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그러니까 2009년 8월 7일 투자은행인 Credit Suisse에 다니는 딸이 아내와 나를 초대해 주었습니다. 매년 겉에서 건물만 봤지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해서 늘 궁금했습니다. 딸이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일하기 때문에 사무실을 직접 구경시켜 줄 수는 없지만, 방문객이 볼 수 있는 곳을 안내하고 점심도 구내식당에서 같이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심약속이 이미 잡혀 있어서 회사만 조금 보기로 약속하고 오전 10시까지 찾아 갔습니다. 남의 집에 가면 항상 조심스럽듯이 남의 사무공간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로비에 들어섰는데, 딸이 이곳 저곳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미국계 투자은행의 건물들은 주로 유리건물로 되어 있어서 경쾌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유럽계 기관들은 건물의 외벽이 돌로 되어 있어 그런지 육중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Credit Suisse London Office


우선 짐(gym)과 수영장을 봤습니다. 부대시설이 직원들 복지를 위해 중요하니까요. 일하는 시간인데도 간간이 운동도 하고 수영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원들은 짐과 수영장 같은 시설을 이용할만큼 시간이 한가롭지 않답니다. 그런 부대 시설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건물 관리하는 사람들이라는 불만이 있답니다. 어쨌거나 내가 일했던 한국은행의 시설보다 더 좋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일개 투자은행에 불과한 기관이 한 나라의 통화관리의 상징인 중앙은행의 시설보다 더 좋게 꾸며 놓은 것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 안에는 우체국을 비롯한 편의시설이 모두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일상의 일을 위해 건물밖으로 나갈 일은 없다는군요.

 

수영장에는 25m 레인이 세 개 있습니다.


몸을 데우는 보조 풀


짐(gym)




7층에 있는 식당에는 11시쯤 들렀는데, 온갖 음식이 차려지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스시까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잘 차려진 음식들도 정작 직원들은 일하느라 식당에 들러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사무실에서 간편한 음식으로 때우기 일수랍니다. 

직원 식당. 스시가 마련되고 있습니다요!!!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먹을 것이 풍성한 것을 보면 그렇게 부럽습니다. 내가 젊은 시절 처음으로 미국 출장을 갔을 때, 식당에서 주는 음식의 양이 푸짐해서 좋아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미국인들을 비만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가난했던 시절의 배고픔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몰라도 풍성한 먹거리에 대한 탐욕이 나에게는 아직도 남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식당에서는 템즈강과 North Dock뿐만 아니라 South Dock까지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한국은행 입행 후 1980년대 중반에 여의도의 유공빌딩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아스팔트로 뒤덮힌 삭막한 516광장과 콘크리트 빌딩 숲만 있었습니다.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한강을 이용하여 수변공원을 조성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간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태어나기까지 뱃속의 물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물과 가까이 있다는 것이 감정을 아주 평온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여의도는 한강물을 끌어다 수변화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한강과 접한 용산의 철도청 부지를 개발한다니, 이번에는 수변화하는 작업을 하면 어떨까합니다. 높은 건물만 하늘로 올릴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른 쪽에 흐르는 강이 템즈강입니다. 나는 이 경치를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Cabot Square


직원식당(7층)에서 바라 본 North Dock


Canary Wharf Tower. 가운데 둥그런 지붕은 DLR(Docklands Light Railway, 경전철) 정거장입니다. 이 경전철은 런던의 중심부 시티까지 약15분에 연결됩니다.


North Dock


어쨌거나 우리는 방문자들이 직원을 만나는 장소인 게스트룸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도 물이며 각종 음료와 읽을 거리를 충분히 비치해 두었습니다. 딸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커피를 만들어 먹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데서 내려 먹는 커피향은 좋아합니다.

방문객 응접실. 이런 응접실이 여러 개 있었는데, 우리는 동양화의 느낌이 나는 그림이 걸린 방으로 안내 되었습니다.


아내가 커피향에 취한 듯, 커피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딸이 아내에게 커피를 만들어 먹는 기계를 알려주고 있죠.



우리는 미리 약속이 있어서 점심을 같이 하진 못했지만 딸에게서 칙사 대접을 받았습니다.

직원들의 기도실과 24시간 개방되는 도서실, 은행, 우체국, 편의점 등 각종 부대시설을 둘러보고 이제 좀 쉬고 있습니다.

12시가 돼서 사무실을 빠져 나와야 했습니다. 밖에서 점심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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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84()~825() 3주간 출장 겸 휴가를 다녀오려고 합니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휴가로 영국엘 다녀왔는데, 금년에도 그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런던에서 일하는 딸아이가 초대해서 매년 가게 된 것이지요. 자식들이 떨어져 살면, 부모로서는 늘 보고 싶지요. 함께 사는 게 가족으로서는 제일 좋은데,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서 가끔 만나 그 동안 못다한 얘기도 하고, 함께 여행하면서 서로의 애정과 신뢰를 확인합니다. 가끔 전화와 메일로 사는 형편과 사정을 확인하지만, 눈으로 직접 보는 것보다는 못하지요. 아들은 최근에 제대하는 바람에 군생활모드에서 공부모드로 바꾸기 위해 이번 여름휴가에서 빠졌습니다.

 

휴가면 휴가지 왜 출장이라는 말을 곁다리로 붙였냐구요? 첫째 이유는, 우리나라 형편에 3주씩 휴가를 가는 것은 아직 부르주아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부르주아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둘째 이유는, 실제로 몇몇 인사들에 대한 인터뷰를 기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기프로젝트이기도 한데,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삶을 알아보고 어떤 역량(competency)이 크게 작용하는지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출장이라는 말을 살짝 끼워 넣었습니다. 대부분은 그냥 노는 것인데, 미안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이 기간 중에 88일(토)부터 18일(화)까지는 에딘버러를 비롯한 스코틀랜드를 여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처남 부부, 그러니까 아내의 큰 오빠부부와 함께 갑니다. 큰 처남은 건축학과 교수로 근무하다 작년에 정년퇴직한 분인데, 특히 스코틀랜드를 보고 싶어 하시기 때문에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작년에도 잠시 영국에 들러 함께 도버, 스톤헨지, 세익스피어 생가 등을 여행했는데, 금년에도 역시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지금 "무쟈게"(윤여임 선생님으로부터 새롭게 배운 단어) 좋아하고 있습니다. 좋은 건축물을 만났을 때, 문외한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해 줍니다. 그래서 여행중에 건축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작년 여름 휴가까지만 해도 블로그를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꾸지 못했기 때문에, 사진 찍는 것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못해서 블로그에 올린 여행기가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블로그를 위해서라도 사진을 좀 찍어볼까 합니다. 역시 자동모드로 말입니다.
여행 중에 여행기를 계속 올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p.s. “인재전쟁에 관한 인터뷰 내용은 시리즈로 계속 발행하도록 예약을 걸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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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오늘(2008.8.16)은 카나리 워프(Canary Wharf)가 있는 도크랜즈(Docklands)를 산책하면서 한 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도크랜즈는 템즈강이 런던의 동쪽지역을 휘감아 돌아 바다로 빠져나가는 지역으로 습지대라서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곳이었습니다. 런던 중심인 시티지역이 비좁아서, 도크랜즈를 새롭게 개발하여 금융기관을 대거 이전시켰습니다. 80년대 말 개발계획 당시만해도 성공여부가 불투명했지만, 2006년에 개발이 완료되어 지금은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런던 동부지역의 습지대였던 도크랜즈를 수변도시화하여 개발했습니다. 템즈강이 도크랜즈를 서쪽에서 한바퀴 휘감아 밀레니엄 돔을 거쳐 동해(유럽인들은 북해로 부름)로 빠져나갑니다

물론 도크랜즈의 개발이 시작될 때는 매우 회의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개발을 시작한 회사가 도산했고, 90년대에는 원주민들이 고층빌딩에 대한 거부감으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개발계획의 성사여부가 불투명했습니다.

