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터 바나드(Chester Irving Barnard, 1886~1961)는 조직의 보편적 요소를 세 가지로 압축해서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첫째, 공동의 목적
둘째, 협력의지
셋째,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첫째 요소인 공동의 목적은 효율성을 공학적으로 잘못 해석함으로써 왜곡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학적 효율성이란 투입산출의 비율로서 궁극적으로는 이윤입니다. 이윤에 공헌하는 것은 효율적인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비효율적인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것을 숫자로 표현하게끔 세상은 점점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숫자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숫자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요소인 협력의지도 또한 숫자로 전환되었습니다. 인간의 행위를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여 자본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자본으로 바꾸었습니다. 공동의 목적을 향하여 인적 자본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로 변환되었습니다. 위대한 경제학자와 수학자들이 모여서 합리적인 계량모델을 만들어 자본시장을 공략했지만 인간의 행위는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그들이 탄 거대한 배, LTCM는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이 작은 책에 담긴 사상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명확성과 헌신

 

오늘은 셋째 요소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직 내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바나드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어떤 것을 강조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커뮤니케이션의 경로가 명확하게 설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어디다 대고 말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30년간의 직장생활에서 발견한 것은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인사고과를 하는 조직도에 상사와 부하 사이가 명백한데, 뭐가 문제냐고 할지 모르지만, 비공식 통로가 워낙 많고, 연줄로 엮여 있어서 이것을 잘 꿰뚫지 않으면 조직에서 살아 남기 힘듭니다. 부하는 어따 대고 말해야 하는지를 눈치껏 잘 알아야 본전을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왜곡이 그래서 일어납니다.

 

둘째, 커뮤니케이션에서는 권위의 문제가 개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의 경로가 명확하지 않아서 왜곡이 일어나기 때문에 보완되어야 할 것이 권위의 문제입니다. , 모든 구성원은 누군가에게 보고해야 하고, 누군가의 부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나드는 책의 상당부분을 권위의 문제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권위의 원천과 조직 내의 조정시스템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문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셋째, 커뮤니케이션은 가능한 한 직접적이어야 하며, 그 라인도 짧아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간접적이고 길면 내용이 오염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오류와 오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바나드는 이것 말고도 몇 가지 원칙을 더 얘기하고 있으나, 거듭거듭 강조하는 것은 명확성입니다.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은 구성원들간에 서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통해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헌신을 끌어 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바나드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배울 교훈은 명확성(clarity)과 헌신(commitment)입니다. 이 두 가지가 미국식 경영의 합리화 과정에서 또 다시 왜곡되었습니다. 왜곡되는 과정은 아주 간단합니다. 명확성을 확보하는 것은 숫자로 말하면 됩니다. 그리고 헌신은 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숫자로 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숫자로 쪼아라! 이것이 미국식 경영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나는 미국식 경영을 Screwing by Number(SBN)라고 부릅니다.

 

숫자로 말하라! 이것이 현대 경영의 화두입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에서 숫자와 숫자의 조합인 그래프는 필수입니다. 정확성과 헌신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숫자는 정말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운동선수가 공을 잡기 위해 자기 몸을 사리지 않는 것은 그곳에 숫자판(scoreboard)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물이 어떤 척도로 숫자화되는 순간, 그 척도 이외의 모든 가치는 삭제됩니다. 숫자의 치명적인 약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만든 물건이 10,000원에 거래된다면 그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어떤 철학이 내포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사연이 묻어 있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오로지 10,000원어치의 가치만 있을 뿐, 나머지 모든 가치는 사라지거나 삭제됩니다. 만약 이효리가 입던 옷의 가치는 어떨까요? 경매에 부치면 얼마가 나올까요? 1,000? 아니면 십만 원? 어떤 가격이 나오더라도 그 가격 이외의 어떤 가치도 사라집니다. 일단 숫자가 결정되면, 그 숫자 이외의 어떤 가치도 삭제됩니다.

 

영업사원에게 10억 원의 매출목표가 할당되고 나면, 그 외의 모든 가치는 사라지거나 생략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요즘은 병원에서도 각 진료과의 수입을 정교하게 원가계산을 해서 수익공헌도를 계산합니다. 각 과장에게는 그 수익공헌도를 얼마까지 높이도록 압력을 받습니다. 환자의 회전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의사는 환자가 환자로 보이지 않고 돈으로 보입니다. 교수들은 논문 몇 편을 발표하고 유명저널에 게재하도록 압력을 받습니다. 몇 편의 논문을 발표했느냐가 중요합니다. 평가지표에서 고려하는 수치 이외의 다른 가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게 됩니다.

