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1.02 인간이란 무엇인가(5)_존재와 실존 (1)
  2. 2008.10.28 인간은 실존한다 (4)
  3. 2008.10.21 인간과 조직
  4. 2008.10.21 주요 관심분야 및 연구영역 (2)

지난 이야기

          인간이란 무엇인가(1)_인간을 보는 눈
          인간이란 무엇인가(2)_경영학의 인간관 문제
          인간이란 무엇인가(3)_이데올로기의 문제
          인간이란 무엇인가(4)_이데올로기와 이성적 판단능력


특정한 지배적 관념이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현실에서, 인간에 대한 지배적 관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 마디로 인간을 뭐로 볼 것인가에 관한 얘기입니다. 서양철학은 사물의 본질(essence)을 밝히는 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인간의 본질에 관해서도 탐구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부유했지만 우울하게 일생을 보냈던 덴마크의 철학자 죄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는 인간에 대한 객관적 본질보다는 주관적 존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본질이란 실체나 대상을 구성하는 속성과 그 인과관계 또는 존재목적을 의미하기 때문에, 여타 사물에 대해서는 그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의미가 있지만, 인간에게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구성요소와 그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속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을 확보해주는 궁극적 목적을 찾는 것도 철학적 사유로는 밝힐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essence)에 대한 질문을 인간의 존재(existence)에 대한 질문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독일어의 Existenz, 영어의 existence를 일본사람들은 실존(實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실제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실존과 존재의 미세한 차이,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존재는 나 자신 밖에 있는 모든 대상을 말합니다. 그 대상이란 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입니다. 여기에는 존재의 본질을 묻는 본질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본질적 사고의 특징은 요소환원주의적입니다. 어떤 것의 객관적 속성을 분석하려면, 그 대상을 분해하여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요소를 찾아내고 그 요소의 성질과 작용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과학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분석적 사고력은 필수입니다.

 

과학자들이 우주탄생의 비밀과 그 운행원리를 찾기 위해 물질은 원자, 원자핵, 전자, 쿼크 등의 소립자로 쪼개서 분석합니다. 그리고 그들간의 상호작용원리를 찾으려고 합니다. 본질(essence)을 찾아내기 위해서입니다. 본질을 찾아내는 행위는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고 매우 중요합니다. 국가의 본질, 조직의 본질, 직무의 본질, 노동의 본질 등 일상에서 접하는 수많은 개념과 사물들의 본질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서 말한 이데올로기 홍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성의 날을 날카롭게 세워야 하고, 사물의 본질을 파헤치는 과학적 사고를 연마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이러한 본질적 사고가 인간 자신에게 적용되었을 때 어떻게 될까요? 인간의 본질은 아마도 업 쿼크(up quark)와 다운 쿼크(down quark) 알갱이들의 조합으로 밝혀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배우자도 쿼크량을 조사해서 최적의 쿼크 프로파일 중에서 고르게 될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쿼크 알갱이들을 조절함으로써 인간의 희로애락을 통제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천재로 불리면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차드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 교수의 다음과 같은 고백을 나는 지지합니다.

 

지금의 우리는 그저 확률을 계산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사실 지금이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이것은 아마도 영원히 걷어낼 수 없는 물리학의 굴레인 것 같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인간의 지적 능력에 그어진 한계가 아니라, 자연 자체에 원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리차드 파인만,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승산 2003, 234~235)


 

그렇습니다. 나에게는 인간의 본질을 알 수 없다고 겸손하게 말한 철학자들이 솔직해 보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과학적인 요소들이 있겠지만, 어떤 목적을 위해 그 요소들이 결합하여 인간이 탄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인간에게 실존적 사고가 필요했습니다.

