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비전/목적/방향이 없다는 점이고, 둘째 늘 바쁘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바쁜 이유는 비전/목적/방향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은폐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첫번째 특징인 비전/목적/방향의 결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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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전은 목적으로 드러나며 방향을 설정해 줍니다. 그래서 나는 비전/목적/방향을 마치 한 단어처럼 사용합니다. 비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강렬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희미할 수도 있습니다. 비전이 없으면 망합니다. 비전이 없으면 삶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전은 강요해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비전은 자연스럽게 자극되어 자발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직에는 비전이 중요하고 그 비전을 구성원들이 공유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747과 실용은 과연 비전/목적/방향이 될 수 있는가?

     

    현정부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것은, 현정부가 내세우는 두 가지입니다. 747과 실용입니다. 747은 연평균 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을 줄인 것입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더 명확한 어떤 비전/목적/방향을 가지고 있다면, 누군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내가 알고 있는 것은 747과 실용입니다.

     

    이전의 포스트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계량화된 숫자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것에는 다양한 가치가 생략되기 때문에 비전/목적/방향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숫자는 항상 수단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고열로 고통 받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환자의 체온 36.5도를 자신의 진료목표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도 안 되지요. 고열의 원인을 일차적으로 찾아서 제거함으로써 환자가 건강을 회복한다면 체온이 36.5도로 회복되는 것은 치료의 결과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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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7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국이 건강한 나라, 성숙한 국민이 되었을 때 당연한 결과로 따라오는 숫자일 뿐입니다. 747을 목표로 삼다니! 747이 어찌 일국의 비전이란 말인가? 이 얼마나 멍청한 역사의식이란 말인가? 새로운 정부가 출발하고 747을 목표로 드라이브하는 바람에 재정과 환율정책을 잘못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금융위기가 오자 외환이 부족할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가? 비전이 없으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747을 위해 장애인 복지예산을 대폭 줄이고, 종부세를 완화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몫을 거두어서 부자들에게 나누어주는 방식의 정책을 쓴 겁니다. 그러면서 재래시장 아주머니에게 따뜻한 목도리를 씌워주는 광고사진을 찍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소외되지 않는 복지국가를 만들겠다고 방송합니다. 이것이 잘 먹히지 않자 최근에는 황석영을 끌어들여서 이미지를 확장해 보려고 합니다. 어떤 것이 진실일까요?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소위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전략이 이런 거였습니다. 비전이 없는 전략은 이렇게 본말을 전도시키고 목표와 수단을 바꿔버립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좌충우돌하는 것입니다. 공유된 비전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온 국민이 747과 실용을 위해 희생되고 있는 셈입니다.

     

    정치적 식견은 거의 없지만, 나는 유럽의 어느 정당에서도 이런 식의 선거캠페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숫자를 들이밀면서 그 숫자를 지키겠다는 공약은 매우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비전이 없어 보이는 천박한 선거전략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정부의 전략도 이명박정부처럼 즉흥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이 분야는 전문이 아니기 때문에 혹시 전문가가 이 글을 보고 다른 의견이 있으면 코멘트를 부탁합니다.

     

    실용이란 무엇인가?

     

    현정부의 비전/목적/방향 중에서 두 번째인 실용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실용적이라는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실용적이어야 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실용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누구를 위한 실용인가? 이것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은 채 그저 실용을 외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정신작용에는 가치 정립과 같은 기초영역이 있고, 그 가치를 적용하는 실용영역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용이란 가치가 명확히 정립된 후에 그 가치를 현실에 적용하는 기술입니다. 말하자면 사회적 테크놀로지(social technology)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의 관계와 같습니다. 기초과학의 토대가 없이 응용기술을 발달시키겠다는 것이 비과학적인 처사이듯이, 명확한 가치정립이 없이 실용을 운위하는 것은 비실용적인 태도입니다. 현정부의 캐치프레이즈로서 실용을 내세운 것도 가치의 토대가 매우 부실한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내세울만한 매력적인 비전과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죠.

     

    가장 황당한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실용주의입니다. 숫자는 어떤 실체라도 잡을 수 있지만, 실용주의야말로 실체가 없는 공허한 관념에 불과합니다.

    ,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또다시 외교아젠다로 들고 나왔습니다. 실용주의 외교노선에서는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요? 비실용적인 이념에 찌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는 북한을 적절히 요리해 왔습니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 적당한 수준의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비용지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비용은 통일비용의 일부라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평화와 자유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북한에 대한 실용적 입장은 뭔가요? 언론보도에 의하면, 하도 이랬다 저랬다 해서 정신이 다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김영삼 정부시절에도 최근의 북핵사태과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북한에서 핵개발과 미사일 때문에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온 국민이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는 핵핵거리면서 무엇을 했나요? 내가 알기로는 별로 한 것이 없습니다. 말로 큰소리만 뻥뻥 쳤습니다. 그리고는 미국과 일본에 질질 끌려 다닌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그러면서도 김영삼 정부의 비전은 세계화라고 큰소리쳤습니다. 힘도 없으면서 힘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다 결국은 국가를 파산지경으로 몰고갔습니다. 요즘 그런 일들이 또 벌어지고 있습니다.

     

    ,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덮쳤습니다. 실용주의 경제정책에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비실용주의 이념에 찌든 경제정책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이때 실용이란 그저 즉흥적으로 대응하느라 외환보유고를 낭비해서 또다시 외환위기를 맞는 것 아닌가라는 위기감을 초래했을 뿐입니다. 실용주의 외교로 쇠고기 광우병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정부에서는 무슨 조치를 취했나요? 역시 즉흥적으로 이랬다 저랬다 했습니다. 그래서 얻은 게 뭔가요? 엄청난 사회적 갈등만 일으켰습니다.

     

    도대체 실용이라는 아이디어가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지만, 철없는 초등학교 애들 수준의 사고입니다. 이제 실용과 실용주의라는 용어는 집어치우기를 바랍니다. 모든 인간의 삶은 실용적입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실천적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사, 즉 밥 먹고 똥싸는 모든 행위가 실용에서 나온 것이고 실천의 결과입니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가의 문제일 뿐입니다. 이념에 기초하지 않은 실용은 국민이 낸 세금을 자신들 맘대로 떡 주무르듯이 하겠다는 의사표시처럼 보입니다.

     

    정부 지도층의 이러한 실용주의적 현실인식은 언어를 유치한 수준에서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언어파괴>라고 지칭한 분도 있습니다. “이라크 침공이라크 해방이라고 부르는 것, 삽질로 환경파괴를 기획하면서 녹색성장이라고 부르는 것 등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실용이라는 용어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언어파괴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자들 이익에 부합하도록 세금을 쓰고 정책을 집행하면서 그것을 실용이라고 부르니 말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정부의 지도층에는 자신들에게 비전/목적/방향이 없다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저지른 것을 용서해야 할까요? 2,000년전에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용서해달라고 간청했던 예수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할까요?

     

    아니면, 속으로는 비전/목적/방향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부자들에게 모든 돈을 몰아주자. 그래서 판돈을 키우면, 떡고물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떨어질 것이다. 우선 부자들이 중요하다. 부자들이 경쟁력을 갖춰야 나머지들도 따라올 것이다.’ , 이런 정도의 이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긴 쪽 팔리니까, 명시적으로 공표하진 못하고 그냥 실용과 실용주의라는 용어로 얼버무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자기가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철저한 손익계산에 따라 모르는 상태를 연출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의 손익을 위해 자발적 무지의 상태로 도피한 자들까지도 우리는 용서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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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