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영학의 기초는 모든 것을 계량화하여 합리화하고자 했던 <테일러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테일러보다 계량화에 대한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인물이 <맥나마라>였습니다. 그는 자동차회사의 경영진으로, 국방장관으로, 세계은행총재로 근무하는 동안, 자신의 이상을 데이터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합리적 사고로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과지표(performance indicator)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이를 통해 관리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숫자는 객관적이지 않으며, 항상 의미가 붙어있다

 

성과지표를 스코어로 매길 수 있도록 숫자화하는 데에는, 숫자가 주는 강력한 힘에 대한 믿음과 지표의 객관성을 높여준다는 믿음이 깔려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숫자가 주는 마력에 빠집니다. 그리고 숫자는 객관성을 갖는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숫자는 가치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숫자에는 항상 어떤 의미가 붙어있습니다.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숫자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똑 같은 숫자라도 그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냉장고를 연간 10억원의 매출을 올린 홍길동이라는 세일즈맨과 똑 같은 냉장고로 연간 10억원의 매출을 올린 김갑순이라는 세일즈우먼이 있다고 칩시다. 숫자로 보면, 똑 같습니다. 둘 다 똑 같은 성과를 올렸으므로 회사입장에서는 똑 같이 취급해야 정당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숫자에는 결코 똑 같을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숫자에는 항상 어떤 의미가 붙어 있습니다. 만약 홍길동이라는 세일즈맨은 강남의 압구정동에서 올린 매출이고, 김갑순이라는 세일즈우먼은 달동네에서 올린 매출이라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똑 같이 취급할 수 있을까요? 지극히 단순화시킨 사례지만, 어떤 경우에도 숫자에는 무수히 많은 가치와 의미들이 붙어 있습니다.

 

시험 성적이 95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잘 한 것일까 못한 것일까? 모든 학생들이 100점을 맞았는데, 95점을 맞은 것이라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평균점수가 70점이었다면, 95점은 무슨 의미일까요? 평균점수가 98점이었다면, 95점은 무슨 뜻일까요? 헷갈리죠?

 

전교 석차 3등은 또 무슨 뜻일까요? 잘 한 것일까요? 못한 것일까요? 10명중에서 3등과, 100중에서 3등은 같은 것일까요? 다른 것일까요? 다른 학교학생까지 합쳐서 보면 어떻게 될까요? 전국적인 석차로는 어떨까요? 아니면 다른 나라 학생들까지 포함하면 어떻게 될까요? 부자촌 학교의 3등과 농어촌 학교의 3등은 어떨까요? 족집게 과외로 무장한 학생의 3등과 소녀가장의 3등을 비교하는 것은 어떨까요? 헷갈리죠?

 

그래서 통계학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통계학은 사물을 숫자로 전환하여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혀내는 학문입니다. 거꾸로 통계학은 숫자에 붙어있는 각종 의미를 떼어내는 학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회과학은 통계학의 도움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학문이 되었습니다. 고객만족도, 투표성향, 직원충성도, 환자의 완치율 등과 같은 것은 모두 통계학에 의존하는 지표들입니다.

 

그런데, 통계학은 어떤 대상이 숫자로 전환되지 않으면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억지로라도 숫자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이때 몇 가지 사항을 가정합니다.

 

가장 단순한 예를 들어 보죠. 운동장에 모인 사람 수를 세려고 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가정이 필요합니다. 모두 300명이라고 한다면, 남자만 그렇다는 얘긴지? 성인만 그렇다는 얘긴지? 아니면 어린이도 포함된 것인지? 어린이를 포함한다면 몇 살까지 포함시킬 것인지? 임신중인 태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경제조회사 직원은 안경 쓴 사람만을 셀 것이고, 산부인과 의사는 가임 여성만을 셀지도 모릅니다. 계산하는 목적에 따라 숫자는 확 달라집니다.

 

그래서 통계학자 데밍(W. Edwards Deming, 1900~1993)은 이 세상에 참값(true value)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실험적 관찰에 의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측정절차나 관찰의도에 따라 새로운 숫자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혀 숫자로 전환되지 않는 그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미가 삭제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숫자는 그 숫자를 나타나게 한 가치기준 이외의 모든 가치를 생략해 버립니다. 오로지 그 가치만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회과학에서 객관성을 확보하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좌우간 숫자로 전환해서 통계학의 기법들로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과학자들은 통계학을 필수로 공부해야 하며, 통계수치를 통해 사회를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통계학적 기법을 통해 처리된 모든 숫자는 사실을 나타낼 뿐 아니라 객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단의 합리화와 목적의 합리화

 