 

각급 학교의 학력도 숫자로 표시됩니다. 최근 이 숫자가 발표되었습니다. 앞으로 지역과 학교의 우열이 가려질 것입니다. 그러면 그 숫자의 힘 앞에 학부형들은 또다시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부모의 빈부에 따라 아이들의 빈부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것은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이 아니라 서서히 죽이는 교육이 될 것입니다. 우둔한 권력자일수록 숫자를 통해 경쟁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내가 숫자에 빠져드는 이유

 

숫자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내 경험을 통해 잠시 얘기해보죠. 나는 작년 10월부터 이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막 6개월이 된 셈입니다. 블로그를 하려고 맘 먹은 것은 세 가지 목적에서였습니다.

 

첫째, 내 강의를 들은 학생이나 직원들과의 장기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마련하는 것

둘째, 내 사유세계와 그 결과물들이 사회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하는 것

셋째,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을 비교적 차분하게 기록하는 것

 

처음에는 카페를 만들까, 싸이월드를 할까 하다가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에서 고생을 했지만, 블로그의 세계를 차츰 이해하면서 보람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숫자입니다. 이 블로그의 오른쪽 아래에 보면, 카운터 모듈이 있습니다. 방문자 숫자가 떡 찍힙니다. 어제는 몇 명, 오늘은 몇 명, 전체 몇 명이 자동으로 계산됩니다. 처음에는 10여명이었는데 요즘은 몇 백 명 수준으로 올라갔습니다. 늘 관심을 가지고 있던 신지애 선수에 대해 글을 썼더니 어떤 날은 몇 천명이 한꺼번에 몰려 오기도 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방문자 수에 따라서 광고수입도 얻을 수 있답니다. 그래서 방문자 수를 늘리기 위해서 혈안이 된 블로거들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호객행위로 방문자를 끌어 모으기도 합니다. 호객행위는 아니어도 자극적인 제목을 뽑으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합니다. 하지만, 파워블로그라고 해도 광고를 달아봐야 수입은 대부분 껌 값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들 방문자 수에 목을 매는 걸까요? 그게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숫자가 우열을 가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더 큰 숫자가 더 힘이 세고, 더 매력적이고, 크면 클수록 좋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심지어 숫자가 클수록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나는 어떻게 됐을까요? 이 블로그는 당초의 목적을 잘 달성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놈의 숫자입니다. 매일, 오늘은 방문자가 몇 명인가 하고 들여다 봅니다. 숫자가 많으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숫자가 내려가면 별로입니다. 방문자수를 늘리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숫자가 큰 소위 파워블로그도 들어가 봤습니다. 이 숫자를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 볼까, 사회적으로 뜨거운 이슈들을 다루어볼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당초의 목적을 잘 달성하고 있는데, 나는 왜 방문자수에 연연해 하는 걸까? 내가 내 자신에 물었습니다. 광고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방문자수가 많아진다고 내게 당장 유리한 어떤 것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방문자수에 신경이 쓰이는 걸까? 방문자수가 많아져 봐야, 깨알같이 쓰인 내 글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사진이나 여행기에 주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숫자가 내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왜 자꾸 방문자수에 마음이 쓰이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블로그에 들어가면 우선 숫자부터 봅니다. 이렇게 나도 숫자에 중독되어 가는가 봅니다.

 

왜 그럴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거기 숫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숫자로부터 초연해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숫자의 힘에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숫자에 쪼임 당하는 현대인과 바나드

 

이렇게 현대인은 숫자에 쪼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쪼임을 통해서는 온전한 헌신을 끌어낼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쪼임은 오직 긴장상태를 유발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긴장상태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합니다. 모든 운동의 기초는 몸의 긴장을 푸는 것입니다. 긴장이 풀려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에 있어서도 마음의 긴장이 풀려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인데, 오히려 숫자로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조직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체스터 바나드는, 커뮤니케이션은 명확해야 하고 구성원의 헌신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위대한 사상은 테일러리즘의 숫자광풍에 휩쓸려 피어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역사의 흔적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나드의 사상을 오늘에 되살려야 할 시점입니다.

