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6.03 우리가 앓고 있는 질병 (6)
  2. 2009.03.05 코람데오 정신(coram deo spirit) (2)
  3. 2009.02.12 정체성의 뿌리

오늘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육체적 질병이 아니라 정신적 질환입니다. 하나는 자본주의적 질병이고, 다른 하나는 권위주의적 질병입니다. 이 두 가지 질병이 합병증을 일으키고 있어서 뭐가 뭔지 진맥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

 

자본주의적 질병의 원인은 우리가 정치적 경제적 질곡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서구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를 우리도 향유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야당에 투표하면 잡혀가는 줄 알던 시대에서 벗어나 우리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투표할 자유를 확보했고, 대다수 국민이 절대 빈곤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가 해방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외적 조건으로부터의 해방, 즉 정치적 해방 또는 경제적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느껴보기도 전에 우리에게 더 크고 무거운 족쇄가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족쇄는 인간의 내면에 채워져 있기 때문에 거추장스럽게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롭다고 생각하면서 그 무거운 내면적 짐을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최동석,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한국관료조직의 개혁을 위한 진단과 처방, 비봉출판사 1998, 206~207)

 

이 글은 10여년 전에 쓴 글입니다. 인간의 정신적 내면에 채워진 쇠사슬! 그것은 탐욕의 족쇄였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시장메커니즘이 우리에게 선사한 괴물입니다. 동물원에 가끔 가서 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괴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괴물입니다. 이 괴물이 우리의 잠재력을 적절히 발휘하게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괴물때문이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욕구를 충족해야만 합니다. 욕구(need)를 충족하고 나면, 욕망(desire)이 끼어듭니다. 이 때 욕망의 확대재생산과정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면 탐욕(greed)으로 나아갑니다. 이 탐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자본()이고, 이것이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확대재생산 됩니다. 탐욕이라는 족쇄, 탐욕이라는 괴물앞에 인간은 무력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앓고 있는 질병입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탐욕이라는 괴물을 다룰 수 있는 적절한 통제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한 적절한 시스템설계를 필요로 합니다. “자유로운 시장거래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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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기독교 사상이 오늘날과 같은 탐욕적인 자본주의 문명을 이룩하게 했느냐에 대한 논쟁은 많았습니다. 나는 기독교 사상이 자본주의 발흥에 기여했다는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대체적인 중론은 그렇다에 쏠려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기독교는 탐욕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종교입니다. 이것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확합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이 명확한 기준이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특히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부터 인류의 정신적 안전망(mental safety net)이 급격히 약해졌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니(Richard Henry Tawney, 1880~1962)는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양심과 상업이 분리되었다는 점과 기독교의 가르침이 물질적 부의 추구에 복종하는 세태로 변하게 된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토니의 책 『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 한길사 1983을 참고하세요.)

     

    기독교 사상에서 인류 최초의 탐욕 사건은 성경의 창세기 3장에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實果)를 먹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욕망(desire)으로 이어지지만, 마음속에 있는 뱀의 유혹에 이끌리면 탐욕(greed)으로 넘어갑니다. 탐욕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인간의 힘으로는 저항할 수 없습니다. 저항할 수 없는 이 탐욕이 바로 인류를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하게 한 원죄(原罪)입니다. 여자는 잉태와 출산의 고통을 겪게 되고, 남자는 얼굴에 땀이 흘러야 밥을 먹을 수 있게 됩니다.

     

    탐욕은 매우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는 점을 성경은 명확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탐욕은 파멸할 때까지 스스로 증식해 갑니다. 더 많이, 더 많이, 더 많이

     

    어떤 사람은 탐욕을 인류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불황의 고통은 인간의 탐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탐욕을 다루는 방식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는 그 자체로서 모순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탐욕을 제어해야 할 인간이 탐욕적이 되면 자기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낼 재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제도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탐욕적 인간들이 그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탐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마음의 훈련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다스리도록 유도하는 길입니다.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욕망의 수준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서 공동체적인 삶의 가치를 어려서부터 훈련을 통해 몸에 익히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마음의 훈련으로도 제어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욕망이 탐욕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투명성입니다. 사회적으로 하는 일들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제도화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정 금액 이상의 거래는 신용카드와 같은 방식으로 반드시 정보시스템을 거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돈세탁이나 뇌물 수수관행을 방지하고, 사업자의 수입과 소득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둘째로 언급한 제도적 장치의 설계가 아닙니다. 마음의 훈련을 통해 자신이 코람데오(coram deo)의 정신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코람데오는 라틴어의 신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인류가 코람데오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어찌 욕망이 탐욕으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코람데오의 사건은 성경의 창세기 39장에 나오는 사건에서 출발합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라는 말이 거듭 강조되지만, 요셉은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과 난관에 빠집니다. 그러나 요셉은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이 난관을 헤쳐나갑니다. 예를 들어, 애굽 왕의 신하인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여러 차례 동침하자는 유혹을 받지만, 다음과 같이 거절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得罪)하리이까

     

    전지전능한 신() 앞에서 일한다는 정신, 즉 코람데오 정신(coram deo spirit)이라면 제도적 장치가 다소 허술해도 탐욕으로 인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지만, 코람데오 정신이 없다면 아무리 정교한 장치를 한다 해도 탐욕의 폐해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엔론 사태 이후에 분식회계를 막는 강력한 제도인 사베인스-옥슬리 법(Sarbanes-Oxley Act)을 만들어서 지키도록 했지만 6~7년이 지나자 그 법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금융파생상품의 위험을, 설사 불법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엉터리로 계산함으로써 온 세계인이 막심한 피해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탐욕은 인류의 발전에 좋은 것인데, 탐욕을 다루는 방식과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금융 붕괴현상이 나타났다는 견해는 매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어떤 시스템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은 오로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코람데오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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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



    이정우 교수의 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내 손에 가끔 그의 책이 들려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간의 얼굴』(민음사 1999)을 읽다가 밑줄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여기에 인용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사유할 수 있게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욕구를 통해서 주체가 형성되고, 욕구는 능력을 열망하며, 능력은 권력을 통해 구체화된다. 그렇다면 근대적 주체는 어떤 욕구로부터 생성되었는가? ……

     

    현대철학은 왜 이 근대적 주체 개념을 공격하는가? ……

     

    욕구의 다양성, 자신의 욕구를 타자/타인들 사이에서 실행하려는 능력에의 의지, 능력을 구체화하려는 전략들의 배치인 권력 형태의 다양성(계급, 직업, 국가, 민족, 지위, 신분, 성별, 나이 등등), 이 다양성을 통해 형성되는 주체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현대 사유의 문턱을 형성한다. ……

     

    주체의 형성은 자기 이해를 동반하며, 자기 이해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동반한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내면의 욕구와 외면의 코드를 통해 형성된다.  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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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최동석 경영연구소