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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터 바나드(Chester Irving Barnard, 1886~1961)는 조직이 성립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 공동의 목적
둘째, 협력의지
셋째, 커뮤니케이션

일반적으로 조직의 목적과 개인의 동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바나드는 공동의 목적을 구성원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목적 달성을 위한 경영개념이 효과성과 효율성으로 분리된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특히 효율성 개념을 공학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측정할 수 없는 많은 가치들이 제거되는 등 바나드의 사상이 심각하게 왜곡되었음을 살펴봤습니다.

이러한 왜곡이 일어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숫자가 주는 마력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1930년대부터 미국에 불기 시작한 국가기반시설의 확충정책도 그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공황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국가정책적으로 대규모 토목공사와 건축이 이루어졌습니다. 공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시기이고, 엔지니어가 가장 각광을 받고 또한 존경도 받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기업 내에서도 자연스럽게 공학적인 마인드가 중요하게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숫자로 측정하여 정답을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통은 1950년대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미국은 소련의 인공위성발사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소위 스푸트니크 쇼크를 받았던 케네디 대통령은 과학기술에 국가운명을 걸 정도로 집중적으로 투자했습니다. 과학기술에의 투자는 국가적 아젠다가 되었습니다. 유능한 인재들이 과학기술 개발에 대거 참여했고, 모든 것은 숫자로 표현되었습니다. 그것이 당연시되었고, 숫자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것을 넘어 정직한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테일러의 사상에 기름을 부은 것과 같았습니다. 모든 것을 숫자로 표현하여 정확한 해답을 찾아내는 것은 거의 모든 학문영역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숫자가 서서히 이데올로기화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사회과학적 연구의 모든 주장이나 판단은 반드시 숫자나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인간의 행위도 계량화하여 숫자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계량경제학이나 계량경영학이 중요해졌습니다. 수학적 재능이 없이는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공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학문영역은 철저하게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통계숫자로 보여줘야 합니다. 이때부터 노벨 경제학상을 받으려면 인간의 행동을 수학적 모델로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게리 베커(Gary A. Becker, 1930~) 교수는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사람을 자본으로 본 것입니다. 경영자나 행정당국이 사람에 대한 교육투자와 같은 의사결정을 내릴 때 문화적 측면뿐만 아니라 투자수익률까지 아우르는 합리적 모형을 제시했습니다.

말하자면, 합리적으로 비용과 혜택을 계산해서 결정할 수 있는 수학모델을 만든 것입니다. 이 모델을 가족관계, 노동시장, 결혼시장, 이혼시장 등으로 확장하여 적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하여 논쟁에 참여했고 시끄러웠습니다. 하지만, 베커 교수가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음으로써 논쟁은 끝났습니다. 합리화, 계량화, 과학화, 숫자화의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합리화는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자본시장에서 인간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피셔 블랙(Fischer Black, 1938~1995),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 1941~),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 1944~). 이 위대한 세 인물이 바로 그 일을 해냈습니다. 우선, 머튼은 투자자들이 자산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배분하는지를 연구해서 소위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Capital Asset Pricing Model, CAPM)이라는 수학모델을 만들었습니다.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즈는 그 유명한 옵션가격결정모형(Options Pricing Model, OPM)을 만들었습니다. 파생상품의 가격결정메커니즘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파생상품을 포함한 주식시장의 모든 가격결정메커니즘을 수학모델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델은 이미 70년대에 만들어져서 실무에서도 활용되었고, 실증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유효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론들이 많은 변화를 거쳤지만 기본적인 프레임은 변함이 없습니다.

