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첫째, 비전/목적/방향이 없다는 점이고, 둘째 늘 바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이 바쁜 이유는 비전/목적/방향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은폐하기 위해서인데, 오늘은 두 번째 특징인 항상 바쁘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비전/목적/방향이 없는 사람은 매사를 전략으로 승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략이란 여러 프로젝트의 조합을 말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실행합니다. 가능하다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 프로젝트 중에 세간에 많이 알려진 것을 예로 들면, 대운하, 영어몰입교육, 특목고 확대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것 말고도 여러 잡다한 것들을 해야 하기 때문에 늘 바쁩니다. 현장을 챙겨야 하고, 매사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잘 돌아가는지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정치에서는 그 현장이라는 실체도 애매합니다. 정치에서 현장이란 국민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데나 현장이라는 데를 가서 눈에 띄는 대로 지시하고 명령합니다. 공단에 가면 전봇대를 빼야 한다, 아니다 옮겨야 한다는 둥, 기업에 가면 자전거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아니다 자전거 길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둥. 증권거래소에 가면 주가가 얼마까지 가야 한다는 둥, 심지어 회사이름까지 바꾸는 게 좋겠다 등의 지시와 명령을 끊임없이 쏟아냅니다. 내가 보기에는 김정일의 현장지도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수행원들 쭉 데리고 가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지시하고, 일부 충성파는 수첩 꺼내서 받아 적고, 폼 나는 장면은 사진 찍고, … 그리고 난 다음 사무관이 하기에도 쪼잔한 것들 몇 가지 지시합니다. 이런 얘기를 홍보담당자와 공보관은 열심히 받아 적어서 보도자료를 뿌립니다.

 

그래서 비전/목적/방향이 불분명한 사람은 늘 바쁩니다. 열심히 일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실무를 할 때,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기업에서도 높은 자리에서는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일이 진행됩니다. 이런 것을 요즘 말로 하면, “개념 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개열사)”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 생각 없이 바쁜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
이런 김정일식 현장지도가 내가 알기로는 박정희 군사정권시대의 브리핑문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 공무원들이 이런 방식에는 매우 익숙합니다. 그런데, 현장지도식 브리핑문화의 가장 큰 병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인다는 데 있습니다. 일상업무를 거의 포기하고 그 일에 매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내가 이 일을 해보니까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지만, 높으신 분들이 방문해서 얻는 효과라고는 사진 찍는 것 외에는 별로 없습니다. 국가운영은 한 두 사람이 명령하고 지시해서 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직자들이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운영시스템을 설계하여 잘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데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김영삼 정부시절에는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갈팡질팡하면서 비전을 잃었습니다. 요즘이 그 때와 거의 유사한 형국입니다. YS집권 후반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비전결핍을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커버하려고 했습니다. 일하면 일할수록 경제는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나라가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빠져들수록 밤샘 근무까지 하느라 그들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국가부도의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그래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후에 온 국민이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타이타닉호가 방향을 잃고 빙산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는데, 선장은 갑판 위를 돌아다니면서 의자를 가지런히 놓으라고 지시하고, 나사 빠진 것을 챙겨서 잘 꽂으라고 명령한다고 칩시다. 만약 여러분이 그 배에 탔다면 선장에게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정신차리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방향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겠어요? 제정신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갑판 위에서 떠들고 지시하던 것을 다 집어치우세요! 그리고 배가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보세요!' 라고 말입니다.

 

