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vision)은 사람에게 희망을 줍니다. 인간은 현재상태(present state)와 원하는 상태(desired state)를 비교하여 그 갭을 메우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독특한 현상입니다. 다른 동물들에는 일시적인 갭을 느끼지만, 인간은 영원히 그 갭을 느낍니다. 동물은 본능의 폐쇄적인 틀에 갇혀 있지만, 인간은 본능을 넘어선 초월적 세계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의 틀에 갇혀 있다면 그는 짐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비전이란 원하는 상태(desired state)를 말합니다. 이것을 먼저 정해야 그 다음의 행동전략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그냥 잘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던지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와 같은 수준의 막연한 기대는 비전이 아닙니다.

 

비전은 도전적이고(challenging) 명확해야(clear) 합니다. 그리고 비전에 도달했는지(consequential)의 여부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매혹적이어야(compelling) 한다는 것입니다.

 





매혹적인 비전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내가 번역한 책, 리차드 해크만, 최동석, 김종완 옮김, 『성공하는 팀의 5가지 조건』(Leading Teams), 교보문고 2006, 122쪽 이하를 참조하세요.







 

우리가 잘 아는 모한다스 간디, 넬슨 만델라, 아브라함 링컨에게는 바로 이런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강렬한 비전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 조직의 원하는 상태(desired state)를 상정했고, 그것을 머릿속에 강렬한 이미지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연설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읽어도 그들의 말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강렬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상태는 몇몇 사람들이 아닌 대다수 사람들이 추구하는 진리에 기초하여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제2차 대전에서 승리했지만, 소련의 우주개발기술에 뒤처져 있었습니다. 실망하던 국민은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를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국민적 요구에 응답하려는 듯, 케네디는 1961년 우주계획의 목표를 정했습니다. 전국에 생방송되는 의회연설에서 미국은 인간을 달에 보내고 무사히 귀환시킨다는 담대한 계획을 선언했습니다. 내가 16년 전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처음 갔을 때, 케네디가 연설하던 그 장면을 반복해서 관람객에게 틀어주었습니다. 케네디의 이 한마디는 미국인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예산을 지원했습니다. 케네디는 국민에 대하여 매력적인 비전(compelling vision)을 제시할 줄 아는 지도자였습니다.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는 1963년 링컨기념관 앞에 모인 대중들에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제목의 연설을 함으로써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도덕적 진리에 호소했습니다. 이 연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킹 목사가 암살되고 나서 40여 년이 지난 지금,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는 미국으로 변모되었습니다.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1917~1979) 장군이 집권하여 호소한 것은 잘 살아보세였습니다. 박정희의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경제적 이해득실의 문제로 전환시켜버렸습니다. 그때는 온 국민이 하루 밥 세끼를 걱정하던 시대였기에 이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다면 박정희의 말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것이 가능할까요?

 

우리 사회는 지금 비전(vision)을 잃었습니다. 국민들이 기대했던 경제적 이익도 잃어 버렸고, 도덕적 권위도 사라졌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짐승처럼 본능의 틀에 갇혀있고, 초월적 세계에 대한 이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사회와 국민을 매혹시키는 비전(compelling vision)은 과연 무엇일까요? 다같이 생각해보시죠.

 

 

p.s.힘있는 모든 사람들의 에너지를 끌어 모아야 할 텐데, 지도자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안위만을 생각해서 힘있는 사람들을 내치고 온갖 아부와 아첨을 일삼는 자들을 중용하는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똑 같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념이 다른 정당의 사람들까지 포용해서 국가경영의 지혜를 모으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 지도자들은 밴댕이 콧구멍만도 못한 소견으로 정치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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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경영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비전(vision)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견이 없습니다. <6개의 경영개념> 중에서 최고의 지도이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났던 많은 경영자들은 비전(vision)의 문제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장 효과가 있는 어떤 처방을 원합니다.

경영자는 조직의 비전/목적/방향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비전/목적/방향은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항상 비전/목적/방향을 하나의 단어처럼 붙여서 씁니다. 비전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상태(desired state)를 말합니다. 목적(purpose)은 왜 그것을 원하고 있는지를 설명한 것으로서 가치관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방향(direction)이란 원하는 것의 지향성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서 지리산을 등반할 것인지 한라산을 등반할 것인지를 명확히 해 주는 것이 방향이고, 목적이란 왜 골프가 아니고 등반인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비전이란 산의 정상까지 정복할 것인지 아니면 중간 능선까지 등반하고 말 것인지를 정한 것으로 구성원의 가슴을 뜨겁게 달궈줍니다.

