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와 보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약> 앞서 말한 대로 사고력과 실행력을 갖추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인간과 조직에 관한 올바른 가치관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인간을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실존적 존재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인간들의 공동체가 곧 조직이며, 조직은 구성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이런 전제하에 자신이 맡은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펀드매니저라면, 그는 투자자의 각종 리스크를 안전하게 헤징해주는 안전한 자산관리자로서 수호천사가 될 것이며, 환경미화원이라면 그의 오른손에 든 빗자루는 지구를 깨끗하게 하는 거룩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더 가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경영진들의 보상을 일반직원 평균연봉의 수백 배를 받는 것은 잘못입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부하들과 다른 사회적 지원이 없이 높은 성과를 낼 수 있겠습니까? 다들 협력한 결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영진에게 너무 과도하게 보상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사회보장이 잘 된 북구와 같은 사회에서는 대학교수나 버스운전사나 사는 모습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경제적 보상이 큰 경우라도 대부분 세금을 걷어가기 때문에 실제적인 생활모습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요. 각자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서 높은 지위에 올라갔다면, 그 자리에서 하는 일에 만족감과 즐거움, 행복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지신의 지위에서는 이미 보상을 충분히 받은 것이죠. 그래서 월 스트리트와 같이 큰 경제적 보상을 당근으로 내 거는 것은 공정한 처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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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보상제도에서 성과에 따른 차별적 보상이 심대한 경우에는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

모든 제도는 항상 구성원에게는 강력한 구속력을 갖고 있지만
, 상징적 메시지를 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지각을 세 번 하면 한번 결근한 것으로 간주하는 규정이 있다고 칩시다. 이러한 규정은 어떤 메시지를 줍니까? 지각하지 말라는 메시지입니다. 세일즈맨에게 성과급을 기본급의 50퍼센트가 되도록 제도화했다면 이것은 무슨 메시지를 줍니까? 어떤 방식으로 판매활동을 하든 세일즈 볼륨을 높이라는 무언의 메시지입니다. 높은 당근을 내걸었기 때문에 그 당근이 성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실제로 당근이 성과창출에 도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근이 없다면 누가 일에 참여하겠습니까? 따라서 보상이 평가결과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야 하지만, 연결의 내용과 방식은 그 조직의 문화적 수준 또는 성숙 정도에 따라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당근(보상)이 과연 일의 목적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내가 한국은행에서 20년간 일했던 시절을 돌아보면, 유형 무형의 보상이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혹독한 일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의 삶이 나에게 달려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일도 반감이나 싫증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동기들과 같은 수준에서 보상을 받았고, 승진도 다들 비슷비슷하게 했습니다. 아주 유능한 사람은 총재나 부총재 정도의 출세를 노려볼 수 있습니다. 20년씩 함께 일하다 보면, 각자의 능력은 밝혀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동기 중에 누구누구는 총재감이라는 소문이 납니다. 한국은행 역사를 보면, 대개 그런 인물들이 총재 또는 부총재가 됐습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대세에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한국은행이 너무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라는 외부의 비판이 있긴 하지만, 조직 자체로서는 예측가능한 인사가 실현되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직원들 대부분은 승진과 보상에 상관없이 한국은행에 근무하는 것 자체를 명예롭게 생각했습니다.

 

명예 얘기가 나와서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한국은행에서 3년간 조직개혁작업을 하느라 고생을 했다는 얘기는 예전에 했습니다. 그때 보상제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로 당시 헤이그룹(Hay Group) 일본지사에 자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헤이그룹은 미국의 인사전문가였던 에드워드 헤이가 20세기 초중엽에 세운 인사컨설팅회사인데, 전세계적으로 서비스를 합니다. 다나카 시게루 사장과 와타나베 토시카즈 부사장이 세미나와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한은의 조직개혁작업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문제는 직무평가방법론인 <헤이 가이드 차트 Hay Guide Chart 기법>을 통한 직무평가와 그 결과에 근거한 보상제도를 설계할 때 발생했습니다. 직무평가야 주어진 차트에 따라 하면 되는데, 그 결과를 직급체계로 구분해서 보상제도를 설계할 때 논란이 생겼습니다. 헤이그룹의 견해는 당연히 성과평가 결과에 따라 개별적으로 차별적 보상이 주어져야 하며, 그것이 가급적 점차 벌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형적인 미국식 사고였습니다.

