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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03 탐욕이 조직화 되다 (6)

80년대까지는 탐욕의 실체가 보에스키와 밀켄처럼 개인적 차원에서 불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직적으로 탐욕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습니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그 탐욕의 네트워크가 꼬리를 드러냈는데, 그것이 엔론사태였습니다.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은 미국 사회에서 탐욕의 네트워크화가 뿌리 깊이, 그리고 폭넓게 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엔론은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으로 2000년 포천 500대기업 중에서 7위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미국 전체 에너지 시장의 25%를 공급하는 회사였고, 2000년에 주당 90달러였던 주가가 2001 12월에는 26센트로 폭락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엔론의 회장이었던 케네스 레이(Kenneth Lay, 1942~2006)이라는 인물에 있었지만, 엔론 사건은 탐욕과 부패와 반인륜이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일반화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침례교 목사의 아들인 레이는 자유기업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레이는 정신적인 안전망(mental safety net)을 배우지도 못한 채, 미주리대학 경제학석사, 휴스턴대학 경제학박사학위를 받고 에너지 관련 분야에서 일하다가 휴스턴에 정착하면서 자기 사업을 준비했습니다.

 

1985년 휴스턴 천연가스와 인터노스가 합명하여 엔론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탄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레이는 엔론을 전세계 2만 명의 직원이 1,0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군으로 키웠습니다. 보답으로 엔론은 레이에게 어마어마한 부를 안겨주었습니다. 레이는 엔론 초창기 친구에게 나는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세계최고의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이야 젊은 시절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는 남달리 야망이 컸습니다.

 

엔론에서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자, 정치에도 관심을 쏟았습니다. 조지 부시가 대통령 후보시절에는 정치헌금을 제공했고, 부시는 대통령이 되자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이었던 레이를 상무부 장관이나 재무부 장관으로 기용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부시행정부 내의 요직에 있는 사람 가운데 35명이나 엔론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레이의 오른팔이었던 제프리 스킬링(Jeffrey Skilling, 1953~)은 하버드 MBA출신으로 전략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 에너지와 화학담당 컨설턴트였는데 맥킨지 역사상 최연소 파트너가 된 인물입니다. 레이의 눈에 띄어 엔론에 합류한 후 둘은 호흡을 기가 막히게 맞추었습니다. 바깥 일은 레이가, 안 살림은 스킬링이 책임졌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1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엔론을 세계적인 에너지그룹으로 키웠을까? 그들은 엔론을 단지 석유나 천연가스를 파는 회사에서 위험관리 솔류션을 파는 회사로 변모시키려 했습니다. 1997년부터 날씨에 민감한 사업주들에게 보험료를 받고 날씨위험으로부터 오는 피해를 보상해주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확장하여 날씨파생상품이라는 금융상품에서부터 금리상하한 계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파생상품을 개발해서 판매했습니다. 이런 개념을 신용위험, 금리위험, 환율위험, 강철가격, 석탄가격, 플라스틱, 펄프, 재활용신문용지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시켜 나갔습니다. 엔론이 세계 최대 에너지회사가 된 것은 파생상품 덕이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비즈니스모델이었습니다. 레이와 스킬링은 엔론을 에너지 기업을 넘어 투자은행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비전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거래를 공격적으로 회계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공격적이라는 용어는 회계원칙의 허점을 교묘히 악용하여 회사에 유리하도록 조작하는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분식회계를 한 것입니다. 스킬링은 특히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 경영대학원 MBA출신과 맥킨지 출신들을 엔론에 대거 영입했습니다. 그래서 엔론은 인재관리의 모범이 되는 것으로 언론과 학계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엔론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사업모델을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비롯한 유수의 경영대학원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사례연구로 가르쳤고 논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하지만, 엔론 내부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텍사스대학에서 공인회계사와 관리회계사 자격을 딴 내부 회계감사인은 엔론의 회계처리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자신의 직속상사에게 말했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레이 회장에게 직접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엔론의 회계감사를 맡고 있는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Arthur Andersen)은 위장된 장부를 바로 잡아야 했지만, 그들의 탐욕은 오히려 엔론의 거래를 공격적으로 회계 처리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엔론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내부 회계감사인을 쫓아내고, 대학을 갓 졸업한 아서 앤더슨의 회계사들을 고용했습니다. 갓 입사한 회계사들에게 휴스턴 중심가의 주택과 렉서스를 제공하고, 파트너가 되는 비단 깔린 지름길을 보여주면, 그들은 알아서 공격적으로 업무처리를 했습니다.