1995
년에 국제적인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오늘날과 같은 위용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나는 지역개발이나 건축문제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높은 빌딩이 더 효율적인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현재 HSBC, Citigroup, Morgan Stanley, Barclays, Credit Suisse 등과 같은 유수 금융기관과 금융감독청, 세계최대법률회사인 Clifford Chance, 언론사 톰슨 로이터와 데일리 미러 등이 입주해 있습니다요즘은 금융위기로 카나리 워프의 활기가 예전 같지 않지만, 대략 10만 명의 전문인력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템즈강 건너편 서쪽의 스테이브 힐 생태공원에서 바라본 카나리 워프 전경(Source: Wikipedia)

나는 건물을 경쟁적으로 높이 짓는 것은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바벨탑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문명과 문화는 건물의 높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의 신뢰와 배려, 사랑과 애정 같은 마음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도크랜즈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서울시에서 한강을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돌려주기로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입니다. 건물을 너무 높이 짓지 않으면서도 인간중심적인 도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런던의 시행착오를 잘 살펴서 시민중심의 서울, 시민중심의 한강이 되도록 만들었으면 합니다.

런던 동부 신흥개발지역인 도크랜즈의 분위기를 사진으로 감상하겠습니다.

도크랜즈 남쪽에서 북쪽으로 카나리 워프를 바라보고...

도클랜즈 중심부

도크랜즈 중심부에서 모녀가 타이타닉호인줄 착각하고...

도클랜즈 남쪽에서 카나리 워프를 바라보고...

도크랜즈에 있는 전형적인 연립주택들

연립주택가에 있는 요트계류장

연립주택 사이의 숲길

도크랜즈는 지금도 건설중...

걷다 보면 다리가 아파오고...

도크랜즈 서쪽으로 흐르는 템즈강

도크랜즈 서쪽의 연립주택

도크랜즈 서쪽에 있는 템즈강가에서 바라본 카나리 워프

도크랜즈 서쪽 템즈강

도크랜즈 서쪽의 템즈강가에 세워진 연립주택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에 스치고...

바람이 세게 분다. 템즈강에 잇대어 지은 연립주택들 앞에서

카나리 워프 서쪽의 주택들

서쪽에서 바라본 카나리 워프

카나리 워프(north dock)

카나리 워프(north d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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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아침을 먹고 나서 공동체 마을의 학교, 도서관, 회의실, 대형 세탁실, 가구공장, 화초를 기르는 곳, 농장, 수영장(큰 연못인데 다이빙대로 있어 수영도 함)을 둘러보았습니다. 가구는 어린이들을 특별히 배려한 튼튼한, 그러나 못을 사용하지 않고 만듭니다. 장애인용 가구들도 직접 디자인해서 만듭니다.


구글에서 본 다벨 브루더호프입니다. 마을이 아름답죠.

 

마을을 둘러보는 도중에 열 명쯤 되는 무리가 피크닉을 가는지, 조카 내외와 서로 인사를 하고는 내 옆을 지나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이냐고 물으니, 공동체 멤버로 한 가족이랍니다. 아이들이 자그마치 7, 부부까지 합쳐서 9명입니다. 일요일이라 온 가족이 아침 먹고 등산 겸 산책을 떠나는 거라는군요. 나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자는 정부시책에 잘 따랐는데, 아 이게 웬일인가. 아이들 다 떠나고 나니 허전합니다. 아이들이 많은 집을 보면 늘 부럽습니다. 그런데 내 눈 앞에  아이들이 일곱이라! 온 가족이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하나씩 메고 숲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피크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피크닉 준비를 하는 동안, 조카부부 이웃에 사는 독일인부부를 잠시 만났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80세는 족히 돼 보이는데, 겉으로 봐도 지식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식은 다 장성해서 결혼했고 지금은 프랑스에서 대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부인은 영어를 잘했는데, 남편은 영어가 서툴고 독일어만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녹슨 독일어를 했습니다. 남편은 중남부 독일어 악센트로 말했습니다. 아들이 다 크고 나서 자신이 하던 사업체도 정리하고, 집도 팔고, 집에서 굴리던 차 두 대를 처분해서 공동체로 왔노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의 브루더호프(브루더호프는 미국에도 6군데가 있음)에서 있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브루더호프로 온지는 몇 년 안 되는데, 미국에 있을 때 부인은 공동체 내에서 주로 영문출판관계 일을 했다고 하네요. 노부부는 나에게 자본주의적 삶의 정신적 황폐함을 얘기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행복은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시간이 없다고 빨리 가야 한다고 아이들이 졸랐습니다. 아이들은 항상 피크닉을 참을 수 없죠. 공동체에서 내준 봉고차를 몰고 남부해안도시 헤이스팅스(Hastings). 갔습니다. 인구만 명의 어촌입니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카메라를 들고 제대로 서있기가 곤란했습니다.


파란색의 맑은 바다를 생각했다가 칙칙한 갈색이라서 다소 실망했습니다.

잉글랜드 남부해안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 같아요.

오랜만에 맛보는 바닷바람입니다.

소박한 해양박물관이지만, 역사교육의 현장입니다.

작은 마을이라도 박물관은 있지요. 어부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박물관입니다.

아이들을 돌봐주는 간호사와 유치원 교사부부도 함께 갔습니다.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죠.

이런 시골에도 중국집은 어김없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 한국음식 맛 내는 것을 시켰는데, 어떤 것은 성공했고 어떤 것은 실패했습니다. 오랜만의 나들이였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만, 바닷가는 바람이 세고 기온이 낮아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보디엄 성(Bodiam Castle)

돌아오는 길에 공동체마을 근처에 있는 보디엄 캐슬(Bodiam Castle)을 보기로 했습니다. 이 성의 특징은 프랑스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성주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정사각형으로 지었는데, 주위에는 해자까지 있습니다. 14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이니까 약 6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 같은 성이라고 했더니, 아닌 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여러 차례 쓰였다고 합니다.


