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나서 공동체 마을의 학교, 도서관, 회의실, 대형 세탁실, 가구공장, 화초를 기르는 곳, 농장, 수영장(큰 연못인데 다이빙대로 있어 수영도 함)을 둘러보았습니다. 가구는 어린이들을 특별히 배려한 튼튼한, 그러나 못을 사용하지 않고 만듭니다. 장애인용 가구들도 직접 디자인해서 만듭니다.


구글에서 본 다벨 브루더호프입니다. 마을이 아름답죠.

 

마을을 둘러보는 도중에 열 명쯤 되는 무리가 피크닉을 가는지, 조카 내외와 서로 인사를 하고는 내 옆을 지나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이냐고 물으니, 공동체 멤버로 한 가족이랍니다. 아이들이 자그마치 7, 부부까지 합쳐서 9명입니다. 일요일이라 온 가족이 아침 먹고 등산 겸 산책을 떠나는 거라는군요. 나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자는 정부시책에 잘 따랐는데, 아 이게 웬일인가. 아이들 다 떠나고 나니 허전합니다. 아이들이 많은 집을 보면 늘 부럽습니다. 그런데 내 눈 앞에  아이들이 일곱이라! 온 가족이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하나씩 메고 숲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피크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피크닉 준비를 하는 동안, 조카부부 이웃에 사는 독일인부부를 잠시 만났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80세는 족히 돼 보이는데, 겉으로 봐도 지식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식은 다 장성해서 결혼했고 지금은 프랑스에서 대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부인은 영어를 잘했는데, 남편은 영어가 서툴고 독일어만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녹슨 독일어를 했습니다. 남편은 중남부 독일어 악센트로 말했습니다. 아들이 다 크고 나서 자신이 하던 사업체도 정리하고, 집도 팔고, 집에서 굴리던 차 두 대를 처분해서 공동체로 왔노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의 브루더호프(브루더호프는 미국에도 6군데가 있음)에서 있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브루더호프로 온지는 몇 년 안 되는데, 미국에 있을 때 부인은 공동체 내에서 주로 영문출판관계 일을 했다고 하네요. 노부부는 나에게 자본주의적 삶의 정신적 황폐함을 얘기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행복은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시간이 없다고 빨리 가야 한다고 아이들이 졸랐습니다. 아이들은 항상 피크닉을 참을 수 없죠. 공동체에서 내준 봉고차를 몰고 남부해안도시 헤이스팅스(Hastings). 갔습니다. 인구만 명의 어촌입니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카메라를 들고 제대로 서있기가 곤란했습니다.


파란색의 맑은 바다를 생각했다가 칙칙한 갈색이라서 다소 실망했습니다.

잉글랜드 남부해안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 같아요.

오랜만에 맛보는 바닷바람입니다.

소박한 해양박물관이지만, 역사교육의 현장입니다.

작은 마을이라도 박물관은 있지요. 어부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박물관입니다.

아이들을 돌봐주는 간호사와 유치원 교사부부도 함께 갔습니다.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죠.

이런 시골에도 중국집은 어김없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 한국음식 맛 내는 것을 시켰는데, 어떤 것은 성공했고 어떤 것은 실패했습니다. 오랜만의 나들이였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만, 바닷가는 바람이 세고 기온이 낮아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보디엄 성(Bodiam Castle)

돌아오는 길에 공동체마을 근처에 있는 보디엄 캐슬(Bodiam Castle)을 보기로 했습니다. 이 성의 특징은 프랑스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성주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정사각형으로 지었는데, 주위에는 해자까지 있습니다. 14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이니까 약 6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 같은 성이라고 했더니, 아닌 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여러 차례 쓰였다고 합니다.


성에서는 중세의 무사들이 싸우는 장면을 연습해서 어린이들의 주목을 끌고 역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어른이고 애고 모두 진진하게 듣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예 무릎꿇고 앉아서 듣고 보고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장면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교과서에 나온 정답을 외우고 시험보는 역사교육이 아니었습니다. 수백년 된 성에 와서,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조카부부. 화려한 장신구는 없지만 삶의 순수함으로 오히려 빛나고 있었습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모습은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내가 할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그곳에 가서 살아보는 것도 삶을 새롭게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낭만적이지만은 않겠지만, 제대로 된 삶이란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이니까요. 사는 동안 잠시 빌려서 쓰는 것뿐이죠. 그리고는 죽음을 통해 모든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이겠지요.