그래서 경영현상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이슈들을 숫자로 전환하여 통계적인 처리를 거치려고 합니다. 그렇게 나온 숫자라야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근대계몽주의가 뿌린 사상적 전통입니다. 오늘날 합리화의 전제는 모든 사태와 현상과 사물을 계량화를 통해 숫자로 표현해야 하고, 그 숫자를 통계적 기법에 따라 처리함으로써 객관적인 모습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BSC는 매우 합리적인 수단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나는 BSC수단의 합리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을 세밀히 관찰했던 사람이 바로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였습니다. 그는 이것을 합리화(rationalization)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합리화에는 크게 보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수단의 합리화와 목적의 합리화입니다.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는 이것을 도구적 합리성과 의사소통적 합리성으로 구분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BSC는 수단의 합리화 장치입니다. 따라서 수단은 목적에 종속되어야 합니다. 수단이 목적을 바꾸어서는 안 되며,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BSC라는 수단이 워낙 경영진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다 보니(다른 말로 하면 컨설턴트에게는 돈벌이가 되다 보니), 목적을 잃어버린 채 BSC 자체의 정교화에 노력을 치중해 왔습니다. 캐플란 교수와 노튼 박사는 1996년 처음 단행본으로 출간된 『BSC: Measures that drive performance』에서부터 2006년의 『Alignment』에 이르기까지 목적합리성보다는 수단합리성을 정치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BSC개념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게 된 것이죠. 1990년대 초반에 개념화된 BSC는 이제 기업의 목적과 이념까지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계량화하면서 숫자로 목적과 수단을 통제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의 노력과 투자에 비해 그 효과는 신통치 않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요? BSC에서는 목적의 합리성을 명확하게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너무나 명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재무적 이익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것에 대해 더 물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죠.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정직하게 제기해야 할 때입니다.

 

BSC가 수단의 합리화 장치라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BSC에는 그것이 재무적 이익임을 암묵적으로 때로는 명시적으로 가정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재무적 이익을 위해 고객, 내부프로세스, 구성원의 학습과 성장을 고려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이제 제대로 묻겠습니다.

 

기업에서 재무적 이익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가?

 

정답은 아니다입니다. 왜냐? 인간은 물을 마시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은 물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자동차는 연료가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렇다고 자동차는 연료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업은 재무적 이익이 없으면 생존이 곤란합니다. 그렇다고 기업이 재무적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은 아닙니다.(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기업을 세운 것은 영리를 추구하기 위해 투자한 투자자들의 몫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누가 기업을 하겠는가? 반론의 소리가 내 귀에 쟁쟁거립니다. 그런 목적으로 기업을 세웠다 해도 일단 기업활동을 통해 얻은 이익은 사회적 현상입니다. 바로 여기서 피터 드러커의 통찰이 빛나는 대목입니다. 드러커는 이익의 지평을 넓힌 사람입니다. 기업의 이익이란 투자자의 위험프리미엄, 진부화에 대한 재투자비용, 사회적 공헌 등과 같은 협동의 결과라고 보았습니다. 기업에서 이익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후일 상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재무적 이익, 연료, 물은 모두 수단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위한 수단인가?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BSC는 기업의 존재목적이 재무적 이익인 것으로 가정하여 고안되어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BSC의 개념을 그대로 밀어붙이면 기업의 재무적 이익이 극대화될 수 있는 것처럼 구조화되었습니다. 재무적 이익을 위해 구성원을 쥐어짜는 방식의 경영은 결국 구성원의 능력과 행복을 감퇴시킵니다. 그러므로 기업이 재무적 이익에 몰입하는 것은 곧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의 원천을 잃어버리는 셈이 됩니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소수의 빗나간 행복추구를 위해 다수의 불행을 요구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재무적 이익을 추구할수록 재무적 이익에서 멀어지는 현상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월 스트리트가 온갖 계량화된 기법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결국은 자신들이 추구하던 재무적 이익뿐만 아니라 그들의 도덕성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BSC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재무적 이익을 얻으려는 수단의 합리화가 진척되면 될수록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는 말입니다.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1905~1997) 박사는 이것을 의도의 역설”(paradoxical intention)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목적을 위한 의도는 그 의도를 강렬하게 드러낼수록 그 목적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프랭클 박사가 나치시절 강제수용소에서 겪었던 실존적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였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경험합니다. 프레젠테이션을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떨립니다. 면접시험을 잘 보려고 애쓸수록 정작 인터뷰할 때는 머리가 하얗게 바뀝니다. 주식시장에서 더 많은 돈을 따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돈을 잃습니다.

 

우리금융지주회사의 회장을 역임하셨던 윤병철 회장이 언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돈은 네발 가진 짐승과 같아서 두발 가진 사람이 좇아갈 수 없다.” 오랜 기간 금융인으로 존경 받는 삶을 살아온 경험과 지혜를 되새겨봐야 할 때입니다.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면 그 결과로 돈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나는 BSC를 도입한 기업과 관료조직에서 소위 마음의 2중 장부가 쓰이고 있는 상황을 자주 보았습니다. BSC의 성공여부는 최고경영층의 이해와 관심에 달려있다고 했기 때문에(하기야 어떤 일이 최고경영자의 이해와 관심이 없이도 성공할 수 있을까), BSC도입을 담당하는 혁신담당자들은 윗선의 힘을 빌어 현업부서를 BSC형식에 맞추어 숫자를 보고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러면 현업부서에서는 형식에 맞는, 그러나 큰 불이익을 받지 않을 정도의 숫자를 꿰 맞추어 보고합니다.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하다 보면 도덕적 감정이 굳어버립니다. 세상은 다 이런 거야! 다른 방도가 없잖아! 해달라는 대로 해줘! 스스럼없이 자포자기 하고 제도에 순응하여 살아갑니다. 점점 영혼의 능력을 잃어갑니다.

 

숫자는 스스로 만들어 냈을 때 의미를 갖습니다. 외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의해 만들어진 숫자는 마음에 억압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숫자 자체가 발산하는 강력한 힘이 인간의 영혼과 실존을 통해 발산되도록 해야 높은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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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맥나마라는 미국사회를 온통 계량화하려고 했습니다.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했던 7년간뿐만 아니라 그 후 세계은행(World Bank)총재로 근무했던 13년간을 합치면, 그의 영향력은 그 누구보다 컸습니다.