성에서는 중세의 무사들이 싸우는 장면을 연습해서 어린이들의 주목을 끌고 역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어른이고 애고 모두 진진하게 듣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예 무릎꿇고 앉아서 듣고 보고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장면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교과서에 나온 정답을 외우고 시험보는 역사교육이 아니었습니다. 수백년 된 성에 와서,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조카부부. 화려한 장신구는 없지만 삶의 순수함으로 오히려 빛나고 있었습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모습은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내가 할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그곳에 가서 살아보는 것도 삶을 새롭게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낭만적이지만은 않겠지만, 제대로 된 삶이란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이니까요. 사는 동안 잠시 빌려서 쓰는 것뿐이죠. 그리고는 죽음을 통해 모든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이겠지요.


이들의 삶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조카부부는 갓 결혼해서, 그러니까 
1997 2월경 다벨 브루더호프를 일주일 방문해서 살아보고 나서 몇 년 후에 다시 공동체로 들어와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인터넷에서 있는 것을 퍼온 것인데, 나의 짧은 방문에서도 여기에 소개된 삶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공동체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을 거의 만지지도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벌까, 무엇을 먹을까에 대해 신경 쓰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면 그들은 어떻게 사랑할까 어떻게 섬길까를 생각하며 산다.

 

브루더호프가 우리나라에 알려지면서 무려 1,000명이나 되는 한국인들이 그 먼 곳까지 방문했다. 방문자들에게 그곳 사람들은 처음엔 "왜 왔느냐, 이곳 삶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굉장히 힘들다"는 말을 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공동체가 이루어지기까지 사랑과 섬김은 보지 못하고, 환상만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은 잉글리쉬(영어)로 얘기하지 말고, 허티쉬(마음의 언어)로 얘기하라고 말한다. 언제나 조용 조용하게 얘기하며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그들은 절대, 이부자리에서 조차 남의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한 전통으로 삼고 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암시를 주는 말조차도 하지 않고, 언제나 상대에게 직접 솔직히 얘기한다. 19살 먹은 청년도 80살 할아버지에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얘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결혼

 

대부분이 공동체 식구끼리 결혼하고, 혼전 순결을 철저히 지키는 이 공동체에선, 한 청년이 한 공동체의 여성과 결혼하기를 원할 때, 성직자에게 자신의 뜻을 말하고, 그 성직자는 여자 쪽의 부모와 의논한다. 그리고 그 여자의 부모가 자녀와 의논해 남자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하면, 공동체에선 비밀리에 둘만이 교제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가령 공동체 밖으로 둘을 장기간 함께 파견한다거나, 공동체 안의 한 일터-학교나 출판사, 공장-에서 일하면서 상대에 대해 충분히 알며, 결혼할 마음을 갖추도록 도와준다.

 

약한 자를 위한 배려

 

아이를 낳으면 6주 후부턴 베이비하우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 전에도 산후 조리를 도와준다. 그곳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후에 친정 집에서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보다 오히려 더 편하고 더 좋았을 만큼 배려를 해주었다. 먹을 것도 굉장히 배려했다. 자녀를 낳아 그리스도의 자녀로 양육하는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겨 많은 아이를 낳긴 하지만, 산후조리 때 이렇게 대우받으니, 아이를 더 많이 낳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들은 약한 이들이야말로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병자와 노인들에게 배려한다.

 

일터

 

공동체 마을의 한 의사가 있었는데, 그는 오후에는 진찰실을 떠나 공장에서 시다로 일했다. 그래서 왜 의사가 공장에서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계속 지시하는 일만 하면, 영적으로 교만해지기 때문에, 남의 지시를 받는 일을 함께 한다"고 했다.

 

이들을 자신의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내려놓는다. 그러니 공동체는 (자신을 내세우려 하는) 인간의 본능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도 각기 일터를 배정받아 일을 했는데, 이들을 어찌나 일을 열심히 하는 지 일이 힘들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일이 힘들다고 하면, 마치 도청장치가 돼 있는 것처럼 이들은 다음날 일을 더 줄여주고, 다른 일을 맡기곤 했다. (그 정도로 상대가 고충은 없는 지, 일을 힘들어하지 않는 지 살피고 있다는 의미다)

 

한번은 일이 힘들어 그곳의 한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천국에 가면, 이렇게 일할 일 없겠지요"하고 물었더니, 그 할아버지가 말씀 하기를 "섬기는 삶이 없이 어떻게 천국이 이루어지겠느냐" "내게 만약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일이 전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죽음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토의

 

브루더호프엔 텔레비전도 없다. 그러나 도서관은 세계적인 수준. 밤이면 영성 깊은 부모와 순수한 아이들이 조용하고 깊은 대화를 한다. 토요일엔 문화의 날로 정해 아이들과 함께 여러 문화도 즐긴다. 한번은 프랑스의 재즈댄스팀이 방문했다. 그들은 옷차림이나 춤 모양새가 매우 야했다. 그들이 춤추는 사이 이를 보다 못한 한 어른이 춤 도중에 일어서면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만하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댄스는 중단됐는데, 재즈팀은 그렇게 다른 문화에 대해 닫혀있는 줄 몰랐다며, 실망해 프랑스로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 공동체는 이 문제의 토의로 시끄러웠다. 그 다음날 모임의 토의에서 댄스를 중단한 사람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아이들은 그 춤이 야하다거나 야하지 않다거나 -아무런 분별없이 그냥 즐기는데, 왜 춤에 대해 야하다는 해석을 붙여 분별하느냐는 질책이 쏟아졌다. 아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세속문화에 대해서도 어린아이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즐기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재즈팀에게 사과를 해야한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댄스를 중단시킨 사람도 이에 공감해 사과하러 프랑스로 떠났다. 그들은 세속과 충돌하지 않는 방법으로 `어린아이처럼 즐기는 쪽을 택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가,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우리를 돌봐주던 분이 부활절 예배 준비를 맡았는데, 그 분은 온 성심을 다해 부활절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굉장히 화려하게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날 그 분은 공동체가족들의 이의에 봉착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느냐, 당신의 영광을 위해 하느냐"는 물음을 받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부활절을 준비한 것을 알고, 스스로 징계를 받아 공동체와 상당히 떨어진 외딴 곳으로 떠나 회개의 기간을 가졌다. 그 때 그는 공동체에 편지도 보내지 못하지만 공동체의 모든 가족들이 그를 위해 기도하며, 위로의 편지를 보내고, 그가 자신의 영광이 아닌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 돌아오도록 도왔다.

 

신앙

 

이들은 성경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물어보면 어느 신학자보다 성경에 대해 박식했다. 그들은 기도는 남이 보지 않는 다락방에서 해야한다는 말씀을 따르는 듯 했다. 그들은 남에게 보이는 신앙을 하지 않고, 삶 자체가 신앙이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복음주의적 신앙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이제 이들의 삶을 조금 상상하실 수 있나요? 소위 복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와는 완전히 다른 삶의 모습이죠.