이들의 삶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조카부부는 갓 결혼해서, 그러니까 
1997 2월경 다벨 브루더호프를 일주일 방문해서 살아보고 나서 몇 년 후에 다시 공동체로 들어와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인터넷에서 있는 것을 퍼온 것인데, 나의 짧은 방문에서도 여기에 소개된 삶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공동체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을 거의 만지지도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벌까, 무엇을 먹을까에 대해 신경 쓰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면 그들은 어떻게 사랑할까 어떻게 섬길까를 생각하며 산다.

 

브루더호프가 우리나라에 알려지면서 무려 1,000명이나 되는 한국인들이 그 먼 곳까지 방문했다. 방문자들에게 그곳 사람들은 처음엔 "왜 왔느냐, 이곳 삶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굉장히 힘들다"는 말을 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공동체가 이루어지기까지 사랑과 섬김은 보지 못하고, 환상만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은 잉글리쉬(영어)로 얘기하지 말고, 허티쉬(마음의 언어)로 얘기하라고 말한다. 언제나 조용 조용하게 얘기하며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그들은 절대, 이부자리에서 조차 남의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한 전통으로 삼고 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암시를 주는 말조차도 하지 않고, 언제나 상대에게 직접 솔직히 얘기한다. 19살 먹은 청년도 80살 할아버지에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얘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결혼

 

대부분이 공동체 식구끼리 결혼하고, 혼전 순결을 철저히 지키는 이 공동체에선, 한 청년이 한 공동체의 여성과 결혼하기를 원할 때, 성직자에게 자신의 뜻을 말하고, 그 성직자는 여자 쪽의 부모와 의논한다. 그리고 그 여자의 부모가 자녀와 의논해 남자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하면, 공동체에선 비밀리에 둘만이 교제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가령 공동체 밖으로 둘을 장기간 함께 파견한다거나, 공동체 안의 한 일터-학교나 출판사, 공장-에서 일하면서 상대에 대해 충분히 알며, 결혼할 마음을 갖추도록 도와준다.

 

약한 자를 위한 배려

 

아이를 낳으면 6주 후부턴 베이비하우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 전에도 산후 조리를 도와준다. 그곳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후에 친정 집에서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보다 오히려 더 편하고 더 좋았을 만큼 배려를 해주었다. 먹을 것도 굉장히 배려했다. 자녀를 낳아 그리스도의 자녀로 양육하는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겨 많은 아이를 낳긴 하지만, 산후조리 때 이렇게 대우받으니, 아이를 더 많이 낳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들은 약한 이들이야말로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병자와 노인들에게 배려한다.

 

일터

 

공동체 마을의 한 의사가 있었는데, 그는 오후에는 진찰실을 떠나 공장에서 시다로 일했다. 그래서 왜 의사가 공장에서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계속 지시하는 일만 하면, 영적으로 교만해지기 때문에, 남의 지시를 받는 일을 함께 한다"고 했다.

 

이들을 자신의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내려놓는다. 그러니 공동체는 (자신을 내세우려 하는) 인간의 본능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도 각기 일터를 배정받아 일을 했는데, 이들을 어찌나 일을 열심히 하는 지 일이 힘들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일이 힘들다고 하면, 마치 도청장치가 돼 있는 것처럼 이들은 다음날 일을 더 줄여주고, 다른 일을 맡기곤 했다. (그 정도로 상대가 고충은 없는 지, 일을 힘들어하지 않는 지 살피고 있다는 의미다)

 

한번은 일이 힘들어 그곳의 한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천국에 가면, 이렇게 일할 일 없겠지요"하고 물었더니, 그 할아버지가 말씀 하기를 "섬기는 삶이 없이 어떻게 천국이 이루어지겠느냐" "내게 만약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일이 전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죽음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토의

 