 

비전/목적/방향은 항상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도전하는 것을 피할 수 없도록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주알고주알 미세한 것까지 완벽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비전 : 고객을 가장 편안하게 모시는 세계 최고의 호텔(호텔체인),

     목적 : 우리는 인류의 질병과 싸운다(제약회사),

     방향 : 속도, 무경계, 성장(세계 최대의 복합기업)

 

이러한 비전/목적/방향은 구성원들에게는 가슴을 뛰게 하는 요구임과 동시에 조직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직무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일반적인 가이드 역할을 해줍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는 각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에 맡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전/목적/방향은 조직마다 다 다르게 표현되지만, 나는 그것을 하나의 단어처럼 묶어 씀으로써 조직의 정체성을 명확히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자는 구성원들이 비전/목적/방향을 향하여 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하고, 동시에 그것이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진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비전을 향하여 물샐틈없이 종업원들을 관리해 나가도 될까 말까 한 판에 자율과 창의가 웬 말이냐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전/목적/방향은 효율성을 최대한 확보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는 이상(理想)입니다. 여기서 효율성이란 앞서 말한 대로 구성원에게 자율을 부여하고 창의를 기대하는 방식을 전제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 구성원들의 만족감 또는 성취감입니다. 우리가 이상을 향해 나가려면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합니다.

 

비전/목적/방향이 조직구성원들의 의식과 무의식의 마음 상태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역량수준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잘 알아내어 내가 만났던 중견기업의 70대 회장님처럼 종업원들의 마음으로부터 소외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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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우리가 매일 접하는 경영환경은 <3층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즉 표층구조의 제도, 맥락구조의 의식, 심층구조의 무의식은 다음과 같은 6개의 경영개념들에 의해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지게 됩니다.

 

     비전 : 조직의 존재목적 또는 이념

     전략 : 비전/목적/방향을 실현하는 비즈니스 계획

     조직 : 전략을 실행해가는 수단

     성과 : 비전/목적/방향으로 가는 구제적인 목표들

     역량 :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차별적인 능력

     인사 : 채용 보상 등 여타 개념들의 종합적 관리

 

이러한 6개의 경영개념 하나 하나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조화가 곧 조직을 고성과문화(High Performance Culture)로 진보시키느냐 아니냐를 결정합니다. 조직운영을 고성과를 창출하는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각각의 개념들을 구성하고, 그 개념들간의 적합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어서 이 개념들 하나하나를 간단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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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려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맞는 말은 분명 아닙니다. 김연아 선수가 스케이팅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케이팅을 좋아하는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재능이 있고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아하고 재능이 있는 스케이팅 선수 또한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충고도 틀린 말을 아니지만 맞는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냥 지나가는 말로 들으면 됩니다.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그 동안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냈습니다. 중계방송을 보던 내 마음도 뜨거워졌습니다. 18세 소녀의 위업은 대단했습니다. 나는 피겨 스케이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용어도 잘 모르고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뭐라고 설명을 해도 그 말이 그 말 같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스케이트를 뒤로 밀고 갈 때는 치마가 올라가 팬티가 다 드러난다는 점,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인 아름다움을 점수로 채점한다는 점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스포츠에 관한 나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겠지요.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피겨 스케이팅에 대해 정말 잘 모릅니다. 즐겨 보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김연아 선수에 대한 자료나 기록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연아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우여곡절이 없이는 어떤 일도 해낼 수 없습니다. 좌절이 없이는 희망이 없습니다. 실패가 없는 성공은 불가능합니다. 절망의 상황을 겪어보지 못하면 결코 소망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스케이팅을 처음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김연아는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김연아가 이룩한 성취에만 집중합니다. 그 성취에 환호합니다. 대리만족을 얻는 것일까요?