살아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진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그것이 행복이겠죠. 사는 동안 끊임없이 신뢰와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곳 공동체에서 무소유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욕망의 때와 자본의 때를 벗은 사람들의 거룩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삶을 보면서,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껨(Emile Durkheim, 1858~1917)의 말이 생각납니다. “사회의 기초는 성스러움이다.” 그런, 우리 사회는 지금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온통 기독교로 채색되어 가고 있지만, ‘성스러움은 사라지고 점점 상스러움으로 변해가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브루더호프에서의 성스러운 만남을 아쉬워하며 런던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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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주말을 이용해서 기독교 생활공동체인 브루더호프(Bruderhof)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런던에서 동남쪽으로 약 1시간30분 정도 떨어진 이스트 석세스(East Sussex)주의 로버츠브릿지(Robertsbridge)라는 조그마한 도시에 있습니다. 우리는 미리 약속을 해두었습니다. 그 공동체에는 내 누이의 딸 부부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전화를 했더니 주말을 이용해서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공동체에 손님으로 일정기간 체류하면서 함께 생활해보려면 일단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공동체로 산다는 것에 대해 한번도 배우지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에 그들이 사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로 혹시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봐도 있을 것은 다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그냥 오라는 겁니다. 한인 가게에 가서 깻잎 통조림과 아이들이 간식으로 먹을 것을 간단히 준비해서 트렁크에 넣고 떠났습니다.

 

찾아가는 내내 공동체의 생활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사전에 인터넷으로 조사한 것도 전혀 없었던 터라 어떤 정보도 없었습니다. 누님을 통해 잘 살고 있더라. 한번 찾아가 봐라는 얘기만 들었을 뿐입니다. 무엇으로 돈을 벌어 어떻게 먹고 사는지가 가장 알고 싶었습니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궁금증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수백 명이 가족단위로 모여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공산주의 방식인가? 공산주의는 다 망해서 북한을 빼고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데? 아니면 사회주의적 공동체 운영? 혹시 사교에 빠진 집단은 아닌가? 얘기를 들어보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니면 고대 원시부족사회처럼 사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로버츠브릿지에 도착했습니다. 철길을 넘어 한참을 들어가니까 입구에 사인이 보였습니다.

 


브루더호프에 관한 책을 이미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참고하세요.


2008/12/03
꿈꾸는 인생_사랑의 꼬뮨을 실현하다
 

도착한 날이 토요일인데 많은 사람들이 연장을 들고 일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주말에도 일을 하나? 그 동안 온수와 난방용으로 쓰던 화석연료를 천연연료로 바꾸느라 교체작업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같이 일해야 하는 데 손님이 온다고 해서 조카부부는 빠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브루더호프는 생태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거실에서 작은 외할아버지가 왔다고 신바람이 났습니다.


조카부부와 아이들은 아주 건강하고 씩씩해 보였습니다. 애들이 올망졸망 넷이나 됩니다. 이곳에서는 생기는 대로 낳는 모양입니다. 알고 보니 애 낳는 것을 장려한다고 합니다. 굶주려 북한 사람들처럼 핼쑥한 모습은 아닐까 약간 걱정했는데, 일단 안도했습니다. 먹기는 잘 먹는 모양입니다. 


작은 외할아버지가 온다고 환영포스터까지!! 



그런데 남자 애들은 주로 맨발입니다. 여기서는 그냥 맨발로 뛰어다녀도 내버려 둔답니다. 아이들이 흙과 자연스럽게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랍니다.

손님이 온다고 케익을 준비했더군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공동체 식구들 전체가 저녁식사를 함께 합니다. 아침은 각자 자기집에서 먹고, 토요일 저녁은 이웃마을 사람들이나 친척을 초대해서 함께 한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에도 우리가 초대된 셈입니다. 300명도 너끈히 식사할 수 있는 큰 식당입니다. 놀랍게도 카페테리아식이 아니고 식사당번이 서브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충분히 좋은 식사였습니다.

 

소박한 게스트룸


저녁식사는 좋았는데, 게스트 룸은 정말 소박했습니다. 순수한 하룻밤을 소박하게 지냈습니다.

우리는 과도하게 치장된 아파트에서 삽니다. 그것이 풍족인 줄 알고 말입니다. 집에 돌아가면 실용적이지 않은 치장된 것이 있는지 색다른 기준으로 다시 한번 더 살펴봐야겠습니다. 브루더호프의 공동체 식구들은 외면을 꾸미기보다 마음을 깨끗이 정돈하며 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게스트룸에 거울이 없다!


우선 거울이 없습니다.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거나 치장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딸은 조금 불편해졌습니다. 거울이 없다니! 이건 너무 한 거 아냐? 핸드백에서 손거울을 꺼내 해결했습니다.



 
내 누이의 딸입니다.




내 조카는 어려서부터 수녀 같은 마음씨였습니다. 여기 와서 보니 수녀와 신부가 만나서 애 낳고 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동안,  거의 10년을 거울 없이 살았는데도 이렇게 예쁘잖아요.

 

출처 : 브루더호프 공식홈페이지(www.churchcommunities.org)에서


우리는 아침을 먹고 일요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공동체 마을의 중앙공원에 둥그렇게 모였습니다. 잔디 위에 그냥 앉은 사람도 있고, 방석을 깔고 앉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작은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기도 합니다. 나는 그곳에 있는 정원용 탁자에 딸린 의자에 앉았습니다. 예배 내내 찬송을 부릅니다. 누군가 성경을 읽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춘 얘기도 했는데, 설교인지 아닌지가 헷갈렸습니다. 때때로 웃기도 하고 ……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워낙 조용조용 이야기합니다. 내가 예상했던 설교, 찬송, 예배와는 완전히 딴판이었습니다. 설교(?)가 간단하게 끝나고는 또 다시 찬송을 불렀습니다. 누군가 먼저 시작하면 다같이 부르는 방식입니다. 미리 정해놓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힐 정도로 화음이 좋습니다. 나는 한 소절도 따라 하지 못했지만, 그 아름다운 화음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출처 : 브루더호프 공식홈페이지(www.churchcommunities.org)에서


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공동체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마을 안에는 초등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공장도 있었습니다. 자녀들을 가르치고 학습하는 장소도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게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외부의 학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곳에 공동체의 멤버들이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까지 가르칩니다. 만약 상급학교에서 더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헤이스팅스(Hastings)라는 남부해안도시의 외부 학교로 진학한답니다.


출처 : 브루더호프 공식홈페이지(www.churchcommunities.org)에서

공장시설을 보고 나서야, 이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Community Playthings"라는 상표의 어린이 가구를 만들어서 전세계에 수출하고 있었습니다.

출처 : 브루더호프 공식홈페이지(www.churchcommunities.org)에서


어린이들이 가장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양질의 가구들입니다. 특히 유치원과 학교에서 쓰는 모든 가구를 만듭니다. 수요가 많아서 요즘은 공장을 풀가동해야 한다고 합니다. 외부의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공동체가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는데, 지금까지는 어려움 없이 수지를 맞춰왔다고 합니다. 오히려 다벨 브루더호프는 재원이 부족한 다른 공동체를 돕고 있다고 합니다.



조카의 남편 케빈(Kevin)이 애기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군요.