 

 

P.S.  바나드의 사상은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과급과 같은 첨예한 문제뿐만 아니라 의사결정메커니즘에서도 예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음 기회에 언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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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1930년대 초반, 소위 테일러리즘(Taylorism)에 저항하기 위해 연구했던 메이요(Elton Mayo)의 연구작품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테일러리즘은 오히려 포드자동차에서 꽃피었습니다. 헨리 포드는 공장을 이동식 조립라인으로 만들어서 과학적 관리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습니다.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이루었습니다. 그리하여 포드는 1914 15, 수익금 중 1,000만 달러를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는 데 쓰겠다는 파격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당시 주급11달러에 불과하던 노동자의 임금을 하루 5달러, 주급 30달러로 올렸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 전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언론에서는 대서특필했습니다.

 대부분 아낌없이 주는 관대한 행위라고 칭찬했는데, 유독 <월 스트리트 저널>산업계에서 시도된 가장 어리석은 행위라고 혹평했습니다. 포드사의 생산성 향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나중에 밝혀졌는데, 이동식 조립라인을 통해 절감된 경비는 노동자들에게 하루에 20달러, 주당 120달러를 지불할 수 있을 금액이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 중에서 약 1,120만 달러가 주주들에게 지급된 셈이었습니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자, 포드는 매우 큰 폭의 임금을 다시 삭감해 버렸습니다. 포드는 결코 박애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테일러의 생산성 복음이 휩쓸고 있던 시절, 그러니까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경영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체스터 바나드(Chester Irving Barnard, 1886~1961)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별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바나드는 젊은 시절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에 필요한 졸업학점을 다 이수했습니다. 그러나, 기술계량과목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학당국으로부터 학사학위 수여를 거절당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조직에서 경영자의 기능을 밝힌 공로와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7개나 되는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을 정도로 조직과 경영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전문적인 학자로 연구한 적이 없습니다. 사기업에 입사해서 사장까지 지냈고, 공기업과 비영리단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의 통찰력은 1938년에 『경영자의 기능』(The Functions of Executive)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몇 차례 소개했습니다. 참고하세요.

2009/02/18 경영이란 무엇인가(3)_효과성과 효율성
2008/12/29 경영의 효율성과 효과성
2008/10/30
내가
읽은 가장 위대한 경영학 고전

이제 바나드의 통찰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 그의 사상이 나중에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바나드는 조직이 성립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공동의 목적 (common purpose)
둘째, 협력 의지(willingness to contribution)
셋째,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이 세 가지 요소는 조직의 필요충분조건으로서 모든 조직에서 볼 수 있습니다.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는 통찰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영자의 기능이란 이 세 가지 요소를 잘 이해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가지고 경영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란 말인가?

우선 첫째 요소부터 보겠습니다. 경영자는 조직의 공동목적을 구성원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직의 목적과 개인의 동기를 일치시킬 수 없기 때문에, 조직의 공동목적이 성취됨으로써 구성원의 개인적 욕구가 충족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효과성과 효율성의 개념적 분리가 나타납니다
.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효과성은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하고, 효율성은 그 과정에서 구성원의 동기가 충족되거나 만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효과성이 높아도 효율성은 낮을 수 있고, 효과성이 낮아도 효율성은 높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나드는 효율성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판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들어, 충성심과 신뢰, 팀 스피릿, 조직목적에 대한 헌신과 같은 추상적 개념들, 즉 구성원의 태도변화와 같은 요소들은 공학적으로 다루기 힘들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바나드가 효율성이란 구성원의 동기충족이나 만족을 나타낸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의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효율성을 공학적 의미, 즉 투입량대비 산출량의 비율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숫자는 인간에게 포르노만큼이나 매혹적입니다. 숫자를 들이대면 꼼짝할 수 없습니다. 어느 경영자가 매출이 전년대비 20% 하락했다는 보고를 듣는다면 어떤 심정이겠는가? 수도권의 매출증가율이 5%로 높아졌다는 보고는 어떤가? 고객만족도가 경쟁사에 비해 2%포인트 낮다는 보고를 받았다면? …

인간이 숫자에 치명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았던 허버트 사이몬(Herbert A. Simon, 1916~2001)은 효율이라는 용어를 숫자로 대치시켜 버렸습니다. 엘톤 메이요의 엉성한 인간관계 개념과 체스터 바나드의 "경영자의 기능"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측정할 수 없는 것보다는 숫자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이몬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1945년에 『관리행동론』(Administrative Behavior)이라는 단행본으로 출판합니다. 이 책이 그의 사상에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생을 통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효율성(efficiency)이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대안 중에서 최대의 이익을 조직에게 가져다 주는 대안을 선택하게 하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리고는 주관적 가치가 제거된, 소위 매정한 효율성’(ruthless efficiency)을 계산하여 관리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제적이고도 합리적인 효율성 개념을 다양한 분야에 적용함으로써 나중에는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았습니다.