 

연습하다 다친 부상으로 걸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는 사실은 알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발목부상이 나으면 무릎부상으로 고생했습니다. 무릎부상이 어느 정도 치료되면 허리부상이 문제였습니다. 고관절을 재활훈련해야 했습니다. 작년에만 해도 시합에는 아예 진통제 주사를 맞으면서 출전했습니다. 중도에 포기하려고도 여러 차례 고민했습니다. 정말 그만두려고 했습니다. 연습하느라 친구를 제대로 사귈 수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박세리 선수나 신지애 선수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고통이 김연아를 키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부상의 고통과 좌절이 없었다면 오늘의 김연아가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통 당하는 것을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삶에 큰 도움이 되지만, 지금 당장의 어려움과 고난, 사람들의 이목과 시선을 회피합니다. ‘쪽팔림의 고통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쉬운 길을 찾습니다. 그러면서 희망을 얘기합니다. 내일은 잘 될 거라고 말합니다. 긍정적으로 사고하라고 충고합니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격려합니다.

 

내가 김연아 선수에게서 주목하는 것은 그가 이루어낸 성취가 아니라, 그 성취를 이루게 한 과정이 고난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이 그 고난을 이겨내게 했을까요? 성취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desire)입니다. 이것을 나는 비전(vision)에 대한 열망이라고 부릅니다.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꼭 우승을 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아니 세상에, 선수가 우승하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나요? 모든 선수들은 시합에서 이기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모두 우승할 수 없는 노릇이고, 우승은 한 명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러면, 누가 우승을 할까요? 간단합니다. 우승(비전)에 대한 열망이 고난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보다 크면 고통스런 연습을 반복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우승을 차지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고난이란 훈련과정에서 오는 모든 고통과 두려움, 쪽팔림과 고독을 말합니다.

 

그냥 열심히 연습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공식이 있어야 합니다.

 

비전에 대한 열망 > 고난에 대한 두려움

 

비전에 대한 열망이 없는 사람에게 사탕발림으로 희망을 말하고,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허파에다 매연가스를 주입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입니다. 고난을 회피하려는 희망, 좌절을 거부하는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것은 현실에서 도피시키는 마약과 같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있을 뿐 연습의 고통은 회피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긍정적 사고도 필요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절실합니다. 고통과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과 긍정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받아들이면, 속이 빈 껍데기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고난과 좌절, 고통과 절망을 이겨낼 정도의 미래비전에 대한 열망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비전에 대한 열망이 아주 크면, 고난은 즐거움으로 바뀝니다. 그 다음부터는 연습에 몰입할 수 있게 되고 연습이 재미있어집니다. 훌륭한 선수와 보통의 선수를 가르는 분기점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훈련이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대가들의 얘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좋아하는 것을 하면 성공한다'는 가르침이 얼마나 가증스런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훈련에 몰입하고 훈련이 재미있게 될 정도의 열망을 갖고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이런 상태는 자신의 마음을 끊임없이 프로그래밍함으로써 가능합니다.

 

김연아는 바로 이런 마음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김연아 선수의 이번 성취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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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과 비전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 어떤 사람은 너무 큰 욕망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파멸에 이르고, 어떤 사람은 너무 적은 욕망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썩힙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미래에 더 좋은 상태를 욕망합니다. 그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에 의해서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이 욕망이 미래를 향하여 구체화 된 상태가 곧 비전(vision)입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물론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미래를 상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상상의 뇌에서 일어나는 아주 독특한 기능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잠자리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아기의 뇌가 새로운 상황을 상상하여 뇌세포의 연결망(neural wiring)을 새롭게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상상하게 하는 훈련이 가장 좋습니다. 상상력의 결핍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적입니다. 상상력이 결핍되었음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은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상력의 결핍은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활동의 함정(activity trap)을 만들어 냅니다. 열심히 일하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활동의 함정이란 일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일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세일즈 책임자는 매출액을 늘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해서 세일즈활동을 강화합니다. 이 경우 판매는 증가하겠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판매가 목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비전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자기 스스로 비전을 향하여 한 발짝씩 전진하는 셀프리더십을 발휘해 나가는 방법도 철저한 비전을 세워서 실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욱 비전/목적/방향의 중요성을 잃지 않습니다. 누구나 좌절의 순간이 있지만, 그 순간을 극복하게 하는 것은 비전입니다. 자포자기하거나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경영리더십과 비전, 그리고 자아

 

