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요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7.01 경영이란 무엇인가(18)_역량은 행동을 일으킨다 (11)
  2. 2009.06.30 경영이란 무엇인가(16)_역량(competency) (3)

앞에서 역량을 단순하게 <사고력><실행력>이라는 용어로 축약해서 표현했습니다. 실은 모든 인간은 외부의 정보를 마음의 필터를 통해서 받아들이는데, 이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필터링(filtering)하느냐에 의해 사고력과 실행력의 특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외부의 정보는 사고력과 실행력이라는 마음의 프로그램(mind program)에 의해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의 행동패턴을 만들어냅니다.

 

행동을 일으키는 인지적 과정(cognitive process)

그림에서 보듯이, 외부의 정보가 사고력(mind program)이라는 지각필터(perception filter)를 거쳐서 행동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의 엔진(behavioral engine)을 자극합니다. 엔진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100마력쯤 되고, 어떤 사람은 10마력 정도 됩니다. 10마력의 엔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훈련을 시키고 화려하게 포장해도 그 사람은 10마력 정도의 힘밖에는 발휘하지 못합니다. 물론 훈련을 통해 조금은 좋아질 수 있겠지만, 100마력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우선, 정보를 필터링하는 사고력이라는 역량군을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분석적인 사고력(analytical thinking, AT)도 있고, 개념적인 사고력(conceptual thinking, CT)도 있습니다. 둘 다 사고력이지만, 서로 호환이 어려운 사고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분석은 잘 하지만, 사태의 맥락(컨텍스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전문용어(?)로는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죠. 또 어떤 사람은 사태의 맥락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문제의 원인분석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 쓰는 말로는 삽질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긴 둘 다 없는 사람도 있고, 둘 다 출중한 사고력으로 무장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고력은 이처럼 분석적인 것과 개념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래를 어느 정도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급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코앞의 일보다는 먼 장래의 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을 미래지향성(forward looking, FL)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직무와 관련하여 일년 후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를 미리 예상하여 준비하는 사람과 지금 당장 발생한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한 사람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먼 미래를 예상해서 지금 준비해야 하며, 낮은 지위일수록 가까운 장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실무를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데, 특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당장의 눈앞에 떨어진 자질구레한 일들에 신경 쓰는 것을 보면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조직의 장래를 생각해서 지금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를 논의해야 할 자리에서, 회의실에 의자 삐뚤어진 것을 보고 실무자들에게 야단치는, 그래서 실무자들의 발언의욕을 꺾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말단실무자인데도 밤낮 회사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질구레한 자신의 일은 잘하지 못하면서 회의 때는 항상 회사전략에 대해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죠.

 

그렇지만, 아무리 먼 미래를 보라고 가르쳐도, 눈앞의 일에만 급급한 인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은 윗자리에 올라가도 여전히 눈앞에서 벌어지는 당장의 일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현대사에서 가장 격정적이었던 시대를 이끈 노태우 대통령은, 같은 시대에 독일통일을 이끈 헬무트 콜(Helmut Kohl, 1930~) 수상과 비교할 때, 비전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민주화와 국가의 장기적 발전의 초석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시기에, 우리는 노태우와 같은 지극히 근시안적인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가적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오늘날 독일 최초의 여성총리인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1954~)과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1961~)와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인 출신 대통령 이명박(1941~)은 역시 건설회사 사장 출신답게 눈앞에 보이는 토목공사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국가의 먼 장래를 내다보는 미래지향성은 국가지도자에게는 필수적인 역량요소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정말 하루하루가 소중한 역사적 전환점에서, 우리는 국민을 회사 종업원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치명적 실수를 또다시 저질렀습니다. 우리 국민에게 닥친 현대사의 안타까운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위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시안적인 인물이 윗자리에 앉게 되면 합리적인 인사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인간들이 충성의 목소리를 높여 승진합니다. 설탕에 개미 꾀듯이 아첨꾼들이 모여듭니다. 회사의 장래보다는 그들의 개인적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의사결정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집니다. 이런 회사는 조직문화가 피폐해져서 구성원들이 함께 일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아침에 출근하기 싫어지죠. 서로 경쟁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줄서기를 해야 하고, 때로는 각개전투를 벌이는 통에 조직은 점점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합니다. 기업은 활력을 잃어갑니다. 그럴수록 외부의 각종 경영기법들, 예를 들어 BSC, 식스 시그마와 같은 것을 도입해서 구성원들을 쪼면 회사가 좋아질 것으로 야단법석을 떱니다. 하지만, 근본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는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힘들고 고통스러워질 뿐이죠.