브루더호프엔 텔레비전도 없다. 그러나 도서관은 세계적인 수준. 밤이면 영성 깊은 부모와 순수한 아이들이 조용하고 깊은 대화를 한다. 토요일엔 문화의 날로 정해 아이들과 함께 여러 문화도 즐긴다. 한번은 프랑스의 재즈댄스팀이 방문했다. 그들은 옷차림이나 춤 모양새가 매우 야했다. 그들이 춤추는 사이 이를 보다 못한 한 어른이 춤 도중에 일어서면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만하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댄스는 중단됐는데, 재즈팀은 그렇게 다른 문화에 대해 닫혀있는 줄 몰랐다며, 실망해 프랑스로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 공동체는 이 문제의 토의로 시끄러웠다. 그 다음날 모임의 토의에서 댄스를 중단한 사람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아이들은 그 춤이 야하다거나 야하지 않다거나 -아무런 분별없이 그냥 즐기는데, 왜 춤에 대해 야하다는 해석을 붙여 분별하느냐는 질책이 쏟아졌다. 아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세속문화에 대해서도 어린아이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즐기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재즈팀에게 사과를 해야한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댄스를 중단시킨 사람도 이에 공감해 사과하러 프랑스로 떠났다. 그들은 세속과 충돌하지 않는 방법으로 `어린아이처럼 즐기는 쪽을 택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가,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우리를 돌봐주던 분이 부활절 예배 준비를 맡았는데, 그 분은 온 성심을 다해 부활절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굉장히 화려하게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날 그 분은 공동체가족들의 이의에 봉착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느냐, 당신의 영광을 위해 하느냐"는 물음을 받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부활절을 준비한 것을 알고, 스스로 징계를 받아 공동체와 상당히 떨어진 외딴 곳으로 떠나 회개의 기간을 가졌다. 그 때 그는 공동체에 편지도 보내지 못하지만 공동체의 모든 가족들이 그를 위해 기도하며, 위로의 편지를 보내고, 그가 자신의 영광이 아닌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 돌아오도록 도왔다.

 

신앙

 

이들은 성경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물어보면 어느 신학자보다 성경에 대해 박식했다. 그들은 기도는 남이 보지 않는 다락방에서 해야한다는 말씀을 따르는 듯 했다. 그들은 남에게 보이는 신앙을 하지 않고, 삶 자체가 신앙이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복음주의적 신앙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이제 이들의 삶을 조금 상상하실 수 있나요? 소위 복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와는 완전히 다른 삶의 모습이죠.

살아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진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그것이 행복이겠죠. 사는 동안 끊임없이 신뢰와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곳 공동체에서 무소유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욕망의 때와 자본의 때를 벗은 사람들의 거룩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삶을 보면서,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껨(Emile Durkheim, 1858~1917)의 말이 생각납니다. “사회의 기초는 성스러움이다.” 그런, 우리 사회는 지금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온통 기독교로 채색되어 가고 있지만, ‘성스러움은 사라지고 점점 상스러움으로 변해가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브루더호프에서의 성스러운 만남을 아쉬워하며 런던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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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주말을 이용해서 기독교 생활공동체인 브루더호프(Bruderhof)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런던에서 동남쪽으로 약 1시간30분 정도 떨어진 이스트 석세스(East Sussex)주의 로버츠브릿지(Robertsbridge)라는 조그마한 도시에 있습니다. 우리는 미리 약속을 해두었습니다. 그 공동체에는 내 누이의 딸 부부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전화를 했더니 주말을 이용해서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공동체에 손님으로 일정기간 체류하면서 함께 생활해보려면 일단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공동체로 산다는 것에 대해 한번도 배우지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에 그들이 사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로 혹시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봐도 있을 것은 다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그냥 오라는 겁니다. 한인 가게에 가서 깻잎 통조림과 아이들이 간식으로 먹을 것을 간단히 준비해서 트렁크에 넣고 떠났습니다.

 

찾아가는 내내 공동체의 생활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사전에 인터넷으로 조사한 것도 전혀 없었던 터라 어떤 정보도 없었습니다. 누님을 통해 잘 살고 있더라. 한번 찾아가 봐라는 얘기만 들었을 뿐입니다. 무엇으로 돈을 벌어 어떻게 먹고 사는지가 가장 알고 싶었습니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궁금증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수백 명이 가족단위로 모여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공산주의 방식인가? 공산주의는 다 망해서 북한을 빼고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데? 아니면 사회주의적 공동체 운영? 혹시 사교에 빠진 집단은 아닌가? 얘기를 들어보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니면 고대 원시부족사회처럼 사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로버츠브릿지에 도착했습니다. 철길을 넘어 한참을 들어가니까 입구에 사인이 보였습니다.