이들은 철저하게 무소유의 원칙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교인들의 삶이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브루더호프를 찾아오면서 생긴 온갖 의문들이 상당부분 해소되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서로 아무 것도 갖지 않기로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요.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고 해서 노동 없이 빈둥거릴 낭만적 삶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더 치열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 즉 삶의 본질적 투쟁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곳의 생활에 대해 일일이 사진을 찍어 소개하려고 했었는데, 조카부부의 말에 의하면, 외부인들에게 노출되는 경우 좋은 면도 있지만, 공동체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해의 소지가 많아서 가족끼리 찍은 사진 이외에는 허락 없이 노출되는 것을 금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세운 원칙을 존중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찍은 사진은 최소화하고,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들을 활용했습니다. 이점을 양해해 주시구요.

이들의 삶은 분명히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 이외의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들의 얼굴에는 그것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에 물든 내 눈에는 이들의 삶이 거룩해 보였습니다.

다벨 브루더호프 방문기는 계속됩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분은 www.churchcommunities.org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소개하는 동영상은 <여기>를 눌러서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 공동체가 운영하는 출판사의 출판물들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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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에서 며칠을 지내고 우리는 다시 고속도로 M6를 타고 리버풀(Liverpool)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좁은 시골길을 지나야 합니다. 윈더미어 호수가에 도착하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페리를 타기로 했습니다.  



페리를 타고 윈더미어(Windermere) 호수를 건너는 것도 천연의 모습입니다. 물론 차들이 페리에 실리지만 이런 곳에서 살면 백 살도 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고속도로 M6의 모습을 감상하면서 육교 위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랑카스터(Lancaster)를 지나 리버풀로 가는 중입니다.

 








우리는 윈더미어를 떠나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이곳에서 초막집을 짓고 살았으면 했습니다.

윈더미어 호수

 호수의 페리 선착장도 아름답습니다.

윈더미어(Windermere) 호수에 있는 페리 선착장


 

저녁 때가 돼서야 리버풀에 도착했습니다. 숙소를 미리 정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 지나가는 길목에 보이는 유스호스텔에 들어갔습니다. 내가 유스호스텔에서 잠을 자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입니다. 값싸고 시설도 좋은 편이지만, 전혀 모르는 여행객들과 함께 자야 하는 게 다소 불편할 뿐입니다. 내 옆에 침대에 자리잡은 젊은이는 호주에서 온 여행객이었습니다. 한 달간의 계획으로 영국전역을 돌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비틀즈를 보러 나갔는지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유스호스텔의 아침은 젊은이들을 위한 식사라서 B&B 조식보다 더 푸짐했습니다.

 



리버풀은 영국 서부의 최대 항구도시이기도 하며 비틀즈(Beatles)를 낳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비틀즈가 리버풀을 낳은 것 같습니다. 요즘 고대가 김연아를 낳았느니, 김연아가 고대를 낳았느니 말들이 많습니다. 출산의 고통과 희생이 없이는 결코 아무 것도 낳을 수 없죠. 고통과 희생을 전혀 치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낳았다고 하니까... 

어쨌든 아름다운 도시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항구 부속 건물들

멀리 한가운데 뾰족뾰족하게 솟아 있는 건물이 메트로폴리탄 카톨릭 성당

리버풀은 1700년부터 1807년 사이에 수많은 흑인노예들을 거래한, 유럽에서 가장 큰 노예무역항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노예들이 거래되었겠죠

리버풀의 상징 알버트 독(Albert Dock)

Harbour Board Building

Albert Dock

Harbour Board Building

멀리 보이는 Liverpool Cathedral, 세계 최대의 성공회 성당입니다.

Harbour Board Building

Salthouse Dock



이렇게 아름다운 리버풀은 노예무역으로 번창한 도시라는군요.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성장할 수 없지요. 부모의 희생이 없이 자녀들이 잘 자랄 수 없듯이 말입니다. 자본주의가 이토록 성장하는 것도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랐기 때문이죠. 18,9세기 영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경제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인클로저(enclosure)운동을 통한 농민들의 희생과 노예무역 때문이었고, 20세기 미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기반에도 흑인노예들과 아시아인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개인들이 부자가 되는 것도 노동이라는 값진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학생들이 공부에 몰입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미래의 성공과 발전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이 희생이 없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성공에는 자기 자신이 희생하든지 아니면 타인이 대신 희생해 주든지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공에 관한 자연법칙입니다.

 

성공이나 발전과 성장은 희생과 고통을 먹고 크는 열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공과 발전과 성장을 원하면서도 희생은 싫어합니다. 희생과 고통이 우리의 삶의 조건인데도 말입니다.

 

만약 내 몸의 어떤 세포가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다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암세포는 생존의 근거인 숙주가 죽을 때까지 죽지 않고 성장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희생이 없는 열매는 없습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는 죽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비틀즈의 고향에 오자 아내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비틀즈의 모든 것이 여기 있습니다.


비틀즈가 활동했다는 캐번 펍(Cavern Pub). 맥주 한잔 하려고 했지만, 자리가 없었습니다.


리버풀에 도착해서 놀란 것은 도시를 비틀즈가 먹여 살리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온통 비틀즈였습니다. 예전에는 노예무역으로 번창했던 항구가 이제는 비틀즈로 먹고 산다? 로큰롤의 황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비틀즈에도, 그리고 그들의 음악에도 그리 큰 관심은 없습니다.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냥 취향인데, 조용한 음악이 좋습니다.

 

비틀즈가 유명하게 된 이유를 최근에 읽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비틀즈는 함부르크의 어느 클럽에서 엄청난 양의 공연과 연습을 통해, 어떤 음악도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량이 향상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10,000시간 연습의 법칙이라고 했습니다. 이 숫자를 매직넘버라고도 했습니다. 어느 분야든 세계적인 거장들은 이 매직넘버를 거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0,000시간을 희생하면 그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가 된다는 얘깁니다.


 


Anglican Cathedral Church of Christ, 사진에서는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무지하게 큰 성당입니다.


우리는 리버풀 대성당(Anglican Cathedral Church of Christ)으로 올라갔습니다. 영국에서 제일 큰, 아니 세계에서 제일 큰 성공회 성당입니다. 제일 높은 아치와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 그리고 가장 무거운 종이 여기에 있습니다. 1910부터 짓기 시작해서 1978년에 끝났으니까 대략 70년간 지은 성당입니다. 런던에 있는 세인트 폴(St. Paul) 대성당은 리버풀 대성당의 반밖에 안 된답니다.

 

유럽여행에서 늘 느끼는 것인데, 어디를 가든지 그 규모에 놀란다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왜 이렇게 크게 만드는 걸까?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어서 얻는 게 뭘까? 사람들이 큰 것을 보면 경외감을 느끼기 때문일까? 교회가 신자들에게 크기로 경외감을 느끼도록 하려는 걸까?

 

이 지역에 이렇게 큰 성당을 지은 것은 노예무역에 대한 반성과 참회의 뜻일까요? 아무튼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소박함에 비해 유럽인들은 건축물의 규모를 압도적으로 크게 만들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몇 번씩 갈아탄 후에도 수십 계단을 걸어서 성당의 꼭대기에 올라왔습니다. 고생한 보람이 있습니다. 리버풀 시내와 대서양, 그리고 멀리는 북쪽의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까지 볼 수 있답니다.