 

그러므로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사고력>이라는 <세 살 적 버릇>은 매우 중요합니다.


구체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역량요소들

그림에서 보듯이, 외부의 정보가 사고력(mind program)이라는 지각필터(perception filter)를 거쳐서 행동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성취지향성, 자신감, 정직성 등과 같은 역량요소를 자극합니다. 특히 성취지향성(achievement orientation, ACH)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어진 상황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조직이 요구하는 목표보다 더 높은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끈기 있게 추진하여 성과를 얻어내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문명국가를 건설한 국민과 그렇지 못한 국민들 간의 역량요소에 있어서의 의미 있는 차이는 성취지향성이 높으냐 낮으냐의 차이였음을 밝혔습니다. (David C. McClelland, The Achieving Society, D. Van Nostrand Company, Inc. 1961을 참조) 물론 이 역량요소가 성공의 전부를 설명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개인의 성공에 성취지향성이 중요한 요소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역량요소가 높은 편에 속합니다.

 

인간의 행동을 유발케 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다른 하나는 자신감(self-confidence, SCF)입니다. 자신감은 자신의 직무와 관련하여 자신의 생각과 결정에 대한 확신의 정도를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좌절할만한 상황에서도 일시적으로 좌절했더라도 즉시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능력을 자신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가끔 자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좌절에 빠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의 결여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가수 백지영은 연예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섹스스캔들에 휘말렸습니다. 한때 극도의 좌절에서 방황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곧바로 원래 자신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더 깊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타인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극복하면서 자신감을 더욱 쌓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좌절도 자신을 좌절시키지 않는 상태를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역량요소는 평균수준을 훨씬 넘습니다.

 

외부정보를 받아들여,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소 중에서 정직성(integrity, ING) 만큼 중요한 요소는 없습니다. 정직성의 문제가 우리 시대에는 매우 중요합니다. 윤리성 또는 성실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KAIST의 안철수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업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 정직성은 자신의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가치와 신념을 일관성 있게 지키고 따르고자 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최근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그를 보았습니다. 대담 내용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하고도 당연한 얘기였는데, 그것이 우리를 감동시켰습니다. 왜일까요? 그의 삶이 정직했기 때문입니다. 정직은 말과 행동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목전의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양심의 소리에 따라 의사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일관성 있게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가와 경영진을 믿을 수 없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기업의 광고선전을 보면 참 좋습니다. 마음이 따듯해지고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광고하는 대로 기업인들이 의사결정하고 행동한다면, 누가 기업인을 신뢰하지 않겠습니까? 기업인이 존경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떠들지만, 정작 기업인들은 안철수 교수와는 정반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존경은커녕 범법자처럼 인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역량요소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보다도 낮은 수준입니다. 그의 높은 성취지향성과 자신감이 정직성을 눌러버렸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의 도덕성은 더욱 힘을 잃게 됩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러 차례 말과 행동이 달랐습니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2009년 7월 1일 저녁 비정규직법에 관한 여야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그 동안 2년간 비정규직 지위에 있던 근로자는 오늘부터 법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되든지 아니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무기계약 근로자)로 자동 전환됩니다. 나도 처음에는, 2년간 비정규직으로 있던 사람은 정규직으로 전환되든지 아니면 해고되는 것으로 언론을 통해서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감쪽같이 속아넘어갈 정도로 교묘하게 사태를 왜곡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한 진실은 아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김상희 의원, 비정규직법과 대량해고 그 진실은?
신원철 교수, 해고대란 타령은 거짓말... 기자들아 법부터 읽어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부쩍 서민경제를 챙기면서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먹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공기업들이 비정규직 해고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세상에! 삽질예산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정규직 전환지원금으로 활용한다면, 비정규직법의 문제는 몇 년 내에 완전히 해소될 것입니다. 수백만명의 비정규직을 불안한 직업 상태로 방치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을 기업가들의 자본축적을 위한 노예상태로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아마 국민들이 비정규직법의 역사적 맥락과 법개정을 위한 이명박 정부의 행태를 조금이라도 파악했다면, 감히 서민경제를 챙긴다는 말이 얼마나 파렴치한 말인지를 이해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믿을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  참고로 아래의 관련된 글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2009/06/20 신자유주의 시장경제(11)_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2009/06/19 신자유주의 시장경제(10)_ 개신교 장로들에게 묻습니다
2009/06/19 존 러스킨_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내 경험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업가와 경영진의 대부분은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한 역량프로파일(competency profile)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취지향성과 자신감은 높은데 비해 정직성은 떨어지는 프로파일 말입니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지도층의 역량프로파일이 이렇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통계가 나옵니다.