 

헤이그룹에서 한은 경영진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당시 박철 부총재의 언급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돈 몇 푼 가지고 사람들을 치사하게 만들지 말라는 얘기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다들 한마디씩 하는 얘기 중에 한 말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그냥 흘려 들었을 텐데, 내 귀와 마음 속에는 아직까지도 그 말이 깊이 꽂혀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경제적 합리성을 넘어서는, 명예를 중시하는,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 본연의 속성과도 관련된 문제입니다. 인간은 돈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명예로워질 수도 있으며, 돈 때문에 치사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평가와 그에 따른 보상제도가 구성원들의 마음 속에 명예로움을 느끼도록 하지는 못할 망정 치사함을 느끼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한국은행의 개혁작업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서 한은을 떠났습니다. 컨설팅 시장으로 나왔을 때, 한은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돈으로만 평가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회계사들과도 많은 일을 해야 했는데, 고객에게 자문료나 컨설팅 비용 등을 청구하기 위한 도덕적 해이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말하자면, 고객은 저렴한 비용을 요구하고, 회계법인이나 컨설팅 회사에서는 가격경쟁을 통해 수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일단 수주하고 나면, 회계사나 컨설턴트들의 투입시간을 조정하여 비용을 과다하게 청구함으로써 회계법인이나 컨설팅 회사의 수지를 맞추는 관행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컨설팅 회사는 연구개발에 시간을 쓸 여유가 거의 없습니다. 나는 이것이 컨설팅 시장의 악순환을 계속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몰랐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사태의 본질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계사와 컨설턴트들이 자신을 앵벌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런 사태를 방조하는 회계법인과 컨설팅 회사 경영진의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유정식, 『컨설팅 절대 받지 마라』, 거름 2007을 참조하세요. 컨설팅 세계에 대해 잘 묘사해 놓았습니다. <infuture>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데 배울 것이 많습니다.)

 

이들 경영진의 태도는 회계사와 컨설턴트를 인간이 아니라 돈을 벌어오는 기계로 생각하는 착취구조로 고착되어 있습니다. 대형회사의 경영진은 과도한 보상을 받아가지만, 그들의 보상구조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말은 투명성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경영진으로 올라서서 큰 보상을 받을 날을 고대하면서, 젊은 회계사와 컨설턴트들은 앵벌이와 같은 인고의 나날을 보냅니다. 그 동안 전문성과 실력을 쌓기 보다는 프로젝트 수주요령을 익힙니다. 회사가 당근을 내걸고, 젊은 회계사와 컨설턴트들의 재능을 뽑아내는 구조입니다. 여기에는 무형의 폭력이 숨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은 오로지 돈이 되느냐 아니냐입니다.

 

교육계의 먹이사슬도 같은 구조입니다.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잘 보여야 할 유인이 거의 없습니다. 학교장에게 잘 보이는 것이 승진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장은 교육청관료들에게 잘 보여야 좋은 학교로 발령을 받게 되고, 교육청은 교육부 관료들에게 잘 보여야 국물이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윗사람들이, 주로 행정관료들이 일선의 교사들을 힘과 돈으로 쪼면 쫄수록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는 듯 합니다.

 

일정한 경력이 있고 잘 가르치는 교사를 수석교사로 임명하는 것을 당근으로 내걸기도 했지만, 교육이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교사들에게 계급을 두어 교육행위를 유인하려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음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교사들의 인사고과에 따른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교육계를 혁신해 보려고 하지만, 교사들간의 불신과 불화만 일으켰습니다.

