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은 미국의 패권에 맞선 반제국주의적 도전의 일환으로써 자유와 평등, 그리고 계몽주의적 가치를 옹호하는 참된 횃불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고 노력한다. 9.11 이전에도 많은 유럽인들이,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번드르르한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유럽 사회는 복지제도와 사회제도의 측면에서 미국보다 훨씬 우월하며 훨씬 너그러운 관용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럽 사회가 미국 사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2000년에 실시된 어떤 조사에서 프랑스 사람들에게 당신이 보기에 미국은 어떤 나라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응답자 가운데 45%사회적 불평등이 심한 나라”, 33%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라고 대답했다. 24%만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라고 답했고, 15%만이 이민자들을 환영하는 나라라고 답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뒤로, 미국을 비판하는 유럽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2003년 유럽 전역의 신문에는, 유럽인의 정체성은 미국과는 정반대라고 신랄하게 지적하는 독일과 프랑스의 유명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rbermas)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글이 실렸다. 이들은 유럽의 특징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유연한 접근법과 사형제의 거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20세기의 전체주의 정권들과 유대인 대학살의 기억에서 비롯한 도덕적 민감성을 꼽았다.

 

오늘날 국제법을 위반하고 국제연합을 음해할 것이 뻔한 행동을 거리낌없이 자행하는 미국의 일방주의는 유럽에서 커다란 비판을 사고 있는데 반해, 아일랜드에서 폴란드에 이르기까지 유럽연합의 여러 조약과 헌장들은 인권과 비차별에 대해서 가장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에이미 추아, 이순희 옮김, 제국의 미래, 비아북 2008, 423~423)

 

유럽인들은 미국인을 어떻게 볼까? 한 마디로 말하면, 야만적이라고 봅니다. 미국인의 야만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들의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에서 왔습니다. 미국인들은 마치 돈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미국인들을 온전한 인간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고, <적자생존>의 야만적인 삶에 젖어 들게 만들었습니다. 자본은 마약과 같아서 일단 중독되기 시작하면, 그 자신이 파멸될 때까지 손을 떼지 못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마약중독자나 알코올중독자는 자신의 중독 증세를 잘 모를 뿐만 아니라 그런 사실을 다른 사람이 지적해줘도 부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본에 중독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직원들을 돈의 노예상태에 묶어 둠으로써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돈 때문에 사람을 살상하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테러리즘의 발생도 자본 때문이고, 부시의 이라크 침공도 자본 때문이었습니다. 자본은 이렇게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미국인들의 탐욕적 생활과 가치관에 관한 글

  • 2009/04/09 미국사회의 시스템화된 탐욕이 드러나다
  • 2009/03/10 합리화의 극치_맥도날드
  • 2009/03/09 개신교 윤리의 세속화_합리화인가 탐욕화인가
  • 2009/03/05 코람데오 정신(coram deo spirit)
  • 2009/03/04 어째서 탐욕(greed)이 문제란 말인가
  • 2009/03/03 탐욕이 조직화 되다
  • 2009/03/02 탐욕은 좋은 것, 아니 위대한 것
  • 2009/02/27 돈은 인간의 정신을 왜곡한다
  • 2009/02/26 탐욕의 블랙홀에 빠진 월 스트리트
  • 2009/02/25 왜 서양식 경영이 아니라 미국식 경영이 문제인가?
  • 2009/02/24 월 스트리트와 미국인들 
     