집을 미음자로 지은 것이 특이하네요

 

가운데 붉은 벽돌 건물이 알버트 독(Albert Dock)


약간 오른쪽에 있는 깔대기 모양이 메트로폴리탄 카톨릭 성당, 현대식 건축물입니다.



리버풀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항구에 나가 바다와 배를 보았습니다



리버풀을 떠나 런던으로 내려 오는 길에 우린 뜻하지 않게 웨지우드(Wedgewood) 공장과 숍에 들렀습니다. 계획에 없던 일정입니다. 고속도로 길가에 있는 표지판을 보고 나는 그냥 가자고, 아내는 잠시 들려보자고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나이 들면서 아내의 말을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웨지우드로 가는 숲 길


웨지우드 공장은 숲 속에 있었습니다. 그 숲을 지나는 길이 '공장방문은 시간낭비'라는 내 생각을 상쇄했습니다.




웨지우드를 세운 창립자의 동상이 공장 정원에 있습니다.






참 예쁜 그릇들이 많았습니다. 아내와 딸은 눈이 번쩍번쩍 했습니다.


눈요기감도 많았습니다

아내는 예쁜 것들이 많지만 역시 비싸다고 사지는 않았습니다. 또 눈요기만 잔뜩 했고 발 품만 팔았습니다.

리버풀 사진책자 표지

기념으로 산 책을 들춰보니 리버풀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리버풀 추억을 간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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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이번 여름휴가에서 백미는 영국 컴브리아(Cumbria) 지방의 국립공원인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에서 영국의 자연을 감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고속도로 M6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영국에서 차를 모는 것은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어서 헷갈리기 쉽습니다.

운전경력이 짧은 딸이 그래도 고속도로와 좁은 길을 두루 잘 운전했습니다.


런던을 떠나 약 450Km를 달려 저녁 어스름할 때 국립공원의 관문도시인 윈더미어(Windermere)에 도착했습니다. 옆에 있는 호수로 나가 장시간 운전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처음에는 웨일즈 지방에 가서 자그마한 고성들을 둘러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딸 아이가 사무실 동료에게 추천을 받은 곳이라서 컴브리아 지방으로 바꿨습니다. 크고 작은 호수들이 즐비한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높지 않은 야산들 중간 중간에 여러 호수가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자연보호단체들이 오래 전부터 활동하던 곳이라 자연보호가 잘 된 곳이라고 합니다.

 


B & B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 1866~1943)가 살았던 니어써리(Near Sawrey)의 힐탑(Hill Top)으로 향했습니다. 힐탑으로 가기 위해서는 길쭉한 윈더미어 호수를 아래로 삥 돌거나 아니면 페리로 건너야 합니다. 우리는 삥 돌기로 했습니다. 국립공원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강원도 설악산 국립공원과 같은 곳입니다.



호수를 끼고 차를 몰아 힐탑으로 가는 도중에 잠시 쉬었습니다. 쉬면서 딸이 나처럼 해봐요 요렇게!” 하길래, 나는 열심히 따라 했는데 아내는 싫다는군요.

스위스에 가면 어디를 대고 찍어도 그림엽서가 되는데, 이곳도 만만찮은 곳입니다.

 

포터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미스 포터(Miss Potter)>라는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Peter Rabbit이라는 캐랙터와 스토리를 만들어서 동화작가로도 유명해졌고, 컴브리아 지방의 자연환경을 부동산업자들의 탐욕적 개발로부터 막아내기 위해 애썼던 사람입니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자연보호단체의 활동이 활발한 곳입니다.

왼쪽 사진은 포터가 직접 그려낸 피터 래빗의 토끼입니다. 내가 그곳에서 토끼를 보지는 못했지만, 포터는 실제 토끼를 모델로 그림을 그려 동화책을 출판하여 성공했습니다. 그 돈으로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땅을 샀습니다.



그림에는 포터만의 독특함이 있습니다. 쥐, 토끼, 돼지, 닭 등이 특징적으로 그려져있습니다.

살던 집은
옛집 그대로라서 그런지 아주 작은 집인데다 관광객이 들끓어서 내부를 자세히 보거나 사진을 찍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포터가 살던 집을 구경하려면, 표를 사서 한 시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관리인은 포터가 매일 산책하던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정말 아름답죠.

남는 시간을 포터의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우리는 포터의 동화책 몇 권을 사가지고 다시 다음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이 지방은 아직도 100년 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인공을 최대한 배제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입니다. 니어써리는 분명히 포터가 먹여 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내 고향 강원도는 개발을 못해 안달을 합니다. 개발은 후손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을 가지급해서 흥청망청 쓰는 행위입니다. 강원도는 개발되지 않은 청정한 곳으로 그냥 놔뒀으면 좋겠습니다. 돈벌이가 안 된다구요? 개발하지 않고 자연환경을 잘 보호하면, 개발에 지친 사람들이 와서 돈을 쓰고 갑니다. 개발하기 전에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시인과 철학자, 예술가들을 끌어들여 스토리를 구성해야 합니다. 영국의 오지마을인 니어써리에 사람들이 평일에도 바글바글합니다. 입장료가 얼만지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에는 바가지썼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쌌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듭니다.

안면도의 어느 리조트에서 개최된 워크숍에 강연하러 갔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큰 리조트로 인해 해안의 모래벌판이 콘크리트와 맞닿아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환경파괴가 일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근시안적인 개발로 인한 폐해는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까지 심대한 영향을 줍니다. 무엇을 위한 개발인지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간 날은 일본인 단체관광객이 거의 반이어서, 관리자에게 물어봤더니 일본인들은 미스 포터를 좋아한다는군요. 우리는 그곳에서 한국인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영국의 시골구석까지 신경 쓸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영국여행이 런던과 그 주변을 휙 둘러 사진찍고 가는 정도인가 봅니다.






우리는 니어써리의 정취를 더 느끼고 싶었지만, 너무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그 느낌을 오래 간직하려고 책을 샀습니다. 오늘 책을 다시 훑어보니 호수와 들판, 구릉과 안개와 농부들, 그리고 목장의 동물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동화를 짓던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포터가 살던 힐탑을 뒤로 하고 영국이 낳은 위대한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가 살던 곳을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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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아침에 일어나니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군요. 이럴 땐, 바하 또는 모짜르트를 틀어놓고 커피향을 실내에 가득 채우면 아주 제격이지요. 그러면 멀리 떠난 아이들이 더욱 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국이야기라기보다는 딸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나에게 영국은 딸 아이 때문에 인연이 된 나라입니다. 딸 아이가 영국으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취직을 하는 바람에 영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독일 유학시절에 유럽의 대부분 나라를 여행했음에도 영국은 가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왠지 영미계통에 대한 약간의 혐오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영미계 국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미계통의 사람들은 대개 일은 하지 않으면서 돈 계산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힘의 세니까 겉으로는 존경하는 척 하지만, 특히 미국인의 문화적 저질성에 대해 독일인들은 혀를 내두릅니다. 그래서 안 좋은 것은 다 미국애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긴 독일도 아직 우리나라처럼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여서, 군사지도에는 독일이 미군 점령지로 표시되어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미국에 대한 감정이 좋을리는 없겠지요.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영국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었습니다. 딸 아이가 대학을 마치고 2007년 여름에 스위스계 투자은행인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의 런던오피스에 Business Analyst로 취직해서 일하다가 지난해 말 휴가 겸 노동비자취득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돌아갔습니다.