나는 70년대 CAPMOPM을 포함한 투자이론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전율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자본시장에서 인간의 행동이 수학모델에 의해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이론들을 제대로 장악할 수 있다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재무관리를 전공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수학에 뛰어난 재능은 없었지만 투자이론의 정교함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젊은 지도교수는 투자론 교과서를 써서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일제시대 때 배운 지식으로 가르치던 교수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요즘과 같은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이라는 참신한 용어도 없었지만, 투자론은 세상이 수학모델로 설명될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강의를 듣는 많은 학생들이 흥분했고, 너도나도 투자론에 빠져들었습니다. 적어도 나는 그랬습니다.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지도교수는 출판사로부터 엄청난 인세도 받았습니다. 그는 인세를 다시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투자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론과 실제를 조화시켜보려 했습니다. … 그 다음 어떻게 되었는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투자이론을 포기하고 중도에 대학원을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한국은행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단지 나의 개인적 역사일 뿐이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투자이론에 여전히 심취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론들은 지금 금융공학이라는 용어로 더욱 정교하게 발전되어 가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그러니까 1997년 자본시장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수학모델의 기초를 세운 이 위대한 성과에 대해 스웨덴의 노벨위원회가 노벨 경제학상으로 보답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피셔 블랙은 노벨상이 수여되기 2년 전에 암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머튼과 숄즈에게만 상이 수여되었습니다.

이제 금융공학은 주식시장을 거의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대박은 따놓은 당상입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Long-Term Capital Management(LTCM)라는 헤지펀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펀드는 투자은행 살로몬 브라더스의 전설적인 채권 트레이더 메리웨더(John Meriwether, 1947~)1993년 세운 회사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에 빛나는 숄즈와 머튼, 월 스트리트 최고의 트레이더들, 그리고 하버드와 MIT 교수 등 내로라하는 대가들을 끌어들여 펀드를 운영했습니다. 펀드는 연 4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자랑했습니다. 냉철한 머리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압하면서 월 스트리트에서 질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레버리지를 이용해서 높은 수익을 올렸습니다. 1998년도에는 자기자본(47억 달러) 2,500%나 되는 자금을 끌어들였습니다. 어마어마한 빚으로 투자거래를 계속했습니다. 이 돈을 주로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바람에 그 해 부외자산은 무려 12,500억 달러나 됐습니다.

빚은 잘 나갈 때는 대박이지만문제가 생기면 독약으로 돌변합니다이들은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와 그 이듬해 러시아의 금융위기를 전혀 예측하지 못해 엄청난 손실을 입고 파산했습니다게다가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LTCM은 불법적인 조세회피 거래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나서 기소되기도 했습니다.

 



LTCM의 성장과 파산과정은 이미 책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현실이었습니다. 천재들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가는 과정이었으니까요. 두 권의 흥미진진한 책을 소개합니다. 『라이어스 포커』와 『천재들의 실패』입니다.


파산 후에도 두 명의 노벨 수상자는 우여곡절 끝에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습니다. 로버트 머튼은 2007년 금융자문회사인 Trinsum Group에 합류했습니다. 이 회사는 이번 금융위기에 다시 큰 손실을 입고 2009 1월에 파산보호신청을 냈습니다. 마이런 숄즈도 가까스로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습니다. 그는 대만계 중국인이 세운 Platinum Grove Asset Management라는 헤지펀드를 맡았는데, 이번 금융위기로 또다시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현재는 펀드가 환매중단 상태에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이 만든 합리적 계량적 과학적 모델이 세상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지성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이 세계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연구가 진전되면 인간이 만든 합리적 모델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세계는 결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합리화 계량화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있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결코 합리화되지 않는 세계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체스터 바나드가 제시한 조직의 세 가지 요소 중에서 계량화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가려서 조직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그래야 조직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위대한 선각자 체스터 바나드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개인과 조직에 도움이 되는 감각)은 사회적, 윤리적, 종교적 가치이다. 그것이 널리 보급되기 위해서는 지성(intelligence)과 영감(inspiration)이 필요하다. 지성(intelligence)은 여러 사람들이 복잡한 세계에서 그들의 기술적인 역량이 서로 얽혀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 그것은 정규교육보다는 오히려 협동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영감(inspiration)은 조직에 통일감을 주고 공동의 이상(ideals)을 창조하기 위해 필요하다. 구성원들이 이 이상을 지적으로 수용하기보다도 오히려 마음으로부터 수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늘날 여러 사건을 제대로 관찰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동의 이상(ideals)에 대한 신념이 구성원들의 협동을 이끌어내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것이다.”

1930년대에 이미 조직을 오늘날과 같은 경쟁체계가 아닌 협동체계로 파악했던 체스터 바나드의 혜안이 놀랍지 않은가!

재미 없겠지만, 바나드 얘기는 계속됩니다. 아주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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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