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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8 기독교 신앙의 이데올로기화에 대하여 (4)

독교 신앙에 대한 해석의 문제는 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논쟁과 시비가 있어왔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내가 또 다시 어떤 말을 한다는 것은 아주 주제 넘는 일입니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나 자신의 개인적 성찰에서 오는 개인적 신앙을 가지고 있을 뿐,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다시 쓰는 것은 내가 앞서 쓴 글(도올 김용옥 선생의 성서해석에 대하여)에 대한 질문이 있어서 입니다.

 

그래서 나의 생각에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면 그뿐이고, 공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항상 유한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삶의 방식을 선택할 자유가 있고, 그 선택에 대하여 주체적으로 책임을 지면 됩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학식이 높지 않았던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잘 이해했으니 말입니다. 예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천국을 계시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계시해준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질문하는 것처럼, 예수 당시의 바리새파 사람들도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한 보라, 여기에 있다’, ‘보라 저기에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다.”(우리말 성경, 누가복음 17 20~21)

 

그렇다면, 이제 질문이 생깁니다. 천국이 인간의 마음 속에 있다면,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율법을 만들어서 그것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관혼상제를 어떻게 해야 한다.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한다. 각종 윤리체계를 만들어서 선포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계율을 다 지켰던 부자 청년이 찾아와서 예수에게 물었습니다.

 

그 청년이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제가 지켰습니다. 제가 아직 무엇이 부족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만일 네가 완전해지고자 한다면, 가서 네 재산을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 청년은 이 말을 듣고 슬픔에 잠겨 돌아갔습니다. 그는 굉장한 부자였기 때문입니다.”(우리말 성경, 마태복음19 20~22)

 

이 부자 청년이 요즘 우리가 하는 것과 똑같은 근심을 했습니다. 우리도 돈 때문에 염려가 많습니다. 예수는 이 부자청년과 같이 재물에 대한 인간의 근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사회적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윤리적 체계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모든 율법이 소용없는,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계명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전해야 한다.”(우리말 성경, 마태복음 5 48)

 

인간이 온전함을 향해 나가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온전함은 법률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법률은 위선만을 조장할 뿐입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법과 원칙 속으로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숨깁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겉으로는 법을 지키면서 마음으로는 범죄하는 사람들을 저주했습니다. 멋있는 옷을 입고 공공장소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위선의 기도를 올리는 자들에게 화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교사들이 예수를 시험하려고 자꾸 물었습니다.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생명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되는 계명이다. 그리고 둘째 계명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우리말 성경, 마태복음 22 36~40)

 

예수는 인간의 온전함에 대한 새로운 계명을 명확히 알려 주었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가진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간음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인간의 온전함이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 이웃을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을 가르친 것은 이 땅에 천국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가르침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법률과 원칙들이 이 두 계명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법률과 원칙이 이루고자 하는 본래의 뜻은 보지 못하고, 그 텍스트의 문자만을 고집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났습니다. 법률과 원칙이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토록 부패하고 황폐해진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각종 교리가 이데올로기화됨으로써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잃어 버렸습니다. 사랑이 없는 그 어떤 행위도 위선입니다. (교리들이 어떻게 이데올로기화되었는지는 <여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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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