  • 자본이 금융 상품화되어 유통되도록 자유롭게 풀어 헤쳐 놓으면, 미국발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을 초래하게 됩니다. 시장은 스스로 금융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자본에 의해 황폐해진 인간의 정신 또한 금융이나 시장을 적절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유럽인들이 미국인을 야만적이라고 째려보는 저 시선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리고 이미 그 폐해가 입증된 미국식 시장경제, 미국식 자본주의, 미국식 의료보험제도, 미국식 교육시스템, 미국식 경영학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나가야 할 지향점을 다시 잡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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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자동차뿐만 아니라 금융상품까지 불량품을 생산하는 미국식 경영에 대한 데밍의 혐오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미국 경영학계와 실무계가 데밍의 이상적인 사상 때문에 왕따시켰는지 모르겠지만, 데밍은 미국보다는 일본에서 왕성한 자문활동을 벌였고 그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도 일본인들이었습니다. 그는 통계학자로서, 경영사상가로서, 뉴욕대학교의 교수로서, 그리고 경영컨설턴트로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데밍(William Edwards Deming, 1900~1993)의 가르침은 일본인들에게는 구원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들은 데밍이 가르치는 통계적 기법에 의한 품질관리만을 배운 것이 아니라 데밍의 경영철학까지 받아들여 실무에 응용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이 결코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품질수준을 만들어 냈습니다.

     

    데밍의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난 저작


    일본인들에게 가르쳤던 데밍의 가르침은 품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윤을 창출하자는 것이 품질이기 때문에 품질은 이윤보다 앞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품질은 장기적인 계획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이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품질관리에는 통계적인 기법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올바른 정신모형(mental model)이 뒷받침되어야 함도 교육했습니다.

     




    데밍의 경영철학은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미국식 경영과는 다릅니다.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의 정신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서만 베풀고, 그 결과에만 집착하는 미국식 경영관행으로는 데밍의 사상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심오한 지식

     

    데밍이 도대체 무슨 주장을 했길래 미국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일본인들은 그의 사상을 받아들였을까요? 그는 경영에 관한 수많은 지식체계를 쏟아냈지만, 자신이 직접 심오한 지식(profound knowledge)이라고 골라 뽑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이 네 가지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한데 어우러진 것으로서, 기업들이 미국식 숫자경영에서 벗어나 최적화된 경영방식으로 변화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들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시스템에 대한 인식

    변동에 관한 지식

    지식이론

    심리학

     

    시스템에 대한 인식

     

    첫째, 시스템이란 목표달성을 위해 협력하는 상호의존적인 구성요소의 네트워크입니다. 구성요소들간의 상호의존성이 커질수록 협력과 의사소통의 필요성은 커집니다. 볼링 팀은 상호의존성이 낮지만 오케스트라는 매우 높습니다. 아마도, 기업경영은 오케스트라보다 더 높은 상호의존성을 나타낼 것입니다. 따라서 기업경영에 있어서 각 구성원은 자신의 생산, 이익 또는 판매 등과 같은 부문별 극대화를 목표로 하거나 경쟁적인 측정방식을 도입해서는 안 됩니다. 전체 시스템에 최대한 공헌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해서 시스템 전체의 최적화를 위해 스스로 손해를 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시스템에 관한 견해는 후일 피터 센게(Peter Senge, 1947~)의 시스템이론과 학습조직개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센게의 사상은 1990년에 『제5경영』(The Fifth Principle)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우리나라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변동에 관한 지식

     

    둘째, 변동(variation)에 관한 지식이란 통계적 추정의 오류에 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시험성적을 평균하면, 절반은 평균 이하의 점수를 얻었을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평균 이상의 점수를 얻었을 것입니다. 평균 이하의 성적을 거둔 학생에게 장래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거나 유능하지 못하다는 통보를 한다면, 학생은 의기소침해지고 굴욕감이나 열등감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처사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학생의 성적은 그 학생 고유의 능력을 나타낸 것이 아니며, 학교성적이란 아이가 처한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적 원인을 도외시한 채, 성적이 평균 이하의 학생에게 장래가 어둡다는 평가를 내리거나 머리가 나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변동에 관한 잘못된 지식 때문입니다. 데밍의 변동에 관한 심오한 지식은, 기업에서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에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성과가 낮은 직원에게 무능하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판단인지를 알려줍니다.

