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Competence) 중심의 선발


지능지수가 높은 학생이 일반적으로 학교성적이 높다는 오래된 신화가 있다.(강정자 외, 1960; 김미경 외, 1988) 하지만, 학업성적표 또는 학업성취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졸업 후의 업무성과와 인생의 장기적인 성공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1970년대부터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맥클레란드(David McClelland) 교수는 지능보다는 역량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McClelland, 1973) 당시 미국의 국무부 초급외교관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통해 지능과 역량의 차이가 명확히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연구의 배경과 핵심적인 결론은 이렇다. 적성검사 결과와 역사, 정치, 경제 등에 관한 기초지식 검사 결과를 기초로 채용된 초급외교관들이 주재국에 배치된 후 그들의 성과가 기대했던 것보다 낮게 나타나자 국무부는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맥클렐란드 교수에게 연구를 의뢰했다. 그의 연구를 통해 업무성과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중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적성이나 학교성적보다는 다음과 같은 정의적 특성, 즉 역량(competence)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Spencer & Spencer, 1998)

 

· 다른 문화권에서의 대인감수성(Cross-cultural interpersonal sensitivity)

· 타인에 대한 긍정적 기대(Positive expectations of others)

· 정치적 네크워크에 대한 학습속도(Speed in learning political networks)

 

이러한 역량요소들은 학교성적이나 적성과는 분명 다른 정의적 특성을 드러낸 것이다. 높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내는 외교관은 이문화권 사람들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사회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해 신뢰하고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라도 타인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잃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역학관계 또는 이해관계를 신속히 파악하여 처리하거나 중대한 사안일 경우 상사에게 보고하는 등의 관계형성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장기적으로 높은 성과를 창출하거나 사회적 성취를 이룩하는 특성을 갖는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 인지적 능력으로 대표되는 학교성적이나 적성검사 결과보다는 업무의 특성에 부합하는 역량요소를 보유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예측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역량(Competence)의 정의

 

역량은 스펜서의 정의대로 “(특정한 상황이나 직무에서) 준거에 따라 효과적이고 우수한 성과창출의 원인이 되는 개인의 내적 특성(underlying characteristics causally related to criterion-referenced effective and/or superior performance)이라고 말할 수 있다.(Spencer & Spencer, 1998, p. 9)

 

여기서 “개인의 내적 특성”이란 다양한 상황에서 개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개인적 성격의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측면을 말한다. 또한 “원인이 되는”은 역량이 행동이나 성과의 원인이며, 따라서 행동과 성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끝으로 “준거에 따라”는 역량이 어떤 사람의 우수성이나 무능력을 구체적인 준거나 기준에 따라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기업경영에서 말하는 준거란 기업의 성과창출과 관련된 성과목표의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영업사원의 매출액, 연구자의 연구업적 등을 말한다. 학교 교육에서의 준거란, 계량화되긴 어렵겠지만, 전문성의 깊이와 인격적 성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량 정의의 활용

 

기업사회에서의 인재선발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러한 역량개념이 과연 고등교육기관의 학생선발에도 적용할 수 있느냐, 즉 성적 이외의 학생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내적 속성(underlying characteristics)를 변별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중등교육 현실은 오로지 시험성적을 향상시키는 것만을 위해 규격화되고 획일화된 교육환경 속에서, 학생 개개인의 경험의 폭과 역량발휘의 정도를 변별할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의문을 명확히 이해하고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한양대학교 재학 중인 1학년 학생 중에서 4명을 선정하여 모의인터뷰를 실시했다. 그룹별 분류를 보면, 상위그룹과 보통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2, 과학고와 일반고 각각 2명씩, 남녀 각각 2명씩이었다.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진행되는 개별인터뷰는 역량중심의 면접(Competency-based Interview, CBI)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네 학생 모두 공부하는 목적은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었으나, 그 동기와 가치 그리고 내적 속성은 매우 달랐다.