그러나, 품질관리 전문가이자 통계학자였던 에드워즈 데밍(W. Edwards Deming, 1900~1993)은 미국경영학의 폐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 국무부 공무원들에게 미국의 경영기법을 우방 국가에 수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계량화하는 숫자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품질혁신을 위한 혁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이익이나 권력, 명예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었던 사람처럼 일생을 살았습니다. 나는 데밍을 단순한 경영학자를 뛰어 넘는 위대한 인물로 여깁니다. 내가 그를 추앙하는 이유는 그의 사상에서 단순한 통계학자가 아닌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본적인 경영사상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제로 일본산 제품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고, 이를 통해 일본이 경제부흥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는 품질이 숫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일본 제품들이 미국 시장을 석권하자, 미국기업의 CEO들은 일본품질관리의 아버지 데밍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미국 자동차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데밍을 초대해 강연을 들었습니다.

 

노구를 이끌고 나온 데밍은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미국이 왜 제대로 경쟁하지 못할까요? 일본의 임금수준이 낮아서도 아니고, 도요타 시티에 최신식 시설이 있어서도 아니고, 엔화 약세 때문도 아닙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바로 여러분들, 경영진입니다!”

 

데밍은 자동차 업계의 최고위직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사장이었던 짐 맥도널드(Jim McDonald)에게 엄한 질책을 퍼부었습니다. GM이 안고 있는 품질문제의 85%는 그의 책임이라고 혹평했습니다.

 

그 후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요? GM의 생산책임자들이 데밍을 몰래 초빙했다가는 목이 달아나는 사태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 후 자동차업계에서는 데밍이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유명해졌지만, 자신의 직무를 방기하고 있던 최고경영진에 대한 질책과는 달리, 학습하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따듯한 애정을 보이곤 했습니다. 기업체의 고위직 임원들이 시스템의 변화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경우, 데밍은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날 미국 자동차 업계가 파산의 지경을 맞게 된 것은 노사문제가 아니라 경영진의 문제였습니다. 품질이 계량화를 통해 이룰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품질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으로부터 나옵니다. 제품의 품질, 기업의 품질, 조직의 품질, 국가의 품질은 지도자의 정신과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의 품질 역시 그 정신과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미국의 국가품질이 엉망이 된 것은 그들의 정신문화가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밍은 미국 외교부 직원들에게 미국식 경영을 우방에 수출하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데밍에 관한 에피소드는 안드레아 가보, 심현식 옮김, 『자본주의 철학자들』, 황금가지 2006, 373~445쪽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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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테일러가 뿌린 과학적 측정에 의한 관리는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성과급과 함께 최적의 작업환경을 마련해 준다면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최적의 작업환경이란 인간의 근육과 기계장치가 서로 조화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될 수 없다는 격언이 미국의 산업계에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이것이 너무 과도해져서 1912년 의회에서는 노동자의 작업활동을 스톱워치로 재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시켰습니다. 1949년에 가서야 이 금지조항이 풀렸습니다.

 