     

    지식이론

     

    셋째, 지식에 관한 이론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데밍의 지식이론을 가장 좋아합니다. 지식이 없으면 합리적인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데밍의 지식이론이 가장 논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많은 경영자들이 지식을 그저 무엇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단순히 무엇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은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기반입니다. 내가 만약 휴가를 떠난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진보하게 하는 기반입니다. 이 풍요의 기반은 끝없이 확장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 없으면, 즉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면 그 조직은 망합니다. 그래서 지식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데밍의 유명한 비유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챈티클리어라는 수탉에 관한 비유입니다.

     

    헛간의 수탉, 챈티클리어는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온 힘을 다해서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우렁차게 울었다. 그런 후에 태양이 떠올랐다. 전후 관계가 분명했다. 그의 울음 소리는 태양을 떠오르게 하였다. 그가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는 어느 날 아침 울음소리 내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태양은 떠올랐다. 풀이 죽은 그는 자신의 이론을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에드워즈 데밍, 김봉균 외 옮김, 『품질 석학, 데밍박사의 경쟁으로부터의 탈출』, 한국표준협회컨설팅 2004, 120


     

    일단 이론을 가지고 있어야 그 이론의 부적합성과 개정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론은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방식입니다. 이론이 없으면 학습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경영자들이 성공사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경영자들은 자신만의 이론을 가지고 세상을 보아야 하며, 그 이론이 부적합할 경우에는 그것을 스스로 수정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참값(true value)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강의장에 몇 명이 있다는 숫자는 참값이 아닙니다. 누구를 셀 것인가에 따라 다양한 숫자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남자만 셀 것인가 아니면 여자만 셀 것인가? 결혼한 사람만 셀 것인가 아니면 미혼자만 셀 것인가? 임신한 사람만 셀 것인가 아니면 태아까지 셀 것인가?

     

    또한 어떤 관찰도 객관적 사실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건은 사람이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관찰되기 때문입니다. 촛불시위 사태, 용산참사,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과 등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태를 관찰했지만, 그 사태의 해석은 구구각색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관점에서만 사태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 다른 사람이 본 것을 보지 않았거나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관찰할 것인지를 사전에 합의해야 합니다. 그 합의를 위해서 구성원들에게는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가 필요합니다. 조작적 정의에 대해서는 추후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한 예를 들면, 내가 인간을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실존적 존재라고 경영학적으로 정의한 것도 조작적 정의에 속합니다.

     

    경영자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지식이론을 갖는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철학적 입장을 정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경영자의 경영철학의 정립이 경영행위보다 중요하고 선결되어야 합니다.

     

    심리학

     

    넷째, 심리학입니다. 심리학의 유용성은 인간은 누구나 다르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데 있습니다. 인간은 똑 같은 경우가 없습니다. 어떤 패턴이 유사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 일하는 동기도 다르고, 학습하는 방법과 속도도 다릅니다. 따라서 경영자는 이 차이점을 심리학을 통해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의 능력과 성향을 적절히 조절하여 최적화함으로써 높은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에 대한 이해의 결여로 노동에 대한 과잉정당화(overjustification) 현상이 일어나곤 합니다. 결국에는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e)를 왜곡하고 노동의 즐거움을 앗아갑니다. 과잉정당화란, 보상이 없이도 기쁨으로 일하려고 하는 근로자에게 노동의 대가로 추가보상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청소하려고 하는데, 부모가 청소를 깨끗이 하면 용돈을 올려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히려 자발적으로 청소하려는 내재적 동기가 변질되어 용돈을 위해 일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월 스트리트의 경영진들은 과잉정당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에게 주는 과도한  보상은 일에 대한 순수한 내재적 동기를 왜곡합니다. 그들에게는 도덕적 의무감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보상체계는 오직 보상을 위해 일하게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학생들과 학교에 점수를 매겨서 서로 경쟁하도록 하는 경우에도 역시 심리학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점수에 따라 등급화하거나 서열화하는 경우에는 점수를 높이는 데만 집착하게 만듦으로써 배움의 즐거움을 상실케 합니다. 직장에서도 평가결과에 따른 등급화 또는 서열화와 그에 따른 보상은 일에 대한 즐거움과 창의력을 감퇴시킵니다.