조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은 비전/목적/방향이 어느 정도로 매력적이냐에 따라 조직구성원이 잠재력을 발휘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리더십의 출발은 비전/목적/방향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들을 정비해야 하고, 나아가 그 조건에 부합하는 인재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리더십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비전(vision)을 향하여 시스템(system)을 정비하고 인재(talent)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런 정의를 한 마디로 말하면, 리더십이란 시스템을 정비하고 인재를 확보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반드시 비전/목적/방향을 전제로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비전이 없이는 시스템 정비도 인재확보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비전이야말로 리더십을 가능케 하는 출발점이 되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도자들이 뚜렷한 비전도, 합의된 방향도 없이 시스템을 설계하고 좋은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떱니다. 물론 비전이 없이도 시스템을 정비하고 인재를 확보할 수는 있지만, 조직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코 나아갈 수 없습니다. 비전은 인간사 모든 것의 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비전(vision)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독특한 비전이란 내적 자아(intrinsic self), 즉 분석심리학에서 자기(self)라고 부른 것이 활성화된 상상력의 결과를 말합니다. 인간은 내적 자아가 강력하게 원하는 상상(vision)만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내적 자아(intrinsic self)의 실체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외적 자아(extrinsic self), 즉 분석심리학의 에고(ego)와 구분되는 내적 자아가 진정한 의미의 자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적 자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적 자아가 외적 자아의 통제를 받기 때문입니다. 외적 자아는 태어나서 사회화 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자아인데, 주로 경험과 교육적 배경에 의해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사고를 당한 경험이 다시는 지하철을 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외적 자아의 작용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인 것으로 보이기 위해 형성된 자아이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렇게 외적 자아는 내적 자아를 통제하기 때문에 외적 자아가 강할수록 내적 자아가 원하는 것을 실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내적 자아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외적 자아(ego)와 내적 자아(self)를 이해하라

  

운동을 할 때, 코치들이 힘을 빼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내가 테니스를 배울 때도 그랬고, 골프를 배울 때도 역시 그랬습니다. 수영을 배울 때도 몸에 힘을 쭉 빼고 자연스럽게 스트로크를 하면 앞으로 잘 나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 속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을 주게 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물 속에서 헤엄치다 물먹은 경험, 물속에 빠져서 혼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갓난 아기들은 물 속에서 헤엄을 아주 잘 칩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물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이 쌓여서 외적 자아를 형성합니다. 그 좋지 않은 경험으로 인해 외적 자아가 발동하여 더 이상 물을 먹지 않도록 온 몸에 힘을 주게 됩니다.

 

외적 자아는 내적 자아를 감싸는 깁스(Gibs)와 같아서 그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내적 자아의 발현이 힘들게 됩니다. 외적 자아가 아니라 내적 자아가 나를 콘트롤하게 하면 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무시하면 됩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가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엉뚱한 짓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와 같은 천재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아브라함 링컨, 정주영, 백범 김구, 이순신 등과 같이 그 시대의 물결을 거슬러 거꾸로 살아간 위인들도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별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기꺼이 해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내적 자아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무시한 것이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았고, 남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그 길을 꾸준히 실천해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내적 자아가 활성화된 상상력의 결과를 곧 비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비전까지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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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인간의 욕망은 항상 뭔가를 지향합니다. 그 지향성이 비전(vision), 목적(purpose) 또는 방향(direction)을 설정하게 합니다.

여기서 비전
, 목적, 방향이란 엄밀하게 따지면 서로 다른 의미를 갖지만, 장래에 도달하거나 달성되길 원하는 상태(desired state)를 지칭한다는 점에서 뭉뚱그려 함께 사용합니다.

중장기적으로 도달해 있어야 할 상태는 강렬한 욕망의 충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매혹적이어야 합니다
. 그래서 이것을 영어로 compelling이라고 쓰기도 합니다. 비전, 목적, 방향은 아무튼 에너지와 정보가 항상 그곳을 지향하도록 유인할 정도여야 합니다.

이러한 비전
, 목적, 방향을 달성하려면 한편으로는 전략을 세워 이를 관리해야 할 필요성(전략관리)도 생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전략실행의 과정을 원활히 수행해야 할 조직을 만들고 관리해야 할 필요성(조직관리)이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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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비전을 달성하려면 사업을 해야 합니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전략이 필요합니다.

전략은 "사업수행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사업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방법"을 말합니다.

