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들은 어떻게 시장을 지배수단으로 활용하는가? 이 순환고리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앞에서 나는 가진 자들은 신자유주의 이념, 시장경제의 규모확대, 자기책임의 원리적용이라는 삼각편대를 활용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가지 지배수단을 악마의 맷돌처럼 계속 순환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는 지속적으로 가진 자의 수중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가진 자들은 풍부한 시장정보를 통해 시장이 확대되면 될수록 더 많은 것을 빨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규제를 완화하여 모든 것을 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합니다. 심지어 공공기관이나 국유화된 사업들을 민영화하려고 합니다. 시장경제에 편입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단기적으로 효율적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의료부문과 교육부문처럼 가난한 사람은 병이 나서도 안 되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도 없게 됩니다. 참으로 터무니 없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자유방임의 시장제일주의는 결국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 고리를 강화시키게 됩니다.

 

기득권층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철의 삼각편대


그래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남미와 같이 양극화 사회로 추락하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이념, 시장경제 확대, 자기책임의 원리, 이 철의 삼각편대를 풀어내지 않는 한, 우리는 그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고전적 자유주의 시대의 종말이었던 1929년의 대공황과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말인 2008년의 금융위기가 그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 이제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일본의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자로서 경제사회 개혁을 주도했던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巖) 교수는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 호소가와 정부와 고이즈미 정부에서 구조개혁과 규제철폐를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최근에 자신의 과거가 잘못되었음을 참회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신념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는 개입주의적 전통이 훨씬 공동체적 삶을 윤택하게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면서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기파랑 2009)를 펴내 일본 독서계에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글에서 가진 자들이 서민의 돈을 어떤 방식으로 빨아들이는지 그 일단을 서술하고 있어서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서브프라임 론(비우량주택담보대출)이란 신용도가 낮아서, 상환능력이 없을 수도 있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융자다. 신용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대출금리는 높아진다. 그러나 금리가 높아도 그런 사람들을 주택융자로 끌어들이는 교묘한 장치가 있었다. , 처음 2,3년은 원리금 상환을 아주 낮게 해주고, 그 후에 상환액이 급증하는 식의 융자다. 당연히 융자를 받는 쪽에서는 장차 지불금리가 10%를 넘는 고금리 융자를 싫어하게 되지만, 그래도 융자를 받아볼 생각을 하게 만든 교묘한 장치가 있었다.

 

그 하나는 미국의 주택 붐이었다. 이번 금융파탄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의 주택시장은 버블상태로 주택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업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저소득자를 설득한 것이다.

 

'나중에 상환금리가 높아지는 것을 걱정하시는군요. 문제없습니다. 금리가 오르기 3년 뒤나 4년 뒤에는 구입한 주택의 가격이 상당히 오를 것입니다. 그 가격이 오른 주택을 담보로 해서 재융자(refinance)를 받으면 됩니다. 그러면 당신이 지불할 금리는 담보가 되는 주택가격이 충분히 올라가기 때문에 서브프라임이 아니라 프라임 레이트(우대금리)가 됩니다. 장차 미국에서는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필요할 경우 재융자를 하면 반드시 한층 더 풍요로운 생활이 보장될 것입니다. ......'

 

이처럼 달콤한 유혹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서브프라임 론에 손을 내밀고 주택을 구입했는데, 이 때문에 주택수요가 증가해서 실제로 주택가격을 끌어올리게 되었다. … 결과적으로 보면, 서브프라임 론 업자의 이야기는 일시적이나마 적중한 것이 된다. 버블은 이 같은 자기실현적 현상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인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카타니 이와오, 이남규 옮김,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기파랑 2009, 88~89)

 