 

비자를 기다리는 동안 영국경제가 워낙 안 좋아서 외국인 취업을 적극 억제하는 정책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비자가 선뜻 나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노동허가비자가 나왔다고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계뿐만 아니라 유럽계 투자은행들도 만신창이가 돼서 모두들 수천 명씩 구조조정 하는 마당에, 회사에서 변호사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비자발급을 종용했다니,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딸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러면 지금까지 딸이 노동비자도 없이 어떤 상태로 일했냐고? 영국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적어도 1년간은 노동비자 없이 취업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그것은 외국인 졸업생 중에서 소위 high skilled people을 영국 내로 유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지나서 이제는 정식노동비자를 얻어야 합니다. 한국에 와서는 재택근무를 했습니다. 서울에서 저녁 6시에 로그인해서 새벽 3시까지 런던의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온라인으로 일 처리를 해야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당초 대략 2주 정도, 아무리 늦어도 한 달 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예상과 달리 두 달도 더 걸린 셈이다. 그렇게 길게 걸린 이유는 아마도 그간에 영국에서 했던 딸 아이의 행적을 일일이 조사하느라 그랬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내와 나는 딸 덕분에 여름휴가를 2년 연속 영국에서 보냈습니다. <영국여행 이야기>시리즈는 그 연유로 쓰게 되었습니다. 딸 아이가 런던에서 일하면서 국제금융을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가족이 떨어져 살면 늘 그리움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잘 먹는지, 운동과 휴식은 충분한지 늘 걱정이죠. 그리고 투자은행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도 불분명해서 가급적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건 완전히 내 생각일 뿐이고

 

딸 아이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나의 삶이 아내와 결혼 후에도 줄곧 공부하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아이들을 잘 보살피지도 못했는데, 벌써 훌쩍 커버렸습니다. 지들 맘대로 커버린 것이죠.

영국으로 떠나는 날 공항에 데려다 주면서 카메라를 들고 갔습니다. 몇 장 찍었습니다. 딸 아이가 보면 아주 싫어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주 예쁘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아이들이 더욱 보고 싶어지는군요.

 

나는 사진 찍는 일에는 서투릅니다. 잘 찍지 못하고, 어떻게 찍는 줄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완전 자동모드로 찍습니다. 내겐 그게 편하기 때문이지요.

한시간 일찍 도착해 짐을 부치고 던킨 도너츠에서 도너츠와 콜라를 마셨습니다. 어제 파마를 해서 추레하니 찍지 말라고 난리를 쳤는데, 찍사 맘이라고 그냥 찍었습니다.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인데 가까이서는 절대 찍지 말라고 하는 걸 냅다 찍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일해라. 몸을 튼튼히 해라" 정도였습니다.


평소에 생머리던 딸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 출국 하루 전에 머리를 했습니다.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딸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습니다.


출국장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짐을 부쳤는데도 보따리가 많군요. 내가 들어다 주고 싶은데... 출국장으로 들어가면서 작별인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딸이 편지를 써놓고 갔습니다. 쓰다 남은 한국돈도 남겨놓았습니다. 열어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삶에 있어 최상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군요. 그리고는 엄마 아빠가 건강에 시간투자하는 것 잊지 마시고 항상 좋은 생각과 재미있는 일들로 '뇌'를 꽉 채우라고 충고하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는군요. 내 고향 강원도의 극심한 겨울 가뭄이 이 비로 다 해소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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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딸은 나를 또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번에는 런던 북쪽에 있는 캠든(Camden)의 재래시장을 꼭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나리 워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여서 볼만한 게 많다고 합니다.

 

런던의 서북부에 위치한 캠든까지 지하철로 가서 걸어 다니기로 했습니다. 서울 남대문 시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한가 봅니다. 씨끌벅적하고 애교 넘치는 짝퉁들이 즐비하게 있습니다.


오리지날을 그대로 복사하는 불법 짝퉁이 아니라 위트가 넘치는 짝퉁들입니다. 활기찬 Puma상표는 의식을 잃은 Coma상태로, iPodiPood, 새출발을 의미하는 결혼식 상표는 game over, National Geographic National Pornographic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펑크머리의 진수도 볼 수 있었습니다. 삶의 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습니다.

 


씨끄러운 시장통을 지나가는데 한 구석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습니다.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소리 때문인지 금발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한번 들어 보실까요.

 

나는 잠시 보고 있었을 뿐인데, 아내와 딸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나는 구석구석을 뒤졌습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보물찾기를 마치고, 우리는 Primrose Hill을 향해서 걸었습니다. 서울로 말하자면 북한산 정도 되는 위치인데, 높이는 나즈막한 언덕입니다. 런던 주변에서 이곳이 제일 높은 곳이라는군요. 그나마 런던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유일한 언덕입니다. 저 아래 보이는 푸른 숲이 리젠트 파크(The Regent Park)입니다. 그 너머에 런던시내가 보입니다.



우리는 리젠트 파크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공원을 가로질러 내려오는 길은 정말 추웠습니다. 바람도 많이 불어서 햇볕이 드는 벤치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서울에는 찌는 듯한 더위일텐데, 런던에서 추위에 떠는 모습입니다. 담요를 덮어도 춥군요. 여름 피서로는 런던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공원 내에 있는 장미의 정원(공식 이름은 Queen Mary’s Gardens)에서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딸은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있군요
옷이 임신복 같다고 했더니, 오늘의 컨셉이라는군요.


(딸이 이 사진을 내 블로그에 올린 걸 알면 항의 전화, 항의 메일이 빗발 칠텐데... 모르는 척하고 올렸습니다. 우리 딸 이쁘지 않나요?)



이제 다시 런던의 중심인 피카딜리 서커스(Picadilly Circus)로 돌아왔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지요. 아내는 세일이라고 써 붙인 가게는 일단 들어가 봅니다. 사지도 않을 것을 왜 발품만 파냐고 투덜거리면, 그게 휴가와 여행의 재미 아닌가 되묻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가 봅니다.


 


배낭을 하나씩 메고 상점가를 순례하느라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해 떨어지려면 아직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여름의 런던은 저녁 9시가 돼도 훤합니다. 훤한 시간에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죠. 우리는 뮤지컬을 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라이온 킹(Lion King)을 공연합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극장은 런던의 3대 명물(공원과 이층버스를 포함하여) 중에 하나입니다.

뮤지컬보다 런던의 극장을 체험하기 위해 제일 싼 좌석 표를 샀습니다. 그래도 그 유명한 Her Majesty’s Theatre3층 맨 위 구석자리였습니다. 영국에는 변변한 산업이라곤 금융과 관광뿐인데, 부시와 월 스트리트 애들의 불장난으로 전세계 금융이 쪼그라드는 바람에 관광산업도 맥을 못추고 있으니, 요즘 영국 경제는 말이 아닌 모양입니다.