그 후의 경영학 또는 경제학에서는 소위 효율성 공학(efficiency engineering)이 각광을 받기 시작합니다. 효율성 공학에는 모든 것이 측정 가능해야 하며, 계산할 수 있는 숫자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만약 측정할 수 없는 대상이 있다면 측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형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구성원의 만족감 같은 것은 조직 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측정할 수 있는 잣대가 마땅치 않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전제와 조건을 만들어서 측정 가능하도록 조작해야 합니다. 7점 스케일로 측정한다면, 가장 만족스러웠을 때를 7점에 놓고 가장 불만족스러웠을 때를 1점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만족감은 몇 점인지를 조사하여 만족수준을 계량화합니다. 5.5보다는 6.3이 더 높은 점수이므로 만족감이 더 높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방식은 오늘날 통계학의 도움으로 매우 정교한 결론을 도출해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결과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거의 의심하지 않습니다.

많은 기업이 직원 사기나 고객만족을 설문조사기법으로 파악합니다. 여기서 얻은 숫자를 통계 처리하여 경영에 반영합니다. 정부에서도 관련부처들의 경영혁신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각종 만족도를 조사합니다. 지자체에서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을만 되면 온 나라가 만족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실무에 있을 때, 이 분야에 관여해봐서 조금 압니다만, 한 마디로 말하면 신뢰할 수 없다입니다. 왜냐? 고객만족과 같은 질적인 요소들은 워낙 주관적 요소가 많기 때문에 설문지와 모집단 구성, 그리고 샘플의 추출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합니다. 6.3 5.5의 차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숫자가 조작되어 통계 수치로 나왔다는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숫자들이 완전히 엉터리로 지어낸 가짜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숫자가 나오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전제와 가정이 깔려 있기 때문에 그 전제와 가정 중에서 한두 가지만 바뀌어도 숫자는 달라지고, 아무도 그 바뀐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측정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질적인 판단영역을 계량화함으로써 불가피하게 치르는 비용과 폐해는 그것을 통해 얻는 이득에 비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무슨 협회나 단체에서 기업들에게 만족도를 조사해 주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만족도가 높은 상태에 있으면 명예의 전당에 올려주는 장사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실 이것이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영자들이 조작적으로 수집된 통계수치에 의지해서 경영하는 것은 마치 내비게이션을 믿고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 내비게이션을 믿으면 가끔 낭패를 보게 됩니다. 인간의 주체적 삶을 숫자나 기계장치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니까, 지리에 대한 방향감각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나의 경험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경영자는 현장의 상황이나 구성원들의 태도변화를 직접 감지할 수 있는 민감한 감각을 기르고 영혼의 순수함을 유지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나드는 개인적 동기의 주관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설득에 의한 구성원들의 태도변화를 중시했습니다. 그는 이런 주관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대안이 더 효과적이라거나 더 효율적이라는 객관적 질문을 제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바나드가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만족도를 조사하는 행태를 보면 뭐라고 할까요? 내 짐작에는 당장 집어치우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테일러리즘의 광기를 뚫고 피어 오른 어린 새싹이, 즉 1938년에 발표된 "경영자의 기능"이라는 바나드의 기념비적인 사상이, 포르노보다 더 강렬한 숫자 앞에서 총맞은 것처럼 스러져갔습니다.

오늘날
많은 경영자와 학자들이 숫자 앞에 무릎을 꿇고 숫자의 신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런 숫자 앞에서 눈을 돌려 과감히 무릎을 펴고 일어서야 합니다. 숫자는 항상 진실을 가리기 때문입니다이제 숫자가 아닌 사태의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나드 얘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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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경영을 논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효율성(efficiency)입니다. 하지만, 효과성(effectiveness)을 더 중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효과성이란 어떤 결과가, 그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목표에 도달한 정도를 나타냅니다. 기업에서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기업의 성장과 발전은 효과성에 달려있다는 믿음이 퍼져 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기업경영에 있어서 효과성(effectiveness)과 효율성(efficiency)을 엄격하게 구분해서 사용해야 하고, 각각의 의미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효과성은 결과를 나타내지만, 효율성은 과정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개념들이 서로 혼선을 일으키면 기업경영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모르고, 경영자들이 헛발질을 하게 됩니다.