이렇게 해서 주택금융회사들은 자신이 발행한 대출증서를 즉각 증권회사에 매각해서 현금화해 놓습니다. 그러면, 설사 주택융자금을 받은 채무자가 원리금 상황을 못하더라도 이미 대출증서를 팔아 현금을 챙겼기 때문에 손실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게 됩니다. 대출증서를 매입한 증권회사는 그것을 증권화”(securitization)합니다. 증권화란 대출증서를 모아서 금융시장에 유통될 수 있도록 상품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상품을 통칭 파생상품(derivatives)이라고 합니다. 대출증서라는 원본에서 파생되어 만들어진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위험도가 높은 대출증서와 위험도가 낮은 대출증서들을 혼합하여(다시 말하면, 위험을 분산하여) 금융상품으로 둔갑시킵니다. 이것을 다시 기관투자가인 여러 금융기관에 팝니다. 금융기관들은 이 상품에 투자할 재원을 일반투자자에게 높은 수익률을 내걸고 모집합니다. 중산층과 서민들인 일반투자자는 높은 수익률이라는 미끼에 걸려서 이런 상품에 투자합니다.

 

이쯤 되면, 금융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대강 이해하시겠죠. 위험도가 높은 대출증서가 증권화되어 끊임없이 금융시장에서 순환합니다. 순환할 때마다 이자율과 수수료가 붙기 때문에 순환할수록 눈덩이처럼 시장규모는 커집니다. 원래의 대출증서가 위험자산인데, 그것에 기초한 파생상품 또한 그만큼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택시장의 버블이 꺼지는 날에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매우 위험한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월 스트리트에서는 이 시한폭탄이 언제 어디서 터질 것인가의 문제만 남았었는데,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서 제일 먼저 터졌고, 그 다음 리먼브라더스 등으로 옮겨졌습니다. 투자은행들끼리 서로 스크럼을 짜고 수많은 폭탄을 돌렸기 때문에 한두 군데서 터지니까 너나 할 것 없이 한꺼번에 다 터져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융위기입니다.

 

(위기의 원인을 매우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를 동원해서 분석한 보고서는 수없이 많습니다. 일반인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릅니다. 복잡하게 해 놓고,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터졌는데,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발뺌합니다. 월 스트리트에 있는 사람들은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금융위기의 진실이 어느 정도 밝혀지자, 대부분의 투자은행과 금융기관 경영진은 엄청난 보너스를 받고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월 스트리트는 잿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그 결과, 서브프라임 론을 받았던 사람들은 주택을 압류당해서 거리에 나앉게 되었고, 증권화된 금융상품에 투자한 일반투자자들은 자신의 증권이 휴지조각으로 변했습니다.

 

, 그러면 누가 잘못했는가?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일을 주관했던 주택담보대출업체와 증권회사, 금융기관과 기관투자자의 경영진은 잘못이 없는가? 명백한 불법적 행위를 하지 않은 한, 도의적 책임만 가질 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황당하죠? 규제를 다 풀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황당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감독했어야 할 감독당국, 즉 증권거래위원회(SE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재무부(Secretary of the Treasury)는 무엇을 했을까요? 그들이 금융규제를 풀어주었기 때문에, 손 놓고 있었거나 눈 감고 있었거나, 아니면 문제의 원인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어서 무엇이 문제인지 아무도 알 수 없도록 하거나

 

폭탄이 터져 잿더미가 되고 난 후에, 그제서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Allen Greenspan, 1926~)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그린스펀은 또 어떤 인물인가 1987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연준의장으로 지명되어 2006년까지 18년이 넘도록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얻으면서 금융시장을 주무른 사람입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폴슨(Henry Paulson, 1946~)이 "자유화된 금융은 구조적으로 폭발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자신들이 자유화시켜 놓았는데, 이제 와서 폭발위험이 크다? 폴슨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 출신입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경력만 봐도 악마의 맷돌을 찬양할 것은 뻔합니다.

 

이들 미국 금융시장의 최고책임자들은 자유방임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무능한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이념이 그들의 양심을 가렸고, 마음의 눈을 가린 것입니다.

 

,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됐는가?