이러한 전략은 사업상의 중장기 로드맵(roadmap)과 연간 사업계획 등으로 귀결됩니다. 전략의 성공적 실행은 활용 가능한 자원(예산, 시간, 구성원의 잠재력 등)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달려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조직구성원의 잠재력입니다. 이 잠재력은 마음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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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경영 리더십과 비전, 그리고 자아


나는 <리더십>(leadership)이란 "비전(vision)을 향하여 시스템(system)을 정비하고 인재(talent)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런 정의를 한 마디로 말하면, 리더십이란 시스템을 정비하고 인재를 확보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반드시 비전을 전제로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비전이 없이는 시스템 정비도 인재확보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비전이야말로 리더십을 가능케 하는 출발점이 되는 셈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도자들이 뚜렷한 비전도, 합의된 방향도 없이 시스템을 설계하고 좋은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떱니다. 물론 비전이 없이도 시스템을 정비하고 인재를 확보할 수는 있지만, 조직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코 나아갈 수 없습니다. 비전은 인간사 모든 것의 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비전(vision)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독특한 비전이란 내적 자아(intrinsic self), 즉 분석심리학에서 자기(self)라고 부른 것이 활성화된 상상력의 결과를 말합니다. 인간은 내적 자아가 강력하게 원하는 상상(vision)만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여기서 내적 자아(intrinsic self)의 실체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외적 자아(extrinsic self), 즉 분석심리학의 에고(ego)와 구분되는 내적 자아가 진정한 의미의 자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적 자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적 자아가 외적 자아의 통제를 받기 때문입니다. 외적 자아는 태어나서 사회화 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자아인데, 주로 경험과 교육적 배경에 의해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사고를 당한 경험이 다시는 지하철을 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외적 자아의 작용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인 것으로 보이기 위해 형성된 자아이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렇게 외적 자아는 내적 자아를 통제하기 때문에 외적 자아가 강할수록 내적 자아가 원하는 것을 실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내적 자아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외적 자아(ego)와 내적 자아(self)를 이해하라

운동을 할 때, 코치들이 힘을 빼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내가 테니스를 배울 때도 그랬고, 골프를 배울 때도 역시 그랬습니다.
 수영을 배울 때도 몸에 힘을 쭉 빼고 자연스럽게 스트로크를 하면 앞으로 잘 나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 속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을 주게 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물 속에서 헤엄치다 물먹은 경험, 물속에 빠져서 혼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갓난 아기들은 물 속에서 헤엄을 아주 잘 칩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물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이 쌓여서 외적 자아를 형성합니다. 그 좋지 않은 경험으로 인해 외적 자아가 발동하여 더 이상 물을 먹지 않도록 온 몸에 힘을 주게 됩니다.

 

외적 자아는 내적 자아를 감싸는 깁스(Gibs)와 같아서 그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내적 자아의 발현이 힘들게 됩니다. 외적 자아가 아니라 내적 자아가 나를 콘트롤하게 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무시하면 되죠.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상사의 질책을 무시하라.
실수나 실패의 두려움을 무시하라.
평가에서의 불이익이나 승진 등에 대한 불안감을 무시하라.

이런 것들은 모두 외적 자아가 자신에게 주는 신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호를 받으면, 본능적으로 몸과 마음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긴장하게 되고, 학습이나 작업에 있어 능률이 떨어지게 됩니다. 심지어 복통, 두통, 설사 등 신체적인 이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가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엉뚱한 짓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와 같은 천재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에이브러햄 링컨, 정주영, 백범 김구, 이순신 등과 같이 그 시대의 물결을 거슬러 거꾸로 살아간 위인들도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별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기꺼이 해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내적 자아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무시한 것이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았고, 그 길을 남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꾸준히 실천해 나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주위의 평가에는 민감하면서도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가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그래서 내적 자아가 활성화된 상상력의 결과를 곧 비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비전까지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영혼의 능력과 자기이미지(self-image)
 