이런 과학적 측정의 열풍은 테일러 이후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전혀 식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행위와 심리에 대해 측정하고 싶은 유혹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품질관리운동을 거쳐 벤치마킹, 균형성과지표, 식스시그마 운동에 이르기까지 산업의 전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공장노동에 적용되던 이념이 오늘날에는 지식근로자에게까지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경영학자들이 테일러의 생산성 복음을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 테일러리즘을 넘어서고 싶었던 사람은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였던 엘톤 메이요(George Elton Mayo, 1880~1949)였습니다. 7년 반이나 넘는 장기간의 실험 끝에 인간은 타인에 의한 감정적 관심에 따라 생산성이 변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1933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그런 결론을 얻게 한 것이 저 유명한 호손 연구(Hawthorne Experiment)입니다. 전화설비 생산공장이었는데, 조명의 밝기와 생산성, 휴식시간과 생산성, 작업일수와 생산성은 물론이고, 성과급, 수면시간, 심지어 공장 내 습도까지도 실험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어떤 변수를 어떤 방식으로 조작해도 생산성이 올라갔습니다. 공장 노동자에게 실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관리자와 연구진에게 그만큼 주목을 받는 것이고, 그것이 상사와 동료들 간에 인간관계를 좋게 만듦으로써 생산성이 올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나도 상사나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을 때 일이 재미있었고 열심히 일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내가 한국은행에서 조직개혁작업을 할 때는 엄청난 업무량으로 육체적으로는 벅찼지만, 상사와 동료, 그리고 부하직원들과의 원만한 관계로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엘톤 메이요 교수의 연구결과가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호손실험은 테일러리즘에 대한 반격이었습니다. 인간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 감정은 작업장의 상사나 동료와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실험결과가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행위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감정에 의해 좌우되며, 이것이 곧 생산성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이요는, 인간은 결코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경제적 동물이 아니라 감정을 가진 사회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온 세상이 테일러의 복음을 따라 다녔지만, 메이요는 그게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긴 하지만, 이 거대한 실험프로젝트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았습니다. 실험에 참가했던 노동자들은 사회적 관계에 의해 생산성이 좋아진 게 아니라 돈 벌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이 이면에 깔려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팀의 인사를 담당했던 관리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증가된 주된 이유는 추가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실험에 참여했던 동료 연구자들도, 메이요가 연구결과를 다르게 해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 교수진이 추진했던 방대한 연구는 실패작이었습니다. 메이요는 자신만의 관점과 신념을 연구결과에 꿰어 맞추었고 결과들을 교묘히 조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동안 기업을 연구해 왔던 사람들이 제기한 상반되는 견해를 무시했습니다. 말하자면, 노동자들이 단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생산성이 좋아졌다는 엉터리 결과를 얻기 위해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쏟아 부었던 것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너무나 그럴듯하고, 단순하고 인간적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었습니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치 진실처럼 느껴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연구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도 기업 내에 비공식조직인 각종 동아리 모임과 호프데이와 같은 행사를 장려하는 것은 메이요의 덕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업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비공식적인 행사들이 과연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여주는지는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단 한번도 그런 행사를 통해 일에 대한 동기가 고양된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직원들간의 화합을 위해 연수원에서 각자의 성격특성(MBTI, DiSC와 같은 검사지로 성격유형을 분석한 결과)을 비교하고 장단점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협조하도록 유도하는 방식과 리더십 스타일과 유형을 분석(수많은 분석틀들이 시중에 유포되어 있음)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방식의 훈련코스를 여러번 참가해봤습니다. 연수를 받을 때는 재미있었지만, 이런 훈련을 통해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특수한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만, 짐작컨대, 다른 사람들도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베푸는 행사라는 게 대부분 회사가 직원들에게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는 알리바이, 즉 생쇼(show-off)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이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신뢰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성격적 특성이나 행동패턴을 이해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사(퍼포먼스)가 다 엘톤 메이요의 아이디어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껍데기를 보면 그럴듯 한데, 그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아무튼, 인간이 일하는 근본적 동기는 무엇인가? 테일러가 주창한 것처럼 돈을 위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노동윤리인가? 메이요의 신념처럼 인간관계에 의해 인정받으려는 욕구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1930년대 미국경영학은 이 의문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을 합리화하려는 두 가지 시도가 모두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테일러리즘의 열풍은 가시지 않았고, 회사는 여전히 직원들의 노동현장을 몰래 숨어서 스톱워치로 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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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인적자원을 합리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과학적으로 실천한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경영학의 태조라고 할 수 있는 프레데릭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 1856~1915)입니다. 아버지는 퀘이커 교도인 법률가였고, 어머니는 청교도 이민자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래서 테일러에게는 엄격한 개신교 노동윤리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 사람이었습니다. 담배와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고, 커피와 차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괜히 흥분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애는 청교도적인 삶의 전형이었습니다.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하버드 법대에 들어갔으나 시력이 나빠져 공부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는 주물공장의 견습공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공장노동자들이 게으르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렸습니다. 노동자들은 주로 성과급을 받았는데, 더 많은 일을 하면 더 벌 수 있는데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더 일하면 공장주가 성과급을 더 지급하는 게 아니라 성과급의 시간당 급료를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신들에게는 이익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적당한 수준에서 농땡이(soldiering)를 부렸습니다.

 

테일러의 노동윤리로서는 이런 모습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꾀부리는 노동문화는 테일러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철주야 노력해서 개인의 생산량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1주일에 6일간은 꼬박 일하고 일요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습니다. 그의 하루 일정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오후 5시까지 공장에서 일하고 밤 11시까지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개인당 최고의 생산량과 표준적인 생산량을 계산해내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기계의 능력을 측정하는 데 이용됐던 기본원리들을 탐구했습니다. 그가 고안한 방법은 단위 노동시간당 생산량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위시간당 작업량을 측정하기 위해서 작업을 구성요소로 세분화했습니다. 세분화된 요소별 작업을 결합하면 전체 작업이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나중에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가 자신의 자동차생산에 응용하여 대박을 터트리게 됩니다.)

 

테일러는 노동자의 능력이 단위시간당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모든 작업과정을 규격화된 노동형태로 전환시켰습니다. 그렇게 표준화된 노동량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식을 과학적 관리(Scientific Management)라고 생각했습니다. 테일러에게 있어 과학적이라는 말은 인간의 노동행위를 계량화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가 10분간 정상속도로 작업한 경우와 전속력으로 작업한 경우를 구분해서 일인당 하루에 최대한의 생산량을 계산합니다. 하루 10시간 노동할 경우 최대생산량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휴식시간을 하루 일과의 40%로 계산하여 표준적인 생산량을 정했습니다. 이것은 어림짐작이었지만,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습니다.

 

이런 방식을 공장에 적용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생산량이 전보다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웬걸, 실제로 받은 성과급은 전에 받았던 것보다 적었습니다. 전보다 훨씬 강도 높은 노동으로 생산량이 늘어났는데도 말입니다. 표준적인 생산량을 초과한 것에 비례하여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손해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됐습니다. 초 시계로 노동시간을 재는 테일러가 원흉이라고 점차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테일러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자 했습니다. 노동에 있어서 태만과 게으름을 몰아내고 생산성을 최소한 30%이상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견해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은 가차없이 해고하도록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조합을 중심으로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를 저지하려고 했지만, 테일러의 방식은 물질적인 기계장치가 아니라 노동자의 정신과 근육에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계장치를 때려부수는 식의 저항도 불가능했습니다. 저항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테일러의 연구성과는 소리소문 없이 퍼졌습니다. 대부분의 공장에서는 테일러의 과학적 방법에 따라 노동관행이 바뀌고 있었고, 생산성은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테일러의 연구성과는 1911년 『과학적 관리의 원칙』(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 경영학의 역사와 발전에 주춧돌이 되었고, 테일러리즘이라는 이데올로기로 경영학 사상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곳곳에서 초 시계를 가지고 노동자들의 작업을 통제하는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만 보더라도 과학적 관리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까스로 파업은 진정되었지만, 1912년 미국의회가 나서서 조사를 벌였습니다. 테일러는 의회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과학적 관리는 결코 효율적인 대안이 아닙니다. 그리고 비용을 계산하는 시스템만도 아닙니다. 이는 초 시계로 노동자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그들을 평가하는 장치도 아닙니다. 이것은 노동시간이나 동작에 대한 연구도 아닙니다. … 이것은 완벽한 정신혁명일 뿐입니다.”