원래의 대출증서를 묶어서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증권화하여 파생상품을 만드는 최초의 행위가 문제입니다.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는 대출증서를 상품화하여 유통시킴으로써 시장규모를 확대한 것입니다. 자본시장에서 파생상품은 위험을 헤징하는 좋은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품 자체가 대규모로 시장에서 순환하게 되면, 엄청난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세밀한 관찰과 감독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연준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오히려 금융공학의 발달로 세계경제는 불황없는 성장이 가능하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신자유주의 이념을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수단을 기억하시나요? 모든 것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전환시켜서 시장규모를 확대하라는 것입니다. 레이건 정부 이래로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증권화 작업과 위험한 유통과정을 합법적인 것으로 모두 인정해주었습니다

 

, 그렇다면, 시장규모가 확대되어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서민들의 주머니는 털렸고, 이 모든 사태를 책임지고 있던 부유층은 보너스 받고 월 스트리트를 떠났습니다. 그러면, 서민들이 너무 억울하지 않냐고 반문하시겠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주택을 구입했고, 자기책임하에 투자했으므로 자기책임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데가 없습니다.

 

이제, 가진 자들이 신자유주의 이념을 왜 그토록 강력하게 주장하는지, 그리고 그 이념이 시장경제에서 어떤 방식으로 먹히는지, 그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왜 악마의 맷돌을 계속 돌리고 싶어하는지 이해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국제사회로 확대하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다른 나라를 계속 지배하려면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라 악마의 맷돌을 계속 돌리면서 가난한 나라의 주머니를 털어야겠지요. 그게 바로 WTO, FTA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이념을 비판하고 있는 장하준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와 『나쁜 사마리아인』 등과 같은 자신의 책에서 세계는 결코 평평하지 않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번 금융위기가 회복되고 나면, 최대의 손실을 볼 나라는 어디이고, 최대의 혜택을 입을 나라는 어디일까요? 국제적으로 보면, 손실을 입을 나라는 역시 가난한 나라들이고, 혜택을 볼 나라는 미국이라는 것에 경제학자들은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국제경제적으로 보면, 이번 금융위기에서 미국은 손해 볼 것이 거의 없습니다. 세계무역의 기초와 금융결제수단은 모두 미국이 발행하는 달러(US$)이기 때문입니. 미국 입장에서는 지금 세계경제라는 바둑판에서 꽃놀이 패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왜 그런지는 나중에 포스팅하겠습니다. 우선 급한 것부터 글을 올리겠습니다. 써야 할 것은 많고 시간은 늘 부족하고…)

 

부유층과 강대국은 악마의 맷돌을 계속 돌림으로써 서민들과 가난한 나라로부터 돈을 빨아내는 것으로 끝났을까요? 만약 돈만의 문제였다면, 그것은 참을 수 있습니다. 다시 벌면 되니까요. 그러나 이것은 돈만의 이슈가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럼, 어떤 문제가 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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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자본주의에 대한 입장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자본주의를 전복시켜야 한다고 급진적으로 생각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공산진영이 붕괴되면서 자본주의적 이상이 실현되어 역사의 종말이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수도 없으며, 오늘날 인류의 경제활동양태를 자본주의의 완성된 모습으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적절한 수준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히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적절이란 그 사회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몰상식한 수준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어떤 형태로든지 반드시 적절히 통제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도 운용형태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식 자본주의, 프랑스식 자본주의, 독일식 자본주의, 중국식 자본주의, 일본식 자본주의, 북구식 자본주의 등등….

     

    그러나, 크게 보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사익을 거의 무제한으로 추구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성장 발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식 자본주의입니다. 그것은 너무 지나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므로 어느 정도는 규제함으로써 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소위 독일식 자본주의입니다. 무제한의 사익추구를 허용하는 방식을 신자유주의적(neoliberal)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사익추구는 사회적 맥락에서 규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질서자유주의적(Ordoliberal) 자본주의라고 합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무제한적 사익(私益)추구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질서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질서자유주의는 주로 독일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주창되었습니다. 전후에는 독일 경제발전 모델로 적용되어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독일의 경제적 질서를 만드는 데 힘썼던 사람들은 단순히 학자들만의 공헌은 아니었습니다. 학자들의 사상을 경제적 현실에 절묘하게 응용했던 정치가들의 식견도 한 몫을 했습니다.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 초대 수상, 에어하르트(Ludwig Erhard, 1897~1977) 경제장관 등은 소위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 모델을 실천함으로써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전후 독일은 두 가지 점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인물도 고갈되었습니다. 유능한 인재들은 대부분 나치에 가담해서 전쟁범죄자로 낙인이 찍힌 상태였기 때문에, 국가경영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인재고갈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괴로운 것은 국내외적으로 비난하는 도덕성 문제였습니다. 인적 자원의 결핍과 도덕적 낭패감이라는 이중적 고통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모델을 적용함으로써 전후 20여 년 만에 두 가지 이슈를 깔끔하게 해결해냈습니다.