이러한 비전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곧 영혼의 능력입니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영혼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평등합니다. 영혼이 있는 실존적 존재라면 누구나 무한의 세계 또는 초월적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혼의 능력이 상상하고 관조하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행위, 즉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의 결과는 예술가에게는 예술작품으로 나타나고, 정치가에게는 정치적 성과로 나타납니다. 나는 모짜르트, 베토벤, 바하의 음악을 들으면 때때로 전율합니다. 그 음악에는 작곡자의 영혼의 능력이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이 내 영혼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모한다스 간디가 추구했던 무폭력의 저항적 정치 행위는 수백년간의 영국식민지로부터 인도를 독립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마하트마, 즉 위대한 영혼이라고 부릅니다. 기업가나 경영자에게는 회계적 이익의 양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성과로 나타납니다. 이런 기업들은 우리 주변에 잘 살펴보면 아주 많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공이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즉 비전을 실현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나는 항상 비전작업을 중시합니다. 비전작업이란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곳 또는 바람직하다고 상상하는 상태를 사전에 정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버스를 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그 목적지를 모른 채 버스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공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비전에 도달하는 것이 됩니다. 성공이란 목적지를 정하고, 그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면 되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무시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영혼이 억압되었거나 아니면 왜곡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바라본 것을 자아상(自我像) 또는 자기이미지(self-image)라고 말합니다. 자기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의해 인생의 성공과 행복이 결정됩니다. 내적 자아를 발견하고 그것을 자아상으로 그려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반성이 가능한 영혼을 가진 존재라고 말합니다. 반성이 없으면 짐승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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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비전(vision)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야 합니다. 비전이 단순히 장기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꿈으로만 해석되어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꿈을 꾸는 것은 좋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하려면 시스템화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전 역시 시스템화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비전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핵심목적 또는 핵심이념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사명(mission)이라고도 합니다.

핵심목적 또는 핵심이념은 어떤 형태로든지 반드시 정립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이든 조직이든 상관없이 존재이유와 존재목적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제약회사가 "우리는 질병없는 세상을 추구한다"와 같이 질병과의 싸움을 회사의 존재이유로 명확히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광고회사는 "우리는 탁월한 광고를 제작한다. 탁월한 광고란 특정 주제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 도발적이고, 너무나 대담하며, 너무나 신선하고, 너무나 매력적이고, 너무나 인간적이며, 너무나 믿음이 가고, 너무나 초점이 잘 잡혀 있어서 출시하자마자 즉각적인 매출액이 증가하고, 그와 동시에 오랫동안 그 명성이 사라지지 않는 광고를 말한다."라고 존재이유, 즉 사명(mission)을 선언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세상을 더 좋게 바꾼다"로 정리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존재목적을 정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없으면 방향을 잃습니다. 항구를 떠난 배가 방향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망망 대해를 떠다니다가 좌초하고 말 것입니다. 이 목적이 불분명하여 좌초한 인생들이 많습니다. 나 또한 젊은 시절 목적을 잃고 방황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다 해보고 싶었습니다. 감동적인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배우도 해보고 싶었고,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군인의 날에는 멋진 퍼레이드를 보고나서 군인이 되고 싶었고, 선거철에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007시리즈가 유행할 때는 스파이가 되고 싶었고 스파이를 빼내기 위해 협상하는 외교관도 되고 싶었습니다. 멋진 음악이 나를 감동시킬 때는 작곡가나 지휘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내 삶의 존재이유와 목적을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핵심목적을 정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서구문명에서 상상력을 가장 잘 발휘하는 민족은 아마도 유태인일 것입니다.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추상에 가까운 상상력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추상적 사고력(abstraction thinking)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할 것입니다.

창조적 전문가들에게 필요로 하는 추상적 사고력이 유태인들에게 유독 뛰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인구의 2%내외에 불과한 유태인들이 아이비 리그라고 불리는 일류대학교수들의 30%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 전체 부의
  40%를 좌지우지한다고 합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15%가 유태인이랍니다. 유태기독교적인 종교적 영향은 차치하더라도 인류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민족이다. 유태인들을 우리는 조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카를 마르크스에서부터 아인슈타인을 거쳐 스타벅스의 CEO인 하워드 슐츠까지, 그리고 작가인 토마스 만에서부터 지휘자 번스타인까지.

나는 여기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차이를 봅니다. 듣는 전통과 보는 전통 말입니다. 히브리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은 것을 더 중시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는 것보다는 듣는 것을 더 중시했고, 선호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우상을 섬기던 고향을 떠나라는 음성을 듣고 떠났습니다. 그 뒤의 수많은 선지자들도 야훼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모습이 구약성경의 전반에 흐릅니다. 인간은 야훼를 형상화하거나 시각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시각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자 그것과 그런 행위 자체를 죄악시 했고 가차없이 징벌했습니다. 이러한 야훼의 전설은 '토라'라고 불리는 유태인들의 경전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구약성경의 모세 5경입니다. 유태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탈무드는 구전동화같은 엄청난 분량의 이야기들입니다. 이것은 후손들에게 반드시 들려주어야 할 교육자료로 활용됩니다. 보여주는 자료가 아니라 들려주는 자료로 말입니다.