 

청렴 지수: 180개국 중에서 40

환경지속가능성 지수: 146개국 중에서 122

남녀 불평등 지수: 130개국 중에서 108

국민의 행복 지수: 178개국 중에서 102

자살률: 세계 1위(10만 명당 26.1명)
(
주간조선, 우리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2009.6.29, 2061, 16~27쪽 참조)

 

대한민국은 전세계 230여개국 중에서 국내총생산 13, 수출입 11위의 경제대국입니다. 하지만, 삶의 질은 거의 꼴지를 면치 못하고 있고, 대부분의 국민은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여 적소에 배치하는 시스템적 구조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대부분 회사는 오너 기업가와 경영진 중심의 보상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로자 급여의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 이후에 월 스트리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도록 구체적으로 도와준 사람들이 미국계 경영컨설팅회사의 컨설턴트들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인재를 중시하고 사람중심의 경영을 한다고 떠벌립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어려워졌으니 복지후생지출을 줄이고 구조조정하겠다고 합니다.

 

특히 오늘날 비즈니스세계에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정직성은 복잡하고 어려운 수학문제가 아니라, 안철수 교수처럼 양심에 따른 매우 간단한 결정일 뿐입니다. 함께 일하는 종업원들을, 영혼이 있는 실존적 존재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안철수 교수는 주저 없이 그렇게 결정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존경을 받으며,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탐욕에 물든 기업가와 경영진은 이런 결정을 하기 어렵습니다.

 

행동을 구체적으로 일으키게 하는 역량들

 

외부의 정보가 행동의 원천을 자극하면, 조직, 직무, 타인과 관련된 역량요소를 활성화시킵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해서는 조직에 대한 헌신(organizational commitment, OC), 참여와 협조정신(teamwork, TW)을 끌어냅니다. 또는 부하들을 육성하려는 성향(developing others, DEV)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직무에 대해서는 전문성(expertise, EXP)을 발휘하려고 노력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정보를 수집(information seeking, INF)하고, 혹시 오류가 있는지를 철저하게 확인(concern for order, CO)합니다.

 

타인에 대해서도 자신의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설득력(impact and influence, IMP)을 발휘하고, 고객에 대한 서비스정신(customer service orientation, CSO)을 가다듬게 됩니다. 업무를 위해 타인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relationship building, RB)하려고 노력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역량요소들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전부를 표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직무의 차별적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역량요소를 말하는 것뿐입니다. 문제는 이것으로 높은 성과의 모든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과는 다양한 요소들의 종합적인 상호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성과를 단순히 한 개인의 역량으로만 돌리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예를 들어 조직의 성과를 지도자의 위대함으로 귀속시키는 사례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방식의 설명은 사실 아무런 의미도, 교훈도 끌어낼 수 없습니다. 높은 성과는 혼자서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개인의 역량요소들은 높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뿐입니다. 적합한 역량요소들이 잠재되어 있는 사람도 환경에 따라서는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직무가 요구하는 역량요소에 적절히 부합하는 인재(talent)를 선발하고, 그를 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소홀히 하면 국가든, 단위조직이든 쇠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재(talent)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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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역량개념에 대한 약간의 논의>는 이미 앞에서 했습니다. 이어서 논의를 계속하겠습니다. 우선 역량이 조직운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 그림을 보면 "역량론" "성과론"을 지원해주는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전론", "전략론", "조직론" "성과론"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지만, "역량론" "인사론" "성과론"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High Performance System에서 역량론이 차지하는 위상