 

잘 나갈 때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2001년부터 에너지 가격이 급락하자 그 동안 부실하게 처리했던 것들이 꼬리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0억 달러가 넘는 공격적인 회계처리가 알려지고 사태의 심각성으로 의회 청문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생길 즈음에 최고경영진은 자신이 소유한 엔론 주식을 거의 다 처분하면서, 뒷구멍으로는 직원들에게 엔론은 건재하니 주가가 떨어질 때 더 많은 자사주를 보유하도록 홍보했습니다.

 

그러던 중 엔론 경영진의 핵심인물이었던 존 클리포드 백스터(John Clifford Baxter, 1958~2002)가 자살했습니다. 그는 회계부정의 모든 네트워크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두고 타살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사태의 진실을 알고 있는 그는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자신의 엔론지분을 다 처분하고 회사의 위기를 경고한 뒤 퇴사했습니다. 그리고는 컨설팅 회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엔론 스캔들의 의혹이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청문회를 앞두고 자살했으니, “이탈리안식 해법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의 최명수 기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마피아들은 문제가 되는 사건이 터지면, 당사자를 자살시켜 사건을 마무리하고, 그 대신 자살한 동료의 가족을 책임지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이 짙었던 만큼 사건의 파문을 막기 위해 엔론 측에서 그런 방법을 썼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최명수, 뒤집어보는 경제 회계부정, 굿인포메이션 2003, 256) 


 

아서 앤더슨 CEO였던 조 베라르디노가 이탈리아인었던 점을 감안할 때,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지만, 그의 죽음은 아직도 미스터리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찰의 사건보고서에는 자살한 권총의 탄알과 머리에 박힌 탄알이 다르다든지 하는 몇 가지 의문점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엔론이 그 동안 표방한 핵심가치는 존경, 정직, 소통, 탁월함이었습니다. 외부에서는 엔론이 사업구조조정의 교과서또는 ‘e-비즈니스의 총아로 알려졌습니다. 엔론은 하버드 MBA나 맥킨지 컨설팅 회사의 인물들을 스카우트해서 엄청난 연봉을 주었지만, 기존의 직원들에게는 매정한 방식으로 대우했습니다. 실제로 승진 아니면 퇴출’(up or out) 시스템을 도입했고 매년 하위 15%를 해고했습니다. 미국 언론은 엔론을 가장 혁신적인 회사’(포천), ‘새로운 미국직장의 모델’(뉴욕타임스)이라고 격찬했습니다.

 

엔론의 법률자문회사였던 빈슨&엘킨스의 변호사들은 불법적인 거래구조에 적극적으로 자문해 주었습니다. 조작된 수치는 드러난 것만도 10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당시 뉴스데이(Newsday)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엔론이라는 집이 비틀거리기 시작하자 산업체의 탐욕과 잘못된 행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엔론은 최악의 시민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었다. 엔론은 직원을 속이고 고객을 우롱했다. 또한 엔론은 기업이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에 바쁜 단체이기 때문에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대중에게 심어줌으로써 미국 산업계 전체를 배신했다.”(브라이언 크루버, 탐욕의 실체, 영진닷컴 2003, 19~20)


 

미국인들은 엔론 사태를 엔론이 산업계를 배신한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엔론이 미국 산업계 전체를 배신했다고? 천만에요. 탐욕이 네트워크화됨으로써 생겨난, 미국 산업계를 대표한 사건입니다. 엔론과 같은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글로벌크로싱이라는 거대 초고속통신망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회사가 파산하도록 한 것도 분식회계였고, 이것을 도운 회계법인도 역시 아서 앤더슨이었습니다.

 

미국의 장거리 통신회사였던 월드컴의 회계조작은 그 규모면에서 엔론보다 컸습니다. 여기서도 아서 앤더슨이 감사를 맡았습니다. 월드컴의 분식회계를 눈감아 줬거나 아예 엉터리 감사보고서를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복사기 제조업체인 제록스는 60억 달러의 매출이 조작되었습니다. 사상 최대의 회계부정사건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최대기록이었던 월드컴의 38억 달러를 경신했습니다. 제록스는 회계법인 KPMG에서 회계부정을 방조했습니다. 투자은행 메릴린치, 케이블TV사업자였던 아델피아, 타이코, 컴퓨터 어소시에이츠, 듀크에너지, K마트, 루슨트테크놀로지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업들이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탐욕이 조직화되어 전세계에 만연하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탐욕의 보편화를 법규정이나 시스템을 고치면 막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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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