    그러므로 더 높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기 원한다면, 기업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성과관리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데밍의 이러한 사상은 교육학자 알피 콘(Alfie Kohn, 1947~)과 스탠포드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교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룰 예정입니다.)


    보상이 인간의 정신을 왜곡하는 현상에 대하여

    2009/04/09 미국사회의 시스템화된 탐욕이 드러나다

    2009/02/27 돈은 인간의 정신을 왜곡한다 


     


    데밍의 사상에서 경영에 관한 심오한 지식은 인류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특히 일본인들은 데밍의 사상을 아낌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무에 적용함으로써 탁월한 품질을 만들어냈습니다. 일본인들의 품질에 대한 집착과 그 정신은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고, 그 결과 전후 잿더미만 남은 조그마한 섬나라가 30여년만에 세계 초일류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미국인들은 나중에서야 부랴부랴 데밍의 사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인들은 데밍의 사상이 자신들의 토양에는 맞지 않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심오한 지식"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들은 당근을 높이 내걸고 그걸 따먹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도록 밀어붙이는 약육강식의 방법이 역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미국의 상징 월 스트리트의 정신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미국식 당근 내걸기 전략을 버리고, 데밍의 경영에 관한 심오한 지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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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맥나마라는 미국사회를 온통 계량화하려고 했습니다.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했던 7년간뿐만 아니라 그 후 세계은행(World Bank)총재로 근무했던 13년간을 합치면, 그의 영향력은 그 누구보다 컸습니다.

    그러나, 품질관리 전문가이자 통계학자였던 에드워즈 데밍(W. Edwards Deming, 1900~1993)은 미국경영학의 폐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 국무부 공무원들에게 미국의 경영기법을 우방 국가에 수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계량화하는 숫자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품질혁신을 위한 혁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이익이나 권력, 명예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었던 사람처럼 일생을 살았습니다. 나는 데밍을 단순한 경영학자를 뛰어 넘는 위대한 인물로 여깁니다. 내가 그를 추앙하는 이유는 그의 사상에서 단순한 통계학자가 아닌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본적인 경영사상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제로 일본산 제품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고, 이를 통해 일본이 경제부흥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는 품질이 숫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일본 제품들이 미국 시장을 석권하자, 미국기업의 CEO들은 일본품질관리의 아버지 데밍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미국 자동차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데밍을 초대해 강연을 들었습니다.

     

    노구를 이끌고 나온 데밍은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미국이 왜 제대로 경쟁하지 못할까요? 일본의 임금수준이 낮아서도 아니고, 도요타 시티에 최신식 시설이 있어서도 아니고, 엔화 약세 때문도 아닙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바로 여러분들, 경영진입니다!”

     

    데밍은 자동차 업계의 최고위직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사장이었던 짐 맥도널드(Jim McDonald)에게 엄한 질책을 퍼부었습니다. GM이 안고 있는 품질문제의 85%는 그의 책임이라고 혹평했습니다.

     