현재 우리나라에서 떠도는 역량개념은 인간의 역량을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관리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어떤 틀에 넣어서 규격화하여, 규격에 어긋나는 것을 제거하거나 규격에 맞도록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직장생활하면서 흔히 듣는 말 중에, "상사가 부하관리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하의 행동 하나하나를 상사가 일일이 직접 통제한다는 말인데, 그런 상사 밑에 있는 부하들은 참 힘든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인간의 재능(talent)을 그런 식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요?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자연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관리는 기본적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 조직, 실행, 통제의 사이클을 반복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서양문명은 자연에 대한 관리권한을 신으로부터 위임 받았다는 믿음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과학은 이런 사상에 의해 두려움 없이 발전해 왔습니다. 인간이 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관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신의 영역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의한 관리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관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형성합니다. 주인은 노예의 노동력을 최대한 끌어내려 할 것이고, 노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인의 눈을 속이려 할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관리하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관리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자연은 저항하지 못하지만, 인간은 마음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인간을 관리할 수 있다는 사상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리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뿐 아니라,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관리하지 못합니다. 아니, 관리할 수 없습니다.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자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라납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식들이 자신의 재능(talent)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믿어주는 것뿐입니다.

 

하물며, 상사가 부하들을 관리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관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까요? 자기 자식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말이죠. 자본주의적 이념이 인류의 생활사에 파고들면서부터, 자본을 위해 모든 것을 대상화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만만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20세기 초엽에만 해도 미국에서는 유치원에 들어가야 할 아이들까지 하루 종일 노동판에 끌어다 일을 시켰으니까요. 자유방임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자유방임은 공산주의만큼이나 위험한 사상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바로 자유방임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기득권층은 이 논리로 무장하여 사회적 약자를 관리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약자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는커녕 강자들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인간사회에는 누구나 타고난 재능(talent)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강자들의 욕망이 탐욕으로 흐르지 않도록 철저한 개입을 필요로 합니다. 이때 누가 누구의 권한으로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구성원들간에 투명성의 덕목이 실현되도록 합의한다면 어떤 형식이든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이런 정도의 기본 전제를 이해하고 역량에 대해 좀더 실무적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기업은 높은 성과를 내야 하고, 이익을 창출해야 합니다. 기업에 이익이 없다면, 인간에게 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반복하지만, 물이 없으면 인간은 오래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기업도 이익이 없다면 오래가지 못하고 도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물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기업에 이익은 절대로 필요하지만, 물만으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듯이 이익만으로 기업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것이 요구됩니다. 그게 뭘까요?

 

조직구성원들의 재능을 파악해서 그 재능을 썩히지 않고 무한정으로 뽑아 쓰는 것입니다. 인간의 재능은 아무리 써도 닳지 않습니다. 아무리 퍼 올려도 결코 마르지 않습니다. 그런 재능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직구성원들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개념화한 것이 바로 역량(competency)입니다. 조직은 인재를 필요로 합니다. 이때, 조직이 각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것은 역량입니다. 역량은 지식(knowledge), 기술(skill), 태도(attitude)가 뭉쳐진 덩어리 개념입니다. 평범한 성과를 내는 사람(average performer)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high performer)이 지닌 차별적 속성(differential characteristics)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량개념의 이해

 

그래서 역량은 잘 관찰되지도 않고 잘 훈련되지도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조직에서 채용하거나 이동 배치할 때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직무에 부적합한 사람을 채용하면 많은 비용을 들여 교육훈련을 시켜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잘 선발된 인원이 조직에 기여하는 성과는 선발에 투자한 비용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량과 관련하여 내가 늘 드는 비유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람쥐가 필요한 직무인데, 이력서가 화려한 코끼리를 뽑아 높고 훈련을 잘 시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코끼리는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다람쥐처럼 나무를 잘 탈 수 없습니다. 거꾸로 코끼리가 필요한 자리인데, 다람쥐를 뽑아서 훈련시키면 코끼리처럼 힘을 쓸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합니다. 나중에는 퇴출시킬 수도 없고, 유지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합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에 너무 의존하면 이런 상황이 발생합니다.