     

    유럽인들은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르면서, 인간의 이기심은 무한하지만, 그것을 제약해야 할 인간의 도덕성은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회가 그런 취약한 기반 위에 형성된다면, 어떤 비극이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반성이 일었습니다. 실존주의와 탈근대적(post-modern) 사상들이 근대문명의 이성적 합리화 과정에 대한 반성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그렇게 신뢰할만한 것이 아님을 알았던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합리적 행동보다 사회적 공헌과 인간적 연합(solidarity),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국가운영정책을 세워 실천해왔습니다.

     

    유럽의 여러 대륙국가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과 북구의 여러 나라들은 그 나름대로의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조금씩 변형된 질서자유주의를 경제정책으로 실천해왔습니다. 어떤 나라는 성과가 좋았고, 어떤 나라는 성과가 덜 좋았던 차이가 있긴 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험한 것은, 이런 나라들이 세월이 흐를수록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잘 버텼는데, 워낙 미국의 영향력이 강력해지니까, 버티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철저하리만큼 신자유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추종하는 신자유주의란,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기는 행위는, 타인을 명시적으로 해코지하지 않는 한, 무제한 허용되어야 한다는 이념입니다. 오히려 욕망을 넘어선 탐욕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깁니다. 미국인에게는 사회적 연대(solidarity)보다는 개인간의 계약이 더 우선하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사고가 팽배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미국이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자유로운 사익추구와 그것을 위한 기회의 평등을 지상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런 믿음은 우리를 배신했습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가 남긴 교훈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금융시장이 붕괴되었다는 점

    둘째, 중산층이 급격히 줄어들고 양극화 되고 있다는 점

    셋째, 심각한 수준의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점

     

    이들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차차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자본주의 자체가 엄청난 폐해를 가져올 것으로 예견하고 경고했던 수많은 사상가들 중에서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의 견해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자본주의를 가장 강도 높게 비판했던 사람으로 칼 마르크스가 핵심이지만, 칼 폴라니의 견해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이었던 폴라니는 미국에서 1944, 그러니까 2차 대전 중에 심혈을 기울인 자신의 책 『거대한 변환』(Great Transformation, 박현수 옮김, 민음사 1991))을 발표합니다. 문장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지만, 귀중한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핵심내용은, 결코 상품화하여 거래할 수 없는 노동, 토지, 화폐를 시장에서 자유로운 거래를 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시장메커니즘은 결국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로 변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악마의 맷돌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인간이 상품화되어 거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노동시장에다 상품화하여 팔아야 먹고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토지는, 현재의 모든 인류와 앞으로 올 인류에게 귀속되는 것이어서 결코 상품화되어 거래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토지 또한 시장에서 자유로이 거래되고 투기의 대상이 됩니다. 화폐는 단순한 교환 또는 지불의 수단이어야 하는데, 이것을 상품화함으로써 금융시장에서 돈 놓고 돈 먹는잘못된 거래들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간은, 시장만능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제도를 통해 자기 자신과 자연을 악마의 맷돌속으로 집어 던지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특히 미국인들은 이런 일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해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라고 가르쳤습니다. 따르지 않는 경우에는 국제 금융기구를 통해 거의 강압적으로 밀어붙였습니다. (한국의 IMF사태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오늘날 인류는 악마의 맷돌에 갈려 온 몸과 정신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정신 속에 아주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이 어쩌다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하게 되었는지를 이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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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