 


브루더호프에 관한 책을 이미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참고하세요.


2008/12/03
꿈꾸는 인생_사랑의 꼬뮨을 실현하다
 

도착한 날이 토요일인데 많은 사람들이 연장을 들고 일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주말에도 일을 하나? 그 동안 온수와 난방용으로 쓰던 화석연료를 천연연료로 바꾸느라 교체작업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같이 일해야 하는 데 손님이 온다고 해서 조카부부는 빠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브루더호프는 생태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거실에서 작은 외할아버지가 왔다고 신바람이 났습니다.


조카부부와 아이들은 아주 건강하고 씩씩해 보였습니다. 애들이 올망졸망 넷이나 됩니다. 이곳에서는 생기는 대로 낳는 모양입니다. 알고 보니 애 낳는 것을 장려한다고 합니다. 굶주려 북한 사람들처럼 핼쑥한 모습은 아닐까 약간 걱정했는데, 일단 안도했습니다. 먹기는 잘 먹는 모양입니다. 


작은 외할아버지가 온다고 환영포스터까지!! 



그런데 남자 애들은 주로 맨발입니다. 여기서는 그냥 맨발로 뛰어다녀도 내버려 둔답니다. 아이들이 흙과 자연스럽게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랍니다.

손님이 온다고 케익을 준비했더군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공동체 식구들 전체가 저녁식사를 함께 합니다. 아침은 각자 자기집에서 먹고, 토요일 저녁은 이웃마을 사람들이나 친척을 초대해서 함께 한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에도 우리가 초대된 셈입니다. 300명도 너끈히 식사할 수 있는 큰 식당입니다. 놀랍게도 카페테리아식이 아니고 식사당번이 서브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충분히 좋은 식사였습니다.

 

소박한 게스트룸


저녁식사는 좋았는데, 게스트 룸은 정말 소박했습니다. 순수한 하룻밤을 소박하게 지냈습니다.

우리는 과도하게 치장된 아파트에서 삽니다. 그것이 풍족인 줄 알고 말입니다. 집에 돌아가면 실용적이지 않은 치장된 것이 있는지 색다른 기준으로 다시 한번 더 살펴봐야겠습니다. 브루더호프의 공동체 식구들은 외면을 꾸미기보다 마음을 깨끗이 정돈하며 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게스트룸에 거울이 없다!


우선 거울이 없습니다.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거나 치장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딸은 조금 불편해졌습니다. 거울이 없다니! 이건 너무 한 거 아냐? 핸드백에서 손거울을 꺼내 해결했습니다.



 
내 누이의 딸입니다.




내 조카는 어려서부터 수녀 같은 마음씨였습니다. 여기 와서 보니 수녀와 신부가 만나서 애 낳고 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동안,  거의 10년을 거울 없이 살았는데도 이렇게 예쁘잖아요.

 

출처 : 브루더호프 공식홈페이지(www.churchcommunities.org)에서


우리는 아침을 먹고 일요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공동체 마을의 중앙공원에 둥그렇게 모였습니다. 잔디 위에 그냥 앉은 사람도 있고, 방석을 깔고 앉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작은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기도 합니다. 나는 그곳에 있는 정원용 탁자에 딸린 의자에 앉았습니다. 예배 내내 찬송을 부릅니다. 누군가 성경을 읽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춘 얘기도 했는데, 설교인지 아닌지가 헷갈렸습니다. 때때로 웃기도 하고 ……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워낙 조용조용 이야기합니다. 내가 예상했던 설교, 찬송, 예배와는 완전히 딴판이었습니다. 설교(?)가 간단하게 끝나고는 또 다시 찬송을 불렀습니다. 누군가 먼저 시작하면 다같이 부르는 방식입니다. 미리 정해놓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힐 정도로 화음이 좋습니다. 나는 한 소절도 따라 하지 못했지만, 그 아름다운 화음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출처 : 브루더호프 공식홈페이지(www.churchcommunities.org)에서


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공동체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마을 안에는 초등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공장도 있었습니다. 자녀들을 가르치고 학습하는 장소도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게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외부의 학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곳에 공동체의 멤버들이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까지 가르칩니다. 만약 상급학교에서 더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헤이스팅스(Hastings)라는 남부해안도시의 외부 학교로 진학한답니다.


