다. 채식주의자인 고객에게 스테이크를 대접하려고 한다면 큰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이 휴가를 떠났는지도 모른 채 생선을 선물로 보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런 비효율적인 고객관계활동을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바꾸려는 아이디어는 훌륭한 것입니다.

 

CRM기술은 20세기 말에 급속히 발달해서 지금은 소프트웨어 패키지만해도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달러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패키지 공급회사들은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을 들어보면, 회사 경영진이 CRM시스템을 깔면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확신을 갖게끔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기업들이 고객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시스템을 깔고, 데이터를 유지 관리하는 전문인력을 채용합니다.

 

최근에는 단순히 고객관계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내부프로세스를 개선하기도 합니다. 전략, 마케팅, 광고선전, 재무, 인사 등과 같은 백오피스 기능까지도 CRM에 흡수하여 처리하는 광범위한 패키지까지 활용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특성별 시장점유율, 고객유형별 이익기여도, 지역별 고객성향 등을 분석하여 적절한 전략수단을 구사할 수 있게 한다는 뜻입니다.

 

CRM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고객에 관한 모든 정보, 즉 고객 본인의 신상정보뿐만 아니라 그 친인척과의 관계를 일일이 표준화된 자료로 바꾸어 데이터베이스로 저장하는 엄청난 수작업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고객의 개인적인 욕구와 욕망을 파악하여 데이터베이스에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컴퓨터로 분석하여 고객접점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은 죽어있는 사물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욕구와 욕망은 수시로 변하고, 사회적 관계도 쉴새 없이 변화합니다. 인간이 자신이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역동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역동적인 변화를 데이터화하여 적시에 입력하지 않으면 그 데이터는 쓰레기가 됩니다. 그래서 데이터의 청소(cleaning) CRM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정기적으로 청소해주는 전문인력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제대로 청소하기 위해서는 세일즈맨이 고객의 정확한 정보를 일일이 직접 입력해야 합니다.

 

CRM이 실패하는 원인을 청소를 제때에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청소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일즈맨은 자신의 소중한 고객의 정보를 CRM시스템에 노출시키기를 꺼려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면 고객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정확한 정보의 수집단계부터 쉽지 않은 싸움을 해야 합니다. CRM시스템 공급업체들은 이런저런 사정을 모두 삭제하고 완벽한 데이터가 수집된다는 전제하에 프레젠테이션 했던 것입니다. 전제가 틀리면, 모든 것이 틀려집니다.

 

CRM에는 인간의 실존적 체험과 욕망을 수치화하여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인간의 실존은 객관적인 수치로 계량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 정신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던 할머니들의 실존적 체험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몸소 실존적으로 체험한 사람과 그 사건을 단순히 전해 들은 사람들 사이에는 결코 메울 수 없는 이해의 간극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객관적 수치로 환원하여 잘 관리함으로써 고객관계가 좋아졌다고 느낀 세일즈맨을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CRM이 성공적이었다는 회사는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아직 견문이 짧아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CRM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실패의 원인은 인간의 실존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CRM은 인간의 욕망을 몇 개의 변수로 환원하여 관리하면 충분히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허망한 믿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글의 독자 중에는 금융기관이나 거래 회사로부터 이러저러한 선물을 받아보았을 것입니다. VIP고객이라면 명절마다 큰 선물을 받았을 것이고 평범한 고객이라면 평범한 선물을 받았을 것입니다. 대개 갈비세트에서부터 신년다이어리와 달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물을 보냅니다. 배달이 잘못 되는 경우도 있고, 선물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CRM데이터의 분류에 근거해서 그렇게 처리됩니다.

 

방금 말했듯이 CRM데이터는 고객접점을 책임지고 있는 세일즈맨이 일일이 직접 입력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쓰레기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선물을 받아 보니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던가요? 대부분은 회사에서 부질없는 짓을 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썩 필요하다고 느끼던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만든 고객만족의 맥도날드화가 고객만족은커녕 회사가 고객을 냉소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CRM은 세일즈맨의 마음이 고객의 마음과 연결되어서 고객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고객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여길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판매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런 고객관계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교차판매(cross-selling)와 추가판매(up-selling)가 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세일즈맨들을 선발하고 교육시킬 때, 이런 감정능력(emotional capability)를 잘 감안해야 합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고객관계의 철학을 무시한 채, CRM시스템을 깔아놓고 데이터베이스에서 뽑아주는 자료를 가지고 고객들에게 판매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입니다. 판매를 잘 하는 판매왕들의 진솔한 얘기를 들어보면, 회사가 공급해주는 CRM자료는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인데, 그들에게는 그게 다 죽은 데이터와 쓸모 없는 정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엄청난 돈을 들여 깔아 놓은 CRM시스템을 갈아 엎으란 말인가? CRM팀을 해체하란 말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최소한으로 줄이되, 잘 활용하는 길을 찾아보면 됩니다. 지금처럼 그렇게 엄청난 직간접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대폭 축소해야 합니다. 현장의 세일즈맨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기능, 즉 세일즈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능만을 남겨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인간의 영혼과 마음을 전산프로그램에 맡기려는 발상이 얼마나 잘못 된 것인지를 반성할 수만 있다면, 비싸긴 했지만 그 동안 수업료를 지불한 것으로 치면 됩니다. 훌륭한 목수는 망치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목수는 망치로 자신의 사상을 만들어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목수의 영혼과 마음을 잘 이해하는 것이 선결과제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필요로 하는 적절한 망치를 공급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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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세계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 합리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합리화(rationalization)란 원하는 것을 달성하게 하는 모든 수단과 대안을 계산하여 최대한 활용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합리화의 정의에는 다음과 같은 핵심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원하는 것(desired ends)