 

실존적 사고는 총체성(wholeness)과 전일성(oneness)을 중시합니다. 우리는 매일 무슨 밥을 먹고 어떤 치약과 칫솔로 이를 닦고, 어떤 친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하며, 무엇 때문에 상사와 갈등하는지를 마음으로 직접 체험하면서, 그 각각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반성해 봅니다. 그 반성이 자신의 삶에 피드백(feedback) 되고 다시 피드퍼워드(feedforward)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행동을 수정합니다. 물론 이런 사고과정은 본질적 사고에 의하면, 뇌세포의 전기작용 또는 화학작용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펜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펜에서 잉크가 쏟아져 나와 종이 위를 특정한 형태로 적시고 있습니다. 이 글쓰기 작업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은 온 우주의 양전하를 띤 전자알갱이 수보다 더 많습니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난 후의 느낌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우주 전체에 있는 양전하를 띤 전자알갱이가 1080정도 된다면 한 사람의 뇌세포에서 시냅스전달을 위한 연결망을 구성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1,000,000정도라고 합니다. 인간의 뇌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간의 삶의 의미와 가치는 요소환원적인 본질적 사고로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실존적 사고를 통해 지금 여기 살아있음의 의미를 확인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자기자신이 선택합니다. 매 순간 자신이 선택한 의미를 담은 정보와 에너지가 내 몸에서 우주로 발산되어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실존적 사고는 자기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계하는 모든 대상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습니다. 이것이 분석적 사고력과 더불어 실존적 사고력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끝)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나는 누구인가’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은 관계 속에서만 결정됩니다. 관계는 존재의 본질적 속성을 무엇으로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지금 오른손에 칼을 잡고 있다고 칩시다. 왼손에 사과가 있다면, 오른손의 칼이 무엇을 뜻할지는 뻔합니다. 누구나 내가 과일을 깎으려고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왼팔로 한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 있다면 오른손의 칼은 무엇이 될까요? 살인무기가 됩니다. 이렇듯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물과 현상은 관계 속에서만 그 본질을 드러냅니다.

 

칼은 장인(匠人)의 영감에 의해 종이나 과일을 자르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가 직접 말했듯이, 칼에 있어서는 본질(라틴어로 essentia), 즉 과일 깎는 칼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제작법과 성질의 전부가 실존(라틴어로 existentia)에 앞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항상 고유한 특성, 즉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항상 실존에 앞섭니다.

 

사실 서양철학사에서 본질과 실존의 문제는 고대그리스철학에서부터 내려온 존재론과 인식론의 긴 여정의 산물입니다. 오랫동안 모든 사물과 현상들이 항상 본질(essentia)과 그 본질들의 관계를 규명하는 존재(existentia)의 문제로 나뉘어서 사유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인간의 존재목적은 무엇일까? 인간의 변하지 않는 속성 또는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칼이 장인의 영감에 의해 만들어졌듯이 인간은 도대체 누구의 영감에 의해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는가?

 

2,500년간을 철학자들이 사유해봤지만 그것에 대한 대답은 알 수 없다였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은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위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은 덴마크 철학자 죄렌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d, 1813~1855)였습니다. 그 후에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존재(existence)를 다른 사물이나 현상과 구별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존재를 위한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실존(existence)이라는 용어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나는 인간존재에 부합하는 이 실존(實存)이라는 용어를 좋아합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실제로 존재한다는 말이니까요. 그래서 다른 사물들에는 존재하지만, 실존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존하는 존재인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그 가치와 의미를 부여받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만 실존한다는 말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인간은 영혼을 가진 실존적 존재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서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Existence precedes essence.)라는 유명한 명제가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이 말은 인간이 먼저 세계 속에 실존하고, 만나지며, 떠오른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정의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구상하는 무엇이며 또한 인간 스스로가 원하는 무엇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실존한다는 말은 사물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 사물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PC에 글쓰기와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이라는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내가 PC와의 풍요로운 관계 속에 존재하게 됩니다. 나는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 이러한 관계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실존성(實存性)이란 자유와 선택, 그리고 책임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물과의 관계설정은 실존하는 인간이 일방적으로 정하기 때문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일방적일 수가 없습니다. 타인도 나와 동일한 성정을 지닌 실존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갈등과 스트레스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실존성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상사는 부하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보거나, 경영자가 구성원을 한낱 조직목표달성의 수단으로만 다룬다면, 인간의 실존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조직생활의 고단함은 여기서 비롯됩니다. 부부간에도 상대방을 한낱 욕망의 충족을 위한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 마음과 마음은 단절되어 갈등이 쌓이게 됩니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는 모든 인간을 실존적 존재로 평등하게 인정하고 마음과 마음이 서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인을 실존하는 존재로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이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서 수천 명의 미군병사들과 수많은 이라크 시민들이 죽었습니다.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의 징조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전쟁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있습니다. 부시의 눈에는 미군병사들과 이라크 시민들이 존재를 위한 존재’, 즉 실존적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고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 보였을 뿐입니다.