출처 : 브루더호프 공식홈페이지(www.churchcommunities.org)에서

공장시설을 보고 나서야, 이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Community Playthings"라는 상표의 어린이 가구를 만들어서 전세계에 수출하고 있었습니다.

출처 : 브루더호프 공식홈페이지(www.churchcommunities.org)에서


어린이들이 가장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양질의 가구들입니다. 특히 유치원과 학교에서 쓰는 모든 가구를 만듭니다. 수요가 많아서 요즘은 공장을 풀가동해야 한다고 합니다. 외부의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공동체가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는데, 지금까지는 어려움 없이 수지를 맞춰왔다고 합니다. 오히려 다벨 브루더호프는 재원이 부족한 다른 공동체를 돕고 있다고 합니다.



조카의 남편 케빈(Kevin)이 애기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군요.



이들은 철저하게 무소유의 원칙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교인들의 삶이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브루더호프를 찾아오면서 생긴 온갖 의문들이 상당부분 해소되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서로 아무 것도 갖지 않기로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요.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고 해서 노동 없이 빈둥거릴 낭만적 삶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더 치열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 즉 삶의 본질적 투쟁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곳의 생활에 대해 일일이 사진을 찍어 소개하려고 했었는데, 조카부부의 말에 의하면, 외부인들에게 노출되는 경우 좋은 면도 있지만, 공동체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해의 소지가 많아서 가족끼리 찍은 사진 이외에는 허락 없이 노출되는 것을 금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세운 원칙을 존중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찍은 사진은 최소화하고,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들을 활용했습니다. 이점을 양해해 주시구요.

이들의 삶은 분명히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 이외의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들의 얼굴에는 그것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에 물든 내 눈에는 이들의 삶이 거룩해 보였습니다.

다벨 브루더호프 방문기는 계속됩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분은 www.churchcommunities.org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소개하는 동영상은 <여기>를 눌러서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 공동체가 운영하는 출판사의 출판물들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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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내가 지난 여름 영국에 있는 브루더호프(Bruderhof) 다벨공동체(Darvell Community)를 방문했을 때, 그들의 무소유의 신념, 봉사와 희생정신에 기반한 내면의 아름다움, 공동체 마을에 깃든 평화로운 아우라(aura)와 자연스럽게 화음으로 퍼지는 찬양은 나를 감동케 했습니다.

 

다벨 공동체 입구

그런 공동체 내에서 처참하고도 엄청난 사건들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배신, 권모술수와 권력투쟁, 사선을 넘나드는 아픔과 육체의 질병, 질병으로 인한 죽음과 씻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 그리고 용서, 사랑과 평화

 

내가 눈물이 많은 사람은 아닌데도,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저열한 행태에서부터 가장 숭고한 용서와 사랑의 행위까지 드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어린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모습에서, 나는 고이는 눈물을 참으려고 자꾸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이 책은 요한 하인리히 아놀드”(Johann Heinrich Arnold, 1913-1982)의 생애를 그린 전기입니다. 그의 외손자 피터 맘슨(Peter Mommsen)이 외할아버지의 생애를 기술한 것이지만, 무소유의 기독교 생활공동체 브루더호프(Bruderhof)의 탄생에서부터 오늘날까지, 그 생생한 역사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합니다.