계산 가능한 수단(calculable means)

최대화(maximization)

 

여기서 원하는 것은 단순한 생활의 편리함에서부터 다른 사람과 구별 짓는 사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드러납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돈입니다. 돈을 벌어야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돈이 합리화의 원동력이 됩니다. 계산 가능한 수단에는 물적 자원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도 포함됩니다. 최대화는 그 수단을 활용하여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강구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합리화의 극치를 이루는 것이 음식문화의 표준화입니다. 집집마다, 사람마다 다른 미묘한 맛의 차이를 느끼는 인간이 먹는 것을 표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아무도 음식이 표준화되고 계산 가능하며 통제 가능한 상품으로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지만, 이것을 가능케 한 인물이 바로 레이 크록(Ray Kroc, 1902~1984)이었습니다. 그는 맥도날드를 프랜차이즈화함으로써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맥도날드야말로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합리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20세기 전반의 포드자동차의 T모델에 버금가는 위대한 합리화였습니다. 맥도날드는 미국식 합리화의 상징입니다. 맥도날드식의 합리화가 우리의 일상생활의 전 영역에 끊임없이 파고들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분석한 미국 사회학자 조지 리처(George Ritzer)는 이것을 사회의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 of Society)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맥도날드화의 이점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들었습니다. (조지 리처, 김종덕 옮김, 맥드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시유시 1999 참조)

 

효율성: 배고픔을 즉각적으로 채워줄 수 있습니다.

계산 가능성: 제공되는 제품의 크기와 양, 그리고 서비스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습니다.

예측 가능성: 언제 어디서나 제품과 서비스가 동일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통제: 매뉴얼에 의해 인간을 통제합니다.

 

앞의 세 개는 장점으로 이해되는 데, 마지막의 통제는 어떻게 장점일 수 있느냐고 의아해 할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비합리적인 동물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일관성이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감정은 정말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런 인간을 무인기계가 통제하기 때문에 일관성이 생겨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무인기계에 의한 통제의 장점입니다.

그래서 맥도날드화 되었고, 지금도 맥도날드화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에는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아파트생활이 전형적인 삶의 맥도날드화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맥도날드식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효율적이고 계산과 예측이 가능하고, 통제되고 있는 삶을 말입니다. 쇼핑이 맥도날드화 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에 가면 진열되어 있는 상품을 골라 계산하고 빠져 나오면 됩니다. 맥도날드화의 이점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습니다.

 

큰 문제는 교육이 맥도날드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험문제를 잘 푸는 학생들을 만드는 것이 일선학교의 목표가 됨으로써 학생들을 햄버거 찍어내듯이 학교를 졸업시킵니다. 더 큰 문제는 온 사회의 시스템이 맥도날드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를 졸업해도 역시 맥도날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 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대부분 기획사에 의해 맥도날드화된 인물들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6,70년대 활동했던 가수들은 적어도 뚜렷한 자기 개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은 성형으로 제조하여 춤으로 몸을 만들어서 무대에선 립싱크로 마무리하면 됩니다. 이런 연예인들에게 열광하는 것 또한 맥도날드화되어 있습니다. 팬클럽 만들어서 마케팅 전략을 잘 쓰면 인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디가 자연스러운 것이고 어디가 인위적인 것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맥도날드 햄버거처럼.

 

정말 큰 문제는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이 온통 맥도날드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조직은 철저하게 규정과 규칙, 지침과 매뉴얼로 운영됩니다. 이런 것들이 구성원들을 통제합니다. 정보시스템이 깔려 있어서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조직구성원들이 그 시스템을 잘 따라 하면 중간은 가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정보시스템을 깔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처리하면 될 뿐입니다. 계량화된 성과관리시스템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효율성이 창의성을 갉아먹는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렇게 합리화하는 원동력은 돈입니다. 패스트푸드업계의 경쟁에 대해 레이 크록이 한 말을 볼까요.


"이것은 쥐가 쥐를 먹고 개가 개를 먹는 형국이다. 그들이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그들을 죽일 것이다."(바버라 오클리, 이종삼 옮김, 나쁜 유전자, 살림 2008, 408쪽)

 

레이 크록에 있어서 돈은 모든 것입니다. 맥도날드를 살리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돈의 힘입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이성이 세계를 합리화하면 할수록 오히려 비합리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의 폐해는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을수록, 나아가 그것에 중독될수록 육체와 정신이 더욱 피폐해지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생활이 편리하지만 비인간적일 정도로 개인주의화되는 폐해는 점점 심해집니다.

 

천천히 조리된 음식을, 명상적 태도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을 때, 삶은 풍요로워집니다. 텃밭에서 일용할 양식을 재배해서 먹는 삶이 아파트 살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실천할 수 없도록 구조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맥도날드화의 폐해를 줄일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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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