나는 나의 학생과 고객들에게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비전/목적/방향의 설정이 더 우선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비전/목적/방향을 먼저 세우고 공유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때 숫자 같은 것은 절대로 (절대로!) 제시하지 말라고 얘기해 둡니다. 숫자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비전/목적/방향이 불분명한 채 열심히 일하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목적지가 부산인지 평양인지 모르면서 어디론가 열심히 뛰는 것은 위험한 일이죠.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유럽과 같은 복지화 사회로 갈 것인가? 아니면 남미와 같은 양극화 사회로 갈 것인가? 몇년 전에 남미에서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전근 온 독일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서울사무소로 발령이 나서,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달 간의 서울생활을 한마디로 이렇게 치안이 확실하게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남미의 도시들에서는, 해가 떨어지면 거리에 나다닐 수가 없답니다. 부자들은 저택에서 사설경비원을 고용해서 살고, 국민들의 상당수가 가난한 사람들이라서 거의 노숙자 수준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고, 강력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때로는 경찰력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나는 남미를 가본 적이 없어서 그저 상상을 할 뿐입니다. 남미는 70년대만해도 세계10대 부국에 드는 나라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20년 후에는 미국을 넘보는 초일류 부국이 될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남미로 이민을 많이 갔습니다. 일본사람들도 꽤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쩌다 남미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순희 옮김, 부키 2007)을 보세요. 장 교수는 우리사회가 왜 복지화 사회로 가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를 지향하지 않는 한, 남미와 같은 비참한 상황을 맞게 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역사의식이 부족한 사람은, 로마 병사들이나 빌라도 총독처럼 열심히 일하지만,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했다고 해서 그 결과가 용서될 수 있을까요? 역사의식의 결여는 용서될 수 있을까요? 물론 성경의 예수처럼 우리는 그들이 무지했다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단순할까요? 이명박 정부의 고위층은 정말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무지하지 않습니다. 이미 수많은 현상분석과 대안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들은 비교검토했고, 철저히 손익을 따져보았습니다. 역사의식의 결여와 그로 인한 비전/목적/방향의 결핍을 은폐하기 위해 여러가지 잡다한 프로젝트를 하느라 바쁩니다. 그 프로젝트 하나하나를 면밀히 따져보고 그 전체적인 기조를 보면, 결국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몫을 부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명백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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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비전/목적/방향이 없다는 점이고, 둘째 늘 바쁘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바쁜 이유는 비전/목적/방향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은폐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첫번째 특징인 비전/목적/방향의 결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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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전은 목적으로 드러나며 방향을 설정해 줍니다. 그래서 나는 비전/목적/방향을 마치 한 단어처럼 사용합니다. 비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강렬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희미할 수도 있습니다. 비전이 없으면 망합니다. 비전이 없으면 삶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전은 강요해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비전은 자연스럽게 자극되어 자발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직에는 비전이 중요하고 그 비전을 구성원들이 공유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747과 실용은 과연 비전/목적/방향이 될 수 있는가?

     

    현정부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것은, 현정부가 내세우는 두 가지입니다. 747과 실용입니다. 747은 연평균 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을 줄인 것입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더 명확한 어떤 비전/목적/방향을 가지고 있다면, 누군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내가 알고 있는 것은 747과 실용입니다.

     

    이전의 포스트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계량화된 숫자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것에는 다양한 가치가 생략되기 때문에 비전/목적/방향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숫자는 항상 수단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고열로 고통 받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환자의 체온 36.5도를 자신의 진료목표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도 안 되지요. 고열의 원인을 일차적으로 찾아서 제거함으로써 환자가 건강을 회복한다면 체온이 36.5도로 회복되는 것은 치료의 결과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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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7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국이 건강한 나라, 성숙한 국민이 되었을 때 당연한 결과로 따라오는 숫자일 뿐입니다. 747을 목표로 삼다니! 747이 어찌 일국의 비전이란 말인가? 이 얼마나 멍청한 역사의식이란 말인가? 새로운 정부가 출발하고 747을 목표로 드라이브하는 바람에 재정과 환율정책을 잘못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금융위기가 오자 외환이 부족할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가? 비전이 없으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747을 위해 장애인 복지예산을 대폭 줄이고, 종부세를 완화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몫을 거두어서 부자들에게 나누어주는 방식의 정책을 쓴 겁니다. 그러면서 재래시장 아주머니에게 따뜻한 목도리를 씌워주는 광고사진을 찍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소외되지 않는 복지국가를 만들겠다고 방송합니다. 이것이 잘 먹히지 않자 최근에는 황석영을 끌어들여서 이미지를 확장해 보려고 합니다. 어떤 것이 진실일까요?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소위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전략이 이런 거였습니다. 비전이 없는 전략은 이렇게 본말을 전도시키고 목표와 수단을 바꿔버립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좌충우돌하는 것입니다. 공유된 비전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온 국민이 747과 실용을 위해 희생되고 있는 셈입니다.