 

이것이 테일러의 노동윤리이자 신념이었을 것입니다. 경영분야의 작가로 이름을 떨친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는 과학적 관리방식은 위대한 통찰력이었고, 서구 사상에 미친 영향들 중 가장 지속적이고도 강력한 공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과학적 관리에 대한 강박관념은 그의 말년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잔디가 자라는 것을 관찰하며 여생을 보냈는데, 완벽한 잔디를 만들기 위해 800번 이상 실험을 했습니다. 1cm2에 심겨진 잔디 잎을 늘 계산했습니다. 생애 마지막 한두 해 동안 테일러는 잔디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잔디에게는 필요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잔디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잔디가 자라는 공정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지칠줄 모르는 테일러의 강박관념은 인간이 아니라 노동행위의 합리화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경영학자들은 대부분 테일러의 후예로서 테일러리즘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가끔 멍청하게도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테일러가 만약 대학을 마치고 법률가가 되었다면 미국경영학은 어떤 식으로 발전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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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지난 이야기

             조직이란 무엇인가(1)_조직의 일반적 정의
             조직이란 무엇인가(2)_제1세대 경영학


체스터 바나드 이후에 인간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상이 서서히 나타나서 제2세대 경영학의 관점을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입니다. 그는 미국경영학에 또 하나의 큰 산맥을 만들었습니다. 1954년에 출간된 『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라는 책은 조직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아야 한다는 사상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당시에 드러커 자신이 조직은 유기체여야 한다고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목표와 자율의 의한 관리”(Management by Objectives and Self-Control)로 발전하여 오늘날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오늘날 MbO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때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나라로 건너 오면서 목표관리라고 왜곡 번역되어, 목표를 정해주고 그 목표를 잘 관리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목표관리를 한다고 해서 보니까, 국장과 과장의 목표를 사전에 정해서 그것을 가지고 나중에 평가하는 것을 목표관리, MbO라고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자율은 없고 오직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기본 사상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이 편리한 방식으로 비틀어서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관료조직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것은 죄다 시늉을 내지만, 실상을 까보면 정말이지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나는 한국은행에서 20년을 근무했습니다. 그래서 매년 국정감사도 받고, 가끔 감사원 감사도 받습니다. 그리고 재무부에서는 보안점검이라는 것도 나옵니다. 그리고 정보부, 보안사 등의 인사들도 들락거립니다. 수십 명의 기자단이 수시로 출입합니다. 한국은행은 그들 때문이라도 매년 조직운영의 합리화를 위한 계획을 세워서 실천해야 합니다. 연간사업계획을 보면, 매년 거의 똑 같은 말들이 되풀이됩니다. 효과성 제고, 효율성 향상, 경쟁력 강화, 생산성 신장, 조직유연성 확보 등과 같은 말을 써 왔습니다. 체스터 바나드가 정의한 효과성과 효율성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럽지만, 만약 20년간 사업계획대로 되어 왔다면, 내가 한국은행을 떠날 때는 효율성과 생산성이 차고도 넘쳤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진단한 한국은행은 그 동안 추진해 왔던 사업계획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은행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조직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있던 때였습니다.

 

내가 한은을 떠나기 전 마지막 3년간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전철환 총재의 명을 받아 조직개혁 작업을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전 총재는 사심 없이 한은을 위해 개혁하려고 했지만, 썩은 도끼자루를 새것으로 갈아 끼우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습니다. 한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보면 다들 유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당시 부총재보였던 이성태 총재뿐만 아니라 당시 총무국장이었던 이승일 부총재는 이코노미스트와 관리자로 성장한 분들이지만 조직문제에서도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고 한은이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그게 매우 이상했습니다.

 

당시 재무부를 포함한 중앙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효율성이나 효과성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다 1997년 말에 드디어 국가부도위기를 맞았습니다. 관료와 공공기관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영혼의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내가 아주 답답하게 느꼈던 것은, 개별적으로 보면 다들 유능한 사람인데 조직으로 뭉치면 그 유능성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내가 그 당시 한국은행 직원들에게 그런 고민을 강의했었는데, 그 내용을 묶어서 출판한 것이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한국 관료조직의 개혁을 위한 진단과 처방』이란 책이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조직 속에 들어가면 흐리멍텅한 의사결정을 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상을 설명해 보고 싶었습니다.