여기서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가 말하는 ‘나’(Ich)와 ‘너’(Du)의 관계에서 ‘나’(Ich)와 ‘그것’(Es)의 관계로 바뀝니다. 인간사회의 불행은 대부분 상대방을 나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대상, 즉 ‘그것’(Es)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나의 실존에는 타인의 실존이 필수적입니다. 나의 실존성을 보장하는 것은 타인과의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갈등의 원인은 부시가 그랬던 것처럼 그것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단절되어 있는 착취의 관계가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나는 실존주의 철학이 한 때 유행하는 철학적 사조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해명하는 영원한 사유의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고, 그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선택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전쟁과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에서만 인간의 실존성이 문제되진 않습니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사가 다 실존의 문제에 직면합니다. 상사는 그의 부하들의 실존성을 존중해 주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하들도 상사를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당장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업가들은 사업파트너들을 사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대상이나 수단으로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친구간에도 그랬을지 모르고, 사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내 강의를 듣는 기업체의 간부들을 오로지 내 수입을 늘려주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영혼에 진정으로 보약이 되는 내용을 포기하고 당장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마음과 마음이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 효율성(efficiency)이 가장 높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단점이나 취약점이 드러나더라도 상대방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 과감한 시도를 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은 신뢰의 표상이며, 신뢰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기반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가 옆에 있을 때, 넘어지더라도 과감히 걸음마를 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타인을 실존적 존재로 인식하여 그와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의 관계에 있었을까? 우선 나의 아내와는? 부모형제와는? 아이들과는? 내가 사업상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는? 그들이 나를 실존적 존재로 보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들을 의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의 철학을 실천할 수 있을까? 내가 상사였을 때 부하들에게 그들의 실존성(자유, 선책, 책임)을 인정하고 그들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을까? 나와 나의 상사는 어땠을까? 뒤돌아보니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독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Mindlessness에서 Mindfulness로(1)  (0) 2008.11.04
존 템플턴이 알려 주는 "영혼의 울림"  (0) 2008.11.03
내가 읽은 가장 위대한 경영학 고전  (0) 2008.10.30
사로잡힌 영혼  (4) 2008.10.29
인간은 실존한다  (4) 2008.10.28
독서  (2) 2008.10.21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인간은 항상 뭔가를 욕망합니다. 그 욕망이 충족되면 또 다른 욕망이 떠오릅니다. 이것이 충족되면 또다시 새로운 욕망이 떠오르지요. 이러한 반복의 과정을 받다가 어느 수준에서 멈추게 됩니다. 멈추어야 할 지점에서 멈추지 못하는 욕망은 인간을 좌절케 합니다. 멈추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개의 경우에는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춥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멈추지 못하는 욕망 때문에 뭔가를 향하여 의미 있는 것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기도 합니다. 이 욕망은 개처럼 본능의 폐쇄된 영역에 갇혀 있지 않고 초월적 세계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실존적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이 분출하는 욕망을 실존적 의미로 승화시키도록 돕는 수단이 바로 조직입니다. 조직은 인간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구조화되고 시스템화되어야 합니다. 만약 조직이 잘못 설계되면 오히려 인간의 잠재력을 퇴화시키고 삶을 고통의 늪으로 떨어지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것을 조직의 폭정’ 또는 '제도의 폭력'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폭정과 폭력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조직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찾아야 합니다.