     

    정치적 식견은 거의 없지만, 나는 유럽의 어느 정당에서도 이런 식의 선거캠페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숫자를 들이밀면서 그 숫자를 지키겠다는 공약은 매우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비전이 없어 보이는 천박한 선거전략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정부의 전략도 이명박정부처럼 즉흥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이 분야는 전문이 아니기 때문에 혹시 전문가가 이 글을 보고 다른 의견이 있으면 코멘트를 부탁합니다.

     

    실용이란 무엇인가?

     

    현정부의 비전/목적/방향 중에서 두 번째인 실용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실용적이라는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실용적이어야 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실용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누구를 위한 실용인가? 이것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은 채 그저 실용을 외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정신작용에는 가치 정립과 같은 기초영역이 있고, 그 가치를 적용하는 실용영역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용이란 가치가 명확히 정립된 후에 그 가치를 현실에 적용하는 기술입니다. 말하자면 사회적 테크놀로지(social technology)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의 관계와 같습니다. 기초과학의 토대가 없이 응용기술을 발달시키겠다는 것이 비과학적인 처사이듯이, 명확한 가치정립이 없이 실용을 운위하는 것은 비실용적인 태도입니다. 현정부의 캐치프레이즈로서 실용을 내세운 것도 가치의 토대가 매우 부실한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내세울만한 매력적인 비전과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죠.

     

    가장 황당한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실용주의입니다. 숫자는 어떤 실체라도 잡을 수 있지만, 실용주의야말로 실체가 없는 공허한 관념에 불과합니다.

    ,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또다시 외교아젠다로 들고 나왔습니다. 실용주의 외교노선에서는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요? 비실용적인 이념에 찌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는 북한을 적절히 요리해 왔습니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 적당한 수준의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비용지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비용은 통일비용의 일부라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평화와 자유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북한에 대한 실용적 입장은 뭔가요? 언론보도에 의하면, 하도 이랬다 저랬다 해서 정신이 다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김영삼 정부시절에도 최근의 북핵사태과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북한에서 핵개발과 미사일 때문에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온 국민이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는 핵핵거리면서 무엇을 했나요? 내가 알기로는 별로 한 것이 없습니다. 말로 큰소리만 뻥뻥 쳤습니다. 그리고는 미국과 일본에 질질 끌려 다닌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그러면서도 김영삼 정부의 비전은 세계화라고 큰소리쳤습니다. 힘도 없으면서 힘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다 결국은 국가를 파산지경으로 몰고갔습니다. 요즘 그런 일들이 또 벌어지고 있습니다.

     

    ,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덮쳤습니다. 실용주의 경제정책에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비실용주의 이념에 찌든 경제정책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이때 실용이란 그저 즉흥적으로 대응하느라 외환보유고를 낭비해서 또다시 외환위기를 맞는 것 아닌가라는 위기감을 초래했을 뿐입니다. 실용주의 외교로 쇠고기 광우병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정부에서는 무슨 조치를 취했나요? 역시 즉흥적으로 이랬다 저랬다 했습니다. 그래서 얻은 게 뭔가요? 엄청난 사회적 갈등만 일으켰습니다.

     

    도대체 실용이라는 아이디어가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지만, 철없는 초등학교 애들 수준의 사고입니다. 이제 실용과 실용주의라는 용어는 집어치우기를 바랍니다. 모든 인간의 삶은 실용적입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실천적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사, 즉 밥 먹고 똥싸는 모든 행위가 실용에서 나온 것이고 실천의 결과입니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가의 문제일 뿐입니다. 이념에 기초하지 않은 실용은 국민이 낸 세금을 자신들 맘대로 떡 주무르듯이 하겠다는 의사표시처럼 보입니다.

     

    정부 지도층의 이러한 실용주의적 현실인식은 언어를 유치한 수준에서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언어파괴>라고 지칭한 분도 있습니다. “이라크 침공이라크 해방이라고 부르는 것, 삽질로 환경파괴를 기획하면서 녹색성장이라고 부르는 것 등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실용이라는 용어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언어파괴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자들 이익에 부합하도록 세금을 쓰고 정책을 집행하면서 그것을 실용이라고 부르니 말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정부의 지도층에는 자신들에게 비전/목적/방향이 없다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저지른 것을 용서해야 할까요? 2,000년전에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용서해달라고 간청했던 예수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할까요?