 

어떤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다른 데 있지만 부모의 끈질긴 회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부하고, 다른 학생은 수학문제풀이가 좋아서 공부를 계속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자신은 평생토록 수학문제만 풀면서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안의 경제적 형편을 돕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공부하는 학생도 있었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다니던 과학고등학교를 그만 두어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여학생은 급기야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외형적으로 획일화된 교육과정이고 규격화된 교육환경이었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놀라운 다양성이 숨어 있었다. 그들의 내적 경험과 사유의 다양성은 곧 역량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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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역량개념에 대한 약간의 논의>는 이미 앞에서 했습니다. 이어서 논의를 계속하겠습니다. 우선 역량이 조직운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 그림을 보면 "역량론" "성과론"을 지원해주는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전론", "전략론", "조직론" "성과론"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지만, "역량론" "인사론" "성과론"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High Performance System에서 역량론이 차지하는 위상


현재 우리나라에서 떠도는 역량개념은 인간의 역량을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관리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어떤 틀에 넣어서 규격화하여, 규격에 어긋나는 것을 제거하거나 규격에 맞도록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직장생활하면서 흔히 듣는 말 중에, "상사가 부하관리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하의 행동 하나하나를 상사가 일일이 직접 통제한다는 말인데, 그런 상사 밑에 있는 부하들은 참 힘든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인간의 재능(talent)을 그런 식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요?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자연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관리는 기본적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 조직, 실행, 통제의 사이클을 반복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서양문명은 자연에 대한 관리권한을 신으로부터 위임 받았다는 믿음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과학은 이런 사상에 의해 두려움 없이 발전해 왔습니다. 인간이 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관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신의 영역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의한 관리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관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형성합니다. 주인은 노예의 노동력을 최대한 끌어내려 할 것이고, 노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인의 눈을 속이려 할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관리하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관리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자연은 저항하지 못하지만, 인간은 마음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인간을 관리할 수 있다는 사상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리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뿐 아니라,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관리하지 못합니다. 아니, 관리할 수 없습니다.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자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라납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식들이 자신의 재능(talent)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믿어주는 것뿐입니다.

 

하물며, 상사가 부하들을 관리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관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까요? 자기 자식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말이죠. 자본주의적 이념이 인류의 생활사에 파고들면서부터, 자본을 위해 모든 것을 대상화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만만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20세기 초엽에만 해도 미국에서는 유치원에 들어가야 할 아이들까지 하루 종일 노동판에 끌어다 일을 시켰으니까요. 자유방임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자유방임은 공산주의만큼이나 위험한 사상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바로 자유방임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기득권층은 이 논리로 무장하여 사회적 약자를 관리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약자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는커녕 강자들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인간사회에는 누구나 타고난 재능(talent)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강자들의 욕망이 탐욕으로 흐르지 않도록 철저한 개입을 필요로 합니다. 이때 누가 누구의 권한으로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구성원들간에 투명성의 덕목이 실현되도록 합의한다면 어떤 형식이든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이런 정도의 기본 전제를 이해하고 역량에 대해 좀더 실무적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기업은 높은 성과를 내야 하고, 이익을 창출해야 합니다. 기업에 이익이 없다면, 인간에게 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반복하지만, 물이 없으면 인간은 오래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기업도 이익이 없다면 오래가지 못하고 도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물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기업에 이익은 절대로 필요하지만, 물만으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듯이 이익만으로 기업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것이 요구됩니다. 그게 뭘까요?

 

조직구성원들의 재능을 파악해서 그 재능을 썩히지 않고 무한정으로 뽑아 쓰는 것입니다. 인간의 재능은 아무리 써도 닳지 않습니다. 아무리 퍼 올려도 결코 마르지 않습니다. 그런 재능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직구성원들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개념화한 것이 바로 역량(competency)입니다. 조직은 인재를 필요로 합니다. 이때, 조직이 각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것은 역량입니다. 역량은 지식(knowledge), 기술(skill), 태도(attitude)가 뭉쳐진 덩어리 개념입니다. 평범한 성과를 내는 사람(average performer)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high performer)이 지닌 차별적 속성(differential characteristics)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량개념의 이해

 

그래서 역량은 잘 관찰되지도 않고 잘 훈련되지도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조직에서 채용하거나 이동 배치할 때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직무에 부적합한 사람을 채용하면 많은 비용을 들여 교육훈련을 시켜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잘 선발된 인원이 조직에 기여하는 성과는 선발에 투자한 비용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량과 관련하여 내가 늘 드는 비유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람쥐가 필요한 직무인데, 이력서가 화려한 코끼리를 뽑아 높고 훈련을 잘 시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코끼리는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다람쥐처럼 나무를 잘 탈 수 없습니다. 거꾸로 코끼리가 필요한 자리인데, 다람쥐를 뽑아서 훈련시키면 코끼리처럼 힘을 쓸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합니다. 나중에는 퇴출시킬 수도 없고, 유지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합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에 너무 의존하면 이런 상황이 발생합니다.

