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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26 탐욕의 블랙홀에 빠진 월 스트리트

엔론사건이 터진 것은 2001년이었습니다. 엔론사태는, 인간이 탐욕이라는 블랙홀에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음을 알려주는 좋은 시그널이었습니다. 이 시그널은 인류가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고 올바른 길로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선명한 위험신호를 보고도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성에 의한 합리적 사고는 탐욕의 열차를 세울 수 없었습니다.

 

엔론사태는 분식회계의 문제가 아닌 더 깊은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론사태를 단순한 분식회계로 몰고 갔습니다. 분식회계를 방지하기 위한 합리적 대안들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2002년에 제정된 「사베인스-옥슬리 법」(Sarbanes-Oxley Act)이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회사 경영진의 재무제표에 대한 인증 및 책임강화

내부통제시스템의 강화

감사인의 독립성 강화

내부고발자(whistle-blower) 보호

 

인간의 탐욕이 이런 이성적 장치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와 같습니다. 이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기업에 부담을 많이 주면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조금 느슨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법 시행 3년이 경과된 시점에서는 아예 미국 의회의 독립적인 정부감사기관인 회계감사원(GAO)가 「사베인스-옥슬리 법」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계산에 의하면 대기업의 경우 법 규정대로 제대로 지키려면 약 8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상장을 철회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의 회계감사원은 기업이 정직하지 못해서 얻는 희생의 대가는 계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분식회계로 파산한 기업들이 2001~2002년에 엔론, 월드컴, 글로벌크로싱, 이델피아 등 네 개 회사만 합쳐도 2천억 달러의 자산규모에 이릅니다. 회계감사원의 의견대로라면, 네 개 회사의 회계투명성을 위한 비용 3 2천만 달러를 아끼려다 2천억 달러가 공중에서 분해되는 셈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돈에 노출되면 탐욕으로 변한다

 

이처럼 돈에 노출된 인간은 이성적 판단능력을 잃게 됩니다. 교육학자, 심리학자, 경제학자 등에 의해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연구자들이 아주 간단한 실험을 했습니다. 뒤섞어 놓은 문장의 단어를 재배열하여 온전한 문장을 만드는 실험이었습니다. 한 집단(A)에는 돈과 전혀 관련이 없는 문장을 재배열하도록 했고(, 밖이 춥다 등), 다른 집단(B)에는 돈과 관련된 단어들(, 고소득 등)을 제시했습니다. 이처럼 돈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참여자들의 행동방식이 달라질 수 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단어재배열 실험을 마친 다음에, B집단의(돈이라는 단어에 노출된) 사람들은 A집단의(돈이라는 단어와 전혀 상관없는 단어에만 노출된) 사람들보다 남을 도와주려는 경향이 적었고, 더 이기적이고 자립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많은 시간을 혼자 지내려고 했고 협동해서 일하는 것보다는 개별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주로 골랐습니다. 자리에 앉을 때도 다른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처럼 돈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사회적 동물로 생활하지 못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댄 애리얼리, 『상식 밖의 경제학』, 청림출판 2008, 109~134쪽을 참조하세요.)

 