 

조직에는 구성원들의 정신을 빼놓는 뭔가의 제도적 장치들이 유령처럼 작동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을 제도의 폭정 또는 제도적 폭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프로세스를 바꾸는 데 전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제도적 장치의 합리성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제도운영의 공정성, 구성원들간의 신뢰, 비전을 향한 열정, 정신과 정신의 교감 등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제도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공정해야 투명해지고, 거꾸로 투명해야 공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구성원들이 멍청한 짓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직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조직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는 유일한 수단인데도 정부와 공공기관은 투명성은커녕 외환위기를 빌미로 자신들을 더욱 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예는 금융분야에서 일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얘기니까, 온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예를 하나만 더 들어보겠습니다. 교육부를 보겠습니다. 교육관료들은 교육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수십 년간 끊임없이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미궁에 빠지고 있습니다. 교육관료들이 정체성과 영혼의 능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이들 역시 형편없는 교육제도를 만들어낸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그 제도의 암묵적인 폭력에 쓰러진 피해자인지도 모릅니다. 이들도 개별적으로 보면, 대단히 유능한 사람들입니다. 안타깝게도 교육부라는 조직에 들어가서, 자기가 맡고 있는 직무의 존재목적을 잃어버렸을 뿐입니다.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구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드러커가 주장하는 제2세대 경영학의 기본사상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했다면, 우리는 벌써 선진국이 되어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왜곡되지 않은 개념과 그 취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MbO의 기본사상은 근로현장에 인간의 자율성을 확보해 주어야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목표를 부여해서 쪼면 된다는 사상이 절대로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목표관리제도라고 해서 목표를 기록하고 상사와 부하가 합의하면 되는 그런 조잡한 사상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고유한 잠재력이 있고, 그 잠재력을 잘 발현할 수 있도록 스스로 통제해나가는 방식의 관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도 스스로 기획하고, 그 목표를 잘 달성했는지의 여부도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게 피터 드러커가 의도했던 MbO였습니다. 그래서 『경영의 실제』에서 보면 목표(Objective)라는 단어와 자기통제(Self-Control)라는 단어를 마치 한 단어처럼 사용했습니다. 자기통제가 가능할 때, 조직생활에서 오는 불안과 긴장으로부터, 조직이 부여하는 목표달성의 압박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산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20세기 전반부에서는 테일러리즘에 의해 인간이 조직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 생각되던 것을, 드러커의 사상에 의해서 인간이 자기 스스로 자율적인 존재로 대접받게 되었고 조직운영의 주체로 해방된 셈입니다. 이윤은 기업의 존재목적이 아니며, 기업의 생존조건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피터 드러커를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워렌 버핏과 마찬가지로 CEO들의 높은 연봉에 대해 도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짓이라고 비난했고 종업원의 평균연봉의 20배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이런 관행이 고쳐지지 않으면 우리는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부의 경영학은 제2세대 경영학으로서 조직을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했습니다. 이런 사상을 나는 드러커리즘(Druckerism)이라고 부릅니다. 조직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외부환경의 정보와 에너지를 받아들여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신진대사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율적 존재로서의 조직구성원은 조직전체의 유기적 부분으로서 전체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관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조직의 지속성에 기여하는 인과관계를 중시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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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지난 이야기

             조직이란 무엇인가(1)_조직의 일반적 정의


조직이론의 발전과정은 경영학의 그것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조직이론가들이 만들어 놓은 조직개념도 시대의 지배적 관념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영학의 발전과정을 대강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3단계로 구분합니다.

 

     1세대 경영학(Taylorism) : 20세기 전반

     2세대 경영학(Druckerism) : 20세기 후반

     3세대 경영학(Wholism) : 21세기

 

20세기 초기에는 조직을 기계론적으로 인식했습니다. 이것은 경영학이 탄생하는 초기에 있었던 관점 그대로입니다. 이것을 테일러리즘이 대표합니다. 1강에서도 언급했듯이, 조직을 기계에 비교했고, 조직구성원을 그 기계의 부품으로 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덕목은 기계적 조화(mechanical coherence)입니다. 인간의 근육과 움직임이 기계장치와 가장 잘 조화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조직이론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현상에서 조직이라는 개념적 실체를 체계적으로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인물이 독일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였습니다. 테일러와 마찬가지로 베버도 시대의 아들이었습니다. 19세기말 20세기 초의 유럽, 특히 독일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프로이센의 군주정으로부터 비스마르크가 권력을 장악하여 통일국가를 이룩하였으나, 베버는 절대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조직이 쑥대밭이 되는 것을 보고 관료제의 조직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은 관료주의의 폐해를 너도나도 심각하게 얘기하지만, 당시에는 합리적이고 법률적인 근거에 의해 권한을 가지고, 정해진 규칙과 절차에 따라 일하게 되면, 봉건적 군주제에서 겪었던 폐해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관료제 조직이야말로 가장 능률적인 조직형태라고 주장했습니다.
(막스 베버, 박성환 옮김, 『경제와 사회 1, 문학과지성사 1997, 408쪽 이하를 참조하세요.)

 

이때부터 공식적인 조직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프로세스를 어떻게 설계하는 것이 좋으냐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렇게 공식적인 권한과 책임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제도주의(institutionalism) 학파라고 부릅니다. 공식적인 구조와 체계와 절차를 정하는 방식은 마치 정교한 시계를 설계하는 것과 같고, 구성원은 몰개성적인 기계의 부품으로 생각했습니다. 조직구성원은 공식적으로 정해진 권한과 책임의 한계에 따라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개인의 잠재력 따위는 거의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것을 제1세대 경영학의 관점이라고 부릅니다. 테일러리즘과 제도주의적 관점은 아직도 경영학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여러 곳에서 얘기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인간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여러 실험을 통해 금방 밝혀졌습니다. 공장 종업원들에게 근로조건을 아무렇게나 바꾸어도 생산성은 올라갔습니다. 당황한 연구원들이 그 원인을 몰라 헤매고 있을 때, 호주출신의 심리학자인 엘톤 메이요(George Elton Mayo, 1880~1949)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실험대상인 종업원들이 연구원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생산성이 좋아질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이 가설 검증 작업의 결과가 바로 그 유명한 호손실험(Hawthorne Studies)얘기입니다. 인간은 공식적인 구조보다는 비공적인 집단에 소속되고 그곳에서 인정받을 때 높은 생산성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부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론이 나왔습니다.