신고

'삶의 기록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인드 프로그램  (0) 2008.10.21
리더십  (0) 2008.10.21
인사관리  (0) 2008.10.21
역량관리  (0) 2008.10.21
성과관리  (0) 2008.10.21
인간과 조직  (0) 2008.10.21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인간의 실존적 상황]


인간은 두 번 창조하는 동물입니다. 첫번째는 마음으로 창조하고, 두번째는 근육으로 창조합니다. 마음창조는 철저하게 상상의 세계에서 벌어지고, 근육창조는 철저하게 현실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에게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져 있고, 매순간 이 세계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합니다. 선택한 후에는 마음의 상태(mind state)가 결정됩니다. 마음의 상태는 우리 몸의 생리적 반응(physiological response)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나서 근육들이 행동(behavior)에 나섭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뛰어난 인물들을 보면 오히려 마음으로 먼저 상세히 창조하고,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대로 다시 근육으로 창조해 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에 무엇을 어떻게 마음으로 창조할 것인가입니다.
 

우리가 인간성에 관해 말할 때는 그것이 이미 인간을 자연에서 분리시켜 특징지을 수 있다는 생각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분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적특성들과 본래 인간적인 것으로 불리는 것들은 떼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얽혀 하나가 되었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니체의 말대로 모든 인간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니,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아의식(ego consciousness) 때문에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느낍니다.  그 분리현상을 바로 잡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서로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을 느낄 때 가능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과 마음을 서로 연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자연과도 분리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요?


 

[심리적 치유]

호흡의 중요성을 잊지 말라 [존 카밧진 Jon Kabat-Zinn]
당신은 당신이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당신의 의식적인 행위는 무의식적 과정이라는 바다의 표면 위에 떨어진 물방울에 불과하며, 당신은 그 무의식적 과정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을뿐더러,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빌헬름 라이히 Wilhelm Reich]


삶에서 고통 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고통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고통을 마음의 프로그램을 바꿔 줌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이란 명령어들의 조합을 말합니다. 사람마다 마음에는 자기 스스로 만들어 놓은 독특하고도 강력한 명령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신념(belief)이라고 부릅니다. 마음에 어떤 신념, 즉 명령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과 행복이 결정됩니다. 인간이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신념을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을까요? 과연 마음의 양자적 변화(quantum change)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역량의 진단과 개발]

 

결과에 이르는 왕도는 자신의 진전에 의해서만 평가된다. 수학을 빨리 배우지 못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 심지어 슈퍼스타 마이클 조단까지도 계속해서 자신을 뛰어 넘었다. 자신과 자신을 비교했을 뿐이다. ……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일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스티브 안드레아스 Steve Andreas]


차별적인 우수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내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기자신과의 비교에서 출발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 때문에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나 자신도 그런 환경에서 자랐고, 그런 경쟁을 미덕으로 여기는 조직 속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포장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잘 났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단점은 숨겨야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식의 삶은 결국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분한 일을 맡으면 조직도 자신도 결국은 불행해집니다. 그래서 나는 영혼의 울림에 따라 진실한 자신의 역량수준을 잘 점검해서 그것에 걸맞는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의 역량수준을 진단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조직은 그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조직운영(경영)의 시스템적 원리]

 

경영은 조직의 성과와 산출물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사실, 경영을 함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어떤 산출물과 성과가 조직 내에 존재하는지를 정의 내리는 것이다. 이 작업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증언할 수 있듯이, 성과를 정의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어렵고, 가장 논란이 되고,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이다. [피터 드러커 Peter F. Drucker]


비전과 전략은 조직에 의해 실행됩니다. 그래서 비전, 전략, 조직의 개념적 정의와 성과, 역량, 인사 등과 같은 구체적인 실천개념들을 잘 조화시켜야 합니다. 조직구성원들을 구속하는 제도적 장치는 의식의 표층구조를 형성하여 마음의 프로그램에 심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제도설계 또는 조직설계 시에는 반드시 구성원들의 마음의 프로그램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 프로그램에 적합한 설계를 해야 조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조직의 표층구조인 제도적 장치와 구성원의 심적 프로그램을 조화시킬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요?

신고

'연구소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사말 _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6) 2008.10.27
위치와 연락처  (5) 2008.10.24
주요 관심분야 및 연구영역  (2) 2008.10.21
번역한 책들  (3) 2008.10.21
집필한 책들  (2) 2008.10.21
주요 학력 및 경력  (4) 2008.10.21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