 

하인리히 아놀드의 아버지 에버하르트 아놀드((Eberhard Arnold, 1883~1935)는 독일에서 신학, 철학, 교육학을 공부하여 1909년에 에어랑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에미(Emmy von Hollander)와 결혼했습니다. 작가와 강연자로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1920년에는 베를린 중상류층의 특권을 버리고 아내 에미와 아들 하인리히를 포함한 온가족이 독일 중부지방의 자너츠(Sannerz)라는 조그만 마을로 옮겼습니다. 거기서 신약성경의 산상수훈에 기초한 신앙공동체인 브루더호프(Bruderhof, 형제의 공간)를 세웠습니다. 후일 독일 튀빙겐대학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브루더호프에 대해 매우 어둡게 보이는 시대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도 자너츠의 정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에버하르트와 에미는 사유재산제가 절도이며, 제아무리 훌륭한 선진문명이라고 해도 가난한 자들의 등 위에 세운 문명은 썩었다고 믿었고 사랑의 공산주의를 가르쳤습니다. 자너츠에서는 무엇이건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고, 모든 수입과 모든 물건이 공동체에 속했습니다

 

에미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대중의 고통을 나누기 원하는 우리가 어떻게 우리 몫으로 뭔가를 챙길 수 있겠어요. 우리는 우리와 같은 사랑의 정신으로 섬기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 싶어요. 무소유의 욕구는 우리에게 신조와도 같아요.

 

나치 정부의 핍박이 가혹해지면서 독일 땅을 떠나야 했습니다. 영국에 잠시 머물렀지만, 당국은 적국에서 온 공동체에게 아량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유럽에서는 공동체를 받아 줄 나라가 없었습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공동체를 받아준 나라가 파라과이였습니다. 그들이 살 수 있도록 허용된 땅은 질퍽질퍽한 초원과 처녀림으로 이어지는 버려진 방목장이었습니다. 공동체는 목숨을 걸고 일해서 숙소와 공동시설을 지어 마을을 건설했습니다.

 

위생상태가 안 좋아 아이들과 허약한 사람들은 병들어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공동체의 비전을 가지고 가난과 죽음에 맞서 번창하는 공동체를 일구어 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스(에버하르트의 사위, 그러니까 하인리히의 매형)은 세속적으로 보면 아주 유능한 회계사였는데, 공동체에 들어와서 온갖 술수를 부려 공동체의 헤게모니를 잡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인리히는 공동체로부터 격리되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합니다. 그 고통 속에서 한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한스는 사람들을 망치로 내려치지 않아. 그렇게 했다면 사람들이 느끼고 반란을 일으켰겠지. 그가 사람들을 쥐어짜는 방식은 수압프레스와 비슷해. 서서히 누르지만 결국 마지막 한 조각의 생명까지 짓눌러 버리지.

 

하지만, 끝까지 인내하면서 매형을 용서하려고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공동체가 성장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운영비를 감당하기 위해 미국으로 모금여행을 떠납니다. 하인리히가 모금여행에서 얻은 것은 기대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성공적이었고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브루더호프의 공동체생활에 관심을 보이는 미국인 부자들이 합류하거나 재산을 기부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미국 동부에 브루더호프를 세워 하인리히가 이끌었고, 서로 다른 사상과 신념, 습관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아름답게 성장해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파라과이 브루더호프는 내부에서부터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인리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전문가가 되었지만, 서로를 미워했습니다. 공동체주의가 그리스도를 대체하고 말았습니다.

 

에버하르트가 죽은 후, 브루더호프에는 공식적인 책임자 없이 20년이 넘도록 한스가 리더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는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사람처럼 배후에서 다른 사람을 조종함으로써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했습니다.

 

어느덧 사람들은 통일성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 줄 진정한 리더를 세우고 싶어했고, 공동체 전부가 하인리히가 적임자라는 폭넓은 지지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제안을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종과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형제들 속에서 형제로 있고 싶을 뿐입니다. …… 참된 리더십은 섬김입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쓴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1962년이 되자 하인리히는 공동체의 장로로 지명되었습니다. 그 후 1982년 사망할 때까지 20년간 브루더호프의 공식적인 리더로 봉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끊임없는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단 하루라도 불신 속에서 사느니 천 번 신뢰하고 배신당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추행과 악행은 결국 권력욕에서 나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사악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권력에의 의지이며, 이것이 악의 근원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의 꼬뮨은 악의 근원에 대해 성찰하게 합니다. 에버하르트 아놀드와 그의 아들 하인리히 아놀드가 일구어낸 사랑의 꼬뮨 브루더호프는 이 패역한 세상에 한 줄기 소망의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분은 www.churchcommunities.org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소개하는 동영상은 <여기>를 눌러서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 공동체가 운영하는 출판사의 출판물들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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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