 

그 후에 실무경험이 풍부했던 <체스터 바나드(Chester Irving Barnard, 1886~1961)>는 개인의 목표와 조직의 목표를 일치시킬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과 유인책을 잘 써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의 공로는 미국경영학에서 하나의 커다란 산맥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우선 오늘날에는 거의 상식이 되어버린 <효과성(effectiveness)과 효율성(efficiency)의 개념>을 처음으로 명확히 구분했습니다. 명시적인 목표에 도달한 정도를 효과성으로 보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구성원의 동기가 충족되는 정도를 효율성으로 정의했습니다. 조직의 목적을 달성해서 높은 효과성을 이룩했더라도 구성원의 행위가 동기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불만족을 유발하게 된다면 그것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따라서 조직이 구성원의 동기를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조직의 목표를 달성해갈 수 있다면, 그런 조직은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협동을 통해 성장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체스터 바나드(Chester Barnard), 『관리자의 역할』(The Functions of Executive), 신한종합연구소 1993, 21쪽 이하를 일단 참조하세요. 이 책은 경영학사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번역을 다시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직이 협동체라고 정의했던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후대 경영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다양한 방면에서 천재성을 보였던 허버트 사이몬(Herbert Alexander Simon, 1916~2001)에게 큰 영향을 주였습니다. 사이몬은 인간의 의사결정이란 결코 완벽한 합리성에 기반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 만족한 수준에서 결정해 버린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그 이면에 인간의 행동에는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늘 경험하는 것이고 오늘날의 지성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주장인데 그는 1978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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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경영학은 인간을 무엇으로 보는가? 지난 100년간 경영학은, 특히 미국경영학은 인간을 자원(resource)으로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자원이란 말인가? 한마디로 표현하면, 재무제표의 당기순이익을 위한 자원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인적자원(human resource)이라고 부릅니다. 인적자원에 투자된 돈은 철저하게 비용으로 처리됩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기본 전제가 끝없는 경쟁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긴장과 불안, 스트레스와 우울증, 부정적 정서와 제한적 신념 속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회사인간(corporate human)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재무제표의 비용계정을 구성하는 부품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높은 생산성을 구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생산성은커녕 온 인류를 깊은 불황의 늪에 빠지도록 했습니다.

 

나는 이제 대전환의 계기를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강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에서 인사조직 최근 주제연구 마음을 사로잡는 경영은 가능한가라는 과목으로 강의한 것을 녹취 정리했습니다. 지금은 명령과 통제를 통한 쥐어짜는 방식의 경영관행이 근본적으로 전환되어야 할 시기입니다. 그래서 경영과 경영학에 대한 사유의 틀을 좀더 확장했으면 하는 소망으로 이 글을 여기에 올립니다.


인간을 무엇으로, 그리고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탈레스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해 보려고 노력해 왔었기 때문에 그 많은 성과물들을 다 들여다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내가 즐겨 쓰는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개관해 보려고 합니다.

 

나는 인류가 인간에 대한 관점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계기를 철학적 논쟁에서 찾습니다. 철학자들이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크게 세 번 정도 바꾸었습니다. 

 

펠라기우스 논쟁

 

그 첫 번째가 펠라기우스 논쟁이었습니다. A.D. 400년경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와 펠라기우스(Pelagius, 대략 354~440?)가 기독교 세계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시절에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었으나 나중에는 플라톤의 이원론 철학에 심취했고, 밀라노의 주교에게 영향을 받아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고백록』은 자서전 문학의 백미일 뿐 아니라 서구문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경험과 성찰을 통해 인간은 완전히 타락했으며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수도사였던 펠라기우스는 해박한 도덕주의자로서 당시 로마 시민들과 귀족들의 방탕한 생활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했고 원죄개념을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완전성에의 자연적 능력을 선천적으로 부여 받았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오직 신의 주권적 은혜만이 완전히 타락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이러한 두 주장 사이에 논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격화되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교회는 431년에 에베소라는 곳에서 공의회를 열고,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펠라기우스의 견해를 이단으로 정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서구의 고대사회가 막을 내리고, 신에 대한 신앙과 거룩함이 충만한 중세가 시작됩니다. 적어도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라는 걸출한 신학자가 나타나기까지 이성의 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고대 로마제국이 쇠망하자 교회에 대한 제국의 통제력은 약해지면서 반대로 교회의 세속적 권위는 점차 높아졌습니다. 제국이 건설한 정치적, 법률적, 경제적 질서를 통해 교회는 유럽사회 전체를 묶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명실상부한 보편적 교회(Catholic Church)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극심한 가뭄, 전염병, 천재지변 등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도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당시 서민들의 평균수명이라야 30년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고통과 죽음은 정상적인 것이었죠.

 

전쟁이 일상사였고, 어떤 때는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십만 명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식량부족으로 먹을 것이 없어서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혹서나 혹한으로 죽는 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다는 것이 곧 신의 은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신앙은 수도원을 통해 교리로 정교화되어 갔습니다.

