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과 불안에서 벗어나 신뢰와 평안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상업화와 경쟁의 논리로부터 벗어나서, 공동체적 유대감(solidarity)을 회복할 수는 없을까?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매우 겁나는 화두일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서로 도와주는 것은 그들의 자활의지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처럼, 가난은 자조노력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가 도와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 전체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발상이 정말 맞을까요?

 

이런 발상은 전혀 근거 없는 잘못된 믿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복지수준이 높은 북구의 여러 나라,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을 살펴보면, 신자유주의 이념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 넣은 이번 금융위기에서도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딕 국가들은 건재합니다. 이들 국가는 국민의 세금부담율이 평균 70%를 넘습니다. 소득의 70%를 세금과 보험료의 명목으로 정부가 거두어 간다는 말입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자가 볼 때, 전체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을 수탈한다고도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부가 자신을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갹출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의 완벽한 복지시스템이 작동합니다. 이러한 국가운영시스템과 정부에 대해 거의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뢰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앞서 얘기한 공정성과 투명성에서 나옵니다.

 

국가운영시스템이 공정하고 투명하다면, 신뢰가 생기고 공동체 운영에 대해 안심하게 됩니다. 그러면 악을 쓰거나 속임수를 쓰면서까지 영악스럽게 경쟁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사회안전망이 탄탄하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타인을 배려하게 됩니다. 만약 두터운 사회안전망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번 실패하면 쪽박을 차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하고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일해야 합니다. 긴장하면 자신의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실패한 사람이 재기할 기회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좌절하거나 낙심합니다. 때로는 분노하면서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됩니다. 그러므로 충분한 사회안전망은 설사 실패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다시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쿠션의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조선일보의 보도를 인용합니다.

 

덴마크로 대표되는 북유럽의 높은 경쟁력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유럽은 세금 많이 내기로 유명한 지역. 높은 세금은 일하려는 인센티브를 감소시키므로 노동 공급을 줄이고 성장에도 부정적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북유럽의 노동 시간은 짧다. 그런데 왜 이들 나라의 경쟁력과 생산성은 높을까?

 

코롬자이 전 국장은 높은 세금에 기반한 탄탄한 사회안전망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해고되더라도 사회안전망이라는 비빌 언덕이 있으므로, 구성원들이 유연한 노동시장 같은 개혁을 덜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덴마크는 사회안전망이 물 흐르듯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들어낸 환상적 사례라며 미국의 자동차 노조와는 확연하게 대비된다고 평했다."

(발 코롬자이 OECD 국가연구국장와의 대담, 조선일보 2009.6.13일자 C2)

 

이런 분명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이념에 세뇌된 사람들은 의심할 것입니다.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를 파괴하는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의 표면에는 성공한 사람이 보상받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실패한 사람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라는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크고 작은 실패를 하며, 또한 수많은 좌절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사회에 성공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될만한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몇 사람을 위해 다수의 시민들이 고통 받는 사회가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지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쌍용자동차에서 해고조치된 근로자들과 택배운송노조원들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시위하는 이유를 살펴야 합니다. 일부 좌빨 극렬분자들의 선동으로 보아선 안 됩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습니다. 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그들을 잘라내는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폭력성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함께 더불어 살자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주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북구모델은 꿈 같은 이야기일 뿐 우리나라 현실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퍼주기식 복지를 실현하면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으려는 무임승차자들이 생겨나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것으로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얼핏 보면,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놀고 먹는 것도 어쩌다 한두 번이지 맨날 놀고만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몰라서 하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앞서 소개한 나카타니 이와오(
中谷巖) 교수의 견해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덴마크에서는 기업이 언제나 간단한 잉여인원을 해고할 수 있다. 그렇게 해고된 노동자는 이에 대해서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해고되어도 실업보험이 넉넉히 지급되므로 생활의 불안이 없다.

 

이와 동시에 덴마크에서는 임금은 철저히 동일노동 동일임금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한, 같은 회사에서 몇 년씩 근무한다고 해도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기술 승급인데, 실업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전국적으로 훌륭한 직업훈련소가 정비되어 있어서, 해고되면 무료로 즉시 직업훈련학교에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가끔 해고되는 것이 오히려 기능훈련을 할 수 있어 미래가 열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의 이점은 노동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매크로적으로는 노동시장의 유동성이 확보된다는 이점도 있다. 이것은 기업에게도 대단히 고마운 것이다. 왜냐하면, 과잉고용으로 골치를 앓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인원이 과잉되면 즉시 해고하면 되므로, 그런 의미에서 노동비용은 당시의 경제정세에 맞추어 변화시킬 수 있는 가변비용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국가 수준에서 보아도 이런 시스템이 있으면 산업구조의 전환이 용이해진다. 경쟁력이 없어진 산업에서 고용조정이 실시되면 해고된 노동자는 직업훈련학교에서 장래에 유망한 산업에 적합한 기술을 연마할 수 있다. 기업은 새로운 산업을 시작해도 기술을 가진 노동자를 즉시 조달할 수 있으므로 산업구조의 전환이 원활해진다.”

(나타카니 이와오(中谷巖), 이남규 옮김,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기파랑 2009, 351~352)

 

우리도 이런 국가를 만들 수 있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이 했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사회적 연대(solidarity)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잘 알다시피, 덴마크는 기독교 국가입니다. 국민의 대부분이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개신교도들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장로가 두 번이나 대통령을 했고 이번에는 세 번째인데, 그 때마다 나라는 점점 갈등과 불안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기독교 장로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어떤 국가를 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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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