근본은 무엇인가? 교육부의 행정관료에서부터 일선 교사들을 거쳐 학부형에게 이르는 착취구조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포기하고 아래로 내려와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사는 학생을 섬기고, 교장은 교사를 섬겨야 합니다. 교육청은 각급학교장과 교사들을 섬겨야 합니다. 교육부 행정관료들이 지방의 교육청을 섬기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나라 공교육이 살아날 것입니다.

 

착취구조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섬뜩하게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착취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살펴보면 금방 이해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세상에 다른 사람과 똑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윗사람은 권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아랫사람에게 명령함으로써 자기와 동일한 생각을 하도록 강요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신의 명령과 지시대로 실행하지 못하면 보상과 처벌권한을 발동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자발적인 동기가 아닌 당근과 채찍으로 움직이는 것이 문제인데, 이것이 바로 헤겔이 말하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가 시작되면, 아랫사람은 실존적 존재가 아닌 물질적인 생명체로만 존재합니다. 조직구성원의 고유한 잠재력을 왜곡하기 때문에 바로 이때부터 착취고리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나아가 성과평가 활동과 그 결과물,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이 조직구성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개별성과급이 나쁘다 좋다를 논하기 전에, 그 성과급이 조직구성원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어떤 메시지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내가 속한 조직의 보상시스템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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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조직은 성과를 내기 위해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절차로서 제도화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때 제도화의 지향점은 성과입니다. 그래서 성과론이 고성과조직(High Performance Organization)의 핵심을 이룹니다. 매 회계연도에 맞추어 성과목표를 설정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은 그림에서 보듯이 성과책임과 연간사업계획입니다.

 

High Performance Organization

 

연간사업계획이 필요 없다고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미세한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언급하는 연간사업계획의 폐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직의 의지의 표현인 사업계획(business plan)은 어떤 경우에도 필요합니다. 사업계획을 세울 것인가 말 것인가의 논쟁은 사업계획이 구성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업계획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은 결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계획은 계획일 뿐입니다. 계획이 의미를 갖는 것은 계획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구체적 지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부산에 가려는 목표를 세웠을 경우(, 부산에 도착하는 것을 성과라고 정의했을 경우), 계획이란 바로 언제 어떻게 갈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므로, 상황에 따라서는 매우 다양한 수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과목표는, 맡은 직무의 성과책임과 조직의 전략에서 구체화된 연간사업계획을 바탕으로, 설정되어야 합니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과목표는 타율적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조직구성원의 자율성에 맡겨 두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모든 조직구성원은 시간, 예산, 인원수 등을 포함한 연간사업계획에 따라 자신이 맡은 직무의 성과책임을 고려하여 스스로 성과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성과책임이 부산에 도착하는 것이라면, 성과목표는 언제까지 대전에 도착하고, 다시 언제까지 대구에 도착할 것인지를 정의한 것입니다. 물론 이를 위한 수단과 방법도 정의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KTX로 갈 것인지, 자전거로 갈 것인지 등과 같은 것 말입니다.
 
이렇게 성과목표가 구체화된다는 것이 곧 계량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매출액, 영업이익률, 자산운용수익률, 시장점유율 등과 같이 계량화가 가능한 것들은 계량화할 수 있겠지만, 불가능한 것을 굳이 계량화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조직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서 계량화되는 것보다 계량화되지 않는 정성적인 것들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과론에서 가장 첨예하게 논쟁이 되는 분야는 성과목표 설정보다는 성과평가에서 발생합니다. 성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평가만큼 논란이 많은 이슈도 없습니다. 평가가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평가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습니다. 평가의 방법과 기술적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 이전에 평가란 무엇인가를 정의해야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평가를 보상결정을 위한 수단 또는 도구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고, 관리자의 권력행사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평가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평가는 과거의 잘잘못을 가려서 그 원인을 캐는 것도 아니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내가 실무에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직원들과 일할 때 가장 크게 실패했다면 아마도 평가에 대한 오해를 풀어내지 못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평가는 결코 보상결정 수단이 아닙니다. 평가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반성하고 전망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대부분의 조직은 이 절호의 기회를 보상에 대한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조직구성원은 평가를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한 두뇌게임으로 생각합니다. 부하는 자신의 패를 상사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상사 또한 평가를 부하관리의 좋은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부하와 상사 간의 팽팽한 신경전을 벌입니다.