이 세계는 시장의 법칙이 지배하는 영역과 사랑의 법칙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구분됩니다. 시장의 영역에서는 주고받는 셈이 분명해야 하지만, 사랑의 영역에서는 계산의 잣대 자체가 없기 때문에 사랑의 마음과 마음이 서로 신뢰와 애정으로 튼튼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는 명절에는 늘 처갓집에서 장모님이 푸짐히 차려준 음식을 먹습니다. 막내 사위가 대견한지 늘 더 먹으라고 합니다. 내가 집을 나서면서 장모님에게 이런 정도의 음식은 호텔 뷔페 수준이니까 5만원 정도로 계산해서 가격을 지불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랑의 영역에서 시장의 법칙을 대입하면 아주 우스운 꼴이 됩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위가 온다고 많은 시간을 들여 정성껏 음식을 장만했을 것이고, 나는 그런 장모님에게 애정의 표현을 돈이 아니라 사회적 친밀관계를 드러내는 행위를 함으로써 가족간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의 영역에 시장의 법칙이 끼어들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그 때부터 이해타산에 따라 상대방을 평가합니다. 장모님의 음식요리시간에다 시간당 노임을 곱하여 계산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을 경제적 가치로 계산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만, 나는 그것이 별로 현명한 처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계산해서 뭘 어쩌자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집에서 일하는 것만큼 생활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더 효율적일까요? 아내는 과연 남편으로부터 더 많은 생활비를 받기 위해 집안 구석구석 먼지 하나 없도록 청소하게 될까요? 이것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랑의 영역인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돈이 전혀 교환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다가 퇴근 후에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편안히 안식할 수 있는 곳은 가족이 함께하는 집밖에 없습니다. 그런 쉼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힘을 충전하게 됩니다. 세상 어떤 곳에서 이런 안식을 돈 주고 살 수 있을까요? 돈이 작용하는 시장의 법칙으로는 이런 안식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돈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그것은 끝장입니다. 사랑의 영역에다 시장의 법칙을 적용하려는 것은 가족구성원들의 관계를 엔론과 같은 상황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시장의 법칙이 작동하지 않도록 서로 사랑의 영역 안에 머물 수 있는 가족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기업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돈벌이가 중요한 일의 목적이 되면 문제가 심상치않게 됩니다. 엔론 사태와 같이 될 위험에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 목적이 아닌 더 가치 있는 것을 목적으로 세우고 그 목적을 위해 서로 사랑의 영역에 머물도록 한다면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탐욕에 물든 월 스트리트의 붕괴

 

이제 엔론 사태를 거쳐 월 스트리트의 붕괴를 살펴 보겠습니다. 엔론의 파산은 직접적으로는 분식회계에 기인하지만, 분식회계를 하도록 한 원인도 사실은 탐욕에 있습니다. 탐욕이란 통제되지 않은 욕망을 말합니다.

 

미국은 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래로 지속적으로 욕망을 부추겨 탐욕에 기반한 경제정책을 써 왔습니다. 일반직원의 몇 십 배 수준이던 경영진의 연봉을 수백 배로 높였고, 게다가 스톡옵션까지 걸어 놓았기 때문에 회계장부를 조작해서라도 주가를 높이려는 유혹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적 장치들은 허점이 있게 마련이므로 규정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누가 탐욕의 주체였고, 불법행위자였는지를 가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금융공황상태에는 그 주체가 누구인지가 매우 불분명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미국인들이 탐욕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최근 10년간 미국의 가계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점이 그 증거입니다. 그 중에서도 모기지론이 가계부채 증가를 주도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가계저축률은 0%로 떨어졌습니다. 미국의 가계가 부실화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주택가격 이상으로 모기지론이 대출되었습니다. 집값은 영원히 오르리라 믿었기 때문에, 주택가격이 오른 만큼 모기지론을 올립니다. 미국인들은 여기서 나오는 현금도 소비했습니다. 미국인들에게는 소비는 미덕이고 위대한 행위였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이렇게 대출된 모기지론의 증서들을 모아서 파생상품을 만들어 또 팔았습니다. 이런 상품들은 위험도에 따라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어서 수익률이 높습니다. 투자은행들은 너도 나도 이 사업모델에 뛰어 들었습니다. 엄청난 수익을 얻었습니다. 미국연방준비은행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조차도 미국의 가계부채가 증가한 것은 금융혁신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영진은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았습니다. 월 스트리트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이 그들을 축복하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들에게 탐욕은 좋은 것이고,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결코 영원히 갈 수 없습니다. 가계의 부실로 더 이상 주택가격이 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심상찮은 기운이 돌자 모기지 회사들은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출금을 갚을 여력이 없는 미국인들이 대거 집을 팔려고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주택가격이 서서히 꺾이기 시작하자 모기지론을 기초자산으로 했던 모든 파생상품들이 손실을 보기 시작했고, 급기야 휴지조각으로 변했습니다.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무너지면서 리만 브라더스, 메릴린치 등 줄줄이 무너졌습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상징하는 투자은행들이었습니다. 투자은행뿐만 아니라 상업은행들까지도 이제는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금융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어떤 제도와 시스템으로도 인간의 탐욕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쓴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탐욕이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탐욕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릅니다. 이것이 진리이며, 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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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