 

내가 어느 분의 소개로 미국 유수대학 MBA출신을 채용하기 위해 면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성취지향성에 약간의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워낙 아는 분의 강력한 소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맡겼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해서 얼마 가지 않아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크게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지위에 사람을 선발하려면, 역시 역량개념에 따른 선발과정을 거치도록 해야 합니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전체적인 시스템이 단순한 이미지에 의해 선발되기 보다는, 후보들이 발휘한 역량이 검증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 정치시스템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역량검증이 철저하면서도 쉽도록 되었습니다. 콘라트 아데나워,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게하르트 슈뢰더,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이르기까지 전후 독일 수상들의 면면을 보면, 한결같이 위대한 인물을 뽑았습니다. 독일국민들이 잘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단순한 상식, 즉 지위에 적합한 역량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기업과 같은 단위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장 중시해야 할 역량개념을 무시한 채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앉히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후회합니다. "제기랄, 잘못 뽑은 거 아냐?"

역량개념과 빙산모형

역량을 설명할 때, 흔히 이용되는 것이 빙산모형입니다. 역량이란 수면 아래 있기 때문에 관찰이 쉽지 않지만, 일반적인 능력같은 것은 몇 가지 테스트를 통해서 쉽게 검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정체성, 가치와 신념 등은 쉽게 관찰되지 않습니다.

 

역량을 설명하는 빙산모형


역량의 문제는 깊이 따져보면, 가치와 신념의 문제를 넘어 정체성과 영혼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역량은 단순한 지식이나 스킬의 문제를 훨씬 뛰어 넘는 인간의 내적 속성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량을 단순한 지식과 스킬의 차원과 행동패턴의 수준에서 파악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어느 금융기관에서 역량과 관련해 자문의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관은 몇 년 전에 어떤 외국계 인사컨설팅회사로부터 역량관련 컨설팅을 받았습니다. 역량모델과 역량사전을 만들어서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보관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고 활용하려고 만들어 놓고는 담당부서의 서류철에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역량모델에는 35개의 역량요소로 구분해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역량사전에 등재된 역량요소는 150여 개나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문서관리역량(Documentation Management Competency)이라는 요소도 있었습니다! 세상에! 

미국식 경영학은 인간의 정신을 행동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문서를 체계적으로 잘 관리하는 행동특성을 문서관리 역량으로 표현했습니다. 미국식 경영학의 폐해가 여기에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많은 컨설턴트들이 역량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조차 헷갈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회사에는 역량에 대한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정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량은 행동이 아니며, 행동패턴이 역량을 표현하는 것도 아닙니다.

 

역량이란 단순한 지식이나 스킬 개념이 아니며, 그것을 포괄하는 더 깊은 가치와 신념, 정체성과 영혼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성취지향성(Achievement Orientation, ACH)정직성(Integrity, ING), 자신감(Self-Confidence, SCF)대인영향력(Impact & Influence, IMP) 등과 같은 직무적합성을 드러내는 개인의 내적 속성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개별적인 역량요소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몰라도 됩니다.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나는 이런 역량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개인의 독특한 행동패턴을 형성하기 때문에 역량을 마음의 프로그램(mind program)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여기서 행동패턴이 역량이 아님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합니다. 행동패턴을 통해 역량요소를 유추할 수는 있지만, 행동패턴은 그냥 빙산 위에 드러난 행동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의 프로그램인 역량은 한마디로 세 살 적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세 살 적 버릇이 곧 역량입니다. 잘 바뀌지 않고, 훈련을 한다 해도 아주 오랜 시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 살 적 버릇(역량 또는 마음의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는 것이 바로 역량개념의 핵심입니다.