 

효과성은 전통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개념이므로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효율성은 보통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른 면이 있으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효율성은 크게 보면, 두 가지 방향에서 연구하고 활용되어 왔습니다.

 

첫째, 공학적 접근입니다. 여기서는 투입 대비 산출의 비율로 효율성을 계산합니다. 경영자들은 최소한 투입으로 최대한의 산출을 끌어낼 수 있는 해법을 찾기 위해 공학적 효율성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효율성은 기업경영의 합리성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적정재고수준의 계산, 물류이동거리의 최적화 등과 같은 계량화된 변수들의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쉽게 규명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경영자들에게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습니다.

 

둘째, 효율성에 관한 인간적 접근방식으로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심리학적 논리체계를 말합니다. 인간적 효율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효율성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한 인물은 체스터 바나드(Chester Irving Barnard, 1886~1961)입니다.

 

그는 어떤 결과가 목표에 도달한 정도를 효과성(effectiveness) 개념으로 설명했고, 어떤 행위가 행위자의 동기를 충족시키면서 불만족을 일으키지 않을 경우를 효율적(efficient)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행위가 행위자의 동기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하게 되면, 그 행위가 비록 목표를 달성하여 효과적이더라도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C. I. Barnard, The Functions of Executives, Harvard University Press 1938 참조)

 



바나드의 저작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사상은 효율성이란 조직구성원의 동기가 충족되어 만족감을 느끼는 정도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효율성은 공학적 효율성을 넘어섭니다. 구성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여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도움으로써 조직 전체가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합니다. 말하자면, 높은 인간적 효율성은 자연스럽게 높은 효과성을 가져다 줍니다.

 

여기서 효율성과 효과성을 다음과 같이 2x2매트릭스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효과성

높음

C

A

낮음

D

B

낮음

높음

효율성

 

A는 기업의 높은 인간적 효율성을 통해 높은 효과성이 실현되는 경우인데, 이는 우리가 원하는 상태(desired state)입니다. 이런 상태에 도달하면, 그 조직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발전은 궤도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B는 조직구성원의 인간적 효율성은 높은데 조직 전체의 효과성이 떨어지는, 즉 조직구성원의 내적 동기(intrinsic motive)는 충족되고 있지만, 조직의 목표는 달성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매력적인 비전과 조건이 정비될 때, A의 상태로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영자들이 이런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피하고 싶어합니다. 구성원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게 되면, 심리적 만족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조직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통제불능의 사태로 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경영자들은 자연스럽게 C의 상태로 나가고 싶어하며, 인간적 효율성보다는 공학적 효율성을 통해 조직 전체의 효과성을 높이려 하게 됩니다.

 

C는 조직구성원의 내적 동기가 충족되지 않고 있어 불만족 상태에 있지만, 경영자는 쥐어짜는 방식의 경영을 통해 목표를 달성한 경우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조직이 이런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공학적 효율성을 통해 효과성을 높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D는 조직구성원의 내적 동기도 충족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기 때문에 조직 전체에 낮은 효과성을 나타냅니다. 불황의 위기에 처한 요즘 같은 비즈니스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첫째, 구조조정과 같은 방식의 쥐어짜는 공학적 효율성을 높여 C로 끌어 올리는 대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결코 좋은 대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모든 구성원을 긴장과 스트레스 속으로 몰아넣기 때문입니다.

 

둘째, 인간적인 효율성을 높여 B로 나가게 하여 매력적인 비전과 조건을 정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A로 진입하는 상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조직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것은 경영에 있어서 인간에 대한 기본 전제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직의 효과성을 높이려고 인간을 기계의 부품으로 보는 지금까지의 공학적 패러다임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 공학적 패러다임에서 인간적 패러다임으로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해야 합니다.