    그 후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요? GM의 생산책임자들이 데밍을 몰래 초빙했다가는 목이 달아나는 사태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 후 자동차업계에서는 데밍이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유명해졌지만, 자신의 직무를 방기하고 있던 최고경영진에 대한 질책과는 달리, 학습하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따듯한 애정을 보이곤 했습니다. 기업체의 고위직 임원들이 시스템의 변화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경우, 데밍은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날 미국 자동차 업계가 파산의 지경을 맞게 된 것은 노사문제가 아니라 경영진의 문제였습니다. 품질이 계량화를 통해 이룰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품질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으로부터 나옵니다. 제품의 품질, 기업의 품질, 조직의 품질, 국가의 품질은 지도자의 정신과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의 품질 역시 그 정신과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미국의 국가품질이 엉망이 된 것은 그들의 정신문화가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밍은 미국 외교부 직원들에게 미국식 경영을 우방에 수출하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데밍에 관한 에피소드는 안드레아 가보, 심현식 옮김, 『자본주의 철학자들』, 황금가지 2006, 373~445쪽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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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미국식 경영의 기반이 무엇이었는지는 그들이 지난 세기 100년간 발전시킨 경영학과 경영실무를 보면 명확히 드러납니다. 미국식 경영학의 전제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자원(resources)이다. 인간을 자원으로 본다는 점에서 미국식 경영학은 자원경영학(resource management)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인적자원(human resource, HR)라는 단어가 조심스럽게 사용되다가 요즘은 누구나 이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둘째, 모든 자원은 합리화(rationalization)되어야 한다. 당연히 인적자원(human resource)도 합리화의 대상입니다. 인적자원을 합리화시키는 다양한 방법과 기술들이 개발되었습니다. 경영학의 인사조직이론뿐만 아니라 특히 산업심리학 또는 조직심리학, 시스템 이론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합리화의 기초원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셋째, 경영의 목적은 이윤극대화(profit maximization)에 있다. 이윤추구가 지상과제이므로 모든 자원으로부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야 합니다. 우리가 배웠던 인간에 대한 도덕적 기준이 사라졌습니다. 신뢰와 사랑이 이윤과 탐욕으로 대치되었습니다. 탐욕은 좋은 것이고 이윤은 선()한 것입니다.

     

    이 세가지 기반을 잘 활용한 사람들이 칭송을 받습니다. 잭 웰치(Jack Welch, 1935~)와 같은 경영자들이 위대한 경영자로 추앙 받고 그를 모방하려고 합니다. 은퇴 후에도 그는 정력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전문으로 해서 전기톱’(chainsaw)이라고 불렸던 앨버트 던랩(Albert Dunlap, 1937~) 같은 이를 칭송하기도 했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이윤을 추구하라고 부추깁니다. 그것이 잘 사는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잘 살게 되었는지 정직하게 물어야 할 시간입니다.

    경영학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학문이 인간을 자원으로 활용하여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인문학자들까지 나서서 장사에 도움이 되도록 해 줄 테니 끼워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예 인문학을 엑기스로 추려 5분에서 10분짜리로 쪼개서 그럴 듯하게 포장해 팔기도 합니다. 기업가들이 이걸 사서 봅니다. 유식해진다는 느낌으로 영혼의 목마름을 다소나마 해소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기업관, 인생관, 세계관, 나아가 현실은 하나도 바뀌지 않습니다.

    비타민 몇 알로 건강해질 수 없는 것처럼 인문학 강좌 몇 개 들어서 마음의 근육이 단련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기업가와 경영자가 되려는 사람은 인문학을 적어도 10,000시간 이상 공부해야 합니다. 10,000시간은 너무 심하다구요? 그럼 맘대로 하시죠. 양념으로 비타민을 먹으면서 직원들을 짐승처럼 부리면 됩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경영하시면 됩니다. 

    공부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책상에 앉아서 가급적 원전텍스트를 보면서 스스로 사유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의 프로그램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게 됩니다. 경영은 이때부터 풀리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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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우선 서양이라는 개념이 매우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서양이 공간적으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할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특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인에게는 돈이 모든 것의 중심이자 궁극적 목적으로 생각하는 정신세계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미국인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미국인들이 그 어떤 나라도 따라 할 수 없는 소비주의(consumerism)에 몰입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청교도적 검약은 허울뿐입니다. 미국인들은 절약을 모릅니다. 독일 유학 중에 알게 된 몇몇 미국인 가정에 초대받아 가서 보면, 추운 겨울에도 난방을 세게 해놓고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지냅니다. 독일인들이 보았을 때는 기겁을 할 일입니다. 유럽사람들은 대개 겨울에도 난방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실내에서는 두툼한 옷을 입고 지내는 검약의 정신이 몸에 배어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물신숭배(fetishism)와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몸에 배어 있습니다. 미국인들의 돈에 대한 믿음은 신에 대한 믿음과 같습니다. 그들이 안락함을 위해 돈을 추구하는 것은 영혼의 평안을 위해 신에게 헌신하는 태도와 유사합니다.

