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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한국교회에 벼락같이 떨어진 축복(1)


한국교회, 특히 대형교회들의 마케팅 전략은 기업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업들이 교회의 마케팅 실력을 보고 배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교회들은 교인을 고객으로 생각해서 철저한 고객만족경영을 지향하고 있으니까요.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불안이 아닌 위안, 회개가 아닌 축복, 희생이 아닌 성공, 절제가 아닌 풍요를 원합니다. 그들의 니즈를 정기적으로 조사하여 그에 부합하는 프로젝트와 이벤트를 기획합니다. 목사는 그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설교를 하면, 교인들의 수는 늘어납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대표적인 교회가 바로 다음과 같은 교회입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의 윌로우크릭 교회



릭 워렌 목사의 새들백 교회


       
 

이런 교회들을 한국교회는 금과옥조로 모방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교회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교회끼리 서로 경쟁을 한다?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어떻게?

 

교회가 경쟁하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쩌다 교회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를 상세히 분석한 책이 바로 옥성호의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프래그머티즘의 영향이 교회에 스며들면서 교회는 복음을 상품으로 포장하여 고객에 팔기 시작했다고 분석합니다. 그러면서 교회간에 경쟁체제가 도입되었고, 복음을 누가 더 잘 포장하여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되었습니다. 교회는 이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마케팅과 경영효율을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와 경쟁한다고 할 때 반드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삼성과 LG가 경쟁하는 이유는 삼성의 주인과 LG의 주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같은 회사들은 서로 이기기 위해경쟁하지 않습니다. 너의 승리가 나의 승리이고 나의 승리가 너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의 주인을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세워진 모든 교회는 한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교회간의 경쟁은 성경적일 수 없습니다. (358~359)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교회의 경쟁력을 비교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교회를 계량화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숫자로 측량하여 가치를 계산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측정하는 순간, 측정의 기준이 나타내는 가치 이외의 가치는 모두 삭제되기 때문입니다.

 

사물이 숫자로 계량화 되면, 사물의 본래 가치를 잃어 버립니다. 내가 쓰고 있는 볼펜의 값이 100원으로 매겨지는 순간, 이 볼펜은 그냥 100원으로 계량화 된 가치 밖에는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필히 써야 할 상황에서 쓸 것이 없어서 당황해 본 적이 있나요? 그 때 볼펜의 가치는 아마도 그 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 볼펜이 사랑하는 애인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면, 그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갖게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볼펜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선물이라면 어떨까요? 영원히 닳지 않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 그 볼펜의 가치는 감히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겠지요.

 

한국교회가 복음을 상품으로 포장하는 마케팅기술에 힘입어서 교회간의 경쟁으로 큰 성장을 이룩했다면, 그 속에서 진실한 복음의 씨앗은 어디 있는가? 교회가 세속적인 기업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교회는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계량화된 숫자의 마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계량화된 숫자에 의해 성공여부를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천 명을 먹인 후에 기적 같은 일들을 보고 따라다니던 그 많은 추종자들이 나중에는 다 떠나가고 몇 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크고 장대한 것이 진리인 것처럼 현혹되기 쉽지만, 오히려 인간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진리가 전달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조크를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로부터 재인용해 보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조크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그 유대 사람들 말이에요. 옛날부터 메시아인지 하는 구세주를 기다리던 그 사람들한테 한 사람이 오기는 왔대요. …… 그런데 웃긴 건 그 사람이 나사렛이라는 완전 시골 동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는 거예요. 게다가 또 자기가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자칭 구세주라는 친구가 세상을 구하는 방법인데 말이에요. …… 십자가에서 그냥 팍 죽어 버리는 방법으로 세상을 구한다는 거예요. …… 세상에 농담도 좀 말이 되는 걸 해야 하는데 말이야. ……

 

성도 여러분, 바로 이것이 당시 교육 받은 사람들이 십자가 복음을 향해 가지던 반응이었습니다.(398~399)

 

그렇다면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자의 논지를 따라 그 해법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393~452)

 

첫째, 교회는 십자가의 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십자가는 끔찍함, 부끄러움, 꺼리낌, 죽음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지혜로는 가장 믿기 어려운 장애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믿게 되는 반프래그머티즘적인 사건입니다. 목걸이를 만들어 가슴팍에 달고 다닐 수 있는 그런 사치품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십자가의 도를 마케팅 상품으로 부드럽게 포장하여 설교에 삽입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가르쳐야 합니다. 심리학이나 마케팅으로 포장된 복음이 아닌 복음 자체의 능력이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복음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매우 어리석은 것입니다. 복음은 전혀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성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교묘한 말로 사람의 귀를 현혹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들의 눈이 빔 프로젝터로 쏘아대는 화려한 장면에 취하도록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찬송으로 감정적인 정화상태를 억지로 만들어내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복음의 어리석음에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 숨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은 인간이 회개하여 죄에서부터 돌아서게 만듭니다.

 

셋째, 교회는 하나님의 진노와 거룩하심을 가르쳐야 합니다. 죄로부터 완전히 회심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가까웠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인간의 상대적 판단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심에 어긋나는 것은 진노의 대상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실용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혼전 동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대학가의 원룸지역에 특히 그렇다고 합니다. 교회는 절대적 거룩함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 마케팅상 복음을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그들에게 가장 거부감을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제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기브앤테이크의 거래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사와 가르침은 이 세 가지를 지향해야 합니다. 나머지는 다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성공이데올로기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와중에 옥성호의 저작들을 읽게 되었으니, 그의 작품들을 한국교회에 벼락같이 떨어진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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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