또한 평가는 기득권에 봉사하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나는 평가의 개념에서 이 도구적 성격을 빼버리는 데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인사고과자는 아무도 자신의 평가권한을 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란 상대방을 보상하고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하는 것인데, 멍청하게도 이 권한을 축소하거나 없애려고 했습니다. 나는 회사의 간부들을 링컨이나 간디와 같은 위대한 인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교육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학생들을 평가하는 목적을, 시험성적으로 잘잘못을 매기는 것이고, 그에 따라 서로 경쟁해서 더 잘하도록 동기부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식의 평가이해야말로 인류를 시기와 질투, 불안과 공포, 폭력과 절망으로 안내하는 교묘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일선 학교 교장들에게 더욱 많은 권한을 준다고 정부에서 발표했습니다. 교장에게 감독권한을 더욱 강화해주면, 과연 교사들의 교육행위의 질적 수준이 올라갈까요? 앞으로 교사들은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더욱 멀어질 것이고 교장의 얼굴에 더 신경 쓰게 되겠지요. 교육계의 평가방식에 대한 얘기는 추후에 다시 할 예정임)

 

평가제도는 기득권의 권력확보 또는 권력유지에 유리하도록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평가제도의 혁신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조직 전체의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권력을 포기하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누가 권력의 단맛을 스스로 놓으려 하겠는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아래의 자리로 내려설 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섬길 때 비로소 변화와 혁신의 바탕이 마련됩니다.

 

평가(appraisal)는 현 상황을 진실하게 파악하고 미래를 향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인지를 살펴보는 피드퍼워드(feedforward)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평가의 본질입니다. 평가자가 평가대상자의 미래를 진심으로 염려하고 장래에 희망의 빛과 애정의 비단길을 깔아줄 때 평가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평가는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의 재확인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원인을 밝히고자 한다면, 평가대상자는 심리적 방어메커니즘을 발동하여, 과거의 진실을 밝힐 수 없게 됩니다. 설사, 그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한 부하의 심리적 상처는 지울 수 없게 됩니다. 또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면 뇌세포로 하여금 과거의 배선망(neural wiring)을 더욱 굳어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과거와 단절하려면 과거를 건드리지 말고, 망각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평가란 과거와 단절된 현 상황을 사실 그대로 인식하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의지의 표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과평가 결과가 보상으로 연결되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의 논쟁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보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입니다. 연결이 안 되면, 결과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아무런 메시지를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강력하게 연결될 경우에는 많은 부작용이 초래됩니다. 보상은 인간의 정신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우수한 성과를 낸 유능한 사람에 대한 보상은 시골 초등학교의 운동회에서 받았던 수준의 표창으로 족합니다. 보상은 다만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이 성과에 따른 보상의 차이가 크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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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알피 콘(Alfie Kohn, 1957~)이라는 교육학자는 오프리 윈프리 쇼에서 돈이 인간의 정신과 행동을 얼마나 왜곡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성과급이 일에 대한 동기부여와 흥미를 얼마나 심각하게 떨어뜨리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것’(과제)을 하면 저것’(보상)을 받게 됩니다라는 말은 '이것' 자체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게 됩니다. 당신이 그 과제에 대한 노동과 교환할만한 어떤 다른 '저것'을 주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실험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열명의 어린이들(A집단)에게 장난감 회사에서 제공하는 퍼즐을 시험해 보는 대가로 5달러를 주기로 했습니다. 다른 열명의 어린이들(B집단)에게는 보상이 전혀 없이 그냥 퍼즐을 시험해 보도록 했습니다. 퍼즐은 아이들이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 모르게 숨겨진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퍼즐 시험이 끝나고, 어린이들을 각각 방에서 잠시 기다리도록 한 후, 장난감 회사 직원은 밖으로 나갔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A집단(5달러를 약속 받은)어린이들 중 아홉 명은 퍼즐을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B집단(아무 보상이 없었던) 어린이들 열 명 모두 그 퍼즐을 계속 가지고 놀았습니다.