     

    월 스트리트에서 헤지펀드를 운영했던 길버트에 관한 얘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그는 40대 초반의 나이에 다른 헤지펀드의 포트폴리오 운영자로 일하다가 1996년에 독립하여 자신의 헤지펀드를 차렸습니다. 1999년까지 약 5억 달러에 이르는 자본을 운영했습니다. 인터넷 붐을 타고 엄청난 수익을 올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렇게 번 돈을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이것이 미국인과 다른 세계인들을 구분 짓는 기준입니다.

     

    그는 사무실을 헤지펀드 메카라 불리는 그리니치로 옮겼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환상적인 주택가에 있는 오래된 석조저택을 대략 1,000만 달러에 구입했습니다. 그의 아내 샤론도 적극적이고 야망이 많은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고집을 부려가면서까지 진짜 스코틀랜드출신 하녀를 고용했고, 개인트레이너도 고용했습니다. 또 항공사와는 자가용비행기 임대계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무엇보다 정성과 돈을 들인 것은 새로 구입한 집이었습니다. 그녀는 현대의 모든 화려한 기술을 동원해서 이 집을 리모델링했습니다. 우선 2층 높이의 영화감상실을 만들었고, 가족이 함께할 거실에는 거대한 벽난로를 설치하고 천장을 대성당처럼 돔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실에는 포도주 5,000병이 들어갈 포도주 저장실을 만들었습니다. 이 저장실은 12명이 앉을 수 있는 고가구 식탁을 갖춘 식당을 둘러싸도록 설계되어서 화려함이 돋보이도록 했습니다. 이 식당과 조리실 사이에는 음식을 나를 수 있는 소형 엘리베이터가 마련되었습니다. 차를 몰아 집 앞까지 들어올 때 가로수 길을 달리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기 위해서 전나무 한 그루당 2만 달러를 들였습니다.

     

    이 사례가 특수한 어떤 인물을 가지고 미국인 전체를 과도하게 매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그런 소비가 무슨 문제냐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탐욕적인 삶을 미국인들이 동경하기 때문에 유능한 인재들은 너도나도 월 스트리트로 향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돈을 많이 번 사람이 길버트와 샤론처럼 소비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사회적으로 매장되지는 않는다 해도 왕따될 가능성은 미국보다 높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회문화가 낭비를 억제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도 길버트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구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겠습니다. 2000년 그의 펀드는 마이너스 15%를 기록했고, 2001년에는 기술주와 인터넷주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30%이상 깎여나갔습니다. 투자자들은 대거 빠져 나갔고, 중과실 혐의로 소송까지 당할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집에 들어가는 돈, 사무실에서 지출해야 할 돈, 은행에서 빌린 돈, 갚아야 할 돈, 마이너스 수익률…… 이 모든 것들이 길버트를 괴롭혔습니다. 끝내 아무에게도 연락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한 채 일주일간을 커튼이 쳐진 어두운 방 침대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펀드를 청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공들인 집도 처분했습니다. 갚아야 할 융자금만 남겨 놓은 채, 부부는 아예 아는 이가 없는 샌디에고로 떠났습니다. 그의 재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좀더 상세한 이야기는 바턴 빅스의 투자전쟁을 참조하세요.)

     

    인간의 욕망이 통제되지 않으면, 탐욕이 분출합니다. 탐욕의 분출은 아무도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게 됩니다. 이때 인간의 이성은 마비됩니다. 스스로 파멸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탐욕을 부추기고 그것을 맘껏 충족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는 탐욕이 그 시대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주장과 행동이 탐욕을 부추김으로써 사회 전체를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탐욕이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미국식 경영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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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