 

두 종류의 진리

 

하지만, 이런 상황은 13세기가 되면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된다는 사실은 신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이라는 점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신앙에 의해 얻는 진리도 있지만, 이성적 판단으로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앙과 이성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그 둘은 변증법적 작용을 통해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아퀴나스까지 약 800년간의 중세는 신앙이 이성을 압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퀴나스 이후에는 신앙과 이성이 비등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성의 힘은 급속도로 팽창하게 됩니다. 그 하나가 문예부흥이었고, 다른 하나는 종교개혁,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학혁명이 일어납니다.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문예부흥은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신앙에 억눌려 왔던 이성이 자유를 만끽하면서 표출된, 억압되지 않은 인간의 자연스런 활동의 결과였습니다.

 

종교개혁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버린 교회에 대한 이성적 저항운동이었습니다.

 

나아가 이성의 힘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충격적인 사건들을 안겨 주었습니다. 과학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의 지동설이었습니다. 인간이 사는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도는 행성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1996)이 말한 대로 기독교인들이 1400년간이나 굳게 믿어왔던 것들을 송두리째 거부하는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짓이었지만, 교회는 가혹하게 과학자들을 탄압했습니다.

 

인식의 확실한 근거

 

이성의 힘은 수학을 발전시켰고, 이러한 풍조는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에 의해 더욱 풍부한 결실을 맺게 됩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인식은 인간 자신의 인식주체와 외부세계인 객체와의 교섭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 유명한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의 철저한 회의는 인식의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인식의 확실성이란 내가 아는 것이 어디까지가 진실한 것인지를 의심해 들어가다 보면, 마지막으로 의심하는 자신의 존재만큼은 의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사유하는 한 개인의 중요성이 이 세상에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의 핵심은 인식주체가 절대화 되지 않으면 타인이나 사물에 대한 정보의 확실성은 보장할 수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한 개인의 존재가 절대화되기 시작합니다. 중세 교회가 가르쳤던 공동체적 이상과 가치는 사라지고, 나의 인식이 확실하다는 믿음에 기초한 진리의 추구만이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성이 신앙을 완전히 압도하게 된 것입니다.

 

데카르트의 사고방식은 아우구스티누스 이후의 서양세계에서 신앙을 완전히 떼어내고 이성만으로도 존재와 인식의 확실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선언한 셈입니다. 이것은 가히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후에 성립된 철학은 이러한 데카르트의 성찰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데카르트를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말하자면,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에서 패배한 펠라기우스가 1,200년도 넘는 세월이 지나서야 명예를 회복하게 된 셈입니다. 

 

이렇게 이성이 신앙을 압도해 가는 사상적 흐름 속에서 인류가 경험한 핵폭탄과 같은 충격이 세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 충격

 

첫 번째 충격은 아퀴나스가 이룩한 신앙과 이성의 통합작업 후에 나타났어요. 그게 바로 앞서 언급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었는데,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얘기지만, 그에 따른 교회의 핍박도 대단해서 수학적 재능이 뛰어났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도 그런 주장을 하려면 목숨을 걸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힘이 아무리 커도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사실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이 나타나서 우주의 중력체계를 확립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뉴턴은 우주가 거대한 정밀시계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에 대한 해석체계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충격

 

두 번째 충격은 데카르트의 이성혁명 이후에 있었던 일인데,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입니다. 이 사건은 교회가 지동설의 충격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려는 순간에 떨어진 핵폭탄이었습니다. 인류의 조상이 파충류라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의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믿고 있는 사람들도 아직 많습니다. 구약성경의 창세기는 야훼의 신이 천지를 창조한 과정을 나타낸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교회는 창세기의 과학적 설명을 가급적 회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동설을 교회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진화론도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설사 인류가 파충류에서 진화되었다고 해도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주를 거대한 정밀시계처럼 신이 만드셨기 때문에 인간이 열심히 노력하면 우주의 운행원리를 파악해서 만물의 영장임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교회는 과학적 사실과 그 발견과정에 두려워하거나 당황해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건은 물리적 실체가 아닌 개념적 실체에 관한 설명이기 때문에 물리학적 지식과 분석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과학이 창조에 관하여 실증적으로 어떤 결과를 내더라도 불변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1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것이 모든 것의 결론입니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영혼과 그 능력의 문제가 출발합니다. 이 문제는 좀더 깊이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논의할 것입니다.

 

세 번째 충격

 

그런데, 지난 20세기 초에 세 번째 핵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에 의해 인간의 행동은 이성의 확실한 근거와 상관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인간은 마음의 심연에 잠재된 무의식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그에 따른 행동은 무의식적 작용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강의실에 오는 것은 물론 의식적으로 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무의식의 작용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심리학적 결론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나는 나도 모르는 것에 의해서 행동하고 있는데, 그것이 내가 모르는 심연의 그 무엇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실로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신앙의 힘을 압도한 이성의 힘으로 인류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자신의 행동이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인간은 겉으로 드러난 의식적인 행동만이 전부가 아니며, 행동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심연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무의식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다시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심연을 향하여 이성의 날을 세우고 분석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심리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인간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성의 힘이 무의식의 세계에까지 지배력을 확장하게 되자, 학문방법론은 거의 완벽하게 요소환원주의(elemental reductionism)로 바뀌었습니다.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되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상태까지 분해하여 그 개체들을 분석함으로써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더욱 확고히 갖게 되었습니다. 지극히 이성중심적인 발상이고, 데카르트-뉴턴식 해결책(Cartesian-Newtonian View)입니다. 전체는 요소로 환원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요소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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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