     

    아니면, 속으로는 비전/목적/방향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부자들에게 모든 돈을 몰아주자. 그래서 판돈을 키우면, 떡고물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떨어질 것이다. 우선 부자들이 중요하다. 부자들이 경쟁력을 갖춰야 나머지들도 따라올 것이다.’ , 이런 정도의 이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긴 쪽 팔리니까, 명시적으로 공표하진 못하고 그냥 실용과 실용주의라는 용어로 얼버무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자기가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철저한 손익계산에 따라 모르는 상태를 연출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의 손익을 위해 자발적 무지의 상태로 도피한 자들까지도 우리는 용서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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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이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는 골고다 언덕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수는 이처럼 자신을 죽인 그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탄원했습니다.

     

    예수가 죄수 두 명과 함께 처형되는 현장에 있던 로마 병사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 있었는데,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죄가 없었던 예수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고, 스스로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고, 병자를 고쳐주었고, 죽은 자를 살렸고,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율법은 위선을 조장한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위선의 기도를 올리는 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파격적인 예수의 가르침은 당시 유대세계에 비교적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로마 병사들은 예수가 죄 없다는 그 명백한 사실을 어째서 알지 못했을까요? 병사들이야 무식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예수를 심문했던 빌라도 총독은 예수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를 십자가 처형에 내맡긴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역사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지식인 계급에 속했던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은 예수에게 찾아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를 물었습니다. 유대사회의 지도자였던 니고데모는 예수의 비범성을 알아보았지만,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을 깨지 못했습니다. 유대땅을 다스리는 높은 지위에 있었고 거기서 벌어지는 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빌라도 총독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예수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헤롯왕을 비롯한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예수를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협하는 인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거침없는 가르침과 진실폭로에 겁을 먹었고, 어떻게 해서든지 꼬투리를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권력자들의 역사의식의 결여. 이것이 예수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 몰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의식이란 무엇인가?

     

    역사의식은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관한 성찰에서 비롯됩니다. 말하자면, 역사적 존재로서 자각하는 능력입니다. 이런 능력의 결핍은 사회적으로 많은 위험과 위기를 초래합니다. 최근에 겪은 대표적인 사례가 부시의 이라크 침공입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통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시는 세계사적 역사의식의 결여로, 박정희는 민족사적 역사의식의 궁핍 때문에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부시나 유신시대의 박정희와 같은 사람들의 특징은 비전/목적/방향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공유된 비전/목적/방향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만들어 공유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리석게도 자신이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 또는 사회가 그것을 원할 것이라고 짐작되는 것을 힘으로 밀어 부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다른 부분은 내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고, 내 분야에서만 본다면 경영학은, 20세기 초반, 숫자로 쥐어짜던 제1세대 경영학(Taylorism)에서, 20세기 후반, 인간의 자율성을 확보하려던 제2세대 경영학(Druckerism)을 지나왔습니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부터 제3세대 경영학(Wholism)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조직과 조직구성원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하나입니다.

     

    구성원 개개인은 구분되는 독립체인 것이 분명하지만, 어떤 조직에 소속되면 그 조직의 전체가 되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개체가 전체요 전체가 곧 개체인 상태입니다. 개개인이 조직의 전체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낱개로 찢어진 존재가 아니라 낱개의 특성을 보존한 채 따뜻하게 연결된/뭉쳐진 공동체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 공동체를 구성할 때, 비로소 높은 성과를 낸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미국식 경영학의 폐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현정부의 경영방식은 제1세대 경영학에 속하는 계량화에 의한 명령과 통제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아울러, 그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실용적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지도 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현정부에서는 이런 고민의 흔적을 거의 발견할 수 없습니다. 속도전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역사의식의 결여에서 오는 온갖 과오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역사의식의 결여를 힘의 실용적 활용으로 커버할 수 있을까요? 힘의 활용과정에서 겪는 무수한 고통과 희생을 우리는 그저 감수하고 있어야 할까요? 힘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을 힘으로 밀어 부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가 가르쳤던 것처럼, 힘을 쓰는 사람은 결국 힘으로 망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이런 의문들은 흥분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촛불을 든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촛불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효과가 있긴 하지요.) 온 국민의 깊은 사색을 필요로 합니다. 사색은 어느 날 갑자기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장기간의 훈련을 해야만 사색이 가능합니다. 역사의식은 사색을 통해 싹틉니다. 사색의 훈련이 없이 오로지 손익만 계산해 본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역사의식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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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