 

역량의 문제는 워낙 뜨거운 이슈이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항이기 때문에 자세히 별도로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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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중앙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났습니다. 어느 현직 교사가 교권이 무너진 초등학교 교실의 실상을 폭로했습니다. 그것이 신문에 기사화 되었습니다. 나는 신문기사를 읽고 그런 현상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권이 무너진 초등학교 교실의 실상을 폭로하며 '체벌 허용'을 주장한 현직 교사의 책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 서래초 영어교과 전담교사 김영화(55)씨가 쓴  『지금 6학년 교실에서는...』이다. 야단치는 교사에게 아이들이 욕하고 대들면서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는 현실이 소설형식으로 묘사돼 있다.

 

보도가 나간 뒤 기사와 관련된 e-메일과 전화, 인터넷 댓글 등이 쏟아졌다. “잘못하면 때려야 한다” “교권은 매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는 등 체벌을 둘러싼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초등교사 경력 34년째라는 정모씨는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와기사 내용이 바로 내 얘기라면서정말 울고 싶고 하루빨리 학교를 떠나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또 이달 초 2년간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중학교 2학년인 딸과 함께 귀국했다는 이은주씨도 메일을 보냈다. “며칠 학교에 다녀 보더니 아이가 수업시간에 떠들고 자는 학생이 너무 많아 놀랐다고 말한다. 야단친 교사 뒤에서 교사가 들을 만한 큰 소리로 욕을 계속하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안에서 생활 태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 제일 좋은 방법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Back to the basic! (기본으로 돌아가라!)

교육은 학생들의 태도와 행동을 바람직하게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어떤 경우에도 폭력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교육의 목적이 옳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체벌을 허용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주장은 오죽 했으면 그러겠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정도로 한국의 교육상황은 참담한 형편입니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체벌을 허용해야 한다면 체벌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이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벌로 다스려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체벌은 비인격적이고 수치심을 유발하며 정신의학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교육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학교와 사회의 경쟁지향적인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경쟁적인 상태가 되면, 이기심이 발동하여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줄어듭니다. 공감능력이 줄어들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행동을 못할 뿐 아니라 전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터득하여, 자연스럽게 공격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래서 협동하며 함께 일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합니다.

 

학생들의 공격성은 경쟁지향적 교육행정과 사회풍토가 만들어낸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그래서 성적에 따라 일류, 이류, 삼류 인간으로 대접 받는 상황을 만들어 냈습니다. 시험성적으로 경쟁심을 유발하게 하면, 시험성적 이외의 가치에 대해서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학교성적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직성(integrity)과 같은 도덕적 가치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며, 그 위에 사고력(thinking power)과 실행력(execution power)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당연한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런 기본을 잃어버렸습니다. 교사 한두 명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선진교육을 실행한다고 인정되는 국가에서 시험성적순으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서열을 매기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면 타고난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교육의 목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교육현장의 모든 초점은 시험성적이 아니라 독특하게 타고난 각자의 재능입니다. 그래서 교육은 항상 협력과 상생의 정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에게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면서 교직사회에도 경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행태는 교육의 기본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교육행정입니다. 교육의 기본을 무시한 처사입니다.

 

교사들에게 돈으로 차별화함으로써 교육행위의 동기부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교육행정에서 나는 매춘의 냄새를 느낍니다. 나에게 이것을 해주면 나는 너에게 저것을 주겠다는, 마치 매춘부에게나 강요하는 듯한 정책으로 피폐해진 교육현장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어떤 상황에 돈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개입하면 그 상황의 본질이 왜곡됩니다. 그러므로 교육에는 어떤 경우에도 돈이 개입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사들을 돈으로 경쟁시킨다고 생각해 보세요. 좋은 교육자료와 교수방법을 다른 교사들과 공유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돈으로 교사들의 교육행위를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치졸하고도 비효과적인 발상입니다. 교사들이 학생지도를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할 일이 서로 경쟁해야 할 일보다 더 많고 더 중요하고 더 결정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훌륭한 교사들이 발휘하고 있는 역량을 추출하여 역량모형을 만들고 그것에 따라 교사들을 선발하여 배치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면, 교육계는 변화될 것입니다. 훌륭한 교사들이 많은데 어찌 교육계가 피폐해지겠습니까? 반복하거니와 돈으로 사람을 바꾸려고 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돈이 개입되면 돈 이외의 가치는 모두 사장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이념이 인류에게 가르쳐준 교훈입니다.