 

이렇게 돈은 인간의 원초적이고도 내재적 동기부여(intrinsic motivation)를 왜곡하거나 훼손합니다. 알피 콘은 자신의 책 『Punished by Rewards(Houghton Mifflin, 1993/1999)에서 지난 수십 년간 돈이 인간의 이성적 행동과 합리적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를 조사했습니다. 놀랍게도 6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돈을 포함한 보상이 인간의 동기구조를 왜곡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왔음을 밝혀냈습니다.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경우에 보상은 높은 성과를 내는데 오히려 나쁜 영향을 끼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예외란 보상이 성과를 높여주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단순한 과제들, 즉 아무나 할 수 있고 쉽게 수량화되는 과제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편지봉투를 접는 일과 같이 아무나 할 수 있고 그 결과를 수량으로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일이라면, 보상이 더 빠르게 더 열심히 일하도록 자극함으로써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생각을 해야 하거나 판단을 필요로 하는 과제에서는, 한결같이 보상이 일에 대한 동기부여를 왜곡하거나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결과가 이러할진대, 기업의 실무에서는 어째서 이런 이론들이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행동주의 심리학이 워낙 강력하게 미국인들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70년대 초 대학에서 심리학 원론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심리, 즉 마음의 이치를 배울 것으로 기대했으나, 교수님은 나의 기대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미국에서 교육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신 분이었습니다. ‘인간에게 마음이란 없다. 보이지도 않고 측정하기도 곤란하다. 인간에게는 관찰가능한 행동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심리학이란 인간의 행동을 관찰 측정해서 설명하고, 나아가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정하는 학문이다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대학의 가르침이 중고등학교와는 다르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님이 그렇다는 데 누가 감히 그 말에 도전할 수 있겠는가. 그 후에는 줄곧 심리학을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학문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은행에서 일하면서도 그런 생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에 독일 유학 중에 심리학에 대한 내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는 경영학 중에서도 인사조직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대학의 심리학과에서 2년간이나 꼬박 심리학 과목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이때 여러 교수님들로부터 심리학이란 마음의 학문이라는 가르침을 접하면서 또 다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융의 분석심리, 펄스의 게슈탈트심리이론을 배우면서 인간의 행동은 마음의 산물임을 알았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후 실무를 하면서 점차 균형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마음의 표현이고, 마음은 행동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마음과 행동은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심리학과 독일심리학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지를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형이상학적 사유에 능했고, 미국 사람들은 형이하학적 실증을 믿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문화의 차이였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미국의 심리학자 스키너(Burrhus F. Skinner, 1904~1990)에 의해 꽃이 피었습니다. 대학을 다닌 사람 중에서 스키너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상자 속의 쥐가 지렛대를 누르는 횟수에 따라 먹이가 나오는 실험을 했습니다. 지렛대누르기와 먹이의 변화를 통해 쥐의 행동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원리를 응용하여 동물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스키너 상자(Skinner’s Box)라고 불리는 가르치는 기계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버금가는 발견이었습니다.

 

이 상자는 비둘기에게 탁구 치는 법을 가르치고, 심지어 미사일을 유도하는 훈련도 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미국인들을 열광케 했습니다. 그들이 신세계를 개척했던 정신에 정확히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요소환원주의적인 방식으로 프로그램된 행동공학’(behavioral engineering)을 사람에게 활용한다면 인류는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비둘기에게 탁구를 치게 할 수 있는데, 사람에게 보상을 내걸고 행동을 강화할 수 있다면 무엇을 못 가르치겠는가! 이런 자신감은 미국인의 무의식 속에 아주 깊이 박혀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보상과 성과의 인과관계에 대한 뿌리깊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돈이 곧 성공이자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돈이라는 보상시스템이 신대륙의 개척정신과 청교도의 검약 정신을 심대하게 왜곡하고 있음을 미국인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정체성이 정말 밀수꾼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미국인들은 돈과 탐욕에 깊이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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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