아내는 극장에 들어가 앉자마자 골아떨어졌습니다. 나 역시 비몽사몽간이었습니다. 라이온이 나오는지 타이거가 나오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극장에서 조는 아내의 모습, 이쁘지 않나요?)









졸면서 봐도, 라이온 킹을 뮤지컬로 제작한 사람들의 상상력은 돋보였습니다. 역발상의 진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스토리도 감동적이지만, 애니메이션에서나 가능할 동물들의 액션을 배우들이 재현해 내는 모습은 창조적 상상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대의 화려함과 조명, 의상, 그리고 음악…… 뮤지컬은 종합예술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래 전에 뮤지컬 캐츠(Cats)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는데, 라이온 킹도 그랬습니다. 아무리 뮤지컬이 좋아도 생리적 현상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와 아내는 아깝게도 반 이상 졸았습니다.



 

라이온 킹은 디즈니가 만든 최고의 히트작입니다. 이 작품 하나로 수억 달러를 벌었다고 하죠.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는 얼마나 벌어들였을까요? 그렇게 벌려면 현대자동차 몇 대를 팔아야 하나요?

나는 이런 작품들이 얼마를 벌어들였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품을 기획하고 만들었던 사람들이 내뿜었을 정신적 에너지가 수많은 사람들을 공감시켰고, 그들의 정서와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경험했을 행복감을 우리는 중시해야 합니다. 설사 라이온 킹이 흥행에 실패했더라도 그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행복감은 그것 자체로 소중한 가치를 갖기 때문입니다.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그들의 상상력과 창조성이 부럽습니다. 손끝의 재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 잘 보고 좋은 대학을 나온다고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시험성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시험은 상상력을 죽입니다.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리처드 브랜슨, 조앤 롤링 ......

 

나는 우리나라 교육이 점점 살벌해지고 있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교육부처 고위층과 서울시 교육감의 교육정책을 보니까, 아이들에게 시험성적으로 경쟁을 시켜서 학력을 올리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사들에게는 성과급을 더욱 차등화하여 교사들끼리도 서로 경쟁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교사들이 더 잘 가르치게 될 것이라고 믿는 모양입니다. 그것은 환상입니다. 성과급이 인간을 어느 정도로 타락시키는지를 최근의 월스트리트 붕괴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를 다시 살리는 혁명적인 처방을 생각해야 합니다. 핀란드와 같은 교육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라이온 킹과 해리포터가 과연 성과급을 차등 지급했기 때문에 나온 것일까요? Her Majesty’s Theatre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이런저런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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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아이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템즈강을 건넜더니 수 마일을 걸은 발걸음은 더 떨어지지 않았고, 배는 출출해졌습니다. 중국집이 눈에 들어왔고 의자에 앉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시원하게 맥주도 한 잔 마시고 짜장면 비슷한 것을 시켜 먹었습니다.

 




힘을 내 음식점을 나와서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을 걸었더니 그리니치 공원이 나왔습니다.

선진국은 도회지에 있는 공원의 넓이와 질적 수준에 의해 결정되는가 봅니다. 런던은 조금만 걸어도 드넓은 공원이 나타납니다. 그것도 방치된 것이 아니라 잘 조성된 공원, 그래서 아무런 통제 없이도 아이들이 맘대로 뛰어 놀 수 있는 공원, 이런 공원을 서울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니 아직 선진국이 되려면 멀었나 봅니다. 

공원을 빼놓고서 런던을 논하지 말라고 충고한 책을 보았습니다. 전원경의 『런던 숨어 있는 보석을 찾아서』라는 책에서는 런던에서 좋은 것 세 가지를 꼽으라면, 이층버스, 공원, 극장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내가 런던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공원이었습니다. 이층버스와 극장은 돈 들이면 되는 것이지만, 공원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공원은 역사이자 정신이자 문화입니다.

 

하이드 파크

런던은 세계의 도시 중에서 가장 넓은 녹지 면적을 공원의 형식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런던의 3분의 1이 녹지인 공원으로 덮여 있습니다. 그 유명한 하이드 파크, 리젠트 파크, 켄싱턴 가든, 세인트 제임스 파크 등 크고 작은 공원이 80여 개나 된다고 합니다.

 

Primrose언덕에서 내려다 본 리젠트 파크


켄싱턴 궁 앞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


세인트 제임스 파크 건너편에 있는 그린 파크


동네에 있는 작은 공원


그런데, 이 공원의 풍경이 대개 비슷합니다. 한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엄청 넓고, 시원한 잔디밭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공원을 산책할 수 있는 길과 벤치, 그리고 동상들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크고 작은 연못에서는 대개 백조와 오리들이 노닐고 있습니다. 그곳은 한마디로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안식처입니다. 디즈니랜드식의 놀이동산이 아닙니다. 음식점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거의 쾌적함을 넘어서는 도시의 쾌적함입니다. 서울은, 아니 우리나라의 대도시들은 지금 콘크리트 숲으로 덮이고 있습니다.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이 땅이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하는 이 시대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야 제모습을 찾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런던너(Londoner)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원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것입니다. 목전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옹졸한 이 시대정신을 사회전체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유보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정신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이러한 정신은 대운하가 아닌 공원의 형식으로 드러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다시 공원을 부러워하면서 천문대를 향해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느닷없이 딸은 나에게 약속 하나 하자고 했습니다. 내가 딸아이와 못할 약속이 어디 있으랴!

 

아빠, 절대 뒤를 돌아다 보면 안 돼! 알았지!”

오냐, 그렇게 하마.”

 

중턱쯤 올라갔을 때, 나는 뒤를 돌아다 보고 싶어졌습니다.

 

뒤를 보면 안 될까?

안 돼, 지금은 안 돼!”

 

딸은 한사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고... 지금 뒤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된다나 어짼다나아무튼 나는 수 마일을 걸은 무거운 다리를 옮기며 왕립천문대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딸이 부리는 마술을 기대하면서

 

아빠, 됐어. 뒤돌아 봐도 돼!”

 

우리가 걸어온 언덕 아래에는 이렇게 찬란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마천루가 카나리 워프(Canary Wharf)입니다.


 





왕립천문대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2008 7 31 18시 28분이었습니다.










서울이 동경 127도라는 표지판도 발 밑에 보였습니다. 세계를 제패했던 영국인들이 만든 세계의 표준을 봤습니다. 우리가 힘써 만들어야 할 세계의 표준은 뭘까요?

 




대운하와 몰입교육으로 세계표준을 만들 수 있을까요? IT, NT, GT, ET 등과 같이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21세기를 만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청소년들이 시험점수가 아니라 사고력과 상상력을 기른다면 우리는 충분히 첨단분야의 세계표준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의 사진들은 17세기 크로스토퍼 렌이 설계했다는 왕립천문대의 겉모습입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아주 소박하기 짝이 없는 건물입니다.


천문대 입구



천문대 뒤뜰


천문대 앞뜰


우리는 이 여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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