 

내가 어느 분의 소개로 미국 유수대학 MBA출신을 채용하기 위해 면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성취지향성에 약간의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워낙 아는 분의 강력한 소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맡겼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해서 얼마 가지 않아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크게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지위에 사람을 선발하려면, 역시 역량개념에 따른 선발과정을 거치도록 해야 합니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전체적인 시스템이 단순한 이미지에 의해 선발되기 보다는, 후보들이 발휘한 역량이 검증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 정치시스템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역량검증이 철저하면서도 쉽도록 되었습니다. 콘라트 아데나워,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게하르트 슈뢰더,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이르기까지 전후 독일 수상들의 면면을 보면, 한결같이 위대한 인물을 뽑았습니다. 독일국민들이 잘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단순한 상식, 즉 지위에 적합한 역량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기업과 같은 단위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장 중시해야 할 역량개념을 무시한 채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앉히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후회합니다. "제기랄, 잘못 뽑은 거 아냐?"

역량개념과 빙산모형

역량을 설명할 때, 흔히 이용되는 것이 빙산모형입니다. 역량이란 수면 아래 있기 때문에 관찰이 쉽지 않지만, 일반적인 능력같은 것은 몇 가지 테스트를 통해서 쉽게 검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정체성, 가치와 신념 등은 쉽게 관찰되지 않습니다.

 

역량을 설명하는 빙산모형


역량의 문제는 깊이 따져보면, 가치와 신념의 문제를 넘어 정체성과 영혼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역량은 단순한 지식이나 스킬의 문제를 훨씬 뛰어 넘는 인간의 내적 속성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량을 단순한 지식과 스킬의 차원과 행동패턴의 수준에서 파악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어느 금융기관에서 역량과 관련해 자문의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관은 몇 년 전에 어떤 외국계 인사컨설팅회사로부터 역량관련 컨설팅을 받았습니다. 역량모델과 역량사전을 만들어서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보관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고 활용하려고 만들어 놓고는 담당부서의 서류철에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역량모델에는 35개의 역량요소로 구분해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역량사전에 등재된 역량요소는 150여 개나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문서관리역량(Documentation Management Competency)이라는 요소도 있었습니다! 세상에! 

미국식 경영학은 인간의 정신을 행동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문서를 체계적으로 잘 관리하는 행동특성을 문서관리 역량으로 표현했습니다. 미국식 경영학의 폐해가 여기에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많은 컨설턴트들이 역량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조차 헷갈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회사에는 역량에 대한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정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량은 행동이 아니며, 행동패턴이 역량을 표현하는 것도 아닙니다.

 

역량이란 단순한 지식이나 스킬 개념이 아니며, 그것을 포괄하는 더 깊은 가치와 신념, 정체성과 영혼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성취지향성(Achievement Orientation, ACH)정직성(Integrity, ING), 자신감(Self-Confidence, SCF)대인영향력(Impact & Influence, IMP) 등과 같은 직무적합성을 드러내는 개인의 내적 속성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개별적인 역량요소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몰라도 됩니다.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나는 이런 역량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개인의 독특한 행동패턴을 형성하기 때문에 역량을 마음의 프로그램(mind program)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여기서 행동패턴이 역량이 아님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합니다. 행동패턴을 통해 역량요소를 유추할 수는 있지만, 행동패턴은 그냥 빙산 위에 드러난 행동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의 프로그램인 역량은 한마디로 세 살 적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세 살 적 버릇이 곧 역량입니다. 잘 바뀌지 않고, 훈련을 한다 해도 아주 오랜 시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 살 적 버릇(역량 또는 마음의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는 것이 바로 역량개념의 핵심입니다.

 

역량의 문제는 워낙 뜨거운 이슈이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항이기 때문에 자세히 별도로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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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