신약성경에도 바울이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에 예수의 음성을 듣고 사도가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쓴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유명한 말을 합니다. 믿음이란 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듣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유태기독교적인 전통에서 음악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음악 중에서도 특히 바하의 신앙고백적 음악은 나의 가슴을 저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는 서양문명이라는 것이 야훼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름'과 기독교인들의 순종적인 '들음'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기독교문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직업생활과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습니다. 독일인들의 국경일이라는 게 대개 성경의 절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죠. 부활절, 사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등. 독일어의 부르다는 동사는 rufen인데, 부름을 당했다는 수동태가 되면 berufen이 됩니다. 이것의 명사형이 바로 Beruf입니. "베루프"라는 말이 곧 직업이라는 뜻인데, 그 직업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야훼 하나님이 나를 그 직업에 종사하도록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찌 그 일에 조금이라도 잘못 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서양인들은 어떤 일에서든 장인(Meister, 匠人)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서양문명을 지탱하게 하는 직업관입니다.

반면에, 그리스 문명에는 여러 신들을 형상화, 즉 시각화하여 보도록 했습니다. 그들에게 인간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희로애락을 느끼도록 상황을 설정하고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조각과 미술품들은 그리스적인 전통을 따릅니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에 있는 수많은 미술품들과 조각상들은 히브리적 전통이 아니라 헬레니즘 전통의 영향을 받응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인류역사는 크게 보아서 문명간에 서로 충돌하기보다는 상호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 더 올바른 시각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차이는 오늘날 유태인과 비유태인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청각형 미래전망의 특성은 유태인 후손들에게까지 전달되어 왔습니다. 헨리 키신저와 같은 유태인들이 미래를 상상하고 기획하고 전략을 만들어 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유태기독교적인 전통에서 미래를 상상하고 기획하는 것은 구원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비전(vision)은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비록 고단하고 힘들더라도 내세에는 천국에 간다는 것이죠. 이 땅에 산다는 것은 곧 천국에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나와 있는 대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 인간의 존재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이 너무도 명백합니다. 그것이 곧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미래전망이라는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기독교 자체의 비전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교인들은 끊임없이 그런 훈련을 받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기독교적인 문화 속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비전을 세우는 일을 그렇게 힘들어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고른 적당한 직업에서 최고의 장인(Meister)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워크숍과 세미나에서 개인적 비전을 세우도록 훈련시켰왔습니다. 내가 놀라는 것은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비전을 세우는데 있어 마치 생면부지 처음 당해 보는 것처럼 아주 난감해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 원인을 금새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엉뚱한 훈련을 받고 있어서 미래전망과 추상력을 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현실은 오로지 자식 잘 되고 승진 잘 되고 사업 잘 되고 권력을 크게 잡고 돈 많이 벌어서 부자되기를 기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무당집에 다니는 것과 거의 다를 바 없습니다. 형식은 기독교지만, 내용은 샤마니즘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적 신념과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일이나 분야에서 최고의 장인(Meister)이 되는 것, 그래서 자기 자신과 이웃에 공헌하는 것, 이것이 곧 인생의 존재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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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나는 리더십(leadership)이란 "비전(vision)을 향하여 시스템(system)을 정비하고 인재(talent)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

조직을 이끌든 자기 자신을 이끌든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를 잘 하면 됩니.

① 비전 설정

② 시스템 정비

③ 인재 확보

이 세 가지를 잘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차차 설명해 나갈 것입니다. 이것을 잘 배워서 실천하면 누구나 잘 할 수 있습니다.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를 잘 배워서 익히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세 가지를 무시한 채, 리더가 되겠다고 또는 리더십을 발휘하겠다고 야단 법석을 떨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시중에서 가르치고 있는 리더십 교육과정을 살펴봐도, 역시 이런 기초적인 훈련보다는 기술적인 테크닉에 치중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리더십 교육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리더십 테크닉이 전혀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리더십에 관한 정신모형(mental model)을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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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