훌륭한 교사를 선발하는 것도 시험성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성과급을 내걸고 우수교사를 뽑으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훌륭한 교사와 그렇지 못한 교사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학생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피드백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것을 역량의 전문용어로는 타인육성(Developing Others)이라고 합니다.

글쓰기에 곤란을 겪고 있는 학생에 대한 태도와 피드백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 지 보겠습니다. 그 학생의 숙제는 3 페이지를 채워야 했지만, 겨우 한 문단만을, 그것도 기한을 넘겨 늦게 제출했습니다. 훌륭한 교사와 그렇지 못한 교사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출된 것은 겨우 한 문단이었어요. 하지만 문장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저는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애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어요. "참 짧구나. 하지만 좋은 문장이야." 그 애가 써온 문장은 통일성이 있고, 앞뒤가 잘 맞는 글이었거든요. 문법이나 문형의 문제도 없었구요.


아이들을 무조건 칭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훌륭한 교사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잠재력과 숨겨진 재능을 찾아내어 발산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여기에는 교사와 학생들간의 <연결되어 있는 마음(connectedness)>과 교사의 <깨어 있는 마음(mindfulness)>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결된 마음상태는 아이들에게 매우 편안하고 이완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기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깨어있는 마음상태가 중요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관적인 기대를 표시하며, 자신의 불충분한 피드백 노력을 변명하는 교사도 있습니다.

그 애는 구제 불능이었죠. 그렇게 형편없는 애는 처음 봤어요. 문제해결능력이 전혀 없는, 산만하기 짝이 없는 애였어요. 번번이 저를 속이려고만 들었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같은 수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런 극명한 차이를 시험성적이나 성과급의 차이로 변별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재의 선발에는 <역량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훌륭한 교사를 선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근무하는 조건을 잘 정비해야 합니다. 학생과 교사의 수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게 한다든지, 교사에게 적정한 자율성을 교권으로 부여한다든지, 행정 잡무로부터 해방시켜 준다든지, 교육행정을 보다 효율화한다든지 하는 교육환경의 시스템적 정비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변혁적 조치들이 우리나라 공교육을 살릴 것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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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역량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현상입니다. 역량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부패와 부조리가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량개념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역량을 단순히 바람직한 행동패턴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을 상업화된 역량개념(commercialized competency concept)이라고 부릅니다. 역량개념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 없이 컨설턴트를 자처하는 몇몇 상인들이 기존의 지식에다 컴피턴시라는 그럴 듯한 포장지를 입혀서 정보가 거의 없는 고객들에게 마구 팔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객들은 뭐가뭔지 구별해낼 재간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적당히 넘어가고 맙니다. 내가 아는 한,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량과 관련된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효과가 없는 처방약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량이라는 약이 계속 팔리는 이유는 고객들이 역량이라는 약을 먹지 않으면 혹시 시대에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고, 치열한 인재전쟁 시대에 인사담당자들이 뭔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역량이라는 게 있다니까 새로운 처방처럼 보여서 깊은 공부도 없이 덥썩덥썩 받아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 개발된 개념들이 우리나라에 수입될 때, 약간 비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 개념이 생성된 문화적 배경 내지 컨텍스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그것으로 당장 효과를 보려는 지나친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적나라한 예가 바로 기독교 신앙입니다. 서구적인 입장에서의 기독교 신앙과 한국적 기독교 신앙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가 한국에 전래되면서 한반도의 토착신앙인 샤마니즘에 영향을 받아 비틀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의 기독교 신앙이 기복적이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의 형식은 서양의 것과 거의 비슷하지만, 예배하는 마음은 철저히 기복적입니다. 보이는 것을 흉내냄으로써 즉각적인 효험을 보려고 할 뿐,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그 근본을 배우려는 인내심과 고통은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역량의 개념이 비틀리게 된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시중에 유포되고 있는 역량의 개념들은 기독교 예배형식과 마찬가지로 역량개념, 역량모델, 역량평가, 역량관리 등과 같은 용어의 형식만 비슷할 뿐, 실제로 그 내용은 매우 다릅니다.