 

인간을 영혼의 능력을 소유한 실존적 존재로 전제하게 되면, 새로운 방법론과 기법들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됩니다. 재무제표의 숫자에서 눈을 돌려 구성원들을 <깨어있는 마음>의 눈으로 보게 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경영이란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효율성이고, 이런 효율성이 조직에 높은 성과를 가져올 것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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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누가 나에게 지난 100년간 가장 위대한 경영학 고전을 두 개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체스터 바나드(Chester I. Barnard, 1886~1961)의 『The Functions of the Executive』(1938)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의 『The Practice of Management』(1954)를 들 것입니다. 후자는 이미 번역되어 나왔고 드러커는 거의 연예인만큼이나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그의 이름과 사상의 대강은 알고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나드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체스터 바나드는 비교적 덜 알려진 인물입니다. 20세기 경영학에서 경영사상의 지축을 흔들어 놓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인데도 세간의 인기를 크게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바나드 이후의 경영학자들은 대부분 그의 사상으로부터 직간접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인물은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몬(Herbert A. Simon, 1916~2001)입니다. 그의 제한적 합리성과 의사결정이론은 바나드의 사상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인물 중에는 피터 드러커를 들 수 있습니다. 드러커의 업적과 공로에 대해서는 나중에 리뷰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바나드 사상의 일면을 드러낸 『The Functions of the Executive』에 의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1938년에 출판된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문자 그대로 경영자의 기능을 정의하는 것이었습니다. 경영자는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함으로써 조직구성원의 헌신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경영자의 핵심기능을 정의하고 나니까, 경영자의 권위는 경영자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하들이 그의 권위를 마음으로부터 수용해 줘야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경영자는 부하들을 진심으로 존중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단순히 말로만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설득력과 성과급(incentives)을 적절히 활용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성과급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설득의 중요성을 더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효과성(effectiveness)과 효율성(efficiency)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내가 바나드의 위대함을 보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바나드는 조직론에서 효과성과 효율성을 최초로 구분했습니다. 조직이 영속하기 위해서는 효과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개의 범주를 동시에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직의 효과성이란 명시적인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느냐에 따라 정해지며, 조직의 효율성은 조직이 구성원의 동기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었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요즘 우리가 흔히 효율성을 단순히 투입대비 산출의 정도로 측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정의입니다. 경영학이 점차 공학으로 변해가면서 효율성의 개념과 정의도 많이 왜곡되었습니다.

 

아무튼 요즘 쓰는 용어로 표현하자면, 바나드는 조직구성원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하면, 즉 효율성을 높이면, 조직의 목적 또는 목표를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즉 효과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진리입니다. 진리는 단순합니다.

 

“효율성을 높이면 효과성이 높아진다.” 즉,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상태를 제공하면 조직의 목적은 지속적으로 달성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지성으로 본다면, 그런 정도가 뭐 대단한 것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대공황의 처참함에서 겨우 벗어나려고 하던 미국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노동자는 넘쳐나는 데 일자리는 부족한 상황을 감안할 때, 그래서 노동자의 인권을 생각하기 어렵던 시대임을 감안할 때, 시대정신의 흐름을 뒤집어 업는 놀랄만한 발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발상은 광야에서 외치는 진리였습니다.

 

놀랍게도 바나드는 대학에서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었습니다. 상아탑에 안주하는 창백한 지식인이 아니었습니다. AT&T에 사원으로 입사해서 자회사의 사장까지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공기업을 맡아 경영한 경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학자들과 교류하고 있었을 뿐, 한번도 전문적인 연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경영자 권위의 문제, 설득의 커뮤니케이션과 성과급 이슈, 효과성과 효율성의 명확한 구분 등과 같이 그가 보여준 통찰력은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빛날 것입니다.

 

그러나, 70년이 지난 요즘 우리 경영학계과 실무계는 바나드의 통찰을 무시한 채 인간을 “돈 버는 기계”로 생각하거나 “목적달성을 위한 자원”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사상에 너무 깊이 빠져 있습니다. 사람은 기계도 자원도 아닙니다.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싶어하는 실존적 존재입니다. 이러한 진실을 외면하면, 조직의 장기적인 효율성과 효과성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요즘, 경영자들은 바나드의 사상을 다시 한번 깊이 곱씹어 봐야 할 때입니다.(끝)

 

[참고] 이 책은 15년 전에 신한종합연구소의 기업문화팀에서 『관리자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역자들은 이 책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번역까지 하느라 많은 고생을 했을 텐데, 약간의 오역과 매끄럽지 못한 부분 등 다소간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원서를 그대로 보시면 훨씬 그 뜻을 명확히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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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