그렇다면 역량이란 무엇인가? 나아가 역량은 행동(behavior) 또는 행위(action)와는 어떻게 다른가? 기존에 쓰던 용어인 능력(ability)이나 지능(I.Q)와는 또 어떻게 다른가?

이런 의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어야 역량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이해의 실마리가 풀립니다. 그래서 우선 역량이란 용어인 원어인 competency 또는 competence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컴피트한다(compete)"는 동사는 서로 경쟁한다는 것이고, "컴피턴트하다(competent)"는 형용사는 어떤 상황에 적합하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두 사람 이상이 서로 경쟁하여 어떤 상황에 누가 더 적합한지를 나타낸다는 의미입니다. 행동이나 능력이라는 말에는 서로 경쟁하여 어느 하나가 가장 잘 부합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지만, 역량이란 용어는 특정한 직무 또는 직위에 부합하려는 특성(characteristics)과 관련된 개념이다. 

따라서 역량은 행동이 아니며 행동패턴은 더더욱 아닙니다. 역량이 어떤 행동이나 행동패턴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같은 역량요소라 하더라도 특정한 행동이나 행동패턴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일관성을 갖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리더십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이 동일한 행동이나 행동패턴을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명백합니다. 링컨, 간디, 알렉산더, 징기스칸, 이순신은 리더십 역량이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 행동과 행동패턴은 일관성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달랐습니다. 행동이나 행동패턴이 같다고 해서 같은 역량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역량을 개발하고자 할 때 바람직한 행동패턴을 훈련시켜서 될 일이 아닙니다.

또한 역량은 단순히 능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능력이라는 용어만큼 그 활용범위가 넓은 것이 없습니다. 능력은 그야말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에너지의 총칭을 말합니다. 지극히 통속적이고 일반적인 용어입니다. 이런 용어로는 특정한 직무에 부합하는 속성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역량, 컴피턴시(competency)라는 용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 이제 역량이란 무엇인지 설명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역량이란 한마디로 "우수한 성과를 창출하게 하는 내적 속성"을 말합니다. 이러한 정의에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조건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첫째, 역량은 우수한 성과와 관련되어야 합니다.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면 평범한 사람의 평균적인 성과보다 차별적으로 더 높은 성과를 창출해야 합니다.

둘째, 어떤 사람이 평범한 성과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내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역량은 그 우수한 성과를 창출하게 하는 원인을 가리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역량은 외부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에 숨어있는 속성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역량개념을 현실에서 잘 활용하려면, 인간의 행동이 유발되는 인지적 과정(cognitive process)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개념적 틀(conceptual framework)과 과학적 근거(scientific evidence)가 필요합니다.

과학적 근거는 특히 영미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증적 분석에 근거한 수많은 주장들이 영미학계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스펜서의 연구결과가 그 대표적인 저작입니다(Lyle M. Spencer/Signe M. Spencer, Competence at Work, John Wiley 1993). 나는 항상 실증적 분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념적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증분석이 지지해 주면 더욱 좋겠지만, 실증분석이 지지한다고 해서 반드시 옳다고 볼 수도 없는 현상은 우리 인간사에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개념적 틀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개념적 틀도 없이 아무렇게나 역량모델을 만들고 역량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개념적 틀이 중요한 것은 인간의 행동이 유발되는 과정을 선명히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이것이 인간의 상상력과 사고력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것을 통해서 역량의 배치구조를 이해하여 역량개발을 위해 더욱 노력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역량요소의 배치구조가 곧 역량모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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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적자원관리론(Human Resource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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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십과 조직풍토

-       리더십과 역량개념

 

그 동안 했던 강의와 현재 하고 있는 강의제목들을 써놓고 보니까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일관된 주제는 인간과 조직의 문제입니다. 인간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인간들의 협동체인 조직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조직의 존재목적은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조직은 그 구성원들을 어떻게 구속하면서 자신의 존재목적을 실현해 가는가? 인간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영혼의 능력을 어떤 방식으로 발휘하는가? 이러한 의문들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개의 경영개념들에 의해 구체화됩니다.

 

-       비전/목적/방향

-       전략

-       조직

-       성과

-       역량

-       인사

 

나의 강의는 항상 이러